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Repair)’
홍콩의 캐리어 브랜드, ‘로젤’이 추구하는 디자인이에요. 애초에 제품을 설계할 때부터 고장 났을 때 ‘수리’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다는 건데요. 수리를 위한 디자인의 핵심은 ‘모듈화’예요. 부분적으로 고장이 나거나 소모되었을 때, 그 부분만 교체해서 제품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거든요. 제품의 수명이 길어지지만 그만큼 폐기물이 줄어 들고,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죠.
로젤은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데에 진심이에요. 제품 디자인을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리테일 ‘매장’ 또한 지속가능성에 기여하죠. 2024년 4월에 홍콩 코즈웨이 베이에 플래그십 매장을 지을 때에는 파쇄된 로젤 가방, 재활용 플라스틱 타일 등 무려 700kg의 폐기물을 건축 재료로 전환했죠.
이와 같은 지속가능성 감수성은 로젤의 핵심 가치 중 하나예요. 그런데 로젤이 제품 디자인에서 고려한 건 지속가능성 뿐만이 아니에요. 더 중요하게는, 변화하는 여행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제품을 진화시켰어요. 어떻게냐고요?
로젤 미리보기
• 5:5에서 1:9로, 고객 친화적 관점이 바꾼 디자인
• 관점의 확장, 사업 영역을 확장하다
• ‘선형’ 경제를 ‘순환’ 경제로, ‘수리를 위한 디자인’의 힘
• 유연한 진화, 비즈니스의 수명을 연장한다
유난히 ‘여행’에 진심인 럭셔리 브랜드가 있어요. 바로 ‘루이비통’이죠. 1998년, 명품 브랜드들 중에서는 최초로 여행 가이드 북 시리즈인 ‘시티 가이드(City guides)’를 출시했어요.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5개 도시에 대한 가이드북을 출판했죠.
ⓒLouis Vuitton
그 뿐인가요? 루이비통은 ‘여행’을 주제로 한 전시도 꾸준히 선보이는데요. 보통 한 도시에서만 전시를 개최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전시를 파리, 도쿄, 뉴욕, 밀라노, 서울 등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선보여요. 마치 여행을 하는 것처럼요. 그간 루이비통이 열었던 대표적인 전시들을 몇 가지 소개할게요.
- ‘날아라, 항해하라, 여행하라(Volez, Voguez, Voyagez)’: 교통 수단의 변화에 따라 변화해 온 여행 트렁크들을 선보인 전시
- ‘유목민의 물건(Objets Nomades)’: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가구와 물건 콜렉션 전시
- ‘200개의 트렁크, 200명의 선지자(200 Trunks, 200 Visionaries: The Exhibition)’: 창립자 루비통의 200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전시로, 예술가와 유명인들이 재해석한 트렁크를 선보인 전시
정작 지금은 핸드백이나 의류로 더 유명한 루이비통이지만, 왜 ‘여행’이라는 키워드에서 브랜드 헤리티지를 찾는 것일까요? 바로 루이비통의 시작이자, 근간이 ‘개인용 여행 캐리어’에 있기 때문이에요. 애초에 루이비통이라는 브랜드가 세워지고, 유명해진 계기가 여행 캐리어 때문이었죠.
산업화 이전, 19세기에 여행은 귀족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였어요. 귀족들은 여행을 떠날 때 직접 짐을 운반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짐조차 직접 싸지 않았어요. 당시 이런 귀족들을 타깃해 여행 가방을 제작하는 가게가 있었는데, 이 가게에서는 귀족들을 대신해서 여행 짐을 싸줬어요.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패커(Packer)’라고 불렀죠.
루이비통의 창립자, ‘루이 비통(Louis Vuitton)’은 파리의 한 여행 가방 가게에서 일을 하며 패커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짐을 잘 쌌는지, 당시 프랑스 왕실 황후 외제니 드 몽티조(Eugénie de Montijo)의 눈에 들어 그녀의 전담 패커로 고용되었죠. 이후 황후의 후원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딴 여행용 가방을 만드는 매장을 열었고, 이게 바로 지금의 루이비통이 된 거예요.
