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 있는 이 무인양품 매장 뭔가 특이해요. 지하에 반찬가게가 있어요. 도쿄의 플래그십 매장 등에서 운영하는 식료품 코너와는 달라요. 간판이 따로 있거든요. 이름하여 ‘무인양품 이소이즘(無印良品 isoism)’. 무인양품과 쓰케모노 전문 식당 ‘이소이즘’이 협업해서 만든 반찬가게이자 야채가게예요. 참고로 쓰케모노는 절임야채를 일컫는 말로, 교토의 독특한 식문화 중 하나죠.
무인양품과 협업했을 정도면 보통 가게는 아닐 거예요. 이소이즘은 ‘이소야’ 그룹이 운영하는 식당인데요. 이소야 그룹은 교토 전역에 7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요. 매장 수는 많지 않지만, 교토의 야채를 널리 알리겠다는 포부를 진정성 있게 펼쳐가고 있는 곳이라 무인양품과 손잡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소야 그룹에서 운영하는 7개의 식당은 이름이 제각각이에요. 이소이즘도 그 중 하나이고요. 7개의 식당은 컨셉도, 타깃도, 메뉴도 다 다르죠. 아니 같은 이름의 식당을 여러개 내야 메뉴 개발, 매장 운영, 브랜딩, 마케팅 등에서 유리할텐데, 이소야 그룹은 왜 이런 방식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걸까요?
이소야 미리보기
• 하나의 뿌리를 가진 7개의 서로 다른 식당
• 교토의 야채를 넘어 교토의 식문화를 판다
• ‘팜 투 테이블’로 지속가능한 밸류체인을 완성한다
• 교토에서 발견한 6차 산업의 미래
교토는 무엇이든 ‘교토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그리고 교토화된 것들의 이름 앞에 ‘교토의’, ‘교토식’이라는 의미를 담아 ‘교-(京-)’라는 글자를 붙여 불러요. 교토식 전통요리는 ‘교료리(京料理)’, 교토에 있는 일본식 전통 목조 가옥은 ‘교마치야(京町家), 교토식 도자기는 ‘교야끼(京燒)’라고 부르는 식이에요.
그 중에서도 이름 앞에 ‘교’를 다는 것 이상으로 관리되는 것이 있어요. 바로 교토의 전통 야채인 ‘교야사이(京野菜)’예요. 1988년, 교토 농림수산성은 교야사이를 지키고 계승하기 위해 교야사이를 정의하는 5가지 기준을 발표했어요.
1. 메이지 시대 이전에 도입된 야채일 것
2. 교토부 내에서 생산되었을 것
3. 죽순은 포함하되
4. 버섯과 양치류는 제외
5. 현재도 재배 또는 보존되었거나 멸종한 품종을 포함할 것
이런 기준에 의해 35가지의 현존하는 야채들과 2가지의 멸종된 품목을 포함해 총 37가지 야채를 교야사이로 지정했어요. 카라미다이콘, 아오미다이콘 등의 무, 스구키나, 미즈나 등의 절임용 야채, 모기나스, 카모나스 등이 포함돼 있죠.
ⓒKyoyasai
ⓒKyoyasai
교토 농림수산성은 교야사이를 지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어요. 교야사이의 유통과 소비를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교토 고향 산품 협회’라는 법인을 별도로 만들었죠. 그러고는 이 법인에서 교야사이를 판매하는 가게나 교야사이를 이용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을 인증해주는 제도를 도입했어요. 또한 인증을 받은 상점들의 홍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요.
교야사이를 판매하는 가게 ‘혼마몬 교야사이 취급점’으로 인증받은 가게들은 가게 한 켠에 ‘교야사이 코너’를 마련해 교야사이의 유통에 힘써요. 그리고 교야사이를 이용한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을 꼭 일본식에만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안, 프렌치 등으로 업종을 다양화해 교야사이의 활용도를 높여가고 있죠.
그런데 교야사이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은 정부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시장에서도 교야사이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회사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교토에 기반을 둔 외식 기업인 ‘이소야’ 그룹이에요.
