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점점 줄고, 젊은이들은 도시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대중교통 노선까지 없어지고 있는 지방 마을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대도시 쏠림 현상과 수도권 양극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일개 마을이 뒤바꾸기란 쉽지 않아요. 일본 미에현에 있는 타키초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2021년, 인구가 1만 5천 명 수준인 이 작은 마을에 도쿄돔 24개 규모의 상업 시설 ‘비손(VISON)’이 오픈했어요. 전체 부지가 119헥타르에 상당하는 이곳에 호텔과 온욕 시설, 일본 최대 규모의 생산자 직판장, 레스토랑, 식재료 전문점 등이 들어섰죠.
게다가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이 지방 마을에서 비손은 100년 넘게 지속되는 상업 시설을 꿈꿔요. 그래서 오랜 시간 수리해가며 시설을 유지 보수할 수 있도록 목조 건축을 고집했죠.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 대범한 시설을 만들었냐고요? 비손이 그린 꿈의 크기는 광활한 부지만큼이나 커요. 2021년 오픈 이후 1년간 300만 명이 다녀간 비손의 큰 그림, 지금부터 살펴볼게요.
비손 미리보기
• #1. 음식 관련 프로들이 알아서 모이는 시장
• #2. 사라져가는 식문화를 지키는 보존 구역
• #3. 상품을 넘어 문화까지 판매하는 컬처 숍
• #4. ‘크리에이터가 사는 방’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 유지 보수가 필수인 목조 건축을 고집한 이유
저출산, 고령화, 그리고 인구 유출까지. 지방 도시가 겪고 있는 전형적인 문제들이에요. 일본 미에현에 있는 타키초라는 마을도 예외는 아닌데요. 1만 5천 명 밖에 되지 않는 타키초의 인구는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점점 줄어들었어요.
그 여파로 대중교통 노선은 폐지되고 의료 시설 등의 인프라도 없어졌죠. 설상가상으로 마을 바깥에서 유입되던 관광객까지 감소했어요. 주변 마을로 시야를 넓혀 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죠. 이웃 마을 인구 수도 각각 6천 명, 1만 명 수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타키초는 예로부터 유리한 점이 많은 지역이었어요. 일본 3대 와규로 불리는 ‘마쓰자카규’가 유명한 마쓰자카시와 인접해 있었고, 이세시마, 쿠마노고도 등 인기 관광지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광 거점이라는 지리적 편의성은 타키초에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했어요. 인기 관광지 근처에 있다 보니 타키초의 방문객은 대다수가 당일치기 여행객이었고, 젊은 세대들은 나고야나 오사카 등의 대도시로 빠져나갔죠.
그런데 이처럼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던 타키초에 2021년, 일본 최대 규모의 복합 리조트 시설인 ‘비손(VISON)’이 생겼어요. 아쿠아 이그니스, 이온 타운, 퍼스트 브라더스, 로토 제약이 공동 출자 형태로 설립한 ‘비손 타키’가 개발과 운영을 맡았죠.
여기서 비손은 ‘아름다운 마을’을 의미하는 ‘미촌(美村)’이라는 한자어를 훈독한 것인데요. 평범한 마을을 상상하면 안돼요. 전체 부지 규모가 도쿄돔 24개 크기인 119헥타르에 상당하거든요.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는 이상 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죠.
©VISON T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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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상업 시설’이라 불리는 비손의 광대한 부지에는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호텔, 일본 최대급 규모의 생산자 직판장, 유명 요리사가 지역 식자재를 살린 레스토랑, 일본 식재료 메이커가 만든 체험형 매장 등 총 68개 점포가 있어요. 전문성과 다양성을 겸비한 대형 복합 시설에 일본의 스타 플레이어와 히든 플레이어가 모두 모여 있는 형국이죠.
그런데 이쯤 되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겨요. 안 그래도 거주 인구와 관광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타키초는 상업 시설을 새로 짓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잖아요. 또 자세히 보면 비손에 입점한 68개의 점포는 통상적으로 본점 이외에는 타 지역으로 출점하지 않았던 브랜드들이에요. 그러니 이들을 불러 모으는 일 자체로도 난이도가 높았죠.
