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잘 주무셨나요? 아마 잘 못 주무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약 6.3시간이거든요. 미국, 유럽의 평균 수면 시간인 7시간보다 약 0.7시간 모자라죠. 2023년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35개의 조사국 중 우리나라의 수면 시간은 34등이에요.
꼴등은 어딜까요? 일본이에요.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지만, 일본의 수면 문제는 심각해요. OECD 국가 중 수면 시간 꼴등이라는 꼬리표를 늘 달고 다니거든요. 제일 잠 못 자는 나라, 일본의 ‘잠자기 노력’은 눈여겨볼 만해요. 이에 따라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성장하고 있죠.
그중에서 눈여겨볼 브랜드가 ‘나인아워스’예요. 이곳은 캡슐 호텔인데요. 전국에 14개 지점을 가졌고, 연간 100만명의 숙박객이 머무는 일본의 대표 캡슐 호텔 중 하나죠. 잠을 잘 자는 것과 캡슐 호텔이 무슨 관계냐고요? 이곳은 우리가 알고 있는 캡슐 호텔과는 달라요. 자는 동안 몇 번 뒤척였고, 코를 몇 번 골았는지 세주기까지 하거든요. 그렇다면 나인아워스는 어떻게 수면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요?
나인아워스 미리보기
• #1. ‘호텔’ 아닌 ‘트랜짓 서비스’
• #2. 코 고는 횟수를 세주는 호텔
• #3. ‘숙박’보다 ‘사우나’가 중요한 호텔 - 도씨
• ‘마켓-인’이 아닌 ‘제품-아웃’을 생각하라
낮잠 자러 가는 카페.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일하다 지치고 피곤할 땐 낮잠 한숨 당길 때가 많죠. 그런 도시인들을 위해 일본에는 낮잠 카페가 있어요. 도쿄 하라주쿠에 있는 ‘네스카페 수이민 카페’(Nescafe Suimin Cafe)예요. 수이민은 일본어로 睡眠(すいみん). 수면이란 뜻이죠.
네스카페 하라주쿠점은 건물을 공중에 띄워놓은 듯한 필로티 구조의 건물 2층에 있어요. 2층에서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으로 내린 다양한 커피와 차를 판매하는데요. 내부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면 다른 풍경이 펼쳐져요. 리클라이닝 체어와 커피 머신이 구비된 개별 룸이 있고, 고객은 이곳에서 낮잠을 잘 수 있어요.
일명 커피 낮잠. 825엔(약 8,250원)에 30분을 예약할 수 있어요. 30분을 예약하면 낮잠에서 깨어난 뒤,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 한 잔을 제공받아요. 1시간을 예약하면 잠들기 전 디카페인 커피 한 잔, 일어나서 카페인 커피 한 잔을 받고요. 잠에서 깬 후 커피로 충전을 하고 개운하게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요.
그런데 낮잠을 누워서 자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그래서 네스카페는 좀 더 캐주얼한 낮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본의 벤처기업 지라프냅(Giraffenap)과 협업해 수면 캡슐을 만들었어요. 그러곤 2023년 8월, 네스카페 수이민 카페에 특별한 팝업을 열었어요. 여기서는 수직으로 앉아 잠을 자는 ‘수면 캡슐’을 경험할 수 있었죠. 선 자세로 캡슐에 들어가, 무릎, 발, 엉덩이, 팔 부분을 쿠션에 대면 잠자는 자세가 잡혀요. 서서 자는 것 같아 불편해 보일 수 있지만, 막상 사용해 보면 낮잠 자기 최적의 자세라는 후기가 많아요.
ⓒNestle Japan
ⓒNestle Japan
그렇다면 일본의 이런 독특한 ‘낮잠’ 시도는 왜 시작됐을까요? 일본은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요. OECD 회원국 중 수면 시간이 가장 적죠. 미국 국립수면재단(National Sleep Foundation)에 따르면, 만 18~64세 성인은 매일 밤 7~9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해요. 그런데 2023년 일본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직장인의 45% 이상이 하루에 6시간 미만을 자요. 심지어 직장인의 10명 중 1명은 5시간 미만을 자고요.
수면 부족은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져요. 일본 정부는 직장인 1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충분한 잠을 잔다’고 답한 직장인은 29% 미만이었죠. 이들 중 70%는 우울증이나 불안 증상이 보이지 않았던 반면, ‘잠을 적게 잔다’고 답한 사람 중 40%는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보였어요.
