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서 벗어나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가방 브랜드가 있어요. 그렇다고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난해한 디자인의 가방을 만드는 건 아니에요. 1940년대 군용 더플백으로 메신저 백을 만들고, 1950년대 반다나로 키링을 만들죠. 부산 영도에서 시작된 브랜드, ‘캑터스소잉클럽’ 이야기예요.
이처럼 캑터스소잉클럽은 업사이클링 방식을 통해 오래된 소재의 가치를 조명하고, 실용적인 아이템을 만들어요. 만드는 제품들은 지극히 생활 밀착형이지만, 존재 자체가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삶을 응원해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모두가 더 빠른 생산, 더 많은 매출을 원할 때, 캑터스소잉클럽은 더 견고한 생산, 더 단단한 팬층을 지향하거든요. 이렇게 비자본주의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해도, 사회가 만들어낸 답과 다른 삶을 살아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하죠. 알고 보면 더 응원하고 싶어지는 브랜드, 캑터스소잉클럽을 소개할게요.
캑터스소잉클럽 미리보기
• #1. 배달부의 가방은 사치가 아닌 ‘가치’다
• #2. 스타일이 아니라 ‘스토리’가 깃든 가방을 만들다
• #3. 매출보다 ‘삶의 다양성’을 확장하다
• ‘대표’보다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이유
자신의 브랜드를 가꾸면서도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가 아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브랜드’라는 소통 수단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죠. 오늘 시티호퍼스의 콘텐츠는 그런 브랜드 중 하나의 목소리를 듣고, 원동력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 브랜드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자 해요.
오늘 소개할 브랜드는 권유창 대표의 ‘캑터스소잉클럽’이에요. 권유창 대표는 한 마디로 ‘응원을 부르는 사람’이에요. 종종 패션 업계 사람들에게 들어온 말이었죠. ‘이런 브랜드가 진짜 성공해야 한다’고요. ‘이런 브랜드’는 과연 어떤 브랜드일까요? 그 실체가 궁금해 부산 영도의 캑터스소잉클럽 작업실까지 직접 찾아 갔습니다.
건물 5층에 자리 잡은 작업실은 채광이 좋았습니다. 작업 테이블이 일렬로 놓여 있고, 각종 재봉틀과 미싱 기계들이 눈에 띄었죠. 작업실이라고 말하지만 일종의 작은 공장과도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야말로 노동의 현장이었죠. 그런 곳에서 권유창 대표는 밝은 모습으로 시티호퍼스를 맞아주었습니다.
ⓒ캑터스소잉클럽
캑터스소잉클럽의 티셔츠를 입은 그는, 때로는 부끄러운 웃음을 지으면서도, 대개 자신이 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설명했어요. 그의 뒤편에 자리 잡은 선반에 빼곡히 정리되어 있는 가방, 군복, 반다나들은 그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권 대표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해줬어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그는 선반을 왔다 갔다 하며 ‘이건 50년대 군복이다’, ‘이건 일본에서 만든 캔버스 백이다’ 설명했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왜 사람들이 이토록 이 작은 브랜드를 응원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권유창 대표는 ‘돈 벌려고 이 일을 하는 건 확실히 아닌 것 같아요. 계산은 안 해봤지만, 지금도 적자일걸요?’라며 웃으며 말했죠. 그럼 그는 왜 일본으로 건너가 10년 동안 가방을 배우고,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부산 영도의 공업 지역에서 브랜드를 가꿔나가는 걸까요?
“‘FAST MADE’를 슬로건으로 ‘소잉(Sewing)’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빠르게(Fast) 소비되는 시대에 더욱 견고한(Fast)한 제품을 제작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좋은 소재'를 중심으로 기획부터 디자인, 생산의 모든 공정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며, 기술자의 정성과 결과물에 깃들어진 생각을 공유합니다.”
- 캑터스소잉클럽 홈페이지
영어 단어 ‘Fast’에는 ‘빠른’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견고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캑터스소잉클럽이 말하는 ‘FAST MADE’란 ‘빠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견고하게 만드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캑터스소잉클럽이 말하는 FAST MADE를 소개할게요.
