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캔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자 ‘팩맨’ 게임이 실행됩니다. 맥주 캔은 미로로 변신하고, 미로 안 팩맨이 고스트를 피해 쿠키를 먹기 시작하죠. 일본의 맥주 업계 1위, ‘아사히’가 2023년 말, 신제품 ‘아사히 수퍼 드라이 드라이 크리스털’을 출시하며 기획한 게임이에요.
게임의 이름은 ‘드라이 크리스털 X 팩맨’. 2023년 10월 11일에 출시되어 2024년 1월 4일까지 플레이된 이 게임은 25만명의 참가자를 모았어요. 누구나 아는 클래식한 게임인 팩맨에 AR 기술을 접목시켜 새로움을 더했더니 젊은 세대의 관심도가 높았죠. 맥주를 잘 마시지 않던 소비자들도 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 맥주를 구매할 정도였고요.
바로 이 지점이 아사히가 노린 바예요. 아사히는 요즘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맥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포섭하는 데에 열심이거든요. 팝업 매장을 열거나, 신제품을 출시할 때에도 비애주가들을 타깃하고 있죠.
그런데 맥주를 마시는 고객이 설득하기 더 쉽고, 경쟁사 고객을 데려온다고 생각하면 숫자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사히의 생각은 그게 아닌가 봐요. 업계의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을 꿈꾸는 맥주 회사, 아사히의 이야기를 들어 볼게요.
아사히 미리보기
• MZ 세대의 시간을 점유한 왕년의 게임
• 맥주캔 시점으로 맥주 공장을 여행하는 체험 공간
• 술을 마시지 않는 세대를 끌어들이는 ‘매직 아워’의 매직
• 고객은 빼앗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도쿄 시부야에는 술을 마시지 않거나 못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바가 있어요. ‘스마도리 바’예요. 이곳에서는 100여 가지의 칵테일 메뉴를 0%, 0.5%, 3% 중 알콜 도수를 고를 수 있도록 했죠. 체질상 술을 마실 수 없더라도 누구나 그 날의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각자가 자유롭게 칵테일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인 ‘스마트 드링킹(Smart drinking)’을 미래의 음주 문화로 제안하고 있는 거예요.
ⓒ시티호퍼스
ⓒSumadori Bar
스마도리 바에서는 주문을 받을 때 라인(LINE) 앱의 CX ORDER 기능을 사용해요. 고객이 QR코드를 통해 LINE 앱으로 접속한 후 주문을 하는 시스템으로, 주문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죠. 주문 시 성별, 연령, 음주 스타일 등에 대한 간단한 설문조사도 있어 고객의 성향과 정보를 데이터화해 향후 스마도리 바 운영에 참고하고 있어요.
스마도리 바는 술과 거리가 먼 사람들의 관점에서 술을 마시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어요. 그런데 2023년 9월, 이 스마도리 바가 멤버십 전용 바, ‘더 피프스 바이 스마도리 바(THE 5th by Sumadori bar, 이하 더 피프스)’를 오픈했어요. 스마도리 바를 오픈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는 시점에, 새로운 바를 연 거예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The 5th by Sumadori bar
ⓒThe 5th by Sumadori bar
더 피프스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무알코올 칵테일을 권장해요. 고를 수 있는 알코올 도수도 0%와 3% 뿐이죠. 무엇보다 무알코올 칵테일을 마시는 고객에 대한 ‘정성적’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에 힘써요. 바텐더가 고객과 1대 1로 오프라인 대화나 라인 채팅을 통해 바에서의 체험, 술 취향 등을 묻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수집한 정보들을 텍스트 마이닝해 분석하고, 정성적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요.
그 이유는 기존 스마도리 바에서 얻는 정량적 데이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먼저 고객이 라인 앱을 통해 주문을 하면서 성별, 나이 등에 대한 개인 정보를 제공해야 할 유인이 없어 디테일한 데이터가 쌓이기 힘들어요. 특정 고객군이 특정 메뉴를 많이 주문한다고 하더라도, 정량적 데이터만으로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죠. 반면 정성적 인터뷰는 데이터의 가치를 높이고 비즈니스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술이 약한 사람들은 맥주 맛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성 조사를 해보니 복숭아 맛의 맥주라면 맛있게 마실 수 있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실제로 스마도리 바의 판매 데이터를 보면 저알코올의 복숭아 맥주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이 많이 주문하고 있어요. 여기에서 저알코올인 과일 맛의 음료가 맥주의 엔트리 상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 요시오카 아츠시 스마도리 바 매니저,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
스마도리 바는 더 피프스를 통해 술을 마시지 않거나 못 마시는 고객에 대한 보다 깊은 인사이트를 얻고, 그들을 위한 신메뉴나 신제품을 계속 출시하고자 해요. 그렇게 2025년까지 스마트 드링킹의 인지도를 40%까지 높이는 것을 주요 KPI로 삼았어요. 저알코올, 논알코올 상품의 판매를 넘어 스마트 드링킹 문화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죠.
