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24년 iF 디자인 어워드 건축 분야는 국내 건축가들의 활약이 돋보였어요. 그 중, 일구구공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는 총 두 개의 본상을 수상했죠.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들안예술마을 창작소’와 서울 황학동에 있는 ‘옥수수집’이 그 주인공이에요.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두 건축물. 무엇이 다를까요? 얼핏 보면 다른 건물들과 달라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달라 보이지 않는’, 그 특징이 바로 일구구공만의 특별한 건축 철학이었어요. 일구구공의 윤근주 소장은 ‘도시의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건축’을 추구하거든요.
컨셉이 있는 부티크 호텔부터, 마을과 관광객들을 연결하는 전망 다리까지. 일구구공이 만든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맥락 속 건축’이란 무엇인지 자세히 들어봤어요.
일구구공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미리보기
• #1. 10년의 수련 끝에, 내 것을 찾는 과정
• #2. 의도치 않은 곳에서 찾은 일구구공만의 특별함 - 소설호텔
• #3. 풍경과 관계를 맺는 건축 - 화암마을 소금강 전망브릿지
• #4. 동네의 유형을 가져오는 건축 - 황학동 옥수수집
• 건축은 사회를 이해하는 안경
대구 수성구의 들안길은 맛집 거리로 유명합니다. 맛집들이 즐비한 동네 한 쪽에 들안예술마을이 있어요. 수성못에 맞닿은 이곳. 청년공방, 문화교육센터 예술터 같은 예술 공간들이 모여 있어, 대구의 로컬 예술가들이 들안예술마을에서 작업도 하고, 커뮤니티도 활동도 하죠.
그 중, 들안예술마을 창작소는 최근 놀라운 성과를 보였어요. 세계 3대 디자인 상 중 하나인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 2024에서 공공건축 부문 본상을 수상했거든요. iF 디자인 어워드는 들안예술마을 창작소가 신축 건물이 아니라, 기존의 주거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점을 높게 샀어요.
원래 들안예술마을 창작소 건물은 원룸 빌라였어요. 빌라를 개축해 지었죠. 그래서 언뜻 보면 주변의 빌라들과 큰 차이가 없어요. 다만, 주황색으로 칠한 1층 필로티 공간, 건물 전면을 감싸고 있는 알루미늄 메시 등으로 존재감을 뽐내죠.
이 공간은 대구의 로컬 예술가들이 사용하는데요. 일부를 그들의 공방으로 쓰지만, 지역 주민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공 공간이기도 해요.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층이 수직으로 뚫려 있어요. 지역 주민들과 작가들이 허물없이 소통하기를 의도한 거예요.
들안예술마을 창작소를 새롭게 디자인한 주인공은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믈라덴 야드리치(Mladen Jadric)와 윤근주 소장의 일구구공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주)(이하 일구구공)예요. 믈라덴 야드리치가 건물 외부를, 일구구공이 내부를 담당했죠.
일구구공은 2024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들안예술마을 창작소 외에도 또 하나의 본상을 수상했어요. 황학동에 있는 ‘옥수수집’이에요. 옥수수집이라는 이름부터 눈길을 끌죠. 아니,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하나의 작품을 수상하기도 어려운데 한 해에 2개의 상을 수상하다니요. 비결이 궁금해 직접 윤근주 소장을 만나, 옥수수집 이야기와 우리가 잘 모르던 건축의 세계를 들어봤어요.
ⓒ남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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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년의 수련 끝에, 내 것을 찾는 과정
인생을 살아가면서 건축사를 만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일반인은 건물을 지을 일이 없기도 하지만, 실제로 건축사의 수가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건축사가 되기 위해선 오랜 공부와, 깊은 경험이 있어야 하죠.
건축사법에 따라, 건축사가 되기 위해서는 5년제 건축학과 혹은 이와 동등한 학위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그 뒤, 건축사사무소에서 3년 이상의 실무 경력이 있어야 건축사자격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죠. 시험 자격을 갖추는 데에만 총 8년이 걸리는 거예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윤근주 소장에 따르면, 시험 합격률은 5%~12%에 그쳐요.
