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브랜드가 골목을 살리고, 살아난 골목이 상권을 살려요. 대표적인 사례가 타이베이의 ‘푸진 트리 그룹’이에요. 타이베이 쑹산 공항 근처, 한적한 주거 지역이었던 ‘푸진제’를 트렌디한 동네로 바꿔 놓은 장본인이죠.
그런데 푸진 트리 그룹이 특별한 건, 단순히 푸진제를 활성화시켜서가 아니에요. 해외에서 대만으로 일본의 빔즈, 스위스의 프라이탁을 들여와 푸진제를 되살리는 것으로 시작해 지금은 오히려 대만 브랜드를 해외에 거꾸로 수출하고 있거든요. 해외의 문화를 수입해 오던 저력으로 대만의 문화를 재해석하고, 글로벌 무대에서도 경쟁력 있는 대만 브랜드를 만들어 낸 거예요.
그 중심에는 푸진 트리 그룹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이 있어요.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모노클>이 선정한 ‘세계 50대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되었고, 최근에는 도쿄에도 지점을 냈죠. 푸진 트리 그룹은 어떤 레스토랑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요?
푸진 트리 그룹 미리보기
• 대만 문화의 번영을 위해, 해외의 브랜드를 수입하다
• 페어링으로 격은 높이고, 문턱은 낮춘다
• 재해석한 대만 문화를 해외로 수출하다
• 위기에 몰려도 본질을 지키면 산다
타이베이 쑹산구에 위치한 푸진제(福錦街). 푸진제는 타이베이의 도심 공항인 ‘타이베이 쑹산 공항’ 가까이에 위치해 있어요. 2010년대 초만 해도 이 곳은 상권이라기 보다는 저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는 오래된 주거 지역에 불과했죠. 그랬던 푸진제가 2012년을 기점으로 감각 있는 소비자들이 모이는 거리로 탈바꿈했어요.
푸진제를 탈바꿈시킨 주인공은 ‘푸진 트리 그룹(Fujintree Group)’이에요. 현재 푸진제 또는 그 근처에는 푸진 트리 그룹이 운영하는 ‘푸진 트리 카페’, 편집샵 ‘푸진 트리 355’, 미쉐린 레스토랑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앤 샴페인’ 등이 들어서 있어요.
푸진제를 ‘취향의 거리’로 바꾸겠다는 아이디어는 푸진 트리 그룹의 창립자 ‘제이 우(Jay Wu)’로부터 시작됐어요. 제이는 일본, 캐나다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의 다양한 문화를 몸소 체험해왔죠. 그러다 보니, 타이베이도 도쿄나 파리처럼 취향으로 가득 찬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꿈이 생겼어요.
ⓒFujin Tree
제이는 자신이 살고 있던 푸진제를 ‘라이프스타일 상권’으로 만들어보자고 다짐해요. 마침 푸진제는 이전에 미군 숙소 지역으로 사용됐던 만큼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색다른 동네이기도 했고요. 푸진제(富錦街)의 푸(富)와 진(錦)은 중국어로 ‘번영’, ‘풍요’를 뜻해요. ‘제(街)’는 ‘거리’라는 뜻이고요. 제이는 푸진제 뜻처럼, 타이베이 문화를 번영시키고자 하나 둘 꿈을 실현시키기 시작해요.
대만 문화의 번영을 위해, 해외의 브랜드를 수입하다
제이가 타이베이 문화를 번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했을까요? 제이는 우선, 이미 해외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타이베이에 이식시켜요. 해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을 들여와 타이베이의 문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자 한 거예요. 타이베이 사람들이 누리고, 동경할 수 있는 문화가 풍성해져야 궁극적으로 대만의 문화에도 발전이 있을 테니까요. ‘세계와 연결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거죠.
제이가 가장 먼저 타이베이에 들여온 해외 브랜드는 일본 대표 편집샵 ‘빔즈(Beams)’예요. 2010년, 제이는 페이스북에서 빔즈의 마니아들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어요. 아직 페이스북이 초창기였던 시절이었는데도 말이죠. 제이는 빔즈를 타이베이에 초대해 팝업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타이베이에 있는 패션 마니아들이 분명 반응하리라고 생각했죠.
