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별로 구멍난 매출을 메꾸는 고급 레스토랑의 대처법

밥 밥 리카드

2023.05.08

요일마다 가격이 달라지는 고급 레스토랑이 있어요. 이곳에선 똑같은 메뉴를 월요일 점심에 주문하면 토요일 저녁 대비 25% 저렴하게 먹을 수 있고, 화요일 저녁에 시키면 토요일 저녁보다 15% 낮은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식이에요. 메인 요리의 평균 가격이 25파운드(약 3만 8,000원)이고 35파운드(약 5만 3,000원) 전후의 요리도 꽤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할인 폭을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죠.


가격을 할인한다고 해서 양을 줄이거나 싼 재료를 쓰는 등의 꼼수를 부리는 것이 아니에요. 또한 한가한 시간대를 활용해서 가격을 조정하는 해피 아워 이벤트와도 달라요. 게다가 다른 메뉴와 묶어서 가격을 낮추는 세트 메뉴의 방식과도 거리가 멀어요. 그뿐 아니라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서 이미 만들어놓은 음식을 마감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할인해서 파는 방식과는 더더욱 차이가 있고요. 요일과 식사 시간대에 따라 똑같은 음식이 가격만 달라지는 거예요.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던 파격적인 시도를 한 곳은 런던 소호 거리에 위치한 ‘밥 밥 리카드’예요. 그렇다면 이 레스토랑은 무슨 연유로 이런 가격 체계를 도입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가격 할인에 따라 고급 레스토랑으로서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부작용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했을까요?


브랜드도 진화합니다. 이번 런던 위크에서는 <퇴사준비생의 런던>에서 소개했던 매장, 공간, 브랜드, 기업 등의 그동안의 변화를 업데이트 해봅니다. 참고로 밥 밥 리카드는 ‘시티 오브 런던’에 2호점을 냈고, 도쿄에 3호점 오픈을 준비 중이에요.


밥 밥 리카드 미리보기

 요일마다 메뉴의 가격이 달라진 사연

 #1. 체면을 살리는 ‘가격 체계’

 #2. 주문을 부르는 샴페인 ‘주문 버튼’

 #3. 선택을 이끄는 ‘메뉴판’

 티나지 않는 의도의 전제 조건




의도를 티나지 않게 전달하면 클래스가 생깁니다. 그래서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이유있는 감동이 있었죠. 영국을 영국답게 하는 요소들을 스케일이 넘치는 스토리로 풀어낸 것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 사회적 약자 혹은 주목받지 못하는 조연들을 향한 배려의 메시지를 녹여내 더 큰 울림을 만들었어요.


개막식은 영국을 대표하는 산업혁명과 대량생산 시대를 테마로 시작해요. 이 부분에서는 공장과 노동자 등 그 당시의 풍경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여성 참정권을 외치던 여성들의 모습을 빼놓지 않고 연출하죠. 이후 영국 국가를 합창하는 부분에서는 영국 국민들을 대표하여 청각 장애 어린이 합창단이 노래를 불러요. 


국가 연주가 끝나고 나서는 환자복 차림을 한 어린이들이 퍼포먼스를 하는데요. 이를 영국의 문학가들이 상상해낸 판타지들과 연결해 보여줘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영국의 국가 보건 의료 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와 어린이 자선 병원인 그레이트 올몬드 스트리트 병원(Great Ormond Street Hospital)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리 포터(Harry Potter)》, 《피터 팬(Peter Pan)》 등의 작품으로 포장해 소개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젊은 남녀의 러브 스토리에 맞춰 영국 대중문화를 메들리의 형식으로 선보여요. 이때 영상을 통해 다양한 키스신을 보여주면서 영국에서 최초로 동성 간 키스신을 방영한 드라마의 장면도 포함시키죠. 또한 성화 봉송 주자가 스타디움으로 들어오는 부분에서는 스타디움을 건설한 500여 명의 노동자들을 조명해요. 안전모를 쓴 노동자들이 스타디움 입구에서 성화 봉송 주자를 맞이하는 모습이 새로워요.


