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내세우지 않는 홍콩 최고의 채식 레스토랑

그래스루츠 팬트리

2022.05.21

홍콩에는 분명 채식 레스토랑인데 채식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레스토랑 '그래스루츠 팬트리(Grassroots Pantry)'가 있습니다. 매장 설명에서 채식 관련한 표현은 없다시피 합니다. 모든 메뉴가 채식 단계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다는 비건(vegan)을 따르고 있고, 한 설문조사에서 아시아 채식 레스토랑 1위를 차지했는데도 말입니다. 드러내놓고 자랑할 법도 한데 왜 채식을 강조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래스루츠 팬트리는 스스로를 어떤 레스토랑으로 정의하고 있을까요?




세계 1위의 장수 국가는 어디일까요? 100세 넘는 인구가 가장 많다는 일본이나 산 좋고 물 좋은 지중해 연안의 어딘가를 떠올릴 겁니다. 그런데 의외로 홍콩이 최장수국입니다. 2016년 세계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홍콩의 평균 기대 수명은 84.23세로 일본의 83.98세보다 앞섭니다. 사람들이 잘 몰랐을 뿐 지난 10년간 홍콩은 전 세계 장수국 10위권 밖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영토 10%에 인구 절반이 사는 초고도 인구밀도에 콘크리트 정글 등 분명 장수에 최선은 아닌 환경 속에서 홍콩 사람들이 오래 사는 비결이 궁금해집니다.


홍콩 사람들이 오래 사는 건 정부의 노인 대상 복지 정책 확대, 걷기에 최적화된 생활 환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특유의 식습관도 한 몫 합니다.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 '음식이 곧 약이다'라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 홍콩식 식습관의 핵심입니다. 홍콩인들은 몸에 좋은 음식을 의식적으로 찾아 먹음으로써 식사로 병을 예방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다보니 홍콩의 국민 음식은 실제 한약재를 넣은 것이 많습니다. 홍콩의 아침 식탁에 빠지지 않는 스프 리탕, 푹푹 찌는 무더위를 이열치열로 다스리는 한방차 량차, 심지어 길거리 음식에도 한약재를 넣을만큼 한약재는 홍콩인들에게 친숙한 식재료입니다. 길을 걷다보면 한약방이나 약재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건 기본입니다. 꼭 한약재까지 가지 않더라도 생선이나 닭은 갓 잡거나 살아있는 것을 선호하고 그날 먹을 분량의 식재료만 소량 사가는 등 재료의 신선함에 집착하는 것도 음식을 대하는 남다른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약식동원의 식문화와 채식이 만나니 시너지가 폭발합니다. 홍콩은 한때 인당 육류 소비량이 연 140kg에 육박하며 세계 제일의 육식 애호국에 등극하는 등 채식과 가장 거리가 먼 도시였습니다. 과거에는 고기 살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채식이었던지라 비싼 고기가 더 몸에 좋다고 생각하고 채식이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약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다른 국가에서는 종교적 신념, 동물 권리 보호, 환경 보존 등의 이유로 채식을 하지만, 홍콩인에게 채식은 건강 식단으로서의 의미가 큽니다. 채식은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고, 암과 당뇨 발생률을 낮추며,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되는 등 정말 '약'처럼 기능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번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자 홍콩의 채식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17%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2018년 기준으로 홍콩 인구의 22%가 부분적 채식을 실천하고 있으며 고도 육식 애호가의 비중은 4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이러한 홍콩 채식 시장의 잠재력을 전 세계에서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가 투자한 식물성 대체 단백질 개발사 비욘드 미트(Beyond Meat)는 식물성 패티로 만든 비욘드 버거(Beyond Burger)의 첫 번째 해외 진출지를 홍콩으로 정했고, 영국의 샌드위치 전문점 프레따 망제(Pret a Manger)도 채식 샌드위치 브랜드 베지 프레(Veggie Pret)를 홍콩에서 최초로 선보이기에 이릅니다. 지금 홍콩의 외식계에서 채식은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이렇게 홍콩이 채식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가장 핫한 채식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2012년 문을 연 홍콩의 그래스루츠 팬트리(Grassroots Pantry)입니다. 빅 7 트래블(Big 7 Travel)이 전 세계 150만명을 대상으로 설문해 아시아 1위, 전 세계 8위 채식 레스토랑으로 그래스루츠 팬트리를 선정했고, 홍콩의 유력 매거진 홍콩 태틀러(Hong Kong Tatler)가 2018년 최고의 지속가능성 챔피언(Sustainability Champion)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외부에서는 그래스루츠 팬트리를 채식 레스토랑으로 소개하지만 정작 그들 스스로는 채식을 공공연하게 내세우지 않습니다. 채식 메뉴를 일부 포함하고 있는 반쪽짜리 채식 레스토랑과 달리 모든 메뉴가 철저하게 비건(vegan)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홍콩 전역을 휩쓸고 있는 채식 트렌드에 올라탈 법도 한데 그래스루츠 팬트리가 채식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초심자용 - 채식이 아닌 '건강식'으로 승부하기

