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원짜리 책을 200만 원에 파는 서점

골즈보로 북스

2023.06.01

런던에 있는 ‘골즈보로 북스’는 서명받은 초판을 팔아요. 컨셉은 분명했어요. 하지만 1999년에 오픈한 상대적으로 젊은 서점이 고서적 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주목을 받는 계기가 생겼어요. 


골즈보로 북스의 주인은 로버트 갤브레이스가 쓴 《쿠쿠스 콜링》이라는 소설의 높은 완성도를 눈여겨봤고,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250권의 책에 저자 사인을 받아서 보내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했죠.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소설은 《해리 포터》를 쓴 J.K. 롤링이 별도의 필명으로 쓴 소설로 그녀가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 스토리만으로 승부하기 위해 쓴 책이었어요.


진짜 저자가 드러나자 초판 서명본은 가치가 100배 이상 뛰어 1,750파운드(약 263만 원) 정도에 거래가 이루어졌어요. 초판 서명본을 250권이나 보유하고 있으니 대박났을까요? 아니에요. 골즈보로 북스는 폭등하는 시세를 따르지 않고 원래 가격으로 팔았어요.  


100배의 수익을 포기했으니 자연스럽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어요. 골즈보로 북스는 이 기회를 큐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던 핵심 경쟁력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은 거예요.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요. 서명이 없어도, 초판이 아니어도 책을 큐레이션을 할 수 있는데, 어떤 연유로 유독 저자의 서명과 초판에 초점을 맞추는 걸까요?


골즈보로 북스 미리보기

 서명받은 초판을 파는 책방

 #1. 미래가 있는 책을 팝니다

 #2. 어디에도 없는 책을 팝니다

 #3. 컨셉을 살리는 책을 팝니다

 시간과 함께 자라나는 책방




배에 술을 태우고 세계일주를 합니다. 수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조하려는 목적으로요. 노르웨이의 전통주 아쿠아비트(Aquavit)를 만드는 브랜드 리니(Linie)는 4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35개국을 떠돌아 다니며 셰리통에 채운 술을 숙성시켜요.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온 전통의 숙성방법을 고수하는 거예요. 주조 기술이 발달하여 더 저렴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술을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리니 아쿠아비트의 제조 방식은 창의적 기획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의 산물이에요. 시작의 역사는 18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노르웨이의 어느 무역상이 아쿠아비트를 팔기 위해 인도네시아까지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어요. 팔지 못한 술을 버릴 수는 없어 사람들과 나눠 마셨는데, 이상하게도 아쿠아비트의 맛이 향상된 것을 발견했죠. 양조장에서 여러 시도를 하며 맛을 재현해봤으나 비슷한 맛이 나지 않았어요. 결국 비법을 찾을 수 없어 배를 다시 띄워 제조하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에요.


아쿠아비트는 세계일주를 하고 나면 더 맛있어져요. 북유럽에서 출발해 적도를 두 번 지나는 동안 온도의 변화에 따라 숙성되고 파도의 리듬에 따라 풍미가 생기거든요. 게다가 바다를 가로지른 시기에 따라 온도와 파도에 차이가 있어 술맛이 미묘하게 달라져요. 품질 관리가 어렵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일한 맛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면 서로 다른 배를 타고 각자의 길을 떠난 술들은 자연스레 한정판이 돼요. 한때 리니 아쿠아비트는 이 숙성 방법을 비밀에 부쳤으나 이제는 모든 라벨에 항해 일지를 표기해 스토리로 풀어내요. 알코올뿐만 아니라 스토리까지 담아 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함이에요.


리니 아쿠아비트는 보통의 아쿠아비트보다 가격이 높아요. 스토리가 알싸한 전통의 방식을 고수한 덕분이에요. 노르웨이 아쿠아비트 주요 브랜드들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보통 용량인 0.7리터의 경우 뢰이텐(Løiten)이 약 6만 9,000원, 길드(Gilde)가 약 6만 2,000원, 아틀룽스타드(Atlungstad)가 약 6만 8,000원으로 고만고만해요. 반면 리니 아쿠아비트는 약 7만 4,000원으로 주요 브랜드들의 평균 대비 12%가량 높아요. 제조 원가의 요소가 반영된 부분도 있겠지만 스토리텔링의 요소가 끌어올린 가격이라 볼 수 있어요. 제조 원가만 고려해 가격을 올렸다면 고객들의 지불 가치 수준을 높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죠.


