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가 만든 빙수, 하이엔드와 대중 음식의 오작교가 되다

기댈빙

2024.04.29

빙수에 하몽 햄과 후추가 뿌려지면 어떨까요? 이 기발한 상상을 한 주인공은 성수동의 빙수 가게 ‘기댈빙’을 운영하는 김종찬 대표예요. 기댈빙은 2023년 5월, 성수동 주거 지역에 문을 연 독특한 빙수 가게죠.


독특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녜요. 앞서 말한 ‘메론 프로슈토빙수’부터, 레스토랑을 쏙 빼닮은 운영 방식까지. 셰프 출신인 김종찬 대표가 메뉴부터 서비스까지 자신의 노하우를 담았죠.


메뉴가 기발하긴 한데, 맛이 있겠냐고요? 98년생의 젊은 사장님 한 분이 운영하는 15평 작은 공간에 주말이면 웨이팅 줄이 늘어서요. 업계에서는 ‘빙수로 하이엔드를 만드는 곳’으로, 성수동 동네에서는 술 취한 아저씨들이 해장하러 찾는 곳으로 통하는 이 곳. 정체가 궁금해 김종찬 대표를 만나봤어요.


기댈빙 미리보기

 #1. 나를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곧 브랜딩이다

 #2. 셰프가 만드는 빙수, 레스토랑의 운영 방식을 가져오다

 #3. 대중적인 맛과 하이엔드, 그 사이의 빙수

 매뉴얼 이상의 ‘정’이라는 포인트




성수동의 메인 스트리트에서 살짝 벗어난 성덕정길. 이곳은 놀러 온 사람들보다 지역 주민들이 더 많이 보입니다. 팝업 스토어보다 오래된 철문을 가진 이발소, 피부샵, 호프집이 있는 골목이에요. 성수동에도 아직 이런 주거 지역이 남아 있다니. 굳이 찾아오지 않으면 모를 동네처럼 보여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주변 상점들과 상반되는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통유리 창에 알파벳 시트지가 붙어 있고, 창 안으로는 얼핏얼핏 붕어빵 만드는 기계가 보여요. 사실 이 곳은 카페도, 붕어빵 가게도 아닌, 빙수 가게입니다. 이름은 ‘기댈 빙(憑)’. 당신의 힘든 삶에 잠시 기대어 갈 수 있는 빙수라는 뜻이죠.


상권에서 벗어난 성수동의 15평 빙수 가게. 원래 이 곳은 오래된 멕시카나 치킨 집이었어요. 2023년 3월, 이 공간을 인수한 사람은 98년생의 젊은 사장님, 김종찬 대표입니다. 김종찬 대표는 자본금 3,000만원을 들고 기댈빙을 창업했어요. “실패를 해도 젊을 때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요.


김종찬 대표는 셰프 출신이에요. 이탈리안 레스토랑, 햄 전문점 등에서 숨 가쁜 주방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2023년 5월, 돌연 자신만의 빙수 가게를 차립니다. 파스타를 만들고 고기를 손질하던 셰프에게 빙수는 연이 없던 음식이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이었죠.


성수동의 잘 나가는 햄 전문점에서 일하던 그가 빙수집을 차린다고 하자, 모두가 말렸습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기댈빙은 오픈 4개월 만에 자본금 3,000만원을 모두 회수했습니다. 여전히 주말이면 웨이팅 줄이 늘어서죠. 그를 말리던 지인들은 이제 기댈빙에 와서 말합니다. “빙수도 요리가 될 수 있었어? 요리란 대체 뭘까?”


