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좋은 위치에 눈에 띄는 매장 vs. 찾아야만 보이는 매장
여러분이라면 어떤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유동인구가 많은 역세권 또는 유명한 상권의 핵심 입지에 매장을 낸다면 고객 유치에 유리할 수 있지만 임대료가 높아 고정비 부담이 커집니다. 반면 매장의 위치에 상관없이 고객이 찾도록 만든 매장은 우연한 유동인구 유입에는 불리할 수 있어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기획력이 있다면 해볼 만한 게임입니다. 특히 자본에 한계가 있다면 더욱 후자를 선택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더 유리해 보입니다.
숨어 있어도 찾고 싶은 매장을 만들고 싶다면 매장을 숨기는 컨셉의 대표 격인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피크이지 바는 1920년 대 미국 금주법 시대에서 유래했습니다. 의료 또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주류 외에는 양조 및 판매가 전면 금지되었는데, 이 때 술집의 모습을 감추고 몰래 영업을 하던 바들을 스피크이지 바라고 불렀습니다. 금주법이 폐지되고 몇십 년 동안 잊혀졌던 스피크이지 바는 뉴욕의 '플리즈 돈 텔(Please Don't Tell)'과 함께 2000년대 후반부터 부활하기 시작했습니다. 플리즈 돈 텔은 핫도그 가게 안의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걸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바로, 전 세계적인 스피크이지 바 붐을 이끌었습니다.
현 시대의 스피크이지 바는 영업을 숨기기 위한 목적 대신 숨은 매장을 찾는 재미를 위해 매장을 감춥니다. 대만 타이베이에서도 흥미로운 스피크이지 바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화 <킹스맨>을 모티브로 한 '르 키에프(Le Kief)'는 테일러 숍으로 둔갑해 아는 사람만 찾을 수 있습니다. 르 키에프는 겉으로 보기에도 그렇고,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도 평범한 테일러 숍처럼 보입니다. 중국어 상호명도 '링주양푸(菱玖洋服)'로 '양복'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르 키에프의 매장입니다. 매장 전면의 유리창 안에 양복을 입은 마네킹이 있는 것은 물론, 매장 내부에도 여느 양복점과 다름없는 양복, 구두, 셔츠 등이 걸려 있어 술집인지 알아볼 수 없습니다. ⓒLe Kief
바의 입구는 테일러 숍 벽에 있는 커다란 거울입니다. 술집으로 통하는 거울 문을 열기 위해서는 암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암호는 '링주'와 음이 비슷한 숫자 '09'입니다. 거울 옆에 있는 전화기에서 0과 9를 누르면 커다란 거울 문이 열리면서 술집으로 통하는 좁은 길이 등장합니다. <킹스맨>에서 테일러 숍 안에 지문 인식 기능이 있는 거울 위에 손을 대면 거울이 열리며 비밀 장소가 나타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치 <킹스맨>의 아날로그 버전 같습니다.
그런데 타이베이에는 스피크이지 바도 아닌데 테일러 숍 뒤에 숨은 매장이 있습니다. 르 키에프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벗 위 러브 버터(But. we love butter)'입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곳에서는 최상급 버터가 아낌없이 들어간 쿠키를 판매합니다. 여느 스피크이지 바처럼 겉에서는 쿠키 매장인지 알아차릴 수 없어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똑같이 테일러 숍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매장이라도 벗 위 러브 버터가 매장 앞에 테일러 숍을 내세운 이유도, 방문한 고객이 할 수 있는 경험도 다릅니다. 이 개성 넘치는 쿠키 가게는 테일러 숍을 어떻게 활용했을까요?
테일러 숍의 모습을 한 벗 위 러브 버터입니다. ⓒ트래블코드
이유있는 반전이 있는 매장 경험
벗 위 러브 버터의 테일러 숍은 매우 그럴 듯 합니다. 보통의 스피크이지 바에서는 입구를 감추기 위한 공간이 직접적으로 매출을 내지 못하기에 많은 면적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벗 위 러브 버터의 테일러 숍은 맞춤 양복을 판매해도 될 법한 면적과 구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세련된 디자인의 각종 양복과 셔츠, 타이, 구두 등이 현실감을 더합니다. 회화 작품으로 치면 마치 하이퍼 리얼리즘 같습니다. 테일러 숍에 들어온 고객은 이 곳을 테일러 숍으로 착각하는 '척'이 아니라 정말로 속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본진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솟아 오릅니다.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양복, 구두, 셔츠, 타이 등이 진짜 테일러숍을 방불케 합니다. ⓒ트래블코드
피팅룸은 총 3개입니다. 3개의 문 중 하나만이 쿠키 매장으로 통해 있습니다. ⓒ트래블코드
벗 위 러브 버터는 사실주의 테일러 숍으로 정체를 숨기고 반전 있는 고객 경험을 디자인합니다. 매장 밖에서도, 안에서도 버터 쿠키 가게가 아닌 양복을 파는 테일러 숍처럼 보이지만 매장 안쪽에 위치한 피팅룸에서부터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테일러 숍에는 3개의 피팅룸이 있는데 이 중 하나는 버터 쿠키 매장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피팅룸을 통과해 계단을 내려가면 비일상적 인테리어와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버터 쿠키 매장이 펼쳐집니다. 클래식한 테일러 숍의 피팅룸에서 통통 튀는 감성의 버터 쿠키 가게를 만나는 경험은 갓구운 쿠키만큼이나 신선합니다.
