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토스트, 냉소바, 콜드 피자. 일반 레스토랑에서 판매할 것 같은 메뉴지만, 모두 ‘더블 치킨 플리즈(Double Chicken Please)’의 칵테일 이름들이에요. 이름만 그렇게 붙인거냐, 그렇지 않아요. 칵테일을 마시면 음식을 실제로 먹었을 때와 유사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3명이 각각의 칵테일을 직접 먹어봤는데 정말로 그래요. 이 외에도 더블 치킨 플리즈에는 음식 이름을 딴 6개의 시그니처 칵테일이 더 있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고기, 계란, 기름, 치즈 등 요리에서는 당연하게 쓰이지만 칵테일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재료들의 맛을 구현하는 게 관건인데, 더블 치킨 플리즈의 창업자는 이를 ‘해킹 디자인(Hacking Design)’으로 풀었어요. 해킹 디자인에서 해킹은 모든 것을 해체(Deconstruction)하고 조합(Reconstruction)하는 것을 의미하죠. 이처럼 더블 치킨 플리즈는 모든 대상을 해체해 쪼갠 뒤 다시 조합해 익숙한 새로움 혹은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 내요.
맛이 이상하지 않겠냐고요? 더블 치킨 플리즈는 오픈한 지 1년 만에 매년 세계 최고의 바를 선정하는 World's Best Bar에서 54위를 차지했어요. 여기에다가 창업자이자 바텐더의 스토리를 알고 나면 더블 치킨 플리즈의 예약 전쟁에서 승리하고 싶어질 거예요.
더블 치킨 플리즈 미리보기
• 술맛을 모르기에, 변주가 가능한 칵테일
• 마시지 않고 먹는 칵테일의 비밀, 해킹 디자인
• 두 개의 공간, 극대화되는 고객 경험
• 칵테일 바를 넘어 브랜드로
• 노란색 미니버스로 시작된 정체성
영화를 칵테일로 마신다면 어떤 맛일까요? 진토닉, 마티니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칵테일은 이름만 들어도 맛을 상상할 수 있어요. 진토닉을 시킬 때는 진의 상큼함과 토닉의 달콤한 맛을 즐기기 위해, 취하고 싶은 날에는 도수가 높은 독한 맛의 마티니를 주문하죠. 하지만 도쿄 긴자의 바, '8월의 고래(八月の鯨)'에서는 칵테일 이름만으로 맛을 상상하기 어려워요.
8월의 고래 메뉴판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가득해요. '캐리비안의 해적', '다크 나이트', '셜록 홈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니, 이거 영화 제목들 아닌가요? '주토피아'라는 이름의 칵테일을 주문하자 사과를 토끼 귀 모양으로 조각해 여주인공 토끼 쥬디를 표현한 칵테일이 나와요. '겨울왕국'을 주문하니 잔 안에서 녹고 있는 올라프가 등장하네요. 8월의 고래는 이처럼 영화를 모티브로 칵테일을 제조하는 바예요. 영화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선택해 칵테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캐릭터와 스토리를 바텐더가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매번 다른 칵테일을 선보여요. 같은 영화의 칵테일을 주문해도 원하는 장면이나 좋아하는 캐릭터에 따라 전혀 다른 칵테일을 경험할 수 있죠.
'나홀로 집에' 칵테일은 초록색과 빨간색 그리고 화려한 과일 장식들을 이용해 영화 배경인 크리스마스를 표현해요. 단순히 비주얼만으로 영화를 표현하는 것도 아니에요. '빌리 엘리어트'는 사과를 조각해 빌리의 춤을 묘사하고, 달고 신 레몬맛으로 젊음과 자유를 표현해요. 비주얼 뿐만 아니라 맛에 담긴 의미까지 영화와 연관 짓는 재미가 있죠.
170편이 넘는 영화 메뉴가 있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메뉴에 없는 칵테일을 주문할 때예요. 칵테일로 즐기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거든요. 물론 바텐더가 영화를 봤다는 경우에 한해서요. 이렇게 만든 칵테일을 마시며 손님들과 밤새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8월의 고래예요. 이 모든 것은 무려 20,000여 편의 영화를 섭렵한 영화 매니아 점장과 스탭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가능해요. 심지어 이들은 지금도 일주일에 10편에서 많으면 20편까지 영화를 보고 있다고 해요. 8월의 고래라는 바의 이름도 1987년 개봉한 영화 제목에서 가져 왔다니, 영화를 향한 운영자들의 애정을 읽을 수 있죠. 덕분에 8월의 고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와 술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지트가 돼요.
