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적의 일입니다. 미국 어느 지역에 허허벌판의 평야가 있었습니다. 볼 것이라곤 잡초밖에 없는 이곳에 특정 시즌이 되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 평야로 버팔로 무리가 대이동을 하는 것이 장관처럼 펼쳐졌기 때문이죠. 죽기 전에 한 번쯤 꼭 볼만한 광경이라고 손꼽힐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버팔로가 떼지어 평야를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버팔로가 대이동하는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웠죠. 지금이야 인공위성 등으로 탐지를 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런 과학 기술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젊은이가 솔깃한 공고를 냈습니다.
1921년 7월 1일 오후 3시죽기 전에 꼭 봐야하는 버팔로 무리의 대이동!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아니면 2달러 지급
젊은이의 호언장담에 그가 지정한 날짜가 되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들었습니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안 갈 이유가 없는 이벤트였습니다. 젊은이의 예언처럼 버팔로 무리가 지나가면 장관을 볼 수 있어 좋고, 만약 그의 말이 틀렸다면 2달러를 벌 수 있어서죠. 밑져도 이득입니다. 드디어 3시가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도 땅이 울리거나 흙먼지가 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오차가 있을 수 있어 사람들은 1시간 가량 더 기다렸으나 버팔로 무리는 커녕 파리떼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투덜거렸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약속대로 2달러를 돌려 받았기 때문이죠.
그곳에 온 사람들은 허탕을 친 게 아니라 한탕을 챙겼습니다. 그렇다면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젊은이는 파산했을까요? 아닙니다. 버팔로의 대이동을 보기 위해선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는 강에서 뗏목을 운영하면서 4달러를 받았던 것입니다. 구름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에게 2달러씩 줬으니 손해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마다 2달러씩 벌어들인 셈입니다.
뗏목 장수의 우화같은 이야기처럼 겉으로는 손해를 보는 듯한데 알고보면 이익인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명분을 제공하면서도 스스로는 실리를 챙기며 서로 윈윈하는 고수의 전략이죠. 뗏목 장수같은 고수가 만든 비즈니스 모델이 상상 속 이야기에서만 존재하란 법은 없습니다. 서울에서도 볼 수 있죠. 바로 을지로에 위치한 '메리상회'입니다. 이곳에 가면 버팔로 무리를 구경하러 갔던 사람들처럼 2달러 정도의 이득을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공간이 아니라 기분을 팝니다
메리상회를 한마디로 혹은 기존의 방식으로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업종으로 보자면 편의점, 분식점, 카페, 비스트로가 혼합되어 있는 곳이죠. 그렇다고 전형적인 편의점, 분식점, 카페, 비스트로를 한 공간에 모아 놓은 것은 아닙니다. 각각에는 명확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편의점은 힙함을 더해 '감성 편의점'으로, 분식점은 급을 올려 '프리미엄 분식점'으로, 카페는 가격파괴를 추구하며 '초저가 디저트 카페'로, 비스트로는 가벼움에 방점을 둬서 '잔술 비스트로'로 스스로를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를 혼합해 놓으니 정체성이 흐려집니다. 보통은 여러 업종이 한 곳에 모여 있을 경우 복합문화공간으로 부를 수도 있는데, 이곳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부르기도 애매합니다.
이처럼 메리상회의 정체는 모호합니다. 하지만 컨셉을 잡을 줄 몰라서 이것저것 섞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경계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온라인 커머스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이 위기를 겪고 있는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의 존재감을 끌어올리고, 이미 자리잡은 오프라인 비즈니스 업종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죠. 그렇다면 정체를 내려 놓고 감성 편의점, 프리미엄 분식점, 초저가 디저트 카페, 잔술 비스트로를 더해 놓으면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요? 고객 경험이 새로워집니다. 메리상회는 정체가 불분명한 대신 가야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이곳에선 지갑과 마음에 여유와 위트가 생기기 때문이죠.