스마도리 바와 더 피프스를 구심점으로 스마트 드링킹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일본 최대 맥주 회사인 ‘아사히’예요. 일본을 대표하는 디지털 마케팅 회사 덴츠 디지털(Dentsu Digital)과 합작법인을 세워 운영하고 있죠. 이처럼 아사히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혹은 크게 관심 없는 사람들과 접점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어요. 술 회사가 술을 팔아도 모자랄텐데 아사히는 왜, 그리고 어떻게 비애주가들을 고객으로 포섭하고 있는 것일까요?
MZ 세대의 시간을 점유한 왕년의 게임
아사히의 대표 맥주 중 하나는 ‘수퍼 드라이’예요. 그런데 수퍼 드라이 포함, 맥주 헤비 유저(Heavy user)들은 보통 40대 이상이에요. 미래를 생각했을 때 20~30대 고객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죠. 그래서 아사히는 아시히 수퍼 드라이를 소재로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만들어 가요.
그 시작은 저알코올 버전을 출시하는 거였어요. 2021년에는 도수 4%짜리의 ‘아사히 수퍼 드라이 더 쿨(Asahi Super Dry the Cool)’을, 2023년에는 3.5%의 ‘아사히 수퍼 드라이 드라이 크리스털(Asahi Super Dry Dry Crystal, 이하 드라이 크리스털)’을 출시했죠. 건강에 더 민감한 젊은층 고객들이 저알코올을 선호하는 트렌드를 반영한 선택이었죠.
ⓒAsahi
그 중 드라이 크리스털은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어요. 2023년 10월에 처음 발매하자마자 1주일 만에 100만 상자를 판매했죠. 1상자에 20개 캔이 들어 있으니, 무려 2천만 캔을 판매한 거예요. 게다가 연간 목표 판매량이 150만 상자였는데, 발매 3개월 차인 12월까지 누적 139만 상자를 판매했어요.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었죠. 단순히 맛있는 저알코올 맥주를 출시했기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다른 맥주 브랜드에서도 저알코올 맥주는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까요.
드라이 크리스털의 실적 호조에는 숨은 1등 공신이 있어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게임 중 하나이자, 클래식인 ‘팩맨’을 이용한 AR 게임 ‘드라이 크리스털 X 팩맨’이에요. 스마트폰으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드라이 크리스탈의 캔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하면 화면에 비춰진 캔이 미로로 변신해 팩맨 게임을 즐길 수 있어요. 캔 그 자체를 게임에 사용하는 발상으로 맥주를 평소 마시지 않는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까지 사로 잡았죠.
ⓒAsa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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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게임을 하는 동안 맥주 캔을 계속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AR 기술을 활용한 즐거운 게임의 체험은 브랜드 경험과 연결이 되죠. 게다가 맥주와 게임을 동시에 즐기는 행위는 시간 대비 만족도인 이른바, ‘타이파(タイパ)’, 한국어로는 ‘시성비’를 중시하는 MZ세대들의 성향과도 잘 맞아요.
*타이파: 시간을 뜻하는 ‘타임(Time)’과 만족도인 ‘퍼포먼스(Performance)’를 합친 신조어로, 시간 대비 만족도를 의미해요.
1회에 3분 소요, 하루에 3번까지 게임을 할 수 있으므로, 드라이 크리스털은 하루에 딱 9분 동안 사용자의 시간을 점유할 수 있어요. 하루에 9분으로 ‘마음에 남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죠. 이 캠페인은 2024년 1월 4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실제로 약 25만 명이 게임을 즐겼어요. 드라이 크리스털이 역대급 판매고를 올리는 데에 점화제의 역할을 담당했죠.
그런데 아사히는 왜 신제품 출시를 기념하며, 경품 등의 수단이 아니라 AR 게임, 그것도 팩맨을 선택한 것일까요? 아사히는 생맥주의 감동을 그대로 재현해 2022년에 출시한 ‘아사히 수퍼 드라이 생맥주 캔’을 시작으로 ‘놀라움’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해 왔어요. 이번에도 즐거운 놀라움이 필요했죠. 여기에 더해, 평소 맥주를 많이 마시지 않는 고객을 타깃하고 있었으니, ‘대담한’ 장치가 필요했던 거예요.