이렇게 8월의 고래가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바라면, 뉴욕에는 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바가 있어요. '술은 곧 알코올'이라는 공식을 깨고 음식 본연의 맛을 칵테일에 담아버린 '더블 치킨 플리즈(Double Chicken Please)'가 그 주인공이에요.
술맛을 모르기에, 변주가 가능한 칵테일
더블 치킨 플리즈는 뉴욕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칵테일 바예요. 뉴욕의 중심 맨해튼과 힙스터의 성지 브루클린의 중간 지역으로 예술적이면서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은 동네죠. 이곳에 2020년 11월 코로나 유행과 함께 더블 치킨 플리즈가 오픈했어요. 잘나가던 레스토랑도 하나둘 문을 닫던 시점에 더블 치킨 플리즈는 오히려 성장하며 이듬해 매장 면적을 확장하기까지 해요. 오픈한 지 1년 만에 매년 세계 최고의 바를 선정하는 World's Best Bar에서 54위를 차지하죠.
그 비결은 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창업자의 철학에 있어요. 창업자이자 헤드 바텐더인 지엔 첸(GN Chan)은 술을 마시지 못해요. 단순히 술을 많이 못 마시는 수준이 아니라, 집안 대대로 몸이 술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체질이죠. 실제로 바텐더 생활 초반에는 맛을 보다가 몸에서 받지 않아 구토를 하고 다시 일을 한 적도 있다고 해요.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술을 만들고 테스트해야 하는데, 바텐더가 술을 마시지 못하다니 엄청난 약점이 될 수밖에요.
그런데 첸은 관점을 바꿔 이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버려요. '술은 원래 이런 맛이야'라는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에 기존 칵테일 바에서 시도하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실험들을 시작하죠. 첸은 바텐더로 일하며 뉴욕시의 음료가 알코올의 강한 맛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발견해요. '도수보다 칵테일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한 술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하게 되죠.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해요.
마시지 않고 먹는 칵테일의 비밀, 해킹 디자인
프렌치 토스트, 냉소바, 콜드 피자. 일반 레스토랑에서 판매할 것 같은 메뉴지만, 모두 더블 치킨 플리즈의 칵테일 이름들이에요. 이 외에도 더블 치킨 플리즈에는 음식 이름을 딴 6개의 시그니처 칵테일이 더 있어요. 요리 이름만 따온 게 아니에요. 칵테일을 마시면 음식을 실제로 먹었을 때와 유사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일본풍 냉소바 칵테일은 바카디를 베이스로 파인애플, 오이, 코코넛, 라임 그리고 참기름을 넣어서 만들어요. 상큼한 재료가 어우러져 시원한 육수 맛을 내고, 여기에 참기름의 고소함이 더해져 소바 한 그릇을 먹은 듯한 느낌을 주죠. 데킬라 베이스의 콜드 피자 칵테일에는 파르마지나오 치즈, 토마토, 바질이 들어가요. 마치 피자 한 조각을 먹은 것과 같죠. 에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맛이 나는 칵테일을 조합해 마시다 보면, 코스 요리를 즐긴 것 같은 기분을 낼 수도 있어요.
“해킹 디자인(Hacking Design)”
더블 치킨 플리즈의 창업자 첸이 추구하는 철학이에요. 해킹은 모든 것을 해체(Deconstruction)하고 조합(Reconstruction)하는 것을 의미해요. 더블 치킨 플리즈는 모든 대상을 해체해 쪼갠 뒤 새로운 디자인으로 조합하여 전에 없던 관점을 제시해요. 물론 고체 상태의 음식을 액체 상태인 음료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칵테일의 외적인 모습은 물론이고 입에 닿았을 때의 첫 느낌, 입안 가득 삼켰을 때의 풍미 그리고 남아 있는 여운까지도 모두 고려해야 하니까요. 특히 고기나 기름, 계란 등 요리에서는 당연하게 쓰이지만 칵테일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재료들의 맛을 구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에 많은 노력과 실험이 필요했어요.
