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초콜릿에 진심이에요. 1년 동안 한 사람이 먹는 평균 초콜릿 양은 8.1kg. 참고로 유럽의 1인당 연간 초콜릿 소비량이 5kg이니 유럽에서도 영국은 유별나게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라예요. 전 세계로 확장하면 그 숫자의 의미가 더 커져요. 전 세계 평균 소비량은 0.9kg니 영국은 9배나 많은 초콜릿을 소비하고 있는 거죠.
이 정도로 초콜릿을 좋아하니까 영국에 초콜릿 강호들이 있는 건 당연할 수밖에요. 그렇다면 그만큼 치열한 초콜릿 시장에서 차별적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특히 전통이 있는 브랜드가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생긴 브랜드라면요? ‘다크 슈가즈’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다크 슈가즈는 ‘아프리카’를 초콜릿에 입혔어요. 아프리카를 원산지 표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삼은 거예요. 이렇게 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다크 슈가즈 매장인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로 가볼게요.
브랜드도 진화합니다. 이번 런던 위크에서는 <퇴사준비생의 런던>에서 소개했던 매장, 공간, 브랜드, 기업 등의 그동안의 변화를 업데이트 해봅니다. 참고로 다크 슈가즈는 브릭레인 마켓에 있던 매장을 닫고 그리니치 지역에 4층짜리 플래그십 매장을 내면서 사세를 확장하고 있어요.
다크 슈가즈 미리보기
• 전통이 아닌 ‘정통’을 선택한 초콜릿 가게
• #1. 움파 룸파족 대신 흥부자들
• #2. 폭포만큼이나 중요한 초콜릿 고명
• #3. 발명의 방에서 나올 법한 초콜릿들
• #4. 텔레포터에 버금가는 판매 방식
• 아프리카의 흥이 만들어낸 신흥강자
결과물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까지도 알고 싶은 게 팬들의 마음이에요. 영국 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아동용 소설을 스크린에 펼쳐 놓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도 ‘윌리 웡카(Willy Wonka)’ 초콜릿에 대한 팬심으로부터 시작해요.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누구나 먹고 싶어 하는 초콜릿을 생산하지만 누구도 출입할 수 없던 곳이에요. 스파이들이 직원을 가장해 공장을 드나들며 레시피를 빼내가자 윌리 웡카가 직원들을 모두 내쫓고 공장을 비밀리에 운영했기 때문이에요. 그랬던 그가 후계자를 찾기 위해 공장 문을 열었어요. 공장 견학 초대권인 황금 티켓 5장을 초콜릿 포장에 담아 유통시킨 거예요. 그러자 맛의 비결을 알고 싶던 전 세계 팬들이 들썩거리죠.
황금 티켓을 거머쥔 5명의 어린이들이 보호자와 함께 초대받아 공장을 견학하며 이야기가 전개돼요. 공장 내 구역을 넘어갈 때마다 한 명씩 탈락하면서 마지막 한 명의 후계자가 남기까지의 과정을 풍자와 해학을 담아 묘사하는 것이 영화의 중심이죠. 하지만 시티호퍼스에게는 공장 내부의 운영 방식이 눈에 더 들어와요. 공장 곳곳에 윌리 웡카 초콜릿이 차별적 경쟁력을 갖는 이유가 숨어 있기 때문이에요.
누구도 출입하지 못하는 공장에서 제품 생산은 자동화 기계가 아니라 ‘움파 룸파(Oompa-Loompas)’족이 담당했어요. 공장 문을 닫은 이후 창업자 윌리 웡카가 카카오 열매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 정글을 탐험하던 중 이들을 발견했는데, 카카오라면 사족을 못 쓸만큼 카카오에 애정을 가진 부족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초콜릿 공장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윌리 웡카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고 공장에서 초콜릿을 만들기 시작하죠. 카카오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춤과 노래를 즐기는 부족이라 공장 내부에는 묘한 긴장감과 함께 쿨한 흥겨움이 흘러요. 이런 부족이 만들어내는 초콜릿의 맛은 기계처럼 일하는 직원들이 찍어내는 초콜릿과 다를 수밖에 없죠.