#1. 배달부의 가방은 사치가 아닌 ‘가치’다
권 대표는 부산에서 일본 문화에 친숙한 소년으로 자랐어요. 특히 아버지가 사주신 만화책을 계기로 만화에 푹 빠져있던 어린 시절, 만화 <크로우즈>를 보고 일본 패션에 눈을 떴다고 해요. 막연히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만 생각했죠.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지인을 통해 무일푼으로 일본 유학생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바로 ‘신문 장학생’이었어요.
신문 장학생, 오늘날로 치면 ‘워킹 홀리데이’와 비슷한 개념이에요. 50만원만 보증금으로 마련하면 일본에서 신문 배달을 하며 어학원도 다닐 수 있었죠. 그렇게 권 대표의 일본 생활이 시작됐어요. 당연히 녹록지 않았어요. 새벽 일찍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고, 퇴근을 하면 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신문을 배달해야 했죠. 잠 잘 시간도 부족했어요.
그 생활 속에서도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신문 배달을 하러 나갈 때마다, 취미로 자전거를 타러 나갈 때마다, 늘 어깨 위에 메고 있던 가방이었어요. 특히 그는 메신저 백이 좋았다고 해요. 일본에서는 ‘메신저(Messenger)’라 불리는 배달부를 쉽게 볼 수 있는데요. 큰 메신저 백을 멘 채, 자전거를 타고 소위 퀵 배달을 다니는 직업이죠. 메신저 백은 그들이 메고 다니는 크고 투박한 배달용 가방이에요. 국내에서는 취미로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분들이 주로 애용하죠.
권 대표는 메신저 문화가 좋았어요. ‘노동의 가치’, ‘생활의 가치’를 상징하는 것 같았거든요. 패션과는 거리가 멀지만, 배달을 하느라 피부가 검게 그을린 메신저들이 오로지 실용성만을 위해 메고 있는 그 가방이 무엇보다 멋져 보였죠. 권 대표 역시 메신저 백을 메고 다니다 보니 길 가던 사람들이 ‘메신저, 힘내라!’ 응원하기도 했죠.
“저의 뿌리는 생활력에 있는 것 같아요. 유학생들은 다 그렇겠지만, 제 주변의 일본 유학생들은 특히 더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신문 배달로 시작해서 늘 생활비가 부족해 문제였죠. 그러다 보니 메신저들의 생활이 멋있어 보였어요. 다큐멘터리를 보면 뉴욕의 메신저는 지하철 선로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고, 살도 막 다 타서 저녁에 맥주 한 잔 하러 가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추종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죠.”
-권유창 대표
권유창 대표가 유학 시절 모았던 메신저 백들 ⓒ시티호퍼스
그렇게 하나 둘 메신저 백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나에게 딱 맞는 가방을 찾기 위해서였죠. 어떤 가방은 너무 무거웠고, 어떤 가방은 끈 조절이 불편했고, 어떤 가방은 디자인이 나와 안 어울리고… 다 조금씩 불편함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럼 내가 직접 가방을 만들어볼까?’
실제로 일본의 메신저들은 자신이 사용할 가방을 직접 만들거나, 메신저 회사에서 운영하는 가방 브랜드가 있기도 해요. 권유창 대표도 용기를 내어 그 대열에 합류하고자 했죠.
2012년, 어학원을 졸업하고 ‘히코미즈노 주얼리 컬리지(みづのジュエリーカレッジ)’에 입학했어요. 그곳에서 이론과 실습을 배우고, 메신저 백 브랜드 ‘레지스탄트(Resistant)’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죠. 이후 워크웨어 브랜드 ‘더 슈페리어 레이버(The Superior Labor)’, 일본 최대 가방 제조 회사 ‘에이스 서비스(ACE Service Co., Ltd)’를 거치며 커리어를 쌓았어요.
