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크기의 미니 케이크, 떡 케이크 업계를 꽃피우다

플레플레

2024.04.30

500원 동전 크기의 홀 케이크가 있다고요? 요즘 디저트 업계를 왈칵 뒤집어 놓은 마이크로 케이크! 정말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모습이에요. 그 작은 몸집에도 위에 알록달록한 꽃 모양 앙금이 올라가 있죠. 심지어 이 케이크는 빵이 아닌 떡 케이크래요.


마이크로 케이크를 만든 주인공은 합정동에 위치한 ‘플레플레’예요. 플레플레는 2016년부터 색다른 떡 케이크를 만들고, 클래스를 열면서 떡 케이크의 선생님으로 자리잡았죠.


플레플레는 떡 케이크의 ‘촌스럽다’는 오명을 벗겼어요. 감각적인 디자인과 캐주얼한 브랜딩으로 떡 케이크를 ‘부모님 칠순 잔치 선물’에서 ‘10대도 사 먹는 귀여운 디저트’로 변신시켰죠. 플레플레를 운영하고 있는 엄마와 딸, 이소영, 이그림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플레플레 미리보기

 #1. 엄마의 꿈, 딸을 대표로 만들다

 #2. 떡 케이크는 왜 팬시하고 캐주얼하면 안 되나요?

 #3. 시장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사람들을 가르치다

 선물이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합정역에 내려 하늘색 도로가 펼쳐진 하늘길을 걷다 보면, 하얀색 3층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벽에 걸린 작은 간판에는 플레플레(fleur fleur)라고 적혀 있어요. ‘Fleur’는 불어로 ‘꽃’이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플레플레는 꽃 가게일까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우드 톤으로 꾸며진 공간이 펼쳐집니다. 한 층 올라가면 목조 스탠드와 거울, 장식장에 빈티지한 소품들이 놓여 있어요. 눈에 띄는 것은,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 베이킹 공간. 네, 맞습니다. 이 곳은 꽃집도 카페도 아닌 베이커리예요. 그것도 빵을 만드는 곳이 아닌, 떡을 쪄 꽃 모양 케이크를 만드는 플라워 떡 케이크 베이커리죠.


플레플레는 ‘플라워 떡 케이크’에 대한 편견을 없앤 곳입니다. 기존의 떡 케이크는 대개 원색의 컬러를 사용하고, 조화로운 디자인보다는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했죠. 어르신들은 좋아했지만, 젊은 사람들이 보기엔 촌스러웠어요. 플레플레는 떡 케이크를 향한 ‘촌스럽다’는 오명을 벗겨냈습니다. 색감은 부드럽게 다듬고, 꽃 묘사는 단순하게 풀어냈습니다. 명화에서 색감을 착안해 디자인을 하기도 하면서요.


무엇보다, 플레플레가 개발한 ‘마이크로 케이크’는 떡 케이크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 떡 케이크에 큰 관심이 없던 10대 고객까지 품었습니다. 지름이 약 5cm밖에 안 되는 초소형 케이크로요. 마이크로 케이크를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릴스를 올렸는데, 대박이 났습니다. 2024년 4월 기준 마이크로 케이크 릴스의 조회수는 440만회가 넘죠. 한 달 사이에 마이크로 케이크는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고, 수많은 아류가 생겨났어요. 떡 케이크뿐 아니라 디저트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죠.


사실, 플레플레가 마이크로 케이크 같은 하나의 제품으로 단번에 뜬 건 아닙니다. 플레플레는 2016년부터 떡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해, 9년째 업력을 이어가고 있죠. 9년 동안 플레플레는 천천히 업계에 이름을 알려왔습니다. 그렇게 지금은 떡 케이크 업계의 분위기를 바꾼, 상징적인 브랜드가 됐죠.


마이크로 케이크로 히트를 쳤지만, 플레플레의 주요 비즈니스는 제품 판매가 아니라 클래스예요. 플레플레는 기초반부터 마스터반까지 수강생을 가르치며 꾸준히 업계를 교육해 왔어요. 그렇게 배출된 수강생이 700~800명을 웃돕니다. 이제는 플레플레를 통해 창업한 플라워 떡 케이크 가게들이 슬슬 자리를 잡고 유명해지고 있을 정도예요. 