리니 아쿠아비트의 사례처럼 약간의 스토리를 추가하는 것으로도 제품의 가치가 달라져요. 그런데 제품 자체가 스토리인 책은 예외인 듯 보여요. 같은 장르의 책이라면 가격대가 정해져 있어요. 스토리의 흥미진진함, 저자의 유명세, 제작 과정의 비화 등은 가격에 반영되지 않죠. 장르의 가격대를 뛰어 넘는 값을 받을 수 있는 책은 두꺼운 책뿐이에요. 책이니까 그래야만 하는 걸까요? 런던의 ‘골즈보로 북스(Goldsboro Books)’ 서점은 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줘요.



서명받은 초판을 파는 책방

런던을 더 낭만적으로 만드는 건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책방들이에요.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불리는 돈트 북스(Daunt Books), 영국 왕실에 도서를 납품하는 해차드(Hatchards), 개인 서재 컨설팅인 비스포크 서재 서비스로 유명한 헤이우드 힐(Heywood Hill), 20세기 여류 작가들의 책을 판매하는 페르세포네 북스(Persephone Books), 만화 장르에만 집중하는 고쉬(Gosh), 요리 관련 책 전문 서점인 북스 포 쿡스(Books for Cooks 등 저마다의 뚜렷한 개성을 분위기 있게 드러내죠.


런던 거리를 런던답게 만드는 서점들 중에서도 특히 더 호기심이 생기는 곳이 골즈보로 북스예요. 고서적 거리인 세실 코트(Cecil Court)에 위치한 이 작은 책방은 컨셉이 분명해요. 서명받은 초판을 팔아요. 저자의 사인을 스캔해 인쇄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서명한 책들이에요. 저자의 타계 등으로 서명을 받을 수 없는 경우는 초판을 구해서 매대에 진열해 두고요.


컨셉은 분명했어요. 하지만 1999년에 오픈한 상대적으로 젊은 서점이 고서적 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서점을 연지 14년 만에 골즈보로 북스가 주목을 받는 계기가 생겼어요. 골즈보로 북스의 주인은 로버트 갤브레이스(Robert Galbraith)가 쓴 《쿠쿠스 콜링(The Cuckoo’s Calling)》이라는 소설의 높은 완성도를 눈여겨봤고,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250권의 책에 저자 사인을 받아서 보내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했죠.



골즈보로 북스 매장 전경입니다. 런던의 고서적 거리인 세실 코트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그런데 추리 소설인 《쿠쿠스 콜링》은 스토리에 반전이 있는 건 물론이고, 소설책 자체에도 반전이 있었어요. 이 소설은 《해리 포터(Harry Potter)》를 쓴 J.K. 롤링(J.K. Rowling)이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로 그녀가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 스토리만으로 승부하기 위해 쓴 책이었죠. 책의 내용은 바뀐 게 없지만, 진짜 저자가 드러나자 16.99파운드(약 2만 5,000원)였던 초판 서명본은 가치가 100배 이상 뛰어 1,750파운드(약 263만 원, 현재 2,700파운드) 정도에 거래가 이루어졌어요.


대박이 났을 거라 짐작할 수 있어요. 골즈보로 북스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쿠쿠스 콜링》의 초판 서명본을 250권이나 보유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에 또 한 번의 반전이 있어요. 골즈보로 북스는 폭등하는 시세를 따르지 않고, 《쿠쿠스 콜링》 초판 서명본을 서점 및 직원 소장용으로 4권만 남겨둔 채 처음 가격 그대로인 16.99파운드에 팔았어요. 진짜 저자가 알려질 당시 재고 수량이 100권만 있었다고 가정해도 2억 6,000만 원 상당을 포기한 셈이에요.


100배의 수익을 포기했으니 자연스럽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어요. 골즈보로 북스는 이 기회를 수익보다는 명성을 얻는 데 활용했죠. 책을 선별하는 안목을 인정받으며, 큐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던 핵심 경쟁력을 독자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은 거예요.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요. 서명이 없어도, 초판이 아니어도 책을 큐레이션하는 데 지장이 없을텐데 골즈보로 북스는 어떤 연유로 유독 저자의 서명과 초판에 초점을 맞추는 걸까요?



