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음원 시대라 음반 판매량이 급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그룹 AKB48은 역대 최고 판매량 기록을 넘어서며 일본 여성 아티스트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보통의 아이돌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AKB48 극장 / AKB48 카페 미리보기
• 만만히 볼 수 없는 아이돌
•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
• 만들어갈 수 있는 아이돌
• 만개해갈 수 있는 아이돌
• 만만히 볼 수 없는 1인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기록들도 있습니다. 음반 판매량이 그중 하나입니다. 김건모는 3집 〈잘못된 만남〉을 286만 장 판매하며 국내 최다 음반 판매량을 달성했습니다. 1994년의 일입니다. 그 이후 2000년도까지는 신승훈, 조성모 등이 2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하며 아성을 넘봤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음악 소비 방식이 바뀌면서 2000년도 이후로는 2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앨범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현재는 인기 절정의 아이돌 그룹도 50만 장의 음반 판매량을 넘기 어려운 상황이니, 김건모의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예전 가수들과 아이돌 가수들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전 가수들은 음반 판매만으로도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앨범 1장당 1만 원 정도인 CD를 100만 장 판매할 경우 음반 매출만 100억 원입니다. 20년 전의 물가를 고려하면 수익의 상대적 규모가 더 큽니다. 게다가 인기 가수들은 앨범을 낼 때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노래만 잘하고, 음악에만 집중해도 벌이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반면 현재의 음반 시장은 노래만 잘해서는 매출을 올리기 힘들어졌습니다. 음반 대신 디지털 음원이 팔린다고 해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순위 바뀜도 빨라져 예전만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돌 가수들은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힙니다. 콘서트, 예능, 광고, 행사 출연 등은 물론이고 멤버들의 초상권을 바탕으로 한 상품도 판매합니다. 또한 그룹 중 일부 멤버로 구성한 유닛 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고객 접점을 늘리기도 합니다.
물론 음반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며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낸 연예기획사들의 노력 덕분에 아이돌 시장이 형성되고, 아이돌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아이돌 그룹의 획일적인 성공 방정식 탓에 차별성 없는 아이돌 그룹이 넘쳐나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래서 팬들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식상해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이돌 그룹을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일본의 ‘AKB48’ 그룹을 들여다보면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만히 볼 수 없는 아이돌
AKB48은 일본의 아이돌 그룹입니다. 2005년에 결성된 이후, 각종 기록을 경신하며 일본 최고의 인기 그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년간 오리콘 연간 싱글 차트의 1위부터 5위까지를 AKB48의 노래로 채웠고, 2013년에 발표한 싱글 앨범 〈안녕 크롤〉은 첫날에만 145만 장이 팔리며 15년 만에 여성 아티스트 싱글 앨범 최고 판매 기록을 깼습니다. 그뿐 아니라 총 판매량도 3000만 장을 돌파하며 여성 아티스트 싱글 앨범 중 최다 기록을 세웠습니다.
일본 음악 시장에서 음반 판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디지털 음원 시대에 음반 판매량의 신기록을 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아이돌 그룹의 인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여성 아이돌 그룹과 차이가 없어 보이는 AKB48이 유독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KB48이 만만히 볼 수 없는 아이돌로 성장한 배경에는 팬들의 마음을 읽어낸 전략적 요소들이 숨어 있습니다.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
AKB48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워, 연습하는 과정부터 팬들이 볼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아이돌 그룹이 연습생 기간을 거쳐 완성된 모습으로 무대에 서고 주로 대중 매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선입견을 깨려는 시도입니다. 아이돌의 실력이나 퍼포먼스보다 아이돌이 성장해가는 모습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연예계 경험자가 아닌 연예계 초심자를 모집하여 AKB48 초기 멤버를 꾸렸습니다.
파격에 익숙한 일본이라도 이러한 AKB48의 콘셉트를 이해해주는 건물주를 만나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전용 극장을 찾는 과정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점포가 들어서지 않아 방치돼 있던 아키하바라의 돈키호테 건물 8층을 임대했습니다. 내진 설계 때문에 2개의 기둥이 무대를 가렸지만, 전용극장을 찾기가 어렵다 보니 더 나은 대안을 찾기보다 대형 거울을 붙여 사각지대를 보완하기로 했습니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을 찾기 위해 시간을 끌다 보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린 결정입니다. 참고로 기존에 없던 콘셉트를 세상에 선보이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 아이디어 덕분에 장애물처럼 여겨졌던 2개의 기둥은 훗날 팬클럽 이름이 될 만큼 상징성을 갖게 됩니다.