건축사자격시험에 합격하고, 건축사자격 등록을 마치면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 건축 업계에서는 흔히 “수련을 마치고 독립한다”고 하죠. 윤근주 소장은 이 과정을 거쳐 일구구공을 개설하는 데에만 10년이 걸렸습니다. 1999년 처음 커리어를 시작해, 2010년에 독립했죠.
그 긴 여정의 시작.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건축가가 멋있어 보인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 한 마디였죠. 그 말을 따라 어린 시절의 윤근주 소장 역시 건축가를 동경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기술 수업을 열심히 공부했던 학창시절을 거쳐, 건축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교 학부 시절 윤 소장은 ‘도라이 같은 후배’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독특함으로 선배들의 주목을 받고, 각종 공모전에도 참여할 수 있었죠. 그는 뭐가 달랐던 걸까요?
“드로잉 실력이야 저는 잘 그리는 축에도 못 꼈어요. 다만, 저는 ‘남다른 드로잉’이 가능한 사람이란 걸 그때 알았죠. 가령, 당시에 전시회를 하는데 잘 짜여진 건축 드로잉들 사이에 제 작품이 유독 튀었어요. 다 무너져가는 아파트 뒤로 나무들이 자라나고 있는 그림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그 때는 아파트가 다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파트는 1, 2차 세계대전 때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영 다른 의미가 되었으니까요.”
이처럼 윤 소장은 학부 시절부터 설계적인 건축 이전에, 개념적인 건축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건축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죠. 학교 장롱 뒤에 침대를 만들어놓고, 몰래 살기도 할 정도였어요.
열정적인 건축 학도는 졸업 이후 신도리코의 건물들, 파주출판도시 설계, 임진각 평화누리 등으로 유명한 민현식 건축가의 기오헌 건축사사무소에서 수련을 했습니다. 무려 10년 동안 일하면서, 그 곳에서의 가장 큰 배움은 ‘건축의 시작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란 사실이었죠.
“민현식 선생님은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늘 편지를 쓰셨어요. 이 기둥은 왜 이래야 하는지, 이 건물의 볼륨은 어떻고 또 어떤 이유에서 그런지. 건축사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계셨던 거예요. 건축사는 개념을 정하는 사람이고, 그 개념을 모든 요소에 스며들게끔 만드는 사람이라고 보셨죠. 그러려면 건축의 의미가 모든 스태프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니, 직접 긴 글을 쓰셨던 거예요.”
윤 소장 역시 그때 배운 방법을 지금도 활용합니다. 공모전에 참여할 때, 기획안을 만들 때 늘 공간 요소 하나하나 제목과 해설 글을 쓰죠. 모든 건축에서 지향점을 세우고, 흔들리지 않기 위한 방법이에요.
ⓒ시티호퍼스
#2. 의도치 않은 곳에서 찾은 일구구공만의 특별함 - 소설호텔
그렇게 10년을 배우니, 잠들어 있던 ‘내 것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오랜 파트너인 황정환 소장과 함께 일구구공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를 세우며 독립합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처음 2~3년은 일이 거의 없었어요. 문제는 ‘나만의 것’이 없었던 거예요. 아무도 나를 모르고, 굳이 우리 사무소를 찾아올 명분이 없었죠. 저는 독립을 한 이후에 일구구공만의 차별점을 찾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인의 소개를 통해 의뢰를 받아 설계한 건물이 서초동의 소설호텔입니다. 2012년에 설계를 시작해, 2014년 완공됐죠. 소설호텔은 ‘일구구공만의 특별함’을 고민하기 시작한 결과물입니다.
일구구공은 클라이언트로부터 “경험해보지 못한 부티크 호텔”을 의뢰 받았어요. 당시, 부티크 호텔은 모텔과 다를 바 없는 시설로 여겨졌죠. 그래서 일구구공은 공간에 시각적인 컨셉을 만들어 개성을 덧입히기로 했어요. 소설호텔에는 12개의 룸타입이 있는데요. 각각의 방을 독특하게 꾸몄어요. 가령, 어떤 방은 직사각형 큐브가 방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어떤 방은 거울을 통해 거울 속 공간과 현실의 공간 사이의 괴리를 자아내는 식이에요.
