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로봇이 접객하는 카페, 신체적 약자의 사회 복귀를 돕다

아바타 로봇 카페 던 버전 베타

2024.09.20








로봇은 보통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람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 처리를 하죠. 하지만 이 카페에서는 사람을 ‘대신’해 미완성의 인간미를 뽐내는 로봇들이 있어요. 로봇끼리 부딪히기도 하고, 심지어 수다를 떨기도 해요. 마치 진짜 아르바이트생처럼요.


이 카페의 이름은 ‘아바타 로봇 카페 던 버전 베타(Avatar Robot Cafe DAWN ver.β)’예요.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오리히메’라는 로봇들이 문 앞에서부터 고객을 반겨주는데요. 분명 겉모습은 로봇인데, 대화를 나눠보니 안에서 사람의 영혼이 느껴져요. 알고 보니 오리히메는 알아서 작동하는 AI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원격으로 조종하는 사람의 ‘아바타’ 로봇이었죠.


아바타 로봇 오리히메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직원들은 제각각 멀리 떨어져 있어요. 카페는 도쿄의 니혼바시에 있는데, 직원들은 효고현, 아키타현 등에 있는 거예요. 왜 이 카페의 직원들은 멀리 떨어진 카페에서 로봇을 매개로 일을 하는 걸까요? 그리고 이 카페는 왜 이런 형태로 사람들을 고용하는 걸까요? 여기에는 그럴 만한,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분신 로봇 카페 던 버전 베타 미리보기

 #1. 분신술, 새로운 근로 방식이 되다

 #2. 누워있는 사람이 세상에 나가는 통로

 #3. 미완성을 지향하는 인간적인 공간

 ‘아픈 사람’이 아니라 ‘인생 선배’다




털이 복슬복슬한 곰손이 작은 구멍 사이로 음료를 전해줘요. 음료 만드는 과정이 한눈에 보이는 일반 카페와는 달리, 눈앞에 보이는 건 작은 손 하나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카페에 들어가려고 줄지어 기다려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도 일부러 찾아오죠. 고객들은 음료를 건네주는 곰의 손을 꽉 잡아 주기도 하고, ‘힘내세요’라고 말을 걸기도 하는데요. 뭐 하는 곳이길래 고객이 점원에게 힘을 주고 응원을 하는 걸까요? 


©kumanote-cafe


오사카에서 2021년 가을에 문을 연 이 카페의 이름은 ‘쿠마노테 카페’예요. ‘곰손 카페’라는 이름 뜻처럼 곰손이 구멍 사이로 손만 뻗은 채 제조한 음료를 전해주죠. 그래서 고객들은 이 구멍 뒤에 누가 서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볼 수 없어요. 그런데 이게 바로 이 카페의 핵심이에요. 점원이 직접 고객을 대면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거든요.


이 카페의 직원들은 섬세한 기질로 인해 사회에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어요. 다시 사회에 복귀하고 싶지만 아직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탓에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죠. 쿠마노테 카페는 이처럼 의지는 충분하지만 사회에 나가기 위한 연습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직장이에요. 직접 사람 앞에 나서는 건 두려워도, 구멍 뒤에서라면 안심하고 일할 수 있죠. 이 사실이 SNS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직원들을 응원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kumanote-cafe


종업원에게도, 고객에게도 ‘치유의 카페’가 되어주는 쿠마노테 카페를 만든 것은 ‘멘탈 지원 종합 학원’이에요. 정신적인 어려움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을 하거나 관련 강좌를 제공하고 있죠. 10년 넘게 학원을 운영하는 동안 마음의 문제로 사회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났어요. 그래서 2021년에 이들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고자 이 카페를 열게 됐죠. 


카페에서 일할 사람을 찾기 위한 구인 활동은 매장 입간판 뒤에 붙인 벽보 하나가 전부였어요. 별다른 공지 사항도, 온라인 홍보 활동도 없었죠. 그런데 카페 오픈 첫날부터 문의가 잇따랐어요. 10대부터 시니어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고 4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이력서를 제출했죠. 대다수가 마음속에 괴로움과 불안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면접 시간은 자연스럽게 심리 상담 시간이자 멘탈 케어의 장이 됐어요. 


