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면이 형형색깔의 무지개처럼 생긴 ‘무지개 케이크’, 한 번쯤 본 적 있죠? 지금에야 많은 디저트 브랜드들이 이 무지개 케이크를 판매하지만, 그 시초는 ‘도레도레(DORE DORE)’예요. 2014년, 가로수길에 도레도레의 매장을 내면서 화려한 비주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그런데 도레도레의 김경하 대표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 혹은 케이크를 만들 의도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편안하게 떠들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죠. 그런데도 케이크의 비주얼에 공을 들였던 건, 도레도레에서 케이크는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대화의 매개’이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케이크를 매개로 대화를 주고 받고, 의견을 나누기를 바라거든요.
어느 덧 20년차 카페 브랜드가 된 도레도레는 2025년 2월 기준 현재, 전국에 11개의 매장이 있어요. 동시에 도레도레 뿐만 아니라 다양한 F&B 브랜드들을 론칭해 존재감을 단단히 다지고 있죠. 도레도레의 창업자이자, 부동산 디벨로퍼를 꿈꾸는 도시 공학도였던 김경하 대표와 함께 인사이트 넘치는 대화를 나누고 왔어요.
도레도레 미리보기
• #1. 건물을 짓기 전, ‘콘텐츠’를 먼저 만든 도시 공학도
• #2. 카페를 ‘선물가게’로 재정의하자 생기는 일
• #3. 살고 싶은 삶을 브랜드로 구현하다
• 앞으로의 F&B,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이번 발렌타인데이 케이크, 다들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오랜 기간 동안 ‘케이크’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어요. 2006년 인천의 작은 초콜릿 가게로 시작해, 지금은 전국 11개 지점이 있는 케이크 카페 ‘도레도레(DORE DORE)’예요. 도레도레는 20년 동안 도레도레 외에도 커피 전문점 ‘마호가니’, 2024년 안국에 문을 연 이탈리아 베이커리 숍 ‘아모르 나폴리’ 등 다양한 브랜드로 몸집을 키워왔죠.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브랜드이기에, 그 이름은 이제 ‘핫한’ 카페를 넘어 ‘늘 우리 곁에 있어 온 일상 속 카페’, 혹은 ‘기념일마다 찾게 되는 케이크 숍’이 되었어요. 특히 도레도레는 특유의 위트와 개성이 있는 케이크 디자인으로 사랑 받고 있어요. 올해 발렌타인데이 케이크 역시 알록달록하니 군침이 돌아요. 거대한 하트가 옆으로 누워 있는 듯한 하트 케이크, 바닐라 크림 위에 앙증맞은 하트 장식이 올라간 쁘띠 케이크, 도레도레의 시그니처인 무지개 케이크 ‘나도좋아’ 케이크까지.
사실 도레도레는 오늘날 카페 씬에 큰 영향을 끼친 1세대 ‘인스타그래머’ 카페예요. 케이크 단면을 알록달록한 무지개처럼 디자인한 ‘무지개 케이크’의 원조거든요. 2014년 도레도레가 가로수길에 첫 서울 매장을 오픈했을 때, 무지개 케이크는 예쁜 비주얼을 무기로 매장 앞에 긴 줄을 세웠죠. 무지개 케이크는 도레도레를 시작으로 많은 디저트 숍에서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도레도레는 무지개 케이크 이후에도 여전히 트렌디한 케이크들을 만들고 있어요. 도레도레의 케이크는 가수 아이유의 <스물셋>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하고,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와는 케이크 산도를 함께 선보이기도 했어요. 이처럼 도레도레는 셀러브리티들과의 인연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죠.
ⓒDORE DORE
ⓒDORE DORE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브랜드의 비결이 궁금했어요. 광화문의 마호가니 카페에서 도레도레의 김경하 대표를 만나봤죠. 김경하 대표는 의외의 말을 해왔어요. “도레도레를 트렌디한 카페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요. 그게 무슨 말인지, 김경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도레도레의 20년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죠.