그렇다면 루이비통은 어떤 여행용 가방을 만들었길래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루이비통 이전의 여행용 트렁크는 더 많은 짐을 넣고, 물이 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단이 볼록한 모양이었어요. 재질도 나무와 덧댄 가죽을 사용해 무게도 무거웠죠.
그런데 이후 교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다 많은 귀족들이, 더 자주, 더 길게 여행을 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많은 짐을 한꺼번에 싣기 위해 트렁크를 적재해야 했는데, 윗부분이 볼록한 트렁크는 위에 짐을 싣기가 어려웠죠. 여행 인구가 많아지고, 빈도가 잦아지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불편함을 자주 겪게 되었어요.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트렁크 디자인이 필요해진 거예요.
이에 루이비통은 최초로 윗면이 평평한 직사각형의 트렁크를 개발했고,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라는 가벼운 소재를 개발해 더 유용한 여행용 가방을 만들었어요. 변화한 여행 수요에 맞춰 새롭게 디자인된 루이비통의 여행 트렁크는 불티 나게 팔리기 시작했죠.
1890년도의 다미에 캔버스 캐빈 트렁크 ⓒLouis Vuitton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또 한 번 여행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어요. 산업혁명 이후, 귀족 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1950년대 들어서는 이제 짐꾼이 아닌, 여행객 자신이 ‘직접’ 짐을 나르기 시작했어요. 이 때 원래는 바퀴가 달린 수레에 여행 가방을 실어 운반했었는데, 여전히 여행용 가방을 이 수레에 옮기는 과정이 무겁고 번거로웠죠.
이에 운반이 편리한 여행용 캐리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어요. 이를 포착한 미국의 사업가 버나드 섀도우(Bernard Sadow)는 1972년에 최초로 ‘바퀴 달린 캐리어’를 개발했어요. 이후 ‘트래블프로(Travelpro)’, ‘샘소나이트(Samsonite)’ 등의 브랜드가 바퀴 달린 캐리어를 본격적으로 출시하며 지금 우리가 아는 여행용 캐리어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죠. 물론 루이비통에서도 바퀴 달린 캐리어를 선보였고요.
이처럼 여행용 캐리어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 왔어요. 바퀴 달린 여행용 캐리어가 처음 개발된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여행은 또 달라졌죠. 그런데 여전히 많은 여행용 캐리어 디자인이 1950년대에 머물러 있어요. 이제는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또 한 번 새로운 캐리어 디자인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이에 부응하는 캐리어 브랜드가 있어요. 일본에서 시작해 현재는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로젤(Lojel)’이에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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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에서 1:9로, 고객 친화적 관점이 바꾼 디자인
해외 여행에서 짐 무게는 곧 비용이에요. 비행기를 탈 때 중량을 초과하면 추가 요금이 발생하니까요. 특히 저가 항공사가 등장하면서 중량에 더 민감해졌죠. 이에 많은 여행 캐리어 브랜드들이 캐리어의 ‘경량화’에 초점을 맞췄어요. 로젤도 소재 연구를 통해 경량화를 이뤄낸 브랜드 중 하나였고요. 하지만 로젤은 약간의 무게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큰 가치를 제공하거나 경쟁력을 갖추지는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지나치게 경량화에 집중해 소재 기술의 한계를 넘어설 경우, 캐리어로서의 견고함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리스크가 있었거든요.
로젤은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생긴 또 다른 변화를 포착했는데요. 여행객이 점점 많아지고, 3성급의 비즈니스 호텔이 늘어나면서 방 사이즈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어요. 특히 일본 도쿄로 여행을 갔을 때, 작은 객실 사이즈에 큰 캐리어를 넣으며 로젤이 해결해야 할 새로운 시장의 니즈에 확신을 갖게 되었죠. 기존의 캐리어는 책처럼 활짝 펼쳐야 짐을 꺼낼 수 있는데, 이러면 작은 객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부족해지거든요.
