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빌딩의 전망은 고급 레스토랑과 바를 위한 전유물일까요? ‘아카데미 힐즈’는 모리타워 49층에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월간 회원 수만 3000여 명.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이자, 천국과 가장 가까운 도서관입니다.
아카데미 힐즈 미리보기
• 롯폰기 하늘에는 지성이 모인다
• #1 지성인에게 필요한 건 ‘시간’
• #2 지성인에게 필요한 건 ‘공간’
• #3 지성인에게 필요한 건 ‘인간’
• 돈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
천장이 높은 곳에 가면 생각이 트이는 느낌이 듭니다. 이 기분은 ‘느낌적인 느낌’이 아닙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의 조앤 마이어스-레비 교수팀이 ‘천장의 높이가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연구를 통해 증명했습니다.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천장이 30센티미터 높아질 때마다 추상력과 창의력이 2배씩 높아집니다. 공간이 생각하는 힘을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창의성을 요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사옥을 지을 때 공간 설계에 신경을 씁니다. 페이스북이 대표적입니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신사옥의 천장은 3개 층을 터놓은 높이인 8미터로 생각을 자극하는 높이입니다. 또한 축구장 7개를 합쳐놓은 크기인 1만 2000여 평의 공간은 협업을 유도하기 위해 원룸 형태로 뚫려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건물 옥상에 꾸민 야외 정원에는 사색을 할 수 있도록 산책로가 800미터 정도 펼쳐져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장려하겠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는 비효율적인 공간 설계를 해도 괜찮을 만큼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실리콘밸리와 다릅니다. 밀도를 높이고 효율적인 공간 설계를 해야 하는 환경입니다. 도쿄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 경제를 이끌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도쿄에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이 없을 리 만무합니다. 도쿄 곳곳에 그런 장소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고급스러워서 돋보이는 공간이 있습니다. ‘아카데미 힐즈’입니다.
롯폰기 하늘에는 지성이 모인다
아카데미 힐즈는 롯폰기 모리타워 49층에 있는 지성인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입니다. 고급 레스토랑과 바가 어울리는 자리에 공부하고, 토론하며,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도쿄 시내가 파노라믹 뷰처럼 펼쳐집니다. 넓고 탁 트인 공간을 ‘확보’하는 대신 ‘조망’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게다가 층고도 6미터 이상으로 2개 층의 높이입니다. 웅장한 전망과 높은 천장 덕분에 생각이 트이는 것은 물론입니다.
아카데미 힐즈에서 바라 본 도쿄 시내입니다. ⓒ시티호퍼스
“In the skies above Roppongi, is a space where ‘intelligence’ is born.”
아카데미 힐즈를 설명하는 문구입니다. 200미터의 높이에서 지성이 탄생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지성이 만들어지진 않습니다. 탁 트인 전망은 생각을 트이게 하는 필요조건이긴 해도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아카데미 힐즈는 높은 곳에 있어 전망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지성을 영글게 하기 위한 3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힐즈에는 탁 트인 공간에서 파노라믹 뷰를 바라보며 공부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1 지성인에게 필요한 건 ‘시간’
어느 곳에 있느냐 하는 점은 높은 곳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맹자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듯 사람들은 장소의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데미 힐즈는 지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롯폰기 힐즈에 있습니다. 이곳이 지식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알기 위해서는 롯폰기 힐즈의 개발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롯폰기 힐즈는 부동산 개발 업체인 모리빌딩그룹에서 개발한 복합시설입니다. 모리빌딩그룹의 회장 모리 미노루는 ‘수직도시론’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롯폰기 힐즈를 개발했습니다. 수직도시론은 단순히 땅값이 비싸니까 높이 짓자는 것이 아닙니다. 탈공업사회, 지식산업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공간 디자인입니다. 공업사회에서는 일터와 주거가 분리되어 있었고, 그랬기에 근로시간이 끝나면 일을 잊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식산업사회에서는 머리와 감성을 가지고 가치를 창출하는 만큼 일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여가시간도 중요해집니다. 여가시간은 휴식의 기능도 하지만 일을 위한 영감의 원천을 제공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직도시를 건설해 출퇴근 시간의 낭비를 줄이고, 절약한 시간만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무언가를 배우며 여러 사람과 교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수직도시론은 결국 일터, 주거지, 놀이시설, 휴식 공간의 경계를 없애서 지식산업사회에 적합한 환경으로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지식 노동자들이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합니다.
