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신비한 곳이에요. 내로라하는 글로벌 브랜드들도 교토에 매장을 내면 교토 브랜드처럼 보여요. 그런데 브랜드뿐만 아니에요. 경우에 따라서는 음식도 교토화 되죠. 대표적인 예를 ‘코에 도넛’에서 만나볼 수 있어요.
코에 도넛의 도넛은 비주얼이 달라요. 보통의 도넛은 달콤함이 반짝이는 반면, 코에 도넛의 도넛은 달콤함을 무광으로 입힌 느낌이에요. 무언가 교토의 차분한 분위기를 도넛에 담은 듯하죠. 그런데 이건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에요. 도넛의 재료부터 도넛을 만드는 제법까지, ‘지산지소’의 철학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코에 도넛 이름에 있는 ‘코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지 않나요? 맞아요. 도쿄의 유명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예요. 그렇다면 코에는 어쩌다 교토까지 가서 도넛 가게를 오픈하게 된 걸까요?
코에 도넛 미리보기
• 매장 천장에 브랜드 컨셉을 담아내는 방법
• 도넛으로 즐기는 ‘지산지소’의 맛
• 잘 만든 캐릭터 하나, 브랜드 확장의 열쇠가 된다
• 가장 큰 위험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일
옷 가게를 만들려다 호텔을 오픈한 브랜드가 있어요. 바로 ‘코에(Koe)’예요. 코에는 ‘새로운 문화를 위한 새로운 기본(New Basics for New Culture)’이라는 컨셉 아래 패션, 베이커리, 카페 등의 영역에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쩌다 패션 매장을 내면서 호텔까지 열게 된 걸까요?
2015년, 코에는 도쿄 시부야에 패션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하려고 했어요. 영업시간은 여느 패션 매장처럼 11시에서 20시까지. 그런데 코에의 플래그십 매장 디자인을 의뢰받은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Suppose Design Office)’가 이 영업시간을 듣고는 코에에 역제안을 했어요. 패션 매장뿐만 아니라 호텔을 열자는 거였어요. 호텔 안에 패션 매장을 두면, 영업시간이 24시간인 호텔 덕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동시에 고객에게 코에라는 브랜드를 종합적으로 경험하게 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등장한 호텔이 ‘코에 호텔(Koe Hotel)’이에요. 이 호텔은 패션, 음악, 음식, 엔터테인먼트, 여행 등의 요소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어우러지는 것을 지향해요. 1층에는 베이커리, 카페, 레스토랑, 바 등 다양한 역할을 겸하는 식음료 업장과 팝업 행사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 그리고 호텔 리셉션이 있어요.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넓은 계단은 동선을 자연스럽게 2층의 패션 매장으로 이끌고요. 이러한 구성을 통해 음식을 먹으러 왔다가 패션을 만나고, 음악을 들으러 왔다가 음식을 경험하며, 여행을 하러 왔다가 클럽에서 춤을 추는, 우연하고도 다면적인 경험을 의도했죠.
ⓒKoe
이번엔 호텔 객실 내부를 한번 볼까요. 10개의 객실이 있는데요. 일본의 다실(茶室)에서 영감을 받아 고요하고 정갈한 분위기로 디자인했어요. 여기에는 코에가 지향하는 바가 담겨 있어요. ‘코에(声)’가 일본어로 목소리를 뜻하는 것처럼, 코에는 내 안의 목소리와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새로운 기본’을 만들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투숙객들이 호텔의 공용 공간에서는 세상의 목소리를 듣지만, 객실에서만큼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한 거예요.
그런데 2022년 1월, 코에 호텔이 별안간 ‘체크아웃 파티’를 열었어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코로나19 팬데믹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된 호텔의 영업 종료 파티였어요. 양일 간 진행한 이 파티에는 수많은 DJ와 고객들이 함께 했어요. 새로운 문화를 꿈꾸던 코에 호텔다운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그렇다면 체크아웃 파티를 끝으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코에의 여정도 멈춘 걸까요?