제이의 예상은 맞았어요. 빔즈의 첫 타이베이 팝업은 3일 만에 제품이 완판될 정도로 성공적이었거든요. ‘해외 브랜드를 타이베이에 먼저 이식하자’는 제이의 생각이 통한 거죠. 이를 확인한 제이는 빔즈와 본격적으로 협업해 푸진제에 빔즈 타이베이 1호점을 오픈했어요.
2015년에는 두 번째 해외 브랜드를 들여 왔는데요. 바로 ‘프라이탁(Freitag)’의 공식 파트너사가 되면서 프라이탁 타이베이 1호점을 푸진제에 오픈한 거예요. 빔즈와 프라이탁, 제이가 들여오는 해외 브랜드의 공통점이 있어요. 제이는 무조건 ‘잘 팔릴 제품’을 들여오는 게 아니라,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타이베이에 소개하고 싶었던 거예요. 빔즈의 ‘라이프스타일을 큐레이션한다’는 가치관, 프라이탁의 ‘순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가치관 자체를 타이베이에 이식하고 싶었던 거죠.
빔즈와 푸진 트리의 컬래버레이션 제품. ⓒBEAMS
ⓒFreitag by Fujin Tree Group
제이는 2012년 푸진 트리 그룹을 설립하고, 해외 브랜드를 들여 오는 동시에 자체 매장 또한 오픈했어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은 패션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기에, 패션 셀렉트 숍 ‘푸진 트리 355’를 가장 먼저 개장했어요. 가게의 이름은 푸진제 거리의 355번지에 위치한 가게 주소에서 따왔죠.
푸진 트리 355는 일본과 대만 디자이너 브랜드를 큐레이션해 판매하는 패션 편집숍이에요. 제이의 일본인 아내 미도리가 매니저를 맡고 있죠. 일본 고베의 작은 주얼리 브랜드 허들(HUDDLE)부터 대만의 패브릭 공방 브랜드 정휘종(Zheng Huizhong)까지, 푸진 트리만의 패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에요. 어떻게 보면 일본과 대만의 의복 문화가 융화되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의식주 중 ‘의(衣)’에 집중해서 더 체감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최근 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의복에 대한 의식이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특히 젊은 층은 의복에 소비하는 시간과 돈도 많아지고 있죠. 즉, 패션을 향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훨씬 늘었습니다.”
- 제이, cinra
푸진 트리 355는 현재까지도 푸진제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에요.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 유리창은 마치 푸진 거리의 생활 공동체에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을 주죠. 아파트를 개조해 만든 공간인 만큼, 노출 콘크리트와 목조를 활용해 ‘집’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요.
ⓒFujin Tree 355
의류 편집숍을 시작으로, 푸진 트리 그룹은 이후 빠른 확장을 이어갔어요. 카페인 ‘푸진 트리 353 카페’, 홈데코 편집숍인 ‘푸진 트리 352’, 꽃집인 ‘그린 데이스 바이 푸진 트리’ 등 푸진 트리 그룹의 자체 브랜드로 푸진제를 채웠죠.
“현장을 디자인해, 완전한 생활권을 만들고 싶었어요.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다면 파리나 도쿄의 동네와 같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죠.”
- 제이, Tatler asia
푸진 트리 그룹에서 ‘트리’, 즉 나무가 의미하는 바는 단지 하나의 매장에 그치지 않고 하루하루 성장해나가고 뻗어나가는 브랜드를 의미해요. 제이는 그 하나의 가치를 좇아 빠른 확장을 이어갔던 거예요.
ⓒFujin Tree Cafe
페어링으로 격은 높이고, 문턱은 낮춘다
제이가 의식주 중 ‘의’ 다음에 공략한 카테고리는 바로 ‘식(食)’이에요. 푸진 트리 그룹의 가장 대표적인 매장은 단연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이에요. 2014년 오픈한 대만식 레스토랑이죠. 다른 점이 있다면,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은 ‘대만의 식문화’를 재정의하고, 이를 다시 해외에 알리는 새로운 시도였어요.