수많은 실험과 실패 끝에 더블 치킨 플리즈는 음식의 맛을 칵테일로 만드는 기술과 노하우를 갖게 돼요. 우선, 기존 요리의 레시피를 창의적으로 해석해요. 프렌치 토스트는 식빵을 달걀물과 우유에 적신 뒤 팬에 구워내어 잼 등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죠. 이렇게 일반적인 프렌치 토스트에는 계란이 사용되지만, 칵테일로 구현하려니 어려움이 있었어요. 계란 특유의 맛이 너무 강해 다른 재료와 섞이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더블 치킨 플리즈는 계란과 다른 재료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돕는 코코넛 워터를 찾아냈어요. 보드카에 계란, 우유, 메이플 시럽, 구운 보리, 그리고 코코넛 워터를 섞자 맛이 살았죠. 그렇게 완벽한 한 장, 아니 한 잔의 프렌치 토스트 칵테일이 탄생했어요. 이처럼 기존 레시피를 변형하거나 없던 재료를 추가하는 것은 더블 치킨 플리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에요.
해킹 디자인은 음식 맛을 살리는 것을 넘어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관점 자체를 비트는 데에도 사용돼요. 프렌치 토스트 칵테일 위에는 오레오 모양을 한 에스프레소 마티니 맛의 과자가 올라가는데요. 이 과자는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만들어져요. 하지만 단순히 3D 프린팅 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죠.
프렌치 토스트는 달콤하게 먹는 식사 메뉴예요. 프렌치 토스트를 먹으며 에스프레소 마티니 같은 커피 베이스의 음료를 마시면, 쌉쌀한 커피 맛이 프렌치 토스트의 단맛을 잡아주는 페어링 역할을 하죠. 더블 치킨 플리즈는 이 찰떡 궁합 조합에 관점을 뒤엎는 '리버스 페어링(Reverse Pairing)'을 제시해요. 프렌치 토스트를 칵테일로 '마시면서', 3D 프린팅으로 과자처럼 만든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먹는' 페어링이죠. 단 맛과 쓴 맛이라는 같은 조합을, 다른 포맷으로 즐기며, 고객들은 음식을 마시고 음료를 먹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요.
두 개의 공간, 극대화되는 고객 경험
매장에서도 실험 정신은 이어져요. 더블 치킨 플리즈의 공간은 크게 2개로 나뉘는데요.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프론트 룸(Front Room), 그리고 프론트 룸을 지나 문을 열면 나오는 백 룸(Back Room)이 있어요. 2020년 가을 프론트 룸을 오픈하고 2021년 봄 백 룸을 오픈했죠. 가게 면적을 넓히기 위한 물리적 확장이 아닌, 같은 지붕 아래 다른 컨셉의 칵테일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실험적인 디자인이었죠.
프론트 룸은 펍 느낌의 캐쥬얼한 분위기예요. 예약은 받지 않고 워크인으로만 즐길 수 있어요. 자리는 편하게 먹고 갈 수 있는 작은 테이블과 스툴로 구성되어 있고, 식사 메뉴도 치킨 버거, 프렌치 프라이 등 간편하게 요기를 할 수 있는 메뉴로 준비되어 있어요. 프론트 룸의 칵테일은 탭테일이에요. 탭테일은 수도꼭지를 의미하는 탭(Tap)과 칵테일(Cocktail)의 합성어로 미리 조합된 칵테일 배합을 생맥주를 내리듯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이에요. 생맥주처럼 통에 담겨 있어 품질 관리에 용이하고, 바텐더가 필요 없기에 편하게 마실 수 있죠.
반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기는 백 룸은 은밀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해요.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쇼파로 구성되어 있고, 대만에서 직접 공수해 온 이국적인 예술품과 가구들로 가득해요. 마치 누군가의 고급 저택에 초대받은 듯하죠. 미슐랭 3스타 출신 셰프 마크 초우(Mark Chou)가 만드는 요리도 이 공간에서만 맛볼 수 있으며, 시그니처 칵테일인 음식 칵테일도 백 룸에 들어온 고객들만 주문할 수 있어요.