2016년, 로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쿠보(Cubo)’라는 새로운 디자인의 컬렉션을 출시했어요. 쿠보는 캐리어 개폐 지퍼를 캐리어 옆면의 5:5 위치가 아니라, 1:9의 위치에 배치했어요. 캐리어 양쪽을 펼칠 필요 없이, 전면만 마치 뚜껑처럼 열 수 있도록 개폐 지퍼의 위치를 조정한 거예요. 이렇게 캐리어를 디자인하니, 캐리어를 활짝 펼치지 않고도 짐을 꺼내거나 넣을 수 있어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어요. 용량은 그대로, 자리는 덜 차지하는 캐리어가 탄생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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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j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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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보는 스몰, 미디움, 핏(Fit), 라지 등 총 4가지 사이즈가 있는데요. 특히 그 중 기내 반입이 가능한 스몰 사이즈는 상단 뚜껑을 세로로 열 수 있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캐리어를 눕히지 않고도 쉽게 열 수 있죠. 세로로 뚜껑을 열면, 패브릭으로 된 디바이더(Divider)로 짐을 넣는 본체와 노트북, 전자기기 등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분리해 놨어요. 본체를 열려면 이 디바이더 양 옆의 지퍼를 열어야 하지만, 상단의 1/3정도는 자석으로 개폐가 가능하게 되어 있어 본체에서 간단한 짐을 꺼낼 때 훨씬 빠르고 쉽게 여닫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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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사이즈의 상단을 이렇게 디자인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요즘은 여행을 다닐 때 랩탑이나 태블릿 PC, 보조배터리 등의 전자기기들이 필수예요. 이런 전자기기들은 규정상 혹은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기내용 캐리어에 넣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수하물 검사 시 꼭 빼야 하거나 기내, 혹은 이동 시에도 자주 꺼내야 하는 물건들이기에 보다 간편한 개폐가 필요해요. 요즘 여행객들의 캐리어 사용 패턴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디자인에 반영한 결과죠.
관점의 확장, 사업 영역을 확장하다
여행자의 움직임을 배려한 디자인으로 여행의 경험을 향상시키는 로젤. 로젤이라는 이름도 ‘Let Our Journeys Enrich Life’에서 각 단어의 첫 번째 알파벳을 따서 지은 이름이에요. 즉, 브랜드 이름이 고객의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여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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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은 그들이 말하는 ‘풍요로운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고, 확장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바로 코로나 19 팬데믹인데요. 약 3년 반 가량 이어졌던 코로나19 팬데믹은 그야말로 여행이 멈춘 기간이었어요. 당연했던 여행이 어려워지고, 사람들의 이동은 최소화되었죠. 여행 캐리어를 판매하던 로젤도 큰 타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로젤은 이 위기를 오히려 그간 당연하다고 인지했던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0에서부터 미래를 재건하는 기회로 삼았어요.
그 결과 로젤은 더 이상 여행을 좁게 정의하지 않기로 했어요. 여행을 일상과 다른 것이 아닌, 오히려 더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행의 범위를 넓혔죠. 그래서 여행의 경험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용자의 관점에서 캐리어를 다시 디자인했던 것처럼, 일상에서 쓰는 가방도 사용자 친화적으로 업그레이드하기로 해요.
“우리의 미션은 이동을 간소화하는 필수품을 만드는 것입니다.(Our mission is to create carry essentials that simplify movement.)”
