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릿에서 런웨이로, 끝없이 진화하는 2인자의 다음

베이프 • 휴먼메이드

2023.07.21

한 때 패션 피플들이 도쿄에 가면 꼭 찾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가 있었어요. ‘목욕하는 유인원(A Bathing Ape)’이라는 뜻을 가진 ‘베이프(BAPE)’예요. 한정판 전략과 럭셔리 브랜드와의 콜라보로 오픈런을 해야만 구할 수 있는 인기 절정의 브랜드였어요.


그런데 베이프의 소량 판매 정책은 오히려 독이 되었어요. 베이프의 인기는 치솟는데 공급이 늘어나지 않으니, 중국발 짝퉁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어요. 정교한 짝퉁의 등장 탓에 베이프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판매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베이프는 이렇게 끝이었을까요? 목욕하는 유인원은 다음 진화를 준비해요. 베이프의 창시자, ‘니고(NIGO)’가 베이프를 홍콩 의류 회사에 매각 후 두 번째 브랜드를 런칭했거든요.


이름은 ‘휴먼메이드(Human Made)’. 2023년 가장 핫한 패션 브랜드 중 하나죠. 그러고보니 이름도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했어요. 그런데 브랜드 이름만 달라진 게 아니예요. 사업적으로도 진화했죠. 따라하고 싶은 브랜드를 넘어, 따라할 수 없는 브랜드가 되었거든요.


베이프 • 휴먼메이드 미리보기

 1호를 동경한 시골 소년, 2호가 되다

 패러디로 오리지널을 뛰어 넘은 원숭이

 오픈런과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아버지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휴먼메이드

 ‘편집력’에서 나오는 반보 앞선 감각

 하이 패션까지 진출한 스트릿 패션 디자이너




NBA는 세계에서 가장 농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모인 농구 리그에요. 1937년 시작된 이 리그는 압도적인 피지컬과 현란한 플레이를 자랑하는 스타 플레이어들로 가득하죠. 그중에서도G.O.A.T (Greatest of All time) 라 불리는 선수가 있어요. 마이크 조던이죠. 농구에 관심이 없거나, 농구를 해본 적 없더라도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에요.



ⓒCNN


은퇴한지 18년이 지났지만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 1위,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 스타 1위. 조던의 전설적인 플레이 때문에 80년이 넘는 NBA 역사에서도 ‘넥스트 조던’에 어울리는 플레이어는 손에 꼽을 정도예요. 그런데 조던을 베껴, 조던과 동일한 반열에 오른 선수가 있어요. LA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에요.


2020년 헬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현역 시절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며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설적인 선수에요. 코비는 데뷔를 한 순간부터 자신과 같은 포지션이었던 조던을 따라했어요. 인터뷰에서 자신이 ‘넥스트 조던’이라는 발언도 서슴치 않고, 1:1로 붙는다면 이길 수 있을꺼라 도발도 했죠.


한밤중에도 조던에게 문자로 농구 자세와 전술에 대해 물어보고, 상대팀으로 맞서 경기를 할 때 경기 중에도 질문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어요. 그리고 엄청난 훈련량으로 조던의 동작과 자세를 익혀갔죠. 그 결과 그는 조던의 거의 모든 것을 배워갔어요. 덩크할 때 혀를 내미는 시그니처 습관까지 따라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코비의 모습에 조던도 1:1 승부라면 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조던의 기술을 모두 익힌 코비는 전설적인 기록들을 세워 가요. 한 경기에서 혼자 81득점을 올리기도 하고, 5번의 NBA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어요. 결국 2014년 조던의 득점 기록을 넘어서며, ‘제2의 조던’이 아닌 ‘코비 브라이언트’가 되었고요. 한때는 1인자와 2인자로 불렸지만, 이제는 모든 농구팬들에게 인정받는 전설이 되었죠.


묵묵히 2인자의 위치를 지키다 1인자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들에게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열정이 느껴져요. 때로는 2인자들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하죠. 오늘 소개할 베이프와 휴먼메이드를 만든 나가오 토모아키도 마찬가지예요.