지원 동기를 들어보니 이들은 눈치가 없다거나, 소통이 잘 안된다는 이유로 학교나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한 경우가 많았어요. 이는 공황 장애나 강박증으로 이어져 사회생활이 더 어려워졌죠. 이들에게 쿠마노테 카페는 사회 복귀를 위한 하나의 통로나 마찬가지였어요.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는 ‘열정적인 사람’, ‘행동력 좋은 사람’ 등을 찾다 보니 마음이 다친 사람들에게는 허들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반면 쿠마노테 카페에서는 고객을 대면할 필요도 없고, 상담사가 매장 뒤편에서 지원을 해줘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죠. 


쿠마노테 카페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사회로의 복귀를 꿈꿔볼 수 있는 안전지대예요. 직원들을 바라보는 고객들 또한 더불어 용기를 얻기도 하죠. 그런데 도쿄에는 또 다른 형태의 안전지대가 있어요. 이 카페에서는 IT 기술까지 접목시켜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일할 공간을 만들어주죠. 덕분에 신체적 장애로 인해 누워서 삶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바타를 만들어 일할 수 있는데요. 그래봤자 몸은 하나인데 어떻게 아바타를 만든다는 걸까요?



#1. 분신술, 새로운 근로 방식이 되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로봇이 고객들을 환영해요. 대화를 나눠보니 분명 형체는 로봇인데 그 안에서 사람의 영혼이 느껴지죠. 디지털 기술과 사람의 에너지가 동시에 느껴지는 이 특별한 접객 경험의 비밀은 카페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어요. 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이 카페의 이름은 ‘아바타 로봇 카페 던 버전 베타(Avatar Robot Cafe DAWN ver.β, 이하 던)’. 말 그대로 로봇이 사람의 아바타가 되어 일하는 곳이죠. 로봇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진 건 직원이 로봇을 원격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이 로봇의 이름은 ‘오리히메(OriHime)’예요. 몸체는 도쿄에 있지만 오리히메를 움직이는 사람은 효고현, 아키타현 등 멀리 떨어져 있어요. 이마에 달린 카메라 렌즈로 주변을 살피고, 마이크로 소리를 들어가며 상황에 맞게 로봇을 작동시키죠. 간단한 조작만으로 오리히메의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들어 올리거나, 시선을 움직이는 일이 가능해요. 


던에서는 오리히메를 조종하는 직원을 ‘파일럿’이라고 불러요. 현재 던에서 일하는 파일럿은 약 80명 정도죠. 이 많은 파일럿들을 어떻게 구분하냐고요? 오리히메 바로 옆에 달린 태블릿 화면을 보면 돼요. 파일럿의 프로필이 적혀 있어서 누구의 아바타인지 바로 알 수 있거든요. 파일럿들은 이름도, 생김새도, 사는 곳도 다 다르지만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이동이 불편해서 바깥으로의 외출이 어렵다는 거죠. 


외출이 어려워진 주된 원인은 신체에 있어요. 경추 손상, 루게릭, 난치병 등으로 인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나갈 수가 없는 사람이 많죠. 한편, 병이 아니라 상황이 문제가 된 경우도 있어요. 가족을 간병하느라 집을 비울 수 없게 된 사람, 해외에 거주하며 집 근처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처럼요. 어떤 이유에서건 이동 상의 불편함이 생긴 파일럿들은 오리히메 덕분에 삶이 바뀌었어요. 집안에서 카페 고객을 응대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즉, 던에서 로봇은 업무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투입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통로로서 도입된 거예요. 


그런데 취지가 좋더라도 멀리서 아바타를 조종하며 일하는 게 가능할까요? F&B 업종은 업무의 정확성과 신속성이 특히 더 중요하잖아요. 카페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불특정 다수 고객이 찾아오고요. 다행히 던에서는 파일럿들이 고객 응대부터 서비스 안내, 음료 서빙까지 업무 전반을 무난히 수행 중이에요. 심지어 오리히메의 접객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고객들도 많고요. 카페 각 구역에서 오리히메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게요.


