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가장 오래된 차찬텡, 이국적 맛을 홍콩의 맛으로 만들다

호놀룰루 카페

2024.06.21

‘원조’라는 말에는 힘이 있어요. 단팥빵집, 소금빵집, 족발집 등의 가게 이름 앞에 원조라는 단어가 붙어있으면, 평범해 보이던 가게도 다르게 보이죠. 그래서 특정 장르의 음식이 몰려 있는 먹자촌에 가보면 원조라는 키워드에 인플레이션이 있어요. 원조의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원조는 하나여야 하는데 말이죠. 


하지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 마찬가지로 원조에 대한 타이틀도 결국 살아남는 자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홍콩에서 차찬텡 카페의 원조를 주장하는 ‘호놀룰루 카페’처럼요. 차찬텡은 티 레스토랑인데요. 차와 홍콩화된 퓨전 서양 음식을 파는 식당이에요. 홍콩의 대표적인 식문화로 자리잡았죠. 


차찬텡은 1940년대 초반에 등장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어요. 한 때 4,000여개까지 늘어날 만큼 시장이 급성장했죠. 당시에는 원조 논란이 있었어요.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가게들이 생겨났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호놀룰루 카페가 원조로 불려요. 차찬텡이 1,000여개까지 줄어들면서 초기에 시작했던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거든요. 그렇다면 80년 넘게 원조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호놀룰루 카페에서 홍콩의 맛을 경험해 볼까요?


호놀룰루 카페 미리보기

 호놀룰루 카페, '아마도' 가장 오래된 차찬텡

 이국적인 맛에 대한 동경이 낳은 홍콩의 맛

 카페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건 시끄러움

 치솟는 임대료, 차찬텡은 끝내 생존할 수 있을까




홍콩은 미식의 도시 중 하나예요. 딤섬이나 완탕면부터 각종 직화구이까지 홍콩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많은데요. 홍콩의 음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어요. 바로, 차찬텡(Cha Chaan Teng)이에요. 


차찬텡을 영어로 번역하면, ‘티 레스토랑(Tea Restaurant)’. 하지만, 차만 파는 곳은 아닙니다. 차찬텡은 홍콩화된 퓨전 서양 음식을 파는 식당을 가리켜요. 이런 식당에서 파는 음식을 차찬텡 음식으로 분류하죠. 가장 대표적인 건, 홍콩식 밀크티와 에그타르트예요.


‘영국에 펍이 있다면, 홍콩엔 차찬텡이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차찬텡은 홍콩 사람들의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요. 보통 이른 아침 6시쯤 문을 여는 차찬텡은 홍콩 로컬의 아침 식사부터 점심, 간식, 때로는 저녁 식사까지 제공하며 누구든, 언제든 배를 채울 공간이 되어주죠.


공식적으로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홍콩에서 영업 중인 차찬텡은 1,000곳쯤 되는 것으로 어림잡아요. 우리나라 울산광역시와 비슷한 크기의 도시에 1,000곳의 차찬텡이 있다니, 홍콩 내 차찬텡의 존재감이 클 수밖에요. 이토록 무수한 차찬텡 사이에서 가장 오래된 차찬텡을 자처하는 곳이 있어요. 바로, 홍콩의 호놀룰루 카페(Honolulu Cafe)예요. 


ⓒHonolulu Cafe



호놀룰루 카페, ‘아마도’ 가장 오래된 차찬텡


차찬텡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홍콩이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당시 홍콩에서 양식이라 함은, 상류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어요. 비싸고, 그래서 귀했죠. 하지만, 손에 쉬이 잡히지 않는 걸 어쩐지 더 열망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잖아요. 서민들도 양식이 궁금했어요. 그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사 먹지는 못해도, 홍차에 연유를 넣어 밀크티를 만들어 마시고, 달콤한 케이크를 그럴싸하게 만들어 먹으며 기분을 냈죠. 


