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구룡반도에서 빛나는, 축구장 크기만 한 배의 정체

엠플러스

2024.12.18



홍콩 하면 떠오르는 단어 3가지를 꼽자면 ‘금융’, ‘쇼핑’, 그리고 ‘음식’이에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물류, 무역, 항공 운송 및 국제 비즈니스 허브로 기능해왔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오고 가는 환경 속에서 미식이 발달했죠.


그런데 홍콩 구룡반도 남서측에 서구룡 문화지구가 들어선 이후, 홍콩의 연관 검색어에 ‘문화’라는 단어가 추가됐어요. 아시아의 엔터테인먼트 수도가 되겠다는 포부 하에 들어선 문화 지대가 홍콩의 인상을 바꿔나가는 중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메인 시설이 ‘엠플러스(M+)’예요. ‘비주얼 컬처 뮤지엄’인 엠플러스는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미술관과는 차원이 달라요. 홍콩이라는 도시의 특성을 반영한 건축, 마치 유기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전시 등이 홍콩 사람들에게 새로운 예술 경험을 불어넣고 있거든요. ‘미술관 이상의 미술관’을 의미하는 엠플러스로 가볼까요?


엠플러스 미리보기

 #1. 건축가이지만 접근은 고고학자처럼

 #2. 스스로 색을 바꾸고 빛을 내뿜는 건축물

 #3. 아시아의 시선을 담은 ‘연결고리형’ 전시

 문화, 홍콩의 새로운 명함이 되다




‘그 땅에 건물을 지으면 경제의 중요한 맥을 막아서 악영향을 끼칠 겁니다.’


건물을 짓기도 전에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첨단 과학 시대에 이게 웬 허무맹랑한 소리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시작도 전에 재부터 뿌리는 것 같아 무시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만약 이 건물이 지어질 장소가 홍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홍콩에서 풍수지리는 단순한 믿음을 넘어서 도시 계획, 건축, 비즈니스는 물론 개인의 삶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거든요. 책상 방향이나 이사 날짜까지 유명 풍수사의 조언을 따를 정도죠. 


그렇다면 홍콩에서 이토록 풍수지리의 존재감이 큰 이유는 뭘까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환경을 만들어 기의 흐름을 최적화하는 것이 부, 건강, 행운과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특히 홍콩은 세계적인 금융 도시이다 보니 풍수지리가 비즈니스적, 재정적 성공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 왔죠. 그래서 많은 기업에서 건물을 설계하거나 상업 공간을 만들 때는 풍수지리 전문가의 자문을 받곤 해요. 


그런데 1985년에 ‘홍콩 상하이 뱅크’를 지을 때 문제가 생겼어요. 당시 건축 의뢰를 받은 노먼 포스터는 홍콩의 중앙 비즈니스 지구에 단순 랜드마크를 넘어 글로벌 금융의 중심이 되는 건물을 짓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때 홍콩의 유명한 풍수지리 전문가가 경고를 했죠. 건물이 지어질 땅은 맥이 흐르는 자리라 건물로 막아버리면 홍콩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어요. 이 말을 들은 건축주는 노먼 포스터에게 풍수지리에 어긋나지 않는 디자인을 요청했죠.  


©Foster + Partners


땅에 흐르는 맥을 옮길 수도, 그렇다고 땅을 떼어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노먼 포스터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세계적인 건축 거장이 찾아낸 묘안은 건물을 공중에 띄우는 것이었어요. 맥의 흐름을 막지 않고 바람과 기가 잘 통하도록 1층을 뚫은 필로티 구조를 고안한 거죠. 그는 현수교를 만들 때의 공법을 활용해 건물 양쪽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플로어를 몇 개 층씩 묶어 매어놓는 방식으로 건물을 완성했어요. 그후 1층에 에스컬레이터를 비스듬히 배치해 나쁜 기가 건물 위층까지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았죠. 풍수지리에서 나쁜 기는 직선으로만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Foster + Partners


©Foster + Partners


건물 완성에 소요된 공사기간은 총 6년, 투입된 공사비는 10억 달러(약 1조 3천억 원)였어요. 하지만 홍콩의 문화적 맥락을 구조적 기술로 풀어낸 덕분에 홍콩 상하이 뱅크 빌딩은 은행 건물을 넘어 홍콩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자리 잡았죠. 더불어 비어있는 1층은 시민에게 개방해 건물이 지어진 후에도 사람들이 불편 없이 건물을 통과할 수 있게 했고요. 매주 일요일이면 홍콩 가정집에서 일하는 도우미들이 마작을 하고 있는 진풍경을 볼 수도 있죠. 