공장 내부에서 첫 번째로 공개하는 구역은 ‘초콜릿 낙원’이에요. 액상 초콜릿이 폭포수처럼 떨어져 강이 되어 흐르는 곳이에요. 여기서 윌리 웡카는 중요한 건 ‘폭포’이고 폭포로 휘저어야 기포가 풍부해진다고 강조하며, 폭포로 초콜릿을 휘젓는 공장은 여기뿐이라고 덧붙이죠. 제조 방식의 핵심적인 차이를 설명하는 거예요. 초콜릿을 휘젓는 수단이 다르니 초콜릿의 감도는 맛에 차별성이 생겨요.
‘발명의 방(The inventing Room)’도 윌리 웡카 초콜릿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이에요. 윌리 웡카가 공장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설명하는 이 방에선 신제품을 연구개발해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영원히 녹지 않는 캔디를 만들거나 밥을 먹지 않고도 포만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씹기만 해도 배를 채울 수 있는 껌을 개발하는 식이에요. 발명으로 표현할 만큼 기술력이 필요하지만, 기술이 아니라 고객의 니즈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에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거예요.
판매 방식에 대한 윌리 웡카의 상상력도 주목할만해요. 그는 전파를 통해 텔레비전 화면을 전송하듯, ‘텔레포터’ 방식으로 초콜릿을 배송하는 세상을 준비하죠. 텔레비전에 윌리 웡카 초콜릿 광고가 나올 때, 시청자들이 초콜릿을 먹고 싶다면 텔레비전 안으로 팔을 뻗어 초콜릿을 꺼내 먹을 수 있는 현실을 꿈꾸는 거예요. 고객의 입장에서 더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이에요.
윌리 웡카의 비즈니스 감각을 보면 윌리 웡카 초콜릿이 세계 최고의 초콜릿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 속 가상의 세계가 끝나면 윌리 웡카 초콜릿 공장도 초콜릿처럼 녹아내려 현실에서 사라지고 말죠. 초콜릿 마니아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윌리 웡카 초콜릿 공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초콜릿 매장은 없을까요? 런던에 황금 티켓 없이도 출입이 가능한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Dark Sugars Cocoa House)’가 있어요.
전통이 아닌 ‘정통’을 선택한 초콜릿 가게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의 창업자인 파토우 니앙가(Fatou Nyanga)는 코코아의 매력에 빠져 1999년에 스피탈필즈(Spitalfields) 노상에서 트러플 초콜릿을 팔았어요. 그러다 그녀만큼이나 코코아에 대한 열정이 있던 폴 서더랜드(Paul Sutherland)를 만나 초콜릿 사업을 하기로 의기투합했어요. 그와 함께 보로우 마켓(Borough Market)으로 자리를 옮겨 초콜릿을 팔기 시작했지만, 이내 한계를 느꼈죠. 여느 초콜릿 매장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에요.
사업을 키우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녀는 카카오 원산지인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갔어요. 윌리 웡카가 공장 폐쇄 후 더 나은 카카오 열매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를 간 것과 유사한 행보예요. 변화의 기로에서 그녀는 초콜릿 전문가 쇼콜라티에(Chocolatier) 자격증을 따는 등 유럽 초콜릿의 전통적인 권위에 기대려 하지 않았어요. 대신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가나의 코코아 농장에서 3년 여의 시간을 보내며 코코아를 재배하고 연구하면서 경험을 쌓았죠.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그녀는 2013년에 폴 서더랜드와 함께 브릭 레인 마켓에 ‘다크 슈가즈’라는 간판을 걸고 매장을 오픈했어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카카오 함유량이 높은 정통의 초콜릿을 선보이자 고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가능성을 확인한 그녀는 아프리카를 원산지 표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삼아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를 본점 근처에 열었어요.
2호점인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는 초콜릿 마니아들의 달콤한 환상을 채워주는 곳이었어요. 브릭레인 마켓에서 인기를 끌며 초콜릿 가게로서 자리를 잡았죠. 그러다 2021년 말에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의 문을 닫았어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받아서가 아니라 매장을 그리니치 지역으로 이전하기 위해서예요. 4층짜리 플래그십 매장을 열 정도로 사세가 확장됐죠. 비결이 뭘까요?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과의 공통분모에서 찾을 수 있어요.