프론트 룸을 오픈하자마자 문정성시를 이룬 더블 치킨 플리즈 입장에서는 같은 컨셉으로 매장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 비즈니스적으로 이익이었을 거예요. 프론트 룸에서 탭테일 1잔에 치킨 샌드위치 1개를 먹으면 객단가는 약 30달러가 돼요. 백 룸에서 시그니처 칵테일 1잔에 요리 1개를 먹으면 객단가는 38달러가 되죠. 객단가만 비교하면 백 룸이 높아 보이지만, 회전율과 오퍼레이션에서 큰 차이가 나기에 전체적으로는 프론트 룸의 매출이 더 높을 수 있어요. 프론트 룸에서는 워크인으로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샌드위치류와 바텐더가 필요 없는 탭테일을 판매하니 회전율이 극대화되거든요. 반면 백 룸은 요리를 준비하고, 칵테일을 제조하는 데 기본적인 시간이 소요되죠. 예약을 하고 가면 2시간을 보장해주니 같은 시간에 프론트 룸이 2회전만 하더라도 프론트 룸의 매출이 월등히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거기에 누군가가 예약을 취소한다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요.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더블 치킨 플리즈는 새로운 컨셉의 공간을 오픈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어요.
“다른 제품으로 다른 고객을 유치하고, 다른 생각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전에 없던 고객 경험을 주고자 한 창업자 첸의 실험에서 백룸은 시작했어요.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다른 컨셉의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기에 난이도는 높았지만, 고객에게 색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기획했죠. 게다가 프론트 룸과 백 룸이라는 공간 분할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일종의 해결책으로 작용하기도 했어요. 여기에 고객들도 반응했어요. 백 룸은 매주 레시(Resy)라는 온라인 예약 플랫폼을 통해 그 다음주의 예약을 오픈하는데, 예약 오픈과 동시에 매진이 될 만큼 인기가 좋아요. 비즈니스적으로도 의미가 있죠. 백 룸을 예약한 손님이 프론트 룸에 미리 도착해 가볍게 탭칵테일과 요리를 즐기기도 하고, 프론트 룸에 있는 손님들이 백 룸에 빈자리가 생기면 자리를 옮기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프론트 룸과 백 룸은 상호 보완하며 매출을 올리는 효과를 낳고 있어요.
칵테일 바를 넘어 브랜드로
더블 치킨 플리즈가 추구하는 해킹 디자인은 칵테일 맛과 공간에만 국한된 게 아니에요. 경계나 대상에 제한이 없죠. 그 덕에 ‘칵테일’ ‘바’를 벗어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져요. 시작은 굿즈였어요. 더블 치킨 플리즈는 자신들의 캐릭터인 닭이 그려진 스티커, 마스크, 그릇 등 작은 소품들을 판매하고 있어요. 2022년 1월에는 디자인 스튜디오와 협업한 굿즈를 출시했죠. 매장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기프트 카드와 함께 복을 불러다 준다는 붉은색 봉투,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2달러짜리를 디자인해 90개 한정판으로 판매했어요.
코로나 시기에도 해킹 디자인 아이디어가 적용됐어요. 뉴욕은 2020년 3월 첫 번째 환자가 발생한 후 2주 만에 모든 레스토랑과 바를 강제로 닫아버리는 셧다운을 시행했어요. 이후 상황이 완화되면서 규제가 풀리고는 있었지만 소비 심리가 바로 회복되기는 어려워 보였죠. 이런 상황에서 첸은 포장 옵션을 통해 역으로 손님들을 찾아갔어요. 더블 치킨 플리즈를 집에서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제품화시킨 것이죠.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소스 치킨 간 무스, 절인 오리 달걀, 뜨거운 꿀, 태국 바질아이올리 4개를 패키지화해 판매하고, 치킨 버거와 16온스 탭테일 2잔 그리고 감자칩까지 포함한 세트를 패키지 디자인해 ‘리퀴드 디너(Liquid Dinner)’라는 이름으로 판매했어요. 위축된 소비 심리와 공간 경험의 제약을, 투고(to-go) 서비스로 전환해 펜데믹을 극복해 나간 거예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나 컨설팅에도 적극적이에요. 보통의 바라면 연관성이 있는 주류 회사와의 콜라보레이션이나 제품 개발을 생각하겠지만, 더블 치킨 플리즈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프로젝트에 뛰어들어요. 2022년 발렌타인데이에는 향수 업체 프로젝트 코엑스(Project Coax)와 협력해 발렌타인데이에 어울리는 코코아 향초와 딸리 레몬그라스 칵테일을 패키지로 만들어 판매했어요. 대만 요리로 유명한 이스트 빌리지 지역의 레스토랑 886의 바 메뉴를 컨설팅해주기도 했죠. 지금은 음식과 음료에 집중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의류나 디자인 갤러리와 같이 경계를 넘나드는 브랜드와의 협업도 고려 중이라고 하니 더블 치킨 플리즈의 다음 실험이 더욱 기대되네요.
