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도 계산서도 없는 라멘 가게의 본심

다시마와 면 키이치

2023.07.27

다시마는 일본에서 기쁨과 행운을 상징해요. ‘기뻐하다(よろこぶ)’라는 말과 다시마(こんぶ)의 발음이 비슷해서 좋은 기운을 가졌다고 여겨지죠. 그래서 새해가 되면 복을 부르기 위해 다시마로 장식을 하기도, 다시마에 생선을 말아먹기도 해요. 결혼식 답례품이나 출산 축하 선물로도 쓰이고요. 싸움을 앞둔 사무라이들에게는 승리를 가져다주는 부적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긴 시간동안 ‘기쁨’을 맡아왔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 행운의 상징이 일본 내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요. 불법 어획 때문에 수확량 자체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물가까지 오르면서 식탁 위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거든요. 특히 일본에서 최상품으로 여겨지는 홋카이도산 다시마 생산량은 1989년에 3만3505톤에서 2022년에 1만2600만톤으로 62%나 급감했어요. 비보를 듣고 있자니 마치 기쁨과 행운의 총량이 줄어든 것만 같죠.


다시마 판매점의 안타까움은 오죽할까요. 1902년, 교토에 문을 연 다시마 전문점 ‘이츠츠지의 다시마’ 5대 대표 쿠세 아키토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줄어드는 다시마 수요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죠. 그래서 그는 대뜸 ‘이츠츠지의 다시마’ 본점 2층에 라멘집을 ‘키이치’를 열었어요. 다시마 라멘을 팔겠다면서요. 다시마의 가치와 가능성을 알리겠다면서 하루 3시간만 운영하는 라멘집을 오픈한 쿠세 대표의 본심은 무엇일까요?


다시마와 면 키이치 미리보기

 #1. 공부하러 가는 라멘 가게

 #2.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라멘

 #3. 120년 간 업데이트 중인 다시마

 변주는 기본기에서 나온다




매년 입춘 전날이 다가오면 일본 전국의 편의점과 마트에서 판매 전쟁이 벌어져요. 절분(節分)을 앞두고 ‘에호마키’를 팔기 위해서죠. 절분은 ‘계절을 나누다’라는 뜻으로 원래 계절의 경계인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을 가리켜요. 그중에서도 한 해가 시작된다고 믿는 입춘 전날을 가장 중요시 여겨서 보통 입춘 전날 밤을 절분이라 부르죠. 이 날이 되면 다같이 에호마키를 먹으며 한 해의 행운을 기원해요. 


에호마키는 우리나라의 김밥과 비슷하게 생긴 일본식 김초밥인데요. 먹는 방법도 따로 정해져 있어요. 첫째, 운수가 좋은 방향을 향한 채로 먹어야 해요. 둘째, 잘라서 먹지 말고 통으로 먹어야 해요. 셋째, 복을 준다고 하는 일곱 신의 운을 받기 위해서 7가지 식재료를 이용해 만들어야 해요. 물론 각종 한정판 에호마키가 등장하며 식재료는 다양해졌지만, 에호마키는 절분이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에요.



ⓒセブン-イレブン


그런가하면 시험 전날 일본의 수험생들이 꼭 먹는 음식도 있어요. 바로 돈카츠죠. 우리나라에서는 ‘잘 붙으라’는 의미로 엿이나 찹쌀떡을 먹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돈카츠를 먹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요. 돈카츠의 카츠(かつ)가 승리의 승(勝)과 같은 음을 쓰거든요. 시험지와 싸워 꼭 이기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 해의 마지막날 꼭 등장하는 음식도 있어요. 토시코시 소바죠. 토시코시 소바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해를 넘기는 소바’라는 뜻인데요. 12월 31일 밤부터 새해까지 길고 가는 메밀국수를 먹으며 각자 새해 소원을 빌죠. 메밀국수의 얇고 긴 면처럼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에호마키, 돈카츠, 토시코시 소바처럼 한 나라의 문화가 되어버린 음식들이 있어요. 음식에 부여한 의미에 시간이 축적되면 한 국가의 문화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템이 되죠. 음식의 영역에서 문화의 영역으로 자리를 이동하게 되는 거예요. 이번에는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게요. 바로 다시마예요. 다시마는 일본에서 음식 이상의 의미죠.