런던의 대표적 마켓 중 하나인 브릭 레인 마켓에 위치해 있던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 매장 전경입니다. 현재는 그리니치로 확장 이전하였습니다. ©시티호퍼스
#1. 움파 룸파족 대신 흥부자들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는 유럽풍의 고급스런 분위기는 다른 초콜릿 가게들에게 양보하고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분위기로 가게를 꾸몄어요. 매장에 들어서면 아프리카의 거대한 나무의 뿌리를 본뜨거나 나무 본연의 느낌을 살린 테이블, 의자, 진열대, 받침대, 이름표 등이 눈에 띄죠. 또한 벽에는 초콜릿을 든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웃음 가득한 표정을 그린 그림이 수줍게 자리잡고 있고, 또 다른 벽에는 다크 슈가즈를 만들 때 핵심 역할을 한 아프리카인 5명의 초상화가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어요. ‘초콜릿은 유럽’이라는 기존의 공식을 따랐다면 나올 수 없는 매장 디자인이에요.
다크 슈가즈를 만들 때 핵심 역할을 한 ‘5명의 영웅들’ 초상화입니다. 정중앙이 창업자 파토우 니앙가이고, 우측 상단이 공동 창업자 폴 서더랜드입니다. ©시티호퍼스
초콜릿을 보고 신이 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어린이들의 순수한 웃음에 덩달아 미소가 지어집니다. ©시티호퍼스
공간을 더욱 이국적으로 채우는 건 배경음악이에요. 타루스 라일리(Tarrus Riley), 모모 디엥(Momo Dieng),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Sammy Davis Jr.) 등 아프리카계 가수들이 부르는 소울 넘치는 노래가 매장에 아프리카의 영혼을 불어넣어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음악이 흐르다가 때때로 진한 아프리카풍의 노래도 나오는데, 노래의 느낌이 낯설긴 해도 아프리카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역할을 해요.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거리는 건 고객들만이 아니에요. 대부분의 직원은 아프리카계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일하는 중간 중간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요. 특히 매장을 방문했을 때 운이 좋아 ‘폴 아저씨(Uncle Paul)’로 불리는 공동 창업자 폴 서더랜드를 만난다면 흥의 정점을 경험할 수도 있어요. 직원들 스스로가 흥에 겨워 춤을 추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매장의 기운 덕분에 초콜릿을 고르는 과정에서 흥겨운 기분이 나죠. 더불어 흥부자들이 파는 초콜릿은 맛도 더 달달할 것만 같은 기대도 생기고요. 교육받은 미소와 친절로 중무장한 매장과는 차원이 다른 고객 경험이에요.
브릭 레인 마켓 지점에서 흥겹게 핫 초콜릿을 만들어 주는 폴 아저씨의 모습입니다. ©시티호퍼스
#2. 폭포만큼이나 중요한 초콜릿 고명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의 시그니처는 핫 초콜릿 위에 얹어주는 초콜릿 고명이에요. 커다란 돌처럼 생긴 다크, 화이트, 밀크 초콜릿 고형물을 채 썰 듯 칼로 썰어 핫 초콜릿 위에 듬뿍 올려주죠. 3가지 종류의 초콜릿을 썰어서 장식을 하기 때문에 초콜릿색의 그라데이션이 생기고, 핫 초콜릿이 넘쳐흐를 만큼 아낌없이 얹은 초콜릿 고명이 표면장력처럼 균형을 이루고 있어 SNS에 올리기 그만인 비주얼이에요.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의 시그니처 핫 초콜릿입니다. 핫 초콜릿 위에 초콜릿 고명이 넘칠 만큼 얹어져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채 썬 모양의 초콜릿 고명은 핫 초콜릿의 비주얼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도 하지만 맛을 더욱 달콤하게 하는 데도 중요한 기능을 해요. 초콜릿 고명이 녹으면서 핫 초콜릿 농도를 더 진하게 해주니까요. 고객들은 핫 초콜릿 컵에 꽂아져 나오는 나무 막대를 휘저어 초콜릿 고명을 녹이면서 농도가 진한 초콜릿을 마실 수 있어요.