레지스탄트와 더 슈페리어 레이버는 큰 브랜드는 아니었어요. 레지스탄트에서는 단 3명이서 가방의 모든 걸 만들어야 했고, 더 슈페리어 레이버에서는 시골의 한 폐교에서 생활하며 밤낮 없는 작업을 해야 했죠.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지만, 가장 큰 가치를 배웠습니다.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었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모든 기준이 엄격했어요. 가령, 가방 끈의 박음질은 10번 만에 끝내야 한다. 이런 기준을 딱딱 맞춰야 했어요. 물론 그걸 6번 만에 해도, 15번이 걸려도 상관 없어요.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도 했어요. 중요한 건 이런 룰을 꼭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이었죠.”
-권유창 대표
한 마디로 ‘크래프트맨십(Craftmanship)’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유독 그런 작은 브랜드가 존경 받고 존중 받는 이유는 그들의 크래프트맨십 덕분이었죠. 권 대표는 그런 틀에 박힌 규율이 몸에 맞지 않으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장인 정신’이라는 신념을 몸소 배우게 됐어요.
ⓒ캑터스소잉클럽
ⓒ캑터스소잉클럽
#2. 스타일이 아니라 ‘스토리’가 깃든 가방을 만들다
일본에서 거쳤던 마지막 회사, 에이스 서비스에서는 또 다른 가치를 배웠어요. 물건과 그 물건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 중요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죠.
2019년부터 4년 동안 에이스 서비스에 몸 담으며 권 대표가 맡았던 일은 ‘가방 수리’, A/S였어요. 그런데 이 때 수리해 쓰는 것이 오히려 손해인 듯한 가방들도 권 대표의 손에서 수리가 됐죠. 가령, 1980년대 출시된 샘소나이트 캐리어, 수리비가 가방 가격보다 비싼 가방 같은 것들이요. 권 대표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물건을 고쳐 쓰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뭘까’ 궁금했어요.
“아직도 그 고민에 정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 했지만, 결국 물건에 대한 애착이에요. 수리를 맡기는 가방들을 보면 하나같이 되게 더러워요. 그건 매일매일 썼다는 소리거든요. 손에 익은 물건이라는 뜻이고, 이 물건이 자기를 기분 좋게 해주기 때문에 매일 썼을 거잖아요. 그리고 그거야 말로 그 가방을 만든 사람이 가장 기뻐할 일이고요. 내가 만든 가방을, 누군가가 이렇게 오래 써준 거니까요.”
-권유창 대표
‘그런 가방을 만들고 싶다.’ 권 대표의 마음에 한 문장이 자리 잡았습니다. 매일매일 쓰고 싶고, 고장나면 고쳐 쓰고, 오래 써서 자식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그런 가방을 만들고 싶어졌죠. 한 마디로, ‘사랑 받는 가방’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캑터스소잉클럽
그리고 2020년, 태어나고 자란 부산 영도에서 캑터스소잉클럽을 시작했죠. 사실 브랜드를 만들고자 한국으로 돌아온 건 아니었어요. 에이스 서비스에서의 일은 즐겁고 편했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죠.
“제가 딱 29살, 30살 될 때였어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러려고 일본에 온 건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직장 생활 하면서 사는 삶은, 제 기준에서 멋있진 않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멋은 내 일을 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거니까요. 그냥 이렇게 회사만 다니다 보면 남들이 보기에도 ‘일본 가서 고생하네’밖에 안 되잖아요.”
-권유창 대표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고 싶었던 권 대표는 2019년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처음에는 취직을 먼저 해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막상 들어갈 수 있는 회사가 없어 보였어요.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자니 디자인 영역으로 전문성이 있어야 할 것 같았고, 권 대표가 가지고 있는 손 기술을 통해 가방을 만들면 ‘공방’ 이상이 되기 힘든 실정이었죠.
‘어차피 언젠가 내 브랜드를 할 거면 지금 하자’는 생각으로, 작업실부터 구했어요. 첫 작업실은 부산 보수동의 월세 30만 원짜리 허름한 공간이었죠. 그 곳에서 40만 원 주고 산 미싱 한 대로 캔버스 백도 만들고, 평소에 수집했던 군복으로 업사이클링 백도 만들며 시간을 보냈어요.