코에 호텔은 문을 닫았지만, 아쉬워하긴 일러요. 2018년에 오픈했던 도쿄의 코에 호텔에 이어 2019년에 교토에 문을 연 ‘코에 도넛(Koe Donuts)’이 있으니까요. 다행히 코에 도넛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견뎌내고 성업 중이에요. 심지어 교토 여행객들에게 일본 혹은 교토의 맛을 느끼러 가는 도넛 가게로 유명해졌죠. 코에 도넛은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서양의 빵인 도넛으로 전통의 도시인 교토의 명소가 되었을까요?
ⓒ시티호퍼스
매장 천장에 브랜드 컨셉을 담아내는 방법
코에 도넛은 첫 번째 매장을 교토에 열었어요. 현재로서는 일본 전역에서 유일한 매장이죠. 도쿄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던 코에 브랜드가 도넛 매장의 위치를 느닷없이 교토로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어요. 교토는 일본에서 가장 일본스러운 도시거든요. ‘일본스럽다’는 것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떻게 정의하던 간에 교토는 일본 전통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어요.
서울 경, 도읍 도를 쓰는 교토(京都)라는 이름처럼, 교토는 794년부터 1869년까지 무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본의 수도였어요. 당시 일본의 중심으로서 여러 문화가 도시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죠. 게다가 ‘마치야’라고 불리는 일본의 전통 목조 건축 양식이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는 도시이기도 해요. 생활과 풍경에 전통스러움이 깔려 있는 거예요. 그러니 교토는 일본의 맛을 재해석한 도넛을 판매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였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도넛 판매만 하는 게 아니에요.
코에 도넛 매장은 갓 만든 도넛을 즐길 수 있는 ‘체험식 도넛 공장 겸 카페’를 표방해요. 도넛을 사러 온 고객들이 도넛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먹을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오픈 키친 형태로 된 도넛 공방은 공정에 따라 토핑 바(Topping Bar), 플로트 팩토리(Float Factory), 파우더 팩토리(Powder Factory) 등으로 구분되어 있죠. 이렇게 도넛을 만드는 공정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 도넛에 대한 신뢰도 높아지고 볼거리도 늘어나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도넛으로 즐기는 ‘지산지소’의 맛
앞서 설명했듯 코에 도넛은 일본의 식재료를 이용해 친환경적인 일본식 도넛을 선보이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이를 매장에 반영한 건 공감이 가요. 그렇다면 도넛에는 이 컨셉을 어떻게 담아냈을까요? 코에 도넛은 유기농(Organic), 자연 유래(Natually Derived), 지산지소(Local Production for Local Consumption) 등 3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도넛을 만들어요. 이미 재료 선정에서부터 친환경, 교토산이나 일본산을 기준으로 삼는 거예요.
ⓒ시티호퍼스
이렇게 선정한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기 위해 조리법은 최대한 심플하게, 가능한 한 매장에서 수작업으로 도넛을 굽는데요. 코에 도넛에는 5가지 종류의 도넛이 있어요. ‘효모 도넛(Yeast Donuts)’, ‘올드 패션드(Old Fashioned)’, ‘프렌치 크룰러(French Cruller)’, ‘코에(Koe)’, ‘구운(Baked)’으로 구분하죠. 앞의 3가지는 서양식 도넛이고, 코에는 코에 도넛에서 자체 개발한 방식으로, 구운은 말 그대로 튀기지 않고 구워 만든 도넛이에요. 어떤 종류건 간에 일본의 식재료 혹은 일본식 제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요.
