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의 경계가 무너지자, 누구나 모이는 공간이 탄생한다

굿 디자인 어워드 2024 #2. 경계 없는 커뮤니티

2024.10.29





’굿 디자인 어워드’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제적 권위의 디자인 공모전이에요. 1957년부터 60년 넘는 시간 동안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사회에 알리고 있죠. 일본산업디자인진흥회가 주관하는 이 어워드에서는 단순히 사물의 아름다움이나 디자인의 우열을 겨루지 않아요. 디자인이 어떻게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지, 사람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죠.


특히 올해 심사의 테마는 ‘용감한 태도, 유기적 디자인(Brave Attitude, Organic Design)’이었어요. 그 해의 심사 테마는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데요. 디자인의 역할은 이제 ‘전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것’에서 ‘있던 것을 개선하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이 진화의 과정에서 용기 있고 유기적인 사고 방식 및 시스템은 다양한 디자인이 탄생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요.


2024년 굿 디자인 어워드에서는 총 5,773건의 심사 대상 중 1,579건이 수상했어요. 그 중에서도 시티호퍼스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고, 맥락을 고려하는 디자인으로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수상작들을 소개하고자 해요. 오늘은 장애의 유무나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경계 없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공간들을 살펴봐요.


굿 디자인 어워드 2024 #2. 경계 없는 커뮤니티 미리보기

 #1. 자극은 줄이고 재미는 키운다, 모두를 위한 놀이터 - 탄력성 놀이터 프로젝트

 #2. ‘열린 보안’으로 장애인과 보호자, 동네 주민을 연결하다 - 하치쿠리 하우스

 #3. ‘길의 끝’을 건물 안으로 들여와 세대 간 구분을 없애다 - 후카가와 엔미치

 커뮤니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만들다




‘아이들이 뛰어 놀아도 되는 미술관’


조용하게 미술 작품들을 관람해야 할 것 같은 미술관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아도 된다니 어떤 사연일까요? 2017년,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시에 있는 ‘도야마 현립 근대 미술관’은 고상한 미술관이 되기 보다, 활기찬 ‘커뮤니티’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옥상 정원에 예술과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 ‘오노마토페의 옥상’을 마련했죠.


오노마토페의 옥상에는 놀이기구 같기도 하고 예술품 같기도 한 여러 개의 기구가 놓여 있어요 이런 옥상 정원을 만든 가장 중요한 목표는 미술관에서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죠. 미술관을 ‘모두가 섞여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무엇보다 옥상 놀이터는 관람객이 아니어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도야마 현립 근대 미술관은 실제로 여러 세대가 찾아오는 문화 예술 공간이 되었어요. 매일 같이 초등학생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유모차를 끌고 오는 부모 관람객도 많죠.


이 옥상 정원을 개발한 회사는 주식회사 자쿠에츠(JAKUETS Inc.)이 주관하는 ‘플레이 디자인 랩’이에요. 플레이 디자인 랩은 경계 없는 놀이터를 디자인해요. 일례로 장애가 있는 아이와 건강한 아이가 어우러져 놀 수 있는 놀이기구 시리즈 ‘탄력성 놀이터 프로젝트’가 있어요. 이 프로젝트는 이번 2024년 굿 디자인 어워드의 금상을 수상했어요.


2024년 굿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들 중에는 자쿠에츠의 놀이터처럼 장애와 비장애, 아이와 노인 등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어우러지는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공간들이 눈에 띄었어요. 우리 사회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이런 커뮤니티 공간들을 함께 둘러볼까요?


ⓒPLAY DESIGN LAB


ⓒPLAY DESIG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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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극은 줄이고 재미는 키운다, 모두를 위한 놀이터 - 탄력성 놀이터 프로젝트


놀이터는 모든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실어주는 장소예요. 그런데 몸이 아파 놀이터를 맘껏 이용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죠.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 전국에 의료 케어 아동은 약 2만 명이 있어요. 이에 따라 외출이나 여행을 할 수 있는 가족은 17.2%에 그치죠. 뿐만 아니라 병원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들은 기본적으로 ‘안 하는 편이 낫겠지’, ‘가면 안 되겠지’ 식의 과잉 걱정을 품고 있죠. 그럴수록 아이들은 추억을 쌓을 기회를 잃고 말아요.