사회적 약자 혹은 주목받지 못하는 조연들까지도 무대 위로 소환한 연출자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등의 영화로 유명한 대니 보일(Danny Boyle) 감독이에요. 그는 모두가 하나되는 올림픽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의도를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해 개막식의 클래스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어요. 의도를 세련되게 전달한 건 개막식뿐만이 아니에요. 티켓 프로그램 총괄 담당자였던 폴 윌리엄슨(Paul Williamson)이 주도한 런던 올림픽의 입장권 티켓 판매도 주목할만해요.


런던 올림픽의 티켓 가격 체계는 티켓 가격의 숫자가 메시지를 담도록 설계했어요. 우선 기본 티켓은 20.12파운드(약 3만 원)에, 가장 비싼 티켓은 2,012파운드(약 302만 원)에 판매했죠. 최저가와 최고가를 100배 차이 나게 만들어 가격 차등을 확실하게 하면서도 언뜻 봐도 런던 올림픽을 상기시키는 숫자로 가격을 매겼어요. 


또한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는 ‘나이만큼 내세요(Pay your age)’라는 아이디어를 도입했어요. 청소년들의 나이가 티켓 가격이 되는 방식이에요. 이를 통해 티켓 가격을 최대 18파운드(약 2만 7,000원)로 설정하는 등 청소년들을 배려해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서도 모두가 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게 가격 체계를 디자인한 거예요.


게다가 런던 올림픽에서는 보통의 경우와 달리 비인기 종목 티켓을 할인해 팔거나 인기 종목 티켓과 묶어 팔지 않았어요. 가격 고수를 통해 모든 경기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에요.


티켓 가격에 의도를 담자 수익의 클래스가 달라졌어요. 런던 올림픽의 티켓 판매 수익 목표는 3억 7,600만 파운드(약 5,640억 원)였는데, 고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티켓 가격 체계 덕분에 목표보다 75%가량 높은 6억 6,000만 파운드(약 9,900억 원)의 티켓 수익을 달성했거든요.


의도를 티나지 않게 전달하며 클래스를 높인 런던 올림픽을 또 한 번 경험하려면 한참이 더 걸릴지 몰라요. 2012년의 런던 올림픽도 64년만에 런던에서 다시 열렸으니까 그만큼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수도요. 이처럼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어요. 시티호퍼스로서 런던을 여행하는 김에 의도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법을 경험하고 싶다면 ‘밥 밥 리카드(Bob Bob Ricard)’ 레스토랑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요일마다 메뉴의 가격이 달라진 사연

밥 밥 리카드는 러시아인인 레오니드 슈토브(Leonid Shutov)가 2008년에 런던 소호 지역에 오픈한 고급 레스토랑이에요. 두 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층의 공간은 파란색을 테마로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서 영감을 받아 이색적으로 디자인했어요. 지하층의 공간은 빨간색을 테마로 고급스런 클럽 분위기가 나도록 감각적으로 인테리어를 꾸몄고요. 주요 메뉴는 클래식한 영국 요리를 모던하게 재해석하거나 러시아 방식으로 조리한 음식으로 구성했어요. 고급 레스토랑이라 가격대가 높은 편이어도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음식의 맛을 고려하면 가성비 또한 높은 곳이죠.



밥 밥 리카드 전경입니다. 런던의 번화가인 소호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1층의 공간은 파란색을 테마로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서 영감을 받아 이색적으로 디자인했습니다. ©시티호퍼스



지하층의 공간은 빨간색을 테마로 고급스런 클럽 분위기가 나도록 감각적으로 인테리어를 꾸몄습니다. ©시티호퍼스


공간 구성과 메뉴 구성 모두 차별성을 확보했지만, 밥 밥 리카드를 더욱 눈에 띄게 하는 건 가격 체계예요. 이 매장의 메뉴는 요일이나 식사 시간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요. 똑같은 메뉴를 월요일 점심에 주문하면 토요일 저녁 대비 25% 저렴하게 먹을 수 있고, 화요일 저녁에 시키면 토요일 저녁보다 15% 낮은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식이에요. 메인 요리의 평균 가격이 25파운드(약 3만 8,000원)이고 35파운드(약 5만 3,000원) 전후의 요리도 꽤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할인 폭을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죠.


