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도 진화합니다. 이번 도쿄 위크에서는 2017년에 출간한 <퇴사준비생의 도쿄>에서 소개했던 매장, 공간, 브랜드, 기업 등의 그동안의 변화를 업데이트 해봅니다. 오늘 업데이트 할 브랜드는 긴자 지역에 위치한 줄서서 먹는 식빵 가게 ’센터 더 베이커리‘입니다.
센터 더 베이커리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살아남았어요. 레스토랑 없이 식빵만을 판매하는 매장이자 2호점도 그대로 있고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영업 시간이에요. 저녁 시간을 없애고, 레스토랑의 오픈 시간을 10시에서 9시로 한 시간 당겼어요. 대신 10시 전까지는 메뉴를 간소화했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여전히 줄서서 먹는 센터 더 베이커리로 다시 한 번 찾아가 볼까요?
센터 더 베이커리 미리보기
• 전초전: 최고를 찾아서
• 전면전: 이것이 식빵이다
• 측면전 #1: 페어링으로 식빵의 격을 높인다
• 측면전 #2: 틀을 깰수록 고객 경험은 커진다
• 측면전 #3: 어울리는 식빵은 따로 있다
‘모노즈쿠리’ 정신.
온 힘을 다해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에요. 장인정신을 의미하는 말로, 일본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죠. 그래서 일본에는 최고의 품질로 승부하는 가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어요. 먹거리 영역도 예외가 아니에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특정 제품군에만 몰두하며, 남들과 비교를 거부하는 품질로 승부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볼게요. 도쿄 기치조지역 부근에는 양갱 전문점 ‘오자사’가 있어요. 매장이 1평 정도로 작은데도 불구하고 연간 매출이 3억엔(약 30억원)이에요. 이 가게에선 양갱과 모나카 딱 두 종류만 판매하는데요. 하루에 150개만 한정으로 파는 양갱을 사기 위해 손님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죠. 종교의식을 방불케 하는 과정을 거쳐 최고의 양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에요.
또 다른 예도 있어요. 일본에 카스텔라를 처음으로 들여온 곳은 ‘후쿠사야’예요. 이 가게에선 4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카스텔라만 판매하고 있죠. 달걀 거품 내기, 단맛 만들기, 구워내기 등의 단계마다 장인 한 사람이 각 공정을 전담하는 전통을 16대에 걸쳐 지켜오는 곳이에요.
하지만 최고의 품질로 만든다고 해도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같은 분야에서도 극상의 제품력을 추구하는 업체가 여럿 있기 때문이에요. 양갱의 경우, 오자사 말고도 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동시에 양갱을 세련되게 재해석하는 ‘토라야’가 있어요. 카스텔라도 후쿠사야를 포함하여 나가사키 3대 카스텔라 가게로 불리는 ‘쇼오켄’, ‘분메이도’가 있고요. 최고의 품질로 승부하는 가게라 할지라도 차별적 경쟁력이 필요한 이유예요.
그렇다면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품질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것 외에 차별화할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줄 서서 먹는 식빵 가게 ‘센터 더 베이커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센터 더 베이커리는 식빵 품질뿐만 아니라 식빵을 경험하는 2000여 가지 방법을 제안하며 독보적인 식빵 가게로 자리 잡았어요.
영업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센터 더 베이커리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전초전: 최고를 찾아서
“최고의 빵은 최고의 재료, 최고의 설비, 최고의 장인에서 나온다.”
센터 더 베이커리를 만든 니시카와의 생각이에요. 당연한 소리 아니냐고요? 맞아요. 하지만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실행했어요.
그는 일본 제빵 업계가 가격 경쟁을 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품질로 승부하는 빵집을 열고 싶었죠. 제빵 기술자가 아니었던 그는 빵집을 열기 전에 스터디를 하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갔어요. 프랑스는 빵이 맛있기로 유명하니까요. 파리에서 정상급으로 불리는 빵집 100곳 이상을 돌아다니며, 최고의 맛을 내는 빵집을 찾았어요. 그리고는 빵집을 요리조리 뜯어본 끝에, 맛의 근원이 제분회사 ‘비론(Viron)’의 ’레트로돌‘ 밀가루라는 것을 발견했어요.
비결을 알고나니 무엇을 해야할지가 분명해졌어요. 협상을 통해 비론의 밀가루를 일본에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거예요. 그 권리를 가지고 시부야에 ‘비론’이라는 빵집을 오픈했죠. 하지만 원재료인 밀가루만으로 최고의 빵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니시카와는 제빵 설비도 프랑스에서 직수입해서 설치했고, 밀가루 외에 물이나 소금 등의 재료도 프랑스에서 공수해서 사용했어요.