다시마는 일본에서 기쁨과 행운을 상징해요. ‘기뻐하다(よろこぶ)’라는 말과 다시마(こんぶ)의 발음이 비슷해서 좋은 기운을 가졌다고 여겨지죠. 그래서 새해가 되면 복을 부르기 위해 다시마로 장식을 하기도, 다시마에 생선을 말아먹기도 해요. 결혼식 답례품이나 출산 축하 선물로도 쓰이고요. 싸움을 앞둔 사무라이들에게는 승리를 가져다주는 부적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긴 시간동안 ‘기쁨’을 맡아왔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 행운의 상징이 일본 내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요. 불법 어획 때문에 수확량 자체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물가까지 오르면서 식탁 위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거든요. 특히 일본에서 최상품으로 여겨지는 홋카이도산 다시마 생산량은 1989년에 3만3505톤에서 2022년에 1만2600만톤으로 62%나 급감했어요. 비보를 듣고 있자니 마치 기쁨과 행운의 총량이 줄어든 것만 같죠.


다시마 판매점의 안타까움은 오죽할까요. 1902년, 교토에 문을 연 다시마 전문점 ‘이츠츠지의 다시마(五辻の昆布)’ 5대 대표 쿠세 아키토(久世章斗, 이하 쿠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줄어드는 다시마 수요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죠. 그래서 쿠세 대표는 대뜸 ‘이츠츠지의 다시마’ 본점 2층에 라멘집을 ‘키이치(喜一)’를 열었어요. 다시마 라멘을 팔겠다면서요. 


120년 넘게 다시마만 판매해 온 전문점이 라멘집을 연다니 무슨 소리일까요? 게다가 이 라멘집의 영업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예요. 고객은
시간대별로 10명까지만 받고요. 다시마의 가치와 가능성을 알리겠다면서 하루 3시간만 운영하는 라멘집을 오픈한 쿠세 대표의 본심은 무엇일까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1. 공부하러 가는 라멘 가게

1층에 위치한 ‘이츠츠지의 다시마’ 매장 한 켠의 계단을 올라가면 ‘키이치’가 나와요. 두 매장은 같은 건물을 공유하고 있죠. 대표도 한 사람이고요. 그런데 2층으로 올라서는 순간 이 곳이 라멘 가게인지 아닌지 헷갈려요.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라멘집의 분위기, 구조와는 전혀 딴판이거든요. 


일단 들어서는 순간 눈길을 사로잡는 건 2층을 꽉 채운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에요. 테이블은 오직 하나 뿐이죠. 이 테이블 위에는 한 사람 당 3잔의 와인잔이 세팅되어 있어요. 그뿐일까요. 의자는 서로 마주보는 방향이 아니라 벽을 향해 일렬로 나열되어 있어요. 세련된 분위기의 매장에 쓰여있는 글자는 벽면의 ‘키이치(喜一)’라는 한자가 전부죠. 여기, 라멘집 아니었던가요?



ⓒ喜一



ⓒ시티호퍼스


11시, 12시, 13시의 3부제로 운영 중인 키이치는 예약을 통해서만 손님을 받고 있어요. 매 정각마다 최대 10명까지만 예약을 받으니 하루에 이곳의 라멘을 맛볼 수 있는 건 최대 30명이죠. 예약을 하고 나면 고객에게 이런 안내가 와요. 제 시간에 시작되니, 10분 전까지 도착을 부탁드린다고요. 15분이 지나면 다른 고객에게 불편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입장도 불가하죠. 매장의 구조부터 고객 안내문까지, 마치 대학교 강의를 떠올리게 해요. 아니나 다를까, 예약 인원이 전부 나타나면 쿠세 대표가 맞은편에 서서 사람들에게 정중하고도 비장하게 인사를 건네요. 마치 곧 프레젠테이션이라도 시작할 것처럼요.


곧 식사 주문을 받나 했는데, 이곳에는 메뉴판이 없어요. 이 라멘 가게는 45분 간 다시마 라멘을 코스로 제공하기 때문이에요. 개인별로 따로 메뉴를 주문할 필요없이 쿠세 대표의 리드만 따라가면 되죠. 모두가 같은 속도로 한 코스, 한 코스씩 차례로 밟아 나가면서요. 일종의 오마카세인 셈이에요. 자리에 앉아 첫 코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쿠세 대표가 테이블에 턱하니 박스 채로 다시마를 올려놓아요. 메인도, 에피타이저도 아닌 원재료를요. 그렇게 코스가 시작되죠.