ⓒ남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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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구구공만의 차별점으로 독특한 디자인의 컨셉을 내세운 거죠. 그래서 소설호텔의 방 하나하나가 특별했지만 정작 호텔을 다 짓고 나서 윤근주 소장의 마음에 오래 남은 공간은 건물 뒷편의 주차장이었어요. 소설호텔을 지으면서 바로 옆 모텔과의 틈새 공간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로 만들었는데요. 그러자 건물 뒷편의 주차장은 사람들이 오며가며 들를 수 있는 쉼터가 됐죠.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윤 소장은 일구구공이 추구해야할 특별함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됩니다. 독특한 디자인도 좋지만 ‘환경과 맥락을 가지는 건축’을 지향하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죠.
#3. 풍경과 관계를 맺는 건축 - 화암마을 소금강 전망브릿지
소설호텔에서 자각했듯, 윤근주 소장이 설계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환경과의 소통’입니다. 윤 소장의 언어로는 “풍경과 관계를 맺는다”고 하죠.
그렇다면 환경과 맥락을 나누고, 풍경과 관계를 맺는 건축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요? 윤 소장은 “작지만 소중한 결과물”이라며, 화암마을의 소금강 전망브릿지를 보여줬습니다. 폭 2m, 길이 18m 규모의 짧다면 짧은 다리. 이 다리가 ‘건축의 풍경과 관계 맺기’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면서요.
소금강 전망브릿지는 문체부에서 주관하는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일환이었습니다. 강원도 정선의 화암마을. 금광석을 체취했던 화암동굴, 소금강을 마주보고 숲속에 둘러싸인 캠핑장 등. 아름다운 풍경으로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죠.
지자체는 화암마을의 경관을 살리기 위해 여러 환경 사업을 이어왔습니다. 일구구공이 프로젝트를 맡았던 2013년 당시, 이미 마을 벽화 사업을 두 차례 진행한 뒤였죠. 이번에는 벽화가 아닌 다른 사업을 해보자는 의견으로, 소금강 캠핑장 입구에 전망대를 세우자고 합니다.
전망대를 생각한 이유는 마을 사람들의 불편 때문이었어요. 관광객들이 캠핑장에서 쓰레기나 버리고 가지, 마을 안으로 들어와서 라면 하나 안 사간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지역 상권에는 도움이 안 됐던 거죠. 전망대에 올라가서 마을을 한 번이라도 더 보면, 마을 경제에도 보탬이 되리라는 것이 화암마을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런데 일구구공이 제안한 것은 높은 곳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아닌, 다리였어요.
“현장을 둘러보고 ‘세우는’ 전망대를 만들지는 말자고 결심했어요. 주변의 풍경을 보세요. 여름에는 푸른 초록 속에, 겨울에는 눈 덮인 설원 속에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홀로 세워져 있는 전망대는 오히려 풍경을 방해한다고 생각했어요.
풍경은 지키면서, 마을 사람들의 의견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높이 서서 풍경을 멀리 바라보는 대신, 풍경에 가까이 다가가는 다리를 제안했습니다.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브릿지죠.”
다리를 걷다 보면 소금강과 그림바위산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분명 평평한 길을 걸었는데, 다리 끝에서는 어느 새 나무 높이와 같이 높아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죠. 풍경을 감상한 뒤엔 모퉁이를 돌아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경사가 있어요. 일부러 약간의 내리막길로 만들어 가속도를 붙게 한 거예요. ‘얼른 마을길로 돌아가라’는 마음에서요. 실제로 돌아가는 길 끝에는 화암마을로로 들어가는 폭 10m, 길이 200m의 진입도로가 보입니다.
전망브릿지를 걷는 사람은 근경부터 원경까지의 모든 시야를 경험하게 됩니다. 다리 옆에 자신과 같은 키로 가까이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는 근경, 그 뒤에 펼쳐지는 그림바위산의 중경, 그리고 마을로 들어가는 원경까지.