그래스루츠 팬트리는 홍콩인들의 약식동원 사상을 정확히 조준합니다. 신선하고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로 '치료하는 음식(food that heals)'을 만들 것을 약속합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식재료를 공수함은 물론 식재료의 영양을 보존하고 최적화하기 위해 저온 조리, 콜드 프레스, 건조, 발효, 글루텐 프리 등 15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조리 방식을 하나하나 메뉴판에 기재할만큼 열성입니다. 채식은 이러한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 비건 요리 그 자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스루츠 팬트리의 비전을 보면 그들의 지향점이 좀 더 분명해집니다. 'To make food do good', 즉, '음식이 좋은 일을 하도록 만들라'는 것입니다.



메뉴판과 홈페이지 등의 소개서에 'FOOD THAT HEALS', 'MAKE FOOD DO GOOD' 등 약식동원과 관련한 표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채식을 전면에 내세우며 채식주의자를 공략하면 특정 타깃의 사람만 반응하고 저변을 확대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비전의 영향력이 좁아집니다. 비전 실현을 위해 굳이 채식을 강조할 필요가 없기에 채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덜어낸 것입니다.



루벤 샌드위치, 포케, 뇨끼 등 익숙한 메뉴를 그림과 함께 설명해 채식에 심리적 거리감을 좁힙니다.


채식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은 메뉴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단순히 갖가지 채소를 날 것으로 혹은 데쳐 내놓는 뻔하고 지루한 메뉴가 아니라 치킨, 롤, 만두, 포케 등 이미 익숙한 육식 메뉴에서 재료만 채소로 바꿉니다. 이를테면 '팝콘 치킨'은 닭고기를 버섯으로 대체하고, '드래곤 마키 롤'은 장어를 가지, 캐슈넛, 적양배추 등으로 대체하는 식입니다. 메뉴판에도 일일이 그림을 그려두어 생소한 느낌을 덜어줍니다. 여기에 뉴욕 스타일 샌드위치, 반 세오 등 베트남 음식, 마끼나 롤, 교자 등의 일식, 하와이안 포케, 이탈리안 파스타 등 다양한 국적의 요리를 채식으로 맛볼 수 있어 선택폭이 넓습니다. 디저트와 음료까지 수십여 종을 구비해 채식 때문에 메뉴가 제약되는 부분을 최소화했습니다.



닭고기 대신 버섯을 튀긴 팝콘 치킨은 단면을 잘라 보아도 마치 닭고기의 흰 살처럼 보이고 결대로 찢어집니다.



장어 대신 가지, 캐슈넛, 적양배추로 속을 채운 우나기 마키 롤입니다. 생각지 못한 재료로 장어의 식감을 살렸을 뿐 아니라, 입 안이 텁텁하지 않아 청량한 느낌마저 줍니다.


그렇게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세 번 놀랍니다. 우리가 익히 알던 메뉴와 비슷한 비주얼에 한 번 놀라고, 육류의 쫄깃한 식감을 구현한 것에 두 번, 채식이 자아내는 고유한 맛에 세 번 놀랍니다. 메뉴 이름이 같을 뿐 재료를 바꾸고 색다른 조리법을 적용해 사실상 완전히 새로운 메뉴를 창조해낸 것입니다. 채식이라고 하면 풀색과 씁쓰름한 맛만 떠올리던 사람들로 하여금 채식에 대한 지평을 넓혀줍니다. 채식 치고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채식 여부와 상관없이 맛있고 더 나아가 채식이기에 가능한 맛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스루츠 팬트리의 고객 구성을 보면 그들의 노력이 성공적이라는 걸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개인 단위 고객은 프로필을 확인하기 어렵기에 케이터링 서비스인 얼터너티브 케이터러(Alternative Caterer) 이용 고객으로 좁혀보면, 고객 80%는 시세이도, 씨티은행, 조말론, 밀레 등 채식과 무관한 곳입니다. 이들이 그래스루츠 팬트리를 선택한 이유는 채식 때문이 아닙니다. 건강하고 맛있고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스루츠 팬트리에서는 까나페, 버팔로 윙 등 흔한 핑거푸드가 아닌 어디에도 없던 메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현재 홍콩 푸드씬의 최전선에 있는 채식을 통해 트렌디하다는 인상을 주면서, 게스트 중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채식주의자까지 배려할 수 있기에 기업 행사의 품격을 높입니다. 이렇듯 그래스루츠 팬트리는 채식이라는 이름표를 떼자 비채식주의자들에게까지 더 폭넓게 채식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2. 채식주의자용 - 메뉴는 기본, '채식적'인 운영 더하기

