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 매장인 ‘센차도 도쿄’에 들어서면, 알록달록한 틴 케이스가 눈에 들어와요. 동일한 규격의 사이즈와 라벨 디자인이지만 다양한 색상을 사용해 매장에 색감과 생동감을 더하죠. 그렇다면 이 형형색색의 패키지 색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걸까요? 디자이너의 감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활용해 과학적으로 색을 부여해요.
색을 부여하기 위해 센차도 도쿄는 녹차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를 3가지로 정의했어요. 재배 고도(m), 로스팅 온도(c), 로스팅 시간(sec)으로요. 그러고는 각 수치를 규칙에 맞게 보정해 색을 만들 때 쓰는 RGB 값으로 넣는 거예요. 그러면 녹차의 정보를 활용해 각각의 녹차를 고유의 색으로 표현할 수 있죠.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로 차 패키지를 디자인하는 센차도 도쿄는 ‘그린 브루잉(Green Brewing)’에서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린 브루잉은 센차도 도쿄뿐만 아니라 ’도쿄 사르요‘라는 티 하우스도 운영해요. 이 두 곳에서 차를 숫자로 설명하면서, 차를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있죠. 그렇다면 또 어떤 방법으로 차를 숫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린 브루잉 미리보기
• #1. 모든 녹차는 12가지 기준으로 설명한다
• #2. 알고리즘으로 패키지를 디자인한다
• #3. 차를 내리는 방식에도 과학이 필요하다
• 차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과학적이지 않은 이유
스시에도 특이점이 올 수 있을까요? 특이점(Singularity)이란 인간의 사고 능력으로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달된 기술이 구현된 순간을 의미해요. 이 특이점이 스시에도 왔어요. 일본 최대 광고업체인 ‘덴츠’와 식품 스타트업 ‘오픈밀스’가 함께 ‘특이점 초밥(Sushi Singularity)’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거예요.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모양의 스시를 만들어내죠.
©Sushi Singularity
3D 프린팅으로 스시를 요리하기 위해서는 영양, 맛, 식감, 향, 온도, 모양, 재료, 색상, 제작 방법 등 9가지 정보가 필요해요. 이 데이터는 ‘큐브’라고 불리는 초밥 3D 프린터 시스템에 입력이 되죠. 그 후에 기계에서 스시 재료들을 분해하고 재구성하며 초밥을 빚어내요. 셰프, 때로는 장인의 영역이었던 스시에 과학이 들어오기 시작한 셈이에요.
기술을 활용하니 더욱 정교한 스시를 만들 수 있어요. 정육각형 모양의 참치 초밥을 만들어 최고 등급 참치 뱃살의 식감을 그대로 구현했고, 문어 초밥은 벌집 모양으로 디자인해 재료를 디자인해 씹을 때마다 탄력을 느낄 수 있어요. 그 중 화룜점정은 오징어 초밥이에요. 무려 6개의 축으로 냉동된 오징어를 재구성하여 일본의 전통 성을 본땄어요.
©Sushi Singularity
그렇다고 모양새만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니에요. 맛은 물론이고, 초밥을 먹는 사람의 건강 상태에 맞춤화 된 서비스까지 제공해요. 특이점 초밥 매장에 예약을 하면, 고객은 방문 전에 건강 상태를 테스트할 수 있는 키트를 받아요. 키트를 통해 검사하면 유전자 정보, 개인 영양 정보 등이 매장으로 전송되고 개인의 건강 상태에 맞춰진 초밥이 제공되죠.
신선한 컨셉과 아이디어 덕분에 특이점 초밥은 2018년에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크리에이티브 행사,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WSX)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2028년 도쿄에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었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듯 보여요.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특이점까지는 아니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카테고리를 진화시키는 또 다른 브랜드가 도쿄에 있으니까요.
바로 도쿄의 ‘그린 브루잉(Green Brewing)’이에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그린 브루잉은 ‘차가 있는 생활’을 컨셉으로 일본 차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는 브랜드예요. 그러기 위해 그린 브루잉은 찻집인 ‘도쿄 사르요’와, 차를 판매하는 매장인 ‘센차도 도쿄’를 운영해요. 그런데 이 두 곳, 무언가 달라요. 차를 과학적으로 접근해 여느 찻집이나 차 매장에서 보기 어려운 분위기가 풍기죠. 그렇다면 그린 브루잉은 차에다가 과학을 어떻게 접목했을까요?
