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처럼 쌓인 일, 부대끼는 인간관계, 퀭하고 피곤한 얼굴. 바쁜 도시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에요. 만약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고 잠시 도시에서 사라질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시드니에서 시작된 언요크드(Unyoked)는 실제로 이런 숙박 서비스를 제공해요. 누구나 외딴곳에 있는 캐빈을 은신처 삼아 자발적으로 고립될 수 있죠.
요즘 같은 초연결 시대에 누가 제 발로 wifi도 없는 황야로 가냐고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서비스 출시 48시간 만에 몇 개월 치 예약을 마감시키고 수천 명의 대기자 명단까지 만들었으니까요. 2016년 이후 누적 숙박일수만 35,000일에 달해요.
그런데 정작 창업자들은 이건 숙박 서비스업이 아니라고 해요. 주문형 자연 경험을 서비스하는 ‘자연 회사’라고 부르죠. 그 밖에도 출발 전까지 숙박 시설의 위치를 일부러 숨기거나, 음반을 발매하는 등 독특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도시에서의 해방을 꿈꾸던 직장인이 대체 어떤 은신처를 만든 건지 함께 알아볼까요?
언요크드 미리보기
• 일상 탈출을 꿈꾸던 직장인이 만든 도시인 해독제
• #1. 도시와의 단절 - 일부러 외딴 지역에만 설치하는 오두막집
• #2. 일상과의 단절 - 떠나기 전까지 위치를 안 알려주는 숙박 회사
• #3. 소음과의 단절 - 도시의 데시벨을 0으로 만든다
• 단절이 만든 새로운 연결
그림 속 인물이 살아 움직이고, 대화를 나누고, 사건을 일으킨다면 어떨까요? 일시정지된 캔버스 속 인물들의 전후 사정과 자초지종을 알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거예요.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확장됐어요. 스티븐 킹, 마이클 코널리 등 내로라 하는 17명의 작가가 참여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17점을 보고 17개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죠. 그러고는 그 이야기들을 엮어 단편 소설집 <빛 혹은 그림자>를 출간했어요.
ⓒ문학동네
캔버스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은 각각 스릴러, 드라마, 범죄소설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났어요. 이 독특한 소설집을 기획하고 동료 작가들을 모은 건 작가인 ‘로런스 블록‘이에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사랑한 작가들은 흔쾌히 그의 기획에 동참하기로 하죠. 지극히 작가다운 방식으로 팬심을 표출한 거예요.
하지만 단순히 팬심만으로 소설이 탄생한 건 아니에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는 작가들에게 반향을 일으키는 특별함이 있었어요. 캔버스에는 호퍼가 포착한 특정 순간만 담겨있었지만, 그걸 본 사람들에게 앞뒤 맥락이 궁금해지게 하는 마력이 있었죠. 작가들은 그걸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필력이 있는 거고요. 덕분에 그림 속 주인공들은 가뿐히 캔버스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참고로 이 책에 실린 로런스 블록의 소설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은 2017년 에드거상(최고 단편 부문)을 수상했을 정도로 작품성이 높았어요. 호퍼의 1927년 작 ‘자동판매기 식당’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었죠.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끊임없이 오마주되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은 시대와 공명하는 힘이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호퍼는 1882년 뉴욕에서 태어났는데요.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됐던 20세기 초 중반에 활동하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면을 그렸어요. 도시가 현대화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동안 사람들은 점점 고립되고 단절됐죠. 눈부시게 빛나는 도시에서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봐도 이질적이지 않아요. 연결의 수단은 촘촘하게 늘어났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더 깊은 고독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100여년이라는 시차가 있어도 여전히 ‘고독과 단절’이라는 공통분모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과 현재가 연결될 수 있는 거예요.
만약 에드워드 호퍼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이번엔 도시에서 무엇을 포착할까요? 아마 생전에 그렸던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림 속 주인공들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화려한 도시 속에서 점점 지쳐가는 도시인의 무표정 같은 것들은 여전하니까요. 만약 그가 시드니를 여행한다면 어느 숲 속에서 고독을 품고 있는 오두막을 캔버스에 그렸을지도 몰라요. 온통 나무로 둘러싸인 외딴 장소의 작은 오두막. 이 곳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시드니 사람들은 어쩌다 이 깊은 숲 속까지 들어갔을까요?