셰프들이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이 곳, 기댈빙에서 김종찬 대표를 만났습니다. 주변에 어딘지 모르게 도와주고 싶은, 푸근한 인상의 사람이 한 두 명씩 있죠. 그들의 공통점은 ‘사무치게 솔직하다’는 점입니다. 김 대표가 바로 그랬습니다.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연 그는 “방금 막 도착했다”며 주방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시티호퍼스



#1. 나를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곧 브랜딩이다


기댈빙의 주방에서 가장 큰 가재는 냉장고입니다. 냉장고 한 쪽 문을 덮고 있는 포스터 속에서 김종찬 대표가 커다란 메론을 들고 있어요. ‘내가 바로 이 곳의 주인이다’ 하는, 당당하면서도 애틋한 사진입니다. 그가 우여곡절 속에서 기댈빙을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어보면, 냉장고에 붙은 저 사진이 바로 기댈빙의 정체성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의 전략은 솔직함입니다.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이는 것, 그게 김 대표의 무기였어요.


“기댈빙을 창업하고 한강 둔치에 가서 매일 같이 울었어요.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후회도 엄청 했죠. 브랜딩이고 철학이고, 뭐 하나 제 맘에 쏙 들 정도로 갖춰진 게 없었어요.”


ⓒ시티호퍼스


가게를 운영하는데 솔직함이 왜 필요하냐고요? 2023년 3월 무턱대고 공간을 인수한 김 대표는 착잡했습니다. 공간 인테리어도, 브랜딩도, 전문가가 아니니 제대로 해낼 수 없었어요. 이럴 거면 내가 무엇보다 자신 있는 ‘김종찬’이라는 사람을 스토리텔링하자고 생각했죠. 그게 곧 기댈빙의 브랜딩이고, 역사라는 생각에서요.


“‘기댈빙’이라는 이름값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고객이 ‘기댈빙’에 정말 기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인테리어를 확 바꿀 수도 없고요. 그럼 나라도 그런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내가 셰프로 일하면서 배웠던 서비스와 노하우를 기댈빙에 모두 녹여내자. 공간이 어떻든, 결국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잖아요.”


기댈빙의 시그니처 메뉴 ‘메론 프로슈토빙수’ 역시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메론을 두른 빙수 위에 생햄 프로슈토를 올리고, 후추를 뿌린 이 독특한 빙수. 김종찬 대표의 인생을 압축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선 김종찬 대표의 인생을 살짝 들여다봐야 해요.


ⓒ기댈빙


김종찬 대표는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그 덕에 어린 시절부터 두 누나와 함께 직접 요리를 해먹었죠. 자연스럽게 유치원생 때부터 꿈이 요리사였습니다. 유치원에서 꿈에 대한 그림을 그릴 때, 김종찬 어린이는 조리 주방 모자를 쓰고 요리를 하고 있는 미래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한 번도 노선을 틀지 않고, 꿈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조리과학고등학교 시절 그의 목표는 ‘하이엔드 다이닝’이었어요. 친구들이 PC방 가서 게임할 때 1세대 음식 칼럼니스트들의 요리 블로그를 찾아보고, 호랑이 선배들의 요리 책을 빌려 읽었죠. 그 덕에 고등학교 재학 시절 요리 대회에서 6번 넘게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왕 할 거면 한 가닥 그어야지, 이런 게 있었어요. 야망이 컸던 거죠. 요리도 이왕 할 거면 최고로, 하이엔드로 가야지 생각했어요. 저는 타고난 사람도 아니고,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다른 친구들보다 디테일한 면이 부족했죠. 그런데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보고 공부하는 건 누구보다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는 아르바이트 월급을 모아서 서울의 샘 킴 레스토랑을 찾아가고, 일하고 싶다며 식당에 전화를 할 정도로 열정이 가득한 학생이었어요. 비록 샘 킴의 가게는 아니었지만 이대 앞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비꼴로’에 18살의 나이로 조기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비꼴로부터 ‘셰프들의 셰프’라고 불리는 이유석 셰프의 비스트로 ‘루이상끄’, 면 전문점 ‘유면가’를 거쳐, 김종찬 대표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직장은 성수동의 유명 육가공 햄 전문점 세스크 멘슬입니다. ‘햄’이라는 카테고리에 끌렸던 이유는 셰프로서 근본에 대한 갈망을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트렌드가 변하면 음식에도 계속 변화를 줘야 해요. 셰프로서 그 변화를 계속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모든 요리의 근본인 식재료부터 파고들자고 생각했죠. 셰프는 재료가 없으면 요리를 못 해요. 고기나 쌀 같은 근본적인 재료는 변하지 않죠. 그 근본을 파고들면, 뭘 해도 제대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세스크멘슬