1호를 동경한 시골 소년, 2호가 되다

나가오는 일본의 시골지역인 군마현 마에바시시에서 태어났어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때문에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혼자 있는 그를 위해 부모님은 미국산 장난감을 사주셨어요. 어릴 때부터 미국 제품에 익숙해지다 보니, 나이가 들면서 미국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장난감에 대한 관심은 패션과 음악으로 이어져요. 그에게 당시 일본의 스트릿 패션과 힙합 문화를 이끌고 있던 ‘후지와라 히로시’는 우상과 다름없었죠. 마치 코비에게 조던이 있었던 것처럼요.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패션으로 정한 그는 전문적으로 기술을 배우기 위해 패션 스쿨에 입학해요. 졸업 후에는 잡지사 뽀빠이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자신이 동경했던 1인자 후지와라 히로시와 함께 힙합 패션과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막역한 사이로 발전했죠.



젊은 시절의 후지와라 히로시와 니고에요.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는 사람이 후지와라 히로시인데 형제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았어요. 오른쪽은 두 사람이 함께한 Last Orgy 프로젝트예요 ©Collater.al


그러던 어느 날, 나가오가 찾은 한 빈티지 샵의 직원이 그를 보고 ‘후지와라 히로시 2호’라는 별명을 붙여줘요. 나가오의 패션은 물론이고, 얼굴을 비롯한 그의 외모가 굉장히 닮았기 때문이죠. 자신의 우상과 닮았다는 말에 별명이 마음에 들은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을 ‘후지와라 히로시 2호’라고 소개해요. 더 나아가 활동명도 ‘2호’를 뜻하는 일본어인 ‘니고(NIGO)’로 바꿔요.


2호라고 해서 단순히 후지와라 히로시의 모든 것을 따라가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일본 패션의 1인자인 그를 존경하고, 그를 지향점으로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은 셈이죠. 시골 청년 나가오 토모아키가 일본 트렌드를 이끄는 패션리더 ‘니고’가 된 순간이에요.



패러디로 오리지널을 뛰어 넘은 원숭이



(좌) 니고가 준 다카하시와 함께 열었던 편집샵 NOWHERE의 모습이에요 ©Grailed / (우) 후지와라를 통해 만난 그래픽 디자이너 Sk8thing이 그려준 베이프의 로고에요 ©Logos-world


1인자였던 후지와라 히로시 옆에서 패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난 후, 패션 스쿨 선배였던 준 다카하시와 NOWHERE라는 편집숍을 오픈해요. 매장의 오픈과 동시에 자신만의 브랜드를 런칭했는데, 이때 니고가 만든 브랜드가 A Bathing Ape, 줄여서 BAPE에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혹성탈출의 유인원을 모티브로 하고, 일본에서 유명한 온천 원숭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어요.



카모 패턴과 샤크 캐릭터를 볼 수 있다. 베이프의 아이덴티티이자 스테디셀러  ©A Bathing Ape


화려한 군용 무늬인 카모플라주 패턴과, 후드에 눈, 코, 입이 달려있는 샤크 집업으로 인기를 얻었어요. 샤크 집업의 경우는 지퍼를 후드의 끝까지 달아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디자인을 처음 선보이며 베이프를 유행시킨 아이템이죠. 베이프의 시그니처 제품은 패러디 제품들이에요. 대중들에게 있기 있는 패션 아이템을 재해석하고 표절과 패러디를 넘나드는 제품들을 선보였어요.



공식 홈페이지 나이키 에어포스원의 디테일을 거의 유사하게 따라한 베이프 스타에요. 소개 사진까지 나이키 공홈과 비슷한 각도로 찍었어요. ©A Bathing Ape / ©Nike


나이키 에어포스 원은 나이키는 물론이고 스키너즈 신에서도 가장 유명한 모델이에요. 흰색 에어 포스 원은 스트릿, 캐쥬얼, 정장 등 어떠한 착장에도 잘 어울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죠. 니고는 이 모델을 살짝 비틀어요. 신발의 기본적인 모양은 유지하면서도 나이키의 로고와 텍스트를 BAPE의 시그니처로 바꾸고, 카모패턴으로 디자인 했죠. 파격적인 패러디 디자인 덕분에 출시 당시 나이키에서 고소를 당하기도 했지만, 결국 나이키도 니고의 패러디의 역량을 인정하고 오히려 베이프의 주식을 매입하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요.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어요. ‘패션의 정석’이라는 것이 생겨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보다 인기가 많은 제품을 입는 사람들이 많아지던 중 베이프의 ‘살짝 비틀기’가 새로움을 전달한 거죠. 베이프의 과감한 패러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스트릿 아이템을 넘어 하이엔드 럭셔리 아이템까지 과감하게 진출하죠.



