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리그 선수 스즈키 무사시는 소문난 패셔니스타예요. 평소 좋아하는 패션 사진, 아들과 코디를 맞춘 사진을 SNS에 자주 올려요. 그런 스즈키 무사시를 앰배서더로 섭외한 브랜드가 있어요. 비즈니스맨을 위한 무경계 정장 브랜드 ‘K-3B’예요.
정장의 세계는 깊고 복잡해요. 소재와 품질, 버튼의 개수, 베스트의 유무, 스타일 등까지 고려해야 할 게 많죠. 하지만 K-3B는 정장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요. 바쁜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코디에 고민하는 시간조차 낭비라고 보는 거예요. 대신, 정장에 넘버링 체계를 도입했어요. 각 옷에 숫자가 적혀 있고 1의 자릿수가 0에 가까울수록 캐주얼, 9에 가까울수록 포멀한 느낌이에요. 그러니 직관적으로 상황에 맞는 코디를 할 수 있는 거예요.
K-3B의 매력은 이게 다가 아니에요. 섬유의 재미와 신기술에 대한 도전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정장의 가능성을 넓혔거든요. 축구선수 스즈키 무사시를 앰배서더로 임명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죠. 그렇다면 K-3B는 어떻게 남성 정장씬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걸까요?
K-3B 미리보기
• 코디를 고민하지 말고, 숫자를 조합하세요
• 비합리적 베팅으로 직조한 초합리적인 성공
• 잘리지 않는 천을 만드는, 전천후 원단 브랜드
• 사람이 모여드는 섬유 공장
2020년, 일본의 정장 씬에 혜성처럼 등장한 남성복 브랜드가 있어요. 이탈리아어로 운동을 의미하는 ‘Movimento’, 옷을 의미하는 ‘Vestito’,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Bellezza’의 머리글자를 취해 만든 모브(Movb). 해석하면 아름다운 남성 정장의 새 흐름을 만든다는 뜻인데요. 네이비, 그레이, 블랙. 비즈니스에 방해가 되지 않는 남성들이 선호하는 기본 색상만을 취하면서, 미니멀하고 우아한 디자인이 특징이에요. 그런데 모브의 진짜 강점은 디자인 뒤에 숨어 있는 실용적인 기능성이에요. 놀라울 정도로 편안한 움직임을 선사하는 혁신적인 봉제 기술을 적용했죠.
ⓒMOVB
모브는 인체 공학적인 관점에서 재킷의 견갑골부터 어깨 주변 안감까지 ‘무빙 사양’이라는 특수 봉제 기술로 감쌌어요. 덕분에 정장을 입어도 자유자재로 팔을 움직일 수 있어요. 또한 보풀이 잘 일어나는 울 소재를 편하게 입고 관리할 수 있도록, 보풀을 최소화하는 가공 기술도 개발했죠. 그런데 모브는 혜성처럼 등장하기는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신생 기업의 발칙한 혁신이 아니었어요. 그 배후에는 유서 깊은 비밀 연구소가 있었죠.
모브는 소토라는 100년 된 직물 회사가 만든 브랜드예요. 소토는 아이치현의 오슈라는 소도시에 위치해 있는데요. 비옥한 산지와 깨끗한 물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비엘라, 영국의 허더즈필드와 함께 세계 3대 양모 산지로 꼽히는 지역이에요. 그 유명한 오슈에서도 소토는 해외 톱 브랜드들에게 제품을 수출할 만큼, 하이엔드 울 섬유의 산실로 정평이 나 있어요.
이런 모브의 시작을 이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어요. 에스콰이어, 레옹과 오션스 등 유명 패션 매거진을 거쳐 신발, 패션, 주얼리 등 다양한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및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호시바 요시마사라는 인물이에요. TV, 라디오, 유튜브를 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패션계 유명인사이기도 하죠. 그는 울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내 비즈니스부터 스포츠까지 남성복의 경계를 무너뜨린 모브에 깊은 인상을 받아 기꺼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모브의 런칭을 함께했는데요.