여기에 더해 창업자 파토우 니앙가는 숟가락을 사용하면 핫 초콜릿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조언해요. 핫 초콜릿의 양이 줄어들수록 핫 초콜릿이 더 부드럽고 진해지는데, 그 부분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막 녹인 초콜릿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는 설명이에요. 마치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 내에 있는 폭포가 윌리 웡카 초콜릿을 남다르게 하듯, 초콜릿 고명이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의 차별적 경쟁력을 만드는 셈이에요.
또한 핫 초콜릿 위에 올리는 초콜릿 고명뿐만 아니라 핫 초콜릿 자체도 시그니처화해 고객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해요. 메뉴판은 시그니처 핫 초콜릿 메뉴와 보통의 핫 초콜릿 메뉴로 구분되어 있는데, 시그니처 메뉴로는 헤이즐넛 프랄린(Hazelnut Praline), 솔티드 카라멜(Salted Caramel), 모로칸 민트(Morrocan Mint) 핫 초콜릿 등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메뉴를 제공해요. 보통의 핫 초콜릿 메뉴도 특징적이긴 마찬가지예요. 고추맛(Chilli), 시나몬맛(Cinnamon), 산딸기맛(Wild Strawberry) 등 핫 초콜릿과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맛을 조화시키죠.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은 맛의 핫 초콜릿들이에요.
그리니치에 위치한 플래그십 매장의 메뉴판을 보면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 메뉴의 차별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Dark Sugars
#3. 발명의 방에서 나올 법한 초콜릿들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에선 70여 종이 넘는 초콜릿을 판매해요. 단순히 개수만 늘린 것이 아니라 나름의 체계로 구분해 유형별로 구역을 나누어 진열하기 때문에 초콜릿을 쇼핑하는 재미가 있어요. 핫 초콜릿을 파는 카페 구역에 있는 초콜릿 매대에선 ‘톡톡 튀는 캔디(Popping Candy)’, ‘망고 스포이트(Mango Pipette)’, ‘코코아 월식(Cocoa Eclipse)’ 등 위트있는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이름과 어울리는 초콜릿들이 초콜릿 마니아들을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죠.
초콜릿 이름의 틀을 깨는 초콜릿들입니다. 다른 곳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시티호퍼스
또 다른 구역에는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는 초콜릿들이 진열되어 있어요. 입에 넣기도 전에 눈을 호강시켜주는 초콜릿들이에요. 크게는 두 가지 방식으로 비주얼을 표현해요. 하나는 초콜릿에 색깔을 입히는 거예요. 초콜릿에 이런 빛깔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의문이 들 정도로 화려하죠. 또 다른 하나는 초콜릿에 모양을 더하는 거예요. 작품같은 초콜릿이 행과 열을 맞춰 놓여 있어 먹기 아까운 마음이 들어요.
색깔을 입히거나 모양을 내 예술 작품처럼 만든 초콜릿이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시티호퍼스
빼앗긴 시선을 되찾아와 고개를 돌려보면 갈색의 보통 이름표와 달리 초록색으로 만들어져 눈에 띄는 이름표가 보여요. 이 구역에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비건 초콜릿이 매대를 채우고 있어요. 이름표의 아래 부분에는 초콜릿의 구성 요소들을 표기했는데요. 그 중에서 포함되지 않은 요소는 줄을 그어 삭제 표시해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의 정도에 맞춰 초콜릿을 고를 수 있도록 배려했어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초콜릿입니다. 초록색 이름표로 표기를 해두어 눈에 띕니다. ©시티호퍼스
물론 한쪽 벽면에는 기본에 충실하게 맛으로 초콜릿을 구분한 매대도 있어요. 하지만 이 코너에서도 편강과 꿀맛(Stem ginger & honey), 살구 브랜디맛(Apricot brandy), 보드카와 오렌지맛(Vodka & orange) 등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맛의 초콜릿을 발견할 수 있죠.
특이한 이름을 가진 초콜릿,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는 초콜릿,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 초콜릿, 그리고 낯선 맛의 초콜릿 등. 이처럼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에는 고객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발명의 방에 들어가서 연구해야만 선보일 수 있는 초콜릿들로 가득해요.
