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장난 같은 제품으로, 갖고 싶은 브랜드가 된 키친웨어

조셉 조셉

2023.06.23

수백만 달러를 디자인 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브랜드가 있어요. 키친웨어 브랜드인 ‘조셉 조셉’이에요. 조셉 조셉의 창의적인 디자인을 심하게 카피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냐면, 복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조셉 조셉 제품으로 착각하여 조셉 조셉의 고객 센터로 수리 서비스를 요청하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예요.


디자인이 어떻게 다르길래 카피 제품이 난무하는 걸까요? 조셉 조셉은 아름다운 디자인보다 불편을 해소하는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요. 예를 들어 볼게요. 도마의 양날개를 접어 도마 위 재료들을 흘리지 않고 바로 냄비에 넣을 수 있는 찹투팟(Chop 2 Pot), 도마와 체를 합쳐 한 번에 식재료를 자르고, 씻고, 말릴 수 있는 찹앤드레인(Chop&Drain), 얼음을 빼기 위해 얼음틀을 비틀 필요 없이 하단의 스위치를 눌러 얼음을 쉽게 뺄 수 있는 얼음틀 등이 대표적이에요.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들에겐 소꿉장난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평범한 가정의 부엌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에겐 눈에 띄는 제품들이에요. 이러한 제품들을 기반으로 조셉 조셉은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1.17억 파운드(약 1,930억원, 2022년 기준)의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이 되었죠. 하지만 조셉 조셉의 성장을 문제 해결 디자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또 무엇이 조셉 조셉을 차별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걸까요?


조셉 조셉 미리보기

 #1. 제품 정의를 다르게

 #2. 시장 접근을 다르게

 #3. 핵심역량을 다르게

 롤(Role) 전문가는 룰(Rule) 전문가와 다르게




“승리하는 군대는 이기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후 전쟁을 시작하고,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일으키고 승리를 기대한다.”


병법의 교과서이자 최고의 전략서로 손꼽히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에요. 무턱대고 전쟁에 참여할 일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판을 짜고 전쟁을 해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죠.


일본의 도치기 현에는 《손자병법》의 조언에 따른 듯, 기존의 시장에서 승산 없는 게임에 전력을 소비하기보다는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 낸 카메라 판매점이 있어요. 바로 ‘사토 카메라’예요. 사토 카메라는 정체된 카메라 시장 속에서 대형 가전 전문점들과의 전면전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그래서 기존 시장의 고객을 흡수하지 못할 바에야 새로운 고객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죠.


사토 카메라는 카메라를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니라, 카메라를 잘 모르고 심지어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카메라를 판매해요. 카메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카메라를 잘 아는 사람들보다 구매동기는 낮을 수 있지만, 고객으로 확보한다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있거든요. 기존 시장 내 고객들을 대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에요. 잠재 고객을 신규 고객으로 확보하는 사토 카메라의 비결은 접객에 있어요. 카메라를 팔기 위한 접객이 아닌, 카메라나 사진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 내고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돕는 접객에 집중하죠.


사토 카메라의 접객은 시간도 길고, 주제도 다양해요. 고객들과의 상담은 매장 안의 편안한 소파에서 최대 5시간까지도 이어지는데, 카메라 활용법, 촬영 기술, 인근의 촬영 장소 등 카메라에 대한 모든 것을 대화로 나눠요. 내점한 고객들이 사진의 재미에 빠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또한 대화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고객들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등을 매장에서 인화해서 함께 보며, 어떤 사진을 좋아하고, 어떤 촬영을 원하는지 등을 파악하기도 해요. 이렇게 고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품을 추천하니 구매로 전환될 확률이 높아져요.


사토 카메라만의 독특한 접객의 결과는 놀랄 만해요. 사토 카메라는 도치기 현 내에만 18개 점포를 유지하며 20여 년간 도치기 현 내 카메라 판매량 1위 자리를 지켜내죠. 여기에다가 영업 이익률은 40%를 웃돌아 시간을 투자하는 접객이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요. 헤비 유저인 전문가들을 좇았다면 달성할 수 없는 성과예요. 전문가가 아닌 초보자, 더 나아가 아직 시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잠재 고객을 타깃하니 새로운 기회가 열린 거예요.