자쿠에츠는 ‘놀고 싶어도 놀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기로 해요. 어떤 신체 조건이든, 어떤 병을 갖고 있든 상관 없이 함께 놀 수 있는 놀이기구를 개발해, 놀이터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자쿠에츠의 목표예요.


이를 위해 자고 있는 아이가 혼자 탈 수 있고, 작은 힘에 대한 반응으로 흔들림을 만드는 등, 아이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죠. 이에 더해 장애가 없는 아이도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로 만들어 장애아 ‘전용’이 되지 않도록 했어요. 장애아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부각하는 대신, 장애 유무에 상관 없이 모든 아이들이 재밌게 놀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지향하고 있죠.


대신 장애아를 ‘배려’한 놀이기구를 만들었죠. 예를 들어 자극을 줄이기 위해 원색 대신 옅은 색을 사용하거나, 촉각적으로 아프다고 느끼는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식이에요.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비단 장애아들만 배려한 건 아니에요. 장애아들이 불편함 없이 놀 수 있도록 디자인한 요소들 덕분에 비장애아들에게도 더 친화적인 놀이터가 될 수 있었어요.


ⓒPLAY DESIGN LAB


구체적으로 이들의 놀이기구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이번 2024년 굿 디자인 어워드의 금상을 받은 놀이기구 시리즈는 ‘탄력성 놀이터(RESILIENCE PLAYGROUND)’ 프로젝트의 3개 기구예요. 트램폴린 ‘유라기(YURAGI)’, 그네 ‘코모리(KOMORI)’, 스프링 ‘우카비(UKABI)’로 이루어져 있죠. 이 시리즈는 지역 의료 전문의 오렌지 홈 케어 클리닉의 대표 코타니 히로유키의 감수로 완성되었어요.


왜 프로젝트 이름이 ‘탄력성’일까요? 코타니는 탄력성이란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도 그냥 두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이미지죠. 나뭇잎을 두고 ‘가여워라, 잡아줘야겠어’라고 생각하면 과잉 보호이지만, ‘괜찮아,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믿어주면 그게 바로 탄력성이에요.


트램폴린 유라기는 마치 하얀색 우주선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요. 검은 그물망으로 되어 있는 기존 트램폴린과는 다른 모양새예요. 기존 트램폴린은 건강한 아이와 제대로 서지 못하는 아이가 함께 놀기 어려워요. 장애가 없는 아이가 트램폴린 위에서 뛰면 누워 있을 수 밖에 없는 아이가 점점 트램폴린의 중심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어요. 다른 아이들의 점프에 따라 타의적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다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트램폴린 위에서 뛰는 아이들에게 밟힐 수 있는 위험이 있죠.


유라기는 이런 문제점을 보완한 도넛형의 트램폴린이에요. 도넛의 중심이 바깥 부분보다 높이가 높아서 다른 아이들이 뛰어 놀아도 누워 있는 아이가 트램폴린의 중심으로 모이지 않아요. 게다가 높은 부분에서 다른 아이가 뛰어 놀면 그 흔들림이 누워 있는 아이에게도 전해져 트램폴린에서 통통 뛰는 기분을 느낄 수 있죠. 전체적인 트램폴린의 높이는 낮게 설계해 어른이 즉각적으로 케어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도 특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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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네 코모리는 동그란 기둥 가운데 원형의 흔들 의자가 있는 그네예요. 아이들은 원형 의자 속에 완전히 누울 수도 있고, 걸터앉을 수도 있죠. 이렇게 그네 의자를 동그란 동굴처럼 만든 이유는 가능한 한 시야를 좁힌 거예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그네의 흔들림뿐 아니라 소리나 경치의 큰 변화 등 자극에 과민하게 반응할 수 있죠. 그래서 ‘저자극형 그네’를 만든 거예요. 소극적인 아이라면 코모리의 동굴 속에 들어가 공상을 하다가, 나긋하게 흔들리는 코모리와 친해질 수도 있어요. 그러면 다음 놀이기구도 시도할 마음이 생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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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스프링 우카비는 ‘타는’ 행위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설계됐어요. 기존 놀이터의 스프링은 보통 말 모양으로, 말 등에 타면서 놀이가 시작되죠. 대신 우카비는 공중에 떠 있는 튜브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요. 앉아서 말을 타기 어렵고 누워 있는 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된 거예요. 아이가 이 튜브에 누우면 온몸을 통해 흔들리는 감각을 느낄 수 있죠. 특히 말 모양 스프링에서는 할 수 없는 안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고, 표면을 두드려 악기를 갖고 놀 듯 놀 수도 있어요.