ⓒ기댈빙


비꼴로에서 일했던 시절, 김 대표는 퇴근하고 매일같이 고기를 납품 받던 정육점 사장님께 고기 수업을 받았습니다. 세스크 멘슬은 그 시절의 열정을 떠올리게 했죠. 2년 넘게 김 대표는 세스크 멘슬에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홀과 주방, 심지어 인스타그램 마케팅까지 도맡았죠.


즐거웠지만 동시에 번아웃이 왔습니다. 일을 하며 커뮤니티 활동, 러닝 크루, 유튜브 촬영을 병행하다 보니 몸이 못 버텼죠. 번아웃과 공황 장애를 겪은 뒤, 김 대표에게 근본적인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나, 붕어빵을 팔아도 행복할까?”


처음에 김 대표는 정말 붕어빵 가게를 차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민을 하다 보니 겨울이 지나고 있었고, 붕어빵을 팔기엔 날이 너무 따뜻해졌죠. 대안을 고민했어요. 5년 동안 성수동을 지켜본 결과 20대를 타깃한 ‘힙한 빙수 가게’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빙수는 소자본으로 시도할 수 있는 데에 비해 객단가가 높았고, 홀과 배달 모두 잡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습니다.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여름에는 빙수를 팔고 겨울에는 붕어빵을 팔기로 결심합니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아는 게 없으니 주변인들에게 물어물어 오픈 준비를 했어요. 중고로 주방 가재를 마련하고, 셀프 인테리어로 15평 작은 공간을 채웠죠.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리며, 숨 가쁘게 사는 도시인들에게 쉬어갈 곳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이름은 ‘기댈빙’으로 지었습니다. 그렇게 퇴사를 마친 2023년 5월, 가게를 오픈했어요.


이 모든 스토리를 담아 만든 대표 메뉴가 바로 ‘메론 프로슈토빙수’예요. 햄에 대한 김 대표의 노하우, 셰프로서 떠올릴 수 있는 독창성으로 만들었죠. 김 대표는 팥빙수, 망고빙수와 함께 메론 프로슈토빙수를 오픈 메뉴로 출시했습니다. 보편적인 빙수들 사이에서 유독 튀는, 실험적인 빙수. 처음에는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노심초사였지만, 성공적이었어요.


“다행히 전략이 통했어요. 저는 대중적인 메뉴 속에서 딱 하나의 킥을 주고 싶었어요. 모든 부분에 다 차별점을 주려면 자본이 필요하고, 그런 건 누데이크 같은 대형 브랜드가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대신 나만 할 수 있는 딱 하나의 킥을 가지고 가자. 그게 메론 프로슈토빙수였죠.”


독특한 빙수에 여러 맛집 블로거, SNS 채널들이 기댈빙에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마케팅 없이도 초기부터 바이럴이 됐죠. 그 덕에 오픈하자마자 주말엔 웨이팅이 늘어섰고, 오픈 4개월 만에 자본금 3,000만원을 모두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시티호퍼스



#2. 셰프가 만드는 빙수, 레스토랑의 운영 방식을 가져오다


지나가다 들를 수 있는 작은 빙수 가게이지만, 기댈빙은 어딘가 더 섬세한 느낌을 줍니다. 메뉴마다 정성스레 만드는 포스터부터 오픈하자마자 가장 먼저 제작했던 굿즈 티셔츠까지. 김종찬 대표가 셰프로서 배워온 레스토랑 식의 운영 노하우를, 기댈빙에 그대로 적용한 거예요.


