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이 없는 브랜드가, 헤리티지를 장착하는 법

큐비츠

2023.06.22

정부에서 안경을 무료로 나눠주면 어떨까요? 이런 정책이 실제로 영국에서 시행됐어요.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가 시민의 볼 권리 진작을 위해 7가지 안경을 대량 생산해 무료로 나눠준 거예요. 1948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40년 넘게요.


무료 안경 치고는 디자인이나 퀄리티가 나쁘지 않아 인기가 높았어요. 그래서 1990년대까지는 단체 사진을 찍으면 같은 안경을 쓴 사람을 발견하는 게 예사였죠. 사회 전반에 준 혜택의 총합은 올라갔지만, 안경을 팔던 장인과 상인들은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스러져 갔어요.


혜택만큼이나 부작용도 커 NHS는 결국 무료 배포를 중단했어요. 하지만 무료 정책으로 인해 망가진 산업의 오랜 공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이 상황을 대기업이 메우기 시작했죠. 그렇게 현재 영국 안경 시장의 70% 이상을 스펙세이버스, 부츠, 비전 익스프레스, 테스코 등 대기업이 차지했어요.


어느 정도 산업이 회복되자 시장의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틈을 ‘큐비츠’가 파고 들었죠. 시대와 상황의 변화 속에서 큐비츠가 포착한 기회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 기회를 어떻게 잡았을까요?


📍 브랜드도 진화합니다. 이번 런던 위크에서는 <퇴사준비생의 런던>에서 소개했던 매장, 공간, 브랜드, 기업 등의 그동안의 변화를 업데이트 해봅니다.


큐비츠 미리보기

 비스포크를 다시 말하다

 #1. 안경은 초점이다

 #2. 안경은 과학이다

 #3. 안경은 얼굴이다

 빌려온 철학으로 만드는 헤리티지




“수트는 신사의 갑옷이다.” (The suit is a modern gentleman’s armour.)


<킹스맨(Kingsman)>은 영화를 통해 맞춤형 수트에 대한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어요. 단지 첩보 요원용으로 특수 제작한 수트여서만은 아니에요. 몸에 맞게 칼맞춤한 수트가 언제 어디서나 신사의 자신감을 지켜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트 하나만으로 주인공들의 신사다움이 완성될 수는 없어요. 수트를 빛내줄 조연들이 필요해요.


그래서 <킹스맨>에는 수트뿐 아니라 셔츠, 넥타이, 구두, 시계, 심지어 우산에 이르기까지 영국을 대표하는 비스포크* 브랜드들이 총출동해요. 헌츠맨 앤 선즈(Huntsman & Sons), 턴불 앤 아서(Turnbull & Asser), 드레익스(Drake’s), 마틴 니콜스(Martin Nicholls) 등 모두 비스포크의 메카 새빌로(Savile row) 거리의 강호들이에요.

*비스포크: ‘Been spoken for’에서 유래해, 고객이 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한 사람만을 위한 주문형 맞춤 서비스를 뜻해요.


온라인 럭셔리 쇼핑몰인 미스터 포터(MR PORTER)는 이 브랜드들을 모아 ‘킹스맨의 옷장’ 컬렉션을 출시하며 화제를 뿌리기도 했어요. 이례적으로 킹스맨 컬렉션만을 위한 팝업숍을 열고, 인기에 힘입어 시즌 2를 선보일 정도로 화제를 이어갔죠. 이렇듯 <킹스맨>은 브리티시 헤리티지를 만천하에 알리며 런던이 자타공인 비스포크 강국임을 상기시켰어요.


런던이 모든 비스포크를 장악하고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취약한 분야가 있어요. 바로 안경이에요. 본래 비스포크 안경도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나 NHS(National Health Service)의 무료 안경 배포 정책이 생긴 후부터 힘을 잃기 시작했어요. 이 정부기관에서는 시민의 볼 권리 진작을 위해 1948년부터 1992년까지 40여 년간 7가지 안경을 대량 생산해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 줬죠. 


무료 안경 치고는 디자인이나 퀄리티가 나쁘지 않아 인기가 높았어요. 그래서 1990년대까지는 단체 사진을 찍으면 같은 안경을 쓴 사람을 발견하는 게 예사였어요. 사회 전반에 준 혜택의 총합은 올라갔지만, 안경을 팔던 장인과 상인들은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스러져 갔어요.