가격을 할인한다고 해서 양을 줄이거나 싼 재료를 쓰는 등의 꼼수를 부리는 것이 아니에요. 또한 한가한 시간대를 활용해서 가격을 조정하는 해피 아워 이벤트와도 달라요. 게다가 다른 메뉴와 묶어서 가격을 낮추는 세트 메뉴의 방식과도 거리가 멀어요. 그뿐 아니라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서 이미 만들어놓은 음식을 마감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할인해서 파는 방식과는 더더욱 차이가 있고요. 요일과 식사 시간대에 따라 똑같은 음식이 가격만 달라지는 거예요.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던 파격적인 시도예요. 밥 밥 리카드는 무슨 연유로 이런 가격 체계를 도입하게 되었을까요?


창업자인 레오니드 슈토브는 토요일 저녁 시간에는 식사를 하기 위해 400명이 줄을 서는데, 월요일 점심 시간에는 40명 밖에 없는 현상을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평일의 손해를 주말 장사로 메꾸는 고급 레스토랑의 운영 방식에 의문을 가진 거예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는 레스토랑 비즈니스 외에 다른 산업들을 벤치마킹했어요. 특히 시기별 수요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항공과 호텔 등의 가격 체계에 흥미를 가졌죠. 여행 산업에서 활용하고 있는 방식은 그가 고민하던 레스토랑 비즈니스의 문제를 해결해줄 단서로 보였어요. 그래서 2018년 1월, 밥 밥 리카드에 요일별 수요에 따른 가격 할인 체계를 도입했어요.


여행 산업을 벤치마킹한 가격 체계는 가격 할인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레스토랑 비즈니스를 음식이 아니라 공간을 파는 비즈니스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의 맛은 기본이라는 전제를 깔고, 매장 수익과 고객 만족 차원에서 비즈니스 모델에 변화를 주는 시도예요. 하지만 가격 할인 체계를 도입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할인이 각인되면 고급 레스토랑으로서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부작용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밥 밥 리카드는 새로운 가격 체계를 고객들에게 티나지 않게 전달합니다.



#1. 체면을 살리는 ‘가격 체계’

밥 밥 리카드에서는 수, 목, 금, 토요일 저녁 식사 메뉴를 정상 가격으로 책정하고 이를 제외한 요일과 식사 시간대를 할인의 대상으로 정했어요. 월요일 점심과 저녁 식사, 화요일과 수요일의 점심 식사는 25% 할인을 해주는 ‘오프 피크(Off-peak)’이고, 나머지 식사 시간은 ‘미드 피크(Mid-peak)’로 지정해 가격을 15% 할인해주는 식이에요.


상대적으로 수요가 낮은 요일과 시간대에 고객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새로운 가격 체계를 도입했다면, 오프 피크와 미드 피크 시간대에 가격 할인을 한다는 홍보를 할만도 해요. 그런데 매장 밖에서는 그 어떤 안내도 찾을 수 없어요. 매장 안으로 들어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예요. 매장 내 그 어디에서도 가격을 할인한다는 내용은 없죠. 


심지어 메뉴판에도 가격 할인 표시를 하지 않아요. 오프 피크에는 오프 피크 가격만 적힌, 미드 피크에는 미드 피크 가격만 적힌 메뉴판을 제공해요. 이쯤되면 레스토랑 근처를 지나가는 행인들도, 레스토랑 안에 있는 고객들도 가격 할인을 인지하지 못하는 정도예요. 가격 할인이 고급 레스토랑 이미지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토록 티를 내지 않으면 가격 체계에 따른 추가 수요를 기대하기 어려울텐데 도대체 왜 가격 할인을 꽁꽁 숨기는 것일까요?