ⓒUnyo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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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탈출을 꿈꾸던 직장인이 만든 도시인 해독제
사진 속 캐빈(Cabin)은 호주 시드니의 스타트업 언요크드(Unyoked)가 만든 오두막집이에요. 언요크드는 카메론과 크리스 형제가 창업했는데요. 사람들이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요. 2016년에 사업을 시작한 후로 호주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영국에서 약 75곳의 로케이션을 제공하고 있죠. 이 독립형 캐빈은 콘크리트나 전기, 상하수도 없이도 설치가 가능한 오프그리드(off-grid)형이에요.
*오프그리드 : 외부에서 전기나 가스 등의 에너지를 제공받지 않고 직접 에너지를 생산해 사용하는 생활 방식
그런데 언요크드의 캐빈은 캠핑장이나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시설과는 다른 모습이에요.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자연 환경에 위치해 있는 점이나 마치 고립된 듯한 모습을 보면 은신처에 가까워 보이죠. 실제로 창업자 형제는 첫번째 캐빈을 피난처 용도로 지었어요. 각각 은행의 전략 부서와 리테일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던 두 사람은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죠. 아웃도어에서 캠핑과 하이킹을 하며 자란 형제는 회사에서도 늘 모니터 한 구석에 오두막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열어둘 정도로 일상탈출 욕구가 컸는데요. 그러다 직접 숙박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어요. 누구나 도시에서 로그아웃한 후 자발적으로 고립될 수 있는 은신처 같은 공간을 지향했죠. 이름은 ‘속박되지 않은, 해방된’이라는 뜻의 언요크드로 지었고요.
ⓒBackyardoperasydney
ⓒUnyo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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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간의 준비 후 베일을 벗은 언요크드는 출시 후 48시간도 지나지 않아 몇 개월치 예약이 전부 마감됐어요. 심지어 수천 명의 대기자 명단까지 생겼죠. 카메론과 크리스는 이때 깨닫게 됐어요. 도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 속으로 숨어들어가고 싶어하는 건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걸요.
단숨에 도시 생활의 해독제로 자리잡은 언요크드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에 100개 이상의 캐빈을 운영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어요. 누적 숙박일수만 35,000일에 달할 뿐 아니라 최근에는 유럽으로의 확장을 위해 2,800만 달러(한화 약 364억) 상당의 투자까지 받았어요. 숙박 서비스계의 한 획을 그었으니 자부심을 가질 법한데, 정작 창업자 형제는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단순 숙박업으로 보지 않아요. 그보다 스스로를 ’서비스로서의 자연(Nature-as-a-service)’이자 ‘주문형 자연 경험’이라고 말하죠.
24시간 연결되는 게 당연해진 시대에 도시에서 사라질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한번쯤 꿈꿔본 적 있다면 언요크드가 만든 고립과 단절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자연 속 은신처 안에 언요크드가 준비해둔 게 많으니까요.
#1. 도시와의 단절 - 일부러 외딴 지역에만 설치하는 오두막집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면 필수적으로 고려하는 것들이 있어요. 숙박 시설의 접근성과 수익성, 관리의 용이성이나 사업 확장성 같은 것들이에요. 이런 요인들을 고려하면 도심에 숙박 시설을 마련하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죠. 그런데 언요크드의 창업자 형제는 굳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장소로 찾아가 캐빈을 지어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머물 공간이 아니라 도시 생활의 해독제이기 때문이에요. 카메론과 크리스는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준다고 생각했어요. 단순 추정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도 있었죠. 자연스럽게 언요크드의 캐빈은 자연의 효과가 가장 극대화되는 곳에 있어야 했어요. 자연의 혜택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일단 사람으로 가득찬 생활권에서 분리되어야 했죠.