마이크로 케이크, 그리고 교육으로 시장을 선구자가 되어가고 있는 플레플레. 지금이야 업계 선구자가 되었지만, 그 시작점은 우연 혹은 운명과도 같았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1. 엄마의 꿈, 딸을 대표로 만들다


플레플레에는 큰 대표님, 작은 대표님이 있습니다. 엄마와 딸, 모녀가 운영하는 곳이거든요. 그러면 큰 대표님이 엄마냐고요? 아니에요. 큰 대표님이 딸인 이그림 대표, 그리고 작은 대표님이 엄마인 이소영 대표죠. 플레플레를 전반적으로 경영하고 책임지는 건 이그림 대표, 그리고 제작과 운영을 돕는 게 이소영 대표의 역할이에요.


2016년, 플레플레 창업 당시 이그림 대표는 스물 네 살이었어요. 어쩌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플레플레의 경영을 책임지게 됐을까요? 이야기는 이그림 대표가 미국에서 디자이너 인턴으로 지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요.


이그림 대표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인턴십을 떠났어요. 하지만 미국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죠. 힘든 마음에 미국으로 엄마를 불렀습니다. 당시, 이소영 대표는 때 마침 직장 생활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 중이었어요. 그리고 딸의 부름으로 찾아갔던 미국에서 한 신문 기사를 보게 됐죠. 한국에서 파는 플라워 떡 케이크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제가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떡’이어서였어요. 갈수록 사람들이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은 건강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 빵보단 떡이 낫지 않을까, 그리고 단순한 인절미 같은 떡보다는 미감이 가미된 플라워 케이크가 낫지 않을까. 무엇보다, 예쁘잖아요. 플라워 떡 케이크는 보자마자 든 생각이 있어요. ‘아, 나 예쁜 거 좋아했었지.’”

-이소영 대표


이소영 대표는 은퇴 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플라워 떡 케이크를 보자마자 ‘이걸 하자’ 결정한 거죠. 한국으로 돌아온 모녀는 학원을 다니며 떡 케이크 제작을 공부했어요. 이소영 대표가 먼저 수강을 신청하고, 엄마가 만든 케이크를 보고 ‘내가 더 잘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이그림 대표가 이후에 공부를 시작했죠.


두 사람은 학원도 다른 곳을 다니고, 스타일도 달랐습니다. 이소영 대표가 맛과 전통성을 더 중시했다면, 디자이너 출신의 이그림 대표는 색감과 디자인에 집중해 기존 떡 케이크의 ‘촌스러움’을 없애고 싶었죠.


“당시 시중에 있던 떡은 대부분 천연 가루를 사용했기 때문에 색이 쨍하고 촌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저는 일부러 식용 색소를 사용해 더 자연스러운 컬러를 주는 곳에서 떡 케이크를 배웠어요. 뭔가, 제가 하면 훨씬 예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거든요.”

-이그림 대표


이그림 대표는 케이크를 막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만드는 족족 지인들에게 완성품을 판매했습니다. 당시 통장에 딱 40만원 정도가 있었는데, 학원 수강비도 모자른 실정이었죠. 수강비를 채우기 위해 팔기 시작한 케이크는,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그림 대표의 케이크를 구매한 지인들, 그 케이크를 선물 받은 지인의 지인들이 추가로 케이크를 주문하기 시작했죠.


하나에 3만원, 5만원씩 재료비만 받고 팔았던 케이크의 수익이 회사 월급보다 많아지자, 이그림 대표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플레플레를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이소영 대표는 평생 일해 구매한 아파트를 팔아, 창업 자본금을 마련했죠. 그렇게 2017년 2월, 플레플레는 두 대표의 집에서 합정동의 9평짜리 작은 공방으로 옮겨나왔어요.


플레플레의 첫 공방. ⓒ플레플레


“공방을 오픈했던 결정적인 계기는 판매 때문이었어요. 지인들에게 재료비만 받고 판매했을 때는 괜찮았는데, 입소문이 퍼지면서 지인이 아닌 제 3의 고객까지 생기기 시작했죠. 제대로 식품을 판매하려면 집이 아닌 정식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이그림 대표


플레플레는 모녀가 집에서 케이크를 만들고, 집으로 수강생을 불러 홈 클래스를 하던 작은 가게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이 작은 가게의 소문이 퍼졌던 걸까요? 이그림 대표는 “마케팅 같은 걸 하나도 몰랐다”고 하지만, 본능적으로 마케팅을 해왔습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렸거든요.


“당시에 저는 어떻게 홍보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마케팅 용어 같은 것도 하나도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진짜 무식하게 ‘매일 올려야겠다’만 생각했죠. 매일매일 글을 썼고 한 달 내내 포스팅이 되도록 예약까지 걸어뒀어요. 저는 그냥 간절함으로 했을 뿐인데, 알고 보니 노출이 잘 되는 방법이었죠.”

