철길이 끊기게 생겼어요. 인구가 자연 감소하기 시작하고, 해마다 그 폭은 점점 커져가고 있어요. 이에 더해 자동차까지 보급되며 철도는 생존 문제에 직면하게 됐죠. 어떻게든 이용객 수를 유지해야 하는 철도 회사는 각자 위기를 탈출할 전략을 찾아 나섰어요.
그중에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철도 회사가 있어요. 도쿄 도심과 사이타마현을 이어주는 노선을 운행하는 ‘세이부 철도’죠. 세이부 철도는 철도 회사답지 않은 모습으로 돌파구를 찾아가는 중이에요. 전철의 업종을 ‘운수업’에서 ‘서비스업’, ‘엔터테인먼트업’ 등으로 확장시켜나가고 있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52석의 행복’이에요. 통근용 전철을 철도 노선을 따라 ‘여행하는 레스토랑’으로 바꿔버렸죠. 내외부를 디자인한 것은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인데요. 52석의 행복을 통해 마치 과거로 타임 슬립한 듯한 감각을 되살리고자 했어요. 그래봤자 기차가 기차 아니냐고요? 52석의 행복을 알고 나면 아마 생각이 바뀔 거예요.
52석의 행복 미리보기
• #1. 신칸센이 앗아간 느린 여행을 다시 꿈꾸다
• #2. ‘노선’이라는 하드웨어 위에 경험을 얹다
• #3. 온라인 매체로 ‘거리의 공기’를 전달한다
• 철도 회사의 역할은 ‘이동’만이 아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재회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요? 특별한 곳이 있을까 싶지만, 아마 이 동창회 장소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이곳은 마치 ‘타임머신’ 같은 역할을 하거든요. 심지어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기까지 해요. 달리는 전철에서 동창회가 열렸기 때문이죠.
평범한 통근 전철을 잠시 ‘동창회 전철’로 바꿔버린 건 세이부 철도예요. 세이부 철도는 도쿄도와 사이타마현을 연결하는 노선을 운영하는 사철인데요. 동창회 간사 대행업을 하는 쇼야(Syoya)와 함께 전철 안에 테이블을 설치하고, 맥주와 중식을 즐길 수 있게 준비했어요. 덕분에 2016년 11월, 세이부 노선에 위치한 4개 학교의 졸업생 150여 명이 전철에서 다시 만났죠. 몇십 년 전에 이 전철을 타고 등하교를 했던 학생들은 이제 같은 전철에서 사회인의 모습으로 회포를 풀게 됐어요.
©Syoya
이케부쿠로역을 떠난 전철은 중간중간 학교가 위치한 역에서 정차했어요.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졸업생들은 각자 모교 가까이에 있는 역에서 내려 본격적인 추억 여행을 떠났죠. 이 전철을 운행하는 차장은 차량 방송을 통해 학교별 교가를 즉흥적으로 불러주거나 연선*과 얽힌 에피소드를 풀며 분위기를 돋웠고요.
*연선: 선로를 따라서 있는 땅을 뜻해요.
하지만 동창회 전철은 단순히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이벤트만은 아니었어요. 수익성이 높은 비즈니스 모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획을 펼친 데에는 생각보다 깊은 세이부 철도의 고민이 깃들어 있었죠. 일본 인구가 자연 감소하기 시작하고, 해마다 그 폭이 점점 커지며 철도는 생존 문제에 직면하게 됐어요. 철도가 지나는 노선 주변 지역인 연선의 가치를 높여 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됐죠. 그래야만 이용객 수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철도의 생존 과제와 동창회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동창회 전철’의 주 타깃은 30대와 40대였어요. 국토교통성이 실시한 주택 시장 동향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주택을 취득하는 평균 연령층에 해당하죠. 그래서 세이부 철도는 이번 동창회를 계기로 언젠가 이들이 생활 터전을 새로 찾을 때 세이부 연선을 떠올리게 만들고 싶었죠. 한때의 추억이 깃든 전철에서의 동창회는 알고 보니 동네 복귀의 마중물로 설계된 거예요.