제이가 다른 음식도 아니고 굳이 대만 음식에 집중한 이유는, 대만 음식은 동파육과 버블티가 전부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 였어요. 이 고정관념을 없앤다면 푸진 트리가 해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타이베이에 들여온 것처럼, 거꾸로 대만의 음식 역시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을 만한 경쟁력을 갖출 거라고 생각했어요.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은 대만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요? 우선, 메뉴를 통해 대만의 전통 요리를 고급화했어요. 기본적인 국수와 동파육뿐 아니라 마늘 페이스트를 곁들인 굴, 약재와 중국 술로 절인 닭새우와 랍스터 등 고급 파인 다이닝에서 볼 법한 메뉴들로 대만 음식을 재해석했죠.
그리고 일본어와 영어 메뉴판을 마련해 해외 관광객들에게 최적화시켰어요. 대만을 방문한 외국인 귀빈들을 위한 레스토랑으로 포지셔닝한 거예요.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우면서도, 푸진제와 어우러지도록 개방감을 연출했어요.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유리 덕분에 화창한 자연광이 매장 안을 환하게 비춰요. 천장에 달린 이끼 모양의 오브제들은 푸진제의 푸르른 녹음을 매장 안으로 들여온 듯 하고요. 푸진제의 거리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야외 테라스 자리도 잊지 않았죠.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은 이후 타이베이 곳곳으로 뻗어 나가요. 그 중 2024년 1월에 문을 연 타이베이 101 지점은 본점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외국인들에게 대만 식문화를 알리고 있어요. 타이베이 101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대표적인 관광지예요. 이 건물 5층에 입점해 타이베이를 여행 온 관광객들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갔어요.
인테리어도 본점과는 확연히 달라요. 푸진제의 자연을 매장에 들였던 본점과는 대조적으로, 타이베이 101 지점은 고급스러운 사문석으로 럭셔리한 분위기를 뽐내요. 사문석은 화강암의 일종으로, 대만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사문석 생산지 중 한 곳이거든요. 마치 돌에 그림이 그려진 듯한 특징적인 무늬와 쨍한 색감이 특징이죠. 여기에 목재 가구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해 고급스러우면서도 위화감은 줄였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사실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의 가장 큰 차별점은 매장 이름 안에 있어요. 바로 대만 음식에 프랑스 와인인 ‘샴페인’을 페어링한다는 점이에요. 고급 술의 대명사이자,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샴페인을 대만 음식에 페어링하니, 대만 음식의 격이 올라 가죠. 환상적인 마리아주로 미각적 경험의 레벨을 끌어 올리는 건 물론이고요.
그런데 단순히 샴페인 페어링만 한 게 아니에요. 와인을 더 친근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고객 친화적인 관점에서 와인을 소개해요. 먼저 1병을 모두 마시기 부담스럽거나 여러 가지 와인을 페어링해 볼 수 있도록 잔 단위의 와인 메뉴를 갖췄어요.
와인을 분류한 방식에서도 고심의 흔적이 드러 나요.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샴페인 등 전형적인 분류로 와인 메뉴를 구성하기 전,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의 ‘스타일’에 따라 먼저 와인을 구분해요. ‘섬세한(Delicate)’, ‘우아한(Elegant)’, ‘매력적인(Charming)’, ‘무거운(Full-Bodied)’로 메뉴판을 나눠 구성해,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와인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왔어요.
ⓒ시티호퍼스
와인을 구분하는 4가지의 각 카테고리에는 각기 다른 컬러를 부여했어요. 섬세한 와인은 파란색, 우아한 와인은 초록색, 매력적인 와인은 주황색, 풀바디 와인은 분홍색이죠. 이 컬러 체계는 음식 메뉴판에서 빛을 발해요. 음식 메뉴판에 각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 스타일의 컬러로 와인잔 이모지를 표시했어요. 직관적이고, 또 세련된 방식으로 와인을 추천하고 있는 거죠.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이런 식으로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에서는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와인 페어링을 시도하고, 와인 페어링의 세계에 입문하기도 좋아요. 제이가 노린 컨셉이 바로 ‘접근가능한 럭셔리(Affordable Luxury)’에 딱 맞는 접근 방식이에요. 사실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을 오픈하기 전에, 제이는 반대 의견에 많이 부딪혔거든요.
“처음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걱정했어요. 대만 요리는 경쟁이 심해서 눈에 띄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어른들이 다 할 수 있는 요리이지 않느냐고요.”
