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철도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에키벤’이라고 불러요. 에키벤은 편리하고 경제적인 ‘문명’을 대표하는 편의점 도시락과는 달라요. 지역의 식재료와 명물을 전하는 하나의 ‘문화’죠. 그런데 철도의 발달과 함께 성장해 온 에키벤이 최근에는 위기에 직면해 있어요. 역설적이게도 이 또한 교통의 발달 때문이에요. 신칸센 등 고속 철도가 생겨 승차 시간이 줄어들자 에키벤을 사먹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거든요. 게다가 편의점이나 백화점 식품관에서도 에키벤을 대체하는 식품들이 줄지어 등장했죠.
전국의 에키벤 업체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요즘, 업계의 롤모델이 된 곳이 있어요. 바로 1908년에 요코하마에서 시작한 ‘키요켄’이에요. 키요켄은 스스로 에키벤의 숙명이자 한계를 깨고 에키벤계의 왕좌의 자리에 올랐어요. 그뿐 아니라 요코하마 시민의 소울 푸드로 자리매김했고요.
그 여정이 순탄하기만 했냐고요? 천만에요. 키요켄은 눈앞의 핸디캡과 한계를 극복하며 성장한 기업이에요. 그 뒤에는 요코하마 현지인들의 든든한 응원과 지지가 있었죠. 철도역에서 걸어나와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 키요켄의 이야기, 지금부터 만나볼게요.
키요켄 미리보기
• #1. 핸디캡이 만들어준 행운
• #2. 기차에서 집으로, 에키벤의 재발견
• #3. 사냥형 기업에서 농경형 기업으로
• #4. 콘텐츠가 된 요코하마의 소울 푸드
• ‘장면 제안’으로 극복한 에키벤의 숙명
일본에서는 철도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에키벤’이라고 불러요. 에키벤은 역을 뜻하는 ‘에키’와 도시락을 뜻하는 ‘벤또’를 합친 단어예요. 그냥 단순히 도시락을 기차역에서 판매하는 것과는 달라요. 지역의 식재료와 먹거리를 전하는 하나의 ‘문화’니까요. 1885년 7월 16일에 처음 시작되었으니, 일본 전역의 에키벤을 놓고 보면 약 140년의 역사를 가진 전국 식문화의 집합체인 셈이에요.
그렇다고 일본 전역의 식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 모든 기차역을 다 가볼 수는 없어요. 그런데 도쿄역에는 이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매장이 있어요. 이름은 ‘에키벤야 마츠리’, 에키벤 가게 축제라는 뜻이에요. 이곳은 일본 각지의 200가지 이상의 에키벤을 모아놓고 판매하는 에키벤의 안테나 숍이자 랜드마크죠. 여기서라면 직접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각 지역의 명물을 골라서 먹을 수 있어요.
일본 식문화의 다양성과 지역성을 함축해 놓은 덕분에 매장은 언제나 에키벤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로 붐비는데요. 그렇다면 에키벤의 미래는 장밋빛일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이 가게의 등장 배경에는 심각한 업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어요. 전국 에키벤 업체들이 곤경에 처해있거든요. 해마다 에키벤을 만들고 판매하는 업체가 줄어들고 있어서 430여 곳에 달했던 업체는 97곳(2019년 기준)으로 줄어들었어요.
이유는 뭐였을까요? 일단 기차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승차 시간이 확연히 줄어들었어요. 게다가 전국에 편의점이 생기며 편의점 도시락이 에키벤을 대체하기 시작했죠. ‘에키벤야 마츠리’는 이렇게 사라져가는 에키벤을 보다 못해 전국 에키벤 업체를 살려보고자 만들어졌던 거예요. 덕분에 지역의 에키벤 가게들이 생명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죠. 그런데 이 기특한 매장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스스로 자신의 갈 길을 만들어왔던 에키벤 가게가 있어요. 1908년에 오픈해서 1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요코하마의 명물 ‘키요켄’이에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키요켄은 마치 에키벤을 향해 불어오는 각종 역풍을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일찍부터 새로운 소비 행동을 만들어 왔어요. 하루에 판매되는 끼니만 3만 2천 개(2015년 기준)에 달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에키벤 가게가 됐죠. 그런데 그 여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에요. 일단 출발부터 핸디캡을 안고 시작했어요.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 가게의 상황이 비슷비슷할 텐데 어떤 핸디캡이 있을 수 있냐고요?
