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텔이 비수기를 극복하는 방법, 여행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지가 된다

호텔 쉬, 교토

2024.09.27




여행에는 성수기가 있어요. 여름 휴가 시즌, 가을 단풍 시즌,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너도나도 여행 갈 채비에 바쁘죠. 여행하기 제격인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호텔은 만실이에요. 그런데 이 시기가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텅 빈 호텔만이 남아있어요. 


관광 비수기는 숙박업계가 오랫 동안 마주해 온 문제예요. 제아무리 뛰어난 호텔도 결국 관광업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교토에는 이 문제를 역발상으로 해결해나가고 있는 호텔이 있어요. ‘호텔 쉬, 교토’죠.


호텔 쉬, 교토는 과감하게 호텔의 탈 관광화에 도전해요. 관광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찾아갈 수밖에 없게 만들어서 성수기와 비수기의 구분을 지워버리는 거죠. 호텔이 관광과 어떻게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냐고요? 고객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준다는 생각부터 시작하면 돼요. 마치 1박 2일간 진행되는 최초의 숙박형 이머시브 연극처럼요.


호텔 쉬, 교토 미리보기

 #1. 라이프스타일을 피팅해 볼 수 있는 호텔

 #2. ‘숙박할 수 있는 연극’이라는 새로운 장르

 #3.숙박을 넘어 ‘인생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호텔

 삶을 디자인해 주는 라이프 파트너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을 듣는 것을 넘어, 앨범 속 세계에서 잠도 잘 수 있다면 어떨까요? 2021년 8월, 오사카에 최초로 앨범 속에서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이 생겼어요. 이름은 ‘호텔 큐어 바이 시럽(Hotel cure by SIRUP)’으로, 싱어송라이터인 시럽(SIRUP)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탄생한 공간이었죠. 이 호텔 룸은 시럽의 새 앨범 ‘큐어(Cure)’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SUISEI


방 한두 개만 컨셉룸으로 꾸민 게 아니에요. 앨범에 수록된 총 12곡의 트랙 리스트에 맞춰 12개의 방을 만들었죠. 벽지, 인테리어, 소품과 세부 디테일까지 곡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갖추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첫 번째 트랙인 'R&W'는 세상은 옳고 그르다는 이원론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요. 해당 방에는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자유로워지자’는 가사에 맞게 인스타그래머블한 거울을 설치하고 셀카를 유도했어요. 


©SUISEI


앨범 속 세계에서 숙박할 수 있는 기간은 총 3개월이었어요. 호텔에서는 컨셉룸이 종료되는 10월이 되자 이곳을 외부에 3일간 공개하기로 결정했죠. 더불어 가수가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착용했던 의상, 미공개 라이브 사진을 전시하고, 컨셉룸에 있었던 일부 소품들도 판매했어요. 컨셉룸을 배경으로 라이브 공연을 펼쳐 유튜브에 공개하기도 했죠. 


“고객들이 숙박을 하면서 곡을 체험해 주실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컬래버레이션 했습니다. 음악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더 많아져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라이브나 음원, CD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만, 호텔이나 박물관 등에서 체험해 볼 수 있다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시럽(SIRUP), 싱어송라이터, J-Wave 뉴스 인터뷰 중에서


그렇다면 호텔에서는 왜 이런 기획을 하게 된 걸까요? 사실 ‘호텔 큐어’는 이번 기획을 위해 잠시간 탄생한 가상의 호텔명이에요. 호텔의 진짜 이름은 ‘호텔 쉬, 오사카(Hotel SHE, OSAKA)’죠. 호텔 쉬, 오사카에서는 호텔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 보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음악 속 세계를 구현한 컨셉룸에 사람들을 초대한다면 사람들이 이곳에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또 음악을 매개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경험을 하면서 호텔에서도 새 앨범을 개봉할 때의 설렘을 재현할 수 있다고 봤어요.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호텔 쉬, 오사카가 생각하는 진정한 여행이었죠. 