롤렉스의 유명 모델 서브마리너와 노골적으로 비슷하게 만든 베이프의 베이펙스 시계 ©A Bathing Ape / ©Rolex


바로 롤렉스 시계에요. 롤렉스의 시그니처 모델 서브마리너 오토매틱 시계를 모티브로 손목시계를 디자인했어요. 색상을 바꾸고, 원숭이 로고를 집어넣었죠. 제품명도 과감해요. 베이프(BAPE)와 롤렉스(ROLEX)를 합친 베이펙스(BAPEX)라는 브랜드명으로 새로운 시계 라인업을 만들기도 했죠. 이렇게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베이프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요.



오픈런과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아버지

니고가 가지고 있었던 또 다른 필승 전략은 ‘한정판’이었어요. 처음 브랜드를 만들었을 때,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소량 판매, 소량 구매 방식이었어요. 어차피 한정된 자원으로 조금밖에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최고의 마케팅이었죠. 제품을 한정된 수량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한 사람당 한 개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판매 정책을 적용해요. 물론 품질에 대한 타협은 없었어요. 일본의 우수한 의류 제조 시설에서 제작을 하며 높은 품질을 유지했고, 가격도 높게 책정했죠.


모험적인 판매 정책을 도입한 베이프는 일본 패션계에서 오픈런과 리셀 문화를 처음으로 만든 장본인이에요. 베이프의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고, 줄을 서지 못해 제품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리셀러들을 찾아다니며 가격이 몇 배 이상 뛰기도 했죠. 지금이야 익숙한 광경이지만, 베이프가 93년 시작한 브랜드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베이프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어요.


니고의 두 번째 필승 전략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이에요. 일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베이프는 미국 시장까지 진출해요. 성공의 중심에는 니고의 인맥 네트워크가 있었어요. 칸예 웨스트, 버질 아볼로 등 힙합씬의 중요 인사나 패션 피플들과의 친분이 있었죠. 그중에서도 절친한 ‘퍼렐 윌리엄스’가 베이프의 옷을 즐겨 입으며 미국 전역의 팬들이 베이프의 옷을 찾게 되었고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어요. 지금이야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이용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익숙하지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생기기 이전부터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활용한 니고의 마케팅 감각을 엿볼 수 있어요.



(좌) 니고와 퍼렐 윌리엄스. 퍼렐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목걸이를 차고 있다. ©Strapped Archive / (우) 두사람을 만나게 해준 제이콥더 주얼리와 퍼렐 ©Superwatchman.com


한정판 전략과, 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베이프는 해외 곳곳으로 매장을 세우며 공격적으로 확장했어요. 계속 성공 가도를 달릴 것 같았지만, 2000년 후반부터 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했죠. 그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베이프 그 자체에 있었어요. 베이프의 소량 판매 정책 때문이었죠. 베이프의 제품을 원하는 수요는 늘어났지만, 턱없이 부족한 생산량 때문에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품을 손에 넣으려고 했죠. 그러다 보니 똑같은 디자인에 가격도 저렴한 중국발 짝퉁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판매량도 줄고, 이미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도 베이프의 옷을 찾지 않게 될 정도로 브랜드 이미지가 나락으로 갔죠.


니고는 베이프의 끝이 왔음을 직감해요. 2011년, 니고는 베이프의 지분 90%를 홍콩 의류 회사에 매각하고, 2013년 정식으로 베이프와의 계약을 마무리해요. 목욕하는 유인원과 함께 일본 트렌드를 이끈 니고의 끝처럼 보였죠. 하지만 목욕을 마친 유인원은 다음 진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휴먼메이드



©Human Made


베이프와 완전히 이별한 니고는 자신의 감성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 ‘휴먼메이드’를 시작했어요. 이전 베이프에서 보여줬던 파격적인 디자인과 패턴 대신, 60년대 아메리칸 캐주얼 패션에 영감을 받은 비교적 차분한 제품들로 브랜드 전개를 시작했죠.


