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는 일상을 더 능동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에요. 연말 연초가 되면 서점가와 문구점에 각양각색의 다이어리들이 쏟아지는 이유죠.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일, 삶은 소중한 법이니까요. 그런데 시중에 나와있는 다이어리에 한 가지 맹점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시나요?
보통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일이나 프로젝트가 월 단위나 주 단위로 딱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런데 보통 다이어리들은 다 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페이지 레이아웃이 월이나 주 단위로 끊어져 있죠. 그래서 스케줄을 관리할 때면 과거나 미래 스케줄을 찾아보기 위해 페이지를 앞뒤로 뒤적거릴 수밖에 없어요.
아름다운 디자인이 고객의 일상을 바꾼다는 믿음으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디브로스(D-bros)’는 이 맹점을 유심히 살펴봤어요. 그리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십분 발휘해서 새로운 형태의 다이어리를 탄생시키죠. 페이지가 끊어지지 않고 펼쳐지는 아코디언 다이어리를 만든 거예요.
디브로스는 익숙한 것에 낯선 감각을 더해 일상을 빛나게 하는 달인이에요. 그 결과 29년간 고객의 하루하루에 기쁨을 더해왔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면, 디브로스가 어떻게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지 살펴봐요.
디브로스 미리보기
• #1. 소재 비틀기 - 비닐 꽃병과 종이 시계
• #2. 형태 비틀기 - 아코디언 다이어리와 과일 메모지
• #3. 속성 활용하기 - 미러 컵과 동화 유리
• ‘어떻게 팔까’ 대신 ‘무엇을 만들까’를 고민하다
위스키는 몰라도 ‘잭 다니엘(Jack Daniels)’은 알지 몰라요. 브랜드 이름이 제품군이 되지는 못했지만, 잭 다니엘의 인지도는 위스키를 모르는 사람도 알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요. 이런 잭 다니엘도 이름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절이 있었어요. 미국과 유럽에서 성공을 거둔 뒤 1980년대 초반 아시아 시장에 발을 디딜 때 그랬죠.
당시 아시아에서 버번 위스키는 낯선 술이었어요. 그래서 1980년대 후반이 돼서야 잭 다니엘은 아시아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죠. 그런데 유독 일본에선 1980년대 초반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어요. 이유가 뭘까요? 바로 1981년 아사히 신문에 실린 광고 덕분이에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1981년으로 거슬러 가볼게요.
잭 다니엘의 수입을 맡은 산토리는 일본의 작은 디자인 사무소에 신문 광고를 맡겼어요. 일단 예산을 최대한 아끼는 방향으로 아사히 신문에 연 3회 전면 광고를 하기로 계약했죠. 작은 디자인 사무소의 대표 미야타 사토루는 미국 국기나 미국의 초대 대통령 링컨 등 미국을 상징하는 사진에 절반을 할애했어요. 잭 다니엘을 조연처럼 사진 아래 배치했고요. 미국을 광고하는 건지, 잭 다니엘을 광고하는 건지 모를 정도였죠.
ⓒDraft
결과는 성공적. 미야타 사토루가 직접 “상상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고 표현할 정도였죠. 단순해 보이는 이 광고가 성공한 이유는 일본인의 미국을 동경하는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에요. 당시 일본인들은 미국을 자유와 영웅의 나라라고 생각하며 우러러봤거든요. 잭 다니엘도, 버번 위스키도 생소하니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미국의 이미지를 써야겠다고 판단한 게 먹힌 거예요. 그렇게 잭 다니엘은 일본인의 사랑을 받는 위스키로 떠올랐어요.
이 광고는 잭 다니엘뿐 아니라 작은 디자인 사무소였던 ‘드래프트(Draft)’에게도 껑충 성장하는 계기가 됐어요. 잭 다니엘 광고로 일본에서 알아주는 아사히 광고상과 ADC 최고상을 타며 광고계 샛별로 떠올랐거든요. 이후에도 드래프트는 의류 브랜드인 라코스테, 시계 브랜드인 브라이트닝, 주류 브랜드인 기린 맥주 등의 브랜딩과 광고를 도맡으며 승승장구했어요.