부티크 호텔 브랜드 ‘호텔 쉬,(Hotel SHE,)’는 이처럼 호텔의 가치를 확장하며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중이에요. 퀄리티를 높여 호텔 업계의 1위가 되고자 하는 곳은 이미 많기 때문에, 저변을 넓혀 존재감을 키우고자 하죠. 이런 방향성으로 접근하는 호텔은 아직 드물 뿐더러, 가치를 확장하는 방법도 확립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이 전략의 시작점이자 핵심은 ‘호텔 쉬, 교토(Hotel SHE, KYOTO)’예요. 이곳에서는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아, ‘호텔 순례’라는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죠. 어떤 공간인지 호텔 속으로 떠나볼게요. 



#1. 라이프스타일을 피팅해 볼 수 있는 호텔


교토는 유수의 글로벌 호텔 브랜드들이 일본에 처음 진출하는 교두보로 알려져 있어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명맥을 이어나가는 ‘교토다움’은 그 자체로 헤리티지를 상징하죠. 그렇다 보니 교토 바깥에서 시작한 브랜드도 교토에서 매장을 오픈할 때는 교토라는 지역적 맥락에 맞게 재해석된 모습으로 등장하곤 해요. 그런데 2016년에 오픈한 호텔 쉬, 교토는 흔히 생각하는 교토다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SUISEI


©HOTEL, SHE KYOTO Instagram


일단 장소부터 ‘교토가 아닌 곳’으로 여겨지는 곳에 위치해 있어요. 지리적 기준에 따르면 분명 교토가 맞는데, 왜 교토가 아니냐고요? 호텔 쉬, 교토가 위치한 곳은 히가시쿠조예요. 교토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떨어진 곳이지만 관광지가 밀집한 지역과 정반대 방향에 있어서 예로부터 교토의 변방 같은 취급을 받아왔죠. 가게가 드물뿐더러 인적이 드물어 조용해요.


이건 호텔 쉬, 교토가 의도한 바예요. ‘교토다움’ 대신 ‘거리다움’을 추구하고자 했거든요. 여행자의 이목을 끄는 화려한 관광지 대신 ‘일상 속 유토피아’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컨셉은 호텔 내외부 인테리어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요. 천년 고도를 떠올리게 하는 일본풍 목조 인테리어는 어디서도 볼 수 없어요. 대신 모티브로 삼은 것은 미국 고속도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텔이었죠. 교토라는 도시와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한 디자인을 인테리어, 키 비주얼, 로고 디자인 곳곳에 심었어요.  


©SUISEI


획일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난 점이 통한 걸까요? 호텔 쉬, 교토는 금세 20대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어요. 곧이어 음악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으로 성장하죠. 그 비결이자 핵심 조각은 바로 ‘레코드’였어요. 호텔 쉬, 교토는 디지털 음원에 밀려나는 신세인 아날로그 레코드를 로비와 전 객실에 비치했죠. 숙박객들은 로비에 있는 레코드 중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골라 방에 있는 레코드플레이어로 자유롭게 들을 수 있었어요. 물론 구매도 가능했고요.


 

©HOTEL, SHE KYOTO Instagram


호텔 쉬, 교토가 레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호텔과 음악을 연결한 것은 레코드를 ‘몰랐던 세계와 만나는 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는 호텔 쉬, 교토를 운영하는 ‘스이세(SUISEI)’의 대표이자 호텔 프로듀서인 류자키 쇼코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죠. 류자키 쇼코는 대학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로 레코드플레이어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이전까지 접점이라고는 없었던 레코드플레이어가 생긴 것만으로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됐죠. 레코드에 턴테이블 바늘을 떨어뜨릴 때의 느낌, 디지털 음원과의 음색 차이 같은 것들 말이죠.  


그뿐 아니에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세상을 보는 눈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이전까지 별생각 없이 걸어 다녔던 시부야 우다가와초에 레코드 가게가 이렇게나 많았다는 것도 새삼 눈에 들어왔죠. 레코드를 접하게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보를 접하는 방법과 행동 양상에 변화가 나타난 거예요. 