혜택만큼이나 부작용도 커 NHS는 결국 무료 배포를 중단했어요. 하지만 무료 정책으로 인해 망가진 산업의 오랜 공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이 상황을 대기업이 메우기 시작했죠. 그렇게 현재 영국 안경 시장의 70% 이상을 스펙세이버스(Specsavers), 부츠(Boots), 비전 익스프레스(Vision Express), 테스코(Tesco) 등 대기업이 차지했어요.


상황이 바뀌자 오히려 소비자들의 고민만 더 늘었어요. 안경테 디자인의 종류가 늘어나 수백 가지 안경 더미들 속에서 눈을 둘 곳을 잃기 때문이죠. 안경 끼고 벗기를 반복하면서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요. 얼굴과 어울리는지, 착용감이 좋은지, 가격은 얼마인지, 어떤 색상이 있는지 등을 여러 안경테들과 비교하는 와중에 진이 빠져 버려 안경점 주인이 추천하는 무난한, 혹은 유행하는 안경테로 떠밀리듯 선택하게 돼요. 매일 사용하는 필수품에다 평균 100파운드(약 15만 원) 이상 소요되는 중대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하는 의문이 들죠.



비스포크를 다시 말하다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안경 맞추는 경험을 총체적으로 리뉴얼하겠다는 사명 하에 탄생한 비스포크 안경점이 있어요. 바로 ‘큐비츠(Cubitts)’예요. 2014년에 <가디언(The Guardian)>이 올해의 스타트업으로 선정하고, 2016년에 스타트업 어워즈(Startups Awards)에서 올해의 리테일 비즈니스상(Retail Business of the Year)을 수여하는 등 꾸준하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곳이죠. 비스포크 매장으로는 드물게 영국 전역에 16개(2023년 6월 기준)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요.



©시티호퍼스


물론 브리티시 클래식을 빈티지 감성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디자인이라든지, 수고를 아끼지 않는 핸드 메이드 제작 과정 등도 큐비츠의 인기비결이에요. 하지만 단순히 디자인과 퀄리티만으로는 큐비츠의 눈에 띄는 행보를 다 설명하기 어려워요. 비스포크에 있어 영국만큼 헤리티지를 중시하는 곳도 없는데, 역사와 전통의 장인도 아닌 큐비츠가 어떻게 비스포크 안경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요?


큐비츠의 인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스포크를 보다 폭넓게 접근해야 해요. 고객이 말하는 대로 만드는 좁은 의미의 비스포크는 물론, 기성품일지라도 본인에게 꼭 맞는 선택을 하도록 도울 수 있으면 그것 역시도 넓은 의미의 비스포크인 셈이에요. 특히 일상의 템포가 빨라져 기다릴 여유가 줄어들고, 넘쳐나는 선택지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나만의 제품을 고르기 어려워진 시대로 바뀜에 따라 비스포크를 합리적이고 유연하게 해석할 필요가 생겼죠.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듯 큐비츠는 비스포크 안경을 파는 매장이지만, 비스포크 안경만 팔지 않고 이미 만들어 놓은 안경들도 진열해 둬요. 만들어진 안경도 판매하기 때문에 형태적으로는 보통의 안경점과 다를 바 없어 보여요. 하지만 디테일을 들여다 보면 차이가 있죠. 큐비츠는 고객들이 비스포크로 맞춘 것처럼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들을 곳곳에 설계해 놓았거든요.



#1. 안경은 초점이다

큐비츠는 고객들이 각자에게 어울리는 안경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선택의 복잡성을 줄여줘요. 중요한 고려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제외한 요소들은 상수로 고정하거나 없애버리죠. 고객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건 권리이지만, 정작 너무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에요.


큐비츠에서 파는 개성 있는 수제 안경은 150파운드(약 25만 원)예요. 안경테는 기본이고 스크래치 방지, 눈부심 방지 등의 기능이 있는 렌즈까지 포함한 가격이에요. 안경값이 비싼 편인 영국에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수준이죠. 일부 안경만 해당되는 가격이 아니라 모든 안경의 가격이 동일해요. 가격의 편차가 없다는 건 고객 입장에서는 합리적 가격만큼이나 큰 효용이에요. 안경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하니 고객들은 가격에 신경쓰지 않고 프레임의 디자인과 착용감에만 집중하여 안경을 선택할 수 있어요.



