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병을 납작하게 디자인해, 보이지 않던 문제를 해결한다

가르송 와인

2022.10.07

이 와인병, 뭔가 낯설어요. 둥글게 생긴 일반적인 와인병과 달리 납작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가르송 와인의 와인병은 ‘플랫 와인병(Flat bottle)’으로 불려요. 그런데 와인병을 더 자세히 관찰하면 병 모양뿐만 아니라 병의 소재도 달라보여요. 유리 대신 플라스틱을 사용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가르송 와인은 와인병을 왜 이 모양, 이 소재로 디자인한 걸까요? 물론 와인병 모양이 독특하니, 와인업계와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가르송 와인이 이 효과를 노리고 와인병을 디자인 한 게 아니에요. 가르송 와인은 친환경을 추구하고자 와인병 디자인을 바꾼 거죠. 


멀쩡한 유리병을 플라스틱으로 바꿨는데, 웬 친환경이냐고요? 그리고 병 모양 바꾼 게 환경이랑 무슨 관계냐고요? 가르송 와인이 와인병을 납작하게 디자인한 이유를 알고나면 업계에서 쏟아지는 찬사에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가르송 와인 미리보기

 21세기에 가장 적합한 와인, 가르송 와인

 #1. 플라스틱 없애기가 아니라 플라스틱 ‘똑똑하게’ 쓰기

 #2. 친환경 소재만큼이나 중요한 친환경 ‘모양’

 #3. 와인이 아니라 ‘와인병’을 팔면 고객이 달라진다

 승자만 있는 게임의 판을 만들다




양조업계에도 지속가능성의 순풍이 붑니다. 많은 양조장들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재활용 가능한 병을 사용하고, 술을 만들 때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탄소 중립 인증을 획득한 양조장도 있고요. 그 중 영국 런던의 '빅토리 런던 디스틸러리(Victory London Distillery)'는 '에코 파우치(Eco Pouch)'의 선구자로 불리며 리필이 가능한 증류주를 만들었죠.



빅토리 런던 디스틸러리가 개발한 리필용 에코 파우치입니다. ⓒVictory London Distillery


빅토리 런던 디스틸러리는 런던 도심에 위치한 증류주 양조장입니다. 식물성 보드카, 진 등을 생산하죠. 증류주의 품질은 물론, 모던한 패키지 디자인과 컬러감 덕분에 런더너들 사이에서 인기입니다. 무엇보다 술이 소비되는 과정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개발한 에코 파우치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에코 파우치는 재활용이 가능한 작은 플라스틱 파우치로, 리필용 술이 들어 있습니다. 유리병에 들어 있는 증류주를 한 번 산 고객이라면 에코 파우치만 구매해 기존에 있던 유리병에 술을 채워 넣기만 하면 되죠. 마치 화장품이나 세제를 리필하는 것처럼요. 덕분에 버려지는 유리병과 포장의 양을 줄이고, 쓰레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에요. 빅토리 런던 디스틸러리는 캔 형태의 리필용기도 개발합니다. 이 알루미늄 캔이 플라스틱보다 재활용 비율이 더 높기 때문이죠. 이처럼 양조업계의 몇몇 선도 양조장을 중심으로 패키지 소재를 바꾸는 등의 시도를 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Victory London Distillery



왼쪽은 빅토리 런던 디스틸러리의 진이고, 오른쪽은 새롭게 개발한 리필용 알루미늄 캔입니다. ⓒVictory London Distillery



21세기에 가장 적합한 와인, 가르송 와인

비단 증류주 업계만의 일이 아닙니다. 같은 도시, 런던에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와인업계의 지속가능성을 이끄는 '가르송 와인(Garçon Wines)'이 있습니다. 가르송 와인도 마찬가지로 지속가능성을 위해 와인병 소재를 바꾸었죠. 수백 년에 걸쳐 유리로 만들던 와인병을 플라스틱으로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플라스틱은 환경에 해롭다는 인식이 기본인데 지속가능성을 위해 플라스틱을 선택했다니, 업계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가르송 와인은 신기원을 이룬 와인병을 개발했다(Garçon Wines has developed a groundbreaking bottle)."


영국의 유명 와인 평론가 얀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이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에서 가르송 와인을 극찬하며 쓴 말입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수많은 평론가들과 미디어들이 '와인병의 미래', '와인업계의 게임 체인저' 등으로 가르송 와인을 표현했죠. 



가르송 와인의 와인입니다. ⓒGarçon Wines


업계의 평판에서 볼 수 있듯, 가르송 와인은 와인병 패키지를 바꾸어 업계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지속가능성을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와인 제조, 유통, 판매 등 생산 및 공급망에 걸쳐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했어요. 파격적인 소재 선택만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도 틀을 깨는 아이디어들이 숨어 있죠. 환경에 해악으로 인식되는 플라스틱을 활용해 친환경을 실천한 것도 모자라 와인 업계의 혁신을 가져 왔다니 그 내막이 더욱 궁금해 집니다.