런던에도 사업 분야는 다르지만 사토 카메라처럼 포화 시장 속에서 전문가가 아니라 일상의 사용자들을 타깃하여 전통의 강호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만든 브랜드가 있어요. 바로 ‘조셉 조셉(Joseph Joseph)’이에요.



©시티호퍼스


조셉 조셉은 2003년에 쌍둥이 형제인 앤서니 조셉(Anthony Joseph)과 리차드 조셉(Richard Joseph)이 유리 도마를 생산하던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받아 설립한 회사예요. 기존의 유리 도마에 쟁반과 냄비받침 겸용으로 쓸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 ‘워크톱 세이버(Worktop Saver)’가 시장의 반응을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키친웨어(Kitchenware) 브랜드인 조셉 조셉을 키워가기 시작했어요. 현재는 1.17억 파운드(약 1,930억원)의 매출을 일으키는 회사로 성장했죠.



조셉 조셉의 시작점인 워크톱 세이버는 도마, 쟁반, 냄비받침 등 3가지 기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방용품입니다. ⓒJoseph Joseph


이후 조셉 조셉은 도마를 비롯해 다양한 키친웨어에 톡톡 튀는 색깔과 장난감 같은 디자인으로 생기를 불어넣었어요.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 전문가들에겐 소꿉장난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평범한 가정의 부엌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에겐 눈에 띄는 제품들이에요. 또한 조셉 조셉은 영국은 물론, 유럽, 미주, 아시아 등 전 세계에 팬을 보유한 브랜드로 성장했는데, 이 정도의 성장을 위트있는 디자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사토 카메라처럼 깊이 있는 접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을 재정의하며 조셉 조셉만의 ‘다름’으로 주방용품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어요.



#1. 제품 정의를 다르게

키친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음식을 준비, 조리, 제공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모든 도구, 기기, 용기’예요. 그래서 키친웨어 브랜드들은 제품의 기능에 중점을 두고, 요리를 하기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놓고 경쟁하죠. 하지만 조셉 조셉은 완성도 높은 제품보다는 더 갖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요. 그래서 때로는 기능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심지어 창업자인 조셉 형제도 그 한계를 인정하지만 그들은 이런 제품을 더 원하는 고객층이 있다고 확신해요. 온전한 고민 끝에 내놓는 불완전한 제품들에 대한 조셉 조셉의 자신감에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어요.


조셉 조셉은 그들의 제품을 요리를 위한 도구가 아닌 일상을 위한 도구로 정의해요. 그렇기 때문에 요리 도구로서의 기능성보다는 일상 제품으로서의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죠. 인덱스(Index) 도마가 대표적이에요. 이 도마는 하나의 두꺼운 도마가 아니라 4개의 얇은 도마로 구성되어 있어요. 4개의 도마에 식재료 아이콘이 그려져 있는 인덱스를 붙여 식재료별로 다른 도마를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요. 식재료 간 맛과 냄새가 섞이는 것을 방지하고 그날의 요리에 맞는 도마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기분을 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에요. 설거지를 아무리 깨끗이 해도 생선류를 손질하던 도마에서 채소를 썰면 비린내가 배여 맛에 미묘한 영향을 미치는데 인덱스 도마를 사용하면 재료의 맛을 보존할 수 있어요.


또한 날마다 먹는 음식이 다를테니 인덱스에 그려져 있는 아이콘과 도마의 색깔에 따라 육류, 생선류, 채소, 조리식품 중 용도에 맞게 사용하며 요리의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어요. 이처럼 요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도마를 4개로 컬러풀하게 구분하여 세워둘 수 있게 디자인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보관이 애매했던 도마의 효율적 관리가 가능해졌어요. 일상적 공간인 주방에 포인트를 주는 역할을 하는 건 덤이고요.



인덱스 도마(좌)는 식재료 별로 다른 도마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제품으로, 라이프 스타일로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의 고객 경험을 고려한 디자인입니다. ©시티호퍼스


키친웨어 전문 브랜드들은 셰프가 사용하는 수준의 주방을 가정하고 제품을 만들어요. 그래서 무거운 무게, 투박한 디자인 등 사용상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성능을 높이는데 주력하죠. 그러나 조셉 조셉은 요리를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이 심각하고 완벽한 주방이 아닌, 실수를 거듭하는 일상적인 주방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맛과 기능을 위해 사용감을 희생하기보다는 일상을 즐길 수 있도록 사용 상의 고충을 해소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둬요.