#1. 건물을 짓기 전, ‘콘텐츠’를 먼저 만든 도시 공학도
‘20대 여성 창업가의 성공 신화’
도레도레를 수식하는 말 중의 하나예요. 도레도레는 김경하 대표가 무려 대학생 시절 시작한 브랜드거든요. 도레도레의 문을 연 2006년 당시, 김경하 대표는 23살이었죠. 게다가 김경하 대표의 꿈은 F&B에 있지 않았어요. 부동산 디벨로퍼의 꿈을 가진, 도시 공학도였어요. 그랬던 김 대표가 대학생 신분으로 불쑥 도레도레를 오픈한 이유가 뭘까요?
“도시 공학을 공부하면 늘 이런 고민을 달고 살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도시 공학은 미래를 계획하는 학문이거든요. 좋은 도시가 되려면 당연히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하죠. 그런데 건물만 달랑 지어 놓으면 행복한 도시가 될까요?
건물이 갖는 의미를 먼저 만들고 싶었어요. 건물 안에 재미있는 놀거리도 있고, 친구들이랑 같이 대화를 나눌 공간도 있어야 의미가 생기잖아요. ‘콘텐츠’가 필요한 거죠. 막연히 그런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도레도레를 시작했어요.”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2000년대 초, 건물들의 주요 테넌트는 스타벅스와 같은 외국발 프랜차이즈나 체인점이었어요. 하지만 김 대표는 30년 뒤에도 그 콘텐츠가 유효할까 의문이었죠. 그래서 건물을 짓기 전에, 건물에 의미를 부여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해요.
도레도레 김경하 대표 ⓒ시티호퍼스
그 콘텐츠로 선택한 카테고리가 ‘초콜릿’이었어요. 김 대표는 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선물 주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는 했거든요. 초콜릿도 그 중 하나였죠. 가내수공업으로 초콜릿을 만들고, 수공예로 포장을 해서 인천의 한 상가 건물 1층에 매대를 두고 팔기 시작했어요.
반응은 나쁘지 않았어요. 흔히 볼 수 없는 수제 생초콜릿을, 핸드 크래프트 포장으로 팔았던 것이 차별점이 됐죠. 당시 수제 초콜릿은 커녕, 초콜릿 숍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었거든요. 발렌타인 데이 시즌 때면 월 최고 매출 5천만 원을 기록하기도 했어요. 시즌이 끝나면 음료와 브런치를 팔면서 카페로 확장했고요. 그게 도레도레의 시작점이었어요.
ⓒDORE 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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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도레는 카페를 곁들인 초콜릿 상점으로 무려 7년을 보냈어요. 그러다 2011년, 돌연 경기도 하남에 2호점 브런치 카페를 오픈했어요.
“성에 차지 않았어요. 모두가 제가 하는 일을 반대했거든요. 당시만 해도 카페에서 일한다고 하면 어르신들이 ‘다방 아가씨’라고 부를 때였으니까요. 제가 아무리 ‘나는 라이프스타일 사업을 하는 거다’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어요. 저를 별난 사람 취급했죠. 그래서 증명해야만 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도레도레에 매달려 있는 일이 허튼 짓이 아니라는걸요.”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2호점은 ‘증명의 시간’이었어요. 반대가 심한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으려 일부러 연고 없는 하남에 자리를 잡았죠. 김 대표는 증명을 위해 쉼 없이 일했어요. 새벽 4시에 기상해 장을 보고, 아침 일찍 카페를 오픈하고, 밤 11시가 넘어 문을 닫았죠. 퇴근하면 새벽 2시가 넘었어요. 2~3시간만 눈을 붙였다가 기상했죠.
2호점은 성공적이었어요. 주말이면 늘 만석이었죠. 이는 김경하 대표의 도전에 대한 증명이기도 했지만, 김경하 대표가 그린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증명이기도 했어요. 인천의 1호점은 도심에 자리 잡고 있는 반면, 2호점은 하남 미사리에 위치해 있었죠. 미사리는 사람들이 잠시 여유를 갖고 드라이브를 떠나는 지역이었어요. 당시 요즘처럼 도시 외곽의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많지 않았어요. 드라이브를 나온 사람들은 도레도레에 모여들었죠.
김경하 대표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도 바로 이런 ‘현실에서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었어요. 그래서 도레도레의 이름도 ‘금빛의’라는 뜻의 프랑스어예요. 김 대표는 도레도레를 황금빛 따사로운 여유가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죠.