#1. 핸디캡이 만들어준 행운
키요켄은 1908년에 요코하마 역에서 일반 매점으로 시작했어요. 도시락이나 우유, 음료 등을 팔았죠. 일본 최고의 도시락 메이커라는 지금의 명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는데요. 당시 키요켄에서는 어떤 상품을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았어요. 사실 이건 꼭 키요켄의 탓만은 아니에요. 당시 요코하마 역은 선천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일단 요코하마 역은 도시락을 팔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어요. 사람들은 열차의 출발점인 도쿄역에서 에키벤을 사서 열차를 탔기 때문에 요코하마 역을 지나갈 즈음이면 이미 밥을 먹는 중이었죠. 반대 방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어요. 오사카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어차피 30분 후면 도쿄역에 도착하기 때문에 굳이 중간에 도시락을 살 필요가 없었어요. 그야말로 요코하마 역은 스쳐가는 통과역일 뿐이었죠.
키요켄의 초대 대표인 노나미 모키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곳에서는 팔지 않는 요코하마만의 명물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이야 요코하마가 매년 일본에서 살고 싶은 도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인구가 채 50만 명이 되지 않는 지방 도시였죠. 도시를 대표하는 특산품이나 명물이 있을 리 없었어요. 노나미 모키치가 고민 끝에 선택한 건 차이나타운에서 팔고 있던 슈마이였어요.
슈마이는 중국 전통 음식으로 밀가루 반죽 안에 다진 돼지고기 등으로 속을 채운 딤섬의 일종이에요. 일본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음식이었죠. 노나미 모키치는 딤섬 장인을 스카우트해서 슈마이 개발에 매진했어요. 그리고 1928년에 드디어 키요켄만의 슈마이를 선보이게 되죠. 이름은 ‘시우마이’. 보통 슈마이라고 불리지만 노나미 모키치의 발음법을 그대로 살렸어요. 중국에서의 실제 발음과도 유사했고요.
시우마이는 슈마이와 이름만 다른 게 아니었어요. 보존료나 첨가제는 일절 넣지 않고, 맛은 일본인의 미각에 맞춰 변형시켰죠. 또 승객들이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도 편하고 쉽게 먹을 수 있게 크기를 작게 만들었어요. 그렇다면 회심작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자신만만했던 노나미 모키치와는 달리 초기 매출은 신통치 않았어요. 무료 교환권을 나눠주기도 하고, 전단을 뿌리기도 했지만 기대 이하였죠.
반전은 1950년에 노나미 모키치가 낸 아이디어에서 시작돼요. 중국식의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어깨띠를 두른 ‘시우마이 아가씨’가 철도역에서 시우마이를 팔도록 했거든요. 그 당시 역에서 도시락을 파는 건 주로 남성이었기에 이들은 단번에 화제가 됐어요. 그 화제성이 어느 정도였냐면 1952년에는 신문 연재 소설에 ‘시우마이 아가씨’가 등장했고, 이듬해에는 그 소설이 영화화되기까지 했죠. 이를 계기로 키요켄의 시우마이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돼요.
ⓒkiyoken
판촉 캠페인으로 시도된 ‘시우마이 아가씨’는 단순히 판매와 홍보의 역할만 했던 게 아니에요. 노나미 모키치는 이 캠페인을 통해 전후의 침체된 요코하마에 활기를 다시 불어넣고 싶었죠. 한때 ‘시우마이 아가씨’로서 혼자 하루 300상자를 판매하기도 했던 토미코 씨는 ‘요코하마 역은 사람의 기분이 오가는 곳이었다’고 회상했으니, 요코하마를 위하는 키요켄의 마음이 실현됐던 거예요.