노먼 포스터의 홍콩 상하이 뱅크 빌딩은 기술적 혁신과 풍수지리적 요소를 조화롭게 결합시킨 건축물이에요. 이처럼 제약 사항처럼 보이는 요소도 잘 반영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문화적 아이콘이자 상징적 랜드마크가 되는 발판이 될 수 있죠. 홍콩 서구룡 문화지구에 있는 미술관 ‘엠플러스(M+)’도 마찬가지예요. 매립지 위에 지어진 엠플러스는 홍콩의 토지적, 문화적 맥락을 독특한 방식으로 조화시킨 곳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요.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다른 건축물들과 뭐가 다르냐고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1. 건축가이지만 접근은 고고학자처럼


2021년 11월, 홍콩 서구룡에 새로운 문화 아이콘이 탄생했어요. 아시아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비주얼 컬처 뮤지엄 ‘엠플러스’였죠. 엠플러스는 물리적으로는 홍콩에 있지만 아시아를 대표하는 뮤지엄을 표방해요. 20세기 이후 주목받아 온 그림, 디자인, 건축, 비주얼 아트, 영상까지 예술 분야 전반을 광범위하게 아우르며 아시아의 미술 허브로 기능하죠. 한 마디로 서구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곳이 뉴욕의 모마(Museum of Modern Art)라면, 아시아 현대미술에게는 엠플러스가 있는 셈이에요.


그 존재감에 걸맞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비용만 7억 6천 달러(약 9천 8백억 원)예요. 컬렉션뿐만 아니라 건축물까지 하나의 작품이라 볼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죠. 설계는 자크 헤르조그(Jacgues Herzog)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이 함께 운영하는 스위스 건축 회사 ‘헤르조그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맡았는데요. 이들은 아시아 최고의 미술관을 짓기 위해 어떤 기법을 사용했을까요? 


이 정도 명성과 체급에 맞는 건물을 지으려면 보통 건축가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활용하거나 트렌드를 따르는 방법으로 이목을 끌기 마련이에요. 혹은 새로운 공법을 적용해 참신함을 자랑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헤르조그 드 뫼롱은 이 중 어떤 방법도 택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들은 건축의 본질인 ‘토지 고유의 특성’에 집중하기로 했죠. 주변 지형과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 주어진 조건을 가장 잘 살린 디자인을 찾아내고자 한 거예요. 


그런데 엠플러스가 세워질 홍콩 구룡반도 남서측에 위치한 부지는 바다를 메워 땅으로 만든 매립지였어요. 한마디로 ‘텅 빈 공간’이라 할 수 있죠. 게다가 현장 도면에 점선 처리가 되어있던 게 실은 공항철도 터널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어요. 1980년대에 건설한 홍콩 지하철 MTR 에어포트 익스프레스와 통청선(Tung Chung Line) 위에 엠플러스를 세워야 했던 거예요. 이건 누가 봐도 도움이 되는 요소가 아니라 설계 계획과 시공을 복잡하게 만드는 장애물이었어요. 하지만 헤르조그 드 뫼롱은 이 장애물을 기쁘게 받아들였죠.  


©M+, Hong Kong


“디자인을 결정하는 건 건축가가 아니라 땅이나 공간이에요. 보통은 지하에 터널이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피해서 지을 것인가를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터널은 기쁜 발견이었고 이를 기점으로 디자인을 해 나갔어요.”

-피에르 드 뫼롱, 건축가, Casa Brutus 인터뷰 중에서


이들은 터널의 형태를 설계안에 통합시켜 엠플러스의 중심 공간으로 삼기로 했어요. 지하 2층에 있는 이곳의 이름은 ‘Found Space(발견된 공간)’로, 지하층과 지상층을 넓은 대각선 형태로 연결해 여러 층에 걸쳐 확장된 열린 공간을 제공해요. 이곳에서는 대규모 설치 작업 및 퍼포먼스를 할 수도 있고, 관람객들에게 전시된 작품을 다양한 시점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죠. 터널의 단차와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양은 그 자체로 건물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더하기도 하고요. 