©DAWN CAFE


©시티호퍼스


가장 먼저, 고객들이 식사하는 공간인 ‘오리히메 다이너’예요. 키가 120cm쯤 되는 ‘오리히메-D(OriHime-D)’가 바닥의 라인과 QR 코드를 따라 이동하며 고객들을 안내하죠. 테이블에 도착하면 그보다 훨씬 작은 소형 모델인 23cm 짜리 오리히메가 보여요. 파일럿은 원격 조종을 통해 오리히메의 손, 목, 얼굴 표정을 움직여 고객에게 주문 방법을 알려주죠.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QR 코드에 접속해 메뉴를 주문하면, 매장 구석구석을 오갈 수 있는 오리히메-D가 주방 직원으로부터 음식을 받아 서빙해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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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매장에는 ‘텔레 바리스타(Tele-Barista)’가 커피를 내려주는 코너도 있어요. 파일럿이 원격 조종으로 원두를 고르고, 커피를 추출하죠. 텔레 바리스타는 오리히메와 생김새가 다른데요. ‘넥스테이지(NEXTAGE)’라는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한 ‘카와다 테크놀로지스(kawada technologies)’, ‘카와다 로보틱스(Kawada Robotics)’와 공동 개발했어요. 얼핏 보면 넥스테이지처럼 보이지만, 어깨 위에 오리히메가 올라타 있죠. 대화 기능이 없는 넥스테이지 대신 오리히메가 고객에게 원두 종류를 안내하고, 취향에 맞춰 커피 선택을 도와줘요. 그 후 넥스테이지가 커피를 내리죠. 


©시티호퍼스


텔레 바리스타를 원격 조종하고 있는 파일럿은 전직 바리스타였던 미카예요. 커피를 좋아해서 대회에 나갈 정도의 실력자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 팔 힘이 약해지더니 컵을 떨어뜨리는 일이 잦아졌어요. 루게릭이 발병한 거죠. 이제 직접 커피를 내리는 일은 불가능해졌지만, 미카는 계속 바리스타로 일하고 싶었어요. 그 바람은 텔레 바리스타 로봇 개발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죠.


그래도 카페인데 커피 머신을 구비하는 게 더 낫지 않냐고요? 오리히메를 개발했고, 던을 운영 중인 ‘오리 연구소(Ory lab)’의 생각은 달라요. 물론 전자동 커피 기계가 있으면 편리하겠지만, 던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위해 내려주는 커피 한 잔의 가치’이죠.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감각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싸고, 빠르고, 맛있기까지 한 가성비 좋은 커피가 대세인 시대이지만, 던에는 ‘역시 OO씨가 내린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 고객이 많아요.


마지막으로 던에는 고객이 직접 오리히메를 조종해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어요. 로봇의 접객을 받아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로봇을 조종하는 파일럿이 되어볼 수 있는 거죠. 이처럼 던은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파일럿에게 새로운 근무 솔루션을 제공할 뿐 아니라, 고객의 이해도와 공감 능력도 키워주고 있어요.


이런 태도는 공간 디자인에서도 드러나죠.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부담 없이 카페를 찾아올 수 있도록 공간을 배리어 프리(Barrier-free)로 만드는 동시에, 휠체어를 탄 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도록 했거든요. 손에 힘이 없는 사람도 제스처만으로 캡슐 토이를 뽑을 수도 있고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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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호퍼스


“카페를 이질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과 로봇은 양극단에 있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고, 과학 기술과 자연은 상반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나무 질감이나 녹색을 최대한 활용한 공간으로 만들어 사람이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 위화감 없이 로봇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요시후지 켄타로 오리연구소 CEO, JDN 인터뷰 중에서


기능과 취지, 공간 구성, 기술력에 있어 전례 없는 공간으로 탄생한 던은 2021년 굿 디자인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했어요. 



