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다란 반달 모양의 이태리 피자, ‘깔조네’를 아시나요? 여기, 동명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있어요. 이름처럼 반달 모양으로 생긴 실리콘 접시예요. 반으로 접으면 밀봉이 가능한 용기가 되고, 펼치면 그대로 접시처럼 사용할 수 있죠. 컬러도 ‘워터메론 그린’, ‘레몬 옐로우’, ‘플로리다 오렌지’ 등 통통 튀는 색감으로 식탁 위 풍경을 경쾌하게 만들어줘요.
그런데 이 깔조네는,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해요. 야무진 살림꾼이 아니라, 서툴고 게으른 사람들도 재밌게 집안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하는 마음을 담았죠. 보관 용기로도 썼다가 접시로도 쓸 수 있는 깔조네와 함께라면, 누구나 쉽게 주방을 가꿀 수 있으니까요. 발상조차 즐거운 이 브랜드는 누가, 왜 만든 걸까요?
깔조네의 주인이 여느 생활용품 회사인가 싶지만, ‘BDCI’라는 디자인 스튜디오예요. 디자인 프로젝트들을 위주로 하는 스튜디오이면서, 동시에 자체 브랜드인 깔조네를 운영하고 있죠. 그들은 디자인이 발명이자 태도라고 말해요. 그냥 예쁜 것, 편한 것을 넘어, 우리 삶에 진짜로 닿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모든 시작이었죠. BDCI의 이세민 대표를 만나, BDCI의 디자인 철학과 깔조네라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들어 봤어요.
깔조네 미리보기
• #1. ‘쿠튀르’ 컬렉션으로 디자인 스튜디오의 한계를 넘어서다
• #2.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생활용품을 개발한 이유
• #3. ‘평등한 디자인’은 지속 가능성을 위한 길이다
• 본캐와 부캐가 아닌, 두 가지의 본캐다
이 버섯 모양의 램프,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모습이 잠 잘 때 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램프에 다가가니 자동으로 빛이 나요. 거기다가 손을 내미니까 ‘찍’ 하고 손바닥에 액체가 발사돼요. 알고 보니 무드등의 기능을 탑재한 손 소독기였어요.
ⓒBDCI
이 귀여운 모습의 손 소독기는 서울 기반 제품 디자인 스튜디오 BDCI가 기획하고 제작한 제품이에요.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며 BDCI에 손 소독기 제작 요청이 들어왔죠. 램프 모양의 ‘투 핸즈(Two Hands)’는 당시 만들었던 여러 시안 중 하나였어요. 비록 클라이언트에게 채택되지는 못 했지만, BDCI의 이세민 대표는 어쩐지 계속 마음이 쓰였죠. 디자인을 더 다듬어서 제품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세민 대표가 투 핸즈를 향한 도전 의식이 생겼던 이유는, 기존 손 소독기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어요.
“코로나19가 절정이었을 시기, 어디든 입장하기 전에 QR로 백신 접종 인증을 받고, 열 체크를 하고, 손 소독제를 발랐죠. 근데 저는 이 상황이 불쾌했어요. 감시 당하고 제압 당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 와중에 자동형 손 소독기의 경우 손바닥에 ‘찍’ 하고 뿌려지는 경험이, 일반 펌프형 손 소독기의 경우 펌핑할 때 세균에 노출된다는 점이 신경 쓰였어요. 불쾌하지 않은 손 소독기는 없을까? 투 핸즈는 그런 고민에서 출발한 디자인이에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BDCI가 투 핸즈를 만들며 가장 집중한 건 ‘친숙한 디자인’이에요. 그 덕에 버섯 같기도 하고, 무드등 같기도 한, 둥글둥글한 모습의 손 소독기가 탄생한 거죠. 어쩐지 손 소독기 같지 않고 집안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두고 싶은 모습이에요. 투 핸즈는 2023년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죠.
투 핸즈의 사례로 알 수 있듯, BDCI는 친절하면서도 친근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예요. 그리고 2023년에는 이런 철학을 담은 자사 브랜드 ‘깔조네(Calzone)’를 론칭했죠. 깔조네는 의료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펼치면 접시, 접으면 수납용기가 되어요.