예를 들어 볼게요. ‘폭신한 일본 밤 몽블랑’ 효모 도넛에는 홋카이도산 밀가루, 교토 미야마산 달걀 등이 들어가요. ‘와산본 슈가 올드 패션드’는 일본 전통 설탕인 ‘와산본’을 도넛에 입혔어요. ‘미타라시 크룰러’는 일본에서 당고에 뿌려 먹는 달콤하고 짭짤한 소스인 미타라시 소스를 프렌치 크룰러에 바른 도넛이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일본스러운 도넛은 코에의 종류 중 하나인 ‘모찌 모찌’ 도넛 시리즈예요. 찹쌀로 만든 일본식 떡인 모찌를 도넛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플레인 맛을 비롯해 교토산 검은콩, 교토산 말차, 일본산 딸기 등 다양한 일본의 식재료를 첨가한 맛이 있죠.
여기에다가 코에 도넛은 교토의 전통 디저트를 도넛으로 재해석해 한정 메뉴로 출시하기도 해요. 2022년 봄에는 ‘오하기 도넛’을 개발했는데요. 오하기는 찹쌀과 멥쌀을 섞어 찐 다음 팥앙금을 묻힌 일본식 경단이에요. 코에 도넛은 수제 팥소로 도넛 반죽을 감싸 오하기 도넛을 만들었어요. 또한 그해 가을에는 둥근 경단 여러 개를 하나의 꼬치에 꽂아 먹는 ‘당고’를 도넛으로 재해석한 ‘당고 도넛’을 선보였고요. 모찌 모찌 도넛 반죽으로 당고 모양의 도넛을 개발한 거예요. 이때 교토의 차 전문점 ‘유겐(Yugen)’과 함께 팥, 말차, 딸기, 초콜릿 등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6가지 맛을 출시했어요.
ⓒKoe donuts
특히 당고 도넛은 맛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일본의 문화를 반영했어요. 일본에는 음력 8월 15일양력으로 9월 중순~말에 보름달을 구경하는 ‘츠키미’라는 이벤트가 있어요. 이때 달에게 풍작을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달처럼 둥근 음식인 당고를 만들어 먹죠.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 개발한 당고 도넛은 일본의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일본 전통문화를 알리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잘 만든 캐릭터 하나, 브랜드 확장의 열쇠가 된다
코에 도넛은 교토라는 지역성을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중심에 두었지만, 오히려 감각적이고 모던한 브랜드예요. 매장 인테리어와 도넛을 요즘 시대의 눈높이에 맞게 재해석해서이기도 한데, 코에 도넛의 비주얼을 담당하는 캐릭터 덕분이기도 해요. 코에 도넛의 메인 캐릭터는 도넛을 너무 좋아해 머리가 헝클어진 채로 도넛을 들고 있는 ‘닥터 도넛’이에요. 선으로만 그려져 있어 미니멀하면서도, 도넛 먹는 장면을 위트있게 표현했죠.
ⓒ시티호퍼스
코에 도넛의 캐릭터는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바 유(Nagaba Yu)’의 작품인데요. 그는 2014년부터 흑백 선으로만 구성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곧 그의 화풍이 되었어요. 나가바 유의 화풍은 일본의 시티 보이들을 위한 잡지 〈POPEYE〉의 표지를 장식하며 유명해졌어요. 이후에도 가루비(Calbee), 컨버스(Converse) 등 유명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하면서 인지도를 높여갔죠.
나가바 유는 코에 도넛의 캐릭터를 의뢰받았을 때 ‘상징적이고 임팩트 있으면서도, 동시에 친근하고 오랫동안 가까이 있어도 거슬리지 않는’ 캐릭터를 개발하고 싶었어요. 교토의 중심지에 위치한 코에 도넛을 대표하는 캐릭터이니, 국내외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 캐릭터가 될 거라 생각해서죠. 다소 어려운 목표였지만 그의 화풍을 살려 추구했던 바를 빠짐없이 갖춘 캐릭터를 완성했어요.
시선을 사로잡는 코에 도넛의 캐릭터는 매장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요. 먼저 매장 안쪽의 벽면에 붙어 있는 닥터 도넛 네온사인은 코에 도넛 매장의 포토 스팟이에요. 포토 스팟 앞에는 코에 도넛의 캐릭터를 활용한 포토 토퍼들이 놓여 있는데요. 사진을 찍을 때 무료로 활용할 수 있어 재미를 더해주죠. 이렇게 포토 스팟에서 토퍼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SNS를 타고 하나뿐인 코에 도넛 매장의 존재감을 널리 퍼뜨려요.