이런 서민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양식을 제공하는 식당들이 속속 등장했으니, 그게 바로 차찬텡이에요. 차찬텡은 홍콩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서양에서 영감을 받은 음식을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인기를 끌었어요.


이런 차찬텡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꼽히는 호놀룰루 카페는 1940년대 초반 문을 열었어요. 차찬텡의 전신으로 불리는 빙셧(Bing Sutt) 스타일의 가게로 시작했죠. 빙셧은 노동자들을 상대로 가벼운 아이스 음료와 스낵을 팔던 가게예요. 


호놀룰루 카페 창업자 욍 진 헤이(Yeung Jin Hei)는 거리에서 간단한 간식을 팔며, 양식을 향한 대중의 호기심과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걸 감지했어요. 빠르게 서양식 식사 요소에 홍콩의 맛을 결합해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였죠. 현재 호놀룰루 카페의 대표이자, 창업자의 둘째 아들은 당시를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아버지는 사람들이 일로부터 쉴 수 있는 공간을 열고 싶어 하셨어요.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는 일을 제법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땐 빙셧이었고, 뜨거운 음식을 제공하지는 않았습니다. 밀크티와 커피 같은 음료와 빵을 팔았어요.”

-데릭 욍(Derrick Yeung),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서


당시 홍콩엔 이런 차찬텡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정확히 누가 첫 차찬텡을 열었는지 기록이 남아있진 않죠. 하지만 확실한 건, 동양과 서양의 맛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홍콩 만의 고유한 식문화가 탄생했다는 거예요. 주머니가 좀 가벼운 사람까지도 즐길 수 있는 식문화가요!


홍콩 삼수이포(Sham Shui Po) 지역에 첫 매장을 낸 호놀룰루 카페는 80년 넘게 홍콩에서 차찬텡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은 완차이(Wan Chai), 정관오(Tseung Kwan O), 야우마테이(Yau Ma Tei)에 총 세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죠. 1940년부터 현재까지 홍콩의 호놀룰루 카페를 찾은 사람 수는 10억 명이 넘을 정도고요.


1996년 둘째 아들인 데릭 욍이 사업을 이어받으며 호놀룰루 카페는 해외로도 확장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홍콩뿐만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까지 진출했죠. 해외 매장의 호놀룰루 카페는 홍콩에 가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진짜 홍콩 음식’을 파는 것으로 마케팅하며, 각 지역 고객에게 어필하고 있어요.


이처럼 차찬텡은 홍콩 사람들의 일상인 동시에 자부심이에요. ‘홍콩 사람들의 피엔 차찬텡이 흐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죠. 2007년엔 홍콩 최대 정당이 차찬텡을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에 올려야 한다며 정부에 제안하기도 했고요. 차찬텡이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2014년엔 차찬텡의 대표 메뉴인 에그타르트와 파인애플 번의 조리법이, 2017년엔 홍콩식 밀크티 제조 기술이 홍콩의 무형 문화 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ong Kong)으로 인정받았어요.


ⓒhonolulucafeph



이국적인 맛에 대한 동경이 낳은 홍콩의 맛


차찬텡 음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표 음식은 홍콩 스타일 밀크티와 겹겹이 부서지는 에그타르트, 그리고 버터 향이 가득한 파인애플 번이에요. 세계 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광둥 음식에 유제품이 들어가는 일은 드물었어요. 하지만, 홍콩 내 영국의 영향력이 커지며 로컬들도 점점 차에 우유를 넣어 마시고, 케이크 같은 것도 먹기 시작했죠. ‘맛있어서’였다기 보다는, 이국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한 푸드 에디터는 당시 홍콩 사람들 사이에서 번진 서양 음식 유행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서양 음식은 제일 먼저 부유한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끌었어요. 그리고 그 인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이어졌죠. 사람들은 서양 음식을 꼭 맛있다기보다는 이국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수잔 정(Susan Jung), BBC에서