‘The Future is in the Past’를 슬로건으로 과거에 쓰였던 유니크한 원단과 고증을 재현하면서도 니고 특유의 감성을 섞은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어요. 베이프보다는 더 차분한 느낌의 정체성을 갖게 됐죠. 니고는 베이프 때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위험 부담이 큰 사업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입고 싶은 옷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죠.


니고는 휴먼메이드에서도 다채로운 로고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졌어요. 붉은 하트 로고를 기본으로 사용하되, 제품에 따라서 다양한 동물들을 로고로 활용했죠. 동물 로고의 경우에는 제작한 옷의 오리지널 빈티지 제품이 어떤 용도였는지에 따라 종류가 달라져요. 밀리터리 베이스의 항공 점퍼에는 호랑이, 독수리, 곰과 같은 맹수를 넣었고, 가을 겨울에 입을 수 있는 헌팅 재킷의 경우에는 오리, 사슴, 개처럼 사냥을 나갈 때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을 넣었죠.



제품의 종류에 따라 동물을 선정한다. MA-1자켓에는 독수리, 헌터 자켓에는 사슴이 들어갔다. ©Human Made


니고는 휴먼메이드를 전개할 때도 이전과 같이 소량 생산 방식을 고수했어요. 휴먼메이드의 티셔츠를 기준으로 설명해볼게요. 휴먼메이드의 티셔츠는 루프휠 공법으로 만들어져요. 루프휠 공법은 1926년에 개발된 미싱 기계의 생산 방식이에요. 티셔츠의 앞판과 뒷판을 잘라내서 봉제로 이어 붙이는 요즘의 방식과 달라요. 루프휠 방식은 실린더 형태로 원사를 짜서 봉제 없이 한 통으로 티를 만들게 돼요. 티셔츠 양 옆에 봉제선 없이 튜브처럼 생겼다고 해서 ‘튜블라 티셔츠’라고 부르기도 하죠.


루프휠 티셔츠는 특유의 실루엣과 편안한 착용감으로 인기가 많아요. 요즘의 티셔츠는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원단에 장력을 줘서 팽팽하게 당긴 상태로 원단을 자르고 봉제를 하기 때문에 비교적 빳빳해요. 반면 루프휠 방식은 장력을 주지 않은 원사를 사용하기 때문에 질감이 두툼하고 부드럽죠. 그리고 티셔츠 양 옆에 봉제선이 없어 입었을 때 살에 닿는 요철이 없다는 점도 편안한 착용감에 한 몫을 해요.



휴먼메이드의 루프휠 티셔츠 ©Human Made



실린더 통을 중심으로 둥글게 방직되는 루프휠 미싱 기계 ⓒStandard & Strange


그런데 왜 다른 브랜드는 루프휠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까요? 사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예요. 루프휠 미싱 기계가 개발된 지 거의 100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 기계는 일본과 독일에만 소량 남아있어요. 그마저도 효율이 좋지 못해서 원단 1m를 생산하는 데에 1시간이 걸리죠. 기계를 열심히 돌려도 한 시간에 티 한 벌 정도만 만들 수 있어서 생산성이 좋지 않아요.


이렇게 기계도 구하기 어렵고 생산 방식도 비효율적이다보니 다른 브랜드는 따라하기가 쉽지 않아요. 어설픈 짝퉁들은 바로 티가 나죠. 빈티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효율적이고 어려운 방식을 선택하자, 베이프 시절 겪었던 짝퉁 문제가 휴먼메이드에서는 재발하지 않았어요.



‘편집력’에서 나오는 반보 앞선 감각

베이프와 휴먼메이드라는 걸출한 패션 브랜드 두 개를 성공시킨 니고에 대해서 더 알아 볼게요. 니고는 수집광이에요. 수집하는 분야도 다양해요. 그의 아카이빙 공간에는 시대별로 다양한 빈티지 의류, 장난감, 가구, 미술 작품, 음반 등 분야를 막론하고 엄청난 제품들이 박물관처럼 정리되어 있다고 해요. 실제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니고의 아카이브를 영감을 얻기 위한 성지처럼 방문하고 있어요. 아카이브 한 쪽 벽에는 이렇게 아카이브를 찾아온 아티스트들의 사진과 사인으로 가득하죠.






