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런던의 달스턴(Dalston)은 런던의 떠오르는 힙플레이스예요. 역사적으로 터키, 자메이카, 베트남, 폴란드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자리잡았던 지역이라 문화가 다양하고, 원래 우범 지역이었지만 임대료가 낮은 덕에 젊은 예술가와 소상공인들이 유입되며 지금의 힙스터 동네가 되었죠.
주차장, 전쟁 때 폭격 맞은 폐건물, 선적 컨테이너 등 달스턴의 매장들은 위치 선정에서도 평범함을 거부해요. 힙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LN-CC‘ 역시 지하 벙커 같던 낡은 복싱 체육관을 개조해 만들었어요. 간판도 없고 이렇다 할 매장 입구도 없이 철문만 덩그러니 있어요. 과거에는 100% 예약제였다고 하니 비밀 접선이라도 하는 듯하죠. 여기가 맞을지 긴가민가하며 벨을 누르고 기다리면, 잠시 후 한 눈에 봐도 스타일리쉬한 스태프가 마중 나와요.
스태프를 따라 매장에 들어서면, 입장할 때까지의 의구심을 날려버릴 장면이 눈 앞에 펼쳐져요. 마치 SF 영화 세트장에 온 듯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팔각형 터널이 한 가운데 자리하거든요. 그렇다면 우주에서 온 것만 같은 이 공간에서 과연 무엇을 파는 걸까요? 분명 원래 있던 것들을 골라 모아둔 것일텐데 매장을 둘러보면 마치 창조해낸 것 같은 생경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또 뭘까요?
LN-CC 미리보기
• #1. 하나여도 괜찮아, 존재감이 충분하다면
• #2. 무엇이든 괜찮아, 흥미롭고 실험적이라면
• #3. 니치여도 괜찮아, 전 세계를 타깃한다면
• 넘어져도 괜찮아, 정체성만 뚜렷하다면
디자이너는 죽어서 이름을 남겨요. 루이 비통(Louis Vuitton), 프랑수아 고야드(François Goyard), 잔느 랑방(Jeanne Lanvin) 등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들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루이 비통, 고야드, 랑방이 브랜드로 남아 여전히 이름값을 하죠.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들도 예외는 아니에요. 그중에서도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 디자이너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을 빼놓을 수 없어요.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은 2010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안타깝게 생을 마쳤어요. 하지만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은 모회사 케링(Kering)이 캐시카우로 내세울 만큼 건재해요. 그가 구축한 스타일이 공고한 덕분이죠. 디자이너로서 그는,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 패션계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존재감이 있었어요.
첫째, 고급 패션과 하위문화 패션의 경계를 허물었어요. 고급 패션과 하위문화 패션은 계급사회와 함께 오랫동안 분리되어 있었죠. 그러다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경계를 넘나드는 재밌는 실험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알렉산더 맥퀸이 이러한 전환을 이끌어낸 대표적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에요. 해골 등 노동계급이 만든 펑크 문화의 상징을 고급 패션으로 소화해 내면서 기존 패션이 가지고 있던 틀을 깬 거예요.
둘째, 패션쇼를 옷을 선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패션의 일부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했어요. 그의 쇼는 옷, 무대, 모델, 음악, 퍼포먼스 등을 통합한 종합 예술 작품으로, 그의 쇼에서 옷만을 분리해서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옷을 디자인할 때 영감을 준 사건, 소재, 주제가 있다면 쇼의 전체 컨셉과 내러티브로 구현하죠.
예를 들어 볼게요. 1999년 S/S 컬렉션 ‘No.13’에서는 자동차 공장의 로봇 팔이 하얀 드레스에 페인트를 뿌리는 무대를 연출해 인간과 기계의 관계, 나아가 대량 생산되는 몰개성한 패션을 표현했어요. 또한 1994년 F/W 컬렉션에서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고산 지방에서 영국 병사들이 스코틀랜드 여성들을 해코지한 사건을 주제로 잔인한 역사의 한 장면을 끄집어내죠. 직접적인 묘사가 아님에도 찢어진 옷, 휘청이는 워킹, 야성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만으로 놀라움과 충격을 주었어요.