ⓒBDCI
그런데 어쩌다 제품 디자인 스튜디오가 직접 생활용품 브랜드를 론칭한 걸까요? 게다가 그 모습과 품목이 독특하잖아요. 직접 BDCI의 이세민 대표를 만나 디자인 철학, 그리고 깔조네의 스토리를 들어봤어요.
#1. ‘쿠튀르’ 컬렉션으로 디자인 스튜디오의 한계를 넘어서다
사실 BDCI는 업력이 오래된 회사예요. BDCI의 전신인 ‘브릿지 디자인 컨소시엄 인터내셔널(이하 브릿지 디자인)’은 2006년 설립됐죠. 이름도 복잡한 브릿지 디자인은 사실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었어요. 한국 기업과 일본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연결하고, 중개해주는 게 바로 브릿지 디자인의 역할이었죠. 국제관계학과 도시계획을 전공한 이세민 대표에게 딱 맞는 일이었어요.
BDCI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디자인 스튜디오로 변모하기 시작한 건 2015년 법인을 설립하면서부터예요. 오랜 기간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해 온 이세민 대표에게, 이제 직접 디자인을 파고 들어보자는 욕심이 생긴 거죠. 더불어 마침 이세민 대표의 남편이자 웅진코웨이, 삼성전자를 거친 산업 디자이너 이권각 공동대표가 BDCI에 합류하며 디자인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었어요.
BDCI가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와 다른 점이 하나 있어요. 디자인을 넘어, 마치 발명을 하듯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에요. ‘디자인이 다 그런 거 아냐?’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보통 디자인 스튜디오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반영하는 게 최우선 과제예요. 클라이언트는 기성 제품을 레퍼런스 삼아 디자인 의뢰를 하는 게 대다수의 경우죠. 한 마디로, 훨씬 더 많은 설득과 개발의 과정이 있어야만 ‘발명 같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대표적인 예가 2017년 작업한 스마트 플랜터 ‘블룸엔진(Bloomengine)’이에요. 당시 허브나 식용 채소를 재배하는 스마트 플랜터는 종종 시중에 출시됐지만, 관상용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제품은 별로 없었죠. BDCI와 클라이언트였던 블룸엔진 주식회사는 현대인들이 더 편하게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인큐베이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힘을 모았죠.
블룸엔진은 식물이 싹을 틔울 때부터 꽃을 피울 때까지, 모든 성장에 관여하는 화분이에요. 화분 아래의 팟에는 인공 압축 토양이 들어 있어요. 팟에 씨를 심어 놓으면 화분 안에서 점점 식물이 자라는 걸 볼 수 있죠. 물을 주는 방식 역시 매번 식물을 신경 쓸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적합해요. 팟 하부에는 물탱크가, 상부에는 직접 급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물 주는 걸 잊어도 자동 급수가 돼요. 동시에 직접 물을 주는 감성까지 느낄 수 있고요.
ⓒBDCI
“스마트 화분이라고 하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모든 게 자동으로 될 것 같고, 휴대폰으로 다 조작할 수 있을 것 같잖아요. 실제로 가능하긴 하지만, 식물 키우기의 본질인 ‘감성’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위에서 직접 물을 주는 경험 때문에 사람들은 식물을 키우잖아요. 스마트하지만, 제품에는 감성과 손맛이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블룸엔진의 두 번째 버전 ‘에스팟(S·Pot)’ 역시 스마트와 감성을 모두 잡은 제품이죠. 시간이 없는 현대인이나 초보도 쉽게 식물을 키울 수 있도록 하부에 물탱크가 들어가 있고, 상부에 오직 식물을 위한 생장등이 마치 인테리어 조명처럼 존재하죠. 그리고 꽃바구니와 같은 형태의 손잡이도 달려 있고요.
ⓒBDCI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말 그대로 BDCI의 디자인은 디자인으로 끝나지 않는 것 같아요. 제품 설계와 개발까지 관여하는 게 BDCI의 특장점이죠. 이런 장점을 살려, BDCI는 손 소독기 ‘투 핸즈’를 시작으로 쿠튀르(Couture) 컬렉션을 제작하고 있어요. 클라이언트의 의뢰가 아닌, BDCI가 자체적으로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컬렉션이죠.