류자키 쇼코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창’이라는 레코드의 특성이 호텔에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호텔에서 자신의 경험한 감각을 재현해 보기로 했죠. 그 결과 레코드가 호텔 쉬, 교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가 된 거예요. 공산품이지만 따뜻한 느낌이 있는 레코드는 숙박객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동시에 우발적인 발견을 도와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죠.   


©SUISEI


궁극적으로 호텔, 쉬 교토가 지향하는 것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피팅 해 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마치 사람들이 의류 매장에서 새 옷을 입어보듯이 레코드나 크래프트 컬처를 입어보는 거죠. 체크인이 시작되면 호텔은 숙박객의 삶의 일부를 맡게 되는데요. 이때야말로 호텔이 고객에게 직접 코디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에요. 고객들은 그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생활을 시도해 볼 수 있죠.  


그래서 호텔 쉬, 교토에서는 레코드 이외에도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어요. 호텔에 들어서면 한쪽 구석에 ‘팔러 쉬, 사이드(PARLOR SHE, SIDE)’가 있는데요. 이곳에서는 가나자와에 있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빅베이비 아이스크림(BIGBABY ICE CREAM)’의 특제 아이스크림을 판매해요. 번잡하고 포화한 교토의 관광지에서 떨어져 있는 호텔에서 갈증을 해소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곳이에요. 


©HOTEL, SHE KYOTO Instagram


이 밖에도 호텔에서는 '오아시스'라는 호텔의 테마에 어울리는 제품들도 판매해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호텔 쉬,의 PB 브랜드인 ‘보이 밋츠 쉬,(BOY MEETS SHE,)’로 호텔의 철학과 컨셉을 담은 룸 키, 키 링, 의류 제품 등이 있죠.  


©SUISEI


“뭔가를 소비한다는 행위는 자기표현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어떤 브랜드의 가치관이 좋아서 옷을 사고, 어느 카페의 분위기가 좋아서 가는 것처럼요. 그렇게 생각하면 호텔은 가격대는 비슷한데 자기표현의 여지가 없는 소비라고 느껴졌어요. 이런 과제 의식이 맞물려서 ‘호텔 쉬,’를 만들게 됐죠.“

-류자키 쇼코, 스이세 대표, TOKION 인터뷰 중에서


호텔이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이 되면서, 호텔 쉬, 교토는 자연스럽게 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았어요.



#2. ‘숙박할 수 있는 연극’이라는 새로운 장르


스스로를 하나의 미디어로 정의한 호텔 쉬, 교토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입어보는 공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호텔에서의 경험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어요. 2019년에 컬래버레이션 기획으로 준비한 ‘시 호텔’이 대표적이죠. 호텔 쉬, 교토의 객실 중 일부를 시로 꾸며서 사람들이 한 편의 시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한 거예요. 시인 및 디자이너와 함께 3개 객실에 만든 시 호텔은 3개월간 숙박을 받기로 했는데, 1주일 만에 예약이 꽉 찼죠.


©SUISEI


호텔 숙박을 사람들의 목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그 후로도 계속됐는데요. 그중 집대성과도 같은 기획이 바로 ‘숙박할 수 있는 연극’이에요. 길어야 서너 시간 동안 진행되는 연극을 어떻게 숙박까지 하면서 볼 수 있냐고요? 이 연극은 호텔에 체크인하는 순간부터 시작돼요. 그리고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 호텔에 나오는 순간까지 연극은 계속되죠.


©SUISEI


진짜로 24시간 연극이 계속 되거나, 호텔 안에 별도로 무대나 객석이 있는 건 아니에요. 대신 호텔 쉬, 교토는 건물 전체를 무대로 만들어버렸죠. 연극은 중간에 약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데 이 때 숙박객들은 호텔 내부를 돌아 다니며 배우의 연기를 감상해요. 연극의 시나리오에 따라 호텔이 갑자기 암전되기도 하고,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도 해 스토리와 관련된 연출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죠. 


