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로 마트’에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가본 사람 중에 시그니처 메뉴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곳에는 숟가락으로 퍼먹는다는 재미 이상의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갈 만한 참치 전문점입니다.
마구로 마트
참치와 숟가락의 상관관계
#1 낮출 때는 확실하게
#2 참치를 먹는 새로운 방식
#3 고객이 고객을 부른다
버리는 것에서 발견한 바라는 기회
도쿄 외곽에 있는 지바 현의 미즈노야 베이커리에서는 ‘하시코 벤또’라는 케이크를 판매합니다. 직사각형의 통에 담아 휘핑크림과 각종 과일로 토핑을 한 이 케이크의 가격은 500엔에 불과합니다. 일본 스타벅스에서 460엔에 판매하는 작은 조각 케이크와 가격은 비슷한데 양도 많고 맛도 좋으니 손님들에게 인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선한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면서도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비밀은 생크림 아래에 숨어 있습니다. 롤케이크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버려지는 가장자리 부분을 도시락 박스에 담아 판매하는 것입니다.
롤케이크를 만들다 보면 팔기는 모호한 양쪽 가장자리가 남습니다. 모양이 이쁘지 않아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부위입니다. 그래서 대개는 일하는 직원들이 간식거리로 먹거나 그냥 버립니다. 하지만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맛까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시코 벤또는 이처럼 버려지는 부위를 모아 생크림을 뿌리고 제철 과일을 올려 새로운 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가장자리 도시락’을 뜻하는 ‘하시코 벤또’입니다. 다양한 롤케이크의 가장자리 부분을 모았기에 여러 롤케이크의 맛을 볼 수 있으며, 간혹 비싼 롤케이크 부분을 맛보는 호사도 누릴 수 있습니다.
버려지는 부위를 활용해 새로운 요리를 만들면 만족은 2배가 됩니다. 손님은 저렴한 가격으로 요리를 맛볼 수 있고, 가게는 남는 부위를 낭비 없이 활용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재료의 단가가 높은 제품일수록 버리는 부위를 최소화한다면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세계 최대의 수산시장으로 일컬어지는 쓰키지 경매시장에서 한 마리에 평균 2000만 원을 호가하는 참치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참치 전문점 ‘마구로 마트’는 참치 판매에서 남는 부위의 효용을 극대화했습니다. 하지만 가게에서 버리는 부위를 손님이 바라는 부위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성비를 높이는 것 이상의 고민이 필요합니다.
참치와 숟가락의 상관관계
마구로 마트는 2011년 도쿄 나카노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던 종이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참치 전문점입니다. 참치의 여러 부위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참치 전문점은 쓰키지 같은 산지 근처에 있어 참치의 신선도를 강조하거나, 긴자 같은 도심이어서 고객의 접근 편의성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마구로 마트는 산지와도 도심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역에서 내려 주택가 골목길 사이사이를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심지어 점심장사는 하지 않고 저녁에만 영업을 합니다.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찾기도 힘들고 식사 예약도 어려운 참치 전문점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테이블마다 놓인 숟가락에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 사이에 위치한 마구로 마트의 전경입니다. ⓒ시티호퍼스
육류는 뼈에 붙은 고기 자체가 하나의 요리입니다. 뼈에 붙어 있는 살점이 다른 부위보다 맛있으며, 조리 과정에서 뼈의 풍미가 고기에 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류와 달리 참치의 나카오치(등뼈에 붙은 갈빗살)는 그 자체로는 상품성이 떨어집니다. 뼈와 붙어 있어 손질이 힘들고 손질을 해도 깔끔하지 않아 사시미로서 상품가치도 떨어집니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맛은 일품입니다. 참치 갈빗살은 참치 부위 중 가장 기름지고 고소합니다. 그래서 다른 요리의 부재료로 사용됩니다. 갈빗살을 갈아 덮밥으로 만든 마구로동(참치덮밥)이나 초밥으로 만든 네기토로(군함말이초밥)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구로 마트에서는 같은 부위를 다른 방법으로 살렸습니다. 신선한 참치 갈빗살 본연의 맛을 정직하게 맛볼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고객들에게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들게 했습니다. 고객들에게는 길이 40센티미터의 기름지고 부드러운 참치 갈빗대가 통째로 제공되고, 손님들은 숟가락으로 갈빗대의 사이사이를 긁어 먹습니다. 갈빗살을 손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격도 2000엔으로 비교적 저렴합니다.