“제가 의도한 라이프스타일은 도심에서 바쁘게 사는 삶이 아니라 도시 외곽에서 여유를 느끼고, 주변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삶이었어요. 제가 바로 숨가쁘게 살아온 사람 중 한 명이거든요.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하고, 대학을 가서도 치열하게 공부하고… 대학을 간 뒤에는 이런 삶에서 탈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내가 살고 싶은 공간들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도레도레는 3호점을 포천에, 4호점을 강화도에 오픈했어요.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한 카페로 거듭나기 시작했죠.
ⓒDORE DORE
ⓒDORE DORE
#2. 카페를 ‘선물가게’로 재정의하자 생기는 일
때로는 기획자의 의도가 시장에 다른 뜻으로 받아 들여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 상충은 의도치 않은 성과로 이어지기도 하죠. 도레도레가 ‘핫한 카페’가 된 것도 바로 그런 경우였죠. 가로수길에 도레도레의 매장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영업 시간 10시간 내내 대기 손님이 있었어요.
도레도레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일등공신은 케이크였어요. ‘선물’의 연장선에서 도레도레는 초콜릿 다음으로 케이크에 집중하기 시작했죠. 그 중에서도 화제가 된 건 현재까지도 시그니처로 자리 잡고 있는 ‘무지개 케이크’예요. 도레도레를 모르는 사람도 무지개 케이크는 본 적이 있을 정도예요.
무지개 케이크는 단순히 화려한 비주얼로 유명해진 게 아니에요. 카페 시장에서 케이크를 ‘주인공’으로 승격시켰기 때문에 도레도레가 당시 ‘카페의 매커니즘을 바꿨다’고 평가 받는 거죠. 2010년 초, 대부분의 카페에서 케이크는 곁들여 먹는 디저트 중 하나였지, 케이크를 맛보러 일부러 특정 카페에 가는 일은 없었어요.
“당시 케이크는 사양 산업이었어요. 룸카페 같은 곳에 가면 케이크를 음료랑 같이 먹으라고 무료로 주는 정도였으니까요. 대부분 냉동 케이크였고요. 그런데 저희는 케이크를 도레도레의 정체성 그 자체로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 도레도레에서 케이크는 ‘로컬 버즈’를 일으키는 도구예요.”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DORE DORE
케이크가 로컬 버즈를 만든다니, 무슨 의미일까요? 로컬 버즈란 독일의 경제지리학자 바텔트가 제시한 지역 발전의 요소 중 하나예요.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상황, 활발한 정보 교류 등을 뜻하는 말이죠.
로컬 버즈는 이전까지 도시 외곽에서 여유로운 삶을 지향하던 도레도레가 서울에 자리를 잡은 이유와도 연관이 있어요. 김경하 대표는 초기에 도레도레를 통해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했어요. 그 다음 스텝으로 사람들이 모여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개방적인 문화를 만들고 싶었죠. 하지만 도시 외곽에서는 쉽지 않았어요. 반면,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은 새로운 시도에 깨어 있고, 자유로웠어요.
‘무지개 케이크’의 흥행이 바로 그 증거예요. 김 대표가 무지개 케이크를 기획한 건 2012년. ‘개방성’의 의미를 품은 무지개 색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인천 1호점에서 가장 먼저 판매를 시작했어요. 이 곳에서는 무지개 케이크가 잘 팔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2014년 가로수길을 오픈하고 가장 인기 있는 건 무지개 케이크였어요. 지역 간 수용성의 차이 때문이었죠.
무지개 케이크 외에도 도레도레는 항상 크고,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케이크를 팔아요. 도레도레가 케이크에 두는 의미는 그저 디저트가 아닌 ‘대화의 시작’이거든요.
“선물이라는 건 그냥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소통과 공유가 로컬 버즈를 만든다고 생각했죠. 그러려면 가장 먼저 사람들이 대화를 해야 해요. 케이크를 포장해서 혼자 먹는 게 아니라 모여 앉아서 나눠 먹어야 하죠.