네스카페는 수면 문제를 포착하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인 카페에 낮잠 공간을 만들었어요. ‘캡슐’이란 소재를 사용해서요. 그런데 일본과 캡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지 않나요? 캡슐 호텔 말이에요. 네스카페가 낮잠을 위한 캡슐을 만든 반면, 낮잠을 잘 수 있는 캡슐 호텔도 있어요. 일본의 대표적인 캡슐 호텔 ‘나인아워스’죠.
#1. ‘호텔’ 아닌 ‘트랜짓 서비스’
나인아워스는 2009년에 1호점을 오픈해, 2023년 기준 총 14개 지점과 4개의 호텔 브랜드를 가진 캡슐 호텔 기업이에요. 나인아워스는 스스로를 호텔이 아니라 도심 속 ‘트랜짓 서비스’라고 불러요. 그래서 낮잠 카페처럼 낮잠만 예약할 수도 있어요. 한국의 대실 시스템과 비슷하죠. 나인아워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700엔(약 7,000원)을 내면 샤워만 하고 갈 수도 있어요. 캡슐 호텔을 단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단장’을 하는 곳으로 정의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나인아워스는 어쩌다 캡슐 호텔의 업을 재정의하게 된 걸까요?
나인아워스를 창업한 사람은 유이 케이스케예요. 유이는 원래 벤처 캐피탈리스트였죠. 1차 인터넷 버블기에 ‘넥스트 애플’을 찾아 투자하는 게 유이의 과업이었어요. 전국을 돌며 벤처 기업을 살폈지만, 갈수록 유이에겐 회의감이 찾아왔어요.
“당시 일본의 IT 벤처 기업은 미국 기업을 모방한 ‘축소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비즈니스를 개발해, 세계로 퍼뜨리는 기업은 없었죠. 한편, 미국 기업들은 비즈니스를 컨셉부터 ‘디자인’하고 있었어요. 애플에서 나온 제품은 어떤 걸 손에 들더라도 ‘애플이 만든 것’이라고 알 수 있듯이요.”
- 유이 케이스케, 포브스 재팬 중
이처럼 유이는 ‘비즈니스를 디자인한다’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1999년 유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유이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캡슐 호텔을 물려받았죠. 한동안 그는 그동안의 방식을 이어오다가 2005년부터 어떻게 하면 새로운 캡슐 호텔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유이 역시 자신의 비즈니스를 디자인하고 싶었던 거예요.
“캡슐 호텔은 전통적으로 가격이 싸고, 심지어 의심스러운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미적, 감각적 기준과는 거리가 멀었죠. 저는 캡슐 호텔을 아이폰 같은 우아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재정의하고 싶었습니다.”
- 유이 케이스케, IdN 매거진 중
유이는 캡슐 호텔을 재오픈하기 위해 건축가나 호텔 전문가가 아닌, 디자이너를 찾아갔어요. 새로운 캡슐 호텔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적 감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나인아워스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무인양품 디자이너로도 유명한, 일본의 산업 디자이너 ‘시바타 후미에’가 맡게 됐죠.
컨셉을 잡을 때 유이의 가장 큰 고민은 ‘진정한 여유로움이란 무엇인가?’였어요. 캡슐 호텔을 효율적인 호텔, 저렴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진정한 여유로움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본 거예요. 시바타와 유이는 이 주제를 두고 2년 동안 매주 만나 여섯시간 씩 회의를 이어갔어요. 그렇게 나온 답이 바로 ‘트랜짓 서비스’예요. 트랜짓(Transit)은 환승, 교통과 같은 뜻이 있어요. 마치 도시 안에서 트랜짓 하는 것처럼 24시간, 원하는 시간에 리프레시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죠.
그렇다면 왜 이런 컨셉이 나왔을까요? 유이는 캡슐 호텔의 본질적인 장점만 뽑아내고 싶었어요. 진정한 여유로움은 좁은 호텔 방에 TV, 냉장고, 욕조 등 온갖 기능을 욱여넣을 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정말 본질적인 기능을 최상의 상태로 누리고 있을 때 ‘진짜 여유로움’이 나오는 거라고 유이는 생각했죠. 그리고 그는 캡슐 호텔의 본질적인 기능을 샤워, 수면, 몸단장이라고 봤어요.