#1. 플라스틱 없애기가 아니라 플라스틱 ‘똑똑하게’ 쓰기

친환경을 추구하기 위해 보통의 기업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더 나아가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소재를 찾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플라스틱 대신 사용하는 소재의 친환경성이 검증되지 않은 경우도 많고, 오히려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플라스틱보다 더 많아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새롭게 개발된 친환경 신소재는 개발이나 응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높아 상용화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고요.


"Plastic-smart not plastic-free"


가르송 와인은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을 '똑똑하게' 활용하기로 합니다. 와인병을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을 새로 생산하는 대신 이미 생산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르송 와인의 와인병은 100% 재활용 PET로 만들어 집니다.


게다가 플라스틱 병은 유리병보다 생산 및 가공 과정에서 배출하는 탄소 양이 더 적어 재활용을 잘하기만 한다면 유리병보다 더 친환경적입니다. 영국 사우스샘프턴대 연구진은 유리병이 플라스틱 병보다 환경에 4배 이상 나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가 있죠. 플라스틱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되기도 합니다.


플라스틱 병뿐만 아니에요. 가르송 와인은 라벨지에도 신경을 씁니다. 라벨지가 붙은 플라스틱 병은 재활용 가능성이 떨어져, 생수병 등의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 쓰레기로 배출할 때는 라벨을 분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이외의 소재가 붙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가르송 와인은 병뿐만 아니라 라벨과 뚜껑까지 플라스틱으로 제작했습니다. 라벨 등이 붙어 있더라도 100% 재활용이 가능해진 거죠.



와인병 뒷면에는 고객들에게 재활용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Garçon Wines


또한 플라스틱 PET병은 식품이나 음료에 반응하지 않는 불활성 물질로, 와인의 맛이나 품질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특히 가르송 와인은 미국과 유럽 기준 식품 등급(Food-grade)으로 인증된 PET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안심할 수 있죠. 가르송 와인은 현재로서는 100% 재활용 PET를 사용하는 것이 와인의 품질을 지키는 동시에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친환경적인 대안을 찾고 있다는 여지도 남겨 둡니다. 현재에 대한 확신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고민이 있기에 가르송 와인의 와인병에 더 공감이 갑니다.



#2. 친환경 소재만큼이나 중요한 친환경 ‘모양’

와인은 포도 산지, 품종, 그 해의 작황 등에 따라 맛이 다 다릅니다. 다른 지역에서 같은 맛의 와인을 생산할 수 없죠. 그래서 와인은 어떤 제품보다도 수출입이 활발한 제품군입니다. 영국의 경우, 영국 내에서 소비되는 와인의 99%가 수입 와인일 정도예요. 유명 와인 산지라고 해도 맛이 완전히 다른 타 지역의 와인을 여전히 수입하기에, 와인 유통업자라면 누구나 와인 운송비 절감이 절실합니다.



ⓒGarçon Wines


가르송 와인의 와인병은 운송비 절감에서도 유리합니다. 가르송 와인은 기존의 둥근 유리 와인병과 달리, 재활용 PET를 활용해 와인병의 형태를 납작하게 디자인했습니다. 일명 '플랫 와인병(Flat bottle)'이라 불리는 이 와인병은 기존 750ml 유리 와인병보다 부피는 40% 더 작고, 무게는 87% 더 가볍습니다.


줄어든 부피 만큼, 가벼워진 무게 만큼 운송비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배송 사고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추가 비용까지 절감됩니다. 이처럼 가르송 와인의 납작한 디자인은 가르송 와인만의 독특한 룩(Look)이 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극히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숨어 있는 거예요.



ⓒGarçon Wines



ⓒGarçon Wines


차곡차곡 적재가 가능한 형태로 와인병을 디자인하니 와인을 운송하고 보관할 때 평균적으로 60%의 공간이 늘어납니다. 기존 유리 와인병의 경우, 평균적으로 1 파렛트*에 와인병 12개씩 56상자, 즉 672개의 와인병을 실을 수 있습니다. 반면 가르송 와인의 플랫 와인병은 영국 파렛트의 경우 1 파렛트에 1,056개(유로 파렛트의 경우 1,080병)까지 적재가 가능합니다. 위의 이미지처럼 변화된 디자인으로 생기는 유휴 공간까지 활용한다면 최대 91% 더 많은 와인을 적재할 수 있죠. 동일한 면적의 파렛트에 더 많은 와인을 실을 수 있으니 운송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습니다.

