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식업계가 유례 없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어요. 외식업계의 폐업률은 나날이 증가하고, 외식업소 영업이익은 반대로 감소 중이죠. 그런데 그 와중에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식당들은 손님들의 줄을 세워요. 그 중에서도 ‘고깃집’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요.
‘양인환대’, ‘청기와타운’, ‘몽탄’, ‘산청숯불가든’ 등 이름만 들어도 핫한 이 고깃집들이 대표적이에요. 맛집 웨이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산청숯불가든의 일 평균 웨이팅 인원이 1천명을 넘는다고 해요. 불황에도 연일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이 고깃집들은 무엇이 특별한 걸까요?
놀랍게도 이 고깃집들을 기획한 사람은 동일 인물이에요. 바비 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미트포포 정동우 대표가 그 주인공이죠. 시티호퍼스 팀이 미트포포 정동우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기의 비결부터 한국식 고깃집의 현재와 미래까지 알아 봤어요. 가장 핫한 고깃집들을 기획한 정동우 대표지만, ‘좋은 식당’에 대한 그의 정의는 남달랐는데요. 과연 정동우 대표가 바라본 외식업의 흐름과 그가 말하는 좋은 식당이란 무엇일까요?
K-바베큐 미리보기
• #1. ‘QSC’는 기본, ‘문화 코드’가 경쟁력이 되다
• #2. 이제는 ‘드레스 업’에서 벗어나야 할 때
• #3. 코리안 바비큐, K-푸드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 고기, 그 다음엔 ‘국물’이 온다
외식업계가 불황입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2분기 기준 외식업 폐업률은 2022년 2.7%, 2023년 4.0%, 2024년 4.2%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외식업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3%나 감소했죠.
지속적으로 오르는 물가가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지난 2024년 9월 2일, 통계청은 소비자물가지수가 114.13으로, 4개월 연속 2%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어요. 전년 동기 대비 2.6% 상승한 수치죠. 동시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데이터에 따르면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는 2024년 2분기 75.60으로 1분기 대비 3.68포인트 떨어졌어요. 2023년 4분기 이후 70포인트대에서 오르지 않고 있죠.
한 마디로 물가는 오르고, 사람들은 외식을 꺼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길게 웨이팅이 늘어서는 곳들은 여전해요. 그들 중에는 눈에 띄게 ‘고깃집’이 많은데요. 대표적인 사례로 마곡과 을지로의 핫플레이스, ‘산청숯불가든’ 을지로점은 일 평균 웨이팅이 캐치테이블 기준 1천 명이 넘어요.
외식 불경기에도 고깃집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외식 시장을 이끌고 있는 ‘코리안 바비큐’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시티호퍼스 팀이 정동우 미트포포 대표를 찾아가 인터뷰했습니다. 정 대표는 양갈빗집 ‘양인환대’를 시작으로 ‘청기와타운’, ‘몽탄’ 등 다양한 고깃집을 기획해 왔어요. 최근 세광그린푸드와 협업해 오픈한 ‘산청숯불가든’은 2023~2024년 가장 핫한 돼지고기 집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만큼 많은 손님들을 줄 세우죠.
정동우 대표에게 외식업의 전반적인 흐름과, 고깃집의 현재 트렌드를 물었습니다. 그는 ‘이제 꾸미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에 집중해, 현 시장을 설명했습니다.
시티호퍼스와 인터뷰 중인 정동우 미트포포 대표. ⓒ시티호퍼스
#1. ‘QSC’는 기본, ‘문화 코드’가 경쟁력이 되다
근 10년 동안 외식업의 흐름은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해 있었습니다. 10년 전에는 소위 외식업의 기본이라고 하는 ‘QSC’, 즉 퀄리티(Quality), 서비스(Service), 청결(Clean)의 요소가 전부였다면, 최근 10년 동안에는 QSC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야만 경쟁력을 가지게 됐죠. 특히 10년 동안 식당은 단순히 밥 먹는 장소가 아닌, 내 취향을 드러내는 문화 코드로 진화했어요.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대중과 전문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이는 SNS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고 정동우 대표는 말하죠.
“예전에는 전문성 위주의 플랫폼과 일상을 올리는 플랫폼이 나뉘어져 있었어요. 소수의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전문적으로 외식 블로그를 운영하는 반면, 싸이월드와 같은 SNS에서는 오늘 내가 먹은 음식을 단순히 기록했죠.
인스타그램이 발달하면서 그 두 가지 영역이 한 곳으로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장의 사진에 전문적인 분석을 덧붙일 수도, 가볍게 글을 쓸 수도 있어요. 이런 플랫폼들이 많아지면서 전문가와 대중이 함께 참여하는, 참여형 콘텐츠가 많아졌죠.”