특히 권 대표는 오래된 군용 물품을 이용해 만드는 가방을 학생 때부터 좋아했어요. 지금도 캑터스소잉클럽에서 만드는 가방 카테고리를 두 갈래예요. 하나는 원단을 사서 새 제품으로 만드는 시리즈, 다른 하나는 1940년대 미군 더플백, 미국 빈티지 머니백 등을 업사이클링해 재탄생시키는 ‘리워크(Rework)’ 시리즈예요. 그 중에서도 군용 물품과 반다나에 특히 눈길이 갔던 이유는 ‘스토리’ 때문이었어요.
리워크 시리즈 ⓒ캑터스소잉클럽
50-60년대 미군에 공급되었던 캔버스 더플백을 재해석하여 이탈리안 레더와 결합한 베이커 백. ⓒ캑터스소잉클럽
“아메카지, 밀리터리… 이런 스타일의 개념이 아니에요. 군용 물품만의 가치, 좋은 소재와 역사가 깃든 스토리 때문이에요. 사실 프렌치 워크 같은 옷들에는 이만큼의 이야기가 안 담긴다고 생각하거든요.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이 ‘집에 가고 싶다’고 쓴 낙서가 있거나, 파병 간 나라의 국기를 수집하듯 그려 놓은 더플백… 이런 건 사실 박물관에 전시돼도 될 물건들이에요.”
-권유창 대표
권 대표는 이렇듯 ‘이야기’를 가진 물건만이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캑터스소잉클럽의 제품은 환경을 위한 ‘업사이클링’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죠. ‘견고한(Fast)’ 제품을 만든다는 캑터스소잉클럽의 슬로건 역시, ‘THE FASTER, THE BETTER’라고 적힌 한 퇴역 군인의 가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시티호퍼스
물론 가치가 깃든 만큼 제품도 소량이고 가격도 20만원부터 100만원을 넘기도 해, 브랜드 론칭 이래 늘 적자였어요. 2020년 2월에 사업자를 등록하고, 4월에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오픈했죠. 3개월 동안 매출이 전혀 없다가 패션 유튜브 채널 ‘에센스룸’에 출연하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유튜브 출연 직후 만들어뒀던 모든 가방 제품이 품절됐어요.
이후, 캑터스소잉클럽의 스테디셀러 아이템 ‘헬멧백’이 탄생했어요. 평소 백팩을 많이 메, 두 손이 가벼워야 하는 한국 소비자와 밀리터리를 좋아하는 소비자 모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아이템이었죠. 캑터스소잉클럽의 헬멧백은 밀리터리의 가치를 알리는 브랜드가 만든다는 스토리와 대중적인 디자인으로 소위 ‘옷 덕후’들에게 이름을 알렸어요. 그 뒤로 29CM, EQL 등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하게 됐고, 서서히 팬덤을 만들어왔죠.
큐보이드 헬멧 백 ⓒ캑터스소잉클럽
#3. 매출보다 ‘삶의 다양성’을 확장하다
그렇다고 캑터스소잉클럽이 대중적인 브랜드가 된 건 아니에요. 가방은 만들어두면 모두 팔리기는 하지만, 한 사람이 만들기에 많아봤자 하루 동안 2~3개를 제작할 수 있어요. 뿐만 아니라 비싼 가격은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엔 진입 장벽이 있죠. 사코슈 백 하나를 만들어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원단이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스웨이드를 공수해 와요. 여기에 1911년~1938년에 발행된 5센트 동전으로 콘쵸 버튼을 만들어 달아요.
“비싸고 좋은 제품은 사실 한국 시장에서 잘 먹히지는 않는 거 같아요. 사람들이 퀄리티를 그렇게 안 보는 거 같아요. 패션이야말로 그 자체로 자본주의 시장이기 때문에 그래요. 어떻게 보면 하루 종일 저 혼자 앉아서 비싼 가죽을 손질해서 만든 가방보다, 공산품이지만 브랜드 로고가 달린 제품을 대중은 더 선호할 수도 있죠.”