- 로젤 공식 웹사이트에서
로젤은 더 이상 여행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 혹은 여행 안에 갇히지 않아요. 시야를 확장해 삶 전반에 걸쳐 편안한 움직임을 도와주는 제품을 디자인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제품 카테고리 또한 여행 캐리어에서 벗어나 ‘에블로(Eblo)’, ‘우르보(Urbo)’, ‘니루(Niru)’, ‘세모(Semo)’ 등 일상 가방 라인업을 강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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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상 가방 컬렉션들도 로젤 특유의 사용자 친화적인 디자인이 돋보여요. 에블로 컬렉션을 예로 들어 볼게요. 에블로 컬렉션은 여러 가지 개별 아이템이 하나의 유닛으로 작동하는 가방인데요. 에블로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백팩과 달라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구성 요소들을 보면 일상부터 여행까지 완벽하게 케어하는 가방이라는 점을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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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로 - 올 테레인 세트(Eblo-All Terrain Set)’를 구입하면 백팩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넣어서 다닐 수 있는 슬링 파우치, 스트랩 2종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스트랩과 가방을 연결하는 부분이 버클 형태로 되어 있어 2종의 스트랩을 손쉽게 갈아 끼울 수 있어요. 평소에 활동이 많지 않고 가방이 무겁지 않을 때에는 ‘시티 스트랩’으로 도시 캐주얼 룩을 연출하다가도, 트레킹, 등산, 캠핑 등 야외 활동을 할 때에는 ‘액티브 스트랩’으로 변경해 많은 활동량과 무거운 가방 무게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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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슬링 파우치는 자석으로 가방 안쪽에 고정되어 주머니 혹은 가방 안 별도 영역처럼 기능하다가도, 간단한 외출 시에는 가방과 손쉽게 분리해 크로스백으로도 연출할 수 있어요. 하루 종일 다양한 형태와 강도의 여행을 할 경우, 장거리 이동에는 백팩을, 가벼운 외출에는 슬링 파우치를 활용할 수 있어 유용해요. 여기에 ‘에블로-올 컨디션 세트(Eblo-All Condition Set)’의 경우 방수 원단에, 가방을 덮도록 디자인된 접이식 폰초까지 포함되어 있어 날씨에도 구애 받지 않고 언제든 여행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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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우르보’의 경우, 마치 쿠보 캐리어를 백팩으로 재해석한 버전 같아요. 효율적인 물건 보관을 위한 세심한 공간 구획과 캐리어처럼 지퍼로 가방 용량을 최대 15%까지 확장할 수 있는 디자인이 돋보이죠. 토트, 숄더, 크로스 3가지 방식으로 들 수 있는 ‘니루’, 작은 포켓과 손잡이로 랩탑을 더 편리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돕는 ‘세모’ 등도 일상을 작은 여행으로 바라본 결과예요.
‘여행’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고, 시야를 확장하자 로젤에게 더 큰 비즈니스 기회가 열린 셈이에요. 더 이상 좁은 의미의 여행을 위한 가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이동을 도와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브랜드로서 거듭날 수 있었어요.
‘선형’ 경제를 ‘순환’ 경제로, ‘수리를 위한 디자인’의 힘
캐리어인 ‘쿠보’, 일상 가방 라인인 ‘에블로’, ‘우르보’, ‘니루’ 등은 디자인도, 장점도, 용도도 모두 달라요.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모듈화’된 요소들로 이루어진 디자인이라는 점이에요. 가령 쿠보의 경우 캐리어 바퀴는 기본, 캐리어 안쪽 천 부분 또한 본체와 분리해 쉽게 세탁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파트로 이루어진 에블로 또한 파우치, 스트랩 등이 모듈화 되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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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디자인을 모듈화, 표준화하면 부분 세척이 쉬워 깨끗하게 사용하기 좋을 뿐만 아니라, 쉽고 빠른 ‘수리’가 가능해져요. 로젤에서는 이를 ‘수리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Repair)’이라 부르는데요. 모듈화 디자인, 즉 수리를 위한 디자인은 제품의 수명을 늘리는 효과가 있어요. 제품의 수명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폐기되는 제품의 비율이 줄어들고, 쓰레기를 줄여 환경에 도움이 되고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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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은 차별화 수단이 아니라 브랜드와 조직의 핵심 실체에 내장되어야 해요. 제품, 공급망 또는 재무 등 모든 부서와 팀원은 지속 가능성의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치죠. 이는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내부 문화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여 전체 조직이 참여하고, 지식을 개발하고, 역할 내에서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 안 치에 치앙(An Chieh Chiang), 로젤 CEO, 로젤 지속가능성 보고서 2023에서
로젤은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데에 진정성이 있는 브랜드예요. 가방 제조사로서 제품의 품질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천연 재료, 재활용 소재 등 지속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는 비율을 꾸준히 높여 오고 있어요. 제품 포장 시에도 플라스틱 소재 사용을 최소화하고, 이 수치를 2026년까지 0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인도네시아 습지를 보존하는 프로젝트, 중국 삼림 조성하는 프로젝트 등 친환경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는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혹은 많은 기업들이 하고 있는 방식이에요. 로젤은 디자인으로 고객의 이동과 일상을 혁신했던 것처럼, 지속가능성 또한 로젤답게 실천하려고 하죠. 모듈식 디자인, 수리를 위한 디자인이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는 의미예요.