* 파렛트는 지게차 따위로 물건을 실어나를 때 물건을 안정적으로 옮기기 위해 사용하는 받침대


플랫 와인병의 무게는 63g. 전형적인 유리 와인병보다 훨씬 가벼워진 무게도 운송 시 발생하는 연료 비용을 절감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자동차로 치자면 무게가 무거울 수록 끄는 힘이 많이 들어가 연비가 나빠지고, 가벼울 수록 연비가 개선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연비가 개선되니 와인 운송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요. 게다가 유리 와인병은 깨지기도 쉬운 데 반해, PET 플랫 와인병은 깨질 위험이 없어 배송 사고로 인한 사후 처리 비용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가르송 와인의 종이 상자 패키지는 영국 가정집의 우편함 입구에 딱 맞는 사이즈로, 집 앞에 두어야 하는 기존 유리 와인병과 달리 우편함에 쏙 넣을 수 있어 분실 위험도 줄어 듭니다. ⓒGarçon Wines



#3. 와인이 아니라 ‘와인병’을 팔면 고객이 달라진다

가르송 와인은 원래 와인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와인 구독 서비스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와인을 집으로 배송해 주다 보니, 배송하기 더 쉬운 형태의 와인병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플랫 와인병을 디자인한 거예요. 뜻밖에도 플랫 와인병이 여러 미디어와 어워드의 주목을 받으면서 와인병 솔루션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후 가르송 와인은 와인 배송 서비스가 아닌 '와인병'을 판매하는 회사로 피벗을 하죠.



ⓒGarçon Wines


초기에는 '우편함 와인(Letterbox Wine®)'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내 선물 전문 회사들에 플랫 와인병에 담긴 와인을 납품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가르송 와인의 자체 브랜드 와인을 판매하는 와인 도매업에 머물러 있다가, 이후 다른 와인 메이커들을 위해 플랫 와인병을 제작하면서 와인병 도매 사업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합니다. 와인 포장 솔루션은 기존의 핵심 역량을 활용하면서도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전 세계 모든 와인 메이커들을 타깃할 수 있는 비즈니스죠. 기존의 와인 배송 서비스 모델이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기회입니다.


가르송 와인은 단순히 와인병 패키지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파트너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플랫 와인병의 존재감을 키웁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으면서 와인에도 일가견이 있는 유명인 '필립 스코필드(Phillip Schofield)'의 이름을 내건 유기농 와인을 이탈리아의 소규모 와인을 수입하는 '웬 인 로마(When in Rome)'와 함께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또한 핀란드에서는 핀란드 최대 주류 수입사 중 하나인 '세르발리 오이(Servaali Oy)'의 유기농 와인 브랜드 '에버그린(Evergreen)'을 함께 런칭해 북유럽 내 인지도를 쌓기도 했고요.



필립 스코필드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TV 진행자로, 와인 애호가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When in Rome



핀란드의 와인 수입사 세르발리 오이의 유기농 와인 브랜드 에버그린 ⓒGarçon Wines


이렇게 가르송 와인은 타사 혹은 유명인사와의 협업을 통해 유의미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파트너사들의 영업망을 레버리지 해 가르송 와인이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더 널리 전파하고 있죠.



승자만 있는 게임의 판을 만들다

가르송 와인의 플랫 와인병은 와인업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와인업계의 미래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거나 친환경에 뜻을 같이 하는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 중입니다. 특히 재활용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친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은 지역일 수록 가르송 와인의 플랫 와인병에 대한 반응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어떨까요? 친환경 이상의 가치를 주지 못한다면 가르송 와인이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이 오히려 지속 가능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플랫 와인병은 소비자에게도 이득이 됩니다. 먼저 와인 운송비가 줄어 들면 소비자 가격도 더 낮게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죠. 특히 영국의 경우 EU 탈퇴 이후 와인 수입 가격이 올라가면서 평균적으로 와인 한 병당 1.5파운드(약 2,400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가격 조정 여지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죠. 소비자들은 같은 가격이라도 더 나은 와인, 혹은 같은 퀄리티의 와인이라면 더 낮은 가격에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셈입니다.



ⓒGarçon Wines



납작한 가르송 와인은 냉장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Garçon Wines


더불어 같은 사이즈의 냉장고에 더 많은 와인을 보관할 수 있어 냉장고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배송 사고로 인한 불편이 감소하는 것은 덤입니다. 선물할 때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은근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도 좋고요. 이처럼 가르송 와인은 지속가능한 정도를 넘어 모두가 지속하고 싶은 시장을 만들었기에 진정한 게임 체인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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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가르송 와인 공식 홈페이지

 빅토리 런던 디스틸러리 공식 홈페이지

 Alice Brock, Ian D. Williams, LIFE CYCLE ASSESSMENT OF BEVERAGE PACKAGING: DOI 10.31025/2611-4135/2020.14025

 In an Upside-Down World, Is America Ready for Flat Bottles?, Wine Spect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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