6가지 기본 요소는 같지만 색상, 소재 등 옵션이 다른 안경을 한 줄에 진열해, 프레임을 정돈되면서도 다채롭게 보여줍니다. ©시티호퍼스



6가지 기본 요소를 기준으로 프레임 간 차이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안경값을 하나의 상수로 고정해 고객들이 가격 비교를 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프레임의 가짓수를 30개 내외로 제한해 선택의 폭을 좁혔어요. 신규 프레임 개발이 어려워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왕성한 생산력이 큐비츠의 특장점이죠. 장인 한 명이 디자인을 전담하는 여타의 비스포크 매장들과는 달리 큐비츠는 설립 초기부터 프레임 디자이너를 적극적으로 늘려왔으며, 매장 지하를 공방이자 연구개발센터로 운영할만큼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하는 데 열성적이에요.


다만, 굴러 들어오는 돌이 있으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이 원칙이에요. 기존 디자인이 새로운 디자인과 비슷하면 교체하고, 비교적 호응이 없는 안경은 솎아내는 등 지속적으로 물갈이를 해요. 항상 최상의 선택지를 유지함과 동시에 고객들이 늘어난 선택지에 압도되지 않도록 돕기 위함이죠.


프레임의 가짓수는 30개 내외지만, 큐비츠 매장에 들어서면 100개 이상의 프레임이 벽면에 진열되어 있어요. 각 프레임별로 색상과 소재가 다른 버전들을 함께 진열해두기 때문에 프레임 종류는 30여 개지만 디자인 결과물은 색상과 소재의 버전 숫자만큼 늘어난 거예요.


자칫하면 프레임의 가짓수를 제한한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는데, 큐비츠는 30여 종의 모든 프레임에 이름을 붙여 고객들의 시선이 분산되는 것을 막았어요. 이름표 옆에 해당 프레임의 여러 버전들을 나란히 올려 두니, 고객들은 직관적으로 동일한 프레임이라 인지하고 우선 프레임을 고른 후 색상과 소재의 옵션을 살펴볼 수 있죠.



#2. 안경은 과학이다

기타는 6줄만으로 모든 음을 표현해요. 여기에 기본 코드 몇 가지만 익히면 어지간한 곡은 기타로 칠 수 있어요. 아무리 복잡한 곡도 쪼개고 쪼개면 결국 기본 구성요소는 같아요. 이처럼 기본 구성요소를 적절히 조합할 수 있으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요.


큐비츠에도 기타와 같은 음계와 기본 코드가 있어요. 30여 가지 프레임이 마치 불현듯 떠오른 창작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규격화된 기본 구성요소를 조합한 결과물이에요. 큐비츠는 각 프레임을 전반적 크기, 프레임 너비, 렌즈 너비, 렌즈와 렌즈 사이의 브릿지 너비, 안경 다리 길이, 테의 두께 등으로 정의해요. 그러고는 모든 프레임에 대해 엽서 형태의 설명서를 통해 6가지 요소의 수치를 제공하죠. 고객이 일일이 껴 보지 않더라도 프레임 간 차이를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한 거예요.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자 30개 내외의 프레임들이 더 또렷하게 한눈에 정리되어 들어옵니다.


여기에 더해 큐비츠의 ‘안면구조 측정 서비스’가 이러한 분류 체계를 보완해요. 아무리 명쾌한 기준을 제시하더라도, 정작 본인의 사이즈를 모르면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고객들의 얼굴 사진만으로 6가지 기본 요소들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도록, 독일의 안면인식 전문가와 협업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어요. 툴을 통해 얻은 객관적 수치로 보다 수월하게 안경이 본인에게 적합한지 부적합한지 판단할 수 있죠.


큐비츠는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하기에 앞서 온라인으로 먼저 비즈니스를 시작했는데요. 이와 같은 규격화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큐비츠의 출발점이었던 ‘홈 트라이얼 바스켓(Home trial basket)’ 서비스는 고객들이 온라인에서 4개의 프레임을 선택하고 이를 배송받아 5일간 무료로 착용해보며 디자인, 착용감, 주변 사람들의 평가 등을 고려해 최종 구매를 결정하는 서비스예요. 