이동 루트나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관객이자 숙박객들은 연극을 조각조각 감상할 수 있어요. 관객에 따라 보는 것, 체험한 것이 다르니 숙박객들은 실마리를 찾기 위해 서로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고요. '나는 이런 체험을 했다, 나는 이런 스토리였다, 그런 장면도 있었구나’ 와 같은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작품의 재미가 급격하게 상승했죠. 일반 극장에서는 타 관객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없을뿐더러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려워요. 반면 호텔에서는 초면인 손님과도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숙박까지 하는 프로그램이니 막차 시간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요. 


“연극은 호텔 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혼자서 이야기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어요. 함께 온 친구와 따로 행동하거나 다른 손님과의 교류를 통해 이야기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춰봐야만 이야기의 전모를 알 수 있죠.”

-스이세 노트(note) 블로그 중에서


이머시브 연극을 위해 변경된 호텔 쉬, 교토 공용 공간의 전후 모습이에요. ©SUISEI Note


호텔 쉬, 교토 객실의 전후 모습이에요. ©SUISEI Note


사실 이 기발한 시도의 밑바탕에는 교토의 관광 비수기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어요. 관광 도시인 교토에는 주로 벚꽃, 단풍 시기에 관광객이 몰리고, 장마나 한겨울에는 발길이 뜸해지거든요. 숙박업은 관광업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호텔 쉬, 교토도 비수기를 피하기란 쉽지 않았죠. 관광 비수기에도 호텔에 일부러 찾아오게 만들 유인책이 필요했어요. 


이때 입사 3개월 차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광고 회사에서 4년간 일한 경력이 있었던 이 직원은 ‘호텔이야말로 이야기가 탄생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먼 국가에서 찾아온 손님, 기념일에 맞춰 온 커플 손님, 졸업 여행을 온 손님 등 등장인물은 매번 다양했고, 그에 따라 각기 다른 에피소드가 생겼죠. 그걸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호텔에서 일하는 묘미와도 같았어요. 다만 이런 매력은 오직 호텔 직원만이 누릴 수 있었기에, 이걸 고객에게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죠. 그 결론이 바로 ‘연극’이었어요.


그 결과 호텔이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이머시브 시어터’가 탄생했는데요. 호텔에 연극을 도입한 뒤 어떤 시너지가 나타났을까요? 공공장소와 사적인 공간이 뒤섞인 호텔 특성은 이머시브 극장을 운영하는 데 큰 강점으로 작용했어요. 이머시브 시어터의 매력 중 하나가 ‘그 사람만 볼 수 있는 장면’이거든요. 호텔은 개개인별로 다른 체험을 만들기에 딱 맞는 구조였죠.


한마디로 호텔 쉬, 교토에서 진행되는 연극은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예요. 이 정도라면 기획하는 입장에서 극에 대한 이해도와 퍼포먼스적 깊이도 뛰어나야 할 것 같은데요. 연극을 기획, 운영하는 것은 이벤트 회사도 극단도 아니에요. 호텔 쉬, 교토를 운영하는 모기업인 스이세의 엔터테인먼트 사업부죠. 심지어 직원 단 2명이 연극과 관련한 제작과 매니지먼트를 총괄하고 있어요. 


©SUISEI


스이세에서 굳이 연극 제작과 운영을 외부에 위탁하지 않고 토털 프로듀싱하는 이유는 하나예요. 호텔에서의 체험을 강점으로 내재화하기 위해서죠. 그래서 호텔 쉬, 교토에서는 실제 호텔 직원을 연극배우로 캐스팅하기도 해요. 직원들은 연극이 있는 날이면 체크인을 도와주는 시점부터 마지막 배웅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극의 스토리라인이나 세계관에 기반해 고객을 응대하죠. 고객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을 때에도 세계관에 맞는 애드리브를 선보이고요. 그래서 스토리를 미리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접객에 있어서도 차별화가 필요해요. 