ⓒK-3B
모브보다 1년 앞선 2019년, 그는 이미 모브와 닮은 듯 다른 한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한 적이 있어요. 바쁜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무경계 정장 브랜드 ‘K-3B(케이스리비)’예요. 편안한 남성 정장을 메인으로 한다는 점에서 모브와 유사해 보이지만요, K-3B에는 더 확실한 세일즈 포인트가 있어요. ‘Super Rational’, 바로 초합리적이라는 키워드예요.
코디를 고민하지 말고, 숫자를 조합하세요
정장을 고를 때는 고려해야 할 게 많아요. 스타일을 결정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요. 소재와 품질, 버튼의 개수, 베스트의 유무 등의 세부적인 사항 그리고 정장을 입는 상황, 함께 신는 구두 등 코디를 위한 요소도 고려해야 해요. 반면 K-3B는 정장을 고를 때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마이너스했어요. ‘바쁜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코디에 고민하는 시간조차 낭비다’라는 게 K-3B의 존재 이유이자 기조거든요. 대신 고객이 상황에 따라 최적의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상하의 옵션을 제공하는 ‘넘버링 체계’를 도입했죠.
ⓒK-3B
K-3B는 재킷을 001~020, 티셔츠와 셔츠를 030~050, 코트와 블루존은 060~080, 액세서리는 090~099, 바지는 100~199로 분류해요. 각 의복에 숫자가 써 있죠. 아이템의 1의 자릿수가 0에 가까워질수록 캐주얼, 9에 가까워질수록 포멀한 스타일이에요. 정장 스타일링에 대해 세세히 알지 못해도, 직감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상황에 맞는 코디를 할 수 있는 거죠. 1의 자리가 비슷한 옷끼리 매칭하면 어떤 조합을 하던 잘 어우러져요.
스즈키 무사시 ⓒK-3B
이런 K-3B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약하고 있는 축구선수 스즈키 무사시예요. J리그의 뛰어난 선수지만, 평소 패션 사진을 SNS에 자주 올릴 정도로 소문난 패셔니스타기도 해요. 정장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TPPO(Time, Place, Person, Occasion)에 맞게 패션을 조합할 수 있다는 매력을 제대로 어필한 덕에, K-3B는 2022년에 런칭 연도(2019년) 대비 5배의 매출을 달성했어요. 뒤이어 여성복 라인을 런칭하고 오모테산도 힐즈, 긴자 식스에 직영 매장도 열게 됐죠.
그렇게 삶의 다양한 장면에 함께하는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지만, K-3B는 ‘바쁜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정장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아요. 이들은 비즈니스 사회에 꼭 필요한 건 파트너를 위한 ‘신뢰감’, 그리고 옷을 착용하는 당사자를 위한 ‘기능성’이라고 말하죠. 이러한 신뢰감과 기능성을 다 잡기 위해선 고품질의 소재가 뒷받침되어야 해요.
딜레마는 고품질의 소재를 사용하면 가격이 비싸진다는 점에 있어요. 그런데 K-3B는 가격도 꽤나 합리적이에요. 바지는 20~30만원대, 셔츠는 10만원대, 재킷은 40만원대, 여성복 라인도 대부분이 30만원 안에서 구매할 수 있거든요. K-3B의 섬유에는 어떤 비밀이 있기에 이런 합리적인 가격대가 가능한 걸까요? 이번엔 초합리적 가격과 품질을 제공하는 K-3B 합성섬유의 세계를 파헤쳐 볼게요.
비합리적 베팅으로 직조한 초합리적인 성공
모브에 소토가 있듯 K-3B에도 든든한 배후가 있어요. 일본의 동쪽 이시카와현에 위치한 카지그룹이에요. 이시카와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합성섬유 산지 호쿠리쿠에 속해 있어요. 카지그룹이 1934년에 문을 열었을 땐 지역의 이점을 활용해 섬유 기계를 제조하는 카지 제작소를 운영하고 있었죠. 이후 직물의 카지레네, 실 가공의 카지나일론, 뜨개질의 카지니트, 봉제의 카지소 윙을 설립하며 사세를 확장해 나갔어요. 그렇게 섬유는 물론이고 기계 설비 부분까지 다루는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섬유 왕국이 되었죠.