AKB48 극장의 입구입니다. 첫 공연의 관객은 7명이었으나 이제는 팬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시티호퍼스
AKB48 극장은 큰 인기를 얻은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또한 공간의 단점을 극복하며 기존에 없던 콘셉트를 런칭했듯이, 공연의 사고를 만회하며 주목받지 못하던 콘셉트를 인기 궤도에 올렸습니다. AKB48이 결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음향기기 고장으로 공연을 못 하게 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팬들을 위한 보상 조치로 즉석에서 ‘악수회’를 진행했습니다. 팬들의 반응이 괜찮았고, 이에 따라 AKB48은 현재는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가 된 악수회를 공식화합니다. 우연한 기회를 포착해 전략적으로 활용한 악수회는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의 콘셉트를 강화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AKB48의 인기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그뿐 아니라 악수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음반을 사야 하는데, 그 덕에 음반 판매량이 늘어나는 효과도 누립니다.
AKB48의 인기가 높아지자, 2011년에는 전용 극장 근처에 AKB48 카페&숍을 오픈합니다. 공연 시간에만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의 한계를 보완하고 수익을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멤버들을 활용한 음료와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페에 들어서면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뮤직비디오 또는 공연 실황을 보여줍니다. 특정 메뉴를 주문하면 스크린에 원하는 뮤직비디오나 공연을 띄워줍니다. 또한 주문을 하면 멤버의 사진이 담긴 코스터를 주는데, 가격에 따라 원하는 멤버의 코스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팬들끼리 교류하는 공간도 시간제로 대여해줍니다. 스타와 직간접적으로 교류하길 바라는 팬들의 마음을 영리하게 수익모델로 만든 셈입니다.
AKB48 카페&숍의 전경입니다. 언제 방문해도 공연 영상을 통해 AKB48 멤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AKB48 숍에서 팔고 있는 AKB48 멤버들을 테마로 한 상품들입니다. ⓒ시티호퍼스
만들어갈 수 있는 아이돌
AKB48은 48명의 정해진 멤버로 구성된 그룹이 아닙니다. 입학과 졸업 시스템을 통해 100명이 넘는 정식 멤버와 연습생이 A팀, K팀, B팀, 4팀, 8팀 등 총 5개 팀으로 나뉘어 AKB48 전용 극장에서 연습과 공연을 합니다. 이 중에서 20여 명의 멤버만이 싱글 앨범 제작 및 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총괄 프로듀서가 싱글 앨범 멤버를 선발하는데, 이렇게만 해서는 팬들의 마음을 반영하기 어렵고 흥미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2009년부터 해마다 그해에 나올 여러 싱글 중 1개의 싱글 앨범에 대해서는 팬들의 투표 결과를 반영해 선발 멤버를 결정합니다.
투표는 1인 1표제가 아닌, 1인 다표제입니다. 투표권은 총선거 직전에 발매한 싱글 앨범을 구입한 팬, 공식 팬클럽 회원 그리고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유료회원에게 주어집니다. 팬들의 투표로 싱글 앨범에서 활약할 16명의 멤버가 정해지고, 투표 순위에 따라 무대에서의 위치와 예능 등의 TV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달라집니다. 원하는 멤버가 상위권에 포함되어야 대중 매체를 통해 스타를 더 자주,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팬들은 다수의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다량의 음반을 구매합니다. 투표권은 악수회와 더불어 싱글 음반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입니다. 총선거는 케이블이 아닌 공중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되며, 평균 시청률이 20%가 넘을 정도로 관심도가 높습니다. 투표 인원도 2009년엔 5만 명 수준이었지만, 2015년에는 3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도쿄 도지사 당선자 득표수를 넘어서는 수준입니다.