생맥주의 거품을 캔 맥주에서 재현해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아사히 수퍼 드라이 생맥주 캔 ⓒAsahi
팩맨은 1980년에 처음 발매된 게임으로 룰을 모르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숙하게 할 수 있는 게임이에요. 게다가 문턱은 낮지만, 오늘날까지 계속 출시 되어 세대를 불문한 왕년의 명작,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죠. 여기에 최신 AR 기술을 접목해 요즘 시대의 감각으로 연출하니 젊은 세대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어요.
드라이 크리스털 X 팩맨 게임은 뜻밖의 효과를 하나 더 냈는데, 아사히 라인(LINE) 계정의 친구 수를 대폭 늘린 거예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라인 상에서 아사히 맥주 계정을 친구 등록해야 했기 때문이죠. 특히 신규 등록자들의 프로필을 보면 20~30대가 대부분이었고, 남녀 성비도 반반이었어요. 기존에 경품을 주는 이벤트를 통해서는 여성이 70%, 나이대가 40~50대였던 점과 대비되는 지점이에요.
게임 후에는 스코어를 SNS로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에서 상위에 랭킹된 사람들이 결과를 SNS로 공유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젊은 층들이 드라이 크리스털을 구매하고, 드라이 크리스털 X 팩맨 게임을 즐기면서 고스란히 또 다시 라인으로 유입되는 선순환이 생겼어요. 해당 캠페인은 종료되었지만, 신규 고객들과의 접점이 남았어요.
“AR 등을 활용한 놀라운 경험은 수직적인 반면, 라인 등 SNS는 수평적이에요. 이 두 바퀴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가능성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습니다.”
- 와가츠마 료 디지털 마케팅 본부장,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
캠페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조사한 결과, ‘모던하고 트렌디하며 스마트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어요. 캔을 AR 게임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한 것은 물론, 타이파 시대를 살아가는 MZ세대들까지 신규 고객으로 맞이했죠. 다른 신제품에 의해 쉽게 잊혀지는 맥주 시장에서 확실한 각인을 남기고, 미래의 접점을 만들어 낸 건 물론이고요.
맥주캔 시점으로 맥주 공장을 여행하는 체험 공간
저알코올 맥주인 드라이 크리스털과 팩맨 게임 출시로 젊은 층과의 온라인 접점을 만들어 낸 아사히가 이번에는 오프라인으로 나왔어요. 2024년 4월, 수퍼 드라이의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는 최초의 체험형 컨셉 숍을 연 거예요.
도쿄 긴자에 위치한 ‘수퍼 드라이 이머시브 익스피리언스(SUPER DRY Immersive experience)’가 그 주인공이에요. 2024년 9월 30일까지 운영될 이 기간 한정 매장은 지하 1층부터 3층 규모로, 700엔(약 7천원)의 입장료가 있어요. 어떤 경험들이 준비되어 있길래,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팝업 스토어가 입장료까지 받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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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컨셉 스토어의 하이라이트는 2층에 있어요. 2층에서는 수퍼 드라이의 세계관이나 제조 공정을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수퍼 드라이 고 라이드(Super Dry Go Ride)’가 준비되어 있거든요. 폭 약 11m, 높이 2.3m의 거대 스크린에 수퍼 드라이 제조 공정을 고화질 4K 영상으로 재생하는데, 몰입을 위해 바람, 진동 등을 발생시켰어요. 거대한 규모 덕분에 관람객은 맥주 캔 위에 탑승, 혹은 맥주캔이 된 듯한 느낌이 들고, 맥주 캔의 시점에서 맥주 제조 공정을 체험할 수 있죠.
ⓒAsa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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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1층은 ‘수퍼 드라이 바’로 갓 내린 ‘수퍼 드라이’나 ‘수퍼 드라이 엑스트라 콜드’를 마실 수 있어요. 아사히 맥주 공인 마스터가 내려주는 차가운 맥주는 캔으로 마시는 것보다 더 청량하고 시원해요. 여기에다가 직접 맥주를 따르는 ‘마이스터 체험’이나 맥주의 거품에 수퍼 드라이의 로고를 기계로 그리는 ‘거품 아트’도 체험할 수 있죠. 물론 여기에서 마시는 맥주 1잔과 팝콘과 같은 간단한 안주는 티켓 값에 포함되어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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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지하 1층은 바 겸 MD 판매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한정판 굿즈나 맥주를 판매해요. 한정판 상품 또한 젊은 층을 겨냥한 컬래버레이션을 많이 선보여요. 특히 수퍼 드라이 TV 광고 CM송을 부른 일본의 락 밴드 ‘ONE OK ROCK’의 사진이 프린트된 맥주는 오픈 첫날 매진되기도 했죠.
