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을 잡지처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스토리

2022.05.12

뉴욕의 '스토리(STORY)'는 두 달마다 56평 매장을 리뉴얼합니다. 잡지처럼 매번 테마를 정해서 상품 구성, 인테리어, 소품 하나까지 전부 바꾸는 것입니다.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매출이 어느 정도 올라간다손 치더라도, 이렇게 자주 갈아 엎으려면 비용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첫 해부터 흑자를 유지해 온 비결은 바로 스폰서십 수익에 있습니다. 인텔, GE, 렉서스, 맥, 리바이스, 펩시 등 글로벌 탑 클래스 스폰서가 앞 다투어 스토리에 협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토리 미리보기

• 두 달마다 테마가 바뀌는 잡지같은 매장

 매장에 초대형 스폰서가 붙는 이유

 백화점의 스토리를 다시 쓰다






매장에서 점점 제품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팝업 매장이면 모를까, 무려 상설 매장에서도 판매 기능을 없애고 있는 것입니다. 뉴욕 첼시의 삼성 837 매장은 규모가 약 1,600평에 달함에도 제품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뉴욕 소호의 돌체 앤 가바나 밀레니얼 클럽 하우스도 브랜드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제품을 비치할 뿐 판매용이 아닙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금싸라기 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매출을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제품이 빠진 빈 자리를 브랜드 경험이 채우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이 온라인의 쇼룸이란 것도 이제 옛말입니다. 쇼룸이 온라인의 보완재 역할이었다면, 경험재로서의 매장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기능을 가집니다. 이제 오프라인에게 새로운 사명이자 숙명은 고객으로 하여금 브랜드를 경험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혹시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나요? 매장의 매출 하나쯤 포기해도 다른 곳에서 나는 수익으로 버틸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나 할 수 있는 시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뉴욕 첼시의 편집샵 '스토리(STORY)'를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스토리는 단 하나의 매장을 제품 판매가 아닌 브랜드 경험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합니다. 그런데도 매년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립니다. 경험을 위한 매장이 어떻게 이렇게 매출을 높일 수 있는 걸까요?



두 달마다 테마가 바뀌는 잡지같은 매장





'컬러'를 테마로 한 스토리 매장의 모습입니다. ⓒStory


스토리는 두 달마다 페이스 오프를 합니다. 2달마다 바뀌는 테마에 맞춰 상품부터 인테리어, 진열, 소품 하나까지 모두 교체합니다. 예를 들어 '컬러'라는 테마라면 유리창 전면을 색색깔로 칠하고, 색깔별로 구역을 나눠 쇼케이스나 바닥에 색을 입히고, 색감이 돋보이는 제품을 엄선해 색깔별로 모아 진열합니다. 주황색 헤어 드라이기, 노란색 무선 스피커, 초록색 립스틱 등 평소에 보기 어려운 색깔의 제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스토리는 2011년에 시작해 2019년까지 약 50회에 걸쳐 컬러, 웰빙, 메이드 인 아메리카, 사랑, 쿨, 연휴의 집, 하우 오리지널, 뉴욕 이야기 등 다양한 테마를 선보였습니다. 같은 테마가 반복되더라도 구현 방식이 달라 매번 기대감을 자아냅니다. 워낙 대대적으로 바뀌다보니 무려 1주일간 매장 문을 닫기까지 합니다. 과연 진정성이 느껴지는 지점입니다.



ⓒStory


자칫 중구난방한 팝업의 연속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스토리는 영리하게 중심을 지킵니다. 확장성을 고려한 로고 덕입니다. 스토리 매장에 들어서면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로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자세히 보면 알파벳 O가 대괄호로 바뀌어 'ST[    ]RY'라고 적혀 있습니다. 대괄호 안에 적혀 있는 것이 매장의 전체 테마입니다. 그리고 테마가 잘 드러나게 주변을 연출해 이 벽면만 사진을 찍어도 테마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동일한 포맷에서 한 가지 요소만 변화를 주면 사람들이 변화 지점에 주목하는 점을 십분 활용한 것입니다.



잡지 첫 페이지의 ‘편집장의 말’처럼 매장 입구에 이번 테마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습니다. ⓒStory


스토리는 잡지의 관점을 차용한 매장입니다. 공간을 매거진화한 것입니다. 잡지가 주기적으로 테마를 바꿔 다양한 소재를 하나로 엮어내듯, 스토리는 제각각인 제품에 하나의 스토리를 입힙니다. 하나씩 개별로 있으면 크게 주목받지 못할 제품도 큰 컨셉 하에 있으면 전달력이 높아집니다. 잡지 첫 페이지의 '편집장의 말'처럼 테마 전반에 대한 설명을 매장 입구에 적어둔 것도 그 일환입니다. 그런데 화제성과 별개로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물론 남다른 스토리텔링으로 모객력과 매출이 일부 증가할 수 있지만, 이렇게 주기적으로 페이스 오프를 한다면 비용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두 달 주기로 56평 매장을 가득 채우는 평균 400여 종의 제품을 선정해 소싱하고 비주얼 연출을 다시 고민하는 인건비만 고려해도 이러한 시스템으로 인한 비용 상승분이 매출 진작 효과를 가볍게 뛰어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명 제품 판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스토리는 이 난제를 어떻게 풀었을까요?



