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한복판에 있는 와이너리가 와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법

런던 크뤼

2023.06.20

‘런던 크뤼’는 런던 도심에 있어요. 런던 중심부인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지하철로 20분 걸리는 거리예요. 와이너리라고 하면 교외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가까워도 너무 가깝죠. 금방 갈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보통의 와이너리와 달리 이 곳에선 광활한 포도밭을 볼 수는 없어요. 런던 크뤼는 와인을 만들기만 할 뿐, 포도를 재배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또한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하지 않고 소규모 양조장에서 매년 1,000여 개의 와인만 만들어요. 대신 와인의 맛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죠. 2013년에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 4년 만에 IWC(International Wine Challenge)로부터 3개의 은상과 1개의 동상을 수상했고, 특히 바쿠스(Bacchus) 와인 부문에서는 최고 득점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품질을 인정받고 있어요.


와인 대회에서 맛을 증명했지만, 영국산 와인에 대한 선입견은 바꾸기 어려워요. 영국은 비가 잦아 포도를 재배하기 어려운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죠. 런던 도심에서 와인을 제조하는 런던 크뤼는 태생적으로 영국산이라는 불리함을 가지고 시작할 수밖에 없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런던 크뤼는, 런던 도심에 위치하기 때문에 유리해지는 제조 방식, 포지셔닝, 수익 모델로 승부해요. 하나씩 살펴 볼게요.


런던 크뤼 미리보기

 선입견에 도전장을 내민 와이너리

 #1. 와이너리, 포도밭에서 해방되다

 #2. 와인에도 런던 프라이드를

 #3. 황금알을 낳는 ‘와인창고 대개방’

 런던이라는 테루아르를 창조하다




1976년,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이 계급장 떼고 한판 붙은 사건이 있었어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서 최고의 와인을 선정하기로 한 거예요. 보통 ‘계급장 떼자’는 표현은 약자들의 언어죠. 실력은 있는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때 공정하게 겨루자고 도발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재밌게도, 이 테스트는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에서 먼저 제안을 했어요. 근본없이 치고 올라오는 미국 와인이 눈엣가시였고, 한번 제대로 눌러 주려고 기획한 이벤트였죠. 그만큼 질 리가 없다고 자신했어요. 그럼에도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프랑스인으로만 심사위원단을 구성하고, 홈그라운드인 파리에서 대회를 개최하는 등 판을 편파적으로 짰어요. 결과가 뻔한 싸움이라 기자들도 취재를 거절할 정도였죠. 마침 근처에 있으니 공짜 와인이나 마시자는 심산으로 단 1명의 기자만 참석했어요.


마음을 비우고 와인잔을 비웠던 그 기자는 와인 업계에 일대 혁명을 가져 올 특종을 따내게 돼요. 이름하여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 프랑스 심사위원들은 프랑스 와인을 구별해 내지 못하고, 레드와 화이트 와인 모두 미국산 와인에 최고점을 주고 맙니다. 특히 화이트 와인의 상위 랭킹은 미국산이 싹쓸이하다시피 했어요. 와인계의 견고한 유리 천장에 금이 가면서 현장은 큰 충격에 빠졌어요. 최정상급 와인을 만드는 ‘테루아르(Terroir)*’가 오직 프랑스에만 있다고 여겼는데, 인정해야 할 테루아르가 일순간 넓어진 거예요.


*테루아르: 와인을 재배하기 위한 여러 조건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주로 자연 환경을 가리키지만 재배, 양조 방식 등 양조자의 특성까지 포함한 포괄적 의미로도 쓰여요.


여기엔 미국의 실험 정신이 한 몫을 했어요. 프랑스 와인은 수백 년 동안 검증에 검증을 거친 전통 양조법으로 만들어지는지라 과감한 시도에 인색해요. 반면 미국은 전통이나 규제가 약해 미국의 테루아르에 어울리는 양조법을 원점부터 찾아갔죠. 효모, 교배, 온도, 발효 등에 있어 적극적으로 기술 연구를 하며 품질을 끌어올린 거예요. 파리의 심판 이후 소비자는 물론 생산자의 인식도 바뀌었어요. 미국뿐 아니라 호주, 칠레 등 신대륙의 와이너리도 탑클래스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잠재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죠.