제품을 제조하는 로젤로서는 폐기물 관리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데요. 로젤은 폐기물이 어느 과정에서 발생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가치 사슬을 매핑했어요. 그 과정에서 폐기물의 상당 부분이 수명 주기가 끝난 제품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죠. 이에 재료의 내구성과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 그리고 제품의 수리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제품 수명을 늘리고, 폐기물을 줄이고자 했어요.
그렇다면 여느 캐리어, 가방 브랜드처럼 고장난 제품을 센터로 직접 가져가거나 배송하면 되는 걸까요? 하지만 로젤은 이 수리 과정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고객이 귀찮아서 수리를 미루거나 센터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가방을 수리하는 대신 버릴 가능성이 생기니까요. 그래서 로젤은 고객이 스스로 제품을 수리할 수 있도록 모듈식 디자인을 채택했고, 온라인 수리 튜토리얼을 제공해요. 배송 시간, 물류 이동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은 물론, 제품의 수명 주기를 길게 만들어줬죠.
수리용 디자인 이니셔티브는 기존의 사용에서 고장, 고장에서 폐기로 이어지는 ‘선형(Linear) 경제에서 벗어나 사용 후 고장이 수리 또는 교체로 이어져, 다시 사용으로 이어지는 ‘순환(Circular)’ 경제를 구축하는 데에 목적이 있어요. 로젤은 2025년 말까지 이 프로세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폐기물 완화를 위한 새로운 솔루션을 모색하고 있죠. 2023년 말 기준으로 약 2만 개의 로젤 가방이 수리 되었고, 폐기물이 될 뻔 했던 약 8만5천kg의 제품들이 다시 쓰였어요.
한편 로젤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진심을 ‘매장’에서도 보여 주는데요. 매장조차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끼치는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어요. 건설은 전 세계적으로 폐기물의 주요 원천 중 하나인데요. 리테일 매장 또한 마찬가지죠. 로젤은 매장 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매장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방식을 재고하고자 했어요.
ⓒ시티호퍼스
2024년 4월, 홍콩 코즈웨이 베이에 문을 연 플래그십 매장이 그 시작이었죠. 이 매장을 짓는 데에는 파쇄된 로젤 가방과 재활용 플라스틱 타일, 재활용 폴리에스터, 무독성 바닥재 및 페인트 등이 사용됐어요. 매립지에서 무려 700kg의 폐기물을 플래그십 매장을 짓는 재료로 전환했죠. 매장 중앙에 있는 로젤 로고 설치물도 역시 재활용 페트와 업사이클링 플라스틱 패널을 활용해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했어요. 이 밖에도 로젤 제품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수하물 태그 등을 판매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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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진화, 비즈니스의 수명을 연장한다
로젤은 감각적인 디자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감수성 등 때문에 비교적 젊은 브랜드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로젤의 시작은 1989년, 일본 고베로 거슬러 올라가요. 현 로젤 CEO의 할아버지, 치 창 치앙(Chih Chang Chiang)이 시작한 회사거든요. 치 창 치앙은 21세의 나이에 가방 산업에 입문했고, 180일 동안 무려 43개의 여권 스탬프를 모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죠. 여행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것들을 배우던 그는, 로젤의 슬로건인 ‘Let Our Journeys Enrich Life’의 토대를 형성했어요.