-이그림 대표


2015년 12월 31일 업로드 된 플레플레의 첫 앙금 플라워 떡 케이크 ⓒ플레플레


당시, 앙금 플라워 떡 케이크라는 카테고리도 흔치 않고, 심지어 수강을 할 수 있는 곳을 얼마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 와중에 시중에 나와 있던 떡 케이크 대비 디자인이 남달랐던 플레플레는 사람들 눈에 띄기 시작했던 거예요. 무엇보다 플레플레가 소비자 눈에 띈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쉬지 않고 일한 꾸준함에 있었습니다.


“차 뒷 범퍼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일만 했어요. 그림 쌤은 새벽에 일어나서 떡을 찌고, 그 날 예약된 케이크를 하루에 많게는 7~8개씩 완성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오전 수업 끝나면 오후 수업 들어가고, 다음 날 재료 준비하고 세팅하고 청소 끝나면 밤 늦게 퇴근해서 다시 다음 날 새벽 출근하는 하루하루를 똑같이 2년 동안 되풀이했어요.”

-이소영 대표


“2년 동안 매일 악몽을 꿨어요. 일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가게를 차리느라 아파트에서 빌라로 이사갔을 때 생각을 하면 내가 어떻게든 우리 집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너무 컸거든요. 너무 바쁘게 일만 해서, 저한테는 20대 후반의 기억이 몽땅 사라졌어요.”

-이그림 대표


그 꾸준함과 노력에 소비자가 반응했습니다. 그렇게 2년을 일하자 어느 날 월 매출 3,000만원씩을 유지하기 시작했죠. 2년 만에 사업 자본을 모두 갚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이그림 대표(왼쪽)와 이소영 대표(오른쪽). ⓒ시티호퍼스



#2. 떡 케이크는 왜 팬시하고 캐주얼하면 안 되나요?


플레플레가 플라워 떡 케이크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 ‘떡 케이크 집을 창업하려면 플레플레에서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이유, 집에서 떡 찌던 작은 공방이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명 넘는 영향력을 갖게 된 이유. 모두 첫 번째는 이그림 대표만의 시그니처 디자인입니다. 플레플레 케이크의 디자인은 ‘떡 케이크는 촌스럽다’는 선입견을 벗겨냈어요.


“제가 떡 케이크를 하는데, 저조차도 누가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보면 ‘떡 케이크’라고 말하기가 싫은 거예요. 그래서 항상 ‘케이크 만든다’고만 말했어요.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하는 일이니까, 떡 케이크를 나도 좋아하고 내 친구들도 좋아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죠.”

-이그림 대표


기존 떡 케이크는 꽃마다 사실적인 묘사와 컬러를 넣어서 복잡하고 화려했습니다. 하나의 케이크 안에 새빨간 장미, 노란색 프리지아, 흰색 안개꽃 등이 모두 들어갔죠. 꽃잎 역시 생화처럼 야들야들하고 찢어질 것처럼 세심하게 묘사됐어요.


이그림 대표는 떡 케이크를 더 단순하고,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 눈에 띄려면 한눈에 봤을 때 쉬워야 한다”가 이그림 대표의 디자인 철학이었거든요. 떡 케이크에 딱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포인트가 되는 컬러만 사용하고, 꽃잎 묘사도 둥글고 깔끔하게 다듬어서 단순하게 만들었죠. 단순함과 동시에 꽃을 최대한 풍성한 다발처럼 만들어 고급스러움을 더했어요.


시그니처 작약 케이크 ⓒ플레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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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플레플레의 케이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색감’입니다. 색감이 주가 되는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명화 케이크’가 있죠. 고흐, 모네의 작품 등 명화 속 색감을 그대로 케이크로 옮겨오는 디자인이에요.


명화 케이크는 우연한 계기로 탄생했습니다. 플레플레에서 수강을 하던 한 수강생이, 그 날 사용할 컬러를 정해오지 않아 그림 대표가 우연히 손에 집히는 명화집을 건네며 “여기 들어 있는 색깔을 사용해보라”고 했죠. 그게 바로 지금의 명화 케이크입니다.