그러던 1995년, 드래프트는 새로운 도전을 해요. 다른 회사의 제품을 빛나게 하는 일을 하다가 돌연 직접 빛나는 제품을 만들겠다며 회사를 차린 건데요. 새롭게 시작한 회사의 이름은 ‘디브로스(D-bros)’.
미야타 사토루 대표는 클라이언트에 의존하는 드래프트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아무리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도 클라이언트의 사정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거절되는 경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답답했죠. 이럴 바에야 직접 만들기로 한 거예요. 그리고 기왕 할거면 최대한 디자인 차원에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하여 ‘디자인은 즐겁다(Design is Fun)’를 디브로스의 모토로 잡았죠.
제품 디자인 영역으로 넘어가면서도 주특기를 버리진 않았어요. 드래프트는 디브로스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래픽 디자인을 중심으로 성장했는데요. 그들의 강점인 2차원 그래픽을 3차원 제품에 반영하면서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로 했죠. 그렇게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기발한 제품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어요. 특히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비튼 제품들로 존재감을 드러냈죠. 그렇다면 어느덧 29주년을 맞이한 디브로스가 어떤 제품을 만들어 왔는지, 또 어떤 식으로 소비자를 감탄하게 했는지 살펴볼게요.
#1. 소재 비틀기 - 비닐 꽃병과 종이 시계
꽃은 무슨 색일까요? 빨간색이 떠오를 수 있지만, 꽃은 한 가지 색만 있는 게 아니에요. 빨주노초파남보 등 다양하죠. 그렇기 때문에 꽃을 사거나 선물 받았을 때 그 꽃이 어떤 색일지는 알 수 없어요. 그날의 기분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꽃이 달라질테니까요.
그런데 집에 꽃병이 하나만 있다면? 꽃병에 꽃을 꽂았을 때 어울리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집에 꽃병을 여러 개 두자니 그것도 부담이에요. 보통의 경우 꽃병은 유리, 도자기, 플라스틱 등 딱딱한 소재로 만들잖아요. 그래서 집안에서 부피를 차지하죠. 특히 일본처럼 평균적으로 집이 작다면 더 부담스러울 거예요. 결국 어떤 꽃과도 무난히 어울릴 만한 밋밋한 꽃병을 고를 수밖에 없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이 바로 디브로스의 ‘플라워 베이스(Flower base)’예요. 겉으로 보면 화려한 유리 꽃병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비닐로 만들어졌어요. 풍선에 바람을 넣듯이 플라워 베이스의 입구에 물을 채우면 금세 단단하고 감각적인 꽃병으로 변하죠.
Flower base ⓒD-bros
Flower base ⓒD-bros
비닐 꽃병이다 보니 물을 빼고 씻어서 말리면 종이처럼 얇아져서 보관하기 쉬워요. 관리만 잘 한다면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 가능해요. 줄무늬부터 체크무늬, 도트무늬까지 물병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 취향대로 갖춰 놓고 언제든 물병을 교체할 수 있어요. 호리병처럼 길쭉한 타입도, 컵처럼 뭉툭한 타입도 있어서 어떤 꽃이냐, 얼마나 많이 꽂고 싶냐에 따라 꽃병 모양도 선택할 수 있죠. 꽃병이 쓰러져도 깨지지 않아 아이나 반려동물이 있어도 문제 없다는 장점도 있고요.
이처럼 디브로스는 모회사의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주특기를 살려 상황에 따라 2차원의 그래픽 디자인과 3차원의 제품을 넘나드는 제품을 선보였어요. 실험적인 제품 같지만 디브로스의 비닐 꽃병 플라워 베이스는 2003년 출시된 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2020년엔 시간이 흘러도 가치 있는 디자인을 수상하는 굿 디자인·롱 라이프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어요.
Time paperⓒD-bros
소재를 바꾼 다른 디자인을 볼까요? 바로 ‘타임 페이퍼(Time paper)’예요. 이름 그대로 종이로 만든 시계인데요. 스틸이나 유리, 스테인리스 등 보통 시계에 쓰이는 딱딱하고 차가운 재질 대신 가볍고 변형이 가능한 종이를 활용했어요.