호텔의 이름도 그래서 나인아워스(9hours)예요. 투숙객이 호텔에 체류하는 9시간의 정수를 구분했죠. 1시간의 샤워+7시간의 수면+1시간의 몸단장. 합쳐서 9시간이에요. 그리고 도심 속에서 언제든 이 세 가지 요소에 접근할 수 있다면, 바쁘고 지친 도시인들이 쉽게 ‘트랜짓’할 수 있다는 게 유이의 아이디어였어요.
ⓒ9hours
이 궁극의 세 가지 기능에 충실하려면 나머지 부수적인 것들을 없애야 했어요. 기능을 더하기보다, 군더더기를 뺌으로써 새로움을 만들어야 했죠.
“제가 디자인하고 싶었던 사업은 캡슐 호텔의 진화 버전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트랜짓 서비스였습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기 위해 노력했어요. 남은 것이 수면과 샤워였죠. 이를 위해 TV도, 욕조도, 나아가서는 공간이라는 개념도 모두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덜어내는 게 무서웠어요. 대신, 수면과 샤워에 있어서는 최고의 품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 유이 케이스케, 센덴카이기 매거진 중
그렇게 2009년 12월, 교토에 나인아워스 1호점이 탄생했어요. 가와라마치역 5분 거리에 있는 골목길, 양옆 4층 건물들 사이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모노톤의 7층 건물이에요. 호텔에 들어가면, 내부는 흑과 백으로 통일되어 있어요. 흰색 바닥과 벽 속에서, 검은색 픽토그램이 눈에 띄죠. 호텔의 공간은 리셉션, 프롤로그 복도, 세면 라운지, 수면 포드 총 4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고요.
나인아워스 교토점 ⓒ9hours
모든 표시가 글자 없이 픽토그램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게 독특해요. 프론트 데스크, 신발장, 엘리베이터 표시 등의 안내 정보가 아이콘화 되어 있죠. 디렉터 시바타 후미에는 나인아워스의 철학에 맞게, 디자인 면에서도 최대한 간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에 ‘청결’과 ‘간결’만을 집중 조명한 거예요.
1호점에는 총 125개의 캡슐이 있어요. 나인아워스만의 무드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수면 포드’예요. 낮은 조도에, 둥그런 출입구로 되어 있는 캡슐이 틈 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은 마치 미래 도시를 연상케 해요. 실제로 시바타는 매트릭스나 스타워즈 같은 SF 영화를 모티프로 삼았어요. 시바타에게는 미래도시의 모습이 간결함의 극대화로 보였던 거죠. 그래서 호텔 속 모든 부분이 일체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길 원했어요.
ⓒ9hours
내부뿐 아니라 건축 면에서도 ‘일체화’에 대한 철학을 잃지 않았어요. ‘도심 속 트랜짓 서비스’를 꿈꾸는 만큼, 도시 거리와 일체화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는 데 힘썼죠. 그래서 건축을 맡은 히라타아키히사 건축설계사무소의 컨셉 비주얼을 보면 독특해요. 스크램블 교차로에 나인아워스 캡슐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 말 그대로 거리와 하나가 된 건물을 계획한 거예요.
실제로 나인아워스 아카사카점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 벽을 만들었어요. 안에 있는 투숙객이 마치 자신이 거리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죠. 또한 나인아워스 하마마쓰초점은 한 층의 층고를 높게 설계해 건물 자체가 주변 건물보다 높아지게 했어요.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면 거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요.
나인아워스 아카사카점 ⓒ9hours
나인아워스 하마마쓰초점 ⓒ9hours
‘트랜짓 서비스’라는 차별화를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건 역시 운영 방식이겠죠.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인아워스는 ‘대실’이 가능해요. 숙박 예약 외에도, 낮잠 예약을 하면 최초 1시간에 1000엔(약 1만원), 이후 1시간마다 500엔(약 5,000원)으로 캡슐을 이용할 수 있어요. 700엔(약 7,000원)만 내면 샤워 시설만 이용할 수도 있고요. 숙박 예약만 가능한 다른 비즈니스 호텔을 생각해 보면, 나인아워스가 왜 호텔이 아닌 ‘트랜짓 서비스’인지 알 수 있어요.
ⓒ9h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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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 고는 횟수를 세주는 호텔
나인아워스의 사업 개요에는 ‘호텔 사업’ 옆에 붙는 게 있어요. 바로 ‘수면 사업’이에요. 앞서 설명했듯이 나인아워스의 의미는 1시간의 샤워, 7시간의 수면, 그리고 1시간의 몸단장인데요. 나인아워스는 9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는 ‘수면’을 위한 기업이 되고 있어요. 도구는 하나, 캡슐이죠.