ⓒPLAY DESIGN LAB


감수를 담당한 코타니 히로유키는 ‘탄력성 놀이터’가 극복해야 하는 당사자는 사실 장애를 가진 아이보다도, 어른들의 선입견이라고 말해요.


“애초에 아이들끼리는 병이나 장애에 대해 신경쓰지 않습니다. 신경 쓰는 건 어른이죠. ‘어른의 선입견을 어떻게 줄일까’가 놀이기구 개발에 가장 중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른들이 지켜보기 쉽거나 케어하기 쉬운 놀이터라면 심리적 벽을 낮출 수 있죠.”

-코타니 히로유키, 플레이 디자인 랩 인터뷰에서


자쿠에츠의 놀이기구를 통해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유치원, 공원, 상업시설 등에 자쿠에츠의 놀이기구가 총 122개 설치됐죠. 뿐만 아니라 행정적으로 어떻게 하면 장애아를 놀이터에 더 수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어요.



#2. ‘열린 보안’으로 장애인과 보호자, 동네 주민을 연결하다 - 하치쿠리 하우스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면 어떤 공간이 떠오르나요? 장애인 복지 시설이나 요양 병원 같은 공간이 기본적일 거예요. 다만 이런 공간들은 다소 폐쇄적일 때가 많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동네 장애인 복지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게 맞을까요?


도쿄 메구로구에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발달 장애인들과 유대감을 만들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어요. 2024년 굿 디자인 어워드에서 금상을 수상한 ‘하치쿠리 하우스’가 그 주인공이에요.


ⓒblue studio


하치쿠리 하우스의 오너인 다케무라 마키는 장애가 있는 딸과 함께 살고 있었어요. 그는 늘 ‘내가 죽었을 때, 뇌성 마비가 있는 내 딸에게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을 남겨 주고 싶다’고 생각해왔죠. 다케무라는 이런 생각을 구현하기 위해 전재산을 투입해 장애인과 보호자를 건물 안에 가두지 않고, 동네 커뮤니티와 인연을 맺도록 하치쿠리 하우스를 설계해요. 덕분에 그의 생각은 다른 장애인과 가족들, 장애인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NPO 법인, 나아가 거리의 사람들에게도 퍼졌어요.


하치쿠리 하우스는 오시마 요시히코가 이끄는 주식회사 블루 스튜디오가 맡았어요. 이들은 하치쿠리 하우스를 만드는 데 초반부터 애를 먹었어요. 복지 시설을 만들 수 있는 토지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땅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죠. 다케무라와 블루 스튜디오는 ‘땅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면서 힘썼죠.


다케무라의 딸이 평소 활동하던 도쿄 메구로구에 땅을 구한 뒤, 디자인을 구체화했어요. 다케무라의 아이디어는 하치쿠리 하우스가 장애인 복지 시설로 보이지 않고,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사는 쉐어하우스’, ‘지역에 녹아드는 커뮤니티 카페’처럼 보이는 거였어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거리낌 없이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요. 


그래서 하치쿠리 하우스는 겉에서 보기에는 마치 복합 문화 시설 같아요. 하치쿠리 하우스는 1층부터 최상층까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서로 다른 층끼리 소리를 내며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죠. 하나의 지붕 아래 쉐어하우스, 장애인 지원 사업소, 커뮤니티 카페가 공존하는 거예요. 이런 문화를 하치쿠리 하우스는 ‘열린 보안’이라고 불러요.