우선 가격표가 착합니다. 아메리카노 2,500원, 호텔 오렌지에이드 1,900원 등 보통의 카페에서는 보기 어려운 가격대입니다. 술은 가격 차이가 더 현저합니다. 잔술 화이트와인 2,500원, 호텔빠 위스키 테이스팅 샘플러 12,900원 등 일반 비스트로에서는 구경해본 적이 없는 가격대죠. 분식도 가격 경쟁력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꽃게로제 요괴라면 9,900원, 신사동 참문어 요괴냉초면 9,900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죠. 라면으로 생각하면 비싼듯 보이지만 토핑으로 들어가는 푸짐한 꽃게, 문어 등을 고려하면 싼 편입니다. 토핑이 중요하지 않을 경우 셀프 레스토랑을 이용하면 2,000원에 라면 한 그릇을 먹을 수도 있죠. F&B 코너에서 무엇을 먹건 보통의 전문 매장 대비 2달러 이상의 이득을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가성비에다가 가심비까지 있으니 메리상회에 가면 기분이 한결 밝아집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이곳에 가야할 이유가 있죠. 하지만 하지만 반대로 놓고 보면 매장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게 아닐까요? 다른 곳보다 가격이 싸거나 진열 공간 효율이 떨어지면 수익성에 타격을 입게 될 테니까요. 여기서 메리 상회는 버팔로 이야기의 뗏목 장수와 같은 지혜를 발휘합니다.
#1. 마진 대신 스폰서십
메리상회는 가격과 재미로 고객의 발길을 이끌어 놓고, 고객의 눈길을 수익화합니다. F&B 코너에서 마진을 어느 정도 포기한 대신 매장에서 광고를 하면서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습니다. 광고라고 해서 배너 등에 단순 노출을 하는 광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대를 통째로 내어주죠. 그렇기 때문에 편의점 코너에서 일부 영역은 일반적인 리테일과 비즈니스 모델이 다릅니다. 물건을 사입한 후 마진을 남겨 팔거나 위탁 운영해서 판매한 후 수수료를 챙기지 않고 기업에게 스폰서비를 받습니다. 스폰서십을 한 기업들의 제품이 판매되면 그 수익을 고스란히 스폰서십 기업에게로 돌려주는 방식이죠.
메리상회의 접근은 오프라인 매장을 미디어화하는 시도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하나의 미디어로 보고 거기에 광고를 노출하는 거죠. 그렇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메리 상회에 광고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노출로만 따지면 온라인 쇼핑몰이나 SNS에 광고하는 편이 더 나을 겁니다. 노출당 단가도 더 쌀 테고요. 그러나 '즉시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프라인 매장은 경쟁력을 갖습니다. 제품을 보고 마음에 들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거죠. 그럼에도 요즘에는 온라인 배송이 워낙 빨라 즉시성의 매력도도 상대적으로 감소합니다. 그래서 메리 상회는 미디어로써 오프라인 매장이 갖는 또 다른 경쟁력을 부각시킵니다.
메리상회에서는 제품을 노출시키거나 판매하는 것을 너머 경험하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합니다. 어떻게냐고요? F&B와 관련한 기업의 제품 혹은 간편식일 경우 그 제품으로 기존에 없던 레시피를 만들어서 새로운 메뉴로 내놓는 거죠. 예를 들면 미쿡감자 트러플 크림 스프(3,900원), 미쿡감자 명란 그라탕(6,900원), 미쿡감자 크림파스타(9,900원) 등 미쿡감자 시리즈가 있는데, 이는 '미국감자협회'와 콜라보로 만든 메뉴입니다. 또한 산수골목장 골돼카츠 요괴냉초면(9,900원)이라는 길면서도 특이한 이름의 요리는 무항생제 돼지로 만든 '산수골목장'의 돈까스를 가지고 선보인 메뉴죠.