테일러숍과 쿠키 매장을 연결하는 계단입니다. ⓒ트래블코드
벗 위 러브 버터의 매장 내부입니다. ⓒ트래블코드
그런데 왜 하필 테일러 숍이었을까요? 테일러 숍이 개인에게 꼭 맞는 맞춤 정장을 판매하듯, 벗 위 러브 버터도 개인화된 경험이 가능한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벗 위 러브 버터는 버터 쿠키를 영업하는 것보다는 다채로운 경험을 설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다양한 종류의 버터 쿠키를 상시 판매하는 것은 기본, 시즌이나 기념일에 따라 새로운 맛의 쿠키를 한정판으로 출시하기도 해 개인의 입맛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습니다. 게다가 쿠키를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은 쿠키 상자의 포장 디자인도 고를 수 있고, '특별한 누군가에게', '나의 연인에게' 등 쇼핑백에 붙일 태그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벗 위 러브 버터라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바를 오프라인 경험으로 구현한 셈입니다.
ⓒ트래블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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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전환을 위한 넛지, 서비스
매장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아무리 다채로울지라도, 고객이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면 반쪽짜리 경험 디자인입니다. 고객을 위한 경험 디자인의 핵심은 매장의 주인공인 쿠키에 있습니다. 벗 위 러브 버터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버터 쿠키의 맛을 고객에게 자신있게 선보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파격적입니다. 매장에 들어오는 모든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고 '무료'로 매일 다른 종류의 버터 쿠키 1/2개를 개별 포장해 차 한 잔과 함께 내어줍니다. 보통의 시식코너처럼 쿠키를 잘게 잘라 집어 먹게 해 둔 것이 아니라 공짜 쿠키일지라도 대접받는 기분이 들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벗 위 러브 버터의 매장에서 판매 기능은 거들 뿐, '시식'이 매장의 주요 기능입니다.
벗 위 러브 버터의 매장에 방문한 고객은 이처럼 쿠키와 차를 무료로 대접받습니다. ⓒ트래블코드
고객이 무료로 받은 쿠키와 차를 맛볼 수 있는 매장 내부 모습입니다. 세련된 인테리어로 머무르고 싶은 공간을 만들어 고객이 제대로 대접받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트래블코드
다음은 고객의 몫입니다. 고급스러운 맛의 버터 쿠키를 무료로 대접받은 고객의 반응은 어떨까요? 매장으로부터 호의를 받았으니 그에 따른 보답을 해야한다는 '상호성의 원칙'이 작용해 높은 확률로 버터쿠키를 구매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심리적인 요인에 더해 입 안을 감싸는 고소하고 달콤한 풍미의 버터 쿠키는 한 입으로 만족하기 어렵습니다. 입맛을 돋우었으니 버터 쿠키를 더 먹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 것입니다. 이처럼 제품 판매가 아닌 고객 경험에 집중하자, 제품 판매는 자연스럽게 가능해 집니다.
그렇다면 벗 위 러브 버터는 수익성은 어떨까요? 버터 쿠키 1/2개와 차 한 잔을 무료로 내어 주고 1개를 판매한다면 터무니없는 마진율이겠지만, 벗 위 러브 버터는 상품 구성에서도 지혜를 발휘합니다. 6개입 또는 10개입 단위로만 쿠키를 판매하는 것입니다. 1/2개의 쿠키와 차 한 잔을 쿠키 1개로 치환해 봅시다. 고객이 가장 적은 단위인 6개입 1상자를 구매한다 하더라도 6개 가격에 7개를 내어 주는 셈이니, 결과적으로 17%의 할인 효과로 1상자를 판매한 것입니다. 10개입을 구매했을 때에는 10% 할인과 동일합니다. 여기에 버터, 파인애플, 치즈, 초콜릿 등 구미가 당기는 다양한 쿠키 종류와 쿠키 종류별로 고를 수 있는 3가지 포장 디자인 덕분에 상품의 변주는 늘어납니다. 늘어난 변주는 선택지를 넓히고, 업셀링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결과적으로는 할인 효과와 같지만, 단순히 할인 혜택을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벗 위 러브 버터에는 상시 판매하는 5가지 맛의 버터 쿠키와 1가지 맛의 생크림 롤케이크가 있습니다. 맛 별로 고를 수 있는 포장 디자인이 2~3가지로 다양합니다. ⓒ트래블코드
경험의 완성도를 높이는 기본기와 디테일
벗 위 러브 버터는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테일러 숍에 충분한 공간을 할애해 그럴 듯하게 지어 놓고, 무료 시식을 위한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적극적인 영업은 부재한 채로 제품 구매 여부를 고객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판매 전략에서 벗 위 러브 버터의 남다른 레벨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 쿠키를 먹어 보기만 하면 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입니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벗 위 러브 버터의 버터 쿠키를 한 번 먹어본 사람이라면, 그 자신감이 탄탄한 제품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벗 위 러브 버터는 버터 쿠키에 들어가는 재료인 버터, 소금 등도 최고급으로 공수해 사용합니다. 버터는 프랑스산 에쉬레(Échiré) 버터, 소금은 대만에서 소금으로 유명한 자이(嘉義) 현의 천일염, 파인애플은 대표 산지인 대만 타이난(臺南) 산을 사용하는 식입니다. 품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레시피가 뒷받침되어 고소한 버터의 풍미와 개성있는 부재료들의 맛이 풍부하게 살아 있어 잊기 힘든 맛을 내는 것은 기본입니다. 무료 시식을 제대로 하기 위한 매장을 운영하는 만큼, 한 번의 시식으로 고객들을 사로 잡을 제품이 기반을 충실히 다지고 있습니다.