김 대표는 첫 직장이었던 비꼴로에서 처음 3개월 동안 책을 10권 넘게 읽고 독후감을 써내야 했습니다. 셰프들의 최종 목표인 ‘내 가게 차리기’를 위한 일종의 인턴십이었어요. 김종찬 대표는 비꼴로에서 일했던 18살~19살 내내 ‘브랜딩’과 ‘마케팅’이란 말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비꼴로에서 일하며 처음 알았습니다. 셰프는 음식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요. 음식 이전에 ‘가치관’이 더 중요했어요. 비꼴로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지만, 직원들끼리는 ‘우리는 연회장이고, 파티장이야’ 생각했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다시 모이는 장소인데, 이탈리안 음식을 파는 것일 뿐’이라고요.”


세스크 멘슬에서 일했을 땐 비꼴로에서 배웠던 브랜딩의 실체를 확인했어요. 디테일한 모든 것에 의미가 들어 있었죠. 예를 들어 ‘세스크 멘슬’이라는 이름 역시 브랜딩의 일부였습니다. 세스크 멘슬의 김정현 대표가 처음으로 고기를 배웠던 두 스승의 이름에서 따 온 거예요.


김 대표는 셰프로 일하며 배워온 브랜딩과 컨셉을 기댈빙에 적용하고 싶었어요. 그 중 하나가 메론 프로슈토빙수에 녹아 있는 스토리텔링이고요. 더 뚜렷한 컨셉과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다녔습니다. 구글의 마케터를 찾아가 함께 이름을 짓고, 모임에서 만난 디자이너와 전체적인 디자인을 잡았어요.


기댈빙의 디자인을 맡고 있는 00년생 김시은 디자이너와 가장 먼저 한 일은 포스터와 옷을 만드는 거였어요. 기댈빙 매장에도 군데군데 붙어 있는 포스터들은 직관적이면서도 눈에 띄어요. 망고빙수가 덩그러니 들어간 포스터는 쨍한 주황빛을 띠고 있죠. 기댈빙의 티셔츠 ‘빙의’에는 메론, 스쿱, 애플 민트 등 빙수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늘어져 있고요.


ⓒ기댈빙


ⓒ시티호퍼스


가게를 운영하는데 굿즈와 포스터부터 만든다니. 의외였어요. 이유를 들어보니 전략적인 브랜딩이었죠.


“컨셉과 브랜딩을 위해 가게 인테리어를 다시 한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비용이 들잖아요. 하지만 포스터나 굿즈를 제작해서 인스타그램에 피드 하나 올리는 건 저비용에 영구적이에요. 포스터를 밖에 붙이고, 우리 가게 옷을 입고 다니면 더 뾰족한 마케팅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런 작은 브랜딩 요소를 모아서 ‘빙수 가게는 어디까지 힙해질 수 있나’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컨셉뿐 아니라 운영 방식에도 레스토랑의 정체성을 입혔습니다. 보통의 빙수 가게는 대량으로 냉동 재료를 구매해 사용하죠. 하지만 기댈빙은 셰프들이 직접 농장에 가서 식재료를 공수해오듯 재료 하나하나 선별합니다. 예를 들어, 흑임자빙수에 들어가는 찹쌀떡은 송정동에서 2대째 가업을 이어온 떡집 ‘본작’에서 공급 받고, 프로슈토는 이탈리아 파르마 지방에서 돼지고기 뒷다리를 장시간 염지한 햄만 사용하는 식이에요.


단순히 빙수를 먹으러 온 손님이 이 모든 정성을 알기란 쉽지 않죠. 이를 보충하는 게 셰프식 환대 방식이에요. 김 대표는 여유가 되는 한 손님들에게 하나하나 빙수에 대해 설명해요. 메론 프로슈토빙수는 아이스크림과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먹어야 맛있다. 흑임자빙수는 소스 없이 담백하게 먹다가 그 다음에 소스를 부어 먹어라. 등등의 노하우를 파인 다이닝마냥 일일이 설명하죠. 배달 주문에도 빙수 먹는 법이 쓰인 카드를 함께 보내요.