©Herzog & de Meuron


©시티호퍼스


©M+, Hong Kong


©시티호퍼스


한편, 엠플러스 밑에 공항철도 터널이 대각선으로 지나가는 구조로 인해 수직 하중을 분산시켜야 했어요. 홍콩 교통국과 건축국이 정한 구조 설계상의 제한이 엄격했기에, 엠플러스가 터널에 부하를 가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죠. 헤르조그 드 뫼롱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물 내 다섯 곳에 대형 강철 프레임인 메가 트러스를 설치했어요. 그리고 그 일부를 노출시켜 미술관의 개성을 살렸죠. 터널에서 시작된 장소적 특수성이 건물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된 셈이에요. 


©M+, Hong Kong


©Herzog & de Meuron


“결과적으로 이 건물은 단순히 주변 환경에 뿌리내린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겁니다.”

-헤르조그 드 뫼롱, 엠플러스 공식 홈페이지 중에서


엠플러스 밑 지하 터널은 마치 동맥과 같은 존재예요. 이곳을 중심으로 건물의 핵심이 형성되고, 가지를 뻗어 건물 전반의 디테일이 결정되니까요. 헤르조그 드 뫼롱은 건축가이면서도 고고학적 접근을 통해 건축과 토지를 조화시켰고, 그 결과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탄생했어요. 



#2. 스스로 색을 바꾸고 빛을 내뿜는 건축물


엠플러스의 기반이 된 땅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제 지상으로 눈을 돌려 메인 건축물의 하드웨어를 살펴볼게요. 엠플러스는 포디움이라 불리는 수평 건물 위에 슬림한 타워를 세워 놓은 역 T자 형태예요. 갤러리가 밀집된 포디엄은 지하 2층부터 2층까지 4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위에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14층 규모의 타워에는 리서치 센터와 오피스, 레지던스 스튜디오 등이 들어서 있죠. 헤르조그 드 뫼롱은 이를 마치 문화 선언을 담고 빅토리아 하버를 항해하는 ‘해적선’과 같다고 밝혔죠. 


©M+, Hong Kong


또한 헤르조그 드 뫼롱은 엠플러스의 구조만이 아니라 소재나 디자인에 있어서도 문화적 맥락을 살리고자 했어요.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빌딩들은 통상적으로 유리나 강철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보다는 아시아의 전통적인 건축 자재를 활용하고자 했죠. 그래서 선택한 소재가 ‘세라믹 타일’이에요. 예로부터 중국에서 지붕 기와로 사용해 온 세라믹에 짙은 초록빛의 유약을 발라 패널을 만들었죠. 


©M+, Hong Kong


©M+, Hong Kong


세라믹 타일 패널은 천연 점토가 풍부한 이탈리아의 공장에서 제조된 후, 중국 선전에서의 조립을 거쳐 홍콩으로 운송됐어요. 종류는 포디엄용과 타워용 2가지로 나뉘는데, 포디엄용 패널은 원통 형태를 띠고 있죠. 연속적으로 이어붙여 대나무 숲을 형상화한 패널은 벽과 기둥, 창문, 환기구 등을 덮어 각진 형태의 건물 구조에 악센트를 더해줘요. 헤르조그 드 뫼롱은 이를 내부에도 배치해 건물 내외부 간의 연속성을 살렸죠. 


©Herzog & de Meuron


한편 타워용 패널은 알루미늄 프레임과 유리창을 포함하는 구조로, 2가지 역할을 맡고 있어요. 첫째는 ‘차양’이에요. 수평으로 배열된 타일들이 미술관 내부에 들어오는 햇빛을 막아주죠. 더불어 타워를 덮고 있는 총 14만 장의 타일은 홍콩의 빛과 날씨를 실시간으로 반영해요. 기본적으로는 짙은 초록색을 띠고 있지만 빛 반사량에 따라 색조가 바뀌죠. 이는 홍콩에 숱하게 퍼져 있는 평범한 유리, 철강 건물과 전혀 다른 인상을 줘요.  