#1. 미래가 있는 책을 팝니다

같은 책이라면 내용이 동일해요. 그래서 하나의 책은 하나의 가치를 가지죠. 하지만 고객층을 구분해보면 같은 책도 가치가 달라질 수 있어요. 타깃 고객을 애서가로 뭉뚱그리지 않고, 수집가적 성향을 가진 애서가로 세분화하면 책값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생겨요. 그들은 책의 현재 가치보다 미래 가치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에요. 물론 오늘 출간한 책이 시간이 지난다고 가치가 높아지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신간의 자격을 잃게 되어 가격이 떨어지는 게 보통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속성을 활용하면 책에도 프리미엄을 붙일 수 있어요.


책은 형태적으로 보면 글자의 집합이지만, 속성적으로 보면 생각의 표현이에요. 이러한 책의 속성이 문학이라는 장르와 만나면 책은 책이 아니라 작품으로 바뀌어요. 창작의 도구가 글자일 뿐, 그림이나 사진 등과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에 속하는 거예요. 책을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면 가격에 대한 틀이 깨져요. 예술 작품의 가격을 제작 원가나 작품 크기 등으로 매기지 않고 예술적 가치와 작품의 인기에 따라 결정하듯이, 문학 작품도 제작 원가나 고객 기대 수준 등을 바탕으로 정해진 가격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시간이 흘러 예술적 가치가 높아지면 책의 가격도 덩달아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문학 장르의 책이 현실적으로 예술 작품의 값어치를 갖기는 어려워요. 여느 예술 작품들처럼 유일성 혹은 희소성이 있어야 하는데, 과거처럼 필사하여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인쇄하여 찍어내면서 유일성은 물론 희소성도 사라졌죠. 복제가 쉽고 진품과 가품에 대한 구분이 없으므로, 저자(Author)의 권한(Authority)은 분명하지만 작품의 원본(Originality)은 모호해졌어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골즈보로 북스는 초판본에 서명을 받아서 판매하며 문학 작품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요.


책의 초판은 그 자체로 한정판이자 작가 정신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요. 출판사는 손익분기점을 넘으면서 판매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는 수량을 초판으로 발행한 후 판매 추이를 지켜보며 증쇄 여부를 결정하는데요. 그래서 초판이 나온 시점에서는 책이 더 만들어질지 알 수 없어요. 추가 제작할만큼 충분한 수요가 없다면 초판은 자연스레 한정판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반대로 독자들의 반응이 있어 추가로 쇄를 늘린다 하더라도 초판은 한정판으로서의 의미를 잃지 않아요. 작가가 판매량과 관계없이 작품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세상에 첫선을 보인 오리지널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에요. 여기에 작가 서명이 있다면 희소성과 함께 오리지널로서 가치가 높아지죠.


《쿠쿠스 콜링》도 J.K. 롤링이 진짜 저자로 밝혀진 후 서명이 없는 초판본이 1,000파운드(약 150만 원)에 거래됐어요. 초판 서명본은 1,750파운드(약 263만 원)까지 가격이 뛰었고요. 《쿠쿠스 콜링》과 같은 사례는 드물지만, 여전히 문학 작품으로서 책의 가치가 높아지는 사례는 골즈보로 북스의 책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아가사 크리스티의 《They Do It with Mirrors》는 저자의 타계로 서명 없는 초판을 판매합니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존 맥그리거(Jon McGregor)의 《Reservoir 13》은 2017년 맨부커상(Man Booker Prize) 후보에 오르고 각종 매체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어요. 초판 서명본의 가치가 24.99파운드(약 3만 7,000원)에서 129.99파운드(약 20만 원)로 5배 이상 높아졌죠. 메간 헌터(Megan Hunter)가 쓴 《The End We Start From》의 초판 서명본은 9.99파운드(약 1만 5,000원)였는데, 영화화되면서 책값이 3.5배가량 뛰어 34.99파운드(약 5만 2,000원)에 판매 됐어요. 또한 《The Other Hoffman Sister》는 2015년에 각종 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던 벤 퍼거슨(Ben Fergusson)이 쓴 세 번째 책으로, 이번 책 출간 이후 유명세가 더해지며 14.99파운드(약 2만 2,000원)였던 초판 서명본의 가격이 2배인 30파운드(약 4만 5,000원)까지 올랐어요. 모두 2017년 5월부터 2018년 5월까지 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에요.