그래서 저희 매장에는 항상 커다란 롱 테이블이 있어요. 여러 명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죠. 케이크는 그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어요. ‘이거 맛있네, 맛없네’부터 ‘특이하게 생겼다’, ‘이건 어떻게 먹는 거냐’ 등… 도레도레에게 케이크는 소통과 대화 그 자체예요. 그게 도레도레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메시지예요.”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그러고 보니, 도레도레 케이크는 모두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요. 무지개 케이크뿐 아니라, 옆면에 초 모양 크림이 그려져 있는 ‘초대해 케이크’, 산타의 얼굴을 닮은 ‘오늘밤에다녀가신대 케이크’, 눈사람 모양의 ‘녹지마!눈사람 케이크’ 등 이야깃거리를 가득 품고 있죠.
ⓒDORE DORE
ⓒDORE DORE
비주얼 뿐만 아니라 이름도 독특하죠? 바로 이런 위트 있는 네이밍이 도레도레 케이크가 사랑 받는 두 번째 이유예요. 중요한 건 이름 자체가 아니라 케이크가 ‘감정’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이에요. 도레도레의 또 다른 시그니처 케이크, 딸기가 잔뜩 올라간 ‘너무고마워 케이크’가 그 예 중 하나죠.
ⓒDORE DORE
“제가 중학생 때, 서울에 아주 유명한 딸기 케이크 가게가 있었어요. 그 케이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인천에서 압구정까지 갔어요. 저한테는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그 딸기 케이크였던 거예요. 케이크가 단순한 음식에 그치지 않고 감정으로 치환되는 거죠. 그 감정을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케이크를 만들고 싶었어요.”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그래서 김 대표는 도레도레를 ‘카페’가 아닌 ‘선물 가게’라고 표현해요. 도레도레에게 케이크란 감정을 전하는 수단, 대화를 일으키는 수단, 즉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수단인 거예요.
#3. 살고 싶은 삶을 브랜드로 구현하다
도레도레는 승승장구했어요. 2014년 가로수길을 시작으로, 1년 동안 직영점을 20개씩 오픈했죠. 사실, 이런 확장은 김경하 대표의 계획은 아니었어요. 단순히 작은 선물 가게로 시작한 카페가 의도치 않게 ‘핫한 카페’로 알려지면서, 김 대표는 지쳐갔어요. 의도했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과는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냥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놀러 와서 이야기 나누고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너무 변질되어 가는 거예요. 사진 찍기 좋은 카페,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 정신 없이 일하다가 문득 ‘이런 걸 바란 게 아니다’ 깨달았죠. 가게 앞에 줄이 늘어나도 기쁘지가 않았어요."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지쳐가는 몸과 마음에 대한 해결책이 확장이었어요. 그만둘 수 없다면 아예 몸집을 키워서 시스템화 하기로 하죠. 도레도레의 직원은 200명까지 늘어갔어요. 도레도레가 안정화 되면서 김 대표는 숨 쉴 틈을 찾아 ‘도레도레와 정반대의 브랜드를 만들자’고 다짐해요. 그게 바로 2015년 오픈한 도레도레의 커피 전문점 ‘마호가니’예요.
“마호가니는 일부러 도레도레랑 정반대로 만들었어요. 마호가니는 ‘유행템이 없어야 해’, ‘인스타그래머블 하지 않아야 해’, ‘디저트가 메인이면 안 돼’, ‘트렌디한 상권에 있으면 안 돼’… 진짜 로컬에서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죠.”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마호가니 1호점은 연희동에 문을 열었어요. 당시 연희동은 상점보다 주택이 많은 지역이었어요. 생활권 안에 있는 카페를 노렸죠. 이후에도 마호가니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를 잡았어요. 연희동 같은 주거 지역 외에, 여의도나 광화문 같은 근무 지역, 학생들이 다니는 대학교 안… 도레도레와는 정반대의 페르소나가 완성됐어요.
도레도레는 마호가니 이외에도 다양한 브랜드를 전개했어요. 2015년 오픈한 슈퍼푸드 다이닝 ‘디쉬룸’, 2019년 오픈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셀 로스터스’, 2024년 오픈한 이탈리안 베이커리 ‘아모르 나폴리’까지. 도레도레가 전개하는 다양한 브랜드는 모두 김경하 대표의 라이프스타일에서 파생됐어요. 도레도레의 2호점, 3호점을 오픈할 때 의도했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처럼, 김 대표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대로 브랜드를 하나, 둘 론칭해 온 거죠.