#2. 누워있는 사람이 세상에 나가는 통로


덕분에 누워서 수십 년을 보냈던 파일럿들의 세상도 넓어졌어요. 아바타 로봇만 있다면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아바타 로봇 오리히메는 누가, 어떤 계기로 만들었을까요? 오리히메를 개발한 것은 오리 연구소의 대표이사 요시후지 켄타로(이하 요시후지)예요. 그는 ‘고독감 해소’라는 평생의 과제를 풀기 위해 17세부터 로봇 기술을 연구해 왔어요. 그 밑바탕에는 스스로의 뼈아픈 경험이 있죠.


요시후지는 어렸을 때부터 병이 잦았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입원했던 것을 시작으로 3년 반 넘게 학교에 갈 수 없었죠. 방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시곗바늘 소리를 듣는 날들이 이어졌어요. 정신 차려보니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있었고, 모국어를 까먹을 정도로 고독감에 시달렸죠. 이때 요시후지는 천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반복했다고 해요. ‘인간의 몸은 왜 하나밖에 없는 걸까, 두세 개면 좋을 텐데’ 하고요. 


자신의 신체라는 놀이 기구에는 결함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요시후지는 ‘마음의 휠체어’를 만들고 싶었어요.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도록요. 그게 오리히메라는 로봇 개발의 시작점이에요. 그리고 이 꿈의 여정을 함께해 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요. 오리 연구소의 창업 시기부터 오리히메를 함께 개발해 온 절친한 친구이자 비서, ‘반다 유타(이하 반다)’예요.


반다는 오리 연구소에서 일을 했지만 몸은 모리오카시의 병원에 있었어요. 4살 때 경부 손상을 겪어 목 아래로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거든요. 20년 넘는 시간 동안 누워서 생활했지만 일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턱을 움직여 오리히메를 원격 조종해서 회사로 출근했으니까요. 그는 요시후지의 비서이기도 했지만 오리히메를 사용하는 당사자로서 개선안을 함께 고민해왔죠.


어느 날, 요시후지는 반다에게 ‘비서니까 커피 한 잔 내려줘’라는 농담을 건넸어요. 반다는 ‘그럼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줘’라며 받아쳤고요. 그 대화를 계기로 오리 연구소는 2016년부터 육체노동이 가능한 오리히메의 신형 ‘오리히메-D(OriHime-D)’의 개발을 시작했죠. 개발 기간 동안 반다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지난 20년간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나는 내일 죽어도 좋으니 오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요.  


반다의 꿈은 자신처럼 외출이 힘든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카페를 여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7년, 2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죠. 아직 오리히메-D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였어요. 요시후지는 이때 개발을 포기할까도 싶었지만 친구의 꿈을 떠올리며 개발을 이어나갔다고 해요. 그리고 1년 후인 2018년, 세계 최초로 루게릭 병 환자가 눈을 움직여 아바타 로봇을 조종해 사람에게 커피를 전달하는 실험을 성공시켰죠. 


©OryLab


그런데 왜 오리 연구소는 왜 굳이 육체노동을 하는 아바타 로봇을 만들었을까요? 원격 조종이 가능하다면 카페가 아니라 일반 회사에서 간단한 사무 일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이는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니즈를 고려한 거예요. 원래 오리히메는 ‘원격 소통용 도구’의 성격이 강했는데, 아픈 사람들은 단순 커뮤니케이션보다 ‘자기 긍정감’을 원했거든요. 누군가에게 신세만 지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지금껏 수십 년을 누워지낸 사람이 갑자기 사무일을 돕는 것은 쉽지 않아요. 비단 몸이 불편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몸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이는 쉽지 않은 일이죠. 요시후지는 마치 평범한 학생이 음식점,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천천히 사회와의 접점을 확대해 나가듯,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우선 육체노동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그 결과 ‘육체노동을 원격 근무로 한다’는 발상이 태어났죠. 


