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의 등급은 어떻게 결정할까요?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결정하지만,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한 필요조건은 부대시설이에요. 아무리 객실을 럭셔리하고 감각 있게 꾸며 놓았다고 하더라도 피트니스 센터, 연회장 등의 부대시설이 없으면 4성급 이상을 받기 어려워요. 그만큼 호텔에 있어 부대시설이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물론 꼭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부대시설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부대시설이 있으면 좋죠. 그렇다면 부대시설을 갖출 처지가 안되는 호텔은 어떻게 고객의 만족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도쿄 ‘하나레 호텔’이 대안을 제시했어요.
하나레 호텔은 ‘온 마을을 호텔로 만든다’는 컨셉으로, 숙박 시설만 자체적으로 마련해두고 부대시설은 동네의 식당, 헬스장, 세탁소, 목욕탕 등과 연계해 제공해요. 로컬 매장과의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거예요. 이 컨셉으로 2018년에 일본 굿디자인 어워드 금상을 수상했죠.
하나레 호텔의 컨셉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눈에 띄었던 건 하나레 호텔 리셉션이 있는 ‘하기소’ 건물의 1층 공간이에요. 1층 벽에서 의미심장한 숫자를 발견했죠. 이 숫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건물의 장례식’
낡고 오래된 하숙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하숙을 하던 도쿄 예술대학 학생 ‘미야자키 미츠요시’가 기획한 이벤트예요. 그는 자신이 살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고 아쉬웠어요. 그래서 집주인에게 건물을 부수기 전에 전시회를 열자고 제안하죠. 건물의 마지막을 기념해서 나쁠 게 없고, 대학생의 순수한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집주인도 그의 요청을 들어줍니다.
건물의 장례식이자 아트 전시회인 ‘하기엔날레’가 열리자 뜻밖의 반응이 있었어요. 인적이 드문 동네에 3주 동안 1,500여 명이 다녀가며 인기를 끌었죠. 건물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이벤트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집주인은 이 전시회 때문에 건물을 부수지 못했어요.
낡고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낡고 오래된 방식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건물의 가치를 재인식한 집주인은 건물의 장례식을 기획했던 미야자키 미츠요시에게 리모델링을 맡겼어요. 그는 건물을 부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하숙집을 ‘하기소’로 재탄생시키며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죠.
ⓒ시티호퍼스
하기소는 2개 층으로 되어 있어요. 그는 1층을 카페 공간과 전시 공간으로 구성했고 2층을 ‘하나레’ 호텔의 리셉션으로 꾸몄어요. 하나레 호텔은 ‘온 마을을 호텔로 만든다’는 컨셉을 가진 호텔로, 숙박 시설만 자체적으로 마련해두고 보통의 호텔이 제공하는 부대시설은 동네의 식당, 헬스장, 세탁소, 목욕탕 등과 연계해 제공하는 곳이에요. 이 컨셉으로 2018년에 일본 굿디자인 어워드 금상을 수상했죠. 하나레 호텔의 컨셉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눈에 띄었던 건 1층의 공간이에요.
ⓒHanare Hotel
ⓒ시티호퍼스
카페야 평범했지만, 전시장은 건물의 장례식을 통해 재탄생시킨 공간답게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려는 고민의 흔적이 담긴 곳이었어요. 건물이 지어지고 나서의 히스토리뿐만 아니라 하기소로 바꾼 후 그동안 진행했던 다양한 이벤트의 내용을 벽면을 따라서 이미지와 함께 기록해 두었어요.
ⓒ시티호퍼스
빼곡하면서도 정갈하게 정리한 비법이 무엇일지 궁금해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2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하나는 진행했던 이벤트를 전시, 공연 등으로 나누고, 각각 고유한 색을 부여해 구분한 거였어요. 색을 인덱스로 활용하는 건 기록을 깔끔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였으나,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또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방식이었는데, 아무리 디코딩(Decoding)해도 해석하기가 어려웠어요. 중간 중간에 0/58, 1/59, 2/60 등 분수로 표현한 숫자들이 있었고 마지막에는 5/63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숫자 간의 연관성은 있어 보였지만, 어떤 의미를 담은 건지 도무지 추측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무 숫자나 적은 것은 아닌 것 같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직원에게 물어봤어요.
ⓒ시티호퍼스
“분모는 건물의 나이이고, 분자는 하기소의 나이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던 이유였어요. 건물을 구성하는 요소를 형태적인 부분과 운영적인 부분으로 구분해, 건축물로서의 역사와 재생 공간으로서의 변화를 동시에 기록으로 담아내고 있었죠. 벽면을 따라 빼곡하면서도 정갈하게 나열한 숫자와 글자, 그리고 이미지는 건물이 버텨온 시간을 보존하면서, 건물이 거듭난 공간까지 표현하는 세련된 방식이었어요.
하기소의 센스에 감탄하면서 전시장 중앙으로 시선을 돌리자, 매월 발간된 하기소의 소식지를 진열해 놓은 곳이 눈에 들어왔어요. 벽면의 기록만큼이나 정갈하고 반듯한 모양새였죠. 어떤 내용을 전하는지가 궁금해 소식지를 펼쳐 들었다가, 하기소의 센스에 또 한 번 무릎을 쳤어요.
ⓒ시티호퍼스
소식지 한편에서 스카이트리, 도쿄 타워 등 도쿄의 상징적인 고층 빌딩들과 2층짜리 하기소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고 있었어요. 누가 봐도 비교의 대상이 아닌데, 랜드마크와 하기소를 대비시키며 낡고 오래된 건물의 위풍당당함을 끌어올렸죠. 하기소를 다시 보게 하는 재치 있는 이미지이자, 하기소의 포부가 담겨 있는 메시지였어요.
ⓒ시티호퍼스
건물의 장례식을 치른 후, 집주인이 원래 계획했던 것처럼 낡고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자본과 기술을 투입해 건물을 다시 세워야 공간을 변신시킬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하기소를 만든 미야자키 미츠요시처럼 기획적인 접근으로도 낡고 오래된 건물을 재탄생시킬 수 있죠. 공간이 생명력을 잃는 건 건물의 수명이 다해서가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