차찬텡 음식은 모두 동서양 퓨전 요소를 갖추고 있어요. 종종 ‘간장 묻은 양식(soy sauce western)’이라 불리기도 하죠. 호놀룰루 카페의 대표 메뉴인 192겹의 골든 에그타르트를 볼까요? 서양식 과일 타르트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값비싼 과일 대신 홍콩에서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단백질원이었던 계란을 주재료로 넣었어요. 호놀룰루 카페의 에그타르트는 하룻밤 동안 냉동시켜 둔 타르트 반죽을 사용해요. 매일 아침, 냉동실에서 꺼낸 반죽을 192겹으로 접고 또 접어내 필링을 채우고 구워내죠. 바삭바삭하고 공기처럼 부서지는 식감이 특징이에요. 가격은 2024년 기준, 개당 10홍콩달러(약 1,800원)이고요.


“버터, 달걀노른자와 얼음을 사용해 만든 클래식한 페이스트리를 여러 번 접고, 밤새 냉장고에 보관해요. 우리 에그타르트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기술이 필요합니다.”

-데릭 욍,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서


에그타르트와 곁들이기 좋은 홍콩식 밀크티는 영국 식민지 시대, 영국의 애프터눈 티 문화에서 출발했어요. 홍콩 스타일 밀크티는 일반적으로 찻잎을 섞고, 끓여 차를 우려낸 후 일반 우유 대신 연유를 넣는 게 특징이에요. 호놀룰루 카페도 홍차에 단맛 강한 연유를 넣어 홍콩식으로 재해석한 밀크티를 팔아요. 무더운 여름날, 얼음을 잔뜩 넣은 아이스 홍콩 밀크티가 특히 인기죠.


파인애플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파인애플 번도 빼놓을 순 없어요. 반으로 자른 통통한 빵 사이에 두꺼운 버터 슬라이스를 무심하게 넣어요.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하고 고소한 버터 향이 퍼지죠. 빵 사이에 햄이나 고기를 토핑으로 넣을 수도 있어요. 가격은 모두 10홍콩달러(약 1,800원)대로 저렴해요.


차찬텡에 이렇게 달콤한 메뉴만 있는 건 아니에요. 삶은 마카로니와 스팸을 넣은 수프, 소고기 사태 누들 등 동서양의 재료가 묘하게 섞여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어주는 메뉴도 있어요. 이처럼 차찬텡의 음식은 딱히 건강하거나 유난히 맛있는 종류는 아니에요. 하지만 홍콩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해 추억을 맛보는 곳이, 여행객에겐 홍콩의 문화를 경험하는 곳이 되어줘요.


ⓒhonolulucafeph


ⓒhonolulucafeph



카페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건 시끄러움


호놀룰루 카페 완차이 지점. 샛노란 간판 위, 선명히 적힌 빨간 글씨가 눈길을 끌어요. 내부로 들어가면, 마치 1940년대 홍콩에 온 것 같아요. 밝은 듯 뿌연 형광등과 매끈한 주홍빛 천장, 벽에 걸린 액자들, 무심하게 돌아가는 선풍기가 마치 오래전 홍콩을 방문하는 느낌을 주죠. 이렇다 할 특색 없는 무채색 타일 바닥 위에는 투박한 테이블과 초록색 가죽으로 마감된 의자들이 놓여 있어요. 테이블 위엔 통유리가 한 겹. 그사이에 잘 코팅된 메뉴가 끼워져 있고요.


ⓒGoogle Street View


고객도 각양각색이에요. 메뉴판을 쳐다보지도 않고 주문하는 단골부터 노트북을 꺼내 놓고 일하며 국수를 먹는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 신중히 메뉴판을 번역하는 외국인 고객, 스팸 앤드 마카로니 수프를 먹는 엄마 옆에 앉아 파인애플 번을 먹는 꼬마까지. ‘누구나, 언제든 찾아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당’이라는 말이 납득되는 풍경이죠.