하나의 뿌리를 가진 7개의 서로 다른 식당
이소야 그룹은 교토 전역에 7개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요. 모두 교야사이를 활용한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에요. 그런데 이 7개 매장의 이름이 모두 달라요. 점포마다 컨셉이 모두 다르거든요. 이소야는 다채로운 교야사이 문화를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맥락에서 교야사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매장마다 컨셉도, 타깃도, 메뉴도 다른 것이고요.
먼저 교야사이를 이소야만의 스타일로 요리하는 ‘이소즈미’가 있어요. ‘여자들도 쉽게 들어올 수 있는 빨간색 전등’이 컨셉인 이소즈미는 제철 식재료와 교야사이를 활용한 일식을 선보여요. 빨간색 전등은 보통 일본 남성들이 많이 가는 이자카야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음식도 공간도 더 정갈하게 만들어 여자 손님들도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으로 만든 거예요.
ⓒIsoz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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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요리 방식이 부각되는 지점들도 있어요. 이소야의 또 다른 레스토랑인 ‘오니카이’는 ‘제철 교야사이를 맛있게 먹자’라는 컨셉으로 교토식 가정식인 ‘오반자이’를 팔아요. 요리법으로는 삶는(煮) 방식을 주로 사용해 제철 야사이의 본연의 맛과 식감을 최대한 살리고요. 오니카이는 교토 고향 산품 협회로부터 교야사이로 요리하는 식당으로 인증받기도 했어요.
ⓒOnik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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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소야’라는 이름의 지점은 ‘제철 교야사이를 구워주세요.’가 컨셉이에요. 컨셉따라 구운(焼) 야채 요리를 판매하죠. 오니카이가 삶은 조리법으로 일본 가정식을 만든다면, 이소야는 퀘사디아, 향신료를 뿌린 닭구이 등 이국적인 요리를 선보여요. 이처럼 조리 방식에 따라 야채의 맛도 달라지고, 할 수 있는 요리의 종류도 달라져요.
ⓒIs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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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법이 아니라 요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컨셉을 개발한 매장들도 있어요. ‘이소마츠’는 ‘교야사이는 와인과 페어링했을 때 맛있고 재밌다’라는 컨셉으로 교야사이 요리와 와인을 페어링해 먹을 수 있는 와인바예요. 보틀 와인은 기본, 잔 와인, 샹그리아 등도 구비되어 있어요.
ⓒIsomatsu
이곳은 교야사이가 들어간 서양식 메뉴들을 개발해 와인과 잘 어울리는 요리들을 갖추고 있어요. 화이트소스를 곁들인 유바와 붕장어, 표고 버섯 피자, 구운 가지 찹쌀 롤, 골뱅이 마늘 버터 등 이름만 봐도 교야사이와 서양식 레시피의 조화를 느낄 수 있죠.
ⓒIsomatsu
ⓒIsomatsu
그뿐 아니에요. 서양식 술집인 태번(Tavern)을 모티브로 한 매장들도 있어요. 친구, 연인, 직장 동료와 편하게 들러 한 잔 할 수 있는 ‘이소스탄도’, 그리고 가벼운 안주를 위주로 파는 ‘M 이소 스탠드’예요. 특히 M 이소 스탠드의 경우 도시인들의 가벼운 술집을 지향하는 만큼 가장 비싼 메뉴가 850엔(약 8,500원)으로, 저렴한 가격에 안주를 즐길 수 있어요.
M 이소 스탠드의 시그니처 메뉴인 소의 힘줄을 된장으로 끓인 일본식 음식인 ‘도테니(どて煮)’. 가격은 550엔. ⓒM iso STAND
이소야에서 운영하는 식당들의 특징 중 하나는 ‘오마카세 코스’가 있다는 점이에요. 7개 식당 중 5개 식당에서 각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를 포함해 8~10가지 요리로 구성된 오마카세 코스를 갖추고 있어요. 오니카이의 오마카세에는 4가지 삶은 교야사이 요리가 포함되어 있고, 이소마츠는 샤부샤부나 스키야키 코스 요리, 이소스탠드의 오마카세는 안주하기 좋은 요리들로 구성되어 있는 식이에요.