두 사람이 창업에 뛰어들 때 참고할 수 있을만한 유사한 비즈니스는 없었어요. 한적한 숲 속에서 묵을 수 있는 오두막 형태의 독립형 숙소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죠. 그래서 카메론과 크리스는 여러 곳에서 얻은 조각 조각의 인사이트를 조합해서 독특한 숙박 시설을 구상했어요. 1980년대부터 치료법의 일환으로 사용된 일본의 신린요쿠(しんりんよく, 삼림욕), 로컬 문화가 담긴 복합시설을 지향하는 에이스 호텔, 미니멀리즘에 기반한 무인양품의 오두막이 비즈니스의 영감이 되어줬어요.
ⓒmuji
결국 두 사람은 이 영감의 조각들을 바탕으로 대자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위치에 캐빈을 설치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그래서 일단 캐빈이 들어갈 만한 장소를 하나 하나 주의깊게 고르기 시작했죠. 그들은 장소를 선별할 때는 사전에 세운 명확한 기준을 따랐어요. 각 캐빈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나 소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해요. 야생 동물이 있어야 하고요. 그래서 선정한 곳에서는 누구도 만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수 있죠.예를 들어 Miguel이라는 로케이션은 처음으로 캐빈을 설치한 장소로 400년 된 열대우림 속에 폭포와 캥거루가 있는 300에이커 크기의 부지예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까다롭게 장소 선정을 할까요? 언요크드는 고객 경험의 핵심 부분은 바로 캐빈이 위치한 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간과 공을 들여 장소를 찾고, 그후에는 사유지를 대중이 사용할 수 있도록 토지 소유자와 협상하고 협력하죠. 토지 소유자가 언요크드의 서비스를 통해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면서요.
ⓒUnyo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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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언요크드가 선택한 로케이션에는 또다른 특징이 있어요. 캐빈이 세상의 끝자락에 위치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도심으로부터 2시간 내외의 거리에 있다는 거예요. ‘도시로부터 100만 마일은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도착까지 2시간이 채 안 걸리는 곳’. 모순처럼 보이지만 언요크드는 기어코 적합한 장소를 찾아내요.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도시를 떠나 자연 한가운데로 빠르게, 효과적으로 들어가도록 돕기 위해서죠. 카메론과 크리스는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 게 마치 헬스장에 드나드는 것 같은 습관(Nature habit)이 되길 바랐어요.
이렇게 한적한 곳에 설치한 캐빈은 어떤 모습일까요? 일단 시설부터 살펴볼게요. 언요크드의 캐빈은 친환경을 지향해요.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재료로 만들 뿐만 아니라 태양열과 장작을 활용하고, 물은 빗물이나 천연수를 사용하죠. 바퀴가 달려있어 설치와 이동도 용이해요. 전파의 경우 휴대전화 사용은 가능하지만 로케이션에 따라 상태가 달라져요. 신호가 완전히 단절된 로케이션은 미리 긴급용 유선 전화를 준비해 두죠.
도시 생활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외딴 캐빈에서 보내는 시간이 불편할 거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실제로 언요크드가 지향하는 것도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의 야생 경험이죠. 하지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다는 게 꼭 편리함이나 쾌적함에서도 멀어지는 걸 뜻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언요크드는 사람들이 자연 속 은신처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는 인테리어를 제공해요. 모든 캐빈에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추구하는 온라인 가구업체 코알라(Koala)의 메모리폼 베개와 매트리스가 설치되어 있어요. 침구는 천연 섬유를 사용하는 인베드(In Bed)로 구성했고요. 흔히 떠올리는 시골 오두막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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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9미터, 세로 3미터 규격의 작은 오두막집에는 부엌과 욕실, 화장실도 있어요. 캐빈 근처에는 장작을 피울 수 있는 파이어 핏(fire pit)도 설치했죠. 캐빈은 언요크드에서 직접 설계하되 개별 지역의 기후에 따라 조금씩 변형시켜요. 그런데 설계에 있어 의외인 점이 있어요. 바로 모든 캐빈의 모양이 다 똑같다는 거죠. 대부분의 기업과 브랜드에서 각 지역의 속성이나 특징을 반영해서 공간 인테리어를 달리하는데, 언요크드는 왜 캐빈의 형태를 통일시켰을까요?