매장에 초대형 스폰서가 붙는 이유

스토리에서 잡지를 닮은 포인트는 비단 주기적으로 바뀌는 테마만이 아닙니다. 광고주가 있는 잡지처럼 스토리에도 핵심 스폰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폰서의 클래스가 남다릅니다. 인텔, 렉서스, 타깃, GE,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맥, 리바이스, 펩시 등 문자 그대로 글로벌 탑클래스 스폰서가 즐비합니다. 협찬 액수도 작게는 7만 5,000달러(약 8,800만 원)에서 연간 협찬으로 많게는 75만 달러(약 8억 8,000만 원)에 이릅니다. 제품 판매가 아니라 스폰서 수익이 스토리의 핵심 수익원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협찬을 받았다고 해서 스폰서 제품만 판매하는 것은 아닙니다. 400여 개의 제품 중 일부일 뿐이고, 그마저도 연간 스폰서의 경우 그 달의 테마에 따라 아예 빠지기도 합니다. 홈 디포처럼 스토리보다 훨씬 많은 자체 매장을 보유한 스폰서도 있고, 시그나 보험처럼 무형의 제품이거나, 인텔처럼 소비재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스토리로부터 예상되는 제품 판매 수익이야 빤할텐데 왜 이 기라성같은 스폰서들이 하나 뿐인 매장에 거금을 내며 협찬을 하려는 것일까요?







보험사 시그나와 함께 진행했던 'Feel good' 테마 매장 모습입니다. ⓒStory


역설적이게도 스토리가 제품을 팔기 위한 매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는 고객에게 브랜드 스토리를 남다른 방식으로 전하는 '미디어'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합니다. 제품 판매와 직결되지 않더라도 노출과 브랜딩을 위해 기업들이 잡지나 TV 등 미디어의 광고 스팟을 사는데, 오프라인 매장이 미디어 역할을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토리는 공간을 지면 삼아 칼럼을 쓰고 광고를 합니다. 관점을 담아 테마를 잡고, 테마와 제품의 성격을 종합해 가장 매력적인 방식으로 제품을 진열하고 공간을 디자인하고 이벤트를 기획하며, 주제와 관련한 파트너 브랜드를 간접적으로 노출해 줍니다. 오프라인에 특화된 방식으로 말입니다.


보험사 시그나(Cigna)가 스폰서한 'Feel good' 테마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보험의 궁극적인 목적이 예방인만큼, 명상, 영양, 운동 등 평소에 기분을 좋게 하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제품과 방식을 소개하는 매장을 꾸렸습니다. VR 명상을 할 수 있는 의자를 체험하게 한다든지, 트램펄린 그룹 운동 세션을 열기도 하며 시그나 브랜드 이미지를 젊고 활기차게 제고합니다. 한편 GE가 파트너로 함께 한 'Making things'라는 테마에서는 제품 판매로는 공간의 25%만 할애했습니다. 그 외 75%는 GE의 레이저 컷터, 3D 프린터 등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을 하는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단위면적당 매출이 아닌 단위면적당 경험을 핵심 성과 지표로 삼는 스토리답습니다. 남성 고객에게는 선글라스나 카드 지갑을, 여성 고객에게는 레베카 밍코프의 백을, 아이들에게는 호박으로 할로윈 가면을 만들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고객층에 맞는 경험치를 제공하는 스토리의 기획력이 돋보였습니다. 이 외에도 제품 출시 전 소비자 반응을 테스트해본달지,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와 상호 작용한달지 등 스토리의 스폰서가 되어줄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백화점의 스토리를 다시 쓰다

스토리는 창업한 지 8년차 되던 2018년, 백화점 메이시스(Macy's)에 인수되었습니다. 과거 메이시스는 2억 1,000만 달러(약 2,462억 원)를 들여 뷰티&스파 체인인 블루머큐리를 인수하고 나서도 이렇다 할 변화를 이뤄내지 못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스토리가 메이시스에 가져올 변화에 대해 회의적이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스토리의 혁신성이 빛이 바래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회의, 걱정과 달리 두달에 한 번 매장을 갈아엎는 스토리의 추진력만큼이나 즉각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미국 전역 36개의 메이시스 매장에 스토리 매장을 동시에 런칭한 것입니다. 36개의 매장은 동일 기간 동안 동일한 테마로 운영됩니다. '리테일 미디어'로서의 발신력이 보다 강화된 것입니다. 메이시스에 대한 신뢰로 스폰서 네트워크가 보다 넓어지고 강력해진 것은 물론입니다.



메이시스에 입점한 후로 로고는 물론, 테마에 따라 변하는 터널을 시그니쳐 비주얼로 삼고 있습니다. ⓒStory


그럼에도 인수 후 첫 한 해는 스토리에게 실험적인 한 해가 될 예정입니다. 매장이 늘어난 만큼 임팩트의 총합은 늘 지언정 개별 매장의 임팩트가 오히려 약해지지는 않을지, 상품 구성이나 공간 연출은 통일하더라도 이벤트는 이 많은 매장에서 어떻게 진행해야 할 지 등 난제들이 새롭게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스토리만의 고민으로 한정하지 않고 백화점 전체적인 경험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을까요? 인수와 함께 전 스토리 파운더 레이첼 쉐츠먼(Rachel Shechtman)이 메이시스의 BEO(Brand Expereince Officer)로 임명된 것이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어쩌면 이태껏 고전을 면치 못하던 백화점의 새로운 스토리를 써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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