밥 밥 리카드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급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고객들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고급 레스토랑을 찾는 경우는 드물어요. 대체로 미팅이 있어서 손님을 환대해야 하거나 기념일에 데이트를 하는 등 중요한 날에 고급 레스토랑에 가죠. 


이럴 경우는 보통 각자 계산하기보다 초대하는 쪽에서 계산을 해요. 그런데 메뉴판에 가격 할인이 버젓이 적혀 있다면 초대자가 불필요하게 머쓱해질 수 있어요. 약속한 시간이 오프 피크였을 뿐인데 할인 받으러 왔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할인 받으러 왔다 하더라도 굳이 그걸 알릴 필요는 없으므로 가격 체계를 드러내지 않는 거예요.


있어도 모르고 없어도 모를 가격 체계인데 밥 밥 리카드는 요일과 시간대별로 가격을 달리한 효과를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요? 고객들의 이용 패턴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중요한 날에 가는 레스토랑이라면 고객들은 지나가다가 들어가기보다 사전에 예약을 하고 방문해요. 그래서 한동안 가격 체계에 대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설명했었어요. 할인율 정도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할인된 가격을 비교할 수 있게 아예 메뉴판 자체를 홈페이지에 올려뒀죠. 예약하는 사람만 가격 체계를 알 수 있는 방식이에요. 


이러한 가격 체계가 알려지고 2호점인 ‘시티 오브 런던’ 매장을 낼 만큼 충분한 단골 고객이 생기자 지금은 홈페이지에서도 공개하진 않아요. 밥 밥 리카드를 자주 찾는 고객들의 경우, 가격 체계를 한 번 이해하면 그 다음부터는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활용할 테니까요.  



#2. 주문을 부르는 샴페인 ‘주문 버튼’

오프 피크와 미드 피크의 가격 할인이 파격적이긴 하지만, 전면적이진 않아요. 요리 메뉴에만 적용되는 가격이기 때문이에요. 요리 메뉴 외에 와인 등의 주류는 요일과 시간대에 관계없이 가격이 동일해요. 밥 밥 리카드의 1인당 평균 객단가가 약 100파운드(약 15만 원)이니 스타터와 메인 요리의 가격대를 고려했을 때 전체 금액 중 약 50% 정도가 할인 대상이에요. 이를 바탕으로 할인율을 환산해보면 오프 피크에는 결제 금액의 12~13%, 미드 피크에는 7~8%를 할인 받는 셈이죠. 물론 요리만 먹는다면 액면 그대로의 할인을 받을 수 있고요.


그렇다고 밥 밥 리카드가 요리 할인으로 고객들을 유인하고 주류에서 높은 이익을 챙기는 것도 아니에요. 와인의 가격 책정 방식 또한 고객 친화적이에요. 보통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와인 판매가의 50% 이상을 마진으로 남기는 것과 달리 밥 밥 리카드에서는 종류에 관계없이 도매가에 75파운드(약 11만 2,500원) 정도의 마진을 붙여요.


이 방식으로 가격을 매기면 저가의 입문용 와인의 경우는 가격대가 비슷하지만, 고급 와인이라면 가격 차이가 커져요. 예를 들어 2008년 ‘크룩(Krug)’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헬렌 다로즈(Hélène Darroze)에서 695파운드(약 104만 원)에 팔 때, 밥 밥 리카드에서는 348파운드(약 52만 원)에 제공하는 등 가격 혜택이 분명해지죠.


이처럼 요리는 할인해주고 주류는 제값을 받는다면 밥 밥 리카드 입장에서는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 와인 등의 주문을 늘려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에게 주문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래서 밥 밥 리카드는 주문을 넌지시 유도하는 장치를 마련합니다. 모든 테이블에 분홍색의 ‘샴페인 주문 버튼(Press for Champagne)’을 눈에 띄게 설치한 거예요. 