ⓒ시티호퍼스


쿠세 대표가 준비한 것은 다시마 라멘 풀 코스가 맞아요. 다시마 냉침 육수, 다시마 오보로, 다시마 라멘, 다시마 초밥과 조림까지 꽉 채워 준비했죠. 그런데 이걸 고객에게 그냥 내어주는 게 아니라 토크와 곁들여 선보여요. 그에게는 무엇을(what) 선보이는지 만큼이나, 그 이유(why)와 방법(how)도 중요하거든요. 그래야만 이 식사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죠. 


테이블 위에 다시마 박스를 통째로 올려놓은 쿠세 대표는 다시마에 관한 일반론부터 풀어나가요. 수확량이 급감하는 현실이나, 이에 대한 소매점의 대처 등에 대한 이야기예요. 원산지별 다시마의 특징이나 맛과 향, 색의 차이도 짚어주죠. 다시마를 잘 보관하면 표면에 하얀 가루가 생기는데, 이게 바로 감칠맛의 성분이기 때문에 씻어내지 말라는 말도 덧붙여요. 곧이어 박스에서 다시마를 꺼내 부채처럼 뒤흔들며 손님에게 차례로 다시마 바람을 흘려보내요.



ⓒ시티호퍼스


고객들이 가공되지 않은 원재료의 향에 빠진 사이, 쿠세 대표는 세 종류의 다시마를 냉침한 육수를 와인잔에 따라요. 향을 맡았으니 이제 색과 맛을 직접 확인할 차례예요. 일본 요리의 대표 밑 국물이었지만 늘 조연이었던 다시마 국물을 집중 조명하죠. 제각각 다른 색을 지닌 다시마 육수를 테이스팅 하다보면, 다시마도 종류별로 개성이 강하다는 걸 알게 돼요. 냉침한 물을 종류별로 마셔보는 동안 부연 설명도 계속돼요. 그리고 세 종류의 다시마 국물을 다 마셔갈 무렵, 이번엔 쿠세 대표가 기계에 다시마를 고정시키고 가지런히 펼치기 시작해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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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다시마의 향과 맛을 보여준 후에는 무엇을 보여줄 차례일까요? 이번에는 다시마 깎는 법을 시연해요. 다시마는 깎는 방식에 따라 오보로콘부(おぼろ昆布)와 토로로콘부(とろろ昆布)로 나뉘어요. 오보로콘부는 장인이 숙련된 기술로 다시마 한 장의 면을 긁어 벗겨내요. 반면 토로로콘부는 여러 장의 다시마를 겹쳐 프레스로 압축한 뒤 측면을 썰어내고요. 쿠세 대표는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설명한 후에 직접 오보로콘부 만드는 법을 보여줘요. 그리고 갓 깎아낸 오보로콘부를 접시 위에 하나씩 올려주죠. 하얀 실타래로 변한 폭신폭신한 다시마를 입 안에 넣으면 장인의 기교를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喜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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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마가 사각사각 벗겨지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다시마를 후각, 미각, 청각으로 모두 경험한 셈이에요. 여기까지 오는데 벌써 20분이 훌쩍 지났어요. 키이치의 라멘 풀코스가 45분인 점을 감안하면 벌써 절반이 흐른 셈이죠. 아직 다시마 라멘은 구경도 못했지만 고객들은 홀린 듯 쿠세 대표의 이야기를 경청해요. 궁금한 점이 생기면 질문도 던지고요. Q&A를 자연스레 주고 받는 모습을 보면 마치 다시마 학교에 강의를 들으러 온 거 같아요. 학구열 넘치는 Q&A가 끝나면 오늘의 메인, 다시마 라멘이 나올 차례에요.



#2.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라멘

쿠세 대표가 준비한 오늘의 메인이자 하이라이트, 다시마 라멘의 모습을 보니 이제야 전체 코스의 구성이 이해가 가요. 제일 처음 시음했던 3가지 종류의 다시마 냉침 국물은 라멘의 베이스로, 칼로 긁어 벗겨낸 오보로 다시마는 라멘의 토핑으로 쓰였거든요. 지금껏 차례로 밟아온 과정이 다시마 라멘을 요리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봐도 무방하죠. 