“소금강 전망브릿지는 형태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닙니다. 개념을 형태화 결과물이죠. 소금강의 풍경, 마을 사람들과 관광객의 관계, 다리를 이용하는 사람의 체험. 이 모든 환경적 맥락이 관계를 맺은 겁니다. 이 개념이 다리의 모양을 흉내냈을 뿐, 제가 한 일은 환경의 맥락을 형태적으로 다듬어낸 거예요.”
ⓒ고영민
ⓒ일구구공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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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네의 유형을 들여오는 건축 - 황학동 옥수수집
일구구공의 건축물은 이제 풍경과 관계 맺는 데에서 나아가, 동네의 유형을 가져와 건축물 디자인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대화를 나누는 동안, 윤근주 소장은 ‘유형화’에 대해 특히 자주 언급했습니다.
“건물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유한 것들이 있어요. 이러한 고유성이 뭉치면 유형화가 돼요. 예를 들면 ‘이 동네의 건물들은 빨간 벽돌로 되어 있네’.와 같은 말처럼요. 그땐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언어가 되죠. 이게 일구구공이 하고 싶은 유형화의 방식이에요.”
윤 소장은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사례로 ‘기억의 유형화’를 듭니다. ‘집’이라고 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뾰족한 지붕의 집 모양. ‘교회’를 기억했을 때 생각나는 십자가 모양의 지붕. 이런 것들이 바로 학습을 통해 유형화된 기억이에요.
일구구공은 비슷한 결로 ‘동네의 유형화’를 이루는 건축을 제시합니다. 한 동네의 분위기와 로컬의 특징을 가져와서 건축물을 만드는 겁니다. ‘이 집은 이 동네 집 같네’ 생각이 드는 건축물을요.
동네의 유형화를 위해서는 단순히 건축물만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지역의 특징과 역사와 맥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구구공은 설계 전에 지역 조사부터 해요. 어떤 공간들이 모여 있고, 어떤 사람들, 어떤 상권이 이루어져 있는지 데이터를 뽑아내죠. 특히 윤 소장은 2015년부터 4년 동안 서울시의 도시공간개선단 사무관으로 있었습니다. 지역 생태에 대해 공부한 바탕이 있죠.
이러한 고민과 경험의 과정에서 동네의 유형화를 실현시킨 결과물이 2023년 완공된 황학동의 옥수수집입니다. 들안예술마을 창작소와 함께 iF 디자인 어워드 2024 본상을 수상한 건물이죠. 시장 거리 속, 옥수수 알갱이처럼 빽빽하게 수놓아져 있는 건물들 중 알갱이(건물) 몇 개를 빼고 새로 지은 건물이라서 이름이 옥수수집이에요.
옥수수집은 ‘동네의 유형을 들여온 건축’의 사례입니다. 옥수수집이 있는 신당동 중앙시장은 많은 주민들, 상인들이 오가는 광장 같은 장소로 30년이 넘은 2층 건물들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건물들의 모습이 모두 엇비슷합니다. 그 비슷한 모양을 건축물로써 유형화시킨 게 옥수수집이에요.
옥수수집의 외관은 1, 2층과 3층부터 옥상까지로 나뉩니다. 2층까지는 회색빛 콘크리트로, 3층부터는 노란빛의 벽돌로 되어 있죠. 2층까지만 보면, 줄지어 들어서 있는 기존의 건물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를 위해 1층 지붕선도 어닝이 있는 양 옆 상가처럼 앞으로 살짝 빼놓았어요. 3층부터 연결되는 벽돌 건물과 규칙적으로 뚫려 있는 사각형 창문 역시 주변 구옥들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또한 옥수수집은 골목과 골목을 잇는 소통 창구의 역할도 합니다. 1층의 앞과 뒤에 문을 열어서 앞쪽의 시장가와 뒷쪽의 막다른 길을 연결지었죠. 사람들이 건물을 통해 들락날락할 수 있도록, 건물이 또 다른 골목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유형화된 형태에, 건축적인 미감을 더하는 것은 디테일입니다. 벽돌의 경우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베이지색으로, 벽돌 틈의 메지를 우리가 흔히 아는 붉은색 벽돌 색으로 메웠죠.