그래스루츠 팬트리는 채식 초심자 뿐 아니라 정통 채식주의자에게도 환영받습니다. 채식은 섭취 가능한 음식의 범위에 따라 유제품을 섭취하는 락토 채식주의, 계란 등 가금류 알을 섭취하는 오보 채식주의, 가금류나 해산물을 먹는 세미 채식주의 등 여러 단계로 나뉘는데, 그래스루츠 팬트리의 모든 메뉴는 이 중 가장 엄격한 단계인 비건(Vegan) 채식주의를 따릅니다. 고기와 생선은 물론이고, 계란, 우유, 꿀처럼 동물에서 나온 모든 식재료를 쓰지 않습니다. 홍콩은 아직 비건의 비중이 높지 않고 경우에 따라 육식을 겸하는 플렉서테리안(flexitarian)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채식주의자가 존재합니다. 그래스루츠 팬트리는 어떤 채식주의자가 오든 전천후입니다.



원목과 식물을 활용해 친환경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매장 내부입니다. ⓒ 그래스루츠 팬트리


그래스루츠 팬트리가 그저 무결점 비건 메뉴판만으로 홍콩 채식주의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인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홍콩의 채식주의자를 다른 각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채식을 단계가 아니라 '동기'로 나눠보면 홍콩 채식주의자의 특성이 또렷해집니다. 채식주의자 인구 비중 1~3위인 인도, 이스라엘, 대만은 종교적 이유로 채식을 합니다. 반면 홍콩은 인구의 절반이 종교를 믿지 않고 나머지 절반의 종교인들도 불교, 도교, 기독교 등으로 파편화되어 있어 종교적 신념으로 채식을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대신 건강, 환경보호, 동물권 진작 등의 이유로 채식을 의식적으로 '선택'한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적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교리에 명시된 부분만 지킵니다. 반면 비종교적 채식주의자들은 생활 양식 전반으로 채식주의를 확대 적용하는 경향이 더 강합니다. 동물성 재료를 사용한 옷, 화장품, 약제를 소비하지 않고,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요리하고 남은 식재료들을 섞어 끓인 파머스 하비스트 수프입니다. 매번 남는 식재료가 다르다보니 매일 다른 수프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종교적 채식주의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그래스루츠 팬트리는 모든 메뉴를 완전 비건으로 만드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바로 낭비를 최소화하겠다는 웨이스트 제로(Waste Zero) 원칙입니다. 버리는 버섯 밑동도 삶아 다른 요리에 활용하고, 아몬드 우유를 만들고 남은 아몬드 펄프로 타르트 케이크의 시트를 만들고, 당근을 콜드 프레스 해 주스로 만든 후 남은 당근 펄프로 교자를 만듭니다. 아예 음식 잔여물을 섞어 만든 '파머스 하비스트 수프'라는 스타터 메뉴도 있습니다. 또한 그래스루츠 팬트리는 미생물로 하루 110kg의 음식물을 분해하는 오카 음식물 쓰레기 소화조(Orca food waste digester)를 홍콩 최초로 설치한 레스토랑이기도 합니다. 주문한 음식이 남는 경우에도, 손님이 개인적으로 포장 용기를 가져와 음식을 포장해가면 3%의 탄소세(Carbon Tax)를 할인해줍니다. 이를 통해 음식물 쓰레기도 줄이고, 포장용 플라스틱도 사용하지 않고, 식재료 재고 회전율도 높여 재고 비용도 줄이고, 재료의 신선도를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스루츠 팬트리가 즐겨 활용하는 슈퍼 푸드 식재료입니다.


그래스루츠 팬트리가 음식의 양보다 '영양의 양'에 집중하는 데 역시 이유가 있습니다. 음식의 양이 많다고 해서 영양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배는 부르지만 영양이 텅 빈 음식도 많습니다. 꼭 필요한 영양소를 효율적으로 섭취함으로써 불필요한 방목이나 식사 등을 원천 차단하자는 것이 웨이스트 제로 원칙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스루츠 팬트리가 홍콩이나 중국 등 로컬 식재료를 선호하는 것도 비종교적 채식주의자의 니즈와 맥이 닿아있습니다. 홍콩 식재료의 97%는 수입되기에 항공 등을 통한 운송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탄소를 배출합니다. 또한 이렇게 멀리서부터 운송되는 식재료는 물류비를 상쇄할 만큼 원가를 낮추기 위해 방목 등으로 대량 생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생산 및 운송 과정에서 환경을 덜 훼손하는 로컬 식재료를 선호하는 것입니다. 환경 보호를 이유로 채식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갑니다.