쿠튀르 컬렉션의 두 번째 제품은 ‘룰라바이(Lullaby)’ 조명이에요. 감성적인 울림, 실용적인 기능이 융합된 무드등이죠. 마치 품에 안고 싶은 둥그런 모습의 룰라바이는, 스스로 주변 빛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에 맞는 조명 밝기를 내보내요. 크리스털 레진 밖으로 은은하게 빛이 일렁이는 모습이 마치 자장가를 듣는 것처럼 평온한 감정 상태를 만들죠.
ⓒBDCI
ⓒBDCI
사실 룰라바이 역시 투 핸즈와 마찬가지로 전신이 있었어요. 호주의 한 클라이언트가 침대 옆에서 사용할 수 있는 조명을 의뢰했고, BDCI는 해당 프로젝트를 마친 것에서 끝내지 않고 한 번 더 발전시키고 싶었죠. 기존의 룰라바이는 둥그런 조명 헤드에 스피커가 내장된 몸체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반면, 쿠튀르 컬렉션의 룰라바이는 스스로 빛나는 조명 헤드만 똑 떼어낸 모습이죠.
“제품에 생명력을 넣고 싶었어요. 기존의 룰라바이도 딱 보면 귀엽고 만지고 싶은 모습이죠. 마치 키우는 조명처럼요. 그 감각을 더 극대화해서 내 잠자리 옆의 반려자 같은 조명을 만들고 싶었어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한편으로는 궁금했어요. 디자인 스튜디오가 단순히 의뢰 작업에서 끝내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일을 벌이는 이유는 뭘까요? 이 질문에 BDCI는 ‘주체성이 있는 스튜디오’가 되고 싶었다고 말해요.
“의뢰 받은 프로젝트는 결국 우리 게 아니에요. 특히 한국 디자인 업계의 경우 디자이너가 뭔가를 주체적으로 주도하기보다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우선이죠. 그러다 보니 허탈하거나 아쉬울 때가 많았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우리의 역량을 스스로 개발하자는 생각으로 쿠튀르 컬렉션을 시작했죠. 계속 디자인을 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주체성을 갖고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2.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생활용품을 개발한 이유
BDCI는 쿠튀르 컬렉션에서 더 나아가 자체 브랜드까지 론칭했어요. 2023년에 출시한, ‘깔조네(Calzone)’라는 이름의 브랜드죠. 깔조네는 한 마디로 ‘재사용 가능한 접이식 접시’예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탈리아 전통 요리 중 반달처럼 접힌 모양의 피자와 똑 닮은 모습을 하고 있어요.
깔조네 역시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프로젝트를 한 번 더 디벨롭한 제품이에요. 클라이언트의 기존 의뢰는 밀폐가 되는 실리콘 지퍼백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죠. 지금의 깔조네는 당시 팀내 아이데이션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클라이언트의 의뢰와는 방향이 달라 제안할 수 없었던 깔조네를, BDCI가 자체 브랜드로 상품화한 거예요.
실리콘의 말랑말랑한 재질로 인해, 접시를 완전히 반으로 접을 수 있어요. 양 끝의 여닫이 구조 ‘프레스 핏’은 완벽하게 밀폐되기 때문에 식재료용 용기, 혹은 가방으로도 사용할 수 있죠.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자 장점인 깔조네. 마치 실리콘을 동그랗게 오리기만 한 것 같은 단순한 외관에, 다용도의 쓸모는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 탄생했다고 해요.
ⓒBDCI
“깔조네는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제품을 표방해요. 게으른 사람도 좀 즐겁게 사용할 수 있는 주방용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게으른 사람도 지속 가능성을 챙길 수 있고, 예쁘게 주방을 가꿀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실제로 깔조네를 사용하면 도시락 통도, 쓰레기 통도 필요 없어요. 피크닉을 갈 때에는 깔조네 안에 음식을 넣고 반으로 접어서 가져갔다가, 펼쳐서 그대로 접시로 사용하죠. 쓰레기가 나오면 다시 접시를 접어 가져오기만 하면 돼요.