하지만 비손은 입점한 점포들을 비롯해 지역 주민, 관광객 모두에게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권 하에 있었던 2021년에 오픈한 이후, 1년 만에 300만 명 이상이 이 곳을 방문했죠. 작은 마을에 그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인 비결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아름다운 마을’ 속으로 떠나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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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식 관련 프로들이 알아서 모이는 시장
전체 부지 중 개발 면적이 54ha에 달하는 비손은 총 9개 구역으로 나뉘어요. 각 구역은 시차를 두고 오픈했는데, 첫 번째 오픈일은 2021년 4월 29일이었죠. 기념비적인 제1기 오픈의 핵심은 생산자 직판장 ‘마르쉐 비손’이에요. 900평 규모의 마르쉐 비손에서는 미에현을 비롯해 인접한 현에서 나는 지역 식재료를 판매하죠. 고기, 생선, 야채, 과일 등 품목과 종류가 다양한데, 이는 생산자 직판장으로서 일본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해요.
©VISON T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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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손의 핵심 시설로 ‘생산자 직판장’을 만든 이유가 있어요. 미에현은 지역 식재료가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거든요. 이 식재료들을 외부에 홍보하려면 각종 농작물과 해산물을 모아놓고 판매하는 대규모 시장이 필수라고 생각했죠. 게다가 타키초는 ‘교통 요충지’라는 지리적 이점도 있잖아요. 유명 관광지인 이세 신궁까지 차로 약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 만큼, 지역 먹거리를 홍보하기에 최적의 위치였어요.
그렇다면 마르쉐 비손에서는 어떤 먹거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정육점 ‘와카타케’에서는 타키초 옆 마쓰자카의 명물로 알려진 마쓰자카규를 판매해요. 해녀의 마을로 알려진 미에현 도바시에서 3대 째 해녀로 활약 중인 나카가와 집안은 해산물을 판매하고요.
그 밖에도 와카야마현 나치카츠우라에서 어획되는 참치, 이세시마에서 직송되는 대하와 전복 등 다양한 식재료가 늘어서 있어요. 마르쉐 비손의 출점자 리스트만 봐도 이 지역 식재료가 얼마나 풍부한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예요.
©VISON T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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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가 아니에요. 마르쉐 비손에는 상징적인 코너가 있는데, ‘경트럭 마르쉐’예요. 농가에서 그날 수확한 채소를 경트럭에 싣고 와 ‘산지 직송’으로 판매하는 코너죠. 생산량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상황이나 타이밍에 따라 채소를 많이 수확할 때도, 그 반대일 때도 있어요. 하지만 식재료를 가장 맛있을 때 최고의 상태로 판매할 수 있다는 게 경트럭 마르쉐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무엇보다 지역 생산자들이 부담 없이 출점할 수 있는 판매 형태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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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량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그날 수확한 것으로.’ 이게 포인트예요. 판매량이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더 좋은 식재료를 찾는 식당들에게는 더 없는 선택지가 될 수 있죠.”
-테시마 류지 셰프, 비손 공식 홈페이지 인터뷰 중에서
비손이 복합 리조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마르쉐 비손은 여행객을 대상으로 지역 식재료를 판매하는 장소라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마르쉐 비손을 감수한 테시마 류지 셰프의 생각은 달랐죠. 그는 이 공간을 요식업계 ‘프로’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마르쉐 비손이 음식 관련 프로들이 모이는 허브가 될 수 있도록요.
“좋은 식재료가 마르쉐 비손에 모이면 레스토랑 셰프를 비롯한 음식 관련 프로들이 사러 오게 돼요. 지금까지는 다들 도요스 시장에서 식자재를 구해 왔지만, 앞으로는 마르쉐 비손을 타키초뿐만 아니라 간사이, 관동에서도 직접 찾아오는 마르쉐로 만들고 싶어요.”
