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들이 술을 마시러 브루클린까지 가는 이유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

2022.05.12

'브루클리니제이션(Brooklynization)'. 도시의 쇠락하고 허물어져가는 지역이 뉴욕의 브루클린을 모방하려는 경향을 의미하는 신조어입니다. 브루클린은 한 때 맨해튼 옆의 변방에 불과했지만, 버려진 공장, 낡은 주택 등에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 브루클린만의 독특한 질감을 만들며 지역의 이미지를 형성했습니다. 브루클린은 이제 '창의적이고 힙한' 하나의 브랜드이자 대명사로서 자리잡은 듯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브루클린 출신 브랜드 중에 '브루클린'을 브랜드 이름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유난히 많습니다. 그 중 하나인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Brooklyn Cider House)'는 뉴욕의 로컬 문화인 사과주를 만드는 브랜드로, 브루클린이라는 이름을 달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가 뉴욕에서 만드는 사과주의 맛은 어떤 맛일까요?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 미리보기

• 브루클린에 와야하는 이유를 만들다

 로컬 지향의 메뉴

 로컬 지향의 원료

 로컬 지향의 커뮤니티

 로컬 지향의 미래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통근 시간은 14분입니다. 하지만 뉴욕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통근 시간은 무려 40분입니다. 뉴욕 시가 다른 미국 도시들에 비해 지나치게 넓어서도, 교통 체증이 유난히 심해서도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상업 시설이나 일자리가 뉴욕 시의 맨해튼에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뉴욕에는 맨해튼을 비롯해 브루클린, 브롱크스, 퀸스 등 5개 자치구가 있습니다. 5개 자치구 중에서 맨해튼의 면적이 가장 작지만, 대부분의 일자리가 맨해튼에 몰려 있어 인구 밀도가 가장 높습니다.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높아 평범한 중산층이나 가족 단위의 가구가 맨해튼에 주거지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서울 주위에 베드 타운 역할을 하는 위성 도시들이 생겨났듯, 맨해튼과의 접근성과 치안이 좋은 브루클린은 자연스럽게 베드 타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제로 브루클린에 사는 사람들 중 약 60%가 브루클린의 경계 밖에서 일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화 시설과 상업 지구마저 맨해튼에 밀집해 있어 같은 뉴욕이라도 지역 간 불균형이 존재합니다.



고층 빌딩 숲이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뉴욕 시 맨해튼의 전경입니다. ⓒWikimedia Commons


하지만 최근 10여 년 사이에 브루클린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맨해튼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아티스트들이 브루클린으로 모이면서, 힙스터들의 성지로 떠오른 것입니다. 브루클린 길거리는 그래피티 예술가들의 캔버스가 되었고, 곳곳에는 작은 갤러리들과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맨해튼의 화려함과 대적하는 브루클린의 개성있는 바이브는 힙스터들의 발길을 브루클린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브루클린 길거리 곳곳에서 이름 모를 아티스트들이 그린 감각적인 그래피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브루클린에 와야하는 이유를 만들다

이제는 비단 예술 뿐만이 아닙니다. 브루클린의 지역과 문화를 기반으로 유니크한 매력의 매장들이 생겨나면서 여가 시간에 오히려 맨해튼에 있는 사람들이 브루클린으로 넘어 옵니다. 그 중에서도 2017년 브루클린 부시윅(Bushwick)에 문을 연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Brooklyn cider house)'는 뉴욕과 브루클린의 로컬 문화를 기반으로 뉴요커들이 브루클린에 와야하는 이유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글로벌 문화가 뒤섞인 메트로 폴리탄 도시로서의 뉴욕이 아니라, 뉴욕의 로컬 문화를 활용해 고유한 뉴욕을 브루클린에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브루클린 부시윅에 위치한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입니다. ⓒ시티호퍼스