-정동우 미트포포 대표
동시에 ‘라이프스타일’,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취향’의 영역을 바라보기 시작한 겁니다. 특히 음식은 의식주 중 가장 자주 접하는 카테고리죠. 내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데 적합해요.
“음식점이 이전에는 식당으로서의 가치, 나의 생활에 필수적인 한 끼를 먹는 공간이었다면, 근 10년 동안 ‘한 끼를 경험한다’는 개념으로 바뀌어왔죠. 단순히 고깃집뿐 아니라 전체적인 외식의 흐름이 ‘라이프스타일 문화’가 되어갔습니다.”
-정동우 대표
외식업은 이제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됐습니다. ‘나는 미니멀한 라이프를 지향해. 그래서 오라리를 입고 이런 카페를 가지.’, ‘나는 뻔한 건 싫어. 라멘도 돈코츠라멘은 지겨워. 그래서인지 이번 홍대에 새로 오픈한 토리파이탄은 특별해 보였어.’, ‘나는 특별한 걸 좋아해. 이번에 한남동에 새로 오픈한 다이닝은 샌프란시스코 베누에 있던 셰프가 나와 차린 가게라 꼭 한 번 가야 해.’와 같이 표현하는 수단이 된 거죠.
이 흐름을 타고 많은 식당과 카페들이 ‘기획’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빨랐던 영역이 카페와 베이커리였죠. 2010년대 브랜딩이 잘 된 작은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기를 기억하실 거계요. 반면, 고기 같은 한식 아이템은 비교적 최근 ‘기획된 식당’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오픈한 우대갈빗집 ‘몽탄’, 2023년 오픈한 지리산 흑돼지 구이집 ‘산청숯불가등’ 등이 대표적인 예죠.
ⓒ몽탄
“당시 젊은 사람들에게 한식은 ‘맛집’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내가 늘 먹는 외식인 거고, 그들에게 맛집은 여자친구랑 가는 특별한 파스타집, 브런치 카페 같은 곳들이었죠. 그러다 보니 컨셉화가 덜 된 한식, 특히 고깃집이 저와 같은 기획자에겐 기회의 창으로 보였던 겁니다. 아직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카테고리였으니까요.”
-정동우 대표
특히 정동우 대표는 ‘기획된 고깃집’을 만드는 선두주자였어요. 그는 2017년 양갈빗집 ‘양인환대’를 시작으로 ‘몽탄’, ‘청기와타운’ 등의 기획을 맡았고, 잠실의 알등심 고깃집 ‘고도식’으로 직접 운영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2023년 세광그린푸드와 협업해 오픈한 ‘산청숯불가든’은 그야말로 그 해 가장 뜨거운 고깃집으로 주목 받았죠.
산청숯불가든의 남다른 기획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가게에 들어가면 어느 산자락의 산장에 온 것 같아요. 앞에서 찌개를 끓이는 주방은 마치 아궁이를 떼는 부엌 같고, 뒤에서는 소쿠리에 야채를 잔뜩 쌓아 놓은 채 재료를 손질하고 있어요. 마치 전통 시장을 보는 것 같죠. 이 모든 게 소비자의 ‘정서’를 끌어내기 위한 기획이었어요.
“산청숯불가든의 키 포인트는 ‘해방감’입니다. 기획을 했던 2021년 즈음은 팬데믹이었어요.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죠. 실제로 캠핑 문화가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들은 본 투 비 자연이구나. 그 자연적인 해방감을 고깃집에 넣었죠.”
-정동우 대표
ⓒ산청숯불가든
산청숯불가든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차 타고 교외로 나가 외식을 했던 오리 구이집, 가령 남양주의 ‘온누리장작구이’, ‘약수촌’과 같은 이미지를 의도했어요. 주차장이 넓고, 정원과 덩굴이 있어 밥 먹으러 갔지만 나들이 간 듯한 인상을 주죠. 도심에 위치한 산청숯불가든은 그 대신 내부 인테리어와 식재료에 더 신경 썼어요. 나무 자재를 주로 사용해 토속적인 인테리어에 집중했고, 산청이라는 지역에 맞게 생수 역시 정수기 물이 아닌 ‘지리산산청샘물’을 사용해요.