-권유창 대표
레더 사코슈 백 ⓒ캑터스소잉클럽
그럼에도 권 대표는 여전히 거의 모든 제품을 직접 만들어요. 공장에서 제작하는 제품은 제품 특성상 백팩 하나뿐이죠. 이마저도 앞으로 계속 발매될지는 알 수 없어요. 권 대표의 미션은 언제나 ‘소잉(sewing)’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위해서는 제품을 ‘덜’ 만드는 게 오히려 답이 될 수 있다고 해요. 최근 캑터스소잉클럽은 가방 제작을 늘리거나 신제품을 발매하는 대신 파우치나 키링 같은 작은 제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어요.
“가방 브랜드는 여러 형태의 가방을 발매하기 시작하면 망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여자 핸드백을 만지는 순간 저희 브랜드는 의미를 잃는 거거든요. 철학이 흐려지기 때문이에요. 저는 지금껏 제가 필요한 가방, 제가 쓸 가방만을 만들어 왔어요. 그게 캑터스소잉클럽의 페르소나가 됐고, 저희 고객들도 여기에 공감해주는 분들이죠.”
-권유창 대표
반다나 키 홀더 ⓒ캑터스소잉클럽
캑터스 키링 ⓒ캑터스소잉클럽
하지만 꼭 캑터스소잉클럽의 방식이 맞다 틀리다 논할 수는 없어요. 캑터스소잉클럽을 론칭한 2019~2020년, 그야말로 스몰 브랜드의 시대가 열렸어요. 작은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그 중엔 오래 가지 못한 브랜드가 대부분이었죠. 물론 철학이 흐려져서 없어진 브랜드도 있겠지만, 너무 철학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가 되어요. 권 대표는 캑터스소잉클럽 역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업의 세계라고 말해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 브랜드는 사업성이 좋다고 말할 수 없어요. 대중적인 가방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소량 생산에다가, 비싼 소재를 사용하고 비싸게 팔잖아요. 그러니까 시장성으로 보았을 땐 굉장히 작은 바늘 구멍을 뚫어서 브랜딩하는 느낌이죠.”
-권유창 대표
한 마디로 캑터스소잉클럽은 굉장히 니치한 타깃을 위한, 스몰 브랜드예요. 권 대표 역시 마음 먹으면 공장에 생산을 맡기고 확장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확장과 철학의 줄타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철학 편에 서고 있기 때문이에요.
“자본주의 시대에는 결국 ‘돈’이거든요. 저희도 마케팅으로 인스타그램 릴스를 만들지만, 사실 릴스만 봐도 요즘엔 다 성공하고 싶어서 똑같은 것만 따라해요. 그러면 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겐 큰 혼란이 오거든요. 나는 진짜 좋은 영상, 혹은 진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은데 트렌드와 알고리즘을 따라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다 사회가 ‘정답’을 미리 정해 놓는 거예요.”
-권유창 대표
권유창 대표가 캑터스소잉클럽을 운영하는 이유는 브랜드를 키워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에요. 그가 캑터스소잉클럽만의 철학을 놓지 않는 이유는 ‘삶의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서예요.
“어떻게 보면 저는 사회의 ‘정답’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어요. 대학도 안 갔지, 30대 중반인데 결혼도 안 했지, 사업적으로 봐도 남들은 수익도 안 남는 거 왜 하냐고 하지… 그런데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삶도 있다는 걸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계속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답대로 안 살아도 다들 잘 사네?’ 이런 영감을 심어줘야 삶의 다양성이 생기니까요.”