마쓰나가 게이코의 저서 <로컬 지향의 시대>에서는 대기업이나 산업 단지를 유치하는 것으로 한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시점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기업에 의존하는 대신 지역이 가진 가치를 개발하고, 그 가치로 사람들을 끌어 들여야 자생 가능한 경제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역의 내재적 가치를 활용해 사람들을 모으는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에서 로컬 지향의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컬 지향의 메뉴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의 사이다는 '사과주'를 뜻합니다. 이름처럼 이 곳에서는 사과주를 판매하는데, 사과주라는 메뉴부터 로컬 지향적입니다. 사과주는 원래 수백년 전 브루클린 지역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마시던 술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금주법 시대 동안 사과 과수원이 모두 불타 버렸고, 금주령이 폐지된 이후에는 사과주에 비해 더 빨리 만들 수 있는 맥주나 증류주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수원이 없어져 사과를 수확하려면 사과 나무부터 심어야 하는데, 열매를 맺는 사과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는 명맥이 끊겼던 브루클린의 사과주를 다시 재현함으로써 시간을 이기는 브루클린의 로컬 문화를 재생합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에서는 직접 만든 여러 가지 맛의 사과주를 판매합니다. 발효 방법, 재배 시기 등에 따라 사과주의 맛이 다르기 때문에 4가지 시그니처 사과주들을 단맛, 신맛, 아삭한 정도 등에 따라 구분하고, 사분면으로 메뉴판을 디자인했습니다. 사과주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을 배려한 메뉴판입니다. 여기에 시즌별로 한정 판매하는 사과주들도 선보여 사과주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기도 합니다. 매장 한 켠에는 직접 양조 중인 사과주가 담긴 커다란 배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사이다 캐칭(Cider catching)'이라는 메뉴를 선택하면 이 배럴에서 바로 사과주를 내려 마실 수 있습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에서는 커다란 배럴에 직접 사과주를 양조하고 판매합니다. ⓒ시티호퍼스



맛에 따라 분류한 사과주 메뉴판입니다. ⓒ시티호퍼스


사이다 캐칭을 즐기는 손님들입니다. ⓒ시티호퍼스


직접 만든 사과주 이외의 메뉴들도 '뉴욕'이나 '사과주'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고 로컬 지향적인 가치에 집중합니다. 보다 다양한 사과주 라인업을 제공하기 위해 뉴욕 주에 위치한 다른 사과주 양조장의 사과주를 엄선하여 판매하고, 뉴욕 주의 맥주 양조장과 와이너리에서 만든 맥주와 와인도 소량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한편 사과주와의 페어링을 고려해 선정한 푸드 메뉴는 '사과주 중심의 바 음식(Cider-centric bar food)'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합니다. 두 번의 사이다 캐칭이 포함된 코스 메뉴는 음식과 사과주 간의 훌륭한 밸런스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메뉴를 다양화하면서도 전문성을 살려 로컬 매장로서의 정체성을 넓혀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뉴욕 주의 다른 사과주 양조장에서 만든 사과주들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사과주와 궁합이 좋은 타파스 스타일의 푸드 메뉴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로컬 지향의 원료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의 사과주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사과주를 담글 때 사용하는 사과입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는 뉴욕 주 뉴 팔츠(New Paltz)에서 재배한 사과로 사과주를 만듭니다. 단순히 사과주라는 아이템을 판매해 피상적으로 로컬 문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과주의 원료인 사과부터 뉴욕산을 사용해 근본부터 계승합니다. 뉴욕에서 재배한 사과를 뉴욕에서 양조해 뉴욕만의 사과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는 인공적인 첨가물 없이 오직 사과만으로 사과주를 만듭니다. 사과주의 스타일에 따라 2개월에서 18개월 동안의 발효와 숙성 기간을 거칩니다. 이 때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는 최대한 자연의 힘을 빌려 사과주를 만들고, 있는 그대로의 균형감, 맛, 산도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천연 효모와 미생물이 사과를 발효시키도록 내버려 두고, 필요할 때에만 화이트 와인에서 추출한 효모로 발효를 촉진시키는 정도입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가 사과주에 인공적인 힘을 최소화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사과주의 풍미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사과의 품질과 직결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에게 원재료인 사과를 관리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외부 과수원에서 조달한 사과는 그 품질과 품종을 관리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에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는 매장을 열기도 전에 뉴욕 주의 뉴 팔츠에 위치한 '트윈 스타 과수원(Twin Star Orchards)'을 매입했습니다. 자체적으로 보유한 과수원에서 사과를 연구하고 사과주를 만들기 위한 사과를 재배하니,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과를 생산할 수 있어 원료 조달에 유리해 집니다. 일반적인 사과 농장에서는 잘 취급하지 않아 희귀하지만, 산도가 높고 질병에 강한 품종의 사과를 재배해 사과주용 사과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판매용 사과는 표면에 상처가 없고 색도 고와야 하기에 겉모습 때문에 버리는 사과가 많지만, 트윈 스타 과수원은 사과의 외모가 아닌 맛에 집중해 폐기율도 현저히 낮습니다. 오히려 트윈 스타 과수원에서는 '못생긴 사과'의 가치를 알리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못생긴 사과가 더 맛있다(Ugly apples taste better)'라는 캐치 프레이즈 하에 슈퍼마켓에서 유통되는 사과에서는 맛볼 수 없는 풍부한 풍미의 '못생긴 사과'를 따먹을 수 있는 행사입니다. 4월부터 11월까지의 기간 동안 시기에 따라 12가지 품종의 사과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기존의 평가 기준에서 벗어나 로컬의 가치를 살리는 기준을 새롭게 세운 것입니다.