‘고기’는 늘 일상 속에 있던 카테고리였어요. 그런데 2020년대 이후, ‘고깃집이 뜬다’는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죠. 고깃집은 품목에 관계 없이 성장세예요. 1990년대 인기였던 냉동 삼겹살은 2023년 3월 기준 전국에 약 1,780개 점포였지만 1년 6개월 만에 3,000여 개 이상으로 점포가 늘어났어요. 신당동의 ‘금돼지식당’은 2024년 역시 미쉐린 가이드 맛집으로 선정됐죠. 랭키파이 데이터에 의하면, 9월 3주차 기준 몽탄은 1위 명동교자를 잇는 ‘서울 맛집’ 2위예요. 오픈 이래 줄곧 상위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죠.
#2. ‘드레스 업’에서 벗어나야 할 때
물론 이런 인기에는 부작용도 있어요. 몰리는 식당에만 소비자가 쏠리는, 이른바 ‘외식업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에요. 몰리는 곳에만 소비자가 몰리는 현상은 불경기, 그리고 소비자가 외식업에 기대하는 바가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예전 경기가 어려울 때는 쉽게 말해 ‘가성비’를 위주로 소비가 이뤄졌습니다. 근데 이제는 싸고 좋은 게 너무 많거든요. 가성비 문제가 아니라 이걸 먹었을 때 ‘의미’가 중요해진 거예요. 불경기로 인해 전체적인 소비가 모두 줄었기 때문이에요. 예전에는 내가 삼시 세 끼를 배불리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일주일 내내 외식을 할 수 없으니 주말 저녁 한 끼를 가장 가치 있게 소비하고 싶어하는 마음이죠. 다섯 번의 기회가 한 번으로 줄어들면 당연히 2순위, 3순위는 밀리고 1순위만 가는 거예요.”
-정동우 대표
정 대표는 예전에는 상위 30%가 살아남는 게 외식업이었다면, 갈수록 상위 10%만 살아남는 시장으로 변해간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외식에 대한 수요가 줄었고, 경쟁이 심화되고 있죠.
그렇다면 10% 안에 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은 이전과 동일해요.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기획’, ‘브랜딩’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어요. 소비자가 ‘컨셉추얼한 브랜드’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거예요.
“결국엔 ‘기억에 남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마케팅과 브랜딩, 기획의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기억에 남기 위해 컨셉추얼한 기획을 하는 가게들이 많아졌죠. 하지만 이젠 소비자들이 ‘드레스 업’ 된 식당을 너무 많이 접하면서 눈이 피곤해지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꼭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서 인테리어를 꾸미고, 컨셉을 정하는 ‘드레스 업’만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게 운영이든, 서비스든, 더 다양한 방법으로 기억에 남을 전략을 생각해내야 해요.”
-정동우 대표
브랜딩만이 정답인 시대는 갔어요. 더 다양한 전략을 사용해야 10% 안에 들 수 있죠. 정 대표가 제안하는 한 가지 전략은 ‘역사적인 맥락’을 활용하는 거예요. ‘기획적으로 꾸며진’ 식당에 소비자가 피로감을 느낄수록, 본질을 찾으려 하고, 역사와 맥락은 꾸며낼 수 없는 본질이기 때문이죠.
‘맥락’을 사용한 가게 중 하나가 평양냉면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숭례문 인근의 ‘서령’이에요. 2024년 5월 강화도에서 숭례문 근처로 자리를 옮겨 문을 연 서령은 사그라들고 있는 ‘평냉 열풍’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요. 오픈 직후부터 반응이 뜨거운 이유는 소비자가 서령의 ‘맥락’을 이해하기 때문이죠.
ⓒ서령
서령은 이경희, 정종문 오너셰프가 운영해요. 두 셰프는 부부이자 공동 창업자죠. 두 사람은 2001년 강원도 홍천에 ‘장원막국수’를 열었어요. 얼마 안 가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고, 지금도 강원도를 찾는 여행객들이 꼭 들르는 막국수 집이죠. 이들에게 기술 전수를 받아 오픈한 막국수 집이 용인의 ‘고기리 막국수’예요.
두 셰프는 2019년, 장원막국수를 넘기고 몸을 쉬기 위해 강화도로 떠났어요. 그 곳에서 소박하게 하고 싶은 음식을 하자는 마음으로 연 곳이 바로 서령이었죠. 이런 내력을 알고 있으니 2024년 5월, 서울로 가게를 옮기자마자 소비자들이 몰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 어떠한 꾸며낸 기획, ‘드레스 업’ 없이 역사와 맥락을 무기 삼은 거죠.