-테시마 류지 셰프, 비손 공식 홈페이지 인터뷰 중에서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왔던 셰프로서의 경험이 있었어요. 좋은 식재료를 구하려면 무엇보다 생산자를 확실히 아는 게 중요한데, 경트럭 마르쉐를 비롯한 마르쉐 비손에서는 구매자가 생산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그렇게 되면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고퀄리티의 식재료를 구하기가 훨씬 쉬워지고, 이는 결국 식문화 수준의 상승으로 이어져요.
테시마 류지 셰프가 꿈꾸는 마르쉐 비손의 역할은 단순히 하드웨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에요. 생산자와 구매자를 연결시켜, 좋은 상품을 올바른 가격에 유통하는 것을 마르쉐 비손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죠. 생산자가 신선하고 안전한 제품을 적정한 도매가로 판매할 수 있는 ‘건강한 경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거예요. 이처럼 마르쉐 비손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고려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죠.
#2. 사라져가는 식문화를 지키는 보존 구역
한편, 비손에는 일본 전통 식재료를 취급하는 전문점과 메이커들이 따로 모여 있는 구역이 있어요. 일명 ‘와비손’이라 불리는 곳인데요. 이곳에서는 된장, 간장, 미림, 다시마 육수, 가쓰오 육수, 사케 등 일식의 진수를 만날 수 있어요. 다시마 노포인 ‘오쿠이카이세도’, 된장 전문점 ‘쿠라노야’, 간장 직매장 ‘이세 쇼유 본점’ 등 긴 시간 일식의 맛을 지탱해 온 전문점들이 집결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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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와비손에 입점한 매장 구성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눈에 띄어요. 매장을 전국에서 전개하는 대형 체인점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이는 비손을 처음 기획할 당시부터 일부러 의도했던 바인데요. 처음부터 비손 내 ‘체인점 제로’를 목표로 하고 매장을 구성한 다음 출점을 의뢰했어요. 오직 ‘이 지역에만 있는 것’들로 비손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최근 20, 30년 사이 마을 주변에 체인점들이 생기고, 현지 가게가 없어지며, 젊은 사람도 마을에서 사라졌어요. 편리한 것이 늘어난 만큼, 일본의 음식 문화도 점점 없어져 갔죠. 이런 상황 속에서 전통적인 발효 문화를 지켜나가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여기서는 새로운 백화점이나 체인점을 만든다 해도 의미가 없어요. 그보다는 이렇게 넓고, 기분 좋아지는 곳에서 간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려주거나 된장을 만드는 체험을 제공하는 게 좋죠. 좋은 것에 집착해서, 일본의 음식 문화를 남기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타치바나 테츠야, 비손 타키 대표, 산업 타임스 인터뷰 중에서
입점 설득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어요. 본점이 있는 지역을 벗어나 본 적 없던 메이커에게 비손 입점은 그 자체로 큰 변화이자 도전이었으니까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비손 타키의 대표인 타치바나 테츠야는 각 가게를 최대 20번까지 방문했어요. 방문 횟수가 다 합쳐 1,000번을 넘을 정도였죠.
타치바나 테츠야는 이들에게 비손의 컨셉과 취지, 매장 구성 원칙 등을 설명하며 그 뜻을 굽히지 않을 것을 명확히 밝혔어요. 그 결과 백화점 등에 출점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던 브랜드나 음식점들을 비손에 입점시킬 수 있었죠.
“비손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건물을 자연 소재로 만들겠다거나 전국 체인점과 편의점을 넣지 않겠다는 것, 시설 내 자판기를 두지 않겠다는 것 등 스스로 결정한 것을 흔들리지 않고 해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68개 점포의 훌륭한 분들이 동참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말씀드렸던 규칙이나 고집, 마음을 굽히거나 양보하지 않고, 이들을 절대 배신하지 않았던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죠.”
-타치바나 테츠야, 비손 타키 대표, GOETHEWEB 인터뷰 중에서
그 결과 와비손은 일식의 집적지와 같은 모습으로 완성됐는데요. 이곳에 입점한 매장들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만 하지 않았어요. 각 매장이 하나의 체험형 점포로 기능했죠. 소비자들이 제조 환경을 직접 견학하는 것은 물론, 미림을 직접 만들어보거나 다시마 종류를 배우는 등 전 점포에서 워크숍과 이벤트를 수시로 열었어요. 누구나 일본 전통 식재료와 음식 문화, 제조 배경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거죠.