Time paperⓒD-bros
타임 페이퍼도 플라워 베이스처럼 시계 판을 언제든 원하는 종이로 바꿔 쓸 수 있어요. 시곗바늘과 배터리를 쉽게 떼어내 다른 종이에 조립할 수 있거든요.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 등 어떤 종이라도 시계의 숫자판이 될 수 있는 셈이죠. 종이에 시곗바늘과 배터리를 연결할 조립할 작은 구멍만 뚫는다면 어떤 종이에든 쉽게 끼울 수 있어요.
꽃병과 마찬가지로 집안의 벽시계도 기분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바꾸긴 어려워요. 그러려면 벽시계를 여러 개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시계판을 종이로 제작하고, 그 종이를 갈아낄 수 있게 하니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집에 벽시계를 수납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도 집에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요. 이 역시도 디브로스의 모회사의 주특기인 2차원 그래픽 디자인을 3차원의 제품으로 승화시킨 사례죠.
#2. 형태 비틀기 - 아코디언 다이어리와 과일 메모지
디브로스는 제품의 재질을 비틀어 비닐 꽃병과 종이 시계를 탄생시켰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제품의 형태까지 비틀어버리죠. 늘 곁에 두고 생활해 온 익숙한 제품에 낯선 감각을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대상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할 때 오히려 더 큰 재미를 느껴요. 마음 적중률이 높아서 ‘의외성의 마법’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죠.
그렇다면 디브로스가 의외성의 마법을 어떻게 부리는지 살펴볼게요. 사람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는 다이어리인데요. 디브로스가 만든 다이어리의 첫인상은 일반 제품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여요. 그런데 이 다이어리의 첫 장을 넘겨 펼치는 순간, 그때부터 마법이 시작되죠. 책처럼 한 페이지씩 넘기는 일반 다이어리와 달리, 디브로스의 다이어리는 아코디언처럼 펼쳐지거든요. 모든 페이지가 한 장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에요.
Creator’s Diary ⓒD-bros
이 제품의 이름은 ‘크리에이터의 다이어리(Creator’s Diary)’. 사실 드래프트의 디자이너가 스케줄 관리를 위해 쓰던 시트를 제품화한 것인데요. 보통의 다이어리가 가지고 있는 맹점을 건드렸어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나 프로젝트, 미션 같은 건 월 단위나 주 단위로 딱 떨어지지 않잖아요. 그래서 일반 다이어리로 스케줄을 관리할 때면 과거나 미래 스케줄을 찾아보기 위해 페이지를 몇 번이나 넘겨야 하죠.
드래프트의 디자이너는 한눈에 스케줄을 파악할 수 있다면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할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상단 세로축에는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하단 가로축에는 1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기록할 수 있도록 시트를 구성했죠. 이렇게 일정을 관리했더니 프로젝트나 배움에 쏟을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었어요.
이 사정을 알게 된 디브로스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다이어리를 만들기로 했어요. 다 같이 약속이나 한 듯 월 단위, 주 단위로 분리된 다이어리 형태에서 벗어나기로 한 거죠. 그래서 접힌 종이를 연결하기 위해 특수 기계를 쓰고, 혹시나 잘못 이어지지 않았는지 검수를 거듭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쳤어요. 그 결과 디브로스의 크리에이터의 다이어리는 ‘정평이 난 다이어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어요.
그런데 디브로스는 왜 이 다이어리 이름 앞에 ‘크리에이터’라는 단어를 넣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 다이어리가 규칙적으로 일하는 직장인보다 디자이너, 건축가 등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는 크리에이터에게 더 유용할 거라고 봤기 때문이에요. 또한 누구나 일상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N잡러나 챙길 게 많은 워킹맘, 시간 관리를 하고 싶은 현대인까지 누구나 편리하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요.