ⓒDORE 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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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저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브랜드로 구현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도레도레에서 표현됐고, 좀 쉬고 싶은 마음이 마호가니에서 표현됐어요. 더 나이가 들어서 건강하고 지속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슬로우 푸드’ 운동이 시작된 이탈리아의 빵을 다루는 ‘아모르 나폴리’에서 표현됐고요.”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강화도에는 도레도레의 브랜드가 모여 있는 ‘도레 빌리지’가 있어요. ‘빌리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김 대표의 최종 목표는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라고 해요. 여전히 부동산 디벨로퍼의 꿈을, 나아가 로컬 재생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죠.
ⓒDORE DORE
지역마다 다른 도레도레의 공간에서 김 대표의 로컬을 향한 애정을 살필 수 있어요. 가령, 바다 앞에 있는 청사포점은 낚시 가게였던 건물을 그대로 살렸죠. 매장 벽은 바다 색과 닮은 페인트로 직접 칠했어요. 마치 낚시 해서 먹는 디저트가 연상되도록 생선 모양의 ‘개복치 케이크’라는 메뉴를 판매하고요.
세월이 흘러도 ‘생활과 함께 한다’는 도레도레의 목표는 변하지 않아요. 이제 도레도레는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삶에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 고민하죠. 고객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요.
“20년 가까이 도레도레를 운영하면서, 이제야 ‘신뢰’ 혹은 ‘시간’이 정말 중요한 가치라는 걸 느끼고 있어요. 도레도레는 이제 ‘주목 받는 브랜드’가 아니라 ‘편안한 브랜드’예요. 사실 그 친숙함이 새로움과 독특함보다 더 중요하죠. 카페라는 게 그래요. 해봤자 5천~1만 원 대의 저관여 상품이잖아요. 카페에 갈 때 고객들은 큰 맘 먹고 가지 않아요. ‘이거 맛있대’ 하고 들렀다가 먹고 나면 까먹죠.
그러니까, 이제 저희가 해야 할 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게 아니에요. ‘어차피 잊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도레도레에 방문한 그 순간, 조금이라도 ‘덜 불편한’ 브랜드가 되어야 하죠. 예를 들어 초기부터 도레도레를 찾아준 고객들은 이제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됐어요. 그래서 아이 엄마들도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백화점이나 몰에 매장을 내는 거예요.”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도레도레는 이제 ‘추억의 브랜드’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추억’이라는 게 얼마나 귀중한 가치인지, 도레도레는 알고 있죠. 10년이 지나도 10년 전과 똑같은 무지개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말이에요.
ⓒDORE 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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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F&B,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마지막으로, 김경하 대표에게 20년 넘게 카페 씬을 지켜봐 온 플레이어로서 현재 카페 시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어요. 김 대표는 “이제야 내가 그렸던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답했죠.
“이제 F&B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될 것 같아요. 이전에 식당은 정말 배를 채우는 그 목적 자체로 가는 곳이었죠.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맛집’을 찾아가는 이유는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유명하니까. 문화를 즐기기 위해서. ‘맛집을 즐긴다’는 문화에 속할 수 있다면 1시간도 기다리죠. 그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스타에게 선물하는 케이크, 패션 행사의 카페 부스… 이런 게 다 음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 문화를 즐기는 수단인 거죠.”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DORE DORE
도레도레가 하드웨어적인 ‘건물’보다 건물 안에 들어갈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먼저 만든 것처럼, F&B는 문화의 수단이 될 거라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김 대표는 “그럴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게 F&B”라고도 말하죠.
“F&B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일수록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F&B는 대기업보다 자영업자들이 몸을 담고 있는 업계예요. 그들에겐 생계가 걸린 일이죠. 누군가가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유행만 좇아 잘못된 비즈니스를 만들었을 때, 그 비즈니스에 합류한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상한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 잘못 만든 F&B 구조는 사람들의 생계를 무너뜨려요.”
-김경하 도레도레 대표
도레도레는 이제 가로수길의 ‘핫한 카페’에서 나아가,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브랜드가 됐어요. 이제 김경하 대표는 작은 매대에서 초콜릿을 팔던 대학생에서, 시장을 내다볼 수 있는 업계의 베테랑이 됐고요. 세월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아무래도 ‘변치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변치 않고 즐거운 케이크를 만드는 도레도레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