창업자 형제는 이건 의도된 설계였다고 설명해요. 언요크드의 진짜 주인공은 캐빈이 아니라 자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각 로케이션별로 달라지는 건 창 밖으로 보이는 자연의 모습 뿐이에요. 사람들이 어느 로케이션을 가든 캐빈 그 자체보다는 통창 바깥으로 보이는 자연의 모습에 집중하기를 바랐던 거예요.
“서비스의 목적은 대자연 속에서 보내는 것. 즉, 캐빈은 어디까지나 언요크드 체험의 일부임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어요.”
- 언요크드 창업자 Chameron, 와이어드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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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캐빈을 선택할 때 기준이 되는 것도 캐빈의 인테리어나 디자인이 아니라 로케이션의 자연적 특성이에요.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려면 먼저 홈페이지에서 묻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데요. 살고 있는 국가, 가까운 도시, 자연에서 얻고 싶은 것, 선호하는 조건, 날짜 등을 선택하면 언요크드의 추천지가 화면에 떠요. 해당 로케이션에서 얼마만큼의 창의성과 명료함, 침착함을 얻을 수 있는지를 픽토그램으로 표현했죠. 더불어 각 로케이션이 제공하는 물품과 고객들이 지참해야 하는 물건도 표기했어요. 그런데 흥미로운 당부도 있어요. 언요크드는 3가지는 꼭 두고 오라고 강조해요. 스프레드 시트, 불안감, 바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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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같은 숙박 서비스와 언요크드의 결정적인 차이는 고객들이 찾아오는 동기와 위치적 특성이에요. 사람들이 자연 속 오두막집까지 찾아오는 건 도시에서 한도 초과된 스트레스를 벗어 던지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죠. 이들에게 필요한 건 뜻밖의 이벤트나 새로운 만남이 아니라 고립과 은둔이에요. 언요크드는 도시의 반대편에,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옵션인 자연이 있다는 걸 직접 보여주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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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마다 원하는 자연의 레벨은 다를 수 있어요. 그래서 언요크드는 사업 초기부터 이를 구분하기 위한 등급 시스템(Adventure Level)을 자체적으로 마련했어요. 흔히 식당 메뉴판에서 볼 수 있는 ‘매운 맛 표기법’에서 착안한 등급이에요. 사람들이 숙박하는 동안 경험할 수 있는 자연 속 모험의 강도를 매운 맛의 등급으로 나타냈죠. 찾아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 야생 동물을 볼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도심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등급을 4가지(Mild, Medium, Spicy, Extra Spicy)로 구분한 거예요. 가장 매운 맛 로케이션을 선택하면 마치 세상에서 로그아웃한 듯한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2. 일상과의 단절 - 떠나기 전까지 위치를 안 알려주는 숙박 회사
온라인으로 예약을 마치고 나면 떠날 일만 남았어요. 도시와의 연결은 이제부터 끊긴다는 걸 예고라도 하려는 걸까요?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모험은 시작돼요. 보통 숙박업체에서 예약을 다 마치면 정확한 위치와 오는 법, 간략한 지도를 보내주기 마련이에요. 혹은 찾으면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언요크드는 출발 이틀 전까지 선택한 집의 정확한 주소를 비밀로 유지해요. 숙박의 경험이 모험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죠. 카메론과 크리스는 사람들이 자연 속을 걷다가 갑자기 캐빈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로케이션으로 가는 과정부터 모험의 일부로 설계한 거예요.