인덱스 도마도 전문가 입장에서는 보통의 도마만큼 견고하지 않아 쉽게 흡집이 나고 칼질에 탄력이 붙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생활의 요리를 하는 일반인에게는 조리의 과정과 사용 후 보관 측면에서 장점이 더 많아요. 일상에는 완전한 제품만큼이나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제품도 필요하죠.



#2. 시장 접근을 다르게

키친웨어는 크게 3종류로 구분할 수 있어요. 첫째는 조리에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후라이팬, 냄비 등의 조리기구이고, 둘째는 그릇, 컵, 포크 등 테이블 위에 올리는 테이블웨어, 마지막으로는 조리에서 보조 역할을 하는 도마, 계량컵, 보관용기 등의 주방용품이에요. 음식의 맛과 직결되는 조리기구와 음식의 플레이팅에 영향을 미치는 테이블웨어의 경우 가격도 비싸고 역할이 중요해 고관여 제품군에 속해요. 하지만 기본 기능으로 충분한 주방용품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요. 브랜드에 상관없이 유통 채널이나 프로모션 등에 따라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조리기구와 테이블웨어는 사람들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고려 브랜드군이 뚜렷하지만, 주방용품 브랜드에는 이렇다할 브랜드가 부재해요. 전통의 강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신생 브랜드인 조셉 조셉에게 조리기구와 테이블웨어 시장은 장벽이 높고, 주방용품 시장은 가격과 물량 경쟁이 치열해 설자리가 좁아요. 이런 상황에서 조셉 조셉은 키친웨어 시장에 어떻게 접근했을까요?


자리가 없다면 자리를 만들면 돼요. 조셉 조셉은 기본적인 기능만 수행하면 상관없던 주방용품 시장에 ‘디자인을 통한 불편 해소’라는 새로운 고려 사항을 제시했어요. 지금까지 소비자들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불편한 점을 부각시키고, 판단의 기준을 바꾸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거예요.


예를 들어 볼게요. 인덱스 도마뿐만 아니라 도마의 양날개를 접어 도마 위 재료들을 흘리지 않고 바로 냄비에 넣을 수 있는 찹투팟(Chop 2 Pot), 도마와 체를 합쳐 한 번에 식재료를 자르고, 씻고, 말릴 수 있는 찹앤드레인(Chop&Drain)은 디자인으로 문제를 해결한 대표적인 상품들이에요. 소비자들이 큰 고민 없이 구매하던 제품들이었지만, 조셉 조셉이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들을 내놓자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조리기구나 테이블웨어 브랜드처럼 고객들의 선호가 생겼죠.



찹투팟(좌)과 찹앤드레인(우)은 디자인을 활용해 기존 주방용품의 문제를 해결한 대표적인 제품들입니다. ©시티호퍼스



하단의 스위치를 눌러 얼음을 쉽게 뺄 수 있는 얼음틀입니다. 얼음을 빼기 위해 얼음틀을 비틀 필요가 없습니다. ©시티호퍼스



뒤집개의 손잡이 부분에 지지대를 더해 바닥에 닿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뒤집개를 위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칼이나 포크 등 날카로운 도구를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솔입니다. 손을 베일까봐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티호퍼스



한 손으로 사용 가능한 액상 비누 디스펜서입니다. 디스펜서를 누를 때 다른 한 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조셉 조셉의 인기가 높아지자 카피캣들이 등장했어요. 조셉 조셉 제품들의 디자인은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아서, 최초에 생각해 내기는 어렵지만 모방하기는 쉬운 편이에요. 심지어 복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조셉 조셉 제품으로 착각하여 조셉 조셉의 고객 센터로 수리 서비스를 요청하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예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셉 조셉은 매년 수백만 달러를 디자인 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해요. 디자인 카피가 골칫거리지만, 조셉 조셉이 유의미한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이자 그 시장의 선두주자라는 방증이기도 하죠.