#2. 기차에서 집으로, 에키벤의 재발견
그 후 성공의 기세를 몰아 출시한 ‘시우마이 도시락’은 하루 2만 3,000개의 판매량을 달성하며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도시락으로 자리매김했어요. ‘시우마이 아가씨’ 등의 기발한 마케팅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록이죠. 대체 도시락의 핵심인 시우마이가 얼마나 맛있길래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요? 심지어 시우마이는 갓 쪄서 따뜻하게 먹어야 맛있는 음식이라, 데울 수도 없는 에키벤으로는 불리한 데 말이에요.
ⓒ시티호퍼스
비결은 ‘식어버려도 맛있는 도시락’에 있어요. 키요켄의 에키벤은 따뜻하지 않은, 식어버린 상태로도 충분히 맛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죠. 공장에서 만든 도시락을 철도역으로 가져오는 동안 이미 차가워져서 맛이 없어진다는 에키벤의 약점이자 한계를 역이용한 거예요. 그런데 보통 시우마이는 한번 식어버리면 돼지고기 비린내가 나요. 그렇다면 이 냄새를 어떻게 없앤 걸까요?
키요켄은 시우마이 도시락이 식어도 본연의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오랜 연구를 거듭했어요. 그 결과 3가지의 남다른 방법으로 접근했죠. 첫째로 시우마이에 오호츠크해 산 가리비를 대량으로 넣어 돼지고기의 비린내를 없앴어요. 일반적으로 시우마이는 다진 고기와 녹말, 껍질로 만드는데, 이와는 다른 노선을 추구한 거예요. 그 다음으로는 도시락의 또 다른 주인공인 밥을 바꿨어요. 물이 아니라 수증기로 밥을 지었거든요. 밥알에 증기를 쐬어준 덕분에 식감이 더욱 쫄깃쫄깃해졌어요. 마지막으로 도시락 통을 개량했어요. 키요켄이 만든 도시락 통은 얇게 깎아 자른 무늬목을 사용한 특수 용기로, 스스로 수분을 조절할 수 있어요. 도시락 용기도 일을 하게끔 만든 거예요. 이렇게 탄생한 시우마이 도시락이 에키벤의 세계에서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지니는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에키벤의 약점을 뛰어넘은 키요켄은 요코하마 현지에서 독특한 현상을 만들어냈어요. 철도역에서 판매되어 기차 안에서만 소비되던 에키벤이 직접 고객의 생활권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시우마이 도시락이 열차 안에서 먹는 ‘에키벤’에서 집으로 사 가는 ‘일상식’이 된 거예요. 에키벤이라는 정체성의 틀에 갇히지 않은 덕분에 전체 도시락의 하루 판매량은 3만 2,000개(2015년 기준)에 이르렀어요.
철도역에서 나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으로 들어선 ‘로드 사이드 매장’이에요. ⓒkiyoken
달라진 건 고객의 소비 방식만이 아니었어요. 키요켄도 시민 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죠.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사람들의 이동량이 줄어들자,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에서 매장을 오픈하기 시작했어요. 도보나 자전거로 오갈 수 있는 길목으로 들어간 키요켄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신경썼어요. 이동이 어려워져서 더 이상 여행의 기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자, 집에서도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집에서 도시락 시리즈’를 발매했죠.
ⓒkiyoken
그뿐 아니에요. 냉동 자판기를 만들어 설치해서 전자레인지 하나면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철도 개발에 기대어 성장해 온 키요켄의 에키벤은 365일, 24시간 요코하마의 로컬 식사 메뉴로 등극할 수 있게 됐어요.
#3. 사냥형 기업에서 농경형 기업으로
이 정도의 저력을 가진 에키벤이라면 전국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보여요. 실제로 1964년에 키요켄이 당면한 한 차례의 위기는 전국 진출의 계기를 만들어줬어요. 그 해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요? 신칸센이 개통됐어요. 그리고 그 해 처음으로 요코하마 역에서 전년 대비 매출이 줄어들었죠.