벗 위 러브 버터를 찾게 만드는 건 버터 쿠키 맛 뿐만이 아닙니다. 매장에서의 즐거운 경험 또한 중요한 요인인데, 이러한 경험은 매장 곳곳의 디테일로 빈틈 없이 메워 집니다. 벗 위 러브 버터에서의 독특한 경험은 매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매장 앞 뜬금없는 문 오브제가 시선을 사로 잡고, 매장 간판 밑에는 매장 안으로 들어 가는 여정에 대한 힌트가 아이콘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매장 안에서는 피팅룸, 쿠키 매장 입구, 매장 안 곳곳, 마지막으로 매장 밖으로 나가는 문까지 위트 있는 경험과 문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소하지만 적절한 디테일이 매장 경험의 밀도를 높입니다.
매장 앞 테라스 자리에도 문을 설치해 길가는 행인들의 눈을 사로 잡고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트래블코드
매장 앞 돌로 된 커다란 간판에는 벗 위 러브 버터 매장으로 가는 여정에 대한 힌트가 있습니다. 아이콘으로 표현된 양복, 문, 계단을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트래블코드
테일러 숍의 3개의 피팅룸 중, 매장으로 통하는 문이 아닌 문을 열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누군가 옷을 갈아 입는 도중 피팅룸을 열었을 때의 당혹스러운 상황을 연출해 장난기를 더합니다. ⓒ트래블코드
피팅룸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문구입니다. ⓒ트래블코드
매장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에 적힌 문구입니다. '내가 끝나고, 당신이 시작되는 곳이다'라는 문장으로 매장을 떠나는 고객을 배웅합니다. ⓒ트래블코드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를 밝히는 힘
고객의 발걸음은 붙잡고, 지갑은 열게 만든 벗 위 러브 버터에서 오프라인 매장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비즈니스의 결과값인 매출을 되짚는 과정을 통해 단서를 해석하고 오프라인의 미래를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은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요? 먼저 고객이 매장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구매하기까지의 여정을 크게 3단계로 나누어보겠습니다.
1. 매장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 중의 몇 %가 매장에 방문하는가?
2. 방문객 중에 몇 %가 구매하는가?
3. 구매자 1명당 객단가는 얼마인가?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각 단계의 수치를 높이는 것은 늘 숙제입니다. 1번을 위해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 매장을 열거나 온오프라인 광고 매체에 많은 광고비를 태우기도 합니다. 2,3번을 위해서는 실력이 좋은 영업 인력을 채용하기도 하고, 업셀링을 위해 영업 인력에게는 실적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종래의 방식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장 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임대료, 광고비, 인건비 모두 오르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효율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벗 위 러브 버터 매장의 위치는 유동인구가 많은 입지가 아닙니다. 근처에 '푸진 스트리트(Fujin Street)'라는 상권이 있기는 하지만, 이 상권에서 두 블럭이나 벗어나 있습니다. 매장 안에서도 서빙과 계산을 담당하는 점원이 있을 뿐, 적극적인 세일즈 인력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벗 위 러브 버터는 신선한 고객 경험과 감각적인 디자인, 감동적인 쿠키의 맛으로 고객의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놓습니다.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한 개인화된 경험을 통해 매장의 존재감을 확고하게 한 것입니다. 구매 전환을 유도하는 서비스 설계와 객단가를 높이는 상품 구성은 덤이고요. 한 번 다녀간 고객들은 SNS나 입소문으로 광고판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벗 위 러브 버터는 매장을 '콘텐츠'로 만들어 사람들이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공간을 콘텐츠화해서 발길을 끌어 유리한 입지나 광고의 도움 없이도 트래픽을 창출해 낸 것입니다. 미래에는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찾아 가고 싶은 콘텐츠로 채워진 매장이 치열한 오프라인의 세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약간의 비즈니스적인 감각을 더해 수익성까지 챙길 수 있다면 성공 확률은 더 높아집니다. 더 이상 자본력의 영역이 아닌, 기획력과 창의력의 영역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무게 중심이 옮겨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생존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더 다채로운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