매번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알렉산더 맥퀸의 패션쇼 하이라이트입니다. ⓒDazed
그의 영향력을 증명하듯, 2011년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 열린 알렉산더 맥퀸 추모 패션쇼 ‘새비지 뷰티(Savage Beauty)’는 당시까지 박물관에서 열린 패션 전시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어요. 이 쇼는 이듬해 런던 디자인 박물관 디자인 어워드의 패션 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죠.
또한 이 어워드는 알렉산더 맥퀸뿐 아니라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셀린느(Celine),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등 패션계 명사들의 각축장이었는데요. 이 가운데 알렉산더 맥퀸 못지 않은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매장이 있어요. 단 하나의 매장으로 100여 개국에 고객을 두고, 매출의 80%가 영국 밖에서 나는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의 성지 ‘LN-CC’예요.
#1. 하나여도 괜찮아, 존재감이 충분하다면
이스트 런던의 달스턴(Dalston)은 런던의 떠오르는 힙플레이스예요. 역사적으로 터키, 자메이카, 베트남, 폴란드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자리잡았던 지역이라 문화가 다양하고, 원래 우범 지역이었지만 임대료가 낮은 덕에 젊은 예술가와 소상공인들이 유입되며 지금의 힙스터 동네가 되었죠.
주차장, 전쟁 때 폭격 맞은 폐건물, 선적 컨테이너 등 달스턴의 매장들은 위치 선정에서도 평범함을 거부해요. 힙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LN-CC 역시 지하 벙커 같던 낡은 복싱 체육관을 개조해 만들었어요. 간판도 없고 이렇다 할 매장 입구도 없이 철문만 덩그러니 있어요. 과거에는 100% 예약제였다고 하니 비밀 접선이라도 하는 듯하죠. 여기가 맞을지 긴가민가하며 벨을 누르고 기다리면, 잠시 후 한 눈에 봐도 스타일리쉬한 스태프가 마중 나와요.
간판도 없고 패션숍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모습의 LN-CC 입구가 스피크이지 바를 연상케 합니다. ©시티호퍼스
나뭇가지 덩굴로 우거진 어둠의 통로를 지나면 지금까지의 의구심을 날려버릴 장면이 눈 앞에 펼쳐져요. 마치 SF 영화 세트장에 온 듯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팔각형 터널이 한 가운데 자리하거든요. 이 터널을 중심으로 7개의 공간이 연결되어 있어요. 4개의 제품 룸, 라이브러리, 프라이빗 클럽, 바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있어 여러 개 매장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죠.
여기에다가 LN-CC가 직접 리믹스한 앰비언트 음악(Ambient music)이 고요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해요. LN-CC는 이 매장 음악을 음원 공유 플랫폼인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올리는데, 이 계정을 9,700여 명(2023년 6월 현재)이 팔로우하고 있어요. ‘스토어 믹스 037 - 보이지 않는 도시(Store Mix 037 - Invisible City)’ 트랙은 재생횟수가 2만 7,000회 정도고요.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매장 인테리어가 사람바깥 세계를 잊고 이 공간에 몰입하게 합니다. ⓒLN-CC
알렉산더 맥퀸에게 패션쇼가 옷을 선보이는 이벤트 이상의 의미였듯, LN-CC에 있어 공간은 단순히 제품을 진열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져요. LN-CC의 공간은 무언가를 파는 매장이기에 앞서 예술 작품에 가까워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진취적이며, 강력한 에너지와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죠.