ⓒツギノジダイ
하지만 1990년대 말 즈음에는 그룹의 사업 부문간 교류가 거의 없고 각사가 흩어져 자기만의 사업을 꾸려가고 있었어요. 매출의 대부분은 대기업으로부터 위탁 생산을 받고 있던 상황이라, 의뢰가 끊기면 단번에 경영이 악화되어버리는 잠재적 위기감을 안고 있었죠. 90년대의 카지그룹에게는 제품력만 있었을 뿐 개발력도, 영업력도 없었어요. 3대째 가업을 이어받은 카지마사 다카시가 회사에 들어온 것도 이 무렵이었어요.
그 때 당시는 카지그룹뿐만 아니라 일본의 섬유 산업 자체가 위기였어요. 버블 붕괴 후 일본의 많은 의류 회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긴 상황이었죠. 그는 산업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중국을 비롯해 한국, 대만, 동남아시아 등으로 시찰을 자주 나가면서 해외 공장들의 기세에 압도되었어요. 이렇게 부상하는 곳들과 가격 경쟁을 하면 이길 수 없는 데다, 품질 면에서도 금세 따라잡힐 게 불보듯 뻔했죠. 그는 회사의 방향타를 완전히 돌리기로 결심했어요. 외부 위탁 의존에서 벗어나 신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거예요.
ⓒK-3B
ⓒK-3B
위탁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신소재 개발이나 고부가 가치 상품의 제조가 필연적으로 필요했어요. 카지레네, 카지나일론, 카지니트가 서로 적극 협력하며 차츰 신기술을 개발해 나갔죠. 예를 들어 카지나일론이 ‘이런 실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하면, 카지 제작소에서 기계를 통해 실험을 해보는 식이에요. 기존의 기계로 개발하기가 어렵다면 아예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기까지 하면서요.
이런 과정을 거쳐 카지그룹은 머리카락보다 얇은 초극세 가공 실, 자르지 않고도 흐트러지지 않는 독자적인 천을 만들게 돼요. 일본을 넘어 해외에서도 찾는 합성섬유 기업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죠. 하지만 여전히 딜레마가 있었어요. 카지그룹은 품질과 브랜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고어텍스처럼 되고 싶었는데, 카지그룹의 브랜드 인지도 자체는 쉽게 오르지 않았던 거예요. 이를 위해 카지그룹은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져요. 자체 브랜드를 런칭하기로 한 거죠.
ⓒTO&FRO
그렇게 2014년에 경량 여행용품 브랜드 ‘투&프로’를, 2015년에 아우터를 중심으로 한 남성복 브랜드 ‘티모네’를, 그 다음으로 2019년에 ‘K-3B’를 런칭했어요. 특히 투&프로는 9그램에 불과한 세계에서 제일 가벼운 초경량 여행 파우치로 ANA항공과 컬래버레이션 라인을 출시하기도 했죠. 이처럼 자체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설비 시설까지 갖췄으니, 중간 조달 비용이 줄어들고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잘리지 않는 천을 만드는, 전천후 원단 브랜드
ⓒKAJIF
카지그룹은 2019년에 K-3B를 선보이기 전 자체 브랜드를 하나 더 런칭했어요. 카지그룹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합성섬유 원단 회사 ‘카지후’예요. 카지후는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크리에이터와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해요. 현재 TIIT, 앙리어레이지, 디스커버드, 지에다, 티모네, 요크 등의 브랜드가 카지후의 천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죠.