그 대표적인 상점 중 하나가 ‘하야시 상점’이에요. 400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이세 단무지를 판매하는 노포죠. 이곳에서 단무지를 만들 때는 보존료나 착색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보존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요. 이를 편리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오래된 방식 그대로 고수하고 있죠. 원재료가 되는 무는 비손에 있는 농원 부지에서 직접 재배하고, 강황으로 색을 내면서요. 일반적인 단무지가 노란 착색료를 사용하는 것과 대조적이죠. 이세 단무지는 가지 잎, 감 껍질, 고추 등을 섞은 쌀겨에 2년 이상 담가 완성하고 있어요.
©VISON T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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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만 해도 이세 지역에서 생산되는 이세 단무지는 72리터짜리 통으로 70만 개 분량이었어요. 하지만 식습관이 변화하고 무 생산자가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단무지를 만드는 농가가 계속해서 감소했죠. 이런 상황 속에서 굳건히 이세 단무지의 맛을 세상에 전달하고 있는 하야시 상점은 로컬 주민들을 초대해 ‘절임 체험’ 등을 운영하면서 작업 공간과 제작 과정을 적극적으로 공유해요.
“맛은 있어도 몸에는 나쁜 것이 적지 않은 세상이지만, 비손에서는 일본에서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국물 문화나 발효 문화를 선보이고 있어요. 하나의 조미료에 특화된 뮤지엄은 있어도, 이 정도로 모든 발효식품이 모여 있는 곳은 비손뿐이죠. 앞으로 비손을 지역의 음식 문화를 전하고, 보존하는 ‘음식 문화의 거점’으로 만들어 가고 싶어요.”
-타치바나 테츠야, 비손 타키 대표, 도요타 인터뷰 중에서
일본에는 패션 의류를 중심으로 하는 상업 시설은 많아도 음식을 테마로 하는 대형 시설은 드물었어요. 게다가 음식의 인스턴트화가 가속화되며 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도 점차 줄었죠. 이런 상황 속에서 와비손은 일식의 진수만을 모아놓은 것은 물론, 식문화가 100년, 200년 지속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되고자 해요.
#3. 상품을 넘어 문화까지 판매하는 컬처 숍
이렇게 일본 식문화와 전통문화를 강조한 비손을 돌아다니다 보면 특별한 이름을 가진 거리가 나와요. 그런데 이 거리, 일본이 아닌 스페인의 지방 도시인 ‘산 세바스티안 시’에서 이름을 따왔어요. 왜 비손 한 구역에 ‘산 세바스티안 거리’를 만들었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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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손 타키의 대표 타치바나 테츠야는 프로젝트 초기 당시부터 비손을 ‘음식의 성지’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식의 거리로 유명한 산 세바스티안시를 지방 재생의 모델로 삼았죠. 그 후 타키초와 산 세바스티안 시가 ‘미식을 통한 우호 증표’를 체결하며 우호 관계가 생기자, 산 세바스티안시에 있는 3곳의 레스토랑과 한 곳의 디저트 가게가 비손에 출점하게 됐어요. 현지에서 인기가 많은 이 매장들은 모두 비손을 첫 해외 진출지로 삼았죠.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에요. 비손은 산 세바스티안 거리를 ‘상품과 함께 문화를 전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뮤지엄과 함께 운영되는 라이프스타일 숍을 열어 상품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배경이나 문화를 함께 전달하려고 한 거죠. 비손에서는 이를 ‘컬처 숍’이라 부르는데요. 이 또한 와비손의 접근 방식과 일맥상통해요.