이 버튼은 직원을 호출할 때 누르는 버튼이 아니라 샴페인을 주문할 때만 사용하는 버튼이에요. 주류 주문을 유도하기 위해 중간 중간 고객에게 말을 걸며 와인이나 샴페인 등을 권유하는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에요. 언제든 샴페인이 필요하면 불러달라는 뜻을 식사 시간 내내 전달하며 샴페인 주문을 상기시키면서도, 고객들에게 직접적인 압박을 주지 않는 세련된 방법이에요.



직원을 호출할 때 누르는 버튼이 아니라 샴페인을 주문할 때만 사용하는 버튼입니다. 눈에 띄는 분홍색 버튼이 샴페인 주문을 유도합니다. ©시티호퍼스



모든 테이블에는 샴페인을 보관할 수 있는 얼음통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이 통에 샴페인을 채워야 테이블 분위기가 완성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합니다. ©시티호퍼스


또한 주문 버튼을 ‘주류’ 또는 ‘와인’이 아니라 스파클링 와인의 일종인 ‘샴페인’으로 표기한 것도 고객들의 상황과 심리를 이해한 전략적 선택이에요. 사업적으로 축하할 일이 있거나 기념일에 데이트로 오는 고객들이 많은데, 그들에겐 축하주로 샴페인이 필요하니까요. 샴페인 주문 버튼으로 고객들의 행동을 유도한 덕분에 평균적으로 절반이 넘는 테이블에서 샴페인을 주문해서 마셔요. 레스토랑 오픈 초기부터 도입했던 샴페인 주문 버튼은 밥 밥 리카드의 시그니처로 자리잡았고, 새로운 가격 체계에서는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버튼으로 거듭나죠.



#3. 선택을 이끄는 ‘메뉴판’

메뉴판에 가격 할인에 대한 내용은 숨겨두었지만, 추천 메뉴에 대한 표시는 확실하게 드러내요. 스타터, 메인 요리, 사이드 메뉴, 디저트 등 카테고리별로 추천 메뉴를 메뉴명, 메뉴 설명, 가격까지 빨간색으로 하이라이트해 눈에 띄게 만들었거든요. 또한 카테고리의 테두리를 빨간색 선으로 둘러 카테고리 자체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굴요리(Oysters),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 샴페인 등의 카테고리는 전체 메뉴를 추천할만큼 자신있다는 뜻이에요.


눈길을 사로잡는 추천 메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보여요. 카테고리별로 가장 비싼 음식을 빨간색으로 강조했어요. 물론 가격과 추천 음식 간에는 상관관계가 있어요. 추천할 만한 메뉴는 가장 맛있고 신경 쓴 음식이기 때문에 가격을 가장 높게 책정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밥 밥 리카드의 메뉴 추천은 고객들에게 자신 있으면서도 비싼 메뉴를 제안하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티나지 않게 고객의 행동을 유도하는 역할도 해요.


가격 전략에 대한 내용을 총망라한 책인 《헤르만 지몬의 프라이싱(Confessions of the Pricing Man)》을 보면 ‘누구도 사지 않는 효자 상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200달러(약 26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여행 캐리어를 사러 온 고객에게 다양한 캐리어를 취급한다는 것을 알리는 척하며 900달러(약 117만 원) 짜리 캐리어를 보여주면 고객은 준거 기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900달러 짜리 캐리어를 사지 않더라도 예산을 넘어선 250~300달러(약 32~39만 원)의 캐리어에 지갑을 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에요. 매장에서 가장 비싼 캐리어가 구매자의 지불용의 가격 수준을 높인 셈이죠. 그래서 900달러 짜리 캐리어는 팔리지 않더라도 진열해둘 필요가 있는 효자 상품이에요.