설령 로케이션까지 잘 찾아갔다고 해도, 여전히 한 가지 걱정은 남아있어요. 자연 한복판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는 거죠. 물론 경험이 풍부하거나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에 익숙한 경력자라면 문제 없을 거예요. 하지만 언요크드를 찾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시 생활에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이죠. ‘와이파이도 없는 오두막 안에서 시간 잘 보내는 법’을 알 리가 만무해요. 이를 모를 리 없는 언요크드는 자연 속에서 할 수 있는 아날로그 액티비티를 잔뜩 마련해 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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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신호조차 희미한 로케이션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온라인에 접속할 수 없어요. 이 곳에는 의미없이 새로고침하던 인스타그램도, 시청하지는 않지만 백색소음 삼아 틀어두던 넷플릭스도 없죠. 하지만 와이파이가 꺼지면 그때부터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어요. 언요크드는 작은 오두막집 안을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었던 세상으로 복원시켜요. 떠올려 보면 그 시절에도 읽을 것, 들을 것, 체험할 것은 넘쳐났어요. 도시화가 진행되고 기술이 발달하며 우리가 떠나왔을 뿐이죠.
고전적인 콘텐츠부터 시작할까요? 언요크드는 캐빈 안에 세계적인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Penguin-Random House)의 시리즈 ‘펭귄 클래식’ 책들을 구비해 뒀어요. 이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세계 문학 수업 교재로 채택될 정도로 고전문학의 대명사예요. 시리즈 중에서도 모험과 관련된 주제의 책들을 큐레이션해서 고객들의 모험심을 자극해요. 휴대폰 어플로 음악을 듣느라 언제 마지막으로 사용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카세트 플레이어와 라디오도 마련해 뒀어요. 사람들은 새삼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음악을 듣고 콘텐츠를 읽었다는 걸 떠올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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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차곡 차곡 누적된 신체적인 긴장감을 단번에 풀어주는 장치들도 있어요. 나무가 내뿜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요가 매트를 준비하고, 야외에는 욕조를 설치했어요. 밤에는 직접 피운 장작불에 구워먹을 수 있도록 스모어 세트도 넣어뒀고요. 언요크드가 준비한 메뉴판에 딱 하나, ‘기술’이라는 단어는 빠져있었지만 디지털 세상 바깥에도 할 수 있는 활동들은 쌓여 있어요. 익숙했던 도시 생활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신체 감각은 살아나고, 마음의 안정감과 행복감은 늘어나요. 언요크드가 미리 알고 고객들에게 보여주려던 자연의 과학적인 효과죠.
언요크드는 고객들이 익숙한 도시 생활을 떠나 캐빈에 도착하면 삶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출발하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스위치를 끄고 쉴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경험을 디자인했죠. 캐빈에 있는 통창의 크기, 주차장에서부터 캐빈까지 걸어오는 길, 직접 커피콩을 갈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 잠든 동안의 경험까지 세심하게 설계했어요. 목표는 딱 하나. 자연을 제대로 느끼도록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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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외부의 시그널을 꺼버린 채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현대판 ‘월든’같은 경험은 도시에 사는 모두에게 생소해요. 언요크드를 이미 경험해본 사람도, 아닌 사람도 ‘다른 사람은 자연 속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라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언요크드는 공식 홈페이지에 온라인 저널을 발행해서 사람들이 캐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것을 느끼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사연을 공유해요. 런던에 사는 올리의 체험기를 만나볼게요.
런던에서 TV 오디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올리(Oli Waton)는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으로 번아웃에 시달려요. 복잡한 메일을 쓸 때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참는 이메일 무호흡증까지 겪죠. 양치를 할 때조차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언요크드의 캐빈을 예약해요. 몇 년만에 라디오와 카세트 테이프를 듣고 장작을 피워둔 다음, 정적 속에 잠들죠. 한낮에 일어나 펼쳐 본 가이드북 안에는 ‘가서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찾아서 안아주세요’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어요. 셀룰러 데이터와 와이파이가 사라진 탓에 세상과의 연결은 끊어졌지만 오히려 스스로와 깊게 연결된 기분을 느껴요. 물론 이 기분은 체크아웃 시간까지만 유효했지만, 곧 다시 캐빈으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도시로 갈 수 있었어요. 활력을 100% 충전한 상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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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저널 속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자신의 상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머물던 익숙한 장소 바깥으로 나온 순간이에요. 오토 파일럿 기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정신없이 사는 도시인은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똑바로 볼 수 없어요. 언요크드는 안타깝게도 아직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으로 일명 ‘언요크드 메디컬 클리닉’을 운영해요. 현대인이라면 가지고 있을 법한 증상에 따라 적정 자연 복용량을 처방하죠. 예를 들어 유령 진동 증후군을 겪는 사람에게는 로케이션에서의 하루를, 끝없는 해야 할 일 목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이틀을 권해요. 멈추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거예요. 잠시 그 일상과는 단절이 필요하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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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음과의 단절 - 도시의 데시벨을 0으로 만든다
언요크드 덕분에 도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있어요. 외부의 소음이 사라지자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일단 도시로부터 멀어지자 사람들의 목소리, 차 소리 등이 전부 없어졌어요.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아 온라인 속 뉴스와 각종 콘텐츠에도 거리를 두게 됐고요. 세상의 소리가 전부 음소거 되면 피로도가 확연히 줄어들어요. 덕분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을 수 있죠. 사람들은 이렇게 비축한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데 사용해요.