노란색 미니버스로 시작된 정체성
대부분의 바텐더가 바텐딩의 매력에 빠져 일을 시작했다면, 첸은 달랐어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죠. 그는 대만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까지 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어요. 졸업 후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를 운영했지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어버렸죠.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그는 어느 한 작은 바의 구인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돼요. 생존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바텐딩을 하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음을 깨닫게 되죠. 바로 디자인과 퍼포먼스였어요. 그에게 바텐딩이란 최고의 퍼포먼스를 통해 음료를 제조하고, 손님에게 칵테일이라는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과정이었어요.
칵테일에 매료된 첸은 편도 티켓을 끊어 뉴욕으로 갔어요. 다양한 가게에서 바텐더로 일하며 실력을 쌓았죠. 이후 자신의 가게를 열기로 결심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어요. 전 세계 3위의 임대료를 자랑하는 뉴욕에서 가게를 오픈하기에는 자본금이 턱없이 부족했고, 동업자 한 명이 국외로 추방되는 상황까지 발생했죠. 어찌저찌 오픈 최종 단계까지 갔지만, 건물주가 그 자리에 직접 바를 내며 모든 노력이 물거품 돼버리고 말았어요. 결국 그는 매장을 포기하고, 우리나라 벼룩시장 격인 크레이그리스트(Craiglist)에서 1977년식 노란색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약 2,500만 원에 구매해 모험을 시작해요.
미니버스 옆면에 ‘DCPPOPUP’이란 문구를 새기고, 3년 동안 미국 전역, 약 16,000km를 돌아다니며 고객들을 만나기 시작해요. 다음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예약을 받고, 도착해서는 제대로 된 공간이 없었기에 에어비앤비를 빌려 동네 마트에서 사온 식재료를 다듬는 것이 일상이었죠. 눈물 나는 스토리지만 손님들에게는 눈물이 날 만큼 좋은 경험이었어요. 단돈 70달러를 내고 45분간 아뮤즈 부시, 에피타이저, 메인 코스 그리고 디저트로 완성되는, 끝내주는 4가지 칵테일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었으니까요.
이것이 지금 더블 치킨 플리즈 시그니처 칵테일의 시초가 되었죠. 그리고 이 경험은 첸에게도 소중한 자산이 됐어요. 오스틴, 라스베가스,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콜롬버스, 내슈빌 등 지역과 거리를 가리지 않고 칵테일을 판매한 덕에 무려 1,200개의 실험적인 칵테일을 개발할 수 있었거든요. 미국을 휩쓸고 돌아다니며 유명해진 덕분에 바카디와 카발란이 스폰서로 붙으며 그들의 눈물 나던 3년간의 실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죠.
이제는 뉴욕에 번듯한 매장도 있고, 찾아주는 손님들도 많지만, 여전히 더블 치킨 플리즈는 실험 정신을 잃지 않고 있어요. 더블 치킨 플리즈의 홈페이지에는 ‘Pop-ups’라는 메뉴가 있어요. 언제든 다시 모험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알리는 것이죠. 초심을 일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면서요. 날짜도, 장소도 아직은 미정이고, Coming Soon이라는 문구만 박혀 있지만 1977년식 노란색 폭스바겐 미니버스와 함께 하는 한, 더블 치킨 플리즈의 실험은 계속 될 거예요.
Reference
• 영화가 만드는 칵테일의 재구성, 도쿄의 ‘8월의 고래’, 이코노믹 리뷰
• The Crossroad between bartending and design, TEDx
• What Double Chicken Please’s Bar Back Menu Is All About, Through Five Dishes, Resy
• These 3 Drinks Show Why Double Chicken Please Is a Bar That Matters, Liuquor.com
• This Mobile Cocktail Experience Now Has a Permanent Home on the LES, Thril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