신칸센의 개통은 에키벤을 만드는 업체에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어요. 철도역 이용객이 늘어나면 에키벤을 사는 고객 수도 늘어날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였거든요. 이는 열차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에키벤의 판매량은 줄어드는 ‘에키벤의 역설’ 때문인데요. 우선 신칸센이 도입되며 더 이상 열차의 창문을 내리고 손을 뻗어 에키벤을 주고받는 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됐어요. 게다가 탑승객의 승차 시간이 줄어들자 열차 내에서 식사하는 고객 수도 감소했죠. 시대가 바뀌고 신기술이 도입되며 소비 방식이 변화한 거예요.
하지만 불리함을 보고만 있을 키요켄이 아니었어요. 2대 째 대표인 노나미 유타카가 판매 방식을 바꿔보고자 1967년에 ‘진공 팩 시우마이’를 개발했죠. 눈치채셨겠지만 음식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포장 방식으로 도입된 ‘진공 팩’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게 바로 키요켄이에요. 진공 팩 개발로 보존력을 높인 키요켄은 시우마이를 오사카에서도 판매하는 등 전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어요. 줄어든 판매량도 금방 회복했죠.
키요켄의 ‘진공 팩 시우마이’. ⓒkiyoken
이 시기에 키요켄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었어요. 전국 브랜드와 로컬 브랜드 중 어느 방향성을 택해야 할 지가 관건이었죠. 이때 3대 째 대표인 노나미 나오부미의 눈에 들어온 건 ‘일촌 일품 운동’이었어요. 각 시읍면이 세계에 통하는 특산품을 하나씩 만들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것으로 오이타현의 지사가 주도한 운동이었어요. ‘로컬한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국제적인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한 노나미 나오부미는 로컬 판매에 집중하기로 결단했어요.
무엇보다 이 결정을 도와준 건 요코하마 단골들의 목소리였어요. 이들은 애써 시우마이를 선물용으로 사서 시골에 갔더니 동네 슈퍼에서 팔고 있었다며 ‘어디서나 팔고 있다면 기념품이 될 수 없다’는 직언을 던졌죠. 키요켄이 철저하게 현지에 집중하는 로컬 전략으로 돌아서기로 하자 직원들은 반대의 의견을 내비쳤어요. 매출도 처음엔 줄어들었고요. 과연 이 선택의 결말은 어땠을까요?
다른 지역에서 키요켄 제품 판매를 중단하자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어요. 판매 지역을 좁히자 반대로 ‘현지감’이 생기고 지명도가 올라간 거예요. 누구나 요코하마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하는 기념품 같은 식사가 됐죠. 현지인의 사랑을 받는 데만 집중하며 신뢰 관계를 쌓아나가자 매출은 오히려 매년 성장했어요. 3대 째 대표 노나미 나오부미는 이것이야말로 ‘장사의 묘미’라고 표현했어요. 그리고 키요켄을 ‘농경형 기업’이라고 정의했죠.
“기업 중에는 농경형 기업과 사냥형 기업이 있어요. 사냥형 기업은 전 세계 시장이 있는 곳에서 사업을 해요. 그에 비해 농경형 기업은 지역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거기서 줄기를 펴고 가지를 치며 성장해 가는 유형의 기업이죠. 키요켄은 바로 농경형 기업의 전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노나미 나오부미 키요켄 3대 대표, tv tokyo 인터뷰 중
#4. 콘텐츠가 된 요코하마의 소울 푸드
키요켄이 현지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맛 하나 때문만은 아니에요. 시우마이 도시락의 가장 큰 강점은 현지인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는 데 있어요. 옛날부터 요코하마 사람들은 시우마이 도시락을 운동회나 친척 모임 등의 자리에서 먹었어요. 누군가와 함께 모이는 자리가 있을 때면 고르게 되는 요코하마의 소울 푸드였던 거예요. 이처럼 도시락을 먹고 향수와 정서,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린다는 건 편의점 도시락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워요.