#3. 셰프용 - 셰프가 채식에 동참하는 가장 참신한 방법

이렇듯 초심자도, 채식주의자도 모두 접수한 그래스루스 팬트리는 업계 관계자까지 채식 세계에 발을 들이게 할 방안을 고안합니다. 의미있는 변화를 주려면 수요 뿐만 아니라 공급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래서 그래스루츠 팬트리는 유명 셰프들을 초청해 '콜렉티브스 테이블(Collective's Table)'이라는 콜라보 프로젝트를 런칭했습니다. 2016년에 시작해 벌써 10회가량 진행했습니다. 원래 비건 요리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게스트 셰프가 기존 메뉴를 비건 스타일로 재해석하거나 신규 메뉴를 개발합니다. 이 과정에 채식 요리 전문가인 그래스루츠 팬트리의 셰프팀이 협력하고 조언을 줍니다. 이렇게 개발한 메뉴를 파인 다이닝 코스로 만들어 하루 정도 팝업 레스토랑을 엽니다. 한 끼에 10만 원을 호가함에도 불구하고 매번 만석이 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만다린 오리엔탈 랜드마크 호텔(Mandarin Oriental Landmark Hotel)의 미슐랭 스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앰버(Amber)를 이끄는 리차드 이케부스(Richard Ekkebus)를 시작으로 홍콩 뿐 아니라 방콕, 마닐라, 상해 등 전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셰프들을 초대합니다. 팝업 레스토랑을 여는 도시도 게스트 셰프의 본거지에 따라 다양합니다. 국적만큼이나 주력하는 요리 종류가 다양해 그간 10번을 진행했음에도 참신한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콜렉티브스 테이블의 메시지가 전 세계로 퍼지는 건 덤입니다.



맨 처음 콜렉티브스 테이블에 동참한 리차드 이케부스는 타이거 우즈, 마이클 조던, 비욘세 등 글로벌 셀러브리티를 위한 요리를 전담했을만큼 유명 인사입니다.


원래 애용하던 식재료들을 전혀 쓰지 못하는 제약조건이 있기에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만큼 자칫 망신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명 셰프들이 콜렉티브스 테이블의 러브콜에 응하는 이유는, 그래스루츠 팬트리의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육류 식재료를 쓰지 않더라도 충분히 맛있게 즐길만한 요리가 존재하며 그 발전 여지가 무궁무진함을 몸소 사례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평소 채식을 돌 보듯 하던 사람이 평생 한 번만이라도 '맛있는 채식'을 접할 수 있다면, 그래서 채식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면 그것이 바로 셰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여 아닐까요?



#4. 그래스루츠 팬트리용 - 지속 가능성 보고서를 발행하는 레스토랑

그래스루츠 팬트리는 2018년 지속 가능성 보고서(Sustainability Report)를 발행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매년 발행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십수년 존속한 상장 대기업은 되야 가능할 것 같은 일을,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고 매장도 하나뿐인 그래스루츠 팬트리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 보고서의 성과로만 치면 대기업 못지 않습니다. 몇 가지 성과만 발췌하자면, 그래스루츠 팬트리는 지난 2018년 한 해 동안 온실가스 배출을 7톤가량 줄였습니다. 이를 고객당 탄소 배출로 환산하면 다른 동급 레스토랑 대비 65%가량 낮은 수준입니다. 제로푸드프린트(ZeroFoodprint), 쓰리디그리스(3Degrees), HK 리사이클스(HK Recycles) 등 외부업체와 협력해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관련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그래스루츠 팬트리의 환경 기여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해 공유하는 것입니다. 외부에 신뢰도를 쌓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 스스로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한 달 사이 7개 학교에서 채식 다이닝과 지속 가능한 F&B 사례를 학습하기 위해 그래스루츠 팬트리의 주방으로 견학을 오곤 합니다. 아예 커리큘럼을 짜서 오너 셰프가 출장 강연을 가기도 합니다. 외식업계는 물론 다른 업계에도 컨설팅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앞서 소개한 오카 음식물 쓰레기 소화조의 쇼룸 매장을 자처해 매달 10회 이상 견학 목적의 외부인을 받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서라기에는 여간 번거롭고 어려운 일들이 아닙니다. 채식을 내세우지 않아도 최고의 채식 레스토랑으로 알려지는 것처럼, 이러한 일련의 노력을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그 진정성이 오롯이 빛납니다. 그래스루츠 팬트리의 2019년 지속 가능성 보고서는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궁금해집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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