크기 순으로 식사류, 주류, 특별 추천 와인 등의 메뉴판입니다. 메뉴명, 설명, 카테고리 등을 의도에 맞게 빨간색으로 강조하며 고객의 선택을 넌지시 돕습니다. ©시티호퍼스


헤르만 지몬의 설명을 적용해보면 밥 밥 리카드에서 추천하는 카테고리별 가장 비싼 메뉴도 유사한 역할을 해요. 고객들은 레스토랑에서 추천하는 가장 비싼 메뉴를 주문하지 않더라도, 빨간색으로 강조한 메뉴와 그 가격을 봤기 때문에 지불용의 가격 수준이 자기도 모르게 높아져요. 고급 레스토랑이라 메뉴의 전반적인 가격대가 높지만, 추천 메뉴이자 효자 메뉴 덕분에 고객들의 가격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줄어들 수 있는 거예요. 밥 밥 리카드 입장에서는 추천 메뉴가 팔리건, 그렇지 않건 전체적인 매출을 상승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죠.


또한 추천 메뉴를 보다보면 특이점도 발견할 수 있어요. 디저트 메뉴에서 잔 단위의 스위트 와인을 판매하는데, 이 중 뱅 드 콘스탄스(Vin De Constance)와 샤토 디켐(Château d’Yquem)에는 다른 추천 메뉴들과는 달리 메뉴명과 가격은 기본색인 검정색으로 두고 메뉴 설명만 빨간색으로 강조했어요. 설명에 더 집중해달라는 뜻이에요. 게다가 이 2가지 메뉴는 ‘전설적인 스위트 와인’이라는 별도의 작은 메뉴판을 만들어 비치할 정도로 추천에 공을 들이죠. 런던 시내의 다른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잔 단위로 경험할 수 없는 와인이니까요. 고객들이 특별한 경험을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메뉴판에 담은 거예요.



티나지 않는 의도의 전제 조건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티나지 않는 의도를 ‘넛지(Nudge)’라고 해요.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의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 교수는 공동저서인 《넛지》를 통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의 영어 단어를 행동 경제학 분야에 적용해 의미를 확장시켰어요.


이 책으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의 반열에 오른 그가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에 쓴 ‘좋은 넛지, 나쁜 넛지(The Power of Nudges, for Good and Bad)’ 칼럼에서 《넛지》 책에 사인을 해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을 받을 때마다 사인과 함께 적는 문구가 있다고 밝혔어요.


“좋은 목적을 위해 넛지해 주세요.” (Nudge for good.)


저자로서의 기대라기보다 간곡한 청에 가깝다고 덧붙이며, 그는 넛지 사용에 있어 3가지 원칙을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해요. 첫째 모든 넛지는 투명하면서도 상대방을 오도해서는 안되고, 둘째 넛지에 반응하고 싶지 않다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하며, 셋째 넛지를 통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맥락을 만드는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들은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선한 의도를 가지고 넛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설명이에요.


만약 그가 런던을 방문할 일이 있어서 밥 밥 리카드에 간다면, 칭찬의 의미로 주인장의 옆구리를 슬쩍 찌를지도 몰라요. 고객의 지갑을 털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의 만족을 열기 위해 티나지 않게 의도를 전달하는 시도들을 하고 있으니까요. 




Reference

 밥 밥 리카드 공식 홈페이지

 헤르만 지몬의 프라이싱(헤르만 지몬 지음, 서종민 옮김, 쌤앤파커스)

 The complete London 2012 opening ceremony, Olympic

 꼼꼼히 비교해 본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vs 런던올림픽 개막식, 고재열의 독설닷컴

 Eccentric London Restaurant, Bob Bob Ricard, Opens New £3 Million Club Room, Forbes

 A Novel Approach Comes to Restaurant Pricing, Bloomberg

 Top London restaurant pioneers new ‘travel industry’ pricing model by charging customers different prices for peak and off-peak dining, Daily Mail

 London restaurants slash prices for fine wine, Reuters

 좋은 넛지, 나쁜 넛지,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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