#1. 모든 녹차는 12가지 기준으로 설명한다
녹차는 일본에서 대표적으로 소비하는 차라고 할 수 있어요. 일본의 차 전체 소비량 중 70~80%가 녹차일 정도로 압도적이죠. 2020년 기준으로 무려 68,442톤을 1년에 소비해요. 참고로 우리나라 차 소비량은 약 5,000톤이니 13배가량 차이가 나요. 일본인들은 차를 많이 마시고, 또 자주 마셔요. 일본인의 72.3%는 매일 녹차를 마시고 89.6%는 일주일에 한 번은 녹차를 마시거든요.
그래서 경쟁도 치열해요. 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티 하우스만 도쿄에 1,300곳이 넘고 카페나 디저트 가게에서도 녹차를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그뿐 아니에요. 편의점마다 병이나 캔 형태로 녹차를 팔고 있고, 녹차를 팔지 않는 자판기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에요.
이렇게 녹차 경쟁이 치열한데, 그린 브루잉은 어떻게 차별화하고 있을까요? 그린 브루잉은 2017년에 도쿄찻집이라는 뜻의 도쿄 사르요(東京茶寮)를 산겐자야 지역에 오픈했어요. 산겐자야는 일본의 부촌 중 하나로, 3개의 찻집이 모여있다는 의미를 가진 지명이죠. 물론 가게 이름과 지역 선정만 가지고는 차별화할 순 없어요.
©Tokyo Saryo
도쿄 사르요의 차별점은 ‘싱글 오리진’ 녹차를 판매한다는 거예요. ‘싱글 오리진’은 단일 지역이나 혹은 단일 농장에서 수확한 것을 말해요. 반면 ‘블렌딩’은 여러 지역이나 다른 농장에서 수확한 찻잎을 섞였다는 뜻이죠. 도쿄 사르요는 블렌딩의 장점을 모르지 않지만, 하나의 품종에서 나오는 향과 맛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싱글 오리진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도쿄 사르요로 가볼까요? 9석 뿐인 도쿄 사르요에서는 메뉴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요. 8종류의 녹차 중 선호에 따라 1가지 혹은 2가지를 고르면 끝이에요. 1가지 차를 고르면 800엔(약 8,000원), 2가지 차를 비교해보는 코스는 1,300엔(13,000원)이에요. 이 8종류의 녹차를 감칠맛, 향, 쓴맛, 달콤함 등 2x2 매트릭스로 설명해 한눈에 어떠한 녹차인지 짐작할 수 있게 했죠. 예를 들어 007번 시치요우세이는 시즈오카 현에서 나는 차로, 쌉싸름한 맛과 아로마가 강한 차임을 알 수 있어요.
©Tokyo Saryo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녹차를 더 정교하게 구분하기도 해요. 이번에는 센차도 도쿄로 가볼게요. 센차도 도쿄는 2017년 말 오픈했어요. 도쿄 사르요가 한적한 동네인 산겐자야에 위치한 것과 달리, 센차도 도쿄는 도쿄의 최대 번화가 중 하나인 긴자에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녹차를 즐길 수 있도록 티 하우스의 형태가 아니라, 제품을 경험하고 판매하는 리테일 매장 형태로 오픈했죠.
©Senchado Tokyo
이곳에서는 그린 브루잉이 보유한 50여종의 녹차를 구매할 수 있어요. 흥미로운 점은 50여종의 녹차를 12가지 지표에 따라 분류한 거예요. 과실향, 곡향, 감칠맛, 달콤함, 꽃향 등 차를 표현할 수 있는 12가지 기준을 세우고, 0점부터 100점까지 점수를 부여했죠. 고객들은 시음을 하지 않더라도 레이더 차트를 보고 자신이 경험해보고 싶은 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취향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셈이죠. 그린 브루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녹차에 대한 데이터를 또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요. 어떻게냐고요?