“1차적으로는 그 지역의 도시적 볼륨, 재료나 형태의 유형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두 번째로 그 집합체가 그렇다고 뻔해 보이지 않도록 디테일에 변화를 주었고요.”
일구구공은 옥수수집처럼 동네의 유형을 받아들인 건축을 일구구공만의 시그니처로 만들고 싶다고 해요. 그런데 동네를 유형화하는 것. 그게 왜 중요한 걸까요?
“그게 가장 사랑받는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무언가 창작물을 내놓을 때는, 그 창작물이 사랑받기를 바라죠.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사랑받을 수 있을 만한 요소는 정해져 있어요. 첫째는 주변에 대한 존중이고, 둘째는 사람들에 대한 환영이에요.
건물을 새로 지었을 때, 건물이 주변을 무시하고 자기만을 자랑하듯이 있으면 그 두 가지를 배반하는 거예요. 동네의 유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존중의 또 다른 말이에요. 그 지역을 존중하고, 어떤 때는 그 공간에 들어오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 곳에 열려야 할 어떤 행사나 커뮤니티를 존중하는 거죠.”
다소 어려워 보일 수 있는 ‘동네의 유형화’란, 결국 그 동네를 존중하고, 그 동네의 주민을 존중하는 건축을 말하는 거였어요. 옥수수집이 시장 속에 우뚝 서 있어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고요.
ⓒ배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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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사회를 이해하는 안경
일구구공의 건축물을 보면 그 지역의 역사가, 그리고 그 지역의 맥락이 보입니다. 윤근주 소장은 더 나아가, “건축은 사회학”이라고 정의내려요.
“지금의 사회학은 공간을 바탕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범죄율, 자살률 같은 경우도 공간 구조로 이해하는 시각이 있어요.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살필 수 있는 자연감시율을 높이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재료들로 도시를 구성해야 하죠.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건축의 보편적 유용함에 대한 논의가 부족해요. 예를 들어, 모든 정책의 시작은 공간이거든요. 청소년을 지원하겠다고 하면, 청소년 수련원 같은 공간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관공서 내에 있는 건축사가 부족하다 보니, 우리가 보는 관공서들이 항상 비슷한 모습인 거예요.”
그렇기에 윤 소장은 말합니다. “건축은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요. 그래야 더 활발한 논의가 가능하고, 우리 삶에 건축이라는 분야가 더 친근하게 다가와야 지금의 제도 역시 개선되겠죠.
“영화를 한 편 보면 그 영화의 감독이 누군지 궁금해하잖아요. 그런데 주변에 건축물이 이렇게 많은데도, 이 건물을 누가 설계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보통 알고 있는 유명 건축가가 10명도 안 되겠죠? 하지만 건축을 영화처럼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로 만들어야 해요. 그게 사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만들기 때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윤근주 소장은 “건축은 안경”이라고 덧붙입니다. 안경을 쓰면 안 보이는 게 보이는 것처럼, 건축을 통해 몰랐던 사회와 환경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일구구공의 건축물을 통해 화암마을의 이야기와, 황학동의 모습을 깊이 알 수 있었듯이요.
일구구공의 맥락을 담은 건축은 계속되고 있어요. 지난 2024년 5월에는 일구구공이 설계한 포천의 ‘포천주택 소담재’가 유럽에서 인지도 높은 건축상인 BIG SEE 건축 어워드 본상을 수상했죠. 소담재는 보통과 다르게 기다란 일자 형태의 주택이에요. 가정과 사회에서의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방과 공간을 복도에 수평으로 늘어놓았어요.
일구구공의 건축물들이 점점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 사람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존중’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들이기 때문일 거예요. 건축에 사회의 맥락을 담는 일구구공의 작업을, 앞으로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남궁선
Reference
일구구공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주) 공식 홈페이지
Daegu Anchor Facility, iF Design
[건축비평] 개념과 감각, 그리고 건축, 이인희, 건축사
[건축비평] 생산과 창작, 기하학적 순수성과 삶의 열망, 백진
『소설호텔』, 2016년 6월, (주)빗살무늬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