그런데 이쯤되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요. 쿠세 대표는 왜 하필 다시마 라멘을 만들었을까요? 다시마 밑 국물과 다시마 토핑을 넣을 수 있는 일본 요리는 무궁무진한데 말이에요. 특히 식당의 매출을 생각하면 샤브샤브나 스키야키처럼 객단가가 높은 음식을 판매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시티호퍼스


쿠세 대표는 다시마 라멘을 통해 다시마의 가치를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라멘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 상식을 뒤집는 라멘을 만들면 다시마의 장점이 부각될거라 믿었죠. 라멘과 다시마를 믹스해서 사람들에게 반전 매력을 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키이치에서 판매하는 다시마 라멘을 보면 우리가 흔히 보던 라멘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에요. 일단 국물의 색깔부터 판이하게 달라요. 돼지뼈나 닭뼈를 육수로 사용해서 기름기가 많은 일반 라멘과는 달리, 키이치의 국물은 기름기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한 색이죠.


일단 라멘 국물이 될 물은 역침투막 정수 장치로 걸러낸 경도 0의 초특급 연수를 사용했어요. 경도는 물에 포함되는 미네랄 중 칼슘과 마그네슘의 양을 수치화한 거예요. 이 수치가 낮으면 연수, 높으면 경수라 하죠. 다시마의 성분은 연수에서 추출하기 좋아요. 그래서 초특급 연수에 3종의 다시마를 넣어 냉침했죠. 그리고 그 물을 끓여 어류, 가다랑어포, 오징어, 어패류, 과일, 찻잎 등을 우려내 염분을 조절했어요. 육류나 첨가물, 기타 엑기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죠.


그래서 쿠세 대표는 다시마 라멘을 내놓으며 국물을 끝까지 다 마시라고 권해요. 해독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라멘’을 맛보며 다시마의 저력을 실감해요. 그게 바로 쿠세 대표가 원했던 ‘다시마의 가능성이자 다시마의 재인식’이죠. 동시에 어디까지나 이 음식은 라멘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어요. 만약 다시마의 효능과 건강한 성분만 돋보이는 라멘을 만든다면 키이치라는 라멘 가게의 설득력이 반감됐겠죠. 다시마에 주목하기도 전에 고객으로부터 외면당했을 지도요. 


쿠세 대표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어요. 다시마가 제대로 주목받으려면 역설적으로 라멘의 기본기가 탄탄해야 했죠. 그래서 업계의 라멘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 다시마 라멘의 완성도를 높였어요.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도쿄의 라멘집 ‘긴자 하치고’로부터 노하우를 배우고, ‘교토 브라이튼 호텔’ 주방장의 감수를 받았죠. 특히 라멘의 핵심이 되는 면을 교토의 ‘라멘 토우히치’로부터 공수받았어요. 1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노포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초심자로 돌아간 거예요.


물론 이런 시도와 도전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무엇보다 쿠세 대표가 넘어야 했던 가장 높은 산은 다름아닌 아버지였죠. 오사카의 다시마 가게에서 경력을 쌓은 뒤 새로운 시도를 꿈꿨던 쿠세 대표와는 달리 아버지는 전통을 지키고 싶어했어요. 그야말로 매일이 충돌이었죠. 그러던 중 아버지가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3개월 간 매일 노하우를 전수받았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키이치’는 ‘이츠츠지의 다시마’와 한 몸인 것과 다름없어요. 두 가게의 출발지와 종착지는 같았으니까요.


마지막 코스도 같은 연유에서 비롯됐어요. 쿠세 대표는 ‘키이치’를 찾아온 고객의 마지막 시선이 ‘이츠츠지의 다시마’로 귀결되도록 했죠. 다시마 라멘 코스의 라스트 메뉴를 ‘이츠츠지의 다시마’ 제품으로 만들었거든요. 심플한 다시마 초밥 1개와 작은 다시마 조림이에요. 라멘을 먹으며 다시마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 고객에게 짧고 강렬하게 다시마의 맛을 보여줄 차례였어요. 다시 120년 전통의 다시마 가게 대표로 돌아갈 시간이었죠.