#2. 어디에도 없는 책을 팝니다

초판에 서명을 받는 것으로도 문학 작품을 어느 정도 예술 작품화시킬 수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희소성과 오리지널리티가 희석될 가능성이 있죠. 누군가가 초판에 작가의 서명을 받으면 초판 서명본이 늘어나니까요. 그래서 골즈보로 북스는 문학 작품의 수집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골즈보로 북스에서만 판매하는 독점(Exclusive) 에디션을 출판사와 협업하여 제작해요.



《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으로 유명한 이정명 작가가 《별을 스치는 바람》 영문판에 저자 서명을 한 책입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한국 작가의 책 중 최초로 골즈보로 북스에 입점했습니다. ©시티호퍼스



독점 에디션은 예술 작품의 표기 방식을 차용하여 한정판이라는 것을 명시합니다. ©시티호퍼스


독점 에디션은 초판에 서명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어요. 하지만 희소성과 오리지널리티를 강화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어요. 우선 독점 에디션은 예술 작품의 표기 방식을 차용해요. 독점 에디션으로 제작한 부수를 분모에 명시해두고, 해당 책이 그 중에 몇 번째인지를 분자에 표시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17/500’이라고 적혀 있으면, 독점 에디션 500권 중에 17번째 책이라는 뜻이에요. 여기에다가 책 디자인도 달리해 독점 에디션의 차별성을 더하죠. 커버를 양장본으로 만들거나 페이지를 넘기는 면에 색깔을 입히는 식으로 포인트를 표현해, 표지를 들춰보지 않아도 차별화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어요.



아다 팔머의 책처럼 시리즈물의 경우, 시리즈별로 동일한 번째의 책끼리 함께 진열합니다. 예를 들어 시리즈의 1편이 500권의 한정판 중 123번째 서명본이었다면 2편, 3편도 123번째 서명본을 판매하는 식입니다. ©시티호퍼스


예술 작품 표기 방식의 도입과 디자인의 변형을 통해 저자가 인정하는 오리지널 작품의 수를 한정하니 문학 작품의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져요. 그래서 독점 에디션은 책값도 달라요. 초판에 서명을 받은 책들은 저자의 유명세, 세간의 평가, 작품의 영화화 등 외부 이슈에 의해서 책값이 달라지긴 하지만, 출간 당시의 초기 가격은 일반 서점에서 서명없이 판매하는 책들과 동일해요. 반면 독점 에디션은 초기 가격부터 일반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들보다 높죠.



독점 에디션의 경우, 양장본으로 만들거나 페이지를 넘기는 면에 색깔을 입히는 방식 등으로 포인트를 더해 일반 버전의 책과 차별화합니다. ©시티호퍼스


출간 시점의 가격을 영국의 대표 서점인 포일스(Foyles)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보여요. 존 맥그리거의 《Reservoir 13》도, 제니퍼 지납 주카더(Jennifer Zeynab Joukhadar)의 《The Map of Salt and Stars》도, 노엘 오라일리(Noel O’Reilly)의 《Wrecker》도 포일스에서 14.99파운드(약 2만 2,000원)에 판매할 때 골즈보로 북스에서는 24.99파운드(약 3만 7,000원)에 판매했어요. 


이처럼 골즈보로 북스의 독점 에디션 가격은 일반 서점에서 파는 보통의 초판 대비 10파운드(약 1만 5,000원)가량 높아요. 세상에 첫선을 보이자마자 60%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는 셈이에요. 시간이 흘러 외부 이슈가 생긴다면 독점 에디션은 보통의 초판 서명본보다 가치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죠.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독점 에디션을 만들면 책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어요. 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무턱대고 환영할 만한 시도는 아니에요. 한정판이라 제작 부수가 보통은 500권 내외이고 많아야 1,000권인데, 이럴 경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어 제작 단가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같은 책을 이중으로 제작하고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출판사의 협조를 구하기가 어려워 2005년부터 2013년까지는 대략 2년에 1권 꼴로만 독점 에디션을 출간했어요. 존재감 없이 지지부진하던 독점 에디션 제작에 탄력이 생긴 건 2013년에 《쿠쿠스 콜링》으로 골즈보로 북스가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예요. 골즈보로 북스의 큐레이션이 인기를 끌자 출판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골즈보로 북스와의 제휴에 나선 거예요. 2014년에 9권으로 제작 권수가 급증한 후 2022년에는 103권까지 늘어났어요. 골즈보로 북스의 인기로 인해 독점 에디션이 증가하고, 독점 에디션 덕분에 골즈보로 북스의 인기가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죠.