“수퍼 드라이를 마시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평소 맥주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이 와 주기를 바랍니다.”
- 카지우라 미즈호 아사히 맥주 마케팅 본부장,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
수퍼 드라이 이머시브 익스피리언스는 아사히 수퍼 드라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체험형 콘텐츠, 아티스트와의 콜라보 등을 전면에 소구하고 있어요. 기존에 아사히 수퍼 드라이와 접점이 거의 없던, 새로운 잠재 고객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죠. 특히 수퍼 드라이 고 라이드는 이바라키 현과 오사카에 위치한 아사히 공장의 박물관에서 인기가 좋은 콘텐츠예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맥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데려오는 패턴을 이미 검증했죠. 이런 현상을 도쿄 긴자에서도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어요.
술을 마시지 않는 세대를 끌어들이는 ‘매직 아워’의 매직
아사히는 기존 베스트 셀러이자 시그니처인 수퍼 드라이의 스핀 오프 버전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승승장구 했어요. 아사히 수퍼 드라이 생맥주 캔, 드라이 크리스털, 드라이 더 쿨 등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패키지도, 카피도, 크리에이티브도 아사히 수퍼 드라이는 커녕, 맥주 답지 않은 맥주를 출시했어요. 2023년 6월부터 수도권과 나가노현, 니가타현에서만 판매하고 있는 ‘아사히 화이트 맥주(이하 화이트 맥주)’예요.
ⓒAsahi
화이트 맥주의 주요 타깃은 맥주를 별로 마신 적이 없거나, 맥주에 약하다고 생각하는 Z세대예요. 여기서 하나의 반전은 논알코올이나 저알코올이 아니라, 일반적인 맥주 도수와 같은 알코올 도수 5%의 맥주로 소구했다는 점이에요. 그 결과는 성공적. 구매자 구성비가 20대 여성과 20대 남성이 각각 10%로, 타 맥주 상품 대비 훨씬 높은 비율로 Z세대 고객을 유치했어요. 아사히는 왜, 그리고 어떻게 일반적인 맥주와 같은 도수로 맥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갔을까요?
일단 아사히는 1명에 대해 깊게 이해하는 정성 인터뷰로 제품을 기획했어요. 매회 10명 정도의 젊은 소비자들을 모아, 1명씩 약 2시간에 걸쳐 깊은 인사이트를 발굴했죠. 그 과정에서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기존의 ‘깔끔한 맛’, ‘시원한 목넘김’ 등의 셀링 포인트들이 자신과 동떨어진 얘기라고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알코올 도수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서 화이트 맥주는 청량한 맥주의 이미지나 문구를 없앴어요. 대신 ‘부드럽고 유연한 향기’, ‘부드러운 음료 경험’ 등 기존 맥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문구가 써 있죠. 캔 디자인으로도 이 문구의 분위기를 살리는데요. 일출이나 일몰에 하늘이 물들어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이른바 ‘매직 아워’라고 불리는 시간대의 광경을 표현하고 있어요. 캔 상단에 ‘매직 아워를 위한 맥주’라는 타이틀을 써 두었죠. 그리고 캔 뒷면에는 아래와 같이 시적인 문구가 있어요.
화이트 맥주 뒷면 ⓒAsahi
‘부드럽게 마음을 풀어주는 것은 아름다운 하늘과 환상적인 시간. 매직 아워처럼 마음을 채우는 화이트 맥주’
화이트 맥주가 ‘매직 아워’를 모티브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인터뷰에 참여했던 맥주를 좋아하는 한 대학생의 말이 힌트가 되었거든요. 바쁜 일상에서도 맥주를 마시고 있는 순간은 모든 것을 잊고 ‘마음이 풀려요’라는 했던 말이 직관적으로 좋다고 판단했죠.
여기에 착안, 아사히는 ‘마음이 풀리는 모티브’를 찾아 나섰어요. 그러다 ‘매직 아워’라고 불리는 시간대의 광경에서 공통적으로 마음이 풀린다는 데에 생각을 모았죠. 마음을 풀어주는 매직 아워라면, 기존에 맥주와 거리감을 느꼈던 사람이라도 맥주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이런 맥주라면 나랑 맞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회가 생길 거라고 본 거예요.