시그니처 명화 케이크 ⓒ플레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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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케이크가 색감을 강조했다면, 최근에는 ‘크기’로 승부하는 시그니처 케이크가 생겼습니다. 500원 동전 크기의 초소형 케이크, 마이크로 케이크예요. 사실 마이크로 케이크를 만든 건 2022년 경이었습니다. 마이크로 케이크를 촬영해 만든 인스타그램 콘텐츠가 역주행을 하면서 2024년 3월부터 주문이 폭발적으로 몰려오기 시작했죠. 많을 때는 하루에 70~80개씩 주문이 들어옵니다.


이 장난 같은 케이크, 시작도 장난스러웠습니다. 이그림 대표가 평소에 즐겨보던 미니어쳐 요리 영상에서 영감을 받아 시도해 본 거였죠.


“그냥 장난삼아 만들어본 케이크였어요. 재밌을 거 같아서, 귀여울 것 같아서 제 취향대로 만들어봤죠. 그런데 만들고 나니까 너무 완성도 있게 귀여운 거예요. 고객들은 그런 제 취향에 공감을 해줬을 뿐이고요.”

-이그림 대표


소비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작지만 완성도 있는 정성이에요. 이그림 대표는 “작다고 지름길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마이크로 케이크는 기존 떡 케이크와 만드는 방식이 모두 동일합니다. 케이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쌀가루를 빻고, 떡을 찌고, 떡 찌는 동안 앙금에 색을 입힌 뒤, 앙금으로 꽃을 만들고, 떡이 다 쪄지면 그 위에 꽃을 올립니다. 초보자는 케이크 하나를 만드는 데 6~7시간 걸리죠.


마이크로 케이크는 이 모든 과정을 동일하게 거치면서, 더 작게 만들어야 해요. 가격은 기존의 10분의 1꼴인 1만원이지만 오히려 노력과 시간은 더 들어가죠.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어 이그림 대표가 포기하려고 하자, 이소영 대표가 ‘그럼 내가 맡아서 하겠다’며 나섰어요. 실제로 지금은 이소영 대표가 도맡아서 제작하고 있어요.


마이크로 케이크가 소비자에게 통한 두 번째 이유는 ‘장난스러움’ 그 자체예요. 플레플레는 늘 ‘떡’과 ‘전통 디저트’에서 느껴지는 무거움을 덜어내려고 노력해왔어요. 그래서 마카롱이 담길 만한 패키지에 개성약과를 포장하는 등 분위기 자체를 캐주얼하게 만들고자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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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한식 디저트’라고 하면 굉장히 심플하고 단아한, 한국의 정서를 느껴요. 그 한국의 정서가 제가 생각하기엔 ‘한’이거든요. 그래서 살짝 어둡고, 무겁죠. 저는 어두운 게 싫었어요. 어떻게 하면 전통 디저트를 밝고 발랄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평소에 많이 고민하죠.”

-이소영 대표


마이크로 케이크 역시, 그 캐주얼함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실제로 한식 디저트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성공했죠. 아무리 플레플레의 떡 케이크가 다른 곳보다 밝다고는 해도, 여전히 돌 잔치 케이크, 팔순 잔치 케이크로 많이 쓰였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마이크로 케이크를 주문하는 고객들은 20대, 심지어 10대까지 연령층이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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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장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사람들을 가르치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플레플레를 자세히 보니, 비즈니스 중 독특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플레플레는 2019년부터 SDCA(Seoul Design Cake Association)라는 서울 디자인 케이크 협회를 주관하고 있었어요. 난이도와 자격에 따라 시험을 보고, 2급부터 지도사까지 자격증을 발급 받을 수도 있죠. 


그렇다면 플레플레는 어쩌다가 협회까지 운영하게 된 걸까요? 사실, 플레플레의 주요 비즈니스는 판매가 아닌 클래스예요. 전체 매출 중 떡 케이크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30%가 그치죠. 나머지 70%를 담당하는 건 클래스고요. 지금은 벌써 배출한 수강생이 700~800명이 돼요. 이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의 역할을 하는 게 바로 SDCA 협회예요.


플레플레는 2016년 창업 때부터 클래스 위주의 사업을 이어왔어요. 판매보다 클래스가 메인이었던 이유가 있어요. 플레플레의 미션이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시장을 변화시키는 데에 있기 때문이었죠. 떡 케이크 시장이 더 개방적으로 변해야, 길게 봤을 때 플레플레에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테니까요. 그래서 집에서 홈 클래스를 했을 때부터 수강생이 단 한 명이어도 빠짐 없이 클래스를 열었어요.