ⓒ시티호퍼스


이제 모든 식사가 끝났으니 계산서를 받을 차례예요. 그런데 이때, 쿠세 대표는 고객들에게 계산서 대신 명함 크기의 작은 카드를 내밀어요. 키이치는 메뉴판도, 계산서도 없는 가게였던 거죠. 작은 카드에는 ‘계산하시는 곳까지 가져가 주세요.’라는 말이 적혀 있어요. 게다가 계산을 하려면 라멘 가게가 위치한 2층이 아니라 ‘이츠츠지의 다시마’가 있는 1층 매장으로 내려가야 해요.


이 독특한 계산 과정을 ‘원콘부제(ワンコンブ制)’라고 불러요. 공식 홈페이지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원콘부제는 키이치에서 새롭게 만들어 도입한 제도예요. 완전 예약제로 운영 중인 키이치는 예약 완료 단계에서 안내 메일을 통해 원콘부제에 대해 미리 알려주죠. 키이치에서 식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1층 매장에서 필수로 다시마 제품을 하나 구매해야 해요. 라멘 가격은 정가이지만 개인별로 원하는 다시마 제품을 추가로 사는 거죠. 키이치에서 식사를 마친 고객들은 차례로 계단을 내려가 1층 매장을 둘러보기 시작해요. 각자 원하는 제품을 하나씩 손에 들고 계산대에서 최종 금액을 결제하죠.



ⓒ시티호퍼스


결국 쿠세 대표가 이루고 싶었던 것은 지난 선대들과 다르지 않아요. 고품질의 다시마 제품을 만들고, 이것을 널리 알린 후, 판매하고 싶어하죠. 목적지는 같은데 걸어가는 길이 약간 다를 뿐이에요. 그것이 다시마 가게이든 라멘 가게이든 두 매장을 지탱하는 것은 다름아닌 다시마였죠.



#3. 120년 간 업데이트 중인 다시마

물론 누군가는 ‘원콘부제’를 보고 추가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한, 고객 중심이 아니라 매장 중심의 제도라 말할 수도 있어요. 어찌됐든 고객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지출이 추가로 발생하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1층 매장을 둘러보다 보면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져요. 매장에 진열된 상품에서 독특함을 엿볼 수 있거든요.



ⓒ시티호퍼스


다시마 매장에는 국물내기용 다시마만 있는 게 아니에요. 다시마 조림, 다시마 젤리, 다시마 차, 다시마 감자튀김 등 상품군이 다양하죠. 가게가 120살을 먹는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거든요. 어느샌가 슈퍼마켓에서 가공한 다시마 육수도 팔기 시작했죠. 또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다시마를 사서 요리하는 가구가 줄어들었어요. 이에 대처하기 위해 기본 다시마뿐만 아니라 반찬용 다시마, 간식용 다시마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입지가 좁아지자 쓰임새를 늘린 거예요.



ⓒ시티호퍼스



ⓒ五辻の昆布


게다가 제품 디자인이나 패키지에서도 참신함을 엿볼 수 있어요. 교토의 장면들을 새겨넣은 다시마의 패키지 디자인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죠. 이건 그림을 좋아하는 쿠세 대표의 할아버지가 화가에게 직접 의뢰한 거예요. 맛의 개수만큼이나 그림의 종류도 다양하고요. 포장지에는 교토의 사계절과 신사, 전통 예술 등이 그려져 있어요. 매장에 찾아오거나 교토 여행을 온 사람이 기념품으로 구매하고 싶게 만들었어요.



ⓒ시티호퍼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제품은 각종 모형틀로 다시마를 작게 커팅한 간식용 다시마예요. 이츠츠지의 다시마 스테디셀러인 이 상품은 ‘합격 다시마’가 그 출발점이에요. 10여 년 전 당시 대표가 손자의 수험 합격 기념으로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에마(신사에 거는 소원을 비는 물품) 모양으로 합격 다시마를 만들었죠. 애초에는 판매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웃들의 요청으로 팔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에마 모양뿐만 아니라 ‘별토끼’, ‘하트’, ‘단풍’ 등 그 모양이 다양해졌고요.