캡슐로 무얼 하냐고요? 10년 넘게 지점을 확대해 가며(2023년 기준 14개 지점) 일본의 대표 캡슐 호텔이 된 나인아워스가 새롭게 발견한 수면 업계의 페인 포인트가 있었어요. 경영을 맡고 있는 마츠이 타카히로 CEO에게 도쿄대 동문 출신 동아리 선배가 말했죠. “수면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다.” 선배가 대학 병원에 근무하며 수면 연구자에게 들은 문제였어요. 마츠이 CEO는 생각해요. ‘과연 우리보다 수면 데이터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어떤 연구자에게 물어도 ‘수면 데이터가 부족해서 곤란하다’고 하더군요. 수면장애는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되는데도 말입니다. 나인아워스가 수면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알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우리 비즈니스가 인류의 지식에도 공헌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 마츠이 타카히로, 닛케이 BP 중
나인아워스에 따르면, 고품질의 수면 데이터는 전 세계를 살펴도 6,000건 정도가 최대예요. 반면, 나인아워스의 연간 숙박객은 2021년 기준으로 100만명이 넘었고, 성별과 연령 불문하고 세계 160개국에서 고객이 모였죠. 나인아워스는 이 지표를 바탕으로 ‘수면 데이터를 모으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워요.
그렇게 2021년 12월 ‘나인아워스 슬립 핏스캔(9h sleep fitscan)’ 서비스를 런칭해요. 숙박객이 캡슐 내에서 잠을 자는 동안 체동 센서, 카메라, 마이크 등을 통해 숙박객의 수면 데이터를 모으는 서비스예요. 나인아워스 아카사카의 전 객실, 나인아워스 우먼 신주쿠 객실의 절반에서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죠.
객실 가격은 1인 1박 3,000~4,000엔(약 3만원~4만원)으로 이용할 수 있어요. 기존 숙박 가격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과정도 간단해요. 숙박을 예약한 후 체크인할 때 나이, 키, 몸무게 등의 정보를 입력하고 캡슐에서 잠을 자기만 하면 끝. 다음 날 수면 보고서가 고객에게 도착하죠. 보고서 속에는 투숙객에 몇 시 몇 분에 잠들었고, 몇 시간 동안 잤고, 자는 동안 몇 번 뒤척였는지 등의 자세한 데이터가 들어 있어요. 투숙객은 나한테 무호흡 증상이 있었는지, 코골이가 심한지 등을 판단할 수 있죠.
슬립 핏 스캔 수면 보고서. ⓒ9hours
고객에겐 자신의 수면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기업과 기관에는 데이터를 제공해요. 슬립 핏스캔으로 모은 데이터를 제약 회사나 화장품 회사 등에 제공하죠. 슬립 핏스캔은 B2C로는 새로운 서비스가, B2B로는 데이터 판매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호텔이라면 ‘수면’을 테마로 한 다양한 사업 모델을 구상할 수 있잖아요. 더 잠이 잘 오는 침구류로 교체할 수도 있고, 체크아웃 시간을 연장할 수도 있죠. 나인아워스가 ‘데이터’를 선택한 건 호텔 기업으로서 의아한 면이 있는데요. 그건 나인아워스가 호텔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호텔과 다르기 때문이에요. 나인아워스는 호텔을 ‘부동산이 아니라 제품’으로 바라보죠. 그래서 캡슐에 새로운 기술을 추가하고, 개발하는 데 더 힘써요.
“우리는 호텔을 부동산이 아니라 제품으로 정의합니다. 제품 디자이너 시바타 씨에게 디렉팅을 맡긴 것도 그래서죠.”
- 마츠이 타카히로, 닛케이 BP 중
제품으로서 캡슐에 대한 나인아워스의 집착은 놀라워요. 2020년 1월에는 캡슐 실험실을 설립하기까지 했죠. 슬립 핏스캔에 쓰이는 신형 캡슐은 야마하 발동기 회사와 공동 개발했어요. 침대 아래에 위치한 체동 센서는 의료 기기로도 승인받았을 정도예요. 일반적인 체동 센서가 100~200헤르츠(Hertz) 간격으로 감지 가능하다면, 신형 캡슐의 센서는 1000헤르츠의 간격으로 계측이 가능해요.