빽빽한 테이블 사이로 주문을 받는 직원도, 주문하는 고객도 마치 소리 지르듯 큰 소리로 말을 주고받아요. 흰색 반소매 셔츠를 입고 매장을 누비는 “종업원들의 퉁명스러움이 오히려 카페의 분위기를 완성한다”는 고객의 리뷰도 있어요. 조용하고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다만 시끄럽고 번잡하고 정겨운 것. 이 자체가 호놀룰루 카페의 매력이 되어주는 거예요.


시대가 변해도 어쩐지 그대로인 것 같은 분위기 덕에, 호놀룰루 카페는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여러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어요. 가장 잘 알려진 건, 탕웨이가 출연한 로맨스 영화 ⟪크로싱 헤네시(Crossing Hennessy)⟫예요. 영화를 본 팬들의 발걸음도 이어져,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여행객에 호놀룰루 카페를 찾아요.


사실 호놀룰루 카페가 정말로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차찬텡인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만, 호놀룰루 카페는 꾸준히 주장하죠. 우리는 1940년부터 쭉 영업하고 있는 홍콩의 첫 차찬텡이라고요. 이 주장이 호놀룰루 카페의 브랜딩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명확해 보여요.


ⓒCrossing Hennessy, 2010



치솟는 임대료, 차찬텡은 끝내 생존할 수 있을까


홍콩의 차찬텡은 뛰어난 생존력을 자랑해요. 80년 넘게 경제 위기며 팬더믹을 버텨내고, 여전히 홍콩의 골목을 차지하고 있죠. 하지만, 높아지는 도시의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유서 깊은 차찬텡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어요. 홍콩의 유명한 밀크티 브랜드 캄차(Kamcha)의 자료에 따르면, 2003년에는 홍콩에 약 4,000개의 차찬텡이 있었다고 해요. 대충 계산해도 20년여 만에 홍콩 내 차찬텡 수가 거의 1/4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에요.


악명 높은 홍콩의 임대료를 부담하려면, 차찬텡의 매력 중 하나인 저렴한 가격을 포기해야 해요. 실제로 영업 중인 차찬텡들은 조금씩 음식값을 올리고 있고, 홍콩 사람들은 차찬텡이 차찬텡 같지 않다며 불평하는 분위기죠. 하지만, 호놀룰루 카페의 디렉터 데릭 욍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업을 이으며, 차찬텡 문화를 지켜나가고 싶다고 말해요.


“가족 기업을 물려받는 것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이 브랜드가 계속되게 만들고 싶습니다.”

-데릭 욍,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2024년 몇몇 지역 언론들은 차찬텡의 소멸을 우려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어요. 과연 차찬텡은 홍콩 미식 문화의 일부로 생존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홍콩 내 다른 차찬텡인 캄와(Kam Wah) 카페를 운영하는 도널드 찬(Donald Chan)의 문장으로 호놀룰루 카페 이야기 마무리할게요.


“차찬텡은 홍콩의 전형이에요. 만약 당신이 홍콩에 와서 로컬의 맛을 보고 싶다면, 차찬텡이 그걸 제공해 줄 겁니다. 차찬텡은, 영국의 펍처럼, 우리 문화에 필수적인 거예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서


ⓒHonolulu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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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호놀룰루 카페 홈페이지

Classic Hong Kong restaurants: Honolulu Coffee Shop, for egg tarts

Honolulu Cafe Singapore: To-Die-For HK Egg Tarts & Curry Fish Balls

Cha Chaan Teng: Unique HK Culture & Spirit

Why Hong Kong’s cha chaan teng are worth saving - they’re ‘essential to the culture, like pubs are in the UK’

Celebrating cha chaan tengs: the noisy and delicious heart of Hong Kong

Hong Kong's 'greasy spoon' cafes

Hong Kong-style Milk Tea Making Techn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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