세이부 철도가 이처럼 ‘전철의 엔터테인먼트화’를 통해 연선의 매력을 다시 상기시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철도를 이동 수단 이상으로 활용해서 지역 가치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세이부 철도의 주특기죠. 그중 가장 세이부다움이 느껴지는 대표적인 사례는 2016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52석의 행복’이라는 전철이에요. 이곳에서도 마치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 전철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1. 신칸센이 앗아간 느린 여행을 다시 꿈꾸다
인구가 감소하고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철도 회사도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승객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운반하는 것만으로는 철도의 역할에 한계가 드러났죠. 도쿄와 사이타마현을 오가는 세이부 철도는 일찍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 왔는데요. 그 해답을 ‘운수업의 서비스 산업화’에서 찾아냈어요. 사람을 전철로 더 빠르게 이동시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전철에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여행 스타일을 만들어 제공하기로 했죠.
이러한 배경 아래 세이부 철도는 2016년에 전철을 통째로 레스토랑으로 리메이크했어요. 이름은 ‘52석의 행복’. 평소에 사람들을 꽉꽉 채워 통근, 통학 길을 돕던 전철이 ‘여행하는 레스토랑’이 됐죠. 4량으로 구성된 이 전철은 주말과 공휴일에 최대 52명을 태우고 도쿄 이케부쿠로와 사이타마현 지치부를 오가며 식사를 제공해요. 이케부쿠로와 신주쿠에서 출발하는 하행선에서는 런치 코스가 제공되고, 세이부 지치부에서 출발하는 상행선에서는 디너 코스가 제공되는 식이죠.
52석의 행복은 세이부 철도가 창립 100주년을 집대성한 기념작이기도 해요. 그래서 전철의 내외부 디자인을 그에 걸맞은 건축가 ‘구마 겐고’에게 의뢰했죠. 구마 겐고는 이전에 게이오선 다카오산구치역 건축 디자인을 맡은 이력은 있었지만, 전철을 디자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철도 차량 디자인과 역사 건축은 각각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하지만 구마 겐고는 이용객 입장에서 보면 역사에 와서 전철을 타는 행위는 단절되지 않은 하나의 ‘연속적인 체험’이라고 봤죠. 그래서 처음 이 의뢰가 들어왔을 때 매우 반가워 했어요.
“이동 공간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이 그 세계 속에 격리되어 판타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에요. 지금까지는 건축가가 거의 참여하지 못했던 곳이기 때문에, 건축가가 참여한다면 분명 굉장히 재미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드디어 염원하던 판타지가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구마 겐고 건축가, 동양 경제 인터뷰 중에서
그렇다면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세이부 철도의 ‘플래그십 트레인’은 어떤 모습일까요? 먼저 외관부터 살펴볼게요. 52석의 행복은 세이부 철도 연선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외장에 자연을 담았어요. 아름다운 지치부의 사계절과 무사시노를 흐르는 아라카와의 물을 그려 넣었죠. 1호 차는 나가토로의 벚꽃으로 봄을, 2호 차는 지치부의 푸른 산으로 여름을, 3호 차는 지치부의 단풍이 물든 산으로 가을을, 4호 차는 아시가쿠보의 얼음 기둥으로 겨울을 표현했어요.
©SEIBU Rail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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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 겐고에 따르면 통상 프로덕트 디자인 세계에서는 화이트, 실버, 차콜 그레이와 같은 색깔을 가장 빈번하게 사용해요. 그에 비하면 52석의 행복을 감싸는 하늘색은 귀엽고 달콤한 색에 속하죠. 하지만 구마 겐고는 지치부의 자연을 떠올리며 마치 꿈같은 풍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귀여운 하늘색 열차가 지치부의 숲속을 빠져나가 강가로 달려나가는 모습은 떠올리기만 해도 안심이 되는 듯했죠.
©52席の至福 Facebook
이번에는 전철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내부는 평범한 통근용 전철을 리메이크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호화로운 레스토랑의 모습이에요. 이전의 모습은 떠올리기조차 어렵죠.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나무 질감인데요. 목재를 활용한 건축은 구마 겐고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52석의 행복에서 특별히 나무를 쓴 이유가 있어요. 구마 겐고가 어린 시절에 탔던 전차는 좌석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전차 안에 들어갈 때마다 마치 타임슬립을 하는 느낌이 들곤 했거든요. 그런 감각을 다시 되찾고 싶었죠.