©M+, Hong Kong


©M+, Hong Kong


타워용 패널의 또 다른 역할은 ‘캔버스’예요. 매일 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빅토리아 하버 방면을 향하는 파사드가 빛으로 구동되는 캔버스로 변해요. 그것도 가로 길이 110m, 세로 길이 66m의 축구장 만한 대형 캔버스로요. 타워용 패널 사이 움푹 파인 홈에 5,664개의 LED를 매립해 놓았기 때문인데요.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파사드에서는 디지털 예술 작품이 흘러나오고, LED 스크린은 또 하나의 전시 공간이 되어 엠플러스의 컬렉션을 건물 바깥까지 확장하죠. 


©M+, Hong Kong


©M+, Hong Kong


건축, 엔지니어링, 디지털 혁신을 융합시킨 엠플러스의 새로운 시도는 빅토리아 하버를 비추는 새로운 야경을 만들었어요. 구룡반도 맞은편 홍콩 섬에서도 보이는 파사드는 홍콩의 스카이라인에 예술성을 더할 뿐만 아니라 홍콩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시각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해주죠.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볼 수 있도록 최적화된 엠플러스의 파사드는 2023년 미디어 아키텍처 어워드에서 최우수 영상 건축 프로젝트(Animated Media Architecture)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스스로 색을 바꾸거나 빛을 뿜으며 홍콩의 낮과 밤을 비추는 엠플러스를 두고 헤르조그 드 뫼롱은 이렇게 밝혔어요. 건축은 거리에 놓는 침과 같아서, 에너지를 실어 나르는 계기가 된다고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관람객, 그리고 도시와 폭넓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엠플러스는 홍콩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한 가지는 분명해요. 혈이 뚫리고 맥이 흐르면 홍콩의 예술 에너지가 더 활발히 요동칠 거라는 거죠. 


©M+, Hong Kong



#3. 아시아의 시선을 담은 ‘연결고리형’ 전시


건축물의 기반이나 뼈대만큼 중요한 게 있어요. 내부에 흐르는 영혼이죠.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관 엠플러스는 소프트웨어인 전시도 남다른데요. 엠플러스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자면 ‘시각 문화 뮤지엄(Museum for Visual Culture)’이에요.  20세기 이후의 시각 문화(visual culture)를 새로운 형식으로 보여주고자 하죠. 


콘템포러리 작품들을 선별, 수집하는 과정에서 엠플러스가 지향했던 것은 ‘아시아의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보통 미술관에서처럼 전시를 국가별, 장르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에서 시작된 아트 무브먼트가 아시아 및 세계로 영향력을 뻗어나갈 때 어떤 연결고리를 보이는지 비교할 수 있도록 전시하죠. 대표적인 예가 엠플러스 이스트 갤러리에서 아시아의 에어브러시 기법을 소개했던 거예요. 


"예를 들어, 80년대에 일본 백화점 ‘파르코’ 포스터로 큰 인기를 끌었던 일러스트레이터 야마구치 하루미는 이전까지 핀업 걸이나 섹시한 여성을 그리는 데 사용되던 에어브러시 기법을 사용해 강인한 여성을 묘사했어요. 여기서 영감을 받아 홍콩에서는 앨런 챈이 대스타였던 매염방을 에어브러시로 표현했고, 같은 시기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에어브러시를 활용한 독창적인 표현이 시작됐죠.”

-요코야마 잇코, 엠플러스 리드 큐레이터, 아사히 신문 디지털 매거진 인터뷰 중에서


이처럼 엠플러스의 큐레이터 팀은 스토리에 따라 아시아 아트를 부감할 수 있는 컬렉션을 구축하는데요. 이런 접근법은 한 명의 아티스트를 다루는 회고전을 열 때도 마찬가지예요.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야요이 쿠사마: 1945년부터 지금까지(Yayoi Kusama: 1945 to Now)’는 지금껏 타 미술관이 보여준 전시와는 전혀 다른 전개 방식을 선보였어요. 작가를 연대기적으로 소개하지 않고, 철학적으로 해석했거든요.  