#2. 알고리즘으로 패키지를 디자인한다
센차도 도쿄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형형색색의 틴 케이스들이에요. 동일한 규격의 사이즈와 라벨 디자인이지만 다양한 색상이 사용되어 매장에 색감과 생동감을 더해요. 그렇다면 이 형형색색의 패키지 색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걸까요? 디자이너의 감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활용해 과학적으로 색을 부여해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볼게요.
©Senchado Tokyo
센차도 도쿄에서는 특정 색상을 결과값으로 뽑아내는 자체적인 수식이 있어요. 각 지역에서 수확한 녹차의 재배 고도(m), 로스팅 온도(c), 로스팅 시간(sec) 등의 수치를 수식에 입력하면 그에 따른 색상이 결정돼요. 레드(R), 그린(G), 블루(B)로 색을 만들 듯이, 녹차의 정보를 활용해 싱글 오리진별로 고유의 색을 부여하는 거죠. 녹차를 인수분해해 알고리즘화하여 색으로 표현한다는 발상이 새로워요.
©YouTube ‘Mikito Tanimoto’
예를 들어 001번 ‘하루모에기’는 일본 밤과 옥수수 향이 특징인 카고시마의 현의 품종인데 알고리즘에 따라 노란색이 부여되고, 002번은 시나몬과 과실향이 풍부한 시즈오카 코우슌으로 수식을 거치면 감색의 색상으로 표현되죠. 003번은 쓴 맛이 강한 후쿠오카 현의 ‘코이시주쿠’로 보라색을 나타내요.
©YouTube ‘Mikito Tanimoto’
물론 알고리즘의 수식 자체는 과학이지만, 그렇다고 알고리즘으로 나온 색상이 과학적인 것은 아니에요. 수식을 통해서 부여되는 색상이기 때문에 입력하는 변수나 상수와의 관련성도 적고, 색상에 따라서 차의 맛이나 향이랑 연결되지도 않아요. 하지만 알고리즘을 패키징에 이용한 덕분에 스토리텔링을 할 때나, 새로운 녹차가 나왔을 때 색상을 정하는 과정이 쉬워지죠. 녹차 맛이 은유적으로 드러나면서도, 초록이 동색이던 녹차 매장에 컬러감도 생기고요.
©Senchado Tokyo
꼭 알고리즘이 아니더라도 센차도 도쿄는 패키지 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써요. 센차도 도쿄에서는 녹차와 페어링해 먹기 좋은 각종 다과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요. 귀부 포도로 만든 건포도, 훈연한 피스타치오, 말린 무화과 등을 1,080엔에 만나볼 수 있죠.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한 색상은 없어도, 녹차의 틴 케이스 패키징과 동일하게 디자인해 통일감을 주면서도 흑백의 깔끔한 느낌을 더했어요.
©Senchado Tokyo
12가지 기준으로 녹차의 품질을 관리하고, 알고리즘을 이용해 패키지 디자인을 하는 그린 브루잉도 인간미를 보일 때가 있어요. 같은 차밭에서 수확된 차종이어도 그 해의 기후에 따라 맛이 다른데, 매년 변화하는 그 차이를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즐겨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과학적인 방법에 인간미를 한 스푼 얹으니 녹차가 더욱 따뜻하게 느껴져요.
이렇게 차 본연의 맛과 그리고 패키지 디자인에서 과학적인 접근을 하는 그린 브루잉은, 차를 내리고 마시는 방식까지도 과학적으로 접근해요.
#3. 차를 내리는 방식에도 과학이 필요하다
다시 도쿄 사르요로 가볼게요. 이곳에서는 녹차를 핸드 드립으로 경험할 수 있어요. 핸드 드립은 종이나 헝겁으로 만든 필터에 재료를 담고, 물을 천천히 내리며 추출하는 방식이에요. 싱글 오리진과 마찬가지로 커피에서는 익숙한 개념이지만, 차의 분야에서는 전에 없던 방식이에요. 도쿄 사르요가 핸드 드립 녹차를 세계 최초로 시도한 거죠.