투표를 통해서만 멤버를 선발하면 계속해서 인기 멤버만, 또는 구매력이 있는 팬층을 가진 멤버만 선발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팬들의 요청에 의해 2010년부터는 인기나 실력과 관계없이 가위바위보를 통해서만 싱글 앨범 멤버를 선발하기도 합니다. 모든 멤버에게 싱글 앨범 활동을 할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이 가위바위보 대회의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뻔한 멤버 구성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AKB48은 완성된 아이돌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아이돌입니다. 그리고 AKB48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팬들을 참여시킵니다. 팬들의 참여도가 높아질수록 AKB48에 대한 팬심도 깊어집니다. 팬들의, 팬들에 의한, 팬들을 위한 AKB48을 만들며 팬덤을 통한 수익화를 전략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만개해갈 수 있는 아이돌
AKB48의 콘셉트는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입니다. 도쿄에 거주하는 팬들은 AKB48을 보기 위해 아키하바라의 전용 극장을 찾아가면 됩니다. 그렇다면 지방에 사는 팬들은 AKB48을 만날 수 없는 걸까요? 물론 지방에서 도쿄로 올라올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 콘셉트를 포기하자니, AKB48의 핵심 성공 요인이라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AKB48 그룹은 도시별로 자매 그룹을 만들어 팬들이 만나러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2008년에는 나고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SKE48을, 2009년에는 도쿄를 근거지로 하는 두 번째 그룹인 SDN48을, 2010년에는 오사카 기반의 NMB48을, 2011년에는 후쿠오카에서 활약하는 HKT48을, 2015년에는 니가타에 전용 극장을 둔 NGT48을, 2017년에는 세토우치 지방의 STU48을 만들었습니다. 도쿄의 두 번째 그룹인 SDN48이 2012년에 멤버들이 전원 졸업해 해산한 것을 제외하고도, 2년에 1개꼴로 자매 그룹을 런칭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해외에도 자매 그룹이 생겼습니다.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JKT48을, 2012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SNH48을 만들었습니다. 2016년에는 대만 타이베이에 TPE48, 필리핀 마닐라에 MNL48, 중국 베이징에 BEJ48, 중국 광저우에 GNZ48을 만들었습니다. AKB48은 콘셉트를 중심으로 각국에 자매 그룹을 탄생시키며, 아이돌 그룹의 해외 진출이라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례를 만들어냅니다.
단순히 콘셉트만 동일하게 해서 자매 그룹을 늘렸다면 지역의 아류로 남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자매 그룹을 별도의 그룹으로 활동시키기보다 AKB48 그룹과 연계하여 하나의 리그처럼 운영합니다. 일본 내의 자매 그룹 멤버들은 AKB48 총선거에도 함께 참여하여 싱글 앨범 멤버로 선발될 기회를 갖습니다. 실제로 2013년 총선거에서는 HKT48의 멤버가 1위를 차지했고, SKE48에서 3명과 NMB48에서 2명의 멤버가 16위 안에 들며 싱글 멤버로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2012년부터는 겸임 제도를 만들어 2개 이상의 그룹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멤버들도 생겼습니다. 이처럼 AKB48과 자매 그룹 간 상호 교류가 많아질수록, 하나의 생태계가 형성되며 팬의 저변이 넓어집니다.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콘셉트가 가진 공간적 한계를 지역적 연계를 통해 극복한 것입니다. 아직 AKB48 자매 그룹이 없는 도시들이 더 많기 때문에 확장의 가능성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만히 볼 수 없는 1인들
AKB48을 만든 사람은 야키모토 야스시입니다. 프로듀서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방송작가로 연예계에 입문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니혼TV의 특정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패러디를 만들어 방송국에 보낸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의 잠재력이 기회를 만나며 직업이 된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방송작가를 전업으로 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1973년 즈음에는 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재능 있는 개인들이 실력을 가둬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능력이 있다면 콘텐츠를 만들기도, 공유하기도, 수익화하기도 쉬워진 시대입니다. 대중 매체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SNS 등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잠재력을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1인 미디어가 하나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1인 미디어 방송을 하며 연간 100억 원을 넘게 버는 크리에이터가 등장할 정도이고, 1인 미디어 방송을 전업으로 하는 크리에이터들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물론 1인 미디어 방송이 본인이 직접 출연하는 방송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TV 프로듀서처럼 직접 출연하진 않더라도 콘텐츠를 프로듀싱하는 크리에이터들도 포함하는 영역입니다. 과거에는 방송국에 입사해야만 프로듀서를 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프로듀서를 하기 위해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개개인이 상상력과 기획력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팬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만만히 볼 수 없는 아이돌을 만든 야키모토 야스시처럼 만만히 볼 수 없는 1인들이 곳곳에서 꿈과 실력을 키우며 미디어의 지형을 바꾸고 있습니다. 꼭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일이 아니더라도 기존과 다른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1인 크리에이터라면 AKB48을 눈여겨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Reference
• 일본 아이돌그룹의 비즈니스모델과 현지화 전략,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