그리니치에 위치한 플래그십 매장에 진열된 초콜릿입니다. 기본에 충실한 초콜릿이지만 낯선 맛으로 새로움을 더했습니다. ©Dark Sugars
#4. 텔레포터에 버금가는 판매 방식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에서는 보통의 초콜릿 매장과 달리 오픈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초콜릿을 판매해요. 유리 진열대 안에 갇혀 있던 초콜릿들을 밖으로 꺼내 진열하는 풍경이 신선하죠. 게다가 초콜릿 앞에는 으레 있어야 할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아요. 가격을 모른 채 초콜릿을 구경하는 경험 또한 새롭고요. 흥미로운 방식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이와 같은 판매 방식에서 작지만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어요.
우선 유리 진열대가 사라지자 고객과 초콜릿 사이의 거리가 좁아져요. 그만큼 고객들은 초콜릿을 가깝고 편하게 대할 수 있어요. 또한 초콜릿 가격이 보이지 않으니 고객들은 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초콜릿 자체에 집중해 고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요. 고객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충분히 초콜릿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도록 고객 경험을 설계한 거예요. 여기에다가 가격 책정 방식을 달리해 고객들이 지갑의 신호가 아니라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요. 어떻게냐고요?
이 곳에서는 개당으로 가격을 책정하지 않고 그램당으로 가격을 매겨요. 매장 내 곳곳에 놓여 있는 비닐 봉투를 집어 들고 마음에 드는 초콜릿을 비닐 봉투에 넣어 계산대로 가져가면 무게를 재 가격을 알려주는 식이에요. 100그램당 7.75파운드(약 1만 2,000원)로 가격이 명시되어 있지만, 개당 가격이 아니다 보니 고객들은 초콜릿을 담으면서 얼마의 가격이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어요. 손을 뻗으면 초콜릿을 집을 수 있고 가격에 대한 인지를 할 수 없으니 고객들이 마음의 소리에 따라 초콜릿을 비닐 봉투에 담을 가능성이 높아지죠. 윌리 웡카가 텔레포터 기술을 활용해 고객이 원할 때 바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 것에 준하는 판매 혁신인 셈이에요.
초콜릿 앞쪽에 놓여 있는 비닐 봉투에 초콜릿을 담아서 무게를 잰 후, 무게에 따라 계산을 하는 방식입니다. ©시티호퍼스
선물용으로 초콜릿을 사는 고객들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선물용 박스도 판매합니다. ©시티호퍼스
아프리카의 흥이 만들어낸 신흥강자
다시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윌리 웡카는 초콜릿 공장 투어를 마치면 바로 후계자 선정을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초대받은 5명의 어린이들이 윌리 웡카 초콜릿의 팬들이기도 했고, 세계 최고의 초콜릿 공장을 물려준다는데 거절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초콜릿 공장 투어를 마쳤지만, 그는 후계자를 선정할 수 없었어요. 이유는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남겨둘게요.
“내 마음이 병드니까 초콜릿도 병든 거야.”
후계자 선정을 하지 못하고 상심한 채 초콜릿 공장의 일상으로 돌아온 윌리 웡카의 고백이에요. 그는 초콜릿에 어떤 맛과 모양을 낼지 결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문제의 원인을 찾다가 깨달음을 얻어요. 그동안은 초콜릿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마음이 가는대로 초콜릿을 만들어 인기 초콜릿들을 개발했었는데, 후계자 선정이 뜻대로 되지 않자 삶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고 마음의 병이 생겨 초콜릿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는 거예요.
그의 고백에서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의 차별적 경쟁력과 희망적인 미래를 엿볼 수 있어요. 물론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시그니처 핫 초콜릿, 개성있는 초콜릿, 그리고 고객을 초콜릿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판매 방식 등이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를 성장시키는 주요 요인이에요. 하지만 경쟁자들이 따라하려고 마음 먹으면 모방이 가능한 영역이기도 하죠.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의 진짜 경쟁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어요. 바로 초콜릿에 애정을 가지고 매장 운영 전반에 녹여내는 흥겨움이죠. 이 차별적 고객 경험은 쉽사리 베낄 수 없어요. 다크 슈가즈 코코아 하우스의 흥부자들이 마음의 병을 얻지 않는 이상, 매장도 좀처럼 병들지 않을 것예요.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