이에 더해 구마 겐고는 4량으로 구성된 전철의 천장을 각각 다르게 디자인했어요. 계곡 등의 자연을 모티브로 만든 객실 차량의 천장에 각각 감물을 들인 일본 전통 화지와 사이타마현산 니시카와 목재를 사용했죠. 오픈 키친에는 삼나무를 썼고요. 그리고 LED 조명을 사용해 빛으로 이 소재를 강조했어요.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전철에 전통 공예가 들어가니 판타지적인 감각이 살아났죠.
©SEIBU Rail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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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객실을 디자인할 때 특별히 신경 썼던 부분 중 하나는 둥근 천장이에요. 구마 겐고는 현재의 건축물에서는 둥근 천장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만, 과거 석조 건축 시기에는 아치나 돔 형태의 천장이 기본형이라고 설명했어요. 그래서 평평한 천장에 익숙한 사람들이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전철의 천장을 둥근 형태로 만들기로 했죠. 이 또한 의도적으로 비일상적인 감각을 연출한 거예요.
구마 겐고는 52석의 행복을 디자인하면서 ‘철도 차량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경험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했죠. 보통 전철의 형태를 디자인한다고 하면 차량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이 기본 관점인데, 구마 겐고는 이와 반대로 차량 안에서 바라보는 시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어요. 그러니 기존의 전철을 개조해야 한다는 제약 사항도 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죠.
다만 구마 겐고가 52석의 행복으로 되찾고 싶은 것은 풍요로웠던 일본의 철도 문화였어요. 신칸센의 등장은 속도 측면에서 세계 철도의 새 역사를 썼지만, 반대로 느긋하게 즐기는 이동의 기쁨은 앗아갔어요. 기술의 발달이 아이러니하게도 철도 문화의 일부분을 없애버린 거죠. 이 점이 안타까웠던 구마 겐고는 이번 디자인을 계기로 그 즐거움을 다시 복원시키기로 한 거예요.
©52席の至福 Facebook
#2. ‘노선’이라는 하드웨어 위에 경험을 얹다
당시까지의 철도 차량은 공업화 시대의 인프라로서 주로 ‘이동’이라는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어 디자인됐어요. 하지만 구마 겐고는 ‘이동’이 아니라 전철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에 집중해 보기로 했죠. 그중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바깥 경치를 보며 특별한 식사를 즐기는 것’이었어요. 이것이야말로 어떤 레스토랑에서의 경험보다 사치스러운 것으로 느껴졌거든요.
“식당차라는 것 자체가 저는 설레거든요. 유럽에서도 꽤 철도로 여행을 합니다만, 유럽의 식당차는 특별한 감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식당차라고 하면 설레는데, 최근에는 이런 것들이 사라져버린 느낌이 들어요. 변해가는 경치를 보면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실 수 있다니, 최고잖아요. 어떻게 보면 최고의 사치죠. 어떤 레스토랑보다 사치스러운 경험을 주기 때문에 그런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구마 겐고 건축가, 동양 경제 인터뷰 중에서
사람들도 이런 생각에 공감했던 걸까요? 2016년 4월 17일, 52석의 행복이 첫 운행을 시작한 날 브런치를 예약한 사람은 총 1,051팀이나 됐어요. 추첨을 통해 그중 18팀만 선정했으니 경쟁률이 약 58:1이었죠. 2024년 8월 기준 브런치 코스는 15,000엔(약 15만 원), 디너 코스는 18,000엔(약 18만 원) 상당인데요. 식사 구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왕복으로 승차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전철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프렌치, 이탈리안, 일식 코스예요. 모든 식사는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가 감수하고, 코스가 3개월마다 변경되기 때문에 계절별로 미식을 즐길 수 있죠. 특히 세이부 연선에서 제철 식재료를 공급받아 만드는 것이 강점이에요.
전철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면 승무원이 웰컴 드링크로 식사의 문을 열어요. 승객은 각자의 선호에 따라 음료를 선택할 수 있는데요. 소프트드링크는 무료로 제공되고, 알코올류는 별도로 요금을 지불해야 하죠. 이때 사케,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등은 지치부 지역 브랜드 제품으로 제공하고 있어요. 지치부 증류소에서 제작되는 ‘이치로즈 몰트’ 위스키가 특히 유명하죠.