마구로 마트 대표 메뉴 ⓒ시티호퍼스
가게는 모든 부위를 남김없이 팔 수 있기에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고, 고객은 신선한 참치회를 저렴하게 그리고 재밌게 먹을 수 있습니다. 이 메뉴는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가 되어 최소 하루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효자 상품으로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남는 부위와 숟가락을 제공한다고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몰려드는 것은 아닙니다. 참치의 각 부위가 다양한 맛을 내며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듯, 마구로 마트의 다양한 노력이 조화를 이루며 인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1 낮출 때는 확실하게
마구로 마트가 있는 나카노는 지리적으로 도쿄 끝자락에 있으며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의 분당과 같은 주택가입니다. 도쿄 중심지인 긴자에서도 40여 분, 시부야에서도 30여 분이 소요됩니다. 산지인 쓰키지 시장에서도 50분이 넘게 걸립니다. 단가가 높은 참치의 특성상 참치 전문점은 수요가 많은 도심이나 산지에 자리 잡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수요가 많은 곳은 임대료가 높을 수밖에 없고, 이는 참치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마구로 마트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신선한 참치를 제공하기 위해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그것도 골목 안쪽에 자리 잡았습니다. 시내나 산지에 있으면 모객이 용이할 수는 있지만, 고정비용이 증가하는 탓에 참치 가격을 높이거나 참치 등급을 낮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품질의 참치를 저렴하게 가져오기 위한 마구로 마트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보통의 참치 전문점에서는 참치를 통으로 구입합니다. 여러 부위를 한 번에 살 수 있어 편리하며 참치를 해체하는 과정이 모객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치를 통으로 구매하여 요리로 만들다 보면 팔지 못하는 부위가 생겨 비효율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마구로 마트는 한 마리를 통째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부위만을 골라서 구매합니다. 구매 과정에서부터 낭비되는 부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임대료라는 고정비용을 절감했을 뿐만 아니라 원재료비까지도 낮췄기에 고객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참치를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참치를 먹는 새로운 방식
임대료가 낮다는 것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뜻이고, 이는 고객을 모으기가 어렵다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마구로 마트는 외진 곳에 있지만 마구로 마트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참치를 먹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고객이 찾아오게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참치를 먹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참치를 먹는 장소와 경험이 제한적입니다. 정가를 내고 먹는 고급 참치집의 코스요리나 무제한으로 나오는 프랜차이즈 참치집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참치 어획량의 80%를 소비하는 일본에서는 참치를 먹는 방법이 가지각색입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참치에서부터 참치 전문점에서 파는 사시미까지 참치를 먹는 방법은 그 부위와 종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마구로 마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치 코스는 더욱 특별합니다.
마구로 마트는 참치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3단계 방식을 제안합니다. ⓒ시티호퍼스
마구로 마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코스요리처럼 보이는 순서도입니다. 시그니처 메뉴를 하나의 시그니처 코스로 만들어 매장의 콘셉트를 강화한 것입니다. 우선 기본 메뉴인 참치 모둠을 맛봅니다. 등살, 목살, 뱃살 등이 나오는 모둠을 먹고 나면 손님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합니다. 처음 온 손님이라고 할지라도 친절히 설명된 순서도를 보고 익숙하게 주문합니다. 일반적인 참치 매장에서는 기본 메뉴에서 매출이 주로 나오지만, 마구로 마트에서는 추가 메뉴인 시그니처 메뉴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큽니다. 남는 부위에서의 매출이기에 더욱 남는 장사입니다.
가게 한쪽의 커다란 참치 해체도에 부위별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3 고객이 고객을 부른다
확산이 되지 않는다면 제안도 의미를 잃습니다. 마구로 마트는 여러 장치를 통해 고객들이 마구로 마트의 제안을 스스로 알릴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비주얼이 압도적인 시그니처 메뉴는 그 자체로 SNS의 단골 사진이 되었고, 벽면에 커다랗게 그려진 참치 해체도는 손님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이자 가게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공유되었습니다. 또한 곳곳에 있는 참치 모양의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는 것을 시그니처 코스의 마지막 순서로 제안하기도 합니다. 고객들은 마법에 걸린 듯, 마구로 마트에서 제안하는 대로 참치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SNS에 자랑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고객들은 참치 모양의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3단계 코스를 마무리합니다. ⓒ시티호퍼스
그 결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 마구로 마트로 해시태그를 걸면 즐거워하는 고객들의 모습과 시그니처 메뉴의 사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스스로 올린 진정성 있는 홍보이기에, 확산의 속도가 빠르고 범위도 넓습니다. SNS에서 유명해진 이후 2012년 ‘TV 도쿄’에 소개되면서 이제는 동네 주변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도 고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단골이 되고, 단골들이 새롭게 고객들을 데려오며 선순환 구조가 구축된 것입니다.
버리는 것에서 발견한 바라는 기회
지금이야 일본에서 참치가 최고의 음식 중 하나지만, 참치가 이렇게 인정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심해에서 잡히는 참치를 육지로 배송해오면 이미 부패해 있어 먹기 힘든 수준이 됩니다. ‘고양이도 먹지 않는 생선’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버림받던 참치에 대한 재발견은 버리는 공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70년대는 일본 전자제품의 전성시대였습니다. 미국의 폭발적 수요를 맞추기 위해 화물기를 전세 내 전자제품을 공수했습니다. 그런데 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올 때 채울 것이 없어 운송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때 빈 화물칸을 채운 것이 참치였습니다. 미국에서 헐값에 사들인 참치를 급속 냉동하여 화물기에 싣고 돌아와 지금과 같은 참치의 대중화를 만든 것입니다.
마구로 마트도 버려지는 것들에서 기회를 찾았습니다. 버려진 종이 창고를 개조해서 매장을 구성했고 버려지는 참치 부위를 활용해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시그니처 메뉴와 코스를 만들었습니다. 버려진 공간과 부위를 바라던 공간과 부위로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숟가락을 놓지 않으려는 고객들과 참치를 남기지 않으려는 마구로 마트가 있기에 오늘도 나카노 주택가 뒷골목의 불빛은 밝습니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