깔조네의 가장 큰 포인트는 편의성이에요. 그 다음은 바로 키치함이죠. 깔조네는 현재 총 세 가지 컬러로 출시되어 있어요. 워터메론 그린, 레몬 옐로우, 플로리다 오렌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치 과일 색을 띠고 있는 것 같죠. 주방에서 사용할 때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고, 쨍한 컬러는 분위기를 밝게 환기시켜요.
“기존 실리콘 제품들은 이른바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톤이 다운된 컬러가 많았어요. 깔조네는 반대로 통통 튀고 이탈리아의 쨍쨍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싶었죠. 밝고, 기분 좋아지는 제품이었으면 했어요. 깔조네는 긍정적인 제품이고, 사용자에게 그 밝은 감정을 전파하고 싶었거든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BDCI
이런 키치한 컬러와 디자인은 깔조네에 재미 요소를 부여해요. 재미 요소는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하죠.
“많은 사람들이 완벽주의의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피로하죠. 살림꾼이 아닌 이상 집안일을 돌보기 힘들어요. 그런 현대인들을 위해서는 생활용품이 개선되어야 해요. 살림꾼을 위한 제품은 이미 많아요. 하지만 저처럼 일을 하느라 가정을 잘 못 돌보는, 게으른 이들을 위한 살림 도구는 별로 없죠. 현대인들이 조금이라도 집안을 가꾸기 위해선 아주 간편하면서도 재미가 있어야 해요. 내가 대충 먹다 남은 거 어디 집어넣어 놨는데도 보기에 예쁜 즐거움. 그런 게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마련이에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그런데 B2B 위주의 비즈니스를 해 오던 디자인 스튜디오가 어쩌다 B2C 브랜드를 만들게 됐을까요? 이세민 대표는 “어쩌다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B2C를 경험하게 느낀 점이 많다”고 해요.
“사실 저희는 디자인 회사이기 때문에 판매 역량은 없어요. 그래서 느리지만 차츰차츰 깔조네를 키워나가고 있죠. 하지만 새로운 경험에 눈을 뜨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메종 오브제 같은 행사에 참여해서 직접 소비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한 마디씩 듣고 있자면 ‘손에 잡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디자인 스튜디오는 보통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인을 브리핑하고, 수정하고, 랜더링을 하는 등 추상적인 일을 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희 제품을 실제로 만지고 대화를 주고받고 있으니까 희열이 느껴졌어요. ‘아, 이게 보람이구나’ 싶었죠.”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이세민 대표는 차츰차츰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깔조네의 정체성을 업계가 먼저 알아보고 있어요. 깔조네는 현재 MMCA, DDP 등이 운영하는 유수의 디자인 숍에 입점되어 있어요. 심지어 일본의 유명 편집숍 빔즈(BEAMS)에서도 먼저 입점 제안이 왔죠. 최근에는 뉴욕 브루클린의 유명 그로서리에 입점을 준비 중이라고 해요.
“제품 품목만 보면 생활용품, 주방용품에 가깝지만 판매는 주로 MMCA의 디자인 숍 같은 곳에서 일어나요. 소비자들은 깔조네를 소비재 이전에 디자인 제품이라고 봐주시는 것 같아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BDCI
#3. ‘평등한 디자인’은 지속 가능성을 위한 길이다
깔조네는 실리콘 플레이트에서 나아가 샌드위치백, 에코백, 보냉백 등으로 천천히 제품 종류를 늘려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이 제품들의 중심을 잡는 가치관은 바로 ‘지속 가능성’이죠. 깔조네가 수많은 디자인 어워드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해요. 실리콘은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거든요.
“보통의 지속 가능성 제품들은 유리나 도자기 같은 소재를 사용하죠. 반면 실리콘은 모래 가루를 활용해 만든 화학소재예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규소기반고분자 유기물인 실리콘은 내열, 내화학성이 뛰어나 식품용, 의료용, 주방용품에 적합하죠. 탄소기반고분자 유기물인 플라스틱을 대체하면서 도자기, 유리처럼 내구성이 다소 약한 자연 소재를 보완할 수 있는 소재가 뭘까 생각했을 때, 실리콘은 좋은 대안책이 될 수 있어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깔조네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성은 단순히 ‘환경만을 위한 제품’이 아니에요. ‘나 자신에게 안전한 제품’이 우선이죠.