그래서 비슷한 성향의 패션 매거진, 뮤지션, 부티크 디자이너 브랜드 등이 이벤트 장소로 LN-CC를 즐겨 찾아요. 그들의 결과물이 더 빛날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거의 상시적으로 이벤트가 열리기에 심지어 LN-CC를 ‘낮에는 매장, 밤에는 클럽’이라고 소개하는 매체가 있을 정도예요. 이런 저런 이벤트 소식들, 그리고 방문한 사람들이 남긴 사진과 영상은 웹 상으로 퍼지며 입소문을 만들어내요. 단 하나의 매장이지만, 임팩트만큼은 글로벌 기업의 플래그십 매장 못지 않아요.
양쪽에 2개의 거울을 맞대어 서로 반사해 비추게 함으로써 끝없이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스니커즈 홀을 완성했습니다. ©시티호퍼스
옷이 마치 갤러리의 작품처럼 진열되어 있어 하나의 예술 작품 같습니다. ©시티호퍼스
패션 매장과 같은 듯 또 다른 느낌의 프라이빗 바를 두어 다채로운 느낌을 줍니다. ©시티호퍼스
희귀 음반 및 서적도 LN-CC가 판매하는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패션의 일부입니다. ©시티호퍼스
#2. 무엇이든 괜찮아, 흥미롭고 실험적이라면
우주에서 온 것만 같은 이 공간에서 과연 무엇을 팔까요? 분명 원래 있던 것들을 골라 모아둔 것일텐데 매장을 둘러보면 마치 창조해낸 것 같은 생경함이 느껴져요. 큐레이션 방식이 남다르기 때문이에요.
첫째, 팔지 않던 것을 팔아요. LN-CC의 바이어는 관심있는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를 찾아가 무대 뒤의 쇼룸부터 찾아요. 런웨이에는 공개되지 않은 제품들을 먼저 보고 숨은 진주를 발굴하기 위함이죠. 트렌드와 상업성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하는 런웨이 컬렉션과 달리, 쇼룸에서는 운이 좋으면 디자이너가 개인적으로 정말 만들고 싶었던 옷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어요.
무대 뒤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대 위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주목해요. 그래서 런웨이 패션은 기본이고 런웨이 소품까지 확보하죠. 질 샌더(Jil Sander)의 바사리 백(Vasari bag)이 대표적인 사례예요. 2012년 F/W 패션쇼에 등장한 바사리 백은 매장에서 물건을 담아주는 종이 쇼핑백과 비슷한 반영구 코팅지 가방이에요. 원래 런웨이용으로만 제작한 제품이었는데 LN-CC가 팔겠다고 나서서 이제는 없어서 못 파는 히트 상품이 되었어요. 비매품에도 상품성을 불어넣는, 그야말로 마이다스의 안목이에요.
둘째, 경계를 없애요. LN-CC는 럭셔리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을 과감하게 믹스매치해요. 라프 시몬스(Raf Simons), 헬무트 랭(Helmut Lang) 등의 메인 디자이너 브랜드, J.W 앤더슨(J.W Anderson) 등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반스(Vans), 와코 마리아(Wacko Maria) 등의 스트리트 브랜드를 공간 구분 없이 다 함께 진열하는 식이죠.
특히 메인 디자이너들 중에서는 스트리트 웨어 스타일을 접목한 브랜드나 컬렉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를 확보해 스타일 자체에서도 경계를 허무는 제품들을 판매해요. 공동 창업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스켈턴(John Skelton)의 성향이 십분 반영된 부분이죠. 그는 해러즈(Harrods), 셀프리지스(Selfridges) 등 백화점 바이어를 거쳐 온라인 편집숍 오키니(Oki-n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고급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을 동시에 소화하는 감각을 갖추었어요.
존 스켈턴이 주도하는 큐레이션에는 여성복과 남성복의 경계도 없어요. 남성복 전문 바이어였던 존 스켈턴이 여자 옷까지 직접 고르고, 여성과 남성 코너를 구분하지도 않아요. 여성복을 중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젠더리스한 패션을 추구하기 때문이에요. LN-CC의 이러한 편집 스타일을 고려해 J.W 앤더슨이라는 브랜드는 LN-CC만을 위해 그들의 남성복 컬렉션을 여성복으로 새롭게 제작해주기도 했어요.