아사히는 브랜딩도 화이트 맥주의 컨셉에 맞춰 전개해요. 화이트 맥주의 특징이나 기능 대신 매직 아워를 표현한 이미지나 영상 콘텐츠로 화이트 맥주의 세계관을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요. 직관적으로 ‘나를 위한 맥주일 수도 있겠다’고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죠. 처음부터 제품을 설명하는 광고성 콘텐츠를 선보이면 화이트 맥주를 고려할 가능성조차 사라질 테니까요.
SNS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X(구 트위터)에서 소비자들이 감성적인 추억을 게시하면, 이 에피소드를 원안으로 크리에이터들이 영상으로 만드는 ‘#히비노에모이데’ 캠페인을 펼친 거예요. 해시태그의 ‘히비노’는 일본어로 ‘매일의’이라는 뜻이고, ‘에모’는 ‘감성’을 뜻하는 영어의 ‘Emotion’, ‘이데’는 ‘Idea’로, ‘매일의 감성 아이디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의 일상적 에피소드를 모아 그 순간 속에 화이트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삽입한 영상을 만든 거죠. 화이트 맥주가 일상적인 감성의 순간에 딱 맞는 상품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실제로 20~30대의 참여율이 높아 젊은 세대가 ‘감성적이다’라고 느끼는 이야기들이 영상으로 제작돼 브랜드 사이트에 공개되었어요. 브랜드의 세계관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이 이 브랜드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심어 주었죠.
고객은 빼앗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아사히는 기존 맥주 업계의 상식을 깨고 있어요. 그래야만 기존에 타깃하지 못했던 MZ세대를 아사히의 고객으로 끌어들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아사히는 왜, 술을 마시지 않는 젊은 세대를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일까요? 직관적으로 젊은 세대가 고객이 되어야 더 오래 비즈니스를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어요.
과거 아사히 마케팅에서는 ‘고객을 바라보는 것’,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어요. 이제는 다음 단계로 ‘어떤 고객을 봐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죠. 다른 맥주 회사들과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타깃한다면 결국 서로 경쟁하는 결과 밖에 되지 않아요.
그래서 아사히는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고자 해요. 고객은 경쟁사로부터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아사히의 고민은 오직, 어떻게 하면 아사히와 접점이 없었던 소비자들이 아사히의 맥주를 선택할 수 있게 할지에 대한 것이에요.
“미래를 이끌어갈 Z세대는 '돈'보다 '인생의 목적'을 중시하는 세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흥미로운 미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도전하고 싶은 미래의 청사진을 가장 먼저 보여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카지우라 미즈호 아사히 마케팅 본부장,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
아사히는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것으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 주고 있어요. 고객의 잠재 니즈를 발굴하고, 이에 대응하여 시장을 활성화하며 동시에 확대해가고 있으니까요. 경쟁사는 물론, 고객조차 알지 못했던 니즈를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건 아사히를 ‘넘버 원’을 넘어 ‘온리 원’의 회사로 만들어 줄 거예요.
“온리 원을 목표로 하면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국내 시장은 포화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사회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가치를 지닌 제품을 만들고, 기존 제품에 요즘의 가치를 더한다면요. 이 두 가지 가치를 추구한다면 사람들은 우리 제품을 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새로운 가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이냐는 것입니다.”
- 코지 아키요시 아사히 CEO,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
일본은 2010년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매해 인구 수가 감소하고 있어요.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내수에서 발생하는 아사히에게 좋은 시그널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아사히는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할 줄 아는 온리 원을 향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며 아사히만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거예요.
Reference
河村 優, アサヒビールと電通デジタルは、なぜ「会員制Bar」を開店したのか, 日経 X TREND
原 武雄, アサヒスーパードライが新施策 新容器にコンセプトショップ, 日経 X TREND
佐藤 隼秀, アサヒビールの銀座イマーシブ施設 入場料700円の満足度は?, 日経 X TREND
高田 学也, アサヒビール「ARパックマン」の深謀遠慮 若者の時間占有に成功, 日経 X TREND
高橋 学, アサヒがN=1分析で得た若者向けビールの世界観 説明より感覚で, 日経 X TREND
清水 美奈, 「7つのマーケ指針」公開 アサヒビール梶浦氏流マーケの本質, 日経 X TR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