©M+, Hong Kong


큐레이션 팀은 쿠사마의 삶과 작업을 바탕으로 ‘Infinity, Accumulation, Radical Connectivity, Biocosmic, Death, Force of Life’라는 6개의 키워드를 추출한 뒤, 이를 3개의 쌍으로 묶어 스토리텔링 구조를 만들었어요. 그 결과, 이전까지 대중에게 잘 전달된 적 없었던 아티스트의 중반기에도 포커스가 가기 시작했죠. 이 시기는 암흑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조차 잘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큐레이션 팀은 이 시기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 작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러티브 중심으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엠플러스의 첫 특별 전시는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였죠. 


엠플러스는 관점이 다를 뿐만 아니라, 카테고리도 넓어요. 미술 분야만 다루는 보통의 미술관과 달리, 엠플러스는 건축·디자인, 영상, 시각미술이라는 3개의 축을 조화롭게 선보이죠. 예를 들어 갤러리에 일본 스시 레스토랑을 통째로 옮겨놓는 식이에요. 사진도, 자재 일부도 아닌 가게 전체를 이축해 놓은 이유가 뭐냐고요?  


©M+, Hong Kong


전시관 속 스시 레스토랑의 이름은 ‘키요토모’예요. 1980년대부터 일본 도쿄 신바시에서 영업을 해 왔죠. 이 가게를 디자인한 것은 1960년대부터 전설의 건축가로 불리는 쿠라마타 시로로, 일본 건축만이 아니라 아시아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그의 작품들은 뉴욕 모마를 포함해 전 세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안타깝게도 약 350채나 되는 상업 공간은 운명을 다하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죠. 


엠플러스는 키요토모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어요. 가게는 2000년 중반에 문을 닫은 뒤 그 상태 그대로 남아있었죠. 엠플러스는 이를 일본에서 해체하고 홍콩에 옮겨 재건하기로 결정했어요. 일부 가구가 아니라 공간 디자인을 그대로 구현해야만 건축가의 진면목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상업 시설을 이축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밀도를 고집한 결과 1980년대의 건축 풍경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게 됐죠. 


©M+, Hong Kong


©M+, Hong Kong


이 밖에도 엠플러스는 총 33개 갤러리를 통해 2012년부터 수집해온 전 세계의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의 작품 8,000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국제적, 역사적으로 뜻이 깊은 시각 예술을 아시아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엠플러스는 대중의 예술적 만족감을 마음껏 채워주는 중이죠. 



문화, 홍콩의 새로운 명함이 되다


직접 엠플러스에 찾아간다면 하루로는 부족할 거예요. 다양한 전시와 방대한 컬렉션 때문이기도 하지만, 엠플러스가 위치한 서구룡 문화지구에 함께 둘러볼 장소가 많아서죠. 서구룡 문화지구는 약 12만 평 규모로, 20년 이상에 걸쳐 진행된 홍콩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결과예요. 투입된 공사비만 3조 원이 넘죠. 


현재 서구룡 문화지구에는 광둥 오페라와 중국 전통극을 볼 수 있는 공연장인 ‘시취 센터’, 중국의 클래식 아트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홍콩 고궁박물관’, 도시에 여유를 가져다주는 ‘아트 파크’ 등이 한데 모여 홍콩의 문화 수준을 높이고 있어요. 완공이 되는 2026년 즈음이면 홍콩이 글로벌 예술 허브로 거듭날 예정이죠. 


이전만 해도 홍콩은 금융, 쇼핑 중심지로만 알려져 있었어요. 오랜 시간 ‘경제’라는 명함만 갖고 있었던 만큼, 문화 영역에 있어서는 ‘불모지’로 여겨지곤 했죠. 하지만 서구룡 문화지구가 조성된 지금, 홍콩은 이제 ‘문화’라는 분야에서도 새 역사를 써나가는 중이에요. 앞으로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워질수록, 창의성은 고취되고 경쟁력은 커져 가겠죠. 새로운 명함을 가지고 활발하게 쌓아나갈 홍콩의 뉴 커리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Reference

mplus 홈페이지

foster+partners 홈페이지

herzog & de meuro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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