그래서일까요? 시중에는 잡지 ‘먹는 방법 설명서 - 키요켄 시우마이편’이 있어요. 뷔페도, 코스 요리도 아니고 도시락 하나 먹는 데 무슨 설명까지 필요할까 싶지만, 시리즈물로 벌써 4편까지 나왔어요. 사람마다 시우마이 도시락을 먹고 즐기는 고유의 방법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심지어 4편에서는 AI 기반의 미각센서 기기가 어떤 조합과 순서로 먹을 때 도시락이 가장 맛있는지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쯤 되면 키요켄의 도시락이 가진 존재감과 위엄이 절로 느껴져요.
ⓒ食べ方学会
이처럼 요코하마 현지인의 추억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키요켄은 아예 다양한 인생 장면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어요. 3대 째 대표인 노나미 나오부미는 키요켄의 옛 본사 건물을 레스토랑과 웨딩홀로 재건축해서 새로운 명소를 만들었죠. 이 웨딩홀에서 결혼을 하면 거대한 ‘웨딩 시우마이’가 준비되는데요. 케이크를 자르는 순간 안에서 미니 시우마이가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진풍경이에요. 이 거대한 웨딩 시우마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움직일 수 없는 고객들을 위해 ‘집에서 점보 시우마이 미니’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판매되며 매진 행렬을 이어나갔어요.
게다가 2020년 8월에는, 도시락 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만에 첫 해외 점포를 오픈했어요. 단순히 매장을 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2023년에 그레이스리 타이페이 호텔에서 ‘키요켄 컬래버레이션 룸’을 선보였죠. 여행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는 키요켄의 맛을 외국인에게도 알리기 위해서였어요. 언젠가 외국인들도 신칸센 안에서 당연하다는 듯 시우마이 도시락을 먹고 있는 장면을 기대하며 준비한 기획이었죠.
ⓒkiyoken
ⓒkiyoken
이 곳에서 방 한 켠을 꾸미고 있는 흰색 자기는 ‘효짱’이라는 키요켄의 대표 캐릭터예요. 도시락 간장통으로 사용하던 밋밋한 흰색 자기에 만화가가 48개의 표정을 그려넣으며 1955년에 탄생했죠. 벌써 3대 째 효짱으로 이어지고 있는 효짱은 키요켄의 홍보부장이에요. 간장통으로서의 쓰임을 다하고도 고객의 삶 속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효짱을 젓가락 받침대, 냉장고 자석, 꽃병으로 재사용해요. 48개의 기본 버전뿐만 아니라 한정판 효짱을 모두 수집하기 위해 도시락을 몇 상자씩 구매하는 ‘효짱 콜렉터’까지 등장했죠.
흰색 자기의 간장통 ‘효짱’은 키요켄의 도시락 중 ‘옛날 그대로의 시우마이’와 ‘특제 시우마이’에 들어가 있어요. ⓒkiyoken
이렇게 키요켄의 도시락은 맛뿐만 아니라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콘텐츠로서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는 바로 ‘키요켄 공장’인데요. 키요켄은 누구나 공장을 둘러볼 수 있도록 예약제로 공장 견학 투어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 투어는 단순히 제품 제조라인을 오픈한 게 아니에요. 90분 간 진행되는 투어에서는 하루 80만 개의 시우마이가 제작되는 모습, 시우마이 아가씨의 역대 유니폼, 열차를 재현한 공간 등을 둘러볼 수 있어요. 그 자체로 어른들의 놀이터가 되기에 충분하죠. 그래서 투어 예약은 늘 3개월 치가 미리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현지인의 입맛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사로잡은 키요켄은 각종 콘텐츠로 팬덤을 쌓아나가고 있어요. 활약하는 무대도 철도역부터 잡지, 호텔, 웨딩 홀, 공장까지 무궁무진하죠. 역풍을 맞고 있는 에키벤 업계는 키요켄을 롤모델로 삼아 전략을 배우고자 열심이에요. 일본에서 에키벤이라는 세계 유일의 브랜드를 지켜나가기 위한 키요켄의 노력 또한 현재 진행형이고요.