“저희가 생각하는 지속 가능성은 오랫동안 사용해도 너무 낡거나 지저분해지지 않고, 관리가 쉬워서 버려지지 않는 제품이에요. 적어도 한 번 쓰고 판촉물처럼 버려지는 일은 없어야 하죠. 이게 디자이너가 생각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지속 가능성이에요.
또 하나는, 환경에 무해한 건 둘째치고 나한테 유독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특히 한국 사람들은 내 몸에 유독한지 아닌지를 가장 먼저 따져요. 너무 당연한 기준이라 지속 가능성이라고까지 생각을 안 하는데, 사실 가장 중요한 지속 가능성의 기준이죠.”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BDCI
깔조네는 100% 플래티넘 실리콘으로 제작됐어요. 가장 무해한 소재를 사용해야 했기에 유아용 공갈꼭지, 젖병에 사용되는 의료용 실리콘을 소재로 정했죠. 깔조네의 이런 디테일은 ‘평등한 디자인’이라는 이세민 대표의 디자인 철학을 품고 있어요. 나 자신에게 무해하고, 동시에 나보다 우위에 서지 않는 제품. 이세민 대표가 그게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고 말하죠.
“예전에는 너무 멋져서 우러러 봐야 하고, 손도 못 댈 것 같은 마치 예술 작품 같은 디자인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일을 계속 하다 보니 평등하고 민주적인 디자인이 점점 좋아져요. 사람이 물건을 우러러 봐서도 안 되고, 물건이 사람을 위협해서도 안 되죠. 물론 물건을 소유하는 건 사람이지만, 물건과 사람이 평등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BDCI가 만든 제품들은 어디든 가져갈 수 있고, 가까이 두고 싶은, ‘친구 같은 물건’이에요. 중요한 건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그린워싱’처럼, 인위적인 평등은 도리어 부작용을 낳는다는 거죠.
“중요한 건 물건을 사용하면서 애착이 생기느냐예요. 인위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내비친 제품들은 그런 애착이 생기지 않죠. 가령,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많은 가전제품은 대부분 남성 디자이너가 만들었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보완됐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성적인 디자인’이 아니죠.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가 사용해도 편리한 디자인. ‘이게 옳은 거야’ 우악스럽게 강요하지 않는 디자인이 평등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BDCI
본캐와 부캐가 아닌, 두 가지의 본캐다
BDCI에는 두 개의 정체성이 있어요. 디자인 스튜디오인 BDCI는 정돈되고 세련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죠. 반면 깔조네는 키치하고 톡톡 튀어요. 제품 디자인뿐 아니라, 패키지나 SNS 운영 등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르죠. 비즈니스 모델 역시 B2B 중심과 B2C 중심으로 나뉘어요.
하지만 이세민 대표는 둘 중 무엇이 먼저라고 말하지 않아요. BDCI와 깔조네, 둘 모두 BDCI 디자이너들의 가치관이 담긴 본캐죠.
“원래 깔조네는 저희의 부캐 개념이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그냥 둘 다 본캐라고 생각하게 됐죠.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세련된 ‘멋’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실제로 이 안에서 일하고 있는 저와 디자이너들은 모두 귀엽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죠. 디자인을 위해 ‘나’를 포기할 수 있을까? 깔조네는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저희의 바람이기도 해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앞으로 깔조네는 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거예요. 다음 출시 제품으로는 텀블러를 제작 중에 있죠. 깔조네라는 독특한 다용도 제품은 깔조네를 주방용품 브랜드로도, 액세서리 브랜드로도 보이게 만들어요. 하지만 이세민 대표는 깔조네를 어느 하나에 가두지 않겠다고 말해요.
“우리가 어떤 카테고리라고 정의 내리지 않았어요. 다만 깔조네를 통해 좀 더 가까운 데에, 내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제품들을 디자인하고 싶어요. 그게 처음에는 실리콘 생활용품이었고, 그 다음에는 텀블러였을 뿐이죠. 언제든 삶을 살아가다가 눈길 한 번 줄 수 있는 그런 생활 속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시티호퍼스와 인터뷰를 진행 중인 이세민 대표 ⓒ시티호퍼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