조셉조셉의 시장 공략 방식은 남달라요. 조리기구나 테이블웨어 브랜드들과 경쟁하며 키친웨어 시장의 중심부를 공략하기보다 주방용품에 초점을 맞추고 주변부를 개척하니까요. 그런데 판매 지역을 접근하는 방식도 주목할만해요. 자국 내에서 입지를 다지고 해외에 진출하는 방식이 보통인데 조셉 조셉은 브랜드 런칭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죠. 특정 지역의 문화가 아닌 보편적인 직관을 반영한 디자인 덕분에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도 하고, 해외에서 인정받을수록 자국 시장인 영국에서 자리잡기가 쉽기 때문이에요. 


브랜드를 런칭한지 1년 8개월만에 프랑스, 독일 등으로 진출해 현재는 100여 개 국가에서 조셉 조셉을 판매하고 있어요. 해외 시장에서 인정을 받자 국내 시장은 더 가파른 속도로 열렸어요.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기업들의 일반적인 추세와는 달리 사업 초기에는 20% 수준에 머물렀던 국내 매출 비중이 해외시장 진출 후 오히려 58%까지 높아져요. 또한 조셉 조셉을 지나치게 혁신적이라고 평가하며 외면했던 영국의 주요 백화점 존 루이스(John Lewis)가 현재는 조셉 조셉의 가장 큰 유통 파트너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죠.



#3. 핵심역량을 다르게


“셰프들은 스타우브를 선택합니다.” (Chefs choose Staub.)


무쇠주물 냄비로 유명한 프랑스 브랜드 스타우브의 마케팅 캠페인이에요. 스타우브 제품을 사용하는 셰프와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요리법과 함께 스타우브 제품을 홍보하죠. 스타우브는 애나멜로 처리한 냄비의 내부와 셀프 베이스팅 시스템(Self basting system)*을 이용해 요리의 풍미를 탁월하게 살려내요. 애초에 완벽한 냄비를 목표로 기술력을 연마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에요. 


스타우브는 1974년에 처음으로 에나멜 냄비를 출시한 이래, 사업을 키우면서 줄곧 주물로 만든 주철 조리기구의 라인업을 늘리는 데 집중했어요. 핵심역량인 기술력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한 거예요. 그렇다면 조리기구가 아니라 주방용품에 주력하는 조셉 조셉은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할까요?


*셀프 베이스팅 시스템: 재료에서 빠져나온 수분들이 증발하여 냄비 안쪽에 스파이크 모양을 띈 돌기의 끝에 모였다가 떨어지는 걸 반복하여 수분이 냄비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해 주는 기술이에요.


조셉 조셉은 주방용품의 라인업을 늘리기도 하지만 사업 영역을 주방용품으로만 국한하지는 않아요. 요리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일상을 위한 도구로 제품을 정의하고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역량을 핵심역량으로 여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주방용품의 영역을 넘어 보관용기, 청소도구, 화장실용품 등의 영역으로 제품 범위를 넓히기 시작해요. 주방용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화장실용품을 내놓는 것이 낯설어 보여도 디자인으로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고 일상에 위트를 더한다는 측면에서 공통분모가 있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유효기간 또는 보관기간을 표시할 수 있도록 보관용기의 뚜껑에 숫자 다이얼을 붙인 ‘다이얼(Dial)’, 솔을 싱크대에 걸쳐 놓고 말릴 수 있도록 손잡이에 고리를 부착한 ‘엣지 디쉬 브러시(Edge Dish Brush)’, 자주 쓰는 욕실용품들을 한 데에 담을 수 있도록 다양한 높이와 크기의 통을 결합한 ‘이지스토어 배스룸 캐디(EasyStore Bathroom Caddy)’ 등이 조셉 조셉의 브랜드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제품 영역을 확장한 대표적 사례들이에요.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으로 핵심역량을 정의하니 영역을 넘나드는 가능성이 열린 거예요. 또한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만든 제품임을 증명하듯 모든 제품에는 트레이드마크가 붙어있어요.





핵심역량을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으로 정의하자, 주방용품 외에 보관용기, 청소도구, 욕실용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Joseph Joseph


영역 구분없이 일상을 위한 도구를 만드는 조셉 조셉은 1년에 약 50여 가지의 신제품을 출시해요. 하나같이 새로운 디자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0명 남짓한 내부 디자인 인력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운 숫자죠. 핵심역량을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으로 정의했다면 디자이너의 수를 늘릴 법도 한데, 조셉 조셉은 내부 역량을 강화하기보다 외부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택했어요. 외부의 아이디어를 더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함이에요.