30년 후인 2006년, 파리의 심판 30주년을 기념해 ‘런던의 심판’을 열었어요. 파리의 심판 때 만들어진 똑같은 와인으로 승부하되, 4명의 영국인, 1명의 미국인, 4명의 프랑스인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해 공정성을 더했죠. 프랑스 와인은 오래될수록 깊은 맛을 내기에 이번엔 프랑스의 승리가 유력하다는 것이 중론이었어요. 하지만 ‘런던의 심판’도 미국 와인에게 손을 들어줬어요. 덕분에 내심 ‘아무리 그래도 와인은 프랑스지’하며 다시 경직되려던 와인업계가 경각심을 되찾았죠.


그로부터 10여 년 뒤, 절대강자의 타이틀이 사라진 와인 업계에서 또다시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또 다른 런던의 심판을 기다리는 와이너리가 있어요. 영국 최초의 어반 와이너리(Urban winery) ‘런던 크뤼(London Cru)’예요.



선입견에 도전장을 내민 와이너리

런던 크뤼는 런던 지하철 노선도의 1존에 있어요. 런던 중심부인 피카딜리 서커스(Picadilly Circus)에서 지하철로 20분 걸리는 거리예요. 와이너리라고 하면 교외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가까워도 너무 가깝죠. 금방 갈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보통의 와이너리와 달리 이 곳에선 광활한 포도밭을 볼 수는 없어요. 런던 크뤼는 와인을 만들기만 할 뿐, 포도를 재배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London Cru


또한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하지 않고 소규모 양조장에서 매년 1,000여 개의 와인만 만들어요. 대신 와인의 맛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죠. 2013년에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 4년 만에 IWC(International Wine Challenge)로부터 3개의 은상과 1개의 동상을 수상했고, 특히 바쿠스(Bacchus) 와인 부문에서는 최고 득점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품질을 인정받고 있어요.



©London Cru



©London Cru


와인 대회에서 맛을 증명했지만, 영국산 와인에 대한 선입견은 바꾸기 어려워요. 영국은 비가 잦아 포도를 재배하기 어려운 환경을 가진 까닭에 와인 생산 강국은 커녕 세계 최대의 와인 수입국이에요. 전 세계 최초로 와인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을 설립하고, IWC, DWWA(Decanter World Wine Awards)와 같은 와인 대회를 여는 등의 노력을 통해 또 다른 영역에서 와인 강대국의 지위를 얻었지만, 생산에서만큼은 열세의 위치에 있죠.


런던 도심에서 와인을 제조하는 런던 크뤼는 태생적으로 영국산이라는 불리함을 가지고 시작할 수밖에 없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런던 크뤼는, 런던 도심에 위치하기 때문에 유리해지는 제조 방식, 포지셔닝, 수익 모델로 승부하여 런더너의 심판을 받습니다.



#1. 와이너리, 포도밭에서 해방되다

한 포도밭에 여러 품종의 포도를 심기는 어려워요. 각 테루아르에 최적인 품종이 있어서죠. 그러다보니 포도밭을 소유한 와이너리는 특정 품종의 와인을 주력으로 생산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런던 크뤼의 원산지는 전 세계의 포도밭이에요. 포도밭을 가지지 않았기에 얻은 자유예요.


런던 크뤼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각지에서 엄선한 포도를 공수해요. 손으로 수확하는 포도원만 취급하고, 필요에 따라 포도의 수확 시기도 조절하며, 직접 포도밭으로 가서 재배 및 수확 과정을 살피기도 하죠. 이 깐깐함 때문에 종종 시가의 2배에 달하는 웃돈을 주고 포도를 사올 때도 있어요. 그 해 작황이 좋지 않으면 해당 품종의 와인 생산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요.


한땀한땀 공수한 포도를 무사히 런던으로 가져오는 것이 다음 단계예요. 런던 크뤼는 포도 재배지에서 포도를 수확한 직후에 급속으로 냉동해요. 가장 신선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함이에요. 이후 냉동 트럭에 실어 유로스타가 다니는 해저 터널을 통해 운반해요. 주요 산지인 프랑스의 경우 빠르면 5시간 내로 포도를 직송하며, 먼 곳에서 조달한다고해도 수확 후 제조까지 36시간이 넘지 않도록 배송 스케줄을 관리하죠.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원하는 와인을 만들기 위한 가치있는 투자인 셈이에요.