©52席の至福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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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가 제공되고 나면 본격적으로 요리가 식탁 위로 차례차례 올라와요. 물론 식사가 제공되는 열차는 52석의 행복 말고도 많은데요. 보통 완성된 식사를 역사에서 공급받아 케이터링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대다수인 반면, 52석의 행복에서는 음식을 오픈 키친에서 직접 조리해요. 곧이어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시작되는 라이브 연주가 압권이죠. 사람들은 전철에서 특별한 음식을 맛보며 럭셔리한 호스피탤리티까지 즐길 수 있어요. 시각과 미각, 청각이 모두 즐거워지는 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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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석의 행복은 계절마다 식사 코스에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색다른 레스토랑으로 변신하기도 해요. 상호 관광 유치를 돕는 차원에서 싱가포르 정부 관광국과 협업해 현지 음식을 제공하는 ‘싱가포르 트레인’을 실시한다던가, 대만과 함께 기획해 ‘대만 트레인’을 운영하는 식이죠. 각 나라에 대한 관심의 물꼬를 전철에서의 식사로 트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어요. 특별한 공간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은 좋은데, 이때 바라보게 되는 바깥 경치가 주택가라는 거예요. 세이부 철도가 운영하는 노선이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을 오가기 때문인데요. 주택가를 지나가는 관광 전철이라니, 장소가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어요. 이미 다 안다고 생각했던 일상적인 경치를 맛있는 요리와 연주, 대화와 함께 바라보는 것이 훨씬 신선하게 느껴졌던 거죠. 일상의 장소를 비일상의 감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특별한 경험이 됐어요. 한 고객은 이를 학창 시절에 운동을 하던 체육관과 졸업식 때 바라보는 체육관이 엄밀히 다른 것과 유사하다고 표현했죠. 같은 공간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창밖에 명소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에요. 봄이 되면 52석의 행복이 지나가는 무사시세키역 부근 샤쿠지이가와에 벚꽃길이 펼쳐져요. 이 밖에도 전철에서 볼 수 있는 벚꽃 명소들이 몇 곳이나 더 있죠. 그래서 세이부 철도는 봄이 되면 ‘52석의 행복 꽃놀이 트레인’을 운행해 벚꽃 명소에서는 서행 운전을 하며 고객들에게 봄의 경치를 선물해요.
©52席の至福 Facebook
역무원의 서비스 마인드도 출중해요. 52석의 행복은 일반 전차가 80분이면 오갈 거리를 최대 3시간 내외로 운행하는데요. 차장이 직접 사진 촬영에 응해주거나 웃는 얼굴로 맞이하면서 따뜻하게 커뮤니케이션하죠. 이런 서비스는 일하는 사람에게도, 고객에게도 또 하나의 신선한 체험이 돼요. 세이부 철도는 바꿀 수 없는 ‘노선’이라는 하드웨어에 콘텐츠와 컨셉을 더해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어요.
#3. 온라인 매체로 ‘거리의 공기’를 전달한다
사람들은 52석의 행복에서 색다른 오프라인 경험을 맛봐요. 그런데 이 경험을 보완시켜주는 곳이 바로 온라인 공간이에요. 세이부 철도는 2015년부터 자체 미디어(Owned media)인 ‘구루토 플러스’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 홈페이지에서는 세이부 철도가 지나가는 연선의 매력을 다각도로 소개해요. 전철 운행으로 사람을 이동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역에 내려서 둘러볼 수 있는 공간까지 제안하는 거죠.
©SEIBU Railway
물론 일본 역사를 둘러보다 보면 각 지역을 홍보하는 종이 광고지를 자주 볼 수 있어요. 세이부 철도도 주로 종이 매체를 활용해 왔었죠. 하지만 연선 바깥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디지털 매체로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어요. 게다가 세이부 연선은 관광지로서의 한계가 명확한 상황이었어요. 대표적인 관광지로 가와고에와 지치부 2곳이 유명할 뿐, 그 밖의 90여 개나 되는 역에 관한 정보는 극히 드물었으니까요. 그래서 세이부 철도는 각 지역을 둘러보는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리고 싶었죠.
