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다움’ 찾기

파운드 무지

2022.05.15

‘파운드 무지’에서는 무인양품의 제품이 아니라 일본 곳곳에서 발견한 무인양품’스러운’ 제품을 판매합니다. 무인양품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곳이자, 무인양품의 팬을 위한 매장입니다.



파운드 무지 미리보기

• 이름 없이 이름을 알리는 역설

 체질 개선의 시작, 리모델링

 이것으로 충분한, 리브랜딩

 무인양품을 찾는 여행, 파운드 무지

 정체성이 뚜렷할수록 구별된다






〈리디자인 - 일상의 21세기〉


성냥이나 화장지 같은 일상적이면서도 친근한 제품들을 다시 디자인하여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전시회입니다. 그래픽 디자인, 광고, 건축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관점이 뚜렷한 32명의 크리에이터를 초청해 각자에게 소재를 제시하고 리디자인이라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일상의 제품들을 더 아름답게 만들거나 개량하자는 취지가 아닙니다. 재해석을 통해 기존 디자인과의 ‘차이’ 속에서 디자인을 발견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모든 작품이 인상적이지만 ‘리디자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냥과 화장지의 리디자인 사례를 소개합니다.


성냥의 리디자인은 조명 디자이너 멘데 카오루가 맡았습니다. 떨어진 나뭇가지 끝에 발화제를 입힌 모양입니다. 땅에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에게 지구로 환원되기 전 마지막 일을 시켜보자는 발상입니다. 인간과 불의 몇백만 년에 걸친 관계, 그리고 불이 가진 창조와 파괴의 가능성을 소박하게 담아낸 디자인입니다. 게다가 바쁜 일상 때문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던 나뭇가지의 아름다움을 환기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성냥을 재해석하여 디자인한 멘데 카오루의 성냥입니다. ⓒNippon Design Center


화장지의 리디자인은 건축 디자이너 반 시게루가 담당했습니다. 그는 가운데 종이심을 원형이 아닌 사각형으로 만들고 거기에 화장지를 감았습니다. 이 화장지를 휴지걸이에 걸어 사용하면 휴지를 잡아당길 때 달가닥하는 저항이 발생합니다. 의도적인 불편함을 만들어 자원 절약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보통의 둥근 화장지가 쉽게 풀리는 만큼 휴지를 낭비하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자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둥근 화장지는 그 형태 때문에 수납할 때 틈이 크게 발생하지만 휴지심을 사각형으로 하면 틈이 줄어들어 수납공간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종이로 만든 친환경적 건축물로 유명한 반 시게루는 네모난 화장지를 통해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상기시킵니다. ⓒNippon design center


이 전시회는 일본의 4개 도시에서 개최된 후 영국 글래스고를 시작으로 덴마크 코펜하겐, 이탈리아 밀라노, 독일 베를린,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을 순회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일상의 재발견이 갖는 의미를 전 세계가 공감한 것입니다. 이 전시회를 이끈 사람이 하라 켄야입니다. 그는 전시회뿐 아니라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계·폐막식 프로그램 등의 대형 이벤트들도 지휘했으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리디자인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무인양품’ 아트 디렉터로서 무인양품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낸 것입니다. 추상적인 화두를 상업적인 성공으로 증명했기 때문에 주목할 만합니다.



이름 없이 이름을 알리는 역설

무인양품은 26개국에 7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한 글로벌 브랜드이지만, 시작은 지금의 모습과 달랐습니다. 무인양품은 기업으로 시작한 브랜드가 아니라 일본 대형 슈퍼마켓 체인 ‘세이유’의 프라이빗 브랜드(Private brand)였습니다. 프라이빗 브랜드인 만큼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제품의 생산 과정을 간소화해 간결하고 값이 싼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름을 내세우기보다 품질에 충실하기 위해 브랜드 이름도 상표 없는 양질의 물건이라는 뜻의 ‘무인양품’으로 지었습니다.


1980년 출시 당시에는 생활용품 9개와 식품 31개 등 총 40개의 품목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생활 잡화 브랜드였습니다. 이름보다는 품질을 앞세운다는 브랜드의 의미와 ‘이유가 있어서 싸다’는 캐치프레이즈와 실제로 간결하면서도 저렴한 제품이 어우러져 인기를 끌었습니다. 프라이빗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1983년에는 도쿄 아오야마에 독립 매장을 냈으며, 1989년에 주식회사 양품계획으로 독립하며 기업으로서 자격을 갖췄습니다.