ⓒ五辻の昆布



ⓒ五辻の昆布


쿠세 대표가 다시마를 라멘으로 재해석하기 전에도 120년 전통의 노포는 늘 새로움을 더해나가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때로는 상품군의 확대로, 때로는 네이밍과 디자인으로 ‘이츠츠지의 다시마’는 항상 업데이트 중이었죠. 업데이트와 변주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다시마의 탄탄한 품질이었어요.


“다시마는 사람 같아서 젊었을 때는 끈기가 있고, 나이가 들면 맛이 나요.”

- Kyo syoku net 인터뷰 중


이츠츠지의 다시마를 이끌던 선대 대표가 한 말이에요. 선대에서 120년 간 다시마 가게를 이어오며 포착한 다시마의 본질은 다름아닌 ‘시간’이었죠. 다른 식재료와는 달리 다시마는 시간을 더해갈수록 오히려 맛이 풍부해져요. 그건 교토에서 오랜 시간 다시마를 판매한 이츠츠지의 다시마도 마찬가지였고요. 오래되어 지루하거나 뒤처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관록이 쌓인 거예요. 그리고 관록을 이용해서 새롭게 시도하고 과감하게 변주했죠.



변주는 기본기에서 나온다

혹자는 일본의 요리를 가리켜 ‘뺄셈의 요리’라고 해요. 원재료에 계속해서 양념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나도록 불필요한 것을 제거시켜나가는 접근 방식 때문이죠. 그래서 일식에서는 밑 국물이 중요해요. 밑 국물에는 재료의 맛을 돋보이게 하고 조화시키는 힘이 있거든요. 그 중심에 다시마가 있어요. 다시마만 우린 물,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를 우린 물, 다시마와 건표고를 우린 물 등 종류도 다양하죠. 일식에서 다시마의 점유율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가시죠?


이렇게 다른 재료의 맛을 살려주는 다시마는 꼭 평생 조연 역할만 맡으면서 살아온 경력 많은 배우 같아요. 없으면 아쉬워서 찾게 되지만, 결과가 좋다고 해서 공을 돌리지도 않죠. 왠지 모르게 주연상보다는 공로상이 더 어울리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살펴보면 실상은 반대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제5의 맛으로 지정된 감칠맛의 원천이 바로 다시마거든요.


1908년에 일본의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는 다시마에서 글루탐산을 추출했어요. 그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도 아닌 새로운 맛이었어요. 훗날 우리가 ‘감칠맛’이라 부르게 된 맛이었죠. 이케다 박사는 이 맛에 ‘맛이 좋은 느낌’이라는 뜻의 우마미(UMAMI)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고 글루탐산에 나트륨을 결합한 ‘글루탐산나트륨’을 만들었죠. 이듬해에는 글루탐산나트륨의 제조 특허를 출원한 뒤 기업과 손을 잡고 판매해요. 그게 MSG의 시작이에요.


MSG가 다시마의 감칠맛에서 비롯되었다니, 꼭 다시마의 두번째 얼굴을 발견한 것 같아요.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았을뿐 다시마는 항상 음식의 킥을 담당하고 있었어요. 이 기본기로 어떤 새로움을 만들어낼지는 요리하는 사람의 몫에 달려있을 뿐이죠. 기본기와 새로움, 전통과 혁신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딜레마에 빠질 필요는 없어요. 탄탄한 기본기가 있을 때 새로운 변주가 가능하고, 변화는 곧 기본기의 강화로 귀결될 테니까요. 120년 역사를 가진 다시마 가게의 도전처럼요.




Reference

 이츠츠지의 다시마 공식 웹사이트

 #242 昆布専門店 5代目「久世章斗さん」, KBS Kyoto

 [결정적 한끗]①조선을 삼킨 '제5의 맛’, 정재웅, BizWatch

 바닷속의 검은 보석, 다시마를 다시 보자, 진재중, Ohmynews

 縁起物でもある昆布で幸せを引き寄せよう!,一般社団法人 日本昆布協会

 【2023年】コンビニが展開する恵方巻|セブン、ファミマ、ローソンの商品紹介, リテールガイド

 創業120年・京都の老舗昆布専門店「五辻の昆布」が創る究極の昆布の旨み『昆布ラーメン』グランドオープン!!2023年5月より1日30杯限定!, 株式会社いつつじ, PR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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