‘오마카세’가 주로 스시집에서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오마카세는 주방장에게 맡긴다는 뜻이기 때문에 스시에 국한될 필요도 없죠. 오마카세 메뉴를 통해 계절이나 원료 수급에 따라 적절하게 메뉴를 다르게 구성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메뉴를 한 번에 선보일 수 있어요. 제철 교야사이의 매력을, 다채롭게 소개하기에 좋다는 뜻이에요. 교야사이의 가능성을 넓히고자 하는 이소야의 목적을 잘 반영한 메뉴라고 볼 수 있어요.
교토의 야채를 넘어 교토의 식문화를 판다
지금까지 이소야가 운영하는 6개 식당의 컨셉을 소개했어요. 7번째로 소개할 매장은 ‘이소이즘(Isoism)’이에요. 이소야 그룹을 의미하는 ‘Iso’뒤에 ‘-주의’라는 의미의 ‘-ism’이 붙은 만큼 이소야 그룹의 정신을 담고 있는데요. 이소이즘은 쓰케모노 전문 식당이에요. 쓰케모노는 교야사이로 만든 절임야채를 일컫는 말로, 교토의 독특한 식문화 중 하나예요.
ⓒIsoism
쓰케모노를 이해하려면 교토의 지형을 살펴봐야 하는데요. 교토는 산으로 둘러 쌓인 내륙에 위치해 있어요. 기후도 사계절이 뚜렷하고 일교차가 커 채소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요. 게다가 바다와도 거리가 멀어 과거에는 해산물 유통이 어려웠기 때문에 채소는 교토 식문화의 중심이 되는 식재료였어요. 교토만의 야채, 교야사이가 생긴 배경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보니 야채를 오랫 동안 두고 먹기 위해 저장 음식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런 환경이 쓰케모노의 탄생으로 이어진 거예요.
이소이즘은 단순히 교야사이를 요리에 사용하는 것을 넘어 쓰케모노라는 교토의 식문화를 주제로 한 식당이에요. 이곳에서는 쓰케모노를 만들기 위해 야채를 절일 때 식초 뿐만 아니라 사케, 술지게미, 간장, 된장, 쌀겨, 다시마 등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해요. 야채에 따라 어울리는 절임 식재료가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Isoism
이소이즘은 교야사이와 절임 식재료 간의 궁합을 연구해 각 교야사이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데에 힘써요. 겨자 식초가 들어간 미소(일본식 된장)로 파를 절여 파의 단맛을 끌어내기도 하고, 우엉에 참깨 미소에 절여 고소한 맛을 강조하기도 하고요.
또한 이국적인 식재료를 활용해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쓰케모노를 만들기도 해요. ‘토마토 화이트 와인 절임’, ‘양파 허니 레몬 절임’, ‘셀러리 오렌지 절임’ 등이 그 예죠. 토마토 화이트 와인 절임은 샐러드처럼 먹거나 요구르트와 함께 먹기에 좋아요. 쓰케모노가 밥 반찬을 넘어 샐러드나 디저트, 간식이 되는 셈이에요. 덕분에 젊은 세대들도 거리감없이 이소이즘의 쓰케모노를 찾죠.
여기에 하나 더. 이소이즘은 이소야 그룹이 식당을 넘어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열쇠가 돼요. 이소야의 7개 식당 외에도, 이소이즘 덕분에 온라인 몰과 오프라인 매장을 하나 더 열 수 있게 되었거든요. 쓰케모노는 즉석으로 요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절여두고 판매하는 음식이에요. 식당 요리로서 뿐만 아니라, 식료품으로 팔기에도 적합해요. 그래서 이소이즘의 쓰케모노를 팩이나 병에 담아 판매하고 있어요. 유통업에 진출하게 된 거죠.