- 제이, Tatler asia
제이는 그 명분을 ‘접근가능한 럭셔리’에서 찾은 거예요. 사람들의 말대로, 대만 요리 식당은 대만 내에서 친근하고 흔한 카테고리예요. 그 친근한 요리에 색다른 레시피, 와인 페어링을 곁들여 고급화로 차별화를 줬죠. 대신 가격은 합리적이에요. 코스 메뉴를 선택해도 4인 5,280대만달러(약 22만원), 6인 8,880대만달러(약 37만원)로 즐길 수 있어요.
그 결과,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됐죠. 2014년에는 모노클이 선정한 ‘세계 50대 관광 명소’ 중 하나로 선정됐고, 2018년에는 대만 정부가 추천하는 꼭 가봐야 할 10대 레스토랑으로 선정되었어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으로 미쉐린에 원 스타를 획득하기도 했고요. 대만 음식의 고급화를 넘어 세계화에 물꼬를 트기 시작한 거예요.
재해석한 대만 문화를 해외로 수출하다
“저의 원래 의도와 목표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대만으로 가져오고, 대만을 세계로 가져오는 목표 말이죠. 과거에는 대만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대만 역시 널리 퍼뜨려도 좋을 만큼 좋은 점이 많아요. 저는 세계와 더 연결되고 싶어요. 이 뜻을 하나로 모아 패키지로 만드는 게 저의 일입니다.”
- 제이, Tatler asia
세계의 문화를 대만에 이식하고, 대만의 문화를 재해석한 푸진 트리 그룹. 그 다음 행보는 재해석한 대만의 문화를 다시 세계로 퍼트리는 것이었어요. 2019년, 푸진 트리 그룹은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을 도쿄 니혼바시에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어요.
“도쿄에서 대만 음식을 먹으려고 줄 서 있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저희 식당이 바로 그런 유일한 곳이에요.”
- 제이, Cherubic Ventures
푸진 트리 그룹은 일본의 대형 레스토랑 체인 기업 WDI 그룹과 협력했어요. 그만큼 많은 공을 들였죠. 매장 인테리어는 에르메스가 지원하기도 한 유명 설치 예술가 리 지(Lee Chi)와 협력했어요. 푸진제의 본점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만의 정체성을 더 강조했어요. 예를 들어 정문의 핑크색 벽돌 벽은 대만의 벽돌 집을 연상시켜요. 본점과 마찬가지로 마치 해안가의 이끼 낀 바위를 닮은 조형물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죠.
ⓒFujin Tree
ⓒFujin Tree
니혼바시에 있는 2호점은 세트 메뉴가 인상적이에요. 일본의 식생활에 걸맞게, 혼자 가도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는 1인 세트 메뉴가 마련돼 있죠. 대만 전채 3종 모듬, 채소, 튀긴 두부, 대만식 노육밥 등이 포함된 루로판(Lurofan) 세트는 1,980엔(약 17,000원)에 맛볼 수 있어요.
레스토랑을 통해 일본 진출에 성공한 푸진 트리는, 다음 스텝으로 카페까지 오픈했어요. 2023년 12월부터 2024년 2월에 푸진 트리 카페를 가루이자와에 있는 프린스 호텔의 스키장에서 팝업으로 열었죠.
레스토랑이 대만의 음식을 재해석해 해외에 알렸다면, 카페는 대만의 음료를 재해석했어요. 팝업 카페에서는 두 종류의 수제 커피와 두 종류의 디저트를 판매했어요. 스키장 내의 카페 트럭으로 오픈해, 스키를 즐기던 여행객들이 한 숨 돌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어요.
수제 커피 메뉴는 특히 대만의 향기가 물씬 피어올라요. ‘후레이바 커피’는 구아바의 단맛을 넣었고, ‘푸진 트리 라떼’는 과테말라의 원두에 살구 혹은 초콜릿 크림 맛이 느껴지도록 아로마와 스팀 밀크를 사용했어요.
디저트 역시 대만식 재해석이 들어갔어요. 티라미수는 대만의 대표적인 우롱차 중 하나인 ‘철관음차’를 사용해 만들었어요. 잡미가 적고 과일향이 독특한 철관음차에, 다크 초콜릿 리큐어와 럼주를 넣어 만든 알코올 티라미수죠. 또, 대만에서 생산된 꿀에 카망베르 치즈와 토마토를 올린 ‘허니&카망베르 치즈 토스트’도 개발했고요.