카지후의 목표는 합성섬유의 재미를 전달하는 거예요. 그래서 앙리어레이지의 드레스에는 가위로도 잘 잘리지 않는 커터블 천이 사용되고, 디스커버드에는 지퍼의 천에도 색상을 다는가 하면, 지에다에는 메탈릭한 빛을 뿜어내는 미래적인 느낌의 천을 제공해요. 합성섬유 원단의 매력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앙리어레이지 ⓒKAJIF
디스커버드 ⓒKAJIF
지에다 ⓒKAJIF
K-3B에도 카지후의 천이 사용돼요. K-3B를 위해 특별히 고안한 제로 시리즈에선 폴리우레탄 혼합 실로 4웨이 스트레치 원단을 만들어, 모든 방향에서 움직임이 쉽도록 했어요.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 발수성과 속 건성도 뛰어나죠. 이음새에 작은 방전 테이프를 넣어 정전기도 잘 일어나지 않고요. 초경량 무게로 접으면 콤팩트해져 출장길에도 유용한 아이템이에요.
ⓒK-3B
카지후는 원단의 재미와 신기술에 도전하는 것을 넘어, 지속가능한 사회에도 기여해요. 합성섬유는 천연섬유보다 환경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에 대해 여러 개선책을 실천하고 있죠. 공장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새로운 나일론 소재로 변형해 가방, 액세서리로 만들고 제조 과정에서 불합격해 폐기되는 원단은 절단과 재가공을 거쳐 재사용하는 ‘유턴’을 실시해요.
또한 카지후는 이제 합성섬유를 넘어 탄소 섬유 복합 재료와 같은, 환경친화적인 신소재 개발에도 뛰어들고 있어요. 비행기나 차량의 금속 와이퍼 블레이드를 대체할 경량화 재료로 각광받고 있죠. 카지후는 사업적으로 B2B 합성섬유 브랜드지만, 본질적으로는 좋은 원단의 옷을 입고 환경에도 기여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지구를 위한 브랜드예요. 미래에 대한 꿈이 있는 한, 카지후의 존재감도 쉬이 잘라지는 일은 없겠죠.
사람이 모여드는 섬유 공장
B2B 기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긴 했지만 카지그룹의 목표는 단순히 성공해 많은 돈을 버는 게 아니에요. 일본의 섬유 산업을 건강하게 만들고, 그 매력을 드높이는 데 목표가 닿아 있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섬유 산업을 사람이 모이는 업계로 만들어야 해요.
카지팩토리 파크 조감도 ⓒK-3B
2024년 가을, 그 목표의 일환으로 카지그룹은 65억엔(약 650억원)을 투자해 본사가 있는 이시카와현 가호쿠시에 ‘카지팩토리 파크’를 열겠다고 발표했어요. 11,000평방미터에 직물 공장 외에 투&프로, K-3B의 직영 매장, 호쿠리쿠의 공예품을 전시하는 셀렉트 숍과 카페를 오픈하겠다는 방침이죠.
공원을 개방해 마르쉐를 개최하거나 섬유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워크숍, 다른 섬유 산지와 제휴한 팝업 스토어 등도 열기도 할 거고요. 그뿐 아니라 태양광 발전과 폐수 재활용을 통해 섬유의 이미지를 보다 긍정적으로 바꾸어나갈 계획이에요. 창업 100주년이 되는 2034년에는 카지팩토리 파크에 월 3만명의 관광객이 모이는 미래를 그리고 있어요.
섬유에서 시작해 의식주를 넘어 관광업으로까지 확장하겠다는 이들의 바람은 실현될 수 있을까요? 두고볼 일이지만 K-3B의 ‘Super Rational’처럼 소비자 친화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키워드를 계속 뽑아내는 한, 카지그룹이 바라는 미래는 그렇게 멀지 있지 않을 거예요. 자체 브랜드를 출범한 지 10년도 안 되어 대중이 사용하고 기억하는 브랜드로 이미 자리매김했으니까요. ‘카지’와 함께하는 섬유의 가능성은 여전히 직조 중이에요.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