이런 일을 굳이 철도 회사가 나서서 할 필요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여행사가 있을뿐더러 이미 온라인상에 지역 정보를 다루는 홈페이지가 많으니까요. 그런데도 자체 미디어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묻자 세이부 철도는 이렇게 답했어요.
“물론 웹에도 다양한 외출 정보 사이트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로 나가보자’고 생각한 사람들이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주로 역명이나 장소를 검색해 도착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철도 회사가 직접 연선의 나들이 정보를 소개하는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마치야 카요코 세이부 철도 커뮤니티 디자인 담당, 마케진(MarkeZine) 인터뷰 중에서
‘구루토 플러스’의 메인 타깃은 20대와 30대 여성이었어요. 주로 육아를 병행하느라 바쁜 나이대의 사람들이죠. 이들은 사람들로 붐비는 가와고에나, 도심과 비교적 거리가 있는 지치부에 방문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아요. 그래서 만약 이들이 단시간에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장소를 세이부선 역을 중심으로 소개한다면, 평소에 전철을 타고 외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전철을 이용할 만한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일단 한번 세이부 철도를 접하고 나면 ‘다음에는 좀 더 멀리까지 가볼까’하는 생각도 들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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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토 플러스는 역 주변에서 방문하면 좋은 장소를 추천하는 ‘외출 코스’, 테마별로 지역의 매력을 알려주는 ‘연선 발견 리포트’, 연선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소개하는 ‘세이부 연선에서의 100 체험’을 제공해요. 이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있는데요. 무엇이 되었든 ‘사용자의 시선으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광고라는 형태의 정보 발신은 있었지만, 일방통행이 되기 일쑤이다 보니 정말로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았어요.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사내의 시선과는 달리 ‘이용하시는 분들의 시선’이 필요하죠.”
-시오노 타카히로 세이부 철도 분석·마케팅 담당, 마케진(MarkeZine) 인터뷰 중에서
대표적인 예시는 ‘엄마 가이드’예요. 각 장소에 관한 실제 체험담은 물론, 유모차를 가지고 이동할 때 필수인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있는지, 기저귀를 교체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등을 알려주죠. 엄마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사이트에서 미리 알려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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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세이부 철도는 자사 미디어를 통해서 ‘거리의 공기’를 더 진하게 전달하고자 해요. 아무래도 세이부선 연선이 ‘사람 사는 거리’의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이 거리의 분위기를 더 정확하게 전달한다면 새롭게 주거지를 찾는 가족층에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거리’라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여행하기 좋은 곳으로 시작했어도, 결국 살고 싶은 곳으로 포지셔닝 하고자 하는 거예요.
또, 미디어 운영이 세이부 철도에게 가져다주는 이점이 하나 더 있어요. 철도 회사는 손에 잡히는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만큼, 연선에 사는 사람들이 철도 회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좀처럼 알 수 있는 기회가 없거든요. 하지만 구루토 플러스를 계기로 연선에 거주하거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세이부 철도에 많은 응원을 보내줬죠. 철도 회사가 앞장서서 지역을 홍보할 뿐만 아니라 주민조차 몰랐던 매력을 발굴해 주니까요.
철도 회사의 역할은 ‘이동’만이 아니다
세이부 철도의 연간 수송 인원은 1991년도에 6억 7,421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어요. 그 후 계속 감소세를 이어가 2014년 기준 6억 2,850만 명을 기록하더니, 2024년 3월 발표 자료에 따르면 약 5억 6천만 명까지 줄어들었죠. 세이부 연선에서는 인구 감소의 조짐도 나타남에 따라 혼잡률도 이전보다 확연히 줄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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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모든 철도가 겪고 있는 공통된 위기이기도 한데요. 세이부 철도는 ‘낯’과 ‘익숙함’ 사이를 오가며 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중이에요.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적인 풍경에는 판타지를 더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동네는 ‘살기 좋은 곳’으로 인지시키면서요. 철도 회사로서의 역할을 ‘이동’으로 한정 짓지 않는 세이부 철도의 행보가 철도 위의 기차를 계속해서 달리게 하는 힘 아닐까요?
Reference
なぜ電車で同窓会? 30~40代がターゲット、そこにあるねらいとは 西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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