프랑스 본토의 맛을 낸 비론은 일본인은 물론 도쿄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에게도 인기를 얻었어요. 빵집은 흥행했지만, 그에겐 여전히 갈증이 있었어요. 일본 제빵 업계가 가격 경쟁이 아니라 품질 경쟁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빵집을 시작했는데, 프랑스산에만 의존한다는 한계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비론에서 10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3년에 센터 더 베이커리를 새롭게 열었어요. 일본산 밀가루로도 유럽산 못지않은 빵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최고의 식빵 가게가 되기 위해 식빵 자체로 승부하는 전면전은 물론이고, 식빵을 먹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하는 측면전도 펼칩니다.
손님들은 오픈 키친을 통해 제빵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센터 더 베이커리
전면전: 이것이 식빵이다
‘JP, NA, EB.’
센터 더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식빵의 종류예요. 분류 기준부터 남달라요. 보통의 식빵 가게에선 우유식빵, 잡곡식빵 등 첨가물을 중심으로 식빵을 구분하는 반면, 센터 더 베이커리에서는 국가별 스타일로 구분하죠. JP는 일본 스타일, NA는 미국 스타일, EB는 영국 스타일의 식빵이에요. 밀가루의 종류와 숙성 시간, 반죽의 조합 등 국가별로 식빵을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활용한 거예요.
세 종류의 식빵은 맛과 식감이 저마다 달라요. JP는 촉촉하고 쫄깃해 토스트보다는 그대로 먹는 것이 더 맛있는 식빵이에요. NA는 바삭하고 쫄깃한 식감이어서 토스트로 먹거나 그대로 먹어도 맛있죠. EB는 상부가 봉긋하게 올라오는 형태로 얇게 썰어서 토스트로 먹을 때 제격이고요. 종류와 관계없이 고급 재료와 전문가의 손길로 만들기 때문에 줄 서서 먹을 만한 맛이 나죠.
식빵, 버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설명서에서 차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물론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은 전면전의 기본이에요. 하지만 센터 더 베이커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어요. 식빵의 종류에 JP, NA, EB 등 국가별 스타일을 이름으로 붙였죠. 이렇게 하니 센터 더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식빵이 마치 각 국가를 대표하는 맛이라는 인지가 생겨요. 식빵 구색과 이름짓기를 통해 마치 식빵의 이데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해요.
측면전 #1: 페어링으로 식빵의 격을 높인다
센터 더 베이커리에서는 식빵만 파는 게 아니에요. 식빵을 경험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별도로 있어요. 이곳에서는 센터 더 베이커리에서 만든 식빵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제안해요. 식빵과 함께 먹는 버터, 잼의 조합을 통해서죠. 주문을 하려고 메뉴판을 보면 3가지의 세트 메뉴가 있어요.
A세트는 ‘식빵+버터’, B세트는 ‘식빵+잼’, C세트는 ‘식빵+버터+잼’으로 구성되어 있죠. 빵을 2종류로 할지 아니면 3종류로 할지에 따라 각 세트 내에서 가격이 달라지고요. 식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니, 세트의 옵션만 보면 별다를 게 없어 보여요. 하지만 여기 포함된 3종류의 버터와 6종류의 잼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달라져요.
식빵 세트를 주문하면 함께 나오는 6종류의 잼입니다. ⓒ시티호퍼스
버터는 최고급 버터의 대명사인 프랑스산 에시레 버터, 센터 더 베이커리 모기업에서 직접 생산하며 일반 판매는 하지 않는 북해도산 비에이 버터, 그리고 북해도산 버터 중 가장 인기 있는 요츠바 버터가 제공돼요. 또한 잼에는 월드 챔피언에 세 번이나 이름을 올린 프랑스산 메종 프란시스 미오(Maison Francis Miot), 벨기에에서 유명한 르펭 코티디앵(Le Pain Quotidien)의 초콜릿 스프레드 등이 포함되어 있어요.
센터 더 베이커리의 이러한 접근은 영리한 방식이에요. 이미 정상급 지위를 확보한 버터, 잼과 페어링함으로써 고객들이 함께 먹는 식빵을 자연스럽게 그와 유사한 수준으로 여기게 되니까요. 페어링을 음식 간의 궁합뿐만 아니라 ‘인식 간의 궁합’으로도 활용하는 거예요. 최고급이어서 또는 구하기 어려워서 쉽게 먹어볼 수 없는 버터와 잼 덕분에 식빵의 가치도 높아지죠.
측면전 #2: 틀을 깰수록 고객 경험은 커진다
센터 더 베이커리에서는 주문을 한 후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돼요. 누구나 식빵을 구울 토스터를 가져 와야 하죠. 식빵을 주문하면 토스터에 구워서 주는 게 아니라, 각자가 가져온 토스터에 직접 구워 먹어야 하는 거예요. 직원이 해야할 일을 고객에게 시키는 거 아니냐고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고객이 원하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이해를 돕기 위해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의 말을 빌려와 볼게요.