ⓒ시티호퍼스



“요리사를 하면서 느꼈던 것, 배웠던 것을 더 나누는 게 제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빙수를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곳은 지금도 없는 것 같아요. 손님들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고요. 그래서 오히려 더 인상 깊게 느껴주시는 것 같아요.”


김 대표의 정성은 고객들에게도 가 닿습니다. 기댈빙 배달의 민족 리뷰는 200개가 넘어요. 그 중 가장 자주 등장하는 리뷰는 ‘사장님이 친절하다’는 거죠. 김 대표는 “그게 모든 장사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해요.



#3. 대중적인 맛과 하이엔드, 그 사이의 빙수


기댈빙은 ‘와인과 함께 먹는 빙수’로도 유명하죠.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글래스 와인을 주문해 빙수와 함께 즐길 수 있어요. 고급화를 노린 것 같지만, 오히려 김종찬 대표의 목표는 ‘가장 대중적인 맛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와인은 고객 아이디어였어요. 메론 프로슈토빙수를 파는데, 프로슈토는 와인 안주니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아들였죠. 저는 반대로 빙수를 만들면서 셰프로서의 자존심은 많이 내려놓았어요. 빙수가 대중적인 음식인 만큼, 최대한 보편적이고 쉬운 맛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와인을 팔기 시작하면서 김 대표는 새로운 포지션을 고민했습니다. 대중의 입맛을 잡되,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을 추천 정도는 해줄 수 있는 포지션이 되자고 결심했죠.


“사실 호텔에는 와인과 빙수라는 조합이 이미 있긴 했지만, 너무 접근성이 떨어지고 진입 장벽이 높아요. 반대로 대중 시장엔 두각을 드러내는 빙수 브랜드 ‘설빙’이 있잖아요. 설빙보다는 한 단계 높되, 대중적인 맛은 놓치지 않아야 했어요. 그래서 맛은 대중적이지만 하이엔드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해볼 수 있는 포지션을 만들었죠.”


ⓒ기댈빙


기댈빙은 대중성과 하이엔드를 넘나들어요. 그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면서, 대중에겐 하이엔드를 맛볼 수 있게끔, 하이엔드 업계에는 대중 음식도 고급화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을 경험시키죠.


대표적인 예가 2023년 8월 진행했던 컬래버레이션 팝업이에요. 디저트 셰프, 소믈리에가 모여 3종류의 빙수와 와인 페어링을 준비했죠. 빙수를 작정하고 하이엔드로 끌어올려, 요식업 업계에 없던 시도를 해보자는 기획이었어요. 감자 치즈 앙글레이즈에 가쓰오부시 크림을 곁들인 빙수, 대추크림브륄레에 훈연한 메밀 아이스크림을 올린 빙수 등 고급 재료를 사용한 색다른 빙수를 개발했죠.


ⓒ기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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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기간 동안 업계의 주목을 받으며 최고 매출을 찍었지만, 김 대표는 팝업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말해요.


“팝업 날 단골 아주머니가 오셨어요. 그냥 빙수 먹으러 왔다가, 팝업 빙수를 먹게 되셨죠. 그 분이 최근에 조카랑 따님이랑 다시 가게에 오셔서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팝업 때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거 맛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대중에게 하이엔드를 추천하고픈 마음이 정말 닿았구나, 느꼈죠.”


이후로도 기댈빙은 업계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있어요. 바리스타와 협업해 빙수와 어울리는 커피를 큐레이팅한 ‘8월의 커피 이야기’, 광주의 디저트 가게 코코로나인과의 컬래버레이션, F&B 메뉴 기획자와 만든 벚꽃 팝업까지. 늘 빙수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실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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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댈빙의 타깃은 여전히 ‘대중’이에요. 인스타그램에 ‘성수 빙수 배달 맛집’이라고 소개하는 김종찬 대표의 모습은 소상공인의 정체성을 대변해요. 배달 주문은 성수기에도 늘 3~40%를 차지하죠.