온라인 상에서 주문하지만 규격화된 구성요소, 그리고 안면구조 측정 서비스 덕분에 처음 4개의 후보군을 선택할 때부터 구매 가능성이 높아져요. 그렇지 않았다면 높은 반품률로 서비스를 운영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온라인에서 이미 효과를 확인한 시스템이었기에,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었죠.


2021년부터는 홈 트라이얼 서비스를 없애고, 집에서 더 혁신적으로 안경을 테스트해볼 수 있게 했어요. 독자적인 자체 기술로 개발한 ‘버추얼 트라이 온(Virtual try on)’ 서비스를 런칭한 건데요. 온라인 상에서 얼굴을 인식해 가상으로 안경을 써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카메라를 통해 3만개의 점을 뿌려 3D로 얼굴을 스캐닝한 후 그 위에다가 안경을 써볼 수 있게 하는 방식이죠. 덕분에 온라인 상에서 안경을 구매할 때 안경을 배송하고 반품하는 등의 과정이 사라졌어요.



#3. 안경은 얼굴이다

사람 얼굴이 다 다르니 안경테도 달라야 해요. 특히 다인종이 모여있는 도시인 런던이라면 말할 것도 없어요. 규격화된 선택 기준과 가벼워진 선택지에도 불구하고 잘 맞는 안경테를 찾지 못하거나 이 모든 과정이 번거롭다 느껴지면 비스포크 서비스를 신청하면 돼요. 고객에게 딱 맞는 안경을 덜 고민하며 선택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식이에요.


비스포크 서비스는 350파운드(약 59만 원)에서 시작해 소재, 공정의 복잡도 등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요. 큐비츠의 레디 메이드 안경테와 비교하면 2배 이상의 높은 가격이죠. 그렇다고 레디 메이드 안경테가 수제가 아니라든지, 소재를 허투루 썼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2배 이상의 가격차는 개개인의 개성까지 포착해 반영할 만큼 고도로 맞춤화하는 데서 비롯해요.


큐비츠는 3단계에 걸쳐 비스포크 안경테를 제작해요. 우선 안면구조 측정 소프트웨어를 통해 얼굴 형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요. 이 결과 위에 고객과 상담하며 파악한 요구 사항을 얹어요. 마음에 쏙 드는 안경이 없었던 고객에게는 까다로운 니즈에 맞는 적절한 프레임을 제안해주고, 안경 맞추기가 어렵고 귀찮아서 신청한 고객에게는 1단계에서 파악한 안면구조를 바탕으로 적합한 프레임을 제시하는 거예요.


큐비츠가 제안한 옵션들을 놓고 세부 디자인을 논의하고 나면 3D 프린터로 실물을 제작해 디자인을 최종 확정해요. 이후 6주에 거친 제작 여정에 들어가요. 이 기간 동안 50단계의 제작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는데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입하죠.


가령, 보통의 경우 렌즈 테와 안경 다리가 이어지는 곳을 용접하는 반면 큐비츠는 ‘핀 드릴링(Pin drilling)’이라는 기법을 활용해요. 핀으로 홈을 파 연결하는 수제 방식으로 공수가 훨씬 많이 들지만 추후에 고객들이 스스로 쉽게 조임 정도를 조절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또한 콧대에 바로 닿는 패드의 경우, 이를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3D 프린팅을 활용하죠. 고객에게 최적화된 안경을 제공하기 위해 전통과 현대의 방식을 가리지 않고 적용하는 거예요. 이 집요함 덕분에 얼굴과 하나되는 듯한 안경이 만들어져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맞춤화 수준을 증명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직접 맞춰보지 않고서야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 있죠. 그래서 큐비츠는 개성 강한 여러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해요. 확고한 이미지를 가진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결과물은 큐비츠의 비스포크 안경이 고객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짐작케하는 가늠자 역할을 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조명 디자이너 톰 딕슨(Tom Dixon)에게는 빛에 따라 색감이 달라지는 투명한 안경테를, 관습을 깨는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 미르자 피트카르(Mirja Pitkäärt)에게는 양쪽 눈썹 라인이 비대칭인 안경테를 디자인 해주는 식이에요.