©Tokyo Saryo
도쿄 사르요는 녹차를 핸드 드립 방식으로 내리기 위해 추출기, 스탠드 등 도구까지 직접 개발했어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커피를 내리는 것과 차를 우리는 방식에 차이가 있어서죠. 커피용 핸드 드립 도구는 물이 바로 빠지게 설계된 반면 차의 경우는 우리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새롭게 디자인을 한 거예요.
앞서 설명했듯이, 도쿄 사르요에서는 녹차를 1가지 혹은 2가지 선택할 수 있는데요. 선택한 녹차를 3단계의 코스로 서빙해주죠. 각 단계별로는 물 온도와, 우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첫 번째 잔은 70도에서, 두 번째 잔은 우려낸 차를 80도로 한번 더 우려내요. 처음 우려낸 잔은 강한 맛으로 차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고, 두 번째 잔은 떪은 맛과 단맛의 궁합이 좋아 음식과 페어링하기 좋죠. 마지막 잔은 현미를 더해 고소하게 마무리 할 수 있는 코스예요.
이처럼 도쿄 사르요에 가면 맛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차를 경험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매일 도쿄 사르요를 방문해 전문가의 솜씨로 내린 차를 마시거나, 핸드드립 도구를 구매해 직접 내려 마시기도 어려워요.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녹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정확한 계량을 하거나 우리는 시간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죠. 그렇다고 좋은 품질의 찻잎을 대충 마시기도 아까워요.
©Reddot Award
이를 모르지 않는 그린 브루잉은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차 도구를 개발해요. 바로 토메이 큐슈(Tomei Kyusu)예요. 직역하면 투명 급수라는 뜻으로 이것 하나만으로도 별도의 계량이 필요 없이 간편하게, 그러나 완벽하게 차 한잔을 마실 수 있죠. 심미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 덕분에 2018년에는 좋은 디자인을 선정해 수상하는 레드닷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어요.
용기는 차 한잔의 분량인 120ml로 디자인되어, 별도의 계량이 필요 없이 용기에 찻잎을 넣고 물을 가득 채우는 것만으로도 차 한잔을 우릴 수 있어요. 뚜껑과 망이 분리 가능하니 관리나 세척도 편하고요. 게다가 투명한 디자인 덕분에 뚜껑을 열어보지 않더라도 얼마나 차가 우려났는지 확인이 가능하죠. 전통까지도 현대적으로 즐길 수 있게 디자인 된 셈이에요.
차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과학적이지 않은 이유
그린 브루잉은 ‘도쿄 티 저널(Tokyo Tea Journal)’이라는 차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800엔(약 8,000원)만 내면, 매월 일본 전역에서 엄선한 싱글 오리진 차 2 종류와 차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16페이지의 정보지를 함께 배송해주죠.
©Tokyo Tea Journal
2019년 5월부터 시작한 도쿄 티 저널은 2023년 6월에 창간 50호를 맞이했어요. 새로운 시도였지만 비즈니스적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런칭을 하고 1년여 만에 매월 전월 대비 20~30%이상 성장하면서 구독자가 10,000명을 돌파했으니까요. 게다가 재구독율도 94.9%로 높은 수준을 자랑해요. 하지만 도쿄 티 저널을 시작한 이유를 비즈니스 논리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창업자의 설명을 들어볼게요.
“품질이 좋은 차는 시간을 들이고 천천히 성장하면서 개성 있는 맛과 향기가 담겨요. 하지만 지금의 녹차 산업 구조에서는 쉽지 않아요. 더 빠르게 수확하고 판매하기 위해 획일화 된 차를 재배하게 되고, 녹차시장의 개성도 사라지는 악순환에 빠지죠. 좋은 차 만들기를 계속하기 위해서, 좋은 차를 제대로 평가하고 소비자와 연결해 나가야 해요. 그러려면 커피나 와인처럼 싱글 오리진 차를 맛보는 새로운 문화를 정립해 차 소비자와 생산자가 늘어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죠.”
그린 브루잉이 추구하는 목표예요. 좋은 차를 선별하고, 제대로 알릴 수 있도록 디자인을 하고, 최상의 상태로 마실 수 있도록 도구까지 개발하는 이유죠. 그린 브루잉이 우리는 녹차의 향과 맛이 더 진해질수록 일본 녹차의 미래도 더욱 깊이가 생길 거예요.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