“사실 저는 국밥이나 순댓국집을 하고 싶었어요. ‘붕어빵 팔아도 행복할까’라는 질문의 본질이 그거였어요. 내가 정말 잘 나가고 남들이 다 좋아해주는 레스토랑 말고, 대중적이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을 팔아도 행복할지요.


사실 오픈 초기 때만 해도 셰프의 관점이 강했어요. 그래서 불만이 많았죠. 이 공간은 너무 낡았어, 거리가 너무 비상권이야 등. 이제야 슬슬 고객 관점이라는 게 생긴 것 같아요. 고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의자라도 하나 더 바꾸는 것처럼, 셰프보다 사장의 일을 알게 됐죠.”


기댈빙은 업계 전문가들과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동시에, 동네 아저씨들에게도 친근한 ‘동네 빙수집’이에요. 옆 가게 수리점에서 늘 빙수를 포장해가고, 맞은편 호프집에서는 안주 삼아 기댈빙 빙수를 주문하죠.


김 대표는 셰프의 프라이드의 내려놓고, 누구보다 고객 피드백을 귀 담아 들어요. “인절미 추가가 됐으면 좋겠다”는 리뷰에도, “큐브 치즈 케이크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리뷰에도, 김종찬 대표의 “지금 바로 반영할게요!”라는 답글이 달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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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이상의 ‘정’이라는 포인트


기댈빙은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연중무휴로 달리는 중이에요. 김 대표가 모든 배달 리뷰에 직접 답글을 달고, 아르바이트를 고용해도 손님 응대는 항상 발 벗고 나서죠. 어디선가 “연유 추가할까?” 속삭임이 들리면 서비스로 연유를 내갑니다. 빙수를 먹고 있던 손님에게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요” 하며 와인을 한 잔 따라주기도 하고요.


이처럼 김종찬 대표는 맛과 퀄리티 이상으로 환대에 신경 써요. 그 방면으로는 “부모님께 물려받았다”고 웃으며 말하죠.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는 외모 역시 또 하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손님의 마음을 신경 쓰는 것도 있죠. 주방에 있을 때도 늘 두 귀는 홀 쪽으로 쫑긋거려요. 결국 ‘정’이라는 포인트가, 매뉴얼로 어느 정도 만들어 놓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시티호퍼스는 기댈빙에서 느낄 수 있는 ‘정 이상의 무언가’를 ‘인간다움’으로 봤어요. 김종찬 대표가 스스로의 스토리텔링으로 기댈빙을 브랜딩했듯, 김 대표의 솔직함은 기댈빙의 챠밍 포인트로 느껴졌죠. “그래서 붕어빵 팔아보듯 실제로 행복하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한숨을 내쉬었어요.


“제가 이렇게 매출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일 줄 몰랐어요. 돈이 안 돼도 그냥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괜찮을 줄 알았거든요. 비수기 때는 여전히 마음이 힘들어요. 젤라또 가게 사장님, 20년 넘게 냉면집 운영한 사장님 다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똑같이 말씀하셨어요. ‘견뎌야지, 뭐’ 하고요.”


하지만 김 대표는 기댈빙을 놓을 생각이 없어요. 젊은 나이의 패기로 시작했고, 처음에는 또 하나의 도전으로만 여겨졌던 이 일이 이젠 마치 “내 인생”으로 느껴질 정도라고 해요. 2024년의 목표는 ‘성수동 1등 빙수 가게’가 되는 것이고, 2025년의 목표는 2호점을 차리는 것이죠. 기댈빙에게 이번 여름은 또 어떨지, 젊은 사장님의 고군분투를 함께 지켜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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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기댈빙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