트윈 스타 과수원에서 딸 수 있는 사과의 종류입니다. ⓒTwin Star Orchards



로컬 지향의 커뮤니티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의 매장은 무려 340평에 이릅니다. 사과주 판매만을 위한 매장이라기에는 큰 규모입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는 매장에서 사과주를 판매하는 것과 더불어 사과주에 대한 콘텐츠와 공간을 제공하여 로컬 커뮤니티를 형성합니다. 다양한 목적의 로컬 커뮤니티 이벤트를 개최하다보니, 매장 안에 규모와 형태가 다른 공간들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프라이빗하고 격식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다이닝 룸부터 캐주얼한 칵테일 파티에 어울리는 배럴 룸까지, 공간을 이동할 때마다 그 안을 채우는 공기가 다릅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에서는 매장 내 다양한 형태의 공간들을 활용해 커뮤니티 이벤트를 주최합니다. 고객들은 이 공간을 웨딩, 파티 등의 목적으로 대관할 수도 있습니다. ⓒBrooklyn Cider House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는 사과주를 소재로 로컬 문화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뉴욕의 사과주 생산자들을 초청해 생소한 사과주의 종류에 대해 알려주고, 희귀한 사과주를 시음하는 기회를 제공해 로컬 사과주에 대한 이해를 높입니다. 1~2주에 한 번씩은 뉴욕 출신이거나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는 음악가를 초청해 사과주와 함께 그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열기도 합니다. 그들 중에는 브루클린의 길거리나 지하철역에서 연주하는 음악가들도 있습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에서 만날 수 있는 로컬 문화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는 로컬 사람들의 참여와 지지로 문을 연 매장이기도 합니다. 매장을 오픈하기 전,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Kickstarter)에서 3천만 원 이상을 펀딩받았습니다. 이 자금은 공동창립자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발굴한 2명의 아티스트들이 매장 벽에 작업을 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이었고, 약 한 달간 118명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후원자 중 약 60%가 뉴욕 사람들이었고, 그 중 절반 가량이 브루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가 이 매장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로컬의 가치와 지향점에 공감하는 지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로컬 지향의 미래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를 만든 창립자 피터 이(Peter Yi)와 수잔 이(Susan Yi)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브루클린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 남매입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를 시작하기 전 피터는 뉴욕에서 와인 매장을 운영했었고, 수잔은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이전의 커리어가 사과주와 관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과 농장을 물려 받은 것도 아닙니다. 피터가 휴가 차 들렀던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에서 사과주를 맛본 것이 계기가 되어 사과주를 연구하고, 브루클린의 사과주를 부활시키고자 했던 시도가 현재의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사과주 업계에서 유리할 것 없던 그들이지만, 뉴욕 주에 위치한 사과주 생산업체 중 가장 처음으로 뉴욕 시에 사과주 중심의 레스토랑을 오픈한 장본인입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가 최초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라는 욕심이 과해서가 아니라, 그리는 미래가 뚜렷했기 때문입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가 그리는 로컬 지향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가 운영하는 트윈 스타 과수원은 자신들만을 위한 과수원이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생산량이 적어 생산되는 대부분의 사과를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에서 소화하지만, 미래에 사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8천여 그루의 묘목을 심었습니다. 이 묘목들은 사과주용 사과를 맺는 희귀 품종으로, 추후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 이외의 다른 뉴욕 사과주 생산자들에게도 사과주를 만들기에 적합한 사과를 공급하여 뉴욕산 사과주의 품질을 상향평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의 매장도 대박 매출의 점포를 지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혁신, 창의력, 이야기, 커뮤니티를 담는 공간이 되고, 더 먼 미래에는 브루클린의 정신을 간직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고자 합니다. 그런 공간을 지향하기에 브루클린만이 갖고 있는 로컬 지향적인 가치들을 발굴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목표가 단기적 숫자가 아닌 본질적 비전을 향하기에 브루클린 사이다 하우스의 미래가 지역의 가치와 공명합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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