조셉 조셉의 대표 히트 상품들도 알고 보면 외부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경우가 많아요. 접이식 자전거 스트라이다(Strida)의 창업자 마크 샌더스(Mark Sanders)와 협업한 찹투팟, 다미안 에반스(Damian Evans)와 함께 만든 인덱스 도마, 모프(Morph)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네스트(Nest) 시리즈 등이 그 예죠. 내부 역량만 고집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제품들이에요.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14회 수상, 퀸즈 어워드 포 엔터프라이즈 2회 수상을 기록했어요. (2023년 6월 현재)


한편 핵심역량이 아닌 영역은 과감히 외부에 위임해요. 조셉 조셉은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드는 역량과 그 제품을 판매하는 역량이 다르다고 보고, 제품들을 독립매장에서 팔기보다 셀프리지스(Selfridges), 존 루이스, 데번햄스(Debenhams) 등의 대형 백화점들과 레이크랜드(Lakeland), 듀넬름(Dunelm) 등의 생활용품 매장들을 활용해 유통해요. 그래서 런던에는 조셉 조셉의 플래그십 매장이 없어요. 입지 선정, 고객 응대, 인테리어 투자 등에 비효율적인 시간과 노력을 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제품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죠.



롤(Role) 전문가는 룰(Rule) 전문가와 다르게

조셉 형제는 자신들이 요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해요. 주방용품을 만드는 회사의 창업자들이 요리를 모른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에요. 그들에게 주방용품은 요리에 대한 전문성을 담아내는 그릇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소재일 뿐인 거예요. 그래서 업계의 암묵적 룰을 따랐다면 사용하지 않았을 폴리 프로필렌 등의 파격적인 재질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여기에다가 요리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일상을 위한 도구로 접근하기 때문에 요리를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컬러와 디자인으로 제품들을 제작해요. 요리 업계의 룰에 고착되지 않으니 주방용품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 가능해졌죠.


요리에 대한 전문성이 없었는데 왜 하필 주방용품 사업을 시작했을까요? 물론 아버지의 유리도마 사업을 물려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주방용품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남다른 통찰력 덕분이었어요. 인류는 1만 년 전부터 식기, 식칼 등의 키친웨어를 만들어 사용했어요. 오랜 시간 동안 써온 제품이기 때문에 주방용품 업계는 기존의 룰에 따라 움직이며 새로움을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았죠. 


조셉 형제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가능성이 있다고 봤어요. 시대가 변해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주방의 모습도 바뀌었는데 기존의 사업자들이 주방의 변화와 전체 최적화는 고려하지 않은 채 제품을 개발하는 상황을 기회로 여긴 거예요. 여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조셉 형제는 각자의 전문성을 활용한다면 주방용품 비즈니스에서도 승산이 있을거란 확신을 굳혀요.


조셉 형제는 요리 분야의 룰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는 아니지만, 디자인과 경영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전문가예요. 형인 앤서니 조셉은 유명한 예술 대학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다이슨(Dyson)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근무했고, 동생 리차드 조셉도 케임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경영과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고 브랜드를 키워가는 데 있어 디자인과 경영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깊은 형제죠. 그들이 결과로 보여주었듯이 각자의 롤에 대한 전문성이 있다면, 업계의 룰을 잘 몰라도 기존의 틀을 깨는 제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Reference

 조셉 조셉 공식 홈페이지

 栃木最強!サトーカメラの不思議な経営, 日経ビジネス

 오모테나시, 접객의 비밀(최한우 지음, 스리체어스)

 매거진 B No.15 조셉 조셉((주)제이오에이치 지음, 제이오에이치)

 1만년 관성을 깨다, 조선일보

 Joseph Joseph shares exporting lessons, The Telegraph

 The twins powering kitchenware firm Joseph Joseph, BBC

 Joseph Joseph: how to cut it in kitchenware innovation, The Guardian

 10 things we learnt from growing Joseph Joseph’s export sales, Start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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