시우마이 도시락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어요. 손수 끈으로 묶은 도시락은 요코하마 공장에서, 덮개형으로 만든 도시락은 도쿄 공장에서 만들어졌어요. 로컬 브랜드로서 지역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느껴지죠. ⓒkiyoken
‘장면 제안’으로 극복한 에키벤의 숙명
로컬력 하나로 승부해 온 키요켄은 한 마디로 요코하마의 명물이자 얼굴이에요. 시우마이 도시락이 등장한지 약 90년이 흘렀지만 레시피와 맛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요. 이건 추억의 맛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예요. 키요켄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전국 진출 대신 현지를 고집하며 동일한 전략과 똑같은 맛을 보여줄 생각일까요? 이에 대해 2022년부터 4대 째로 키요켄의 경영을 맡게 된 노나미 아키라는 의외의 답변을 들려줬어요.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고객에게 즐기는 방법이나 이용 장면 등을 계속 제안해 나가고 싶어요. 저희 제품은 장면의 주역이 되지 않아요.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야구 관전을 하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할 때 우연히 옆에 있어서, ‘그럼 살까?’ 라고 하는 존재로 남아있고 싶어요.”
- 노나미 아키라 키요켄 현 대표, 닛케이 X트렌드 인터뷰 중
실제로 키요켄은 지난 115년 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시우마이 먹는 장면’을 끊임없이 새롭게 연출해왔어요. 우선 초대 대표는 시우마이를 요코하마의 명물로 탄생시켰고, 2대 째 대표는 신칸센이 등장한 격동기에 ‘진공 팩 시우마이’를 출시했죠. 3대 째 대표는 본점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시우마이를 고급화시키며 공장 견학 투어를 시작해서 콘텐츠로도 즐길 수 있게 했어요. 그리고 지금, 4대 째 대표는 SNS를 시작해서 시우마이의 맛뿐만 아니라 정보 발신에도 힘쓰고 있죠.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보를 움직이겠다며 말이에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이렇게 키요켄은 대를 이어가며 새로움을 제시해왔지만 바뀌지 않은 게 딱 하나 있어요. 시우마이를 키요켄의 개별 자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키요켄은 자신들은 요코하마의 시민들로부터 시우마이와 도시락 제조, 판매 권리를 받은 거라고 말해요. 그래서 제아무리 오랜 시간 지켜온 도시락의 맛도 요코하마 사람들이 바꿔야 한다면 얼마든지 바꿔야 한다고 믿고 있죠. 키요켄의 에키벤은 요코하마 사람들이 키운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본래 에키벤은 판매 장소인 철도역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숙명이에요. 요코하마의 철도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키요켄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시대 흐름에 발맞추는 전략 덕분에 키요켄의 두 발은 자유로워진 지 오래예요. 이제 남은 건 키요켄이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 지켜보는 일 뿐이죠. 요코하마 시민의 사랑을 등에 업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이에요.
Reference
• 最強商品を生んだ 究極のローカル戦略!, TV TOKYO
• 駅弁記念日(7月16日)|意味や由来・広報PRに活用するポイントと事例を紹介, PR Times
• [鉄道150年]横浜駅を彩った「シウマイ娘」人生を変えたあのころ, NHK
• 善意によって誕生?「崎陽軒シウマイ弁当」が冷たくても美味しいワケ, KODANSHA
• 最強商品を生んだ 究極のローカル戦略! 崎陽軒社長・野並直文 2015年9月10日 TX カンブリア宮殿, Management Analystic & Strategy
• 「ウェディングシウマイ」に「シウマイ部屋」?横浜〈崎陽軒〉の攻めるヒット企画, BRU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