#3. 컨셉을 살리는 책을 팝니다

저자의 서명을 받을 초판을 선정한다는 건, 책을 큐레이션한다는 뜻이에요. 이미 책방의 컨셉 자체에 큐레이션 기능이 포함되어 있지만, 골즈보로 북스는 그중에서도 매달 한 권의 책을 ‘이달의 책(Book of the month)’으로 선정해 추천해요. 이달의 책들 중 다수가 선정 이후 세간의 호평을 받거나, 각종 문학상 후보에 오르거나, 영화화되었을만큼 골즈보로 북스의 선구안은 뛰어나죠. 게다가 대부분의 이달의 책은 골즈보로 북스가 독점 에디션으로 발간한 책이라 미래 가치도 높아요.


골즈보로 북스는 이달의 책을 추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매를 하도록 유도해요. 골즈보로 북스는 혜택이 파격적인 무료 멤버십을 운영하는데, 이달의 책을 구매한 고객들만 가입할 수 있도록 자격 조건을 제한했어요. 멤버십 이름도 ‘이달의 책 클럽(Book of the month club)’. 조건부의 멤버십 가입 정책이 상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혜택이 고객 친화적이에요.



골즈보로 북스는 매달 한 권의 책을 ‘이달의 책’으로 선정해 추천합니다. 대부분의 이달의 책은 골즈보로 북스가 출판사와 협업하여 독점 에디션이자 한정판으로 제작합니다. ©시티호퍼스


이달의 책을 구매하며 멤버십에 가입하면 이달의 책과 별개의 책 한 권을 공짜로 얹어줘요. 재고떨이용 책이 아니라 골즈보로 북스에서만 판매하는 독점 에디션이죠. 미래에 어떤 계기로 얼마나 가치가 뛸지 모르는 로또같은 책을 무료로 주는 것도 모자라 가격을 10% 할인해주죠. 가격 할인은 향후에 골즈보로 북스에서 구매할 모든 책에도 해당돼요.


금전적인 혜택뿐만 아니라 구매의 우선권도 제공해요. 골즈보로 북스에서는 종종 특별 한정판 등을 판매하는데, 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기 전에 멤버십 회원들이 미리 살 수 있도록 그들에게만 먼저 알려주는 거예요. 이달의 책을 구매하려고 했던 고객들은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구매를 망설였던 고객들이라면 지갑을 열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달의 책을 몰랐던 고객들의 경우에는 이달의 책에 관심을 가질 법한 혜택이에요.


골즈보로 북스가 출판사로부터 정가의 50%에 책을 받아온다고 가정해도 고객들이 책 한 권을 살 때 두 권을 주고 추가로 10% 할인을 해주면 손해보는 장사예요. 골즈보로 북스가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한 자선 단체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독점 에디션이 주를 이루는 이달의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구매로 이어질수록, 골즈보로 북스의 인기와 독점 에디션이 만들어낸 선순환 구조를 더 크고 견고하게 만들 수 있어서예요.


2014년에 독점 에디션이 눈에 띄게 늘어날 때 독점 에디션이면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된 책의 한정판 권수는 350권 정도였어요. 반면 2017년에 이달의 책으로 추천하는 독점 에디션의 한정판 권수는 750권 내외로, 많게는 1,000권까지 늘어났죠. 골즈보로 북스에서만 독점적으로 판매하더라도 750권 정도는 팔 수 있을만큼 고객 기반이 넓어졌다는 뜻이에요. 


또한 수요층이 두터워지니 다음 달에 신간으로 나올 예정이면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될 독점 에디션의 경우 출판사와 출간 시기를 조정하는 것도 가능해졌어요. 예를 들어 포일스 등의 일반 서점에서의 신간 출시일이 익월 중순 경이면, 다음 달에 이달의 책으로 선정될 동일한 책의 골즈보로 북스 독점 에디션은 익월 1일에 출시해 이달의 책 독자들이 남들보다 먼저 신간을 볼 수 있도록 했어요.