가장 대표적인 매장은 ‘호두나무 생활 참고실’이에요. 나라시에서 잡화점과 카페로 운영되는 ‘호두나무’가 처음으로 현 바깥으로 진출했죠. 오너인 이시무라 유키코는 40년 전부터 매일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생활 도구를 제안해 왔어요. 이 제품들은 사람들에게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디자인을 사용하는 편리함, 좋은 제품을 오래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 등을 가르쳐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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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게 안쪽에 있는 뮤지엄에는 이시무라 유키코가 오랜 세월에 걸쳐 모은 식기, 가구 등을 볼 수 있어요. 매장 한편에는 그녀의 부엌을 똑같이 재현해 놓아서, 사람들이 맛있는 차와 식사를 즐기며 가게의 세계관과 철학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죠.
©VISON T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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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진짜'를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물론 ‘비싸면 좋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품이 만들어지는 프로세스나 제작자의 기술, 사용되는 재료, 그리고 무엇보다 사용감을 생각하면 다른 것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납득할 수 있고, 애착을 가지고 오랫동안 제품을 사용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이시무라 유키코, 호두나무 대표, 비손 인터뷰 중에서
산 세바스티안 거리에는 패션 디자이너인 미나가와 아키라가 다루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Minä Perhonen)’의 매장과 뮤지엄도 있어요. 미나가와 아키라는 수작업으로 도안을 그려 원단을 제작하고 일본 내 생산을 고집하는 ‘슬로 패션’으로 유명한데요. 뮤지엄에 전시해 놓은 텍스타일, 제품 초기 아이디어, 각종 아카이브 등을 보다 보면 누구나 장인의 기술과 노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어요. 미나가와 아키라는 이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물건에 대한 애착을 기를 수 있기를 기대하죠.
기존 상업 시설들은 주로 완성된 상품만 진열해 놓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제조 뒤편의 배경이나 제작자의 철학까지 알아채기 어려워요. 반면 산 세바스티안 거리에서는 상품만이 아니라 브랜드의 이념, 배경 등 문화를 함께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큰 강점이 있죠.
#4. ‘크리에이터가 사는 방’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전체 부지가 총 119ha에 육박하는 비손에는 지금까지 소개한 구역 이외에도 둘러볼 곳이 많은데요. 어느 구역을 가더라도 독특한 컨셉으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전 구역을 다 돌아보려면 당일로는 부족해요. 비손에서는 방문객들이 아쉬움을 느끼지 않도록 숙박 시설을 함께 만들어 뒀죠.
숙박 시설은 총 6동의 빌라와 155실의 호텔동, 4동짜리 ‘하타고 비손’, ‘더 콘란숍’이 디자인 감수를 맡은 ‘하시엔다 비손’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숙박객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 포인트가 시설마다 다르죠. 빌라에는 노천탕이 있어 느긋하게 쉬기 좋고, 호텔동에는 테라스가 있어 자연 속 밤하늘을 조망하기에 제격이에요. 하타고 비손은 일본의 전통적인 풍류를 느끼기 좋고, 하시엔다 비손은 농원 부지에 위치해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에 푹 빠져들 수 있죠. 그래서 취향과 성향, 목적에 따라 골라서 숙박하는 게 가능해요.
빌라 ©VISON Taki
호텔동 외관 ©VISON Taki
이 중에서 일본의 전통 공법인 목조 건축 공법으로 뼈대를 만든 하타고 비손을 자세히 볼까요? 하타고 비손은 하드웨어부터 일본스러움이 느껴지는데, 이건 내부도 마찬가지예요.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 미나 페르호넨 등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터들이 4개 동의 인테리어를 각각 맡아 스타일링했거든요. 1층에는 각 크리에이터의 컨셉 숍이 있고, 2층에는 크리에이터들이 기획, 제작한 객실이 있는 구조예요. 덕분에 숙박객이 동마다 다른 크리에이터의 감각을 즐길 수 있죠.
하타고 비손 ©VISON Taki
하타고 비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2023년 10월에 크리에이터가 프로듀싱 한 새로운 형태의 객실을 공개했어요. 아예 각 동에 한 개의 객실을 ‘크리에이터가 사는 방’을 테마로 만든 것인데요. 이 객실에 숙박하는 고객들은 머무르는 동안 크리에이터들의 디자인이나 상품 등을 실제로 접하고, 체험할 수 있어요.