그렇다면 몸이 자유롭지 못한 파일럿에게 아바타 로봇 카페 던은 어떤 존재일까요? 지금껏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해야 할 일’이 주어지자, 상호 관계라는 게 생겼어요. 이는 처음으로 나답게 살 수 있는 커뮤니티로 이어졌죠. 원격 조종으로 ‘이동’하고, 현장에 있는 듯한 감각으로 ‘대화’를 나누고, 접객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며 고독감도 점차 해소됐어요. 오리 연구소는 이 3가지 요소야말로 고독 해소의 필수 조건이라고 보죠.


던에서는 새로운 취업 기회가 생기기도 해요. 기업 인사 담당자가 찾아와 파일럿과 대화를 나누다가 스카우트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죠. 보통 회사에서는 이런 일을 곤란해하겠지만 던에서는 오히려 반기고 있어요. 오리히메를 통해 일하는 것이라면 오전에는 도쿄의 카페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삿포로의 기업에서 일하는 일이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기업 견학도 적극적으로 받고, 장애인 고용으로 고민하는 기업에게 상담도 제공하고 있어요. 그 결과 30명 가량의 파일럿이 다른 기업에서 일을 병행하고 있죠. 카페가 사회 경험이 부족한 장애인의 취업 훈련 장소가 된 것뿐만 아니라, 타 기업과의 채용 매칭 장소가 된 거예요. 


이처럼 오리 연구소는 사회적 과제를 기술로 해결해나가고 있는데요. 요시후지는 이 과제를 사회 일부의 문제라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든 언제라도 예고 없이 신체를 움직이기 어려워질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가 보기에 현대 사회는 ‘모두가 정상인 상태’를 전제로 만들어져 있어요. 그래서 오리 연구소는 ‘신체 지상주의’에 경종을 울리며 누구나 신체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세계를 만드는 중이죠. 


©시티호퍼스



#3. 미완성을 지향하는 인간적인 공간


던은 2021년부터 도쿄 니혼바시에서 상설점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이는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의 결과물이죠. 지금까지 오리 연구소는 시부야, 오테마치 등에서 기간 한정 카페를 운영하며 총 네 번의 실험을 통해 파일럿의 인원을 늘려보기도 하고, 역할을 확대해 보기도 했어요. 그뿐 아니라 파일럿들이 카페에서 일하며 평범한 동료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확인했죠. 동시에 오리히메는 지속적인 기술 개량을 거쳤어요.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와 성과를 바탕으로 드디어 상설 카페가 열렸는데요. 오리 연구소는 아직도 이 카페는 공개 실험 중이라고 밝혔어요. 단순 상설점이 아니라 ‘상설 실험점’이라면서요. 이는 매장명에서도 엿볼 수 있어요. 새벽이라는 뜻의 ‘던(DAWN)’은 ‘Diverse Avatar Working Network’의 약자이자 새로운 미래의 시작을 의미해요. 그리고 끝에 붙은 ‘버전 베타(ver.β)’는 미완성 버전을 의미하는 개발 용어죠. 앞으로도 실패, 시행착오, 개량을 거듭해 변화하고 성장해나가는 연구 프로젝트가 되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어요. 


“상설점이지만 늘 실험을 거듭해 계속해서 변화하는 장소이고 싶어요. 저는 ‘미완성’은 하나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대형 카페와 같은 시설에는 완성된 가치가 있지만, 그곳에는 참가자가 고민하거나 간섭할 여지는 거의 없어요. 저희는 미완성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다음에는 이렇게 해 보자’라며 간섭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요.”

-요시후지 켄타로 오리연구소 CEO,  브리진(Bridgine) 인터뷰 중에서


그래서 오리 연구소는 카페와 연구소를 일체화해, 카페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발견하면 즉시 반영하고 있어요. 실제로 매장에는 아직 고쳐나갈 부분이 많은데요. 카페에서는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기 쉬운 데다가 다양한 해프닝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간혹 방향을 잃은 로봇이 계속 빙글빙글 돈다던가, 통신 상황에 따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던가 하는 것처럼요. 오픈 초기에는 마이크가 주변 소리를 너무 잘 전달하는 바람에 설치 위치에 대한 시행착오도 꽤나 겪었어요. 