재료를 확보했으니 이제 잘 만들 차례예요. 어떤 품종을 얼마의 비율로 섞을지, 숙성용 배럴로 무엇을 사용할지, 어느 정도로 숙성시킬지 등의 선택지는 열려 있어요. 프랑스 와인 수준의 퀄리티를 목표로 하되, 자신에게 어울리는 길을 개척하던 초창기 미국 와인을 닮았죠. 2023년 기준으로 4가지 산지에서 수확한 5가지 포도 품종으로 10가지 와인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포도밭에서 해방된 덕분에 여러 산지의 포도를 가지고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와인을 만들었으니 소비자에게 잘 전달하는 일만 남았어요. 여기에서 런던에 위치한 런던 크뤼의 강점이 극대화돼요. 원산지와의 거리만큼이나 소비자와의 거리가 와인 맛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에요. 와인은 발효와 숙성을 통해 이미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 포도보다 보관에 민감해요. 적절한 빛, 온도, 습도를 유지하고 진동이나 충격이 없어야 하죠. 자칫하면 어렵사리 맞춘 균형이 깨지며 맛과 향이 변하고 과하게 숙성되고 말아요. 


아무리 운송을 조심스레 한다고 해도 바다를 건넌 와인은 미세하게라도 맛이 변할 수밖에 없어요. 와인을 수입해야 하는 영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단점이에요. 하지만 도심 속 와이너리인 런던 크뤼는 소비지인 런던과 거리가 가깝기에 런던에서 마실 때 최상의 상태를 맛볼 수 있죠.



©London Cru



#2. 와인에도 런던 프라이드를

런던의 이미지는 제품과 서비스에 있어 대체로 득이에요. 전통과 왕실을 등에 업은 이미지, 클래식과 모던을 아우르는 감각 등 소비자의 신뢰도가 높죠. 하지만 와인에 있어서는 독이에요. 런던은 주요 와인 생산지가 아니기에 정통성이나 퀄리티가 떨어져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런던에 위치한 런던 크뤼는 영국산임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영국산 와인에 대한 선입견에 정면으로 도전해요.


예를 들어 볼게요. 런던 크뤼의 SW6 와인병 라벨에는 포도나무 잎사귀가 그려져 있어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런던 지도예요. 나뭇잎의 줄기가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스 강 물줄기와 기가 막히게 매치되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와인 종류마다 런던의 모양새가 조금씩 달라요. 와인에 쓰인 포도 품종에 따라 그 품종의 잎사귀를 형상화해 라벨에 디자인했기 때문이에요.


런던 크뤼의 런던 앓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포도 품종과 발음이 비슷한 런던 거리의 이름을 따서 와인의 이름을 짓죠. 이를테면 시라(Syrah) 와인은 시드니 스트리트(Sydney Street)로, 샤르도네(Chardonnay) 와인은 샬롯 스트리트(Charlotte Street)로, 피노 누아(Pinot noir) 와인은 핌리코 로드(Pimlico Road)로, 바쿠스 와인은 베이커 스트리트(Baker Street)로 불러요. 런던에 위치한 와이너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런던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을 정도예요.


런던 크뤼가 이런 라벨과 이름을 갖게 된 데는 사연이 있어요. 영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식품은 UK FSA(Food Standards Agency)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데, UK FSA는 주류에 있어 재료의 원산지와 세부 종류를 제품 전면에 표기하는 것을 금지해요. 맥주 등 다른 주류들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산지와 품종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와인에는 치명적인 규제예요. 그래서 로버슨 와인은 제약을 극복하면서도 정보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포도 나무 잎사귀를 본따 라벨을 디자인 한 거예요. 이 디자인으로 제품 간 통일성뿐 아니라 확장성도 확보했어요.



©London Cru



로버슨 와인의 라벨에 입힌 포도나무 잎사귀 모양은 각 와인을 만든 포도의 품종에 따라 달라지며, 나뭇잎 모양 위에 절묘하게 런던 지도를 입혀 은근히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London Cru


이어 영국에서 재배한 포도를 사용해 와인을 만들며 영국산의 순도를 높여가요. 2014년에 영국 켄트(Kent) 지역의 바쿠스와 남프랑스 루시용(Roussillon) 지역의 샤르도네를 섞은 것이 첫 시도였어요. 이후 2016년에는 영국의 켄트와 에섹스(Essex) 지역에서 공수한 바쿠스 포도만으로 베이커 스트리트 2016을 주조하죠. 앞서 잠깐 소개했듯이, 이 와인은 순수 영국산 와인의 열세를 극복하고 IWC에서 최고의 바쿠스 와인으로 선정됐어요. 성원에 힘입어 베이커 스트리트 와인은 2014년 대비 생산량을 2배로 늘렸죠. 2023년 기준으로 10개의 와인 중 7개가 영국산 와인이에요.