“'숙박할 수 있는 연극’은 스이세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이세가 보유한 자산과 인재가 있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스이세는 호텔을 운영하는 회사이지만 늘 독특한 기획을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일반 호텔에서는 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해도 유지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죠. 스이세라는 밑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되고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오카 나오야, 스이세 엔터테인먼트 사업부 매니저, 스이세 노트(note) 블로그 중에서


호텔을 유일무이한 숙박형 이머시브 시어터로 만든 이 프로그램은 2020년 시작 이후 누계 13개 작품을 선보였고, 지금까지 10,000명 넘는 고객들을 동원했죠. 덕분에 연극이 진행되는 시기 동안 호텔 가동률은 거의 100%에 육박했어요. 평일에도 만실을 달성하는 등 대성황이 이어지며 2020년 도입 당시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했죠. 호텔에서 제공하는 숙박 체험의 틀을 깨자, 새로운 장르가 성공 신화를 쓰게 된 거예요. 



#3. 숙박을 넘어 ‘인생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호텔


지금까지 호텔 쉬, 교토가 호텔업이라는 비즈니스의 저변을 확장해 온 과정을 살펴봤는데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호텔을 운영하는 스이세는 보다 더 넓은 영역으로의 도전을 이어나가는 중이죠. 아예 호텔의 ‘탈 관광화’를 꿈꾸며 관광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할을 찾아나가고 있어요.


“일반적인 인식상 호텔업은 관광업의 일부예요. 하지만 이는 호텔의 가능성을 좁히는 아쉬운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광이나 출장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어딘가에 숙박할 일은 있어요. 예를 들어 입원, 숙박형 보육, 요양원 체류 같은 것들이 있죠. 그렇게 보면 숙박이라는 행위에도 관광과 연결되지 않는 영역이 굉장히 많아요. 코로나19 팬데믹 쇼크로 관광이 중단되었을 때, 이런 영역을 보다 넓혀나가는 것에 호텔업의 미래가 있다고 강하게 느꼈죠.”

-류자키 쇼코, 스이세 대표, TOKION 인터뷰 중에서


호텔업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며 특히 주목한 것은 호텔이라는 공간의 정체성이었어요. 류자키 쇼코는 호텔이란 ‘고객 인생의 일부를 보관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죠. 그렇다면 인생 중 어느 타이밍을 보관할 것인가에 따라 호텔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달라지는데, 류자키 쇼코가 첫 번째로 시기는 여성의 출산 이후였어요. 그래서 2022년에 일본 최초의 산후 케어 리조트 ‘호텔 카푸네(HOTEL CAFUNE)’를 개업했어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에 있는 도큐 REI 호텔에서 8개의 객실을 빌려 ‘호텔 인 호텔’ 형태로 운영 중이에요. 


인생의 수많은 순간 중 출산 이후를 위한 호텔을 만든 이유가 뭐냐고요? 보통 출산 직후의 여성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요. 동시에 이 시기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때이기도 하죠. 가족이 늘어나면 기존처럼 스스로를 위해서만 시간을 사용하는 일이 불가능해지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호텔에서 민감한 시기를 보내며 조산사나 보육사의 케어 하에 회복을 취할 수 있게 한 거예요. 육아 공부는 물론이고요. 


이때, 그 역할을 꼭 호텔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어요. 전문으로 출산 이후의 시기를 돕는 산후조리원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약 75%, 대만에서는 약 40%의 사람들이 산후조리시설을 이용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이런 공간이 다소 생소한 개념이었어요. 결국 아기가 태어나면 자력으로 돌볼지, 부모님에게 의지할지 선택권이 2가지로 좁혀질 수밖에 없었죠.