또, 캡슐 안에 적외선 카메라를 장치해 7시간 동안 투숙객의 얼굴 이미지를 촬영해요. 안면의 흔들림, 안구 운동 등을 관측하죠. 고성능 집음 마이크를 통해서는 투숙객의 호흡과 코골이 등을 확보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하룻밤 동안 모이는 데이터의 양은 5GB나 되고요. 그렇다면 나인아워스가 이렇게까지 수면의 질 개선에 집작하는 이유는 뭘까요? 유이 케이스케의 설명을 들어볼게요.
기존의 나인아워스 수면 캡슐 ⓒ9hours
야마하 발동기사와 공동 개발한 신형 캡슐 ‘9h sleep dock’ ⓒ9hours
“저희의 원점이라고 할까, 기점은 역시 캡슐 기구이고 잠을 잔다는 행위예요. 이 두 가지 목표로 온갖 기능을 넣고 싶어요. 쾌적한 수면이란 무엇인가. 맥박, 혈압, 체온 등 생체 정보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그걸 실현하려면 캡슐 안의 온도, 습도, 공기의 흐름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선선한 동굴 속에서 잠을 자도 기분이 좋지만, 따뜻한 햇볕에서 잠드는 것도 좋잖아요. 그러려면 캡슐 기구에 어떤 기능을 내장해야 할까. 그게 바로 나인아워스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고, 부가 가치라고 생각해요.”
- 유이 케이스케, <계속 팔리는 브랜드 경험의 법칙>에서
#3. ‘숙박’보다 ‘사우나’가 중요한 호텔 - 도씨
나인아워스는 1시간(샤워)+7시간(수면)+1시간(몸단장)으로 이뤄진 중심축을 가지고 있어요. 슬립 핏스캔은 캡슐을 통해 7시간의 수면에 집중한 비즈니스였죠. 더 나아가 나인아워스 2017년 또 다른 호텔 브랜드를 런칭하며, 1시간의 샤워에 집중한 비즈니스도 시작했어요. 바로 사우나 캡슐 호텔 ‘도씨(℃)’예요.
도씨는 2017년 12월 에비스에 1호점을 오픈했어요. 핀란드식 사우나, ‘로우류’를 도심에서 체험할 수 있는 캡슐 호텔이에요. 로우류란 일본에서 정착되어 내려 온 핀란드식 사우나로, 일본의 일반적인 사우나보다 온도가 낮고 습한 게 특징이에요. 90°C 전후의 온도에서 대 욕탕 없이 사우나 스톤에 민트수를 뿌려서 올라오는 증기욕을 건식으로 즐기는 방식이죠. 사우나를 하고, 대 욕탕에서 몸을 씻는 방식의 대중적인 사우나와는 달라요.
ⓒ9hours
도씨 에비스점 ⓒ9hours
ⓒ9hours
도씨 고탄다점 ⓒ9hours
나인아워스는 이 독특한 로우류 문화를 도심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했어요. 특히 2018년 오픈한 고탄다점은 교통의 요충지인 데다가, IT벤처 기업이 모여 있는 지역으로 직장인을 타깃했어요. 이들이 일을 하다가 가볍게 들러 로우류 사우나로 리프레시할 수 있는, 새로운 트랜짓 서비스를 개발한 거죠. 그래서 ‘도씨’의 메인 비즈니스는 숙박이 아니라 사우나예요. 도씨에서 제안하는 도씨 사용법은 다음과 같아요.
1) 샤워를 한다.
2) 로우류 사우나를 즐긴다.
3) 웜 필러로 쿨다운을 한다.
4) 휴식한다.
잠은 가장 마지막 순서인 4번에 포함돼요. 사우나는 낮 12시~밤 10시 사이에 언제든 이용 가능한데요. 처음 한 시간에 1,000엔(약 1만원)의 비용을 내면, 1시간 초과할 때마다 500엔(약 5,000원)이 추가되죠.
ⓒ9hours
사우나라는 ‘씻는 행위’에 집중한 비즈니스인 만큼, 샤워 용품에 공들였어요. 바디워시, 샴푸, 컨디셔너는 1892년 창업한 비누 회사 ‘타마노하다(玉の肌)’와 협업해 만들었죠. 쿨다운을 할 수 있는 웜 필러는 일본 최대 욕실 브랜드 토토(TOTO)와 함께 제작했고요. 웜 필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샤워할 때 사용하는 샤워기가 아니에요. 나무로 된 데크에 앉아서 수전을 틀면, 얇은 물줄기를 머리에서부터 부드럽게 떨어지는 구조예요. 특히 웜 필러는 온도에 맞게 15℃, 20℃, 25℃, 30℃ 칸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취향껏 사용할 수 있어요.