한번 예를 들어 볼게요. 4인의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은 ‘나가오카 겐메이’에요. 2000년에 ‘롱 라이프 디자인’을 테마로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를 창설한 디자이너죠.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에서는 일본 47개 도도부현에 1곳씩 거점을 만들어 디자인 중심의 여행 문화 잡지 <d design travel>을 출판하거나,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는 ‘d47 MUSEUM’을 전개해 왔어요. 제품, 음식, 출판, 관광 등 활약하는 분야도 다양하죠.
그렇다면 나가오카 겐메이는 ‘자신이 사는 방’을 어떤 모습으로 구현했을까요? 나가오카 겐메이는 객실 속으로 의자, 레코드, 책 등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들여왔어요. 신제품, 중고 모두 가리지 않고요. 이 중 책과 레코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늘어나서 사람들이 숙박할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어요. 객실 인테리어에 쓰인 아이템 중 일부는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디앤디파트먼트 미에’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죠.
©VISON Taki
비손의 숙박 시설은 공간 컨셉은 다 다르지만, 어느 곳에 머무르든 비손의 목표는 동일해요. 사람들의 심신과 자연환경을 다시 연결 지어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고자 하는 거예요. 옛사람들은 자신이 본래 가지고 태어난 감도를 사용하며 살아왔는데, 현대 사회에서 그 날카로운 감성은 점점 잊혀 가고 있어요. 비손은 이를 다양한 숙박 체험을 통해 다시 일깨워, 모두가 본연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을 돕고자 하죠.
유지 보수가 필수인 목조 건축을 고집한 이유
지금까지 비손의 대표적인 핵심 구역과 시설들을 살펴봤어요. 그런데 비손에 위치한 수많은 건물들에서 한 가지 특징이 보여요. 대부분의 건물이 ‘목조’라는 점이죠. 비손 타키의 대표 타치바나 테츠야는 인터뷰를 통해 비손이 일반 상업 시설과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로 ‘목조 건축’을 꼽았어요.
©VISON Taki
“우선 하나는 건물 대부분이 목조라는 점이에요. 지방 상업 시설 대부분은 20~30년 짜리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요. 따라서 건물도 길어봤자 40년이면 역할을 다한다는 전제하에 지어지죠. 하지만 저희는 유지 보수를 계속 실시해 이 장소에서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목조 건축을 결정했어요.”
-타치바나 테츠야, 비손 타키 대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인터뷰 중에서
비손은 임업을 지원하기 위해 건물에 지역 목재를 주로 사용했어요. 그리고 현지 목수와 함께 나무를 이어 붙어 건물들을 완성시켰죠. 앞으로도 비손은 현지 목수에게 수선을 맡겨 비손을 100년 넘게 지속되는 시설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에요. 궁극적으로 이 시설에 일본이 자랑하는 음식과 문화를 집결시켜 새로운 지방 창조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죠.
비손 타키는 비손의 개발과 운영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앞으로 타 지역 활성화를 위해 쓰고자 해요. 비손을 타 지역의 본보기가 되는 플랫폼으로 삼아 새로운 미래 사회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거죠. 비손과 같이 ‘음식’을 주제로 한 상업시설은 타 지역에서는 또 다른 모습과 색깔로 발현될 거예요. 테마는 똑같아도 지역마다 먹거리가 다르니까요. 그렇게 되면 각기 다른 형태의 ‘수평적인 전개’가 가능해지고, 모든 지방이 지속 가능할 수 있죠.
잊지 않고 남겨둬야 할 것을 모아 ‘오직 이곳에만 있는 상업시설’로 만드는 것. 비손의 접근법과 철학이야말로 각종 문제에 맞닥뜨린 지방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지침 아닐까요?
Reference
【ヴィソン多気株式会社 立花 哲也氏】山間の35万坪に個性豊かな70店。地域色で遠方からも人を呼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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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参考室」と名付けたこの場所で、 「暮らし」を楽しむヒントを見つけ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