셋째로, 옷이 아닌 것도 패션으로 제안해요. 행위 예술에 가까운 파격 패션으로 유명한 팝스타 레이디 가가(Lady Gaga)는 패션으로부터 음악과 퍼포먼스의 영감을 받는다고 해요. 심지어 의상을 위해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고 밝힌 적도 있죠. 이처럼 어떤 패션이 그에 꼭 어울리는 사운드를 가질 때 그 힘이 더욱 강력해져요.
LN-CC 역시 이 관점에 공감해요. 그래서 LN-CC의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패션과 결을 같이 하는 라이브러리를 매장에 두었어요. 이 라이브러리에는 아트 서적 전문가이자 돈론 북스(Donlon Books)의 오너인 코너 돈론(Conor Donlon)이 큐레이터로 참여해 희귀 음반과 서적을 취급해요. 또, LN-CC 레코딩스(LN-CC Recordings)라는 레이블을 출시해 자체 제작한 음반도 판매하죠. 이 곳에서 고객들은 마치 옷을 고르듯 패셔너블한 음악과 책을 쇼핑할 수 있어요.
이쯤되니 LN-CC의 정체가 궁금해지는데요. LN-CC는 Late Night-Chameleon Cafe의 줄임말이에요. 해석하자면 ‘늦은 밤 카멜레온 같은 카페’라는 의미죠. 이름처럼 LN-CC는 정해진 경계 없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이에요.
#3. 니치여도 괜찮아, 전 세계를 타깃한다면
LN-CC의 주요 고객층은 패션 중급자 이상이에요. 가격대가 높은 편이라 패션에 그 정도 비용을 지출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컬렉션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LN-CC의 큐레이션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고객층이 두터운 편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LN-CC의 패션 감각에 공감할 수 있는 타깃층을 찾아 전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해요. 이를 위해서 온라인만 한 것이 없죠.
그래서 LN-CC는 매장 런칭과 거의 동시에 ‘글로벌향’ 온라인 사이트를 공격적으로 운영해 왔어요. 온라인 사이트를 오픈한 2010년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구매가 보편화되기 전이었지만, LN-CC는 타깃의 특성상 온라인을 통한 글로벌 판매가 핵심이라고 판단했어요. 초기부터 오프라인 매장뿐만 아니라 온라인 매장에도 신경을 쓴 이유예요.
온라인 쇼핑은 편리함이 생명이에요.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익숙하지 않고 새로운 것이 경험으로 받아들여져도,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LN-CC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작지만 큰 혁신을 이루어내요. 온라인 매장을 ‘현지화’하며 해외 온라인 쇼핑을 할 때 생길 수 있는 심리적 장벽을 최대한 없앤 거예요.
고객들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IP로 지역을 파악해 자동으로 언어, 통화 표기, 배송 정보 등을 바꿔서 보여줘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등 5가지 언어를 지원하죠. 또한 어차피 국경을 넘을 제품들이기에 결제 가격에 관세, 부가세를 미리 포함시켰어요. 여기에 영국의 경우 300파운드(약 45만원), 미국 등 미주 지역은 500유로(약 66만원), 아시아권은 700유로(약 92만원) 이상의 결제 건이면 배송과 교환에 따른 추가 금액이 발생하지 않아요.
결제뿐만 아니라 온라인 마케팅 또한 현지화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여요. LN-CC 본사에서 마케팅 메시지를 만들어 전 세계에 동일하게 뿌리는 것이 아니라 주요 10여 개국의 트렌드 리더를 홍보대사로 영입해 각종 인터넷 블로그와 SNS 상에서 관련 소식을 전달하게 하거든요. 지역의 트렌드 리더가 각자의 스타일로 소화해 팔로워들에게 공유하기에 현지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 마케팅이 가능해져요.