(좌) 1989년 1세대 로젤 가방 광고 (우) 1세대 로젤 가방을 들고 있는 로젤 창업자 치 창 치앙 ⓒLOJEL
치 창 치앙은 고베에 로젤의 본사를 설립, 도야마의 파트너와 협력해 고품질의 폴리프로필렌 캐리어를 만들었어요. 당시의 로젤 캐리어는 무게는 가벼우면서 동시에 내구성은 훌륭했어요. 제품의 품질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도매 비즈니스를 키워 나갔죠. 이후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도매 시장까지 공략했고요. 그러다 2013년, 일본을 넘어 본격적으로 아시아 태평양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본사를 홍콩으로 이전한 거예요.
현 CEO인 안 치에 치앙이 로젤을 이어받은 건 홍콩으로 본사를 이전한 직후인 2014년의 일이었어요. 런던 미들섹스 대학교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도매 비즈니스만으로는 로젤의 스토리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죠. 곧바로 그는 비즈니스의 전체적인 밸류 체인을 검토하며 성공적으로 소매 비즈니스를 시작했어요.
로젤 CEO 안 치에 치앙 ⓒLOJEL
이 때 그에게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었는데, 밴쿠버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켄조 요네노(Kenzo Yoneno)’였어요. 그는 3개 대륙의 7개 나라가 그의 고향이라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국가에서 다문화를 경험하며 자랐어요. 그 때문일까요? 켄조 요네노는 디자인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접근해요.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또는 ‘올바른’ 방법이 있다는 개념을 거부하죠.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디자인 철학이 있냐는 물음조차 이렇게 답했어요.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엄격한 디자인 철학을 갖는 것은 좀 부적절해 보입니다. 모든 것이 뒤집혔으므로, 유연하고 겸손하며 관찰력이 뛰어나고 성장 마인드셋을 유지하는 것이 이전에는 없었을 새로운 조건과 문제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듯해요.
하지만 제 접근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생각 하나는 디자인이 반드시 모든 솔루션의 핵심은 아니라는 거예요. 문제는 복잡하고, 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고 지속 가능한 솔루션을 찾는 건강하고 객관적인 방법입니다.”
- 켄조 요네노, LOJEL Journal에서
그는 디자인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면서도 동시에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지, 디자인이 늘 솔루션이 되거나, 솔루션의 핵심이 아니라고 짚고 있어요. 오히려 디자인보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죠.
로젤의 이러한 유연한 사고는 디자인에만 국한된 건 아니에요. 제품 라인업이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물론, 비즈니스 영역을 도매에서 소매로 확장하기도 했고, 본사의 국적을 바꾸기도 했죠. 로젤은 앞으로도 이런 유연한 진화를 멈추지 않을 예정이에요. 그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주로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북미 시장과 유럽 시장으로도 확장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제는 전 세계 여행객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 로젤이 또 어떤 유연한 성장을 보여줄지 궁금해져요.
Reference
【Business Innovator 呈獻《BIZ勝之道》】 #LOJEL|研發創新及耐用性高行李箱🧳強調可持續性發展
Traditional Values for Today’s Modern Traveller, The art of business travel
LOJEL Sustainability Report 2023
Madelinne Barber, Design, Travel and What Really Matters, LOJEL Journal
Billie Cohen, I’m Team Soft Luggage, But This Hardshell Carry-On May Convert Me, A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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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JEL - A global brand adapting to the ever-changing needs of the times, Breaking Travel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