1983년 아오야마에 개점한 무인양품 1호점의 모습입니다. ⓒ무지 홈페이지


일본의 장기 불황이 시작된 1990년대, 일본 경제는 성장하지 않았지만 무인양품은 440%의 매출 성장과 1만 700%의 영업이익 증가를 이뤄내며 1999년에 1066억 엔의 매출과 133억 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매장만 내면, 신제품만 만들면 팔렸기 때문에 성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칠 것 없던 무인양품에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2001년 들어서 38억 엔의 적자를 낸 것입니다.


이유는 크게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기업의 크기가 커지면서 구조적인 비효율이 발생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출시한 지 20년 이상 되어 브랜드 노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무인양품의 시대도 끝났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을 정도로 적자 전환은 의미가 컸습니다. 위기에 빠진 무인양품을 다시 정상화하기 위해 구원투수로 등장한 사람이 마쓰이 타다미쓰와 하라 켄야입니다.



체질 개선의 시작, 리모델링

마쓰이 타다미쓰는 무인양품이 적자를 기록한 해에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적자가 난 기업을 회생시키는 손쉬운 방법은 임금을 삭감하거나, 직원을 해고하거나, 적자 매장을 닫는 등의 구조조정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구조조정을 통한 실적 개선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기업은 커졌는데 작은 기업일 때처럼 경험과 감에 의존해 경영을 하기 때문에 운영의 비효율과 매장 간 편차가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하우를 축적하는 구조, 낭비를 줄이는 구조,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던 방식에서 매뉴얼 기반의 체계적인 운영으로 바꾸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매장 운영의 가이드라인인 ‘무지그램(MUJIGRAM)’, 본사 업무를 위한 지침서인 ‘업무 기준서’, 그리고 매장 입지를 선정하는 ‘출점 기준서’입니다.



매장 운영에 관한 모든 매뉴얼과 디테일을 담고 있는 무지그램입니다. ⓒToyo Keizai 홈페이지


모든 매뉴얼은 디테일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무지그램의 경우는 1600페이지에 달할 정도입니다. 박제된 매뉴얼이 아니라 업무 환경과 지역 문화를 고려하여 매뉴얼을 개선해나갑니다. 개선의 주체는 직원들이며, 이 과정을 통해 직원들이 매뉴얼을 능동적으로 접하게 합니다. 적용 가능한 최신의 매뉴얼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특히, 무지그램의 각 카테고리 맨 처음에는 ‘왜 이 작업이 필요한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의 목적과 전체 그림을 이해한 후 노하우를 익히라는 취지입니다.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가 추진한 시도들은 업무를 표준화하여 모든 매장에서 고객들이 ‘무인양품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시스템적으로 일관성과 통일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구조를 구축한 것입니다. 하지만 매뉴얼을 통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체질 개선이 완성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녹슬어가는 브랜드에 생기를 불어넣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로서 하라 켄야의 등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한, 리브랜딩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브랜드를 계승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라 켄야에게는 아트 디렉터 자리가 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인양품을 세계적인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자리를 수락합니다. 글로벌 브랜드로 쇄신하기 위해 하라 켄야가 세운 방향성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제조 과정 단순화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담은 디자인으로 합리적 가격의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목표를 가지고 궁극의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제품, 광고, 매장을 리디자인하기 시작합니다.


제품 리디자인의 지향점은 ‘이것으로 충분하다’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모든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의 목표입니다. 보통의 브랜드는 ‘~으로’가 아닌 ‘~이’를 선호합니다. ‘이것이 좋다’를 만들어내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하라 켄야는 ‘~이’는 개성을 드러낼 수 있지만 조화롭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포용과 양보의 의미가 담긴 ‘~으로’를 지향하는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으로’의 수준을 높인다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궁극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으리라 판단한 그는 ‘누구나’를 지향하는 보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제품을 리디자인했습니다.


누구나를 지향하는 보편성을 가진 제품으로 리디자인했기 때문에 광고도 보편성을 추구합니다. 광고 콘셉트의 키워드는 비움과 공(空)을 의미하는 ‘엠티니스(Emptiness)’입니다. 텅 빈 그릇으로서 광고를 제시한 후, 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담아내는 것을 통해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향으로 리디자인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평선을 테마로 한 광고입니다. 지평선이란 아무것도 없는 이미지이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담긴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 모두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과 지구를 다루는 궁극적인 풍경인 지평선을 테마로 광고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제품만큼이나 광고도 철학적입니다.