또한 닥터 도넛은 굿즈의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해요. 코에 도넛의 굿즈는 인기가 좋은데, 그 중심에 닥터 도넛이 있거든요. 단순히 추가 매출을 위한 캐릭터 굿즈를 파는 게 아니에요. 코에 도넛은 굿즈에도 브랜드 철학을 반영하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에코백, 텀블러 등을 제작하고 머그컵은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티셔츠는 유기농 면으로 만드는 식이에요. 여기에 상징성, 임팩트, 친근함을 두루 갖춘 브랜드의 캐릭터를 활용하니, 별도의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운영할 정도로 어엿한 커머스 비즈니스로 자라잡았어요.
ⓒ시티호퍼스
가장 큰 위험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일
패션 브랜드로 시작한 코에가 도넛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의류도, 디저트도 모두 ‘라이프스타일’ 영역에 속하지만 엄연히 다른 분야예요. 게다가 일본 전통문화의 산실인 교토까지 가서, 서양식 빵인 도넛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해 히트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코에의 내공은 리스크를 감수하며 수차례 새로운 시도를 했던 경험에서 나와요. 코에는 코에 도넛이나 코에 호텔 이전에도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왔어요. 2016년에 도쿄에서는 집을 테마로 ‘코에 하우스’라는 라이프스타일 매장을 운영했죠. 1층에는 유기농 샐러드 및 식료품 가게 ‘코에 그린’이 있었고, 지하부터 지상 3층에 걸쳐서는 의류, 화장품 등을 판매했어요.
도쿄 지유가오카에 있었던 코에 하우스 ⓒKlein Dytham Architecture
한편 2020년에는 오카야마 시에서 ‘코에 피자’라는 피자 가게를 열기도 했어요. 코에 피자는 이시야마 공원 내에 있는 아웃도어 피자 가게로, 공원에서 피자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어요. 코에 도넛처럼 지산지소를 원칙으로 일본산 식재료를 사용해 요리한 화덕 피자를 판매했죠. 탁 트인 자연경관을 보며 갓 구운 피자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매장의 컨셉과 공원이 잘 어우러진 곳이었어요.
오카야마시에 오픈했던 코에 피자 ⓒArtless
결과는 어땠냐고요? 아쉽게도 코에 하우스는 2020년 2월에, 코에 피자는 2022년 4월에 모두 문을 닫았어요. 모두 코로나19 팬데믹을 버티지 못하고 영업을 종료한 거예요. 하지만 아깝거나 안타깝다고 생각하진 않아도 괜찮아요. 코에라는 브랜드를 확장하기 위해 시도했던 그간의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코에로 성장했을 테니까요. 오히려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코에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코에 호텔은 종료되었지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코에의 사업은 확장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코에 피자와 비슷한 시기에 문을 닫은 코에 호텔이 인스타그램에 마지막으로 올린 포스팅이에요. 폐업 소식을 알리며 끝부분에 덧붙인 말이었죠. 하나의 사업 영역은 쉬어갈지라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하고자 하는 코에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는 혹은 않겠다는 의미예요. 의례적인 인사말 같은 이 멘트도 코에의 포스팅에서 발견하니 무게감이 남달라요. 문을 닫는다는 소식인데도 앞으로 문을 열 곳들이 더 기대되기도 하고요.
Reference
• Hotel Koe Tokyo, Suppose Design Office
• 【koe donuts】秋の味覚を詰め込んだ『autumn donuts collection』より第3弾・人気の“おはぎドーナツ”から秋の限定ボックスが新登場!, PR Times
• 【koe donuts】もちもち食感のドーナツがお団子に!十五夜を彩る『dangoドーナツ』が登場, PR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