이 모든 일들이 2010년부터 일찌감치 이루어졌어요. 매출의 80%가 영국 밖에서 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넘어져도 괜찮아, 정체성만 뚜렷하다면
거칠 것 없이 탄탄대로였을 것 같지만 LN-CC에게도 위기가 있었어요. 두 자리대 성장률을 지속하다가 2013년에 돌연 파산 위기에 몰리게 돼요. 패션 감각만큼은 탑클래스였지만 경영은 초짜였던 공동 창업자들이 현금 흐름을 잘못 예측해서 생긴 문제였어요. 디자이너들에게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다가 도산하기 직전에 이르렀죠.
워낙 이목이 집중되던 곳이다보니 LN-CC의 위기에 대한 소식이 패션 업계에 빠른 속도로 퍼졌어요. 이 소식을 듣고 LN-CC를 눈여겨 보던 더 레벨 그룹(The Level Group)이 2014년에 이들을 인수했어요. 참고로 더 레벨 그룹은 온라인 서비스 구축을 도와주는 온라인 에이전시예요. 오프라인 매장까지 함께 인수하는 것이었기에 온라인 에이전시에게는 자칫 무거운 조건일 수 있었는데, 더 레벨 그룹은 LN-CC의 뚜렷한 정체성의 근간이 오프라인 매장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수를 단행했어요.
인수 이후 더 레벨 그룹은 운영 프로세스와 시스템 위주로 개선 작업을 진행했어요. 우선 웹사이트의 UI/UX를 개선하고, 결제 시스템을 개편하며, 고객 센터를 강화하는 등 기본기를 탄탄히 만들어 이용 편의성을 높였어요. 인수 전에는 인플루언서와 미디어를 이용한 마케팅 위주였다면, 인수 후에는 데이터 기반으로 보다 정교하게 온라인 마케팅을 실시했죠. 또, 더 레벨 그룹의 물류센터로 유통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도 실현했고요. 마치 인디 가수에게 중견 프로듀서가 붙은 형국이에요.
오늘날 패션 대기업들은 규모는 작아도 색깔이 뚜렷한 브랜드들을 사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아요. 운영이야 축적된 노하우로 고도화시킬 수 있지만, 정체성은 쉽사리 쌓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LVMH가 사실상 서류상으로만 남아있던 로열 패밀리 브랜드 모이낫(Moynat)을 사들인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더 레벨 그룹과 LN-CC의 관계도 LVMH와 모이낫의 관계와 유사해요. 체급 차이는 있지만, 정체성이 뚜렷한 개성 있는 브랜드를 품는다는 측면에서는 공통분모가 있죠. LN-CC는 이대로 사장되기에는 아직 쓸모가 있는 브랜드인 거예요.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 선배 디자이너 브랜드들처럼, LN-CC도 죽지 않고 이름값을 계속해서 쌓아갈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Reference
• 영국 명품 편집 매장 ‘LN-CC’의 성공 전략, 화이트스톤 돔글라스 블로그
• 이색편집숍, LN-CC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바이어, 존 스켈톤, 스타일피쉬 블로그
• 런던발 이색스토어 엘엔씨시*LN-CC, 한국어 사이트 런칭, 스타일피쉬 블로그
• Dalston London guide, Movebubble
• 알렉산더 맥퀸 브랜드 스토리 : 나는 꿈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패션블로거 미오 블로그
• [패션히스토리] 알렉산더 맥퀸, 천재 디자이너의 인생, 밴플러의 블로그
• John Skelton, LN-CC, AnOther
• LN-CC Creative director John Skelton & Set Designer Gary Card on the Store’s Rebirth, Highsnobiety
• The Level Group Buys LN-CC Out of Administration, Business of Fashion
• BoF 500, John Skelton, Business of Fashion
• 게리 카드…유머와 재기발랄함으로 대중과 소통하다, 헤럴드경제
• Design Museum announce shortlist for Designs of the Year 2012, Dezeen
• 레이디 가가 “노래와 공연의 영감은 패션이다” 이번 투명옷으로 얻은 영감은?,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