2023년 2월, 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 열렸던 워크숍 ⓒ플레플레


“매일매일 수업이 잡혔어요. 수강생이 하루에 한 명이어도 저는 무조건 수업을 잡았어요. 그게 수지 타산이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당장 수익 걱정보다도,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이그림 대표


수강생을 한 명 배출한다는 건, 업계에 플레플레의 영향력이 한 가게만큼 더 생긴다는 걸 의미해요. 플레플레에서 떡 케이크를 배운 수강생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업계에 진출할수록 플레플레는 ‘떡 케이크계의 선생님’이 되어갔죠. 입소문을 타고 하루 한 번 열렸던 클래스가 하루 두 번, 한 수업에 한 명이었던 수강생이 세 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이그림 대표는 떡 케이크 시장의 이미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미션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떡 케이크를 창업하는 사람들이 나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고 해요.


“창업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짧게는 두 달만 수업을 듣고 가게를 차려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작은 가게여도 제조 수업을 듣는 거랑 운영은 너무 다른 일이거든요. 제가 막 가게를 차렸을 땐 어디에 뭘 플레이팅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 모든 걸 직접 찾아보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지금의 자리를 잡았죠. 누군가 운영하는 법까지 전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그림 대표


가게를 차린 2017년엔 정규 클래스를 기초반, 심화반, 마스터반으로 세분화했습니다. 또 창업반을 만들어 공방 운영 노하우와 실질적인 브랜딩, 마케팅까지 수업 내용으로 다루기 시작했죠. 그 수업이 고도화되어 자격증까지 발급하게 된 게 2019년 SDCA를 만들면서예요.


ⓒ플레플레


지금은 동네마다 하나씩 플레플레 클래스를 졸업한 수강생들이 차린 가게가 있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입니다. 수강생 700~800명 중, 실제로 가게를 차리는 비율은 5명의 1명 꼴. 짐작건대, 플레플레의 디자인 케이크를 배워 판매하는 가게가 전국에 대략적으로 최소 150곳은 있다는 얘기죠. 


“이제는 ‘떡 케이크’라는 말이 싫지 않아요. 제 삶이 바뀌었는걸요. 제가 가장 뿌듯한 때는 수강생 분들이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할 때예요. 저희한테 떡 케이크를 배우고, 가게를 차린 뒤 삶이 변했다고요. 우리가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구나. 이 생각이 저를 계속 일하게 하죠.”

-이그림 대표



선물이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결국 케이크를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대신 위임 받는 일이에요. 그만큼 중요하고, 예민한 일이죠.


“생각해보세요. 만약 내가 먹을 음식이면 예약 시간이 좀 늦춰져도, 모양이 조금 망가져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런데 케이크는 누군가에게 줄 선물이에요. 그만큼 정성이 느껴져야 하죠.”

-이소영 대표


플레플레는 ‘선물’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 정성을 표현하기 위해 패키지까지 신경 써요. 하얀색 박스에 금박으로 로고와 케이크 스탠드 일러스트가 박혀 있는 박스는 마치 명품 브랜드의 패키지 같죠. 디테일 하나하나 신경 쓰는 만큼, 고객이 케이크를 받았을 때 기뻐하면 그만큼 뿌듯한 일이 없다고요.


ⓒ플레플레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아픈 손목… 이런 것들이 손님이 ‘와, 예쁘다’ 감탄 한 번 하면 싹 사라져요. 그 분들 역시 클릭 한 번이면 집 앞까지 케이크를 배달시킬 수도 있는 편한 세상인데, 굳이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하고, 합정까지 픽업을 오고, 받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색상과 디자인을 고르는 수고로움을 선택하신 거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선물’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아요. 오히려 이 일을 하면서 마음을 쓴다는 게 무엇인지, 사랑을 전하는 게 무엇인지 배우고 있어요.”

-이그림 대표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플레플레는 떡 케이크를 젊고 캐주얼하게 브랜딩해서 업계의 상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인스타그램 10만 팔로워를 자랑하며 대중에게까지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성장률로 보았을 때 창업 초기 대비 최고 매출이 300% 이상 성장했죠.


그럼에도 플레플레의 목표는 창업을 했던 2016년과 크게 다를 게 없어요. 이그림, 이소영 대표는 한 목소리로 말하죠.


“저희는 이제 남자 분들도 떡 케이크를 배우러 왔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떡 케이크라는 분야가 너무 시장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에요. 플레플레가 하고 싶은 일은 계속해서 떡 케이크를 더 쉬운 디저트로 만드는 거예요. 서양식 빵 케이크처럼 일상 속에서도 먹는 디저트로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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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플레플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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