영국에서 생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런던의 정체성을 드러낸 덕분에 런던 크뤼는 신생 와이너리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곳에서 소개됐어요. 영국의 대형마트 막스 앤 스펜서(Marks & Spencer)가 ‘런던의 정신(Spirit of London)’이라는 주제로 여러 카테고리의 제품을 모아 행사할 때 런던 크뤼 와인이 당당히 와인 부문의 자리를 빛내기도 했고요. 또한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와인 메뉴에 아예 영국 와인 섹션을 만들어 런던 크뤼 와인을 추천하죠. 포지셔닝이 뚜렷하니 있어야 할 자리도 명확해져요.



#3. 황금알을 낳는 ‘와인창고 대개방’

와이너리에는 농번기와 농한기가 있어요. 농한기에는 사람도 쉬지만 와인도 쉬죠. 포도 수확 후 와인을 만들고 나면 6~18개월 동안의 긴 숙성기간을 갖는데요. 넓은 공간에 꽤 오랜 시간 동안 현금화되지 않은 재고가 쌓여 있는 거예요. 이 공백기에 와이너리 투어가 제법 효자 노릇을 해요.


그런데 와이너리는 큰 마음 먹고 가야 하는 곳이에요. 대개 지방에 있어 하루를 통째로 비우거나 근처 숙소에서 1박 이상을 해야 해요. 또한 상대적으로 교통편이 좋지 않아 직접 운전해서 가면 와인 시음을 마음껏 못하는 단점도 있고요.


런던 크뤼는 이러한 와이너리 투어의 진입장벽을 확 낮춰요. 도심에 위치해 시간을 크게 절약해 주는 것은 물론, 금전적 부담까지 덜어주죠. 가장 저렴한 테이스팅 코스가 1시간에 10파운드(약 1만 5,000원)예요. 주말뿐 아니라 주중 저녁 시간대에도 투어가 있어 퇴근하고 들를 수도 있어요. 신규 출시 와인, 지역별 와인, 계절에 어울리는 와인, 고가의 와인 테이스팅까지 테이스팅 코스의 주제도 다채롭고요. 



©London Cru



©London Cru


와인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1일 투어도 있어요. 와인 메이커 포 어 데이(Wine maker for a day)라는 이벤트로 매달 1회, 5시간 동안 진행해요. 10명의 소수 인원으로만 진행하며, 이 투어의 경우 참가비는 170파운드(약 26만 원)예요. 특히 런던 크뤼는 포도 재배를 하지 않으니 농번기가 없어 와이너리 투어를 상시적으로 진행할 수 있죠.



©시티호퍼스



오크 배럴과 탱크가 있는 와인 창고는 와이너리 투어, 프라이빗 파티 등 이색 이벤트 장소로도 활용됩니다. ©시티호퍼스


또한 런던 크뤼는 프라이빗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도 인기예요. 런던 크뤼에서 직접 주최하는 퍼블릭 이벤트가 와인 자체에 집중하는 거였다면, 프라이빗 이벤트는 공간 자체의 의미를 한층 강조해요. 와인 배럴과 탱크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오크 배럴을 테이블 삼아,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은 와인을 마시며, 가까운 사람들과 즐기는 파티를 도심 속에서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죠. 영국 공간 대여 플랫폼 베뉴 스캐너(Venue Scanner)가 2017년 약혼 파티 장소 상위 10개 중 하나로 꼽기도 했어요. 개인 고객뿐 아니라 직원 단합 대회, 신상품 런칭 등 기업 고객용 행사로도 적격이고요.



©London Cru



©시티호퍼스



와인 창고 내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을 아늑한 거실처럼 꾸며두었습니다. ©시티호퍼스



런던이라는 테루아르를 창조하다

오늘날 와인 업계는 네고시앙(Negociant)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네고시앙은 프랑스어로 ‘상인’이라는 뜻이에요. 일종의 와인 도매상인데 단순히 유통을 담당하는 중개인과 달리, 네고시앙은 자체 브랜드를 달고 판매해요. 주요 포도 생산지인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의 경우 약 113개 유명 네고시앙 업체가 부르고뉴 와인 생산량의 80%를 유통하고 있어요. 이쯤 되면 마치 샤토(Château)나 도멘(Domaine)*이 네고시앙의 OEM인 듯한 느낌도 들죠.