ⓒFujin Tree Cafe
ⓒFujin Tree Cafe
ⓒFujin Tree Cafe
ⓒFujin Tree Cafe
“세계 어느 누구도 대만 요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시장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제이, Cherubic Ventures
해외로 진출할 때, 제이가 꼭 지키는 신념 하나가 있어요. 바로 ‘변하지 말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것이 진정성을 유지하는 법이라고 본 거죠. 그래서 푸진 트리 타이와니즈 퀴진 & 샴페인의 도쿄 지점은 메뉴나 인테리어 모두 본점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요.
“우리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겁니다. 대중이 아닌 틈새 시장을 겨냥하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의 핵심 강점을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 제이, Cherubic Ventrures
즉, 대만에서 새롭지 않다면 또 다른 새로움을 찾아 변화하는 대신,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바라봐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야 한단 거예요. 대만 음식은 대만 내에서는 흔할 수 있어도, 일본에서는 틈새시장이었듯이요.
위기에 몰려도 본질을 지키면 산다
이렇게 보면 푸진 트리 그룹은 승승장구한 것만 같죠. 사실 푸진 트리 그룹에도 아픈 위기가 있었어요. 2012년 설립 이래, 푸진 트리 그룹은 4년 만에 10개가 넘는 매장을 오픈했죠. 이 빠른 확장이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됐어요. 2016년, 자금 문제로 여러 매장을 예고 없이 폐업했고, 최소 1억 대만달러(약 42억원)의 손실을 입었죠. 업계에서는 제이에게 ‘실패의 왕’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 위기 속에서도 제이는 비관하지 않았어요. 제이의 큰 강점은 바로 ‘낙관의 힘’에 있었죠.
“저희 어머니는 굉장히 긍정적인 분이시고, 아버지는 비교적 비관적인 분이세요. 저는 양극단 속에서 자랐죠. 그 분들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 더 행복할지 고민했어요. 그리고 이해했죠. 어떤 날은 비관적일 수 있고, 어떤 날은 낙관적일 수 있지만, 모든 일을 낙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 제이, Tatler asia
제이는 지금도 그때의 위기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해요. 대신 무언가 바꿀 수 있다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을 거라고 말할 뿐이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위기 속에서 제이는 어떻게 푸진 트리 그룹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답은 업의 본질을 잊지 않는 데에 있었어요. 마사지 숍이나 꽃집 등 자잘구리한 매장들을 70% 폐점하고, 사업의 크기를 축소시켰죠. 대신 푸진 트리 그룹의 본질이었던 ‘큐레이션’의 영역만 남겼어요. ‘맛’을 큐레이션 하는 카페와 레스토랑, 패션 셀렉트 숍과 프라이탁 같이 존재감이 뚜렷한 해외 브랜드 등에 집중한 거예요.
‘큐레이션’을 강화하기 위해 2020년에는 유튜버로 나섰어요. 유튜브 채널 ‘J is good!’을 운영하며 영상을 통해 자신이 타는 자동차 소개, 여행 가이드, 브랜드 추천 등의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죠.
“제가 하고 싶은 일의 초심은 아주 단순해요. 늘 사람들에게 좋은 걸 가져다 주고 싶은 거죠.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남자들이 왜 옷을 잘 입어야 하고, 머리를 잘 만져야 하는지 공유하는 것처럼요. 이게 제 신념과 논리예요.”
- 제이, Tatler asia
큐레이션이라는 본질을 잊지 않고 푸진제에 머무르자, 푸진 트리 그룹이 폐점한 자리에 이번엔 다른 매장들이 입점하기 시작했어요. 일본 수입 가구 매장 알롯 리빙(ALOT Living), 일본식 상점 및 카페 오리진 푸디스트(Origins foodist), 포르투칼과 대만 퓨전 요리 식당 마린헤이로 넘버나인(Marinheiro No.9) 등이 이웃이 되었죠. 푸진 트리 그룹이 만들어 놓은 거리 풍경을, 서로 다른 매장들이 상생하며 지키기 시작한 거예요.
제이는 말해요. 위기가 오더라도 내가 나 자신을 굳게 믿으면, 다른 누군가도 나를 믿게 되고, 그 믿음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