아카데미 힐즈는 수직도시의 여러 문화시설 중에서 지식산업사회를 추구하는 롯폰기 힐즈의 취지와 가장 맞닿아 있는 곳입니다. 아카데미 힐즈에선 지식 노동자들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기에 지성이 탄생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2 지성인에게 필요한 건 ‘공간’
아카데미 힐즈를 문화시설 구색 맞추기로 접근했다면 49층 일부 공간만 활용해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카데미 힐즈는 49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높은 곳을 넓게 쓰고 있다고 해서 지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카데미 힐즈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필요한 공간 요소를 6가지로 정의하고, 그에 따라 약 2000평의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공간의 형태는 6가지이지만, 성격으로 보자면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지식을 쌓는 공간, 사람들과 생각을 교류하는 공간입니다. 우선 스스로 지식을 쌓는 공간은 라이브러리 카페(Library cafe)와 마이 라이브러리 존(My library zone)이 있습니다. 라이브러리 카페는 여느 카페처럼 보다 자유로우면서도 조용한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이고, 마이 라이브러리 존은 대학 도서관과 유사한 형태입니다. 생각을 교류하는 공간은 콘퍼런스 룸(Conference room), 스카이 스튜디오(Sky studio), 오디토리엄(Auditorium), 타워 홀(Tower hall) 등이며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에 따라 구분되어 있습니다. 30~60명 정도의 소규모 모임부터 120명, 150명, 500명 규모의 대형 강연 및 포럼을 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돼 있습니다.
집중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대학교 도서관 같은 공간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시티호퍼스
오디토리엄에서도 높은 천장과 파노라믹 뷰를 누릴 수 있어, 쾌적한 환경에서 대규모 강연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이 정도의 공간 구성이면 학습, 세미나, 미팅, 콘퍼런스, 강연, 포럼 등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하는 모든 형태의 배움이 가능합니다. 지성이 싹틀 수 있게 하는 총체적인 환경입니다. 공간 효율성이 높은 라이브러리 카페나 마이 라이브러리 존뿐만 아니라 활용도가 낮지만 필요한 대규모 시설들도 갖췄다는 점에서 지성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진정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3 지성인에게 필요한 건 ‘인간’
도쿄의 롯폰기, 시오도메, 오다이바 지역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방송국 본사가 이전해 간 곳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후지TV와 니혼테레비는 각각 오다이바와 시오도메로 옮긴 후 시청률이 떨어졌고, TV아사히는 롯폰기로 옮긴 후 시청률이 올랐습니다. 츠타야 서점을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런 현상을 장소의 차이로 해석했습니다. 방송국의 핵심역량은 기획력이고 기획은 정보의 조합인데, 장소에 따라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어디서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화 시대에도 사람과 마주해야 가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아카데미 힐즈도 사람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롯폰기라는 지역, 높은 곳이라는 위치, 쾌적한 공간 구성을 더 의미 있게 하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지식과 정보는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사람들이 서로 교류할 때 힘이 커집니다. 그래서 직장인들을 위한 ‘아카데미 힐즈 스쿨’을 운영합니다. 대기업 경영진, 인기 있는 책의 저자, 유명한 프로젝트 매니저 등의 강연을 기획하는 것입니다. 전통적 강의 방식에서 벗어나 강연자와 학생들이 서로에게 배움을 추구하고 직접적인 상호 관계를 맺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 힐즈는 매월 다양한 강연을 통해 지식인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합니다. ⓒ시티호퍼스
강연자로 초청하여 직접 마주하며 생각을 교환하는 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카데미 힐즈에서는 매월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선별하여 추천합니다. 일반 도서관과 달리 아카데미 힐즈 방문객들은 현장에서 책을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얼굴을 마주하는 강연이건, 활자로 생각을 전달하는 책이건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지성의 완성을 추구합니다.
아카데미 힐즈에서는 추천하는 도서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시티호퍼스
돈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
모리 미노루가 제안한 수직도시론의 개념은, 르 코르뷔지에가 1920년대에 주장한 초고층 도시계획론의 연장선입니다. 모리 미노루는 부동산 개발업자로서 이론을 현실에 구현한 것입니다. 롯폰기 힐즈로 재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한 것은 물론, 지역 주민들을 10년 이상 설득했다는 점에서 부동산 개발의 철학을 구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설득의 과정을 통해 개발한 곳의 최상층부를 고급 레스토랑이나 바가 아닌 지성인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한 것 또한 철학이 남다름을 보여줍니다. 아카데미 힐즈는 특정 회사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도 아니고, 부자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공간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에 더 의미가 있습니다. 9000엔(약 10만 원)의 월간 회원권을 끊거나 2000엔(약 2만 2000원)의 일일권을 구매하면 이용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사회 환원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것도 아닙니다. 라이브러리 카페와 마이 라이브러리 존을 이용할 수 있는 월간 회원권을 등록한 사람만 3000여 명에 달합니다. 거기에 콘퍼런스 룸, 스카이 스튜디오, 오디토리엄, 타워 홀의 사용률을 30% 정도로만 가정하고, 카페, 케이터링, 강연, 책 등을 통한 부가 매출을 고려하면 월 8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산됩니다.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재무적으로도 의미가 있기에 아카데미 힐즈의 일부 또는 전체 구성을 히라카와초, 아크 힐즈, 토라노몬 힐즈 등의 지역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층 빌딩의 최상층부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바가 있는 게 당연했습니다. 나머지 시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카데미 힐즈는 2003년 오픈 후 지금까지 사업을 유지하며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결국 무엇을 할지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입니다.
아카데미 힐즈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 시설, 쇼핑몰, 오피스 등으로 구성된 모리타워의 전경입니다. ⓒ시티호퍼스
Refer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