-권유창 대표
권 대표는 일본 유학 시절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아왔어요. 호주에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와 결혼한 형, 공부도 잘하고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일본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친구… 이들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이유 역시, 사회가 맞춰 놓은 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나’다운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사회가 말하는 ‘정답’과 다른 모습이면 어떡하나요? 권 대표는 젊은 친구들에게 ‘그래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꿋꿋이 자신의 철학대로 가방을 만들고, 캑터스소잉클럽이 앞으로 더 잘 되길 기대하는 거고요.
‘응원하고 싶은 브랜드’란 의미가 이제야 와 닿았어요. 권 대표가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이제야 무엇인지 수면 위로 드러났죠. 권 대표의 바람대로, 캑터스소잉클럽은 대중적인 브랜드가 되지는 못 했지만 브랜드를 사랑하는 코어 팬덤을 가진 브랜드가 됐습니다. 가방은 제작해두면 언젠가는 모두 완판이 되고, 한 달에 1~2번은 영도의 작업실까지 찾아오는 고객도 있죠. 브랜드 초기에 찾아주었던 고객들은 여전히 이 브랜드를 찾습니다. 권 대표는 “이탈률을 체감해본 적은 없다”고 말해요.
‘대표’보다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이유
권 대표는 자신의 고집을 일종의 ‘작가주의’라고 말해요. 그는 ‘대표’라고 불릴 때보다, ‘작가’라고 불릴 때 더 만족한다고 해요. 실제로 서울에서 한 번, 제주도에서 한 번, 반다나를 소재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죠. 평소에 모아두었던 반다나를 전시하고, 반다나로 거대한 러그를 만들었어요. 반다나로 만든 키링은 지금도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죠.
“이 역시 삶의 다양성을 말하기 위해서 진행했던 전시예요. 세상에는 여러 가치가 있다. 꼭 돈만이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이렇게 반다나를 모으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취향이 있다고 알리고 싶었어요.”
-권유창 대표
2021년 제주도에서 열렸던 반다나 전시. ⓒ캑터스소잉클럽
캑터스소잉클럽은 의류도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의류 제품명 앞에는 ‘멤버스’가 붙죠. 캑터스소잉클럽의 멤버라는, 마치 팀 복의 의미를 가진 거예요. 사실 옷을 만들게 된 이유는 실제로 고객들에게 줄 선물용이었죠. 선물을 받아본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 판매까지 이어졌어요.
“저희가 상업적으로 비즈니스를 잘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브랜드 이름 뒤에 ‘클럽’을 붙인 것도 우리 뜻에 동조해주는 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티셔츠 이름도 ‘멤버스’라고 해서 ‘공감해 주실 수 있는 분들만 입어주세요’ 한 거예요.”
-권유창 대표
ⓒ캑터스소잉클럽
현실적으로는 ‘1인 사업의 한계’라고도 솔직하게 말해요. 물건을 더 만들고, 더 판매하기 위해서는 마케팅과 같은 부수적인 요소도 기반이 되어야 하지만 작은 브랜드로서 상황이 녹록지 않죠. 그 대신 코어 팬덤을 탄탄히 쌓은 거예요. 변치 않는 철학을 계속 내보이면서 말이죠.
권유창 대표가 말하는 ‘작가’란, 이런 게 아닐까요? ‘브랜딩이 탄탄해야 해’, ‘마케팅은 기본이야’, ‘대중은 가성비 좋은 제품을 좋아해’ 등 이런 수많은 ‘틀’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한계는 한계대로 감수하면서도 자신이 말하고 싶은 소신을 지키는 것. 소신을 지킬 때 한 브랜드의 대표에서 나아가, ‘작가’의 역할을 다 하는 거겠죠.
“제가 생각하는 캑터스소잉클럽의 확장은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저의 브랜드가 됐든 ‘권유창’이라는 사람이 됐든 이 이름이 유명해져서 제가 가방을 만드는 족족 팔려나가는 그림이에요. 이를 통해 삶의 다양성을 인정받는 거죠. 왜, 도자기 만드는 분들은 작가로서의 프라이드가 강하거든요. 가방이라고 손으로 만드는 건 다르지 않아요. 저는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어요.”
-권유창 대표
ⓒ시티호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