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레스토랑을 말릴 수 있을까요? 발리 우붓에서 시작한 ‘로커보어 (Locavore)’는 로컬에 대한 진심으로 흥미로운 시도들을 이어가요. 대표적인 게 ‘잘란잘란 프로젝트’예요. 사라져가는 로컬 음식을 지키거나 주목받지 못한 로컬 음식을 발굴하기 위해 로컬 지역을 여행하는 프로젝트죠. 2016년 부터 매해 진행하는데, 인도네시아가 17,0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인 걸 고려하면 진심 없이는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그뿐 아니에요. 인도네시아 정통 퀴진인 ‘누산타라’, 패스트푸드인 ‘로커보어 투고’, 칵테일 바인 ‘나이트 루스터’, 정육점인 ‘로컬 파츠’ 등 영역을 넘나들면서 로컬 음식을 알리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어요. 이 곳들은 발리 우붓 지역의 중심 거리에 모여 있는데, 덕분에 우붓 지역이 더 로컬스러워졌죠. 여기서 끝이냐고요? R&D 키친인 ‘로컬랩’까지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로컬 음식의 미래를 개척해나가요.
이정도로 로컬 음식에 진심이면서도, 이렇게 로컬 음식을 입체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건 그들이 로컬 음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철학 때문이에요. 어떤 철학이냐고요? 인도네시아 로컬 음식을 맛보기 위해 함께 발리 우붓으로 가볼게요.
• #1. 로컬에 집중하니 글로벌이 주목한다
• #2. 로컬의 목적지는 외국인이 아닌 현지인이다
• #3. 로컬에도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 로컬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잘란잘란(여행) 프로젝트 Jalan Jalan Project’
발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스케일 넘치는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직원들을 여행 보내는 거예요. 목적은 하나. 현지에서 나는 식재료와 요리법을 발굴하고 로컬을 지키기 위해서죠. 로컬 셰프에게서 레시피를 전수받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식재료 공급 계약까지 진행해요.
ⓒ시티호퍼스
그렇다고 낭만적이기만 한 프로젝트는 아니에요. 여행의 여정이 보기보다 험난하죠. 인도네시아의 지리적 특성때문이에요. 인도네시아는 동에서 서까지 무려 5,000km에 달하는, 가로로 길게 뻗은 세계 최대의 군도* 국가로 무려 1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인도네시아 전역을 여행하기가 만만치 않아요.
*군도: 섬들이 모여 나라를 형성한 형태
그리고 이러한 지리적 특성에 잘란잘란 프로젝트의 의의가 숨어있어요. 서로 떨어져 있는 섬의 특성상 다른 섬과의 교류가 물리적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지 못하고 해당 섬에서만 소비되는 생소한 메뉴가 많아요. 설령 레시피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지에서만 나는 식재료가 없다면 요리하기가 어렵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가는 레시피도 있고요.
사라져가는 로컬 음식을 지키기 위해 혹은 주목받지 않은 로컬 음식을 알리기 위해 셰프들이 직접 발로 뛰기로 한 거예요. 전국의 로컬 레시피를 배운 후, 우붓의 레스토랑으로 돌아와 부활시키면서 말이죠. 그들은 현지 재료를, 현지 레시피에 따라 요리하거나 재해석해 메뉴로 만들어요. 그리고 단순히 로컬 음식을 구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완성도를 높인 레시피를 다시 해당 지역 사회에 전달해 명맥을 이어가죠.
일회성 이벤트냐, 그렇지도 않아요. 2016년 10월에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로, 매년 인도네시아 각 지역을 다니면서 시그니처 프로젝트로 자리잡았어요. 해마다 여행이 담대해져 우붓에서 1,000km 떨어진 자카르타와 인근 지역까지도 거침없이 방문해요. 이렇게 ‘로컬’에 진심인 레스토랑 보신적이 있나요? 로컬 레스토랑의 끝판왕, 우붓의 ‘로커보어(Locavore)’예요.
#1. 로컬에 집중하니 글로벌이 주목한다
로커보어는 발리 우붓 지역에 위치한 다이닝 레스토랑이에요.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나온 것처럼 우붓은 요가, 히피, 힐링의 대명사인 지역이죠. 이 곳에서 로커보어는 인도네시아 현지 식재료들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메뉴를 선보여요. 로커보어라는 이름도 지역을 뜻하는 로컬(Local)과 먹을거리를 뜻하는 보어(Vore)의 합성어예요.
ⓒLocavore
로커보어에서는 코스 요리로 파는데 6코스의 가격은 895,000 IDR (약 9만원), 9코스의 가격은 1,195,000 IDR (약 12만원), 여기에 어울리는 술을 페어링하면 500,000 IDR (약 5만원) 정도가 추가되죠. 발리의 평균 식사 가격이 50,000 IDR (약 5천원) 수준임을 고려했을 때 10배 이상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최소 2~3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문할 수 없는 인기 레스토랑이에요.
ⓒLOCAVORE
ⓒLOCAVORE
인도네시아 각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요리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요? 로컬 식재료를 가미하는 거야 평범한 일이지만, 로컬 식재료’만’으로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건 보기보다 어려운 일이에요. 수입품을 사용하지 않으니 밀가루와 유제품 등 일반적인 레스토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죠.