언요크드는 자연 속으로의 침잠이 어떤 과학적인 효과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자연 환경에 몰입하고 기술과 단절된 시간을 보내면 창의성이 향상되고 문제 해결 능력이 최대 50%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죠. 그래서 처음 설계할 때부터 누구나 캐빈에서 에너지를 회복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의도했어요. 창의력 기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세련된 책상과 콤팩트한 작업 공간도 잊지 않았죠.
창의성을 비롯해 자연이 가져다주는 효능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작가를 대상으로 한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운영했어요.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은 6개월 간 정기적으로 캐빈에서 조건없이 숙박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죠. 이렇게 탄생한 수상자의 작품들은 앤솔로지 형태로 출간했어요.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요크드의 효능을 실감할 수 있도록요. 이 프로그램은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면 내면 세계로 더 빨리 접속할 수 있다는 하나의 실증 실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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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음이 사라지면 개인 내면의 소리뿐만 아니라 자연의 주파수도 더 잘 들을 수 있어요. 스스로를 ‘자연 회사(nature company)’라 부르는 언요크드는 자연의 소리를 담은 음반도 발표했어요.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음악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필드 레코딩(Field Recordings)이에요. 7명의 뮤지션에게 녹음기를 맡기고 호주 각지의 언요크드 로케이션으로 보냈죠. 이 아티스트들은 캐빈에서 시간을 보내며 야생에서 포착한 소리를 바탕으로 음악 트랙을 만들었어요. 도시와는 달리 자연에서는 나무, 새, 강, 바람, 매미, 비 등 야생의 리듬과 소리를 분명히 포착할 수 있었어요. 언요크드는 이 트랙들을 모아 앨범 <필드 레코딩 Vol 1>을 발매해요. 그리고 이 앨범을 카세트 테이프 버전으로 제작해서 누구나 캐빈에서 들을 수 있도록 했어요. 자연에서 시작된 음악을 듣고 모두가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요.
ⓒUnyoked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두 번째 앨범도 기획했어요. 이번에는 몰입형 공간 음향(Spatial audio)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어요. 공간 음향은 현실감과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곳에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음악을 스트리밍하는 것을 뜻해요. 음악을 듣는 순간 누구나 앉은 자리에서 자연으로 떠날 수 있도록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든 거예요. 이번에도 6명의 아티스트들이 캐빈에서 시간을 보내며 호주의 자연에서 음악 작업에 돌입했어요. 뮤지션으로서 진짜 음악을 만들기보다 콘텐츠 생산에 급급했던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만든 음악은 베테랑 프로듀서의 손을 통해 360도 사운드로 구현됐고, 애플 뮤직을 통해 공개됐어요.
고품질의 자연 경험을 제공하는 언요크드가 이처럼 작가나 뮤지션을 지속적으로 캐빈에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카메론과 크리스는 자연에 있을 때야말로 인간의 창의성이 극대화되는데, 사람들이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전문 뮤지션들만 해도 주로 어두운 녹음 부스와 리허설 현장에서 작업하니까요. 직접 프로젝트를 통해 아티스트들을 자연으로 보내고 지켜본 결과, 그들은 이전과는 달리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었어요. 자연과 인간 내면, 창의성 간의 관계를 실제로 증명한 셈이죠.