“남에게 일을 시키려면 그 일을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하면 된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이모가 시킨 페인트칠을 하기 싫었던 톰은 친구들 앞에서 일부러 즐겁게 페인트칠을 해요. 어찌나 신나 보이는지 친구들이 한 번만 칠해봐도 되냐고 애걸복걸이죠. 결국 친구들이 사과며 공깃돌이며 애장품을 갖다 바치고 나서야 톰은 선심 쓰듯 페인트 솔을 건네요. 일을 덜어낸 톰도, 남의 일을 대신 한 친구도 모두 행복한 결말이에요. 톰의 영악함이라기보다 동기부여에 대한 삶의 지혜에 가까워요.
센터 더 베이커리에서 토스터를 가져와 직접 식빵을 구워 먹는 과정도 마찬가지예요. 일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즐거운 과정으로 만들어 고객들이 하고 싶게 끔 설계했죠. 방법은 간단해요.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토스터를 사용해볼 수 있도록 해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거예요. 레스토랑 한쪽 벽면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일본 등 각국의 고급 브랜드 토스터 15여 종이 진열해 놓았어요. 토스터를 고르는 재미가 있죠.
‘발뮤다’, ‘듀얼릿’, ‘러셀홉스’와 같은 고가의 토스터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이처럼 센터 더 베이커리는 식빵을 먹는 경험의 시작을 바꿨어요. 식빵을 먹는 것에서 토스터를 선택하는 것으로요. 별 거 아닌 듯 보이지만, 고객 경험 관점에서는 큰 차이예요. 토스터에 대한 선택권을 고객에게 제공하자 식빵을 즐기는 방법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니까요. 15여 종의 토스터가 저마다 특색이 있어서 각 토스터로 굽는 식빵의 맛이 모두 달라져요.
이미 식빵, 버터, 잼, 음료의 종류의 조합만으로도 식빵을 먹는 방식이 다양해져요. 그런데 여기에다가 토스터가 15여 가지 추가되니 수천가지로 늘어나죠. 단순히 고객에게 고급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것 이상으로 식빵을 즐기는 고객 경험을 다채롭게 하는 거예요.
측면전 #3: 어울리는 식빵은 따로 있다
식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 먹을 수도 있지만, 식빵을 샌드위치 등으로 만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센터 더 베이커리에서는 샌드위치류도 팔아요. 그렇다면 식빵을 토스트로 먹는 것과 샌드위치로 먹는 것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식빵을 토스트로 먹을 때는 식빵이 주재료이지만, 샌드위치류로 먹을 때 식빵은 부재료가 돼요. 샌드위치 속의 내용물이 맛을 내는 기본 재료이고, 식빵은 그 재료를 감싸며 모양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센터 더 베이커리는 샌드위치류를 통해서도 식빵의 클래스에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요. 고객들이 식빵의 식감과 맛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게 하려고 샌드위치에 맞는 식빵의 종류와 두께를 달리하거든요.
ⓒ시티호퍼스
인기 메뉴인 식빵 세트 외에도 식빵으로 만든 샌드위치와 토스트를 판매합니다. ⓒ시티호퍼스
예를 들어 볼게요. 오믈렛 샌드위치나 과일 샌드위치처럼 토스트할 필요 없이 촉촉한 식감이 중요한 샌드위치에는 JP 식빵을 사용해요. 또한 타마고 샌드위치처럼 부드러운 샌드위치를 만들 때는 속재료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1.7센티미터의 두께로 식빵을 썰죠. 그리고 돈가스 샌드위치나 와규 샌드위치처럼 속재료가 단단하거나 맛이 강한 샌드위치에는 NA 식빵을 쓰고요. 그뿐 아니라 BLT나 클럽 샌드위치처럼 야채가 많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은 EB 식빵으로 감싸요. 부재료로서 식빵을 어떻게 조합하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죠.
ⓒ센터 더 베이커리
센터 더 베이커리의 사례처럼 최고의 품질은 최고의 식빵 가게가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에요. 품질 경쟁에서 그치지 않고, 식빵을 즐기는 2000여 가지의 고객 경험을 제안하며 품질력만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차별적 경쟁력을 갖춘 거예요. 일본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식빵을 먹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이유예요.
Reference
• 食パン専門店 セントル・ザ・ベーカリー【銀座】, All about Gourmet
• ラ・カンティーヌ サントル【有楽町】, All about Gourmet
• 新スタイルのパン店「VIRON」が渋谷にOPEN(3ページ目), All about Gourm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