미쿡감자 시리즈 ©고잉메리
산수골목장 골돼카츠 요괴냉초면 ⓒ시티호퍼스
#3. 매장 밖을 매장으로
메리상회의 파격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시도에서 볼 수 있듯, 이곳은 미디어로써 오프라인 매장의 쓸모를 높이는 곳입니다. 이 정도로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대해 고민하는 곳이 오프라인 매장의 약점을 모를 리 없죠. 오프라인 매장은 즉시성이나 현장성이 있는 대신에 확장성이 떨어집니다. 공간에 방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데, 매장 면적과 운영 시간에 따라 모객할 수 있는 고객의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메리 상회는 매장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과감하게 매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첫번째 외출은 2020년 7월에 시작했는데, 목적지는 호텔이었습니다. 숙박 예약 플랫폼 '야놀자'와 협업하여 메리 상회의 PB 상품이라고 볼 수 있는 '요괴라면' 5종, 그리고 메리 상회에서 판매하는 매실 증류주인 '서울의밤'과 노르웨이에서 인기 있는 스프레드 제품인 '스타부르 고등어 캔' 등을 패키지로 구성했습니다. 야놀자와 제휴된 15개의 특급 호텔을 예약할 때 해당 패키지를 제공하는 식이죠. 호캉스를 트렌디하게 즐기려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 콜라보였죠.
두번째 외출은 2021년 2월에 'GS 25' 편의점으로 했습니다. GS 리테일에서 운영하는 밀키트 브랜드인 '심플리쿡'과 협업해서 혼밥족이 간편하면서도 위트 있게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는 밀키트를 만들었죠. 메리상회의 베스트셀러였던 ‘돼지불백 깍볶누룽밥’과 ‘갑오징어 알뚝밥’, 그리고 요괴라면의 시리즈로 볼 수 있는 ‘로얄똠양꿍 요괴라면’, ‘뿌링콘크림 요괴라면’ 등 4종을 출시했고, 5월에는 '뿌링크림 요괴우동', '해장순두부 요괴라면' 등 2종을 추가로 선보였습니다. 이 밀키트 브랜드에 메리상회와 협업하는 오뚜기 사리나 소스가 함께 들어갑니다.
©고잉메리
©고잉메리
메리상회의 다음 외출이 언제가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요괴라면 말고도 달괴, 우주토피, 결벽요괴 등 더 많은 PB 상품을 출시한 상황이라 매장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더 많아졌죠.
메리상회의 실험은 모험이 됩니다
메리상회의 간판을 자세히 보면 뒤에 'by 고잉메리'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고잉메리에서 운영하는 메리상회라는 뜻인데, 사실상 메리상회는 고잉메리의 3호점입니다. 종각점으로 시작해 인사동을 거쳐 힙지로라고 불리는 을지로에 입점하면서 을지로스러운 분위기와 레트로함을 살리고자 이름을 메리상회로 로컬화한 거죠. 3번째 지점이기에 가장 진화한 버전의 매장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메리상회가 지역성을 반영한 이름이라면 고잉메리는 어떤 의미에서 붙인 이름일까요?
ⓒ 1997 EIICHIRO ODA
고잉메리는 고잉메리호처럼 쉬운 길을 마다하는 듯 보입니다. 기존의 업종 구분처럼 편의점이면 편의점, 카페면 카페 등을 했다면 더 수월하게 운영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는 대신 새로운 방식을 택했으니까요. 이처럼 고잉메리가 험난한 길을 택하는 건 오프라인 비즈니스 수난의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에도 미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죠. 그리고 그 꿈을 향한 여정은 고잉메리의 방향성과 가능성을 믿고 함께 하는 스폰서 기업들을 덕분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루피와 함께 탔던 밀짚모자 일당이 있었기에 고잉메리호가 신나는 모험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고잉메리의 실험이 어떻게 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잉메리가 단순히 고잉메리호에서 이름만 따온 것이 아니라 고잉메리호에 탑승했던 루피와 밀짚모자 일당의 정신과 에너지까지 닮은 거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깁니다. 밀짚모자 일당 중 한명이 했던 말처럼요.
"우리가 탄 고잉메리호는 넘지 못했던 바다가 없다구!"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