건물의 1층에는 장애인의 지역 생활을 돕기 위한 헬퍼 파견이나, 보호자를 떠나 잠시 머무를 수 있는 단기 스테이 사업을 운영하는 ‘하치쿠리 하우스 NPO 법인’이 자리 잡고 있어요. 그 옆에는 매일 영업하는 커뮤니티 카페가 있죠. 이 곳에서는 주 5일 ‘뜨개질 교실’ 같은 문화 프로그램이 열려서, 등교하지 않는 장애 어린이들의 교육을 도와요. 18세 이하 아이들에게는 1명당 100엔으로 점심을 제공하기도 하죠. 우동이나 빵, 커피를 사 먹을 수 있고, 이 오픈된 공간은 장애인과 보호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요.


ⓒblue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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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면 2층과 3층에 장애가 있는 입주자와 보호자가 살고 있는 쉐어하우스가 나와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입주자를 위해 마룻바닥에는 보이드 슬래브(Void slab)를 사용했죠. 보이드 슬래브는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에 규칙적으로 속이 빈 공간을 두어 층간 소음을 경감하는 데에 효과적인 공법이에요. 차별이나 구분은 없지만, 다름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하기 위한 장치예요.


최상층인 4층에는 입주자, 보호자, 친구나 동료 등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쉐어 리빙 ‘하치쿠리 베이스’가 위치해요. 모두가 모여 밥을 먹거나, 일상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거실이라고 볼 수 있어요. 베이스의 옆에 있는 큰 창으로 나오면 도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옥상 정원이 펼쳐져요. 옥상 테라스에서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텃밭을 가꿀 수도 있어요.


ⓒblue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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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살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도 결국 ‘이 아이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깨달은 뒤예요. 부모로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상 속에, 내가 죽었을 때 딸이 ‘엄마가 어디 갔을까’ 불안해 해도 옆에서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안심이 되죠. 분명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케무라 마키, 블루 스튜디오 인터뷰에서


하치쿠리 하우스의 목적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맺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 유무에 상관 없이 누구나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했죠. 하치쿠리 하우스가 이곳에서 일을 하거나, 방문하거나,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대감을 갖는 문화를 지향하는 이유예요.



#3. ‘길의 끝’을 건물 안으로 들여와 세대 간 구분을 없애다 - 후카가와 엔미치


복지란 무엇일까요?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케어와 서비스의 정신이 복지의 핵심일 거예요. 하지만 많은 복지 시설은 이런 이타심보다 관리의 유용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래서 아동 시설은 아동 시설, 노인 시설은 노인 시설로 분리되어 세대 간 단절을 야기하기도 해요.


사회복지법인 ‘세이큐슈’,  NPO 법인 ‘치키데 소다츠 겐키나코(地域で育つ元気な子·지역에서 자라는 건강한 아이)’, 건축 디자인 사무소 ‘잠자(JAMZA)’는 이런 현상이 ‘다양성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들은 힘을 합쳐 2024년 4월, 도쿄도 고토구에 다세대 보육 시설 ‘후카가와 엔미치(深川えんみち)’를 오픈했어요.


ⓒ深川えんみち


후카가와 엔미치는 도쿄 메트로 몬젠나카마치역에서 5분 거리에 있어요. 잠자는 후카가와 엔미치를 짓기 위해 1976년부터 유치원 등으로 쓰였던 오래된 건물을 리노베이션했어요. 건물이 있는 후카가와 거리는 축제가 열리는 거리이자, 신사로 향하는 골목이자, 상가와 뒷골목의 접합부이자, 시내와 주거 단지의 중간 지점이에요. 후카가와 엔미치는 이 입지를 살려 오가는 사람들이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됐어요. 길거리의 교류와 맞닿아, 여러 세대가 섞이고, 지역의 거점이 되는 것이 후카가와 엔미치의 목표예요.


1층에서는 노인이 하루 일과를 보낼 수 있는 데이 서비스가 이루어져요. 식사와 목욕 등의 기능 훈련은 물론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들이 활력 있는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죠. 2층에는 어린이 보육 클럽과 부모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육아 광장 ‘코로코로’가 위치해 있어요. 보육 클럽에서는 강사와 보호자가 함께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죠. 육아 광장은 보육원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전 아이를 동반한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요.