ⓒ9hours
이렇게 시작한 도씨의 비즈니스는 의외의 방향으로 확장돼요. ‘호텔 재생 사업’의 출발이 됐죠. 사실, 도씨는 나인아워스가 처음으로 오래된 호텔을 리노베이션한 결과였거든요. 낡은 호텔에 새로움을 줄 소재로 ‘사우나’를 선택했던 거고요.
“반찬(새로운 부가가치)이 없으면 뭐든지 새로운 걸 만들 수 없습니다. 그 반찬으로 사우나를 선택했습니다. 나인아워스 기업 전략의 일환으로 사우나를 연구했다는 의미도 있죠.”
- 유이 케이스케, 호테레스 온라인 중
첫 번째 호텔 리노베이션에 성공한 나인아워스가, 본격적으로 호텔 재생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있어요.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에요. 나인아워스는 2020년 5월부터 팬데믹으로 폐업하거나 운영이 어려운 호텔을 리노베이션하기 시작했어요. 그 사업의 일환으로 새로운 하위 브랜드들이 생겨났죠. 2021년 3월에는 ‘그랜드 파크 인 요코하마’를 리노베이션해, ‘캡슐 플러스 요코하마’를 오픈했어요. 2번째 재생 사업 결과물이었죠. 2023년에는 8, 9번째 재생사업으로 ‘호텔+호스텔 도쿄 아사쿠사’를 런칭했고요.
리노베이션 이전의 그랜드 파크 요코하마(왼쪽)와 리노베이션 이후 캡슐 플러스 요코하마(오른쪽). ⓒ9hours
도씨, 캡슐 플러스, 호텔+호스텔 모두 각각 다른 브랜드지만 공통점이 있어요. ‘트랜짓 서비스’라는 나인아워스의 근본 철학을 잊지 않았다는 거예요. 세 브랜드 모두 숙박뿐 아니라 낮잠과 샤워만 예약할 수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인아워스는 재생 사업을 통해 나인아워스의 호텔 철학을 일본 전역으로 확장 중인 셈이에요.
캡슐 플러스 요코하마. ⓒ9hours
호텔+호스텔 아사쿠사 1호점 ⓒ9hours
‘마켓-인’이 아닌 ‘제품-아웃’을 생각하라
일본 캡슐 호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온 나인아워스. ‘전에 없던 카테고리를 세상에 전파한’ 좋은 예예요. 나인아워스를 통해 일본 기업으로서 ‘비즈니스를 디자인하는 것’에 성공한 유이 케이스케는 이런 조언을 해요. 소비자를 먼저 보는 일이, 오히려 디자인에는 방해가 될 수 있다고요. 그보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세상에 표출할 생각을 먼저 하라고 말하죠.
“나인아워스를 오픈했을 때, 잠재 고객의 인사이트를 먼저 보는 ‘마켓-인’이 아닌,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제품-아웃’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디자이너에게 ‘당신에게 진정한 여유로움은 무엇인지’ 질문할 수 있었죠.
(중략)
캡슐 호텔의 ‘모양’을 디자인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만드는 사업 자체를 디자인하고 싶었습니다. 침대의 크기나 온천의 유무 같은 표면상의 기능만 바라보면 뚜렷한 컨셉이 탄생하지 않습니다. 어느 호텔이나 똑같아져 버려요.
(중략)
세상의 상식과는 다르게,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 없는가’는 내가 내 안에서 독자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디자인의 관점으로는, 온갖 ‘쓸데없는 장식’을 없애고 본질을 파악해야 하죠. 그 과정에서 ‘질문’을 만들고, 가치관을 파고들어야 해요.”
- 유이 케이스케, 포브스 재팬 중
세상의 많은 비즈니스는 확신이 있어야 시작돼요. 유이 케이스케의 나인아워스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주죠. 이 메시지를 마음에 품는다면, 내 일에서 자기 의심보다 자기 확신을 더 우선시하게 될 거예요.
Reference
• Capsule hotel tells you how many times you snore during the night, Oona McGee, SoraNews24
• カプセルホテルは良質な睡眠データの宝庫 業界の風雲児がスリープテックを加速する, nikkeibp
• 9h nine hours, Carnets De Traverse
• トップインタビュー (株)ナインアワーズ 代表取締役 Founder 油井 啓祐 氏, HOTE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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