“최근까지 드레스 업 된 가게의 성공 확률이 100%~98%로 느껴졌다면 이제는 25% 정도에 그칠 겁니다. 대신 여러 가지 방향으로 분산될 거예요. 특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본질을 찾고 있고, 그 욕구를 해소해주는 브랜드가 오래 갈 겁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또한 ‘계급장 다 떼고 맛으로만 승부 보겠다’는 맥락이죠. 이 역시 본질을 향해 가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플레이, 인테리어 플레이, 분위기 좋은 카페… 이런 것들이 지겨워진 거죠. 대신 철가방 요리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맥락에 더 관심을 가져요.”
-정동우 대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더 다채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대가 열린 것은 고깃집도 예외가 아니에요.
“특히 고깃집은 사람들마다 동네에서 자주 가는 식당이 있기 때문에 새로 진출 했을 때 그 집을 이길 만한 무기를 갖고 있어야 해요. 고기 질에도 당연히 신경을 쓸 테고 구입 방식, 불판에 초벌을 하느냐 마느냐, 어떤 찌개를 서비스로 내느냐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장치로 사용하죠.
고깃집은 상권과의 궁합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많은 상권이라면 구워 먹는 고기 대신 물에 끓여 먹는 고기, 전골이 어떨까 생각해보는 거죠. 불판은 아이들에게 위험하고, 기름이 튀고 냄새가 배니까요.”
-정동우 대표
#3. 코리안 바비큐, K-푸드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고깃집이 강세인 이유는 업계 플레이어들의 노련함 덕분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문화적인 특성 때문이기도 해요.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외식을 하면 고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죠. 해방 이후 수원왕갈비를 시작으로 양념 갈비, 가든식 갈빗집들이 생겨났어요. 1980~90년대에는 냉동 삼겹살이, 2,000년대 이후 정육 식당이 자리 잡고, 2010년대부터 전문 소고깃집들이 줄을 이었죠.
“한국에서 웨이팅을 많이 하는 아이템들은 한정돼 있어요. ‘오래 기다려서 먹을 만한 가치’를 따지는 겁니다. 그래도 고깃집은 오래 전부터 기다려서 먹을 만한 품목이었습니다. 옆 나라 일본은 그렇지 않거든요. 야키니쿠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대부분 예약을 해서 먹는 문화입니다. 고급화된 문화죠. 반면, 우리나라는 돼지고기가 비싸지 않고 다양한 연령층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위 ‘대박집’들은 기다려서 먹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어요.”
-정동우 대표
마치 ‘지역 특산물’처럼 여겨지는 고기 문화도 영향을 줬어요. 제주도를 상징하는 제주 흑돼지를 사용하는 식당들이 대표적인 예시죠. ‘숙성도’가 바로 제주 흑돼지 맛집으로 알려져 있어요. 산청숯불가든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경남 산청 지역의 흑돼지를, 몽탄은 전남 무안군의 전통적인 방식인 짚불 숯불구이를 사용하죠.
한국식 고기 구이는 이른바 ‘코리안 바비큐’라는 이름의 대표적인 한식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뉴욕의 정통 한국식 바비큐 레스토랑 ‘꽃(COTE)’은 미쉐린 1스타를 받았고, ‘해운대암소갈비’의 뉴욕 분점 ‘윤 해운대 갈비’는 2021년 뉴욕타임스 선정 뉴욕 10대 레스토랑에 선정됐어요.
ⓒCOTE
ⓒCOTE
ⓒ윤 해운대 갈비
“한국 고깃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라이브’한 것 같아요. 바로 앞에서 구워주는 것. 주방에서 구워져 나오는 고기는 스테이크 문화를 못 이기거든요. 한국 고유의 갈비 문화나 한국의 양념 문화, 그리고 눈 앞에서 구워주는 바비큐는 하나의 음식이 아닌 문화 경험인 셈이죠.”
-정동우 대표
코리안 바비큐의 글로벌 관심에 힘 입어, 많은 고깃집들이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국내 외식 시장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반면, 해외에서 바라보는 코리안 바비큐는 성장세에 있기 때문이에요.
해외로 진출한 고깃집이 현지의 관심을 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지점은 ‘로컬라이징’일 거예요. 정 대표에 따르면, 나라마다 곁들여야 할 문화가 조금씩 다르죠. 가령, 미국은 바에서 웨이팅을 하며 술 한 잔을 하는 문화가 있어요. 고기와 술의 페어링이 중요하죠.
지역에 맞춰 로컬라이징 된 메뉴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윤 해운대 갈비’에서는 곁들임 반찬으로 두부 튀김이 나와요. 한국에서는 부침으로 주로 먹는 음식을, 크리스피한 식감에 익숙한 현지에 맞춰 튀긴 거예요.