ⓒ深川えんみち


ⓒ深川えんみち


주로 노인들이 활동을 하는 1층은 모든 연령층이 드나드는 ‘통로’ 역할도 하고 있어요. 이게 바로 후카가와 엔미치의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인데요. 보육 프로그램을 위해 방문한 어린 아이도, 1층의 또 다른 문화 공간인 서점 ‘엔미치 문고’에 방문한 지역 주민도 이 1층을 통해요. 1층에서는 아이들이 노인들에게 ‘다녀왔습니다’ 등의 인사를 하는 소리가 자주 들려요.


그래서 이 1층 통로의 이름을 ‘엔미치(えんみち)’라고 부르고 있어요. ‘길의 끝’이라는 뜻이죠. 길의 끝에서 모든 세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인사를 주고 받고, 인연을 만든다는 의미예요. 이 1층은 통창으로 되어 있어 길거리와 건물 내부가 마치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줘요. 날씨가 좋으면 통창을 활짝 열어두고, 동네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었죠.


ⓒ深川えんみち


ⓒ深川えんみち


특히 서점 ‘엔미치 문고’는 지역 속 다양한 세대의 다양한 주민들이 어우러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일정 요금을 지불해 서점 책꽂이의 한 칸을 빌려서, 자신이 큐레이션 한 책들을 소개할 수 있거든요. 지역 회사원, 출판사 직원 할 것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엔미치 문고에 소개하고 있어요. 물론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도 책꽂이를 빌릴 수 있고요. 총 68개의 서로 다른 책꽂이를 통해 지역민들은 소통하고 있어요.


“복지 시설 안에도 ‘사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는 여러 사람이 있어서, 때로는 부대낀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보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나, 아늑하다는 장점을 누릴 수 있죠.”

-오시기리 도코 NPO 치키데 소다츠 겐키나코 이사장, 일본 재단 미라이의 복지 시설 건축 프로젝트 인터뷰에서


ⓒ深川えんみち



커뮤니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만들다


하치쿠리 하우스에서도, 후카가와 엔미치에서도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획 의도가 있었어요. ‘인연’이라는 단어죠. 건축 디자인 사무소 잠자는 후카가와 엔미치를 두고 ‘길의 중심에서 ‘인연’을 짊어지며 풍부한 거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어요. 하치쿠리 하우스를 설계한 블루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오시마 요시히코도 보도자료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어요.


“우리에겐 ‘인연’이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하치쿠리 하우스의 주인 다케무라 씨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하지 않고 ‘인연’이라고 말합니다. 다케무라 씨는 장애가 있는 딸과의 소중한 만남도 ‘인연’이라고 말하죠. 인연이라는 감각은, 태어났다는 ‘계기’에 따뜻하게 웃어주는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치쿠리 하우스의 디자인은 미래를 바라보는 인연을 키워줍니다.”

-오시마 요시히코, 공식 보도자료에서


굿 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들은 하치쿠리 하우스에 대해 ‘장애인이 시설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어울리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덧붙였어요. 우리는 지금껏 장애인과 비장애인, 아이와 노인이라는 경계에 갇혀 아주 기본적인 커뮤니티의 기능을 잃어왔는지도 몰라요. 어떤 구분이나 경계와 무관하게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을 만드는 게 커뮤니티의 진정한 의미이자 가치예요.


앞으로는 이런 공간들이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지 않는 미래가 오기를 바라요.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커뮤니티의 진정한 가치를 구현한 공간들이 상을 받을 만큼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예요. 구분 없고, 차별 없는 사람 사이의 인연이 많아지는 만큼, 우리 사회도 더 풍요로워질 거예요.





Reference

hachikuri house, GOOD DESIGN AWARD

블루 스튜디오 공식 홈페이지

ブルースタジオの“パートナー” はちくりはうす・竹村 眞紀さんと、編む〈インタビュー編〉

하치쿠리 하우스 공식 홈페이지

RESILIENCE PLAYGROUND PROJECT, GOOD DESIGN AWARD

플레이 디자인 랩 공식 홈페이지

Fukagawa Enmichi, GOOD DESIGN AWARD

잠자 공식 홈페이지

誰にとっても居心地の良い「居場所」をつくる——利用者に寄り添う複合型福祉施設「深川えんみち」

후카사와 엔미치 공식 홈페이지

「おせっかい」を引き出す 下町の複合福祉施設「深川えんみち」 子どもから大人まで ごちゃまぜ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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