지평선을 테마로 한 광고를 통해 브랜드 철학을 전달합니다. ⓒNippon design center


매장 디자인도 제품 디자인의 지향점과 연장선에 있습니다. 무인양품에선 7000종이 넘는 아이템을 취급하는데, 그중 특정 상품이 눈에 띄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장에 들어선 순간 제품들이 장대하게 집적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 전체를 통해 무인양품의 가치관을 전할 수 있도록 매장을 디자인합니다. 제품 진열부터 커뮤니케이션 톤까지 무인양품 속에서 하나의 가치관으로 관통한다는 뜻입니다. 하라 켄야는 이를 ‘신여(神輿)’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축제 때 신을 태운 가마인 신여를 여러 사람이 메고 행진하듯, 매장 디자인에는 ‘다 같이 짊어진다’는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무인양품을 찾는 여행, 파운드 무지

궁극의 디자인을 추구하는 하라 켄야의 철학과 방향성은 내외부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리브랜딩의 핵심인 제품 디자인은 매장 운영이나 업무 기준처럼 매뉴얼화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인양품답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철학적인 사상을 구체적으로 성문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무인양품은 리브랜딩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하고자 여러 시도를 합니다. 그중 하나가 ‘파운드 무지(Found MUJI)’입니다.


‘시대와 국경을 넘어, 무인양품을 찾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파운드 무지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파운드 무지는 다양한 국가와 지역을 찾아다니며 현지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무인양품’을 찾는 활동으로, 2003년부터 시작됐습니다. 무인양품의 정체성을 연역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면 여러 사례를 통해 귀납적으로 정의해보자는 시도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무인양품다운 제품들을 발견하는 것은 무인양품다움을 재확인하고 재발견할 기회이며, 신제품 개발 관련 담당자들의 감식안을 육성하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또한 신제품 개발 관련 담당자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무인양품다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마이 파운드 무지(My Found MUJI)’ 프로젝트도 추진했습니다. 마이 파운드 무지는 세계 각지의 매장 직원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찾을 수 있는 제품들 중 무인양품다운 것을 추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매장 직원이 주체적으로 참가하는 만큼, 전 직원이 무인양품다움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리서치와 사내 공유의 대상이었던 파운드 무지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1년입니다. 무인양품은 1호점인 아오야마점을 리모델링해 ‘파운드 무지 아오야마’를 오픈했습니다. 무인양품의 감식안으로 세계 각지에서 발견하고 수집한 다양한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매장입니다. ‘세계 각지의 또 다른 무인양품’을 상품화해서 매장을 꾸몄습니다. 무인양품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곳이자 무인양품의 팬을 위한 매장인 셈입니다.



무인양품 1호점이 리뉴얼을 통해 ‘파운드 무지’로 재탄생했습니다.




파운드 무지가 세계 각지에서 찾은 ‘무지스러운’ 제품들입니다.



정체성이 뚜렷할수록 구별된다

무인양품이 출시하는 궁극의 디자인 제품들이 인기를 끌자 경쟁사들이 모방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디자인이 심플해 카피하기가 더욱 쉬웠습니다. 특히 무인양품 간판 제품인 유백색의 반투명 수납 케이스의 경우 ‘신와’가 거의 그대로 베껴 판매했습니다. 정도가 지나치다고 판단한 무인양품은 신와를 상대로 지적재산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쟁점은 디자인의 차별성을 의미하는 ‘상품 등 표시성’을 갖추었느냐 여부였습니다.


제품의 형태가 다른 제품과 구별되는 독특한 점이 있거나, 오랜 시간 독점적으로 사용되었거나, 짧은 기간이더라도 제품 디자인에 대한 적극적인 광고를 펼쳤을 경우에는 디자인의 차별성을 인정받아 부정경쟁방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인양품은 소송에서 패했습니다. 무인양품의 디자인이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흔한 형태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데아적인 모습을 가진 궁극의 디자인이라 보호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법원의 판결은 무인양품의 제품 리디자인 방향성이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비록 무인양품이 소송에서는 졌지만, 그래서 경쟁사도 유사한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지만, 고객들에게 철학과 지향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정체성을 구축한 무인양품의 가치는 유효합니다. 경쟁사들이 아무리 카피를 해도 고객들은 무인양품의 제품 디자인을 알아봅니다. 정체성이 뚜렷할수록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Reference

• 디자인의 디자인(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안그라픽스)

• 무인양품 디자인(닛케이디자인 지음, 정영희 옮김, 미디어샘)

•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마쓰이 타다미쓰 지음, 민경욱 옮김, 모멘텀)

• 日 MUJI 해외서 성공한 비결, 꼼꼼한 상권분석…초정밀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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