*샤토, 도멘: 포도 재배자를 일컫는 말이에요.


최근에는 네고시앙이 영역을 넓혀 생산 과정에도 관여해요. 거래 농가의 포도나 발효만 끝난 포도액을 사서 직접 양조하기도 하죠. 더 나아가 포도밭을 소유하고 직접 재배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렇게 생산 라인을 갖춘 생산 공장 중심형 네고시앙은 보통 상위 10%의 대형 네고시앙이에요.


사실 런던 크뤼는 이러한 네고시앙인 ‘로버슨 와인(Roberson wine)’이 만든 자체 브랜드예요. 로버슨 와인은 자체 와인을 만들기 전에 영국의 와인 도매상으로 시작했어요. 말하자면 중소 규모의 네고시앙이 대형 네고시앙이 하는 사업 영역으로 진출한 셈이에요. 다만 ‘생산시설의 위치’에서 기존 대형 네고시앙과 차이가 나죠. 


보통의 경우 대형 네고시앙들은 주요 산지 주변에 양조 시설을 둬요. 샤토와 도멘이 하던 일의 일부 혹은 전부를 그들이 직접 대체함으로써 그만큼의 수익을 가져오기 위함이에요. 하지만 로버슨 와인은 주요 산지와 상관없는 곳에, 그것도 와인 생산의 황무지라고 불리는 런던에 와이너리를 뒀어요. 이로써 샤토와 도멘은 물론 기존의 대형 네고시앙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중소 규모의 로버슨 와인이 해내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됐어요.


로버슨 와인이 런칭한 런던 크뤼가 전 세계 최초의 어반 와이너리는 아니에요. 어반 와이너리는 뉴욕, 몬트리올 등의 주요 도시에서 성황리에 운영 중이에요. 하지만 같은 어반 와이너리라고 해도 힘 주는 지점이 모두 달라요. 뉴욕의 브루클린 와이너리(Brooklyn Winery)는 인디 작가들을 위한 갤러리를 운영하며 지역 특유의 예술성과 빈티지함을 결합했고, 몬트리올의 베르세이(Versey)는 맥주처럼 케그(Keg) 단위나 탭으로 판매하며 친환경을 내세우죠.


그중에서도 런던 크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이 곳이 단순히 런던 최초의 어반 와이너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런던 와인’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프랑스의 특정 샤토와 도멘을 이야기하면 그 포도원의 테루아르를 떠올리듯, 런던 와인하면 떠오르는 ‘런던 테루아르’를 런던 크뤼가 만들어 가고 있는 거예요. 


런던 크뤼의 성공에 힘입어 이스트 런던(East London)에도 레니게이드 런던 와인(Renegade London Wine)이라는 또 다른 어반 와이너리가 생겼어요. 런던 테루아르의 토양이 비옥해지고 있는 셈이죠. 앞으로 런던 크뤼가 어떤 흐름을 만들어갈지, 10년 후의 런던 크뤼에 대한 런던의 심판은 어떨지 기다려집니다.




Reference

 로버슨 와인 공식 홈페이지

 런던 크뤼 공식 홈페이지

 London Cru is central London’s first winery, The drinks report

 London Cru: welcome to London’s first winery, The Telegraph

 London Cru doubles production of english wine, The drinks business

 London cru: A visit to London’s first winery, Londonist

 The first wines released from urban winery London Cru, Jamie Goode’s wine blog

 London’s first winery, Creative Pool

 Fancy a Côtes de Hammersmith? SW6 welcomes London’s first winery, Evening Standard

 ‘Top 10 Engagement Party Venues in London, Venue Scanner

 London Cru loses part of crop to rot, The drinks business

 [와인 재테크] 네고시앙의 역할, 한국경제매거진

 Central London winery denied vintages and grape names on labels, Decanter

 [London’s first boutique winery to open in November, Decanter

 [와인 & 스토리] 나폴레옹이 사랑한 ‘버건디’ 와인, 중앙일보

 비즈니스가 쉬워지는 THE WINE (진희정/은대환 지음, 교보문고)

 파리의 심판 (조지 M. 태버 지음, 유영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Who’s for a glass of Chateau London? A group of intrepid wine makers have set up Britain’s first urban winery. The results? Absolutely capital!, Daily 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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