독점 에디션의 판매 부수가 늘어날수록 출판사와 제휴하기가 수월해져요. 또한 독점 에디션이 많아질수록 골즈보로 북스는 차별적 경쟁력을 갖고요. ‘이달의 책 클럽 멤버십’은 이번 달의 ‘이달의 책’의 판매를 늘릴 뿐만 아니라 다음 달의 ‘이달의 책’ 고객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자양분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골즈보로 북스는 고객 친화적 혜택을 통해 이달의 책 클럽 멤버십을 키워가고 있죠.



시간과 함께 자라나는 책방

골즈보로 북스는 30평 정도의 작은 책방이지만, 2022년 기준, 매출이 300만 파운드(약 45억 원)에 이를 정도로 실속 있어요. 2010년에 달성한 60만 파운드(약 9억 원) 대비 5배 이상 성장한 수치예요. 서점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더 주목할만한 성과죠.


이 작지만 튼튼한 책방의 책장을 둘러보다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매장에 진열한 책에 하나같이 투명한 비닐 커버를 씌워 놓은 거예요. 서점의 브랜딩을 담으려는 목적은 아닌 것으로 보여요. 그렇다고 하기엔 커버에서 브랜딩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요. 또한 책을 판매할 때 정성을 더하고자 했다고 보기도 어려워요. 판매 시점에 커버를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책을 비닐 커버로 포장해두었거든요.



골즈보로 북스의 책장에는 100파운드(약 15만 원) 대의 가격표가 붙은 책들이 수두룩합니다. 책을 보호하기 위해 비닐로 싸서 보관할 뿐만 아니라 가격대가 높은 책들은 책장 안에 보관합니다. ©시티호퍼스


보통의 경우와 달리 골즈보로 북스에서는 책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비닐 커버로 책을 싸서 보호해요. 심지어 책장에 진열하지 않고 재고로 가지고 있는 2만 5,000권의 모든 책을 비닐 커버로 씌워놓았을 정도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책의 비닐 커버 위에 붙어 있는 스티커에 적힌 가격을 보면 책을 비닐 커버로 보호하는 목적을 짐작할 수 있어요.


독점 에디션으로 판매하는 이달의 책을 비롯해 1~2년 내 발간된 신간들의 가격은 일반 서점에서 파는 동일한 책의 금액과 차이가 나지만, 그 차이가 크진 않아요. 가격이 2배 뛰었다 하더라도 15~25파운드(약 2만 3,000~3만 8,000원) 수준이죠.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른 책들은 가격의 차이가 급격히 커져요. 그래서 골즈보로 북스의 책장에는 100파운드(약 15만 원)대의 가격이 붙은 책들이 수두룩하고, 수백 파운드의 책들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으며, 1,000파운드(약 150만 원)대의 책들도 심심치 않게 보여요. 참고로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Moonraker》의 경우 6,500파운드(약 975만 원)의 가격이 붙어있어요. 팔리지 않은 책들이 애물단지가 아니라 보물단지이니 책을 비닐 커버로 싸서 고이 모셔두는 거예요.



이언 플레밍의 《Moonraker》는 6,500파운드(약 975만 원)의 가격이 붙어있습니다. 이처럼 1,000파운드(약 150만 원) 대의 책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책이 팔리면 매출이 발생해 현재의 가치가 커지고, 안 팔리면 무형자산 성격의 유형자산으로 잡혀 미래의 가치가 높아져요. 차별적 컨셉을 가지고 비즈니스 모델을 견고하게 설계한 덕분에 골즈보로 북스는 오늘도 시간과 함께 자라나고 있어요.




Reference

 골즈보로 북스 공식 홈페이지

 리니 아쿠아비트 공식 홈페이지

 아르쿠스 공식 홈페이지

 술 취한 식물학자(에이미 스튜어트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Bookseller who bought 250 signed copies of JK Rowling’s crime novel before she was unmasked as author refuses to profit, Daily Mail

 Goldsboro Books set for “record-breaking” year, The Bookseller

 Goldsboro Books breaks £1m turnover on 18th birthday, The Bookseller

 Linie aquavit, the Norwegian drink that gets its unique taste from crossing the equator, Lords of the Dr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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