ⓒIsoism
오프라인 매장은 반찬가게이자 야채가게예요. 가게의 이름은 ‘무인양품 이소이즘(無印良品 isoism)’. 이소야가 단독으로 매장을 연 것이 아니라 무인양품과 협업을 통해 무인양품 교토 야마시나점 지하1층에 오픈했거든요. 그간의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각각의 야채에 가장 좋은 절임 레시피를 개발한 덕분에 무인양품에 입점할 수 있었어요. 무인양품 이소이즘에서는 쓰케모노를 중량에 따라 판매하고, 매일 아침 농장에서 바로 배송되는 신선한 야채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요.
ⓒMUJI iso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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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투 테이블’로 지속가능한 밸류체인을 완성한다
이소야의 식당과 반찬가게의 기본은 양질의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거예요. 심지어 무인양품 이소이즘에서는 생야채를 판매하기도 하니 더욱 필요한 일이에요. 물론 사용할 모든 야채를 교토에 있는 농가와 계약을 맺어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하지만 외부 계약으로만 야채를 수급하기에는 신선도와 안정성을 보장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이소야 그룹은 교토부 안에서 직접 농장을 운영해요. 이소야 그룹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있고 신선한 야채를 재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일반적인 야채부터 재배가 어렵거나 시중에서 잘 찾아보기 어려운 야채까지 다양한 채소를 재배하죠. 물론 직영 농장에서 모든 야채를 재배할 수 없기 때문에 직영 농장 인근의 다른 농가들과 협력하여 품질 좋은 야채를 납품 받기도 하고요. 직영 농장을 운영하며 근처 농가들과 계약을 한 것이기 때문에 더 꼼꼼한 품질 관리가 가능해요.
ⓒIsoya
이소야 그룹은 교토 부 안에 자연 환경이 좋은 3개 지역에서 각각 농장을 운영하는데, 각 농장의 특징이 모두 달라요. 니시야마에 위치한 ‘오하라노 하우스’는 수경재배 설비를 갖추고 사계절 내내 루콜라를 안정적으로 재배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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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시에서 약 40분 정도 떨어진 오토쿠니노사토 무코 지구에는 ‘이소즈 농장’이 있어요. 이곳에서는 각종 허브, 죽순, 쌀 등을 재배하고 있고요. 마지막 ‘무카이지마 농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밭 재배’를 모토로 무, 브로콜리 등을 생산해요.
ⓒIs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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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야 그룹은 매일 아침 각 농장에서 재배한 신선한 야채들을 자체 배송편을 이용해 8개 매장으로 직접 배송하고 있어요. 배달된 야채는 매장 직원이 조리해 판매되고요. 이렇게 이소야 그룹의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이 가능해졌죠.
교토에서 발견한 6차 산업의 미래
이소야 그룹은 1차 산업인 농업부터 2차 산업인 식품 가공업, 3차 산업인 유통업과 외식업까지 진출해 있어요. 이렇게 1차 산업에 기반을 두고, 2차, 3차 산업까지 연계한 산업을 1,2,3을 곱해 ‘6차 산업’이라고 불러요. 우리나라에서도 농업 활성화를 위해 6차 산업에 주목하고 있어요.
이소야 그룹은 자체 농장을 통해 야채의 원가를 낮추고, 자체적으로 조달하지 못하는 야채들은 근처 농가에서 조달해요. 이렇게 농장에서 재배한 야채를 쓰케모노나 야채 요리로 가공하고, 각 매장에서 판매를 하는 등 각각의 단계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죠.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겨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어요.
게다가 이소야 그룹의 식당들은 교야사이를 요즘의 라이프스타일에 위화감없이 스며들게 하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어요. 지역의 독특한 식재료나 식문화를 보존해야 하는 것을 넘어 기꺼이 소비하고 싶은 것으로 만드는 거예요. 3차 산업의 반응이 좋으니, 그와 연관된 2차, 1차 산업의 미래도 밝을 수 밖에요.
이처럼 이소야 그룹에는 지역의 무형자산을 전통으로 남기기 보다는, 그 안의 잠재력을 꺼내 사업화하는 힘이 있어요. 앞으로 이소야 그룹이 펼쳐나갈 교야사이의 세계가 궁금해지고, 또 그 행보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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