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다시 도쿄를 여행하기까지. 설렘을 안고 입국 수속을 마치니, 마스크를 쓴 헬로키티 포스터가 도쿄 방문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입이 가려져 있었지만, 부푼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소곤거리는 듯했죠.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인은 가뜩이나 조용한 국민성을 가진 사람들인데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도시 전체가 고요했습니다. 여행의 기분도 덩달아 조용해졌습니다.
쾌적한 데시벨의 거리에서 눈에 띄는 건 택시였습니다. 영국의 ‘블랙캡’ 택시를 닮은 검정 택시를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었죠. 기존의 각진 모양의 택시를 밀어내고 주류로 자리 잡는 듯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대비 큰 차이가 있는 풍경 중 하나였습니다. 동시에 안타까운 장면이기도 했죠. 왜냐고요?
이 검정 택시는 위로 봉긋하게 솟은 모양이 특징입니다. 다른 차량 대비 천장이 높은 편이죠. 이러한 디자인의 택시를 늘린 건 도쿄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에 서양인 여행객이 몰려들 텐데, 상대적으로 키가 큰 그들이 좀 더 편하게 택시를 탈 수 있도록 천장을 높인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올림픽 개최를 1년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그렇게 열린 2021년 도쿄 올림픽은 관중 없이 치러졌습니다. 올림픽으로 경제적 도약을 꿈꿨는데, 도리어 수조원대의 손실을 입고 말았죠. 해외 관광객이 없었으니 택시의 변신도 무용지물일 수밖에요.
그럼에도 묵묵히 거리를 누비는 검정 택시를 보면서, 이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안타까움 대신 ‘자기다움’이 보였으니까요. 도쿄는 원래 그런 곳이었습니다. 스스로가 몸담은 업에서 깊이를 추구하면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장인정신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죠. 택시업계에서 올림픽 특수를 누리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배려해 택시의 천장을 높인 것처럼요.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 무언가를 선보이는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일을 합니다. 그래서 존재감을 가지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매장, 브랜드, 서비스 등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시죠. 그리고 각각의 존재감이, 묵묵하면서도 묵직한 흔적을 남기며 도쿄에 ‘조용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이런 거리를 거닐다 보니 불현듯 광고 카피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지도에 남기는 일’
마음이 쿵, 머리가 쾅 거리며 수집한 ‘타이세이 건설’의 광고 문구입니다. ‘너의 이름은’으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함께 6편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광고라 심미적인데, 심지어 철학적이기까지 합니다. 건설사로서 더 튼튼하게 혹은 더 멋지게 또는 더 효율적으로 짓는다는 걸 강조하는 대신, 업의 본질을 꿰뚫는 업의 정의를 하고 있어서죠. 동시에 지도에 남기는 일을 하기 때문에 장인정신을 가지고 만든다는 걸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퇴사준비생이 참고해야 할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퇴사준비생은 회사가 혹은 일이 싫은 사람들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자기 일에 열정적이고, 자기 주체성이 있으며, 미래 지향적인 사람들을 의미하죠. 회사나 일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보다는 자기 일을 통해 의미를 찾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려는 자아실현족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타이세이 건설 광고의 메시지를 이렇게 바꿔볼 수 있죠.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일’
퇴사준비생을 꿈꾼다는 건, 크건 작건 간에 자기다움을 가지고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일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시간이 쌓여봐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는 것은 아니니, 도전하는 과정에서 부딪힐 여러 난관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죠. 쉽지 않은 길일 테지만 이 모험의 여정에서 《퇴사준비생의 도쿄 2》가 영감과 자극, 혹은 위로와 응원, 또는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려는 모든 퇴사준비생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