하지만 요시후지는 고객들이 이 해프닝까지 포함해서 카페를 즐겨주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로봇 개발은 에러나 트러블이야말로 터닝 포인트가 되거든요. 특히 이 카페에서 발생하는 실패는 인류 최초의 실패인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고객들이 이런 모습을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자 하죠. 이곳에서 고객들은 카페의 손님인 동시에 미래를 만드는 공개 실험의 참여자예요. 


그래서일까요? 던을 방문한 고객들은 일반 카페 고객과는 달리 의외의 반응을 보일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던에서는 오리히메 2대가 서로 대화를 나누며 떠드는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요. 보통 카페였다면 이를 불쾌해하는 고객도 있을 거예요. 직원들이 서로 잡담을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던에서는 고객들이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죠. 


©DAWN CAFE Instagram


파일럿의 접객이 너무 능숙하거나 완벽한 경우에는 오히려 아쉬워하기도 해요. 한번은 원래 접객업에 종사했던 파일럿이 오리히메를 조종한 적이 있는데, AI나 녹음된 음성으로 착각하기도 했죠. 그보다는 서투른 인간미가 드러나는 파일럿들이 훨씬 인기가 많아요. 일반 카페에서는 완벽한 서비스를 기대하면서도, 오리히메에게는 인간다움을 기대하는 거예요. 그래서 로봇의 실패나 오류에도 비교적 관대하죠. 


©DAWN CAFE


“접객이 서툴러도, 영어가 서툴러도, 실패해도 되는 장소가 있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서빙을 하는 오리히메-D에도 이동 시 절대 부딪치지 않는 시스템을 넣을 수 있지만, 굳이 하고 있지 않아요. 주위에서 조마조마 해하며 지켜보다가 로봇이 능숙하게 비켜가면 ‘와’하고 박수를 보내죠. 이런 일체감이야말로 ‘실패를 가치로 만든 순간’이지 않을까요?”

-요시후지 켄타로 오리연구소 CEO, 워크 밀(Work Mill) 인터뷰 중에서


요시후지는 앞으로도 던의 매장명에서 ‘버전 베타’라는 말을 떼지 않을 생각이에요. 어떤 매장 형태가 최적일지 실패나 시행착오를 반복해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이 카페의 본질이니까요. 고객도 단순히 커피를 마시러 오는 것만이 아니라, 깨달은 점이나 바라는 점을 설문에 남겨 ‘고독 없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가능성이 넘치는 미완성의 공간이죠. 



‘아픈 사람’이 아니라 ‘인생 선배’다


오리 연구소라는 회사명에는 요시후지의 지향점이 담겨 있어요. 실험실(Laboratory)나 공장(Factory) 등의 단어에서 볼 수 있는 오리(Ory)라는 어미에는 ‘장소’라는 의미가 있어요. 즉 오리 연구소는 ‘장소에 관한 연구소’라는 뜻이죠. 요시후지는 '내가 여기 있어도 될까?’,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라는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죠. 그 결과 파일럿들이 하나의 둥지로 삼을 수 있는 장소이자, 새로운 근로 방법과 생활 방식이 탄생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었어요. 


요시후지는 ‘새로운 갈 곳’이 생긴 파일럿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남달라요. 자신이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생 선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늙어가는 법이고, 죽지 않는 한 언젠가는 자리에 눕게 되는 날이 찾아오죠. 그러니 ‘장애인’이 아니라 ‘인생 선배’인 이들이 사회에 설 곳을 만들어주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해요. 


아바타 로봇 카페 ‘던’에서의 상설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는 던에서 점원과 고객 모두 오리히메를 통해 만나는 날도 찾아오겠죠. 그때쯤이면 오리 연구소의 바람처럼 전 세계 외로움의 총량이 꽤 줄어 있지 않을까요? 







Reference

아바타 로봇 카페 던 버전 베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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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ATAR ROBOT CAFE DAWN ver.b and avatar robot OriH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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