반면 한식의 ‘한상 차림’ 문화는 다른 카테고리와의 차별점으로 들고 갈 수 있어요. 코스 요리가 익숙한 미국이나, 반찬을 하나하나 사 먹어야 하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의 한상 차림은 해외의 시선에서 ‘인심’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윤 해운대 갈비
고기, 그 다음엔 ‘국물’이 온다
국내부터 해외까지, 고깃집의 강세는 계속될까요? 많은 고깃집들이 해외 시장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앞으로 많은 고깃집들이 해외로 진출할 거예요. 하지만 국내 시장은 조금 다르다는 게 정동우 대표의 의견이에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지인이 식당을 차린다고 하면 고깃집을 가장 먼저 추천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고깃집이 좀 재미없어진 것 같아요. 전에는 기본 매출이 받침이 됐기 때문에 ‘돈을 벌려면 고깃집 한다’는 인상이 강했죠. 그런데 지금은 매출 대비 비용이 계속 오르고 있어요. 일례로 5년 사이 인건비가 드라마틱하게 올랐죠. 고기를 직원들이 구워주는 고깃집 입장에서는 수익률이 10%씩은 다 떨어진 거예요. 마냥 매출만 바라볼 수 없게 됐어요. 같은 1억 원을 팔아도 고기를 파는 것보다 칼국수나 빵을 파는 게 더 많은 수익을 낳죠. 다만 그들에겐 칼국수나 빵으로 고매출을 찍어야 한다는 또 다른 숙제가 있습니다.”
-정동우 대표
특히 고깃집은 창업비, 투자비가 다른 카테고리 대비 커요. 인건비 등 늘어나는 비용은 그냥 둘 수 없는 문제예요. 앞으로 고깃집 플레이어들은 더 나은 수익 구조를 위해 노력하게 될 거예요. ‘로봇이 구워주는 고깃집’들이 생겨나고 있는 이유죠. 셰프AI, 자동조리 로봇 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비욘드허니컴’은 2024년 6월 기준 누적 94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어요.
비욘드허니컴의 자동조리 로봇 ⓒ비욘드허니컴
해결책을 찾지 못한 고깃집은 저물어갈 거예요. 정 대표는 그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예측하죠. 그가 예상하는 고기 다음의 넥스트 카테고리는 ‘국물 요리’라고 해요.
“사실 한국 사람들은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국물의 민족이죠. 고기에 대한 선호도만큼 국밥에 대한 선호도 역시 높습니다. 게다가 국물이 주를 이루는 집들은 운영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좋다는 게 가장 큰 무기입니다. 샤브샤브처럼 세팅을 먼저 해놓으면 인건비가 줄죠. ‘옥동식’과 같은 국밥 요리집도 업무의 강도는 고깃집 대비 약하면서 확장에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사례예요.”
-정동우 대표
하지만 시장의 흐름을 거슬러 오래도록 살아남는 식당들도 분명 있어요. 비결은 ‘꾸준함’뿐이에요. 아무리 좋은 전략을 써도, 이 꾸준함이란 무기를 이길 수는 없죠.
“좋은 식당은 꾸준한 식당이에요. 꾸준함이라는 게 사실 가장 어렵죠. 내가 내고 싶은 맛의 꾸준함도 유지하고, 늘 오던 손님들이 꾸준하고 찾아오는 식당들. 지금의 외식 문화는 마치 ‘가요 톱텐’처럼 그 시기에 유행을 하는 거예요. 유행가가 시간이 지나도 계속 들려오기는 힘들잖아요. 정말 많은 외식 브랜드들이 아직 10년이 채 안 됐어요. 유행가에서 멈추지 않고 마치 가수 ‘비’처럼 롱런을 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해요.
아웃백이 그렇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꾸준하게 ‘가족들과 외식하기 좋은 패밀리 레스토랑’ 하면 아웃백을 대체할 만한 브랜드가 없어요. 물론 아웃백이 지금은 주연에서 조연으로 물러났지만, 늘 옆에 있는 조연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식당이 되는 것 같아요.”
-정동우 대표
정동우 대표는 늘 외식업계에 주연을 데뷔시켜 왔어요. 그럼에도 중요한 건 주연인지, 조연인지가 아니라, ‘꾸준하게’ 고객들의 옆을 지키는 식당이 좋은 식당이라는 말을 전해요. 반짝이는 화제성보다 식당이라는 공간의 본질적 역할을 고민하는 것이 결국 중요한 거죠.
Reference
문 닫는 외식업장, 코로나 때보다 많다… 서울 폐업 식당 수 급증
오픈런 대란 그 유명한 맛집도 주말에 '텅텅'…초유의 사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