한편,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 재미와 위트를 주기 위해 형태를 변형시킨 제품도 있어요. 오피스 책상 위에 올려 두면 동료가 과일로 착각할 법한 ‘쿠다메모(Kudamemo)’죠. 보통 메모지를 떠올리면 사각형이나 둥근 모양으로 위에서 한 장씩 뜯어 쓰는 형태를 상상하잖아요. 하지만 쿠다메모는 실제 과일 조각처럼 길쭉하고, 책장에서 책을 꺼내듯 메모지를 떼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고객에게 새로움을 선물해요.
kudamemo ⓒD-bros
쿠다메모는 과일이라는 뜻의 ‘쿠다모노(くだもの)’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실제로도 과일과 메모지 간의 싱크로율도 높죠. 이 과일 메모장 가운데 솟아 있는 꼭지는 실제 나뭇가지예요. 게다가 메모지를 한 장 뜯어보면 그 안에 씨앗까지 인쇄돼 있을 정도로 디테일하고요. 단조로운 물건들로 가득 찬 책상 위에 쿠다메모를 놓는다면 건조한 업무 시간도 화사해지지 않을까요? 쿠다메모에 무언가를 적어 건넨다면 다른 메모보다 더 오래 기억될지도 모르고요.
#3. 속성 활용하기 - 미러 컵과 동화 유리
제품을 통해 일상을 차별화하는 디브로스의 재주는 어디까지일까요? 의외성의 마법을 부리던 디브로스가 이번엔 진짜 눈속임을 일으켰어요. 마술의 단골 소재인 거울을 활용해서 말이죠. 거울은 각도에 따라 비추는 게 달라져서 눈속임을 일으키기 제격이에요. 친숙한 영화로 예를 들어볼게요.
영화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에는 마술로 완전범죄를 꿈꾸는 4명의 마술사 ‘포 호스 맨’이 등장해요. FBI는 파리 은행의 금고가 통째로 사라진 걸 보고 포 호스 맨을 의심하지만 증거를 찾지 못하는데요. 알고 봤더니 금고는 사라진 게 아니었어요. 금고 앞에 거울을 설치해 금고가 있는 방이 텅 비어 있는 것처럼 속인 거였죠. 이 장면은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명장면으로 꼽힐 정도로 많은 관객의 이목을 끌었어요.
그렇다면 디브로스는 거울의 속성으로 어떤 기교를 부렸을까요? 대표적인 제품은 ‘미러 컵 세트(Mirror cup&Saucer)’예요. 이 제품엔 비밀이 하나 숨어있어요. 먼저 아래 사진을 보고 비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Mirror cup&Saucer ⓒD-bros
미러 컵과 컵 받침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느껴져요. 그런데 이 컵을 컵 받침에서 떼는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요. 화려해 보이는 컵은 사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이름 그대로 거울 컵일 뿐이거든요. 컵이 화려한 패턴이 그려져 있는 컵 받침을 반사해서 착각을 일으킨 거죠.
Mirror cup&Saucer ⓒD-bros
미러 컵은 컵 받침에 놓았을 때와 차를 마시기 위해 들어 올릴 때, 위에서 볼 때와 옆에서 볼 때 등 시선을 움직일 때마다 모습이 달라져요.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나거나 분위기가 무거운 비즈니스 미팅 때 미러 컵으로 차를 마신다면 아이스브레이킹에 제격이죠. 게다가 하나 더. 미러 컵이 있다면 더 이상 찻잔을 사지 않아도 돼요. 어떤 컵 받침과도 잘 어울릴 테니 마음에 드는 컵 받침만 사서 쌓아두면 되죠.
참고로 미러 컵은 진짜 거울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금보다 귀하다고 알려져 있는 희귀 팔라듐으로 코팅되어 있죠. 말 그대로 거울의 속성만 가져온 거예요. 디브로스는 여기서 눈속임을 그치지 않았어요. 미러 컵이 거울의 반사를 활용했다면, 이번에는 유리가 가진 빛의 굴절로 재미있는 모습을 연출했죠. 바로 동화의 한 장면이 그려져 있는 ‘동화 유리(童話グラス)’예요.