물론 당사자가 원한다면 2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하지만 류자키 쇼코는 일본 사회의 특성상 어떤 과제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인식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어요. 만약 호텔이 공간을 활용해 의식주와 관련한 생활을 지원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죠. 그래서 ‘산후 케어 리조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된 거예요. 


©HOTEL CAFUNE Instagram


산후 케어 리조트 이후의 다음 모델로는 아이들끼리만 숙박할 수 있는 ‘아동관’과 같은 호텔을 구상하고 있어요. 출장이 잦은 부모가 아이를 잠시 맡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숙박까지 할 수 있는 키즈 호텔을 가리키죠. 보통 아이들끼리 숙박을 하는 대표적인 케이스는 여름 캠프가 있는데요. 마치 365일 여름 캠프가 진행되는 듯한 호텔에서 각종 놀이 프로그램을 마련해 교육적 역할까지 대행하고자 해요.  


왜 키즈 호텔을 구상하게 되었냐고요? 부모가 일 때문에 출장이 잦으면 자녀를 케어할 때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요. 매번 아이를 친구 집에 머물게 하기도 어렵고, 조부모에게 부탁하기 힘든 경우도 많죠. 그럴 때 보육교사나 선생님이 있어서 아이가 안심하고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호텔이 있다면 새로운 사회 시설로 기능하게 될 거예요. 이는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의 선택지까지 넓혀주는 비즈니스 모델이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자들은 많아요. 지금은 인터넷 시대니까요. 하지만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사업자는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폐관 시간도 없는 데다가 인적 자원과 공간을 모두 갖추고 있는 호텔, 병원 같은 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죠. 지금 같은 시대에 육아를 효율적으로 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호텔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크지 않을까요?”

-류자키 쇼코, 스이세 대표, 2050 매거진 인터뷰 중에서


스이세는 호텔 시장을 앞장서서 확장하고 있는 대표 플레이어예요. 앞으로도 단순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호텔이 아니라, ‘숙박 체험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 선택지를 넓힐 수 있는’ 호텔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목표죠.



삶을 디자인해 주는 라이프 파트너


스이세의 창업자이자 호텔 쉬, 라는 부티크 호텔 브랜드의 프로듀서인 류자키 쇼코는 불과 19살에 사업을 시작했어요. 이처럼 어린 나이에 호텔업에 뛰어든 걸 보면 호텔에 대한 애정이 컸을 것 같지만, 오히려 호텔에 대한 불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죠. 어린 시절에 가족들과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갔었는데 당시 어딜 가도 똑같은 형태의 보급형 호텔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어느 호텔에 묵어도 결국 비슷한 체험이 되기 쉽다고 느꼈던 저는, 제가 좋아하는 옷이나 카페를 선택하듯이, '이 호텔을 좋아하기 때문에 묵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호텔을 만들고 싶었어요.”

-류자키 쇼코, 스이세 대표, CBRE 인터뷰 중에서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꿈을 이뤄나가고 있는 지금, 류자키 쇼코는 스이세에서 운영하고 있는 호텔을 ‘라이프 디자인 호텔’이라고 정의해요. 사람들에게 일상 속 선택지를 늘려주는 곳이자, 향후 사회 인프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한 공간을 의미하죠.  


게다가 앞으로 스이세는 일본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를 중심으로 호텔을 넓혀나갈 생각이에요. 지방에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지만 사용되지 않게 되어버린 공공 건축물 등 훌륭한 자원이 많거든요. 이런 건물들을 빌려 지방에서 사업을 전개한다면, 투자금을 일본 전역에 골고루 퍼뜨릴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일본의 지역 활성화까지 가능해지겠죠. 갇혀있던 호텔의 잠재력을 마음껏 뽐내는 ‘호텔 쉬, 교토’와 같은 곳들이 전 세계에 생긴다면 10년 뒤, 20년 뒤 세상의 라이프스타일은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롭지 않을까요?






Reference

호텔 쉬, 교토 홈페이지

Suisei 홈페이지

SIRUPの世界に迷い込む、HOTEL c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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