제한된 재료로 하나의 요리를 만드는 것도 고민인데, 로커보어와 같이 코스 요리를 내는 곳이라면 난이도는 높아져요. 코스의 흐름과도 연결되는 문제니까요. 하지만 로커보어는 이러한 제약을 새로운 다이닝 경험을 만들어 내는 기회로 승화시켰어요. 보통의 레스토랑이라면 버리는 부위를 활용해 요리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에서만 나는 식물을 이용해 채식주의자(Hervibore) 코스를 선보이기도 하죠.
위기를 기회로 바꾸니 글로벌에서도 인정받게 됐어요. 로커보어는 발리에서는 유일하게 아시아 최고의 레스토랑 50위에 (Asia’s 50 Best Restaurants) 5년 연속으로 이름을 올리고,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도 선정되며 국내외적으로 인지도를 다져요. 로컬에 집중한 덕분이에요. 하지만 로커보어의 로컬 사랑은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2. 로컬의 목적지는 외국인이 아닌 현지인이다
로커보어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는 ‘누산타라 바이 로커보어(Nusantara by Locavore)’라는 자매 식당이 있어요. 로커보어가 로컬 식재료를 유러피언 퀴진의 문법으로 요리를 풀어냈다면, 누산타라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요. 로컬 식재료를, 인도네시아 퀴진의 문법으로 접근했죠.
ⓒ시티호퍼스
ⓒNusantara
ⓒ시티호퍼스
인도네시아 로컬 음식 여행이 더욱 다채로울 수 있도록 메뉴는 매주 월요일마다 변주를 줘요. 1~2가지의 메뉴를 빼거나 추가하죠. 하지만 절대 바꾸지 않는 것이 하나 있어요. 오리지널 레시피예요. 새로운 메뉴를 추가할지언정, 해당 메뉴의 레시피를 변형해서 새로움을 제안하거나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바꾸진 않아요.
누산타라는 현지의 맛에서 벗어나는 것을 경계해요. 사용하는 향신료는 물론이고, 맵기의 정도 등 원래 요리의 맛을 구현하는 데 집중하죠.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로컬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로컬이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의 맛을 제대로 소개하니, 역설적이게도 2/3가 외국인들로 차요. 인도네시아 음식의 오리지널리티가 궁금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드는 거예요.
#3. 로컬에도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로커보어와 누산타라를 포함해 로커보어는 총 6개의 공간을 운영해요. 외식업에서의 확장은 흔히 있는 일이죠. 대량 구매로 원가를 낮출 수도 있고,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면 매출은 물론 브랜드 인지도도 높일 수 있으니까요. 확장의 방법도 다양해요. 프랜차이즈 처럼 같은 포맷으로 확장을 할 수도 있고, 컨셉이 다른 여러가지 레스토랑을 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로커보어의 확장의 방향성은 조금 달라요. 같은 모델을 복제하거나, 다른 컨셉의 여러가지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외식업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요. 다이닝과 패스트 푸드, 술집과 정육점까지, 하나만 제대로 하기도 어려워보이는 외식업의 카테고리를 넘나들어요.
ⓒ시티호퍼스
ⓒLocavore To Go
ⓒNight Rooster
ⓒ시티호퍼스
로컬 파츠에서는 깔끔하게 디자인된 매대에서 돼지고기, 양고기 등의 생고기와 샤퀴테리 등 육가공품 등을 판매해요. 꼭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하면서 로커보어의 철학을 경험할 수 있죠. 매주 일요일 점심에는 '부처스 테이블(Butchers Table)'이라는 이벤트를 여는데, 로컬 파츠의 품질 높은 유기농 육류를 알리기 위해 새로운 메뉴를 소개하는 자리이자 주민들이 모여 네트워킹하는 시간이에요.
ⓒGoogle map
고객 입장에서는 ‘로컬’을 다양한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어요. 로컬이라는 키워드가 매력적이고, 레스토랑의 메뉴가 아무리 자주 바뀌더라도 같은 공간을 반복해서 여러번 가는 것은 지루할 수 있어요. 하지만 로커보어에서는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하니 그날 그날의 기분에 맞춰서 방문할 수 있죠. 정통 현지 음식이 끌리면 누산타라를 예약해서, 술이 마시고 싶은 날에는 나이트 루스터로, 집에서 조용히 먹고 싶다면 로컬 파츠를 들리면 되죠. 로컬에도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이유예요.
로컬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아직 로커보어의 숨은 공간이 하나 남아 있어요. 로커보어의 R&D 키친이자, 셰프들이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창의적인 놀이터, '로컬랩(Localab)'이에요.
ⓒLocavore
이렇게 개발한 메뉴는 실험실에서만 머물지 않아요. 실험실 밖으로 나가 로커보어의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판매가 되죠. 실제로 로커보어는 매주 2가지씩 메뉴를 변경해요. 많은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계절별로 메뉴를 바꾸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빠른 주기예요. 그래서 로커보어의 메뉴 중 2013년에 오픈한 이후 현재까지 남아있는 메뉴는 1개 밖에 없다고 해요. 과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죠.
‘What’s NXT?’
로커보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예요. 항상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새로운 시도를 추구하려는 로커보어의 철학을 담았죠. Next에서 e를 빼니 왠지 모르게 더 미래지향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로컬에 언제나 진심인 로커보어가 앞으로 보여줄 로컬의 넥스트가 기대되는 이유예요.
Reference
• Restaurant Locavore, Ubud – Coming to an End, The Yum List
• Locavore: Creating Modern Cuisine with Local Produce in Ubud, Bali, Indonesia, Will Fly For F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