사람뿐 아니라 특정 공간에 어울리는 안경테도 제작해요. ‘올드 셀프리지스 호텔(The Old Selfridges Hotel)’의 경우 호텔 옆에 있는 셀프리지스 백화점 특유의 검은색 골격에서 영감을 얻어, 구리와 철을 활용해 무광의 나무 느낌을 내는 안경테를 만들었어요. 이름난 대상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하며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지는 건 덤이고요.





톰 딕슨, 미르자 피트카르, 셀프리지스 호텔 등 아티스트 또는 공간과 꼭 어울리는 안경을 맞춤 제작해 큐비츠의 맞춤화 수준을 증명합니다. ⓒCubitts



빌려온 철학으로 만드는 헤리티지

안경을 맞추는 경험을 재구성한 큐비츠는 또 다른 2개의 렌즈를 가지고 비전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요. 하나는 킹스 크로스(King’s Cross), 또 하나는 큐비츠 3형제예요.


2012년에 큐비츠를 처음 시작한 곳은 해리포터가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호그와트행 열차를 탔던 것으로 유명한 킹스 크로스 지역이에요. 과거 비스포크 안경 제작 공방들이 삼삼오오 자리하고 있던 터전이기도 하죠. 큐비츠의 창업자 톰 브로턴(Tom Broughton)은 마냥 전통만 따지는 고루함은 없으면서 소호(Soho)나 쇼디치(Shoreditch)처럼 드러내놓고 과시하지도 않는 킹스 크로스의 절제미가 큐비츠의 안경테에도 녹아들 수 있길 바랐어요.


그래서 큐비츠의 모든 프레임은 킹스 크로스 일대의 길 이름으로 네이밍을 했어요. 20세기 중반 유럽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비드보로우(Bidborough) 프레임은 킹스 크로스역에서 길을 건너면 있는 도로인 Bidborough Street에서, 가벼운 것이 특징인 Aldenham 프레임은 킹스 크로스 역 왼쪽에 있는 도로 Aldenham Street에서 이름을 따오는 식이에요. 로고 역시 킹스의 K와 교차를 뜻하는 X 모양의 크로스를 조합해 디자인했고요. 이렇듯 큐비츠에게 킹스 크로스는 브랜드의 원형과 같은 곳이죠.


킹스 크로스가 큐비츠의 지역적 뿌리라면, 큐비츠 3형제는 정신적 지주예요. 큐비츠 3형제는 빅토리아 시대에 킹스 크로스 지역 등 영국 전역의 주요 건축물을 지은 엔지니어이자 건축가들인데요. 당시 런던의 인구가 급증하며 시민들의 생활이 팍팍해진 상황에서, 그들은 주거지의 공급도 중요하지만 삶의 질을 개선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래너리 광장(Granary Square), 킹스 크로스 역사 등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응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건축물을 지었어요. 또한, 함께 일하는 장인들을 해외로 연수 보내는 등 제작자의 교육과 권리 향상을 위해 힘쓴 인물들로도 유명하죠. 큐비츠 3형제의 철학이 큐비츠가 추구하는 철학과 닮아 있기에 그들의 이름을 따 브랜드를 만들고, 그들의 정신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 거예요.


큐비츠처럼 직접 쌓아온 역사와 전통이 없다면 지역과 시대가 만들어낸 뿌리를 찾아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이러한 철학적 토대가 있어야 신생 업체일 때부터 남다른 깊이가 생길 뿐만 아니라 시간의 무게를 더했을 때 새로운 헤리티지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Refernece

• 큐비츠 공식 홈페이지

 Retail Business of the Year 2016, Startups

 영화 ‘킹스맨’, 영국신사의 매력 속으로! - 영국 수트의 발상지 새빌로우와 신사의 거리 저민 스트리트 구경하기, 주한영국문화원 공식 블로그

 NHS Glasses, People’s History of NHS

 Cubitts: Challenging the experience in eyewear, The Challenger Project

 Handmade in King’s Cross: the return of craft to the capital, Gas Holder

 5 Men’s Eyewear Brands You Should Know, Fashion Beans

 Cubitts, Last Style of Defense

나머지 스토리가 궁금하신가요?

시티호퍼스 멤버십을 시작하고
모든 콘텐츠를 자유롭게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