“그들이 자연을 경험하는 방식과 자연이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자연의 진정한 잠재력에 대해 배울 수 있어요.”
- 언요크드 공식 홈페이지 중
자연의 소리와 내면의 소리가 만나면 창의력이 극대화된다는 걸 확인한 언요크드는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요.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한 카세트 테이프와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앤솔로지 서적은 좋은 입구가 되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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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인 소음이 제거되면 삶의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돼요.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넘치는 세상에서 지쳐버린 사람들도 회복의 순간을 맞이하죠. 과거에는 대다수의 문제가 결핍에서 비롯됐지만, 지금은 과잉이 만드는 문제들이 사람들을 괴롭혀요. 디지털 디톡스 열풍, 미니멀 라이프, 마음 챙김 등이 사랑받는 이유예요. 언요크드는 자연에서의 시간들이 몸과 마음에 끼치는 연구에도 적극적이에요. 과학자문위원회를 만들거나 기업,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독자적인 연구도 실시하고 있죠.
카메론과 크리스는 황야에서 보내는 시간을 ‘명상의 확장’이라고 봐요.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다음 시대의 명상(The next meditation)’이라고도 표현하죠. 과잉 연결된 상태에서 벗어나면 문제의 전후 관계나 우선 순위가 선명해져요. 외부 소음을 차단하면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머무를 일이 없어요. 기한을 넘겨버린 걱정이나 앞선 기우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게 되고요. 마치 보지도 않는 인터넷 창을 수십 개씩 틀어놨다가 전부 꺼버리는 것과 비슷해요. 약 20,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일주일 내내 자연에서 최소 2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지속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건강과 웰빙을 보고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언요크드가 도시인의 각종 문제에 자연을 처방하는 이유죠. 문제의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할 지 몰라도, 자연은 언제나 가장 심플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요.
단절이 만든 새로운 연결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에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자는 동안 빗소리를 녹음한 ASMR 오디오를 틀어두고, 자연 태양광과 유사하게 만든 인공 램프로 기상해요. 진짜 바람을 쐬거나 모험을 떠나기 보단 TV 스크린으로 장작타는 영상을 보고, 식물 대신 조화로 사무실을 꾸며요. 자연을 필요로 하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죠.
언요크드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도시에서 구하지 못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접속 창구예요. 동시에 도시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언요크드는 눈에 띄지 않는 깊고 외딴 곳에서도 오히려 현대인의 이목을 끌었어요. 그렇다면 언요크드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요? 창업자 형제는 여행이라는 영역에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전까지는 여행을 단절, 은둔, 고립, 피난처 등의 단어와 결부시키기 어려웠을테니까요.
이런 단어들은 보통 신문의 사회면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아요. 초연결 사회에서 접속이 끊긴다는 건 뒤처지거나 낙오하는 것을 의미하죠. 하지만 언요크드에서 말하는 단절과 고립에는 긍정적인 바이브가 담겨 있어요. 도시와의 단절 덕분에 속력을 낮추고 삶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정리할 수 있죠. 자연 속에서의 고립은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요. 그래서 언요크드의 전략인 단절과 은둔은 언제나 새로운 연결을 향한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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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요크드가 마련한 자연 공간 안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창의력을 회복해요. 이는 결과적으로 다시 도시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죠. 결과적으로 언요크드는 도시와의 영원한 단절을 선언한 게 아니라, 도시와 새롭게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사람들은 작은 캐빈 안에서 다시 한번 기대치를 재설정하고, 자세를 고쳐 앉고, 24시간의 공회전 끝에 과열된 엔진을 시원하게 식혀요. 그런 의미에서 언요크드는 숙박 서비스업이라기보다 삶의 방식에 가깝죠. 언요크드를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더 이상 치열한 도시 생활이 두렵지 않을 거예요. 언제라도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고 돌아갈 자연 속 은신처가 있으니까요.
Reference
• Something Comes From Nothing: Unyokedという荒野の新しい選択肢, Wired, SAKI KUSAFU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