니고의 방대한 아카이브 ⓒComplex


니고의 머리 속에는 아카이브에 있는 모든 아이템들이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어요. 다양한 분야를 연대기별로 꿰뚫고 있는거죠. 과거에 트렌디했던 것들에서 차용할 만한 요소들을 뽑아내, 니고만의 관점으로 편집해 탄생한 것이 니고의 브랜드인거죠. 수년 간 쌓아온 통찰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일본어 표현에는 ‘이이토코토리(良いとこ取り)’라는 말이 있어요.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는 의미로, 다양한 문화들을 새로운 감성으로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일본의 문화를 뜻해요. 니고는 이이토코토리를 패션 밖의 영역에서도 발휘해요. 도쿄 시부야에 있는 블루보틀과 휴먼메이드의 콜라보 카페가 대표적이에요. 이 곳에서는 블루보틀과 휴먼메이드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편집해 디자인한 의류, 굿즈 등을 만날 수 있어요. 





블루보틀과 휴먼메이드 콜라보 매장과 다양한 굿즈 ©Human Made


니고는 직접 식당을 차리기도 했어요. 니고는 도쿄 하라주쿠에서 22년간 자리를 지킨 카레 전문점 GEEH를 정말 좋아했는데, 이 집이 2005년을 끝으로 문을 닫았어요. 이제는 맛 볼 수 없는 그 맛을 위해 니고가 움직였어요. GEEH의 셰프님의 도움을 받아 카레 가게를 연 거죠. 가게 이름은 ‘커리 업’. 밥을 사이에 두고 두 가지 카레를 한 그릇에 담은 GEEH의 시그니처 메뉴를 이 곳에서 재현했어요.



(좌) 자신의 가게에서 카레를 먹는 니고 ©Sabukaru / (우) 나카메구로 매장 ©Curry up



(좌) 시그니처 콤비네이션 카레 ©Human made / (우)가게와 캐릭터가 들어간 굿즈 모자 ©Curry up



하이 패션까지 진출한 스트릿 패션 디자이너

니고의 패션계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요. 다양한 영역의 패션에 해박하기 때문에 자신의 메인 영역인 스트릿 패션 뿐만 아니라 하이 패션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죠. 어디까지냐고요? 무려 루이비통에서도 니고의 유산을 찾아볼 수 있어요.


루이비통을 트렌드 최전선으로 이끈 디자이너가 있어요. 바로 버질 아블로죠. 그는 루이비통에 스트릿 감성과 예술적인 접근을 접목했어요. 그런 버질 아블로가 자신이 만난 패션 관계자 중 멘토로 인정했던 사람이 바로 니고에요. 그가 루이비통의 디렉터가 된 이후 처음으로 콜라보한 사람도 니고였고요. 두 사람이 함께 진행했던 루이비통 캡슐 컬렉션 ‘LV²’는 큰 성공을 거두었어요.



버질 아블로와 니고 ©Higsnobiety



두 사람의 콜라보로 탄생한 LV² 컬렉션 ©Louis Vuitton


이 성공은 이후 니고가 LVMH 산하 브랜드 겐조의 수장으로 발탁되는 계기가 돼요. 일본 시골 소년이 세계적인 하이 패션 브랜드의 수장이 된 감격적인 순간이었어요. 그만큼 니고의 첫 컬렉션은 모두의 관심을 받았어요. 스트릿 씬에서 그의 실력과 감각은 이미 검증됐지만 하이 패션에서의 인정은 또 다른 얘기니까요. 니고는 보란듯이 특유의 로고 플레이와 스트릿 감성을 다시 한 번 겐조에도 이식해냈죠. ‘스트릿이 쿠튀르를 지배했다’라는 찬사까지 받으면 겐조의 완벽한 부활을 알리는 쇼였어요.



겐조의 아트 디렉터가 된 니고 ⓒVogue



ⓒEsquire



니고의 감성이 느껴지는 파격적인 로고 플레이. 겐조가 갖고 있던 시시하다는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버린 대성공이었다. ⓒOffice Magazine


이제 니고는 범 패션계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디자이너가 되었어요. 이제 그에게 스트릿 패션, 하이 패션의 구분은 무의미해 보여요. 패션, F&B 등 산업의 구분도요. 최근 그의 관심사는 유럽의 빈티지 의류라고 해요. 미래에는 유럽 빈티지의 멋을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편집해 낼까요?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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