빛은 같은 물질을 지날 땐 직진하지만 서로 다른 두 물질을 지날 땐 직진하지 못하고 방향이 달라져요. 이게 바로 ‘굴절’이죠. 굴절로 인해 우리는 물건을 실제 모습과 다르게 인식해요. 물 속에 손을 담그면 더 커 보이는 이유도, 물 속에 있는 물고기가 실제 크기보다 더 커 보이는 이유도 모두 빛이 물에서 공기로 이동하면서 굴절하기 때문이죠.
童話グラス ⓒD-bros
디브로스는 이 굴절 원리를 동화 유리에 적용했어요. 어떻게냐고요? 빈 컵일 땐 대칭에 서 있는 빨간 모자와 늑대가 비슷한 크기로 보이는데요. 물을 담은 뒤 빨간 모자가 그려진 면에서 늑대를 바라보면 물 때문에 빛이 굴절해서 늑대가 훨씬 크게 보여요. 또 다른 버전으로 백설공주와 마녀도 있어요. 물을 담으면 마녀가 크게 보이죠.
그렇다면 많고 많은 동화 중 빨간 모자와 백설공주가 동화 유리의 주인공으로 뽑힌 까닭은 무엇일까요? 동화 속에서 빨간 모자는 늑대에게 잡아먹혔다가 지나가던 사냥꾼 덕에 목숨을 구해요. 백설공주는 마녀에게 받은 사과를 먹었다가 왕자의 키스 덕에 사과를 뱉으며 눈을 뜨죠. 악역의 함정에 빠지고 만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컵에 담은 거예요. 이 동화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반갑게 느낄 수 있도록 말이에요.
童話グラス ⓒD-bros
동화 유리의 또 다른 시리즈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있는데요. 빨간 모자와 백설공주 컵의 경우 정해진 방향에서 봐야 스토리가 완성되는 반면, 앨리스 컵은 어떤 곳에서 보든 스토리에 지장이 없어요. 동화 속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몸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토끼와 고양이를 만나기도 하니까요. 재미있는 제품을 만들기에 앞서 동화의 스토리까지 신경 쓴 셈이에요.
‘어떻게 팔까’ 대신 ‘무엇을 만들까’를 생각하다
드래프트의 대표 미야타 사토루는 디브로스가 시간이 흘러도 사랑받는 디자인을 만들기를 바랐어요. 유행에 따라 훌륭한 제품들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게 아쉬웠거든요. 그리고 어느새 29주년을 맞이 한 디브로스는 미야타 사토루 대표의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죠. 플라워 베이스부터 미러 컵 세트, 쿠다메모 등 많은 제품이 10년 넘도록 큰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디브로스가 29년 동안이나 ‘Design is Fun’이라는 모토를 한결같이 유지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로 디자이너의 자유를 보장하는 과감한 프로세스 덕분이에요. 보통 기업에서 제품을 만들 때는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따로 있어요. 디자이너는 기획 의도에 맞는 디자인을 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디브로스의 디자이너들은 기획부터 생산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총괄해요. 디자이너의 창의력을 기획에 반영하고, 제품 제작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거죠. 이 프로세스 덕에 디브로스의 디자이너는 ‘상품을 어떻게 팔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부터 생각할 수 있어요. 재미있는 제품을 계속 만들 수 있는 이유죠.
“자유롭게 펼친 생각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건 매우 고맙고 행복한 일이에요.”
- 카즈야 이와나가, 디브로스 아트 디렉터
이 프로세스는 기업이나 소비자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고 싶다던 미야타 사토루의 꿈과 맞닿아 있어요. 기발한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가지 않고 끝내 제품으로 탄생할 수 있도록, 그래서 지속적으로 재미있는 제품이 세상에 나오도록 그 환경을 제공한 거예요.
“디자인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이에 행복한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내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브로스의 제품을 통해 ‘디자인은 즐거운 것(Design is Fun)’이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디브로스, 29주년 인사문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계획된 프로세스 아래에서 만들어진 결과인 만큼, 디브로스의 재미있는 시도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에요. 개인과 사회의 일상을 바꾸기 위해 어떤 디자인으로 마법을 부릴지 디브로스의 미래가 궁금해요.
Reference
정지은, ‘"티모시 샬라메가 굿즈로" 메가박스 100번째 오리지널 티켓 주인공은 '웡카'’,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