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의 실패작을 시그니처로, 맥주 회사의 청량한 역발상

마틸다 베이

2023.08.11

제품 개발 단계에서 탈락한 상품을 누가 사고 싶어할까요? 아마 많지 않을 거예요. 전문가의 눈높이를 통과하지 못한 제품을 굳이 제 돈 주고 사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퀄리티 높은 수제 맥주로 유명한 ‘마틸다 베이’는 역발상을 해서 제품 출시 단계에서 탈락한 맥주들을 한정판 컬렉션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바로 ‘거절당한 맥주(Rejected Ales)’시리즈죠. 


창업자이자 수석 양조자인 필이 제품 출시 과정에서 탈락시킨 맥주 27종을 제품화한 건데요. 호주 전역에서 각종 수제 맥주가 인기를 얻고 있는 마당에 누가 탈락한 제품을 사줄까 싶지만, 출시 이후 돌풍을 일으켜요. 아무도 원한 적도, 바란 적도 없는 제품은 어쩌다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거절당한 맥주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마틸다 베이 미리보기

• 미각 진단 테스트기를 나눠주는 크래프트 브루어리

 #1. 27개의 캔에 담긴 실패의 맛

 #2. 맥주 기업이 비스포크 냉장고를 만든 이유

 #3. 실패한 맥주를 얻기 위해 본품을 사는 기이한 현상

 그 누구의 발자취도 따라간 적 없는 부엉이




위기가 시작될 때 진짜 내공이 드러나요. 사업하기 좋은 환경일 때는 너나할 것 없이 순풍을 타지만, 반대일 때는 역풍을 헤쳐나가는 기민함과 순발력을 가진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내공 있는 기업들에게도 예외 없이 힘든 시간을 선사했어요. 특히 오프라인 매장에 의존하는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주류업계에요. 안그래도 사람들 간의 만남이 사라져 타격을 받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정부가 영업 시간을 제한하면서 쐐기를 박았죠. 술집들은 문을 닫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어 보였어요. 덩달아 맥주회사도 영향을 받았어요. 주요 소비 채널이었던 술집들이 문을 닫으니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요.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어요.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테지만, 술집이 망해버리면 미래의 매출 창구가 그만큼 사라지는 거였어요. 


이 때, 불리한 환경을 그대로 활용하는 기발함으로 어려움을 정면 돌파한 맥주 브랜드가 있어요. 바로 하이네켄이에요. 하이네켄은 자사의 제품을 판매하는 가장 큰 판매처이자 파트너인 술집들이 어쩔 수 없이 셔터를 내리자,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술집의 굳게 닫힌 셔터 문을 그대로 광고판으로 사용하기로 한 거죠. 코로나19 팬데믹이 탄생시킨 ‘셔터 애드(Shutter Ads)’예요. 


아이디어의 시작은 이래요. 하이네켄은 그동안 글로벌 미디어 예산의 10% 정도를 옥외 광고 예산으로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차피 옥외 광고를 할 거라면, 기존의 옥외 광고판이 아니라 술집들의 문닫힌 셔터에다가 집행해보자는 거였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게들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고, 어떻게든 술집들이 살아남아야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을 때 매출 채널이 정상화될 테니까요. 


무려 750만 유로(한화 109억 원)가 전 세계 5천 여개의 가게에 직접 집행됐어요. 매장당 평균적으로 218만원의 광고 매출이 생긴 셈이죠. 생존을 좌우할 만큼의 금액은 아닐지라도, 셔터 애드는 하이네켄이 파트너들에게 보내는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했어요. 여기에 다른 맥주 브랜드도 동참했어요. 암스텔, 크루즈캄포 등 하이네켄 산하의 다른 브랜드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경쟁사까지도요. 그렇게 셔터 애드는 뉴 미디어 플랫폼이 됐죠. 


기발함, 실효성, 선의를 모두 잡은 하이네켄의 셔터 애드는 2021년 칸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어요. 그뿐 아니라 이전의 옥외 광고에 비해 40%나 미디어 가치를 끌어올렸고요. 이처럼 하이네켄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던 시장 상황에서 진짜 내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알렸어요.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제약을 똑똑하게 이용한 기업이 또 있어요. 이번에는 호주로 건너가 볼게요.



ⓒHeineken



미각 진단 테스트기를 나눠주는 크래프트 브루어리

호주 최초의 수제 맥주 양조장을 만든 ‘마틸다 베이(Matilda Bay)’도 위기에서 내공을 드러냈어요. 마틸다 베이는 코로나 진단 키트를 만들었어요. 수제 맥주를 만드는 기업이 웬 진단 키트냐고요? 마틸다 베이가 만든 건 신속 항원 테스트기가 아니라 ‘미각 진단 테스트기’예요. 팬데믹 기간 중 새로 출시한 수제 맥주를 홍보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었죠. 



ⓒMatilda Bay



ⓒMatilda Bay


마틸다 베이가 실제 신속 항원 테스트기와 유사하게 디자인한 미각 테스트기에는 맥주 신제품과 시음 카드가 들어 있어요. 실제로 코로나 19에 전염 됐다가 회복한 인플루언서와 미디어 직원들에게 이 패키지를 제공했죠. 만약 미각이 제대로 회복된 거라면 시음 카드에 적힌 신제품의 풍성한 맛을 모두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은 맥주를 마실 때 시음 카드에 적힌 4가지의 맛을 체크하면서 세비야 오렌지와 귤의 과육이 느껴지는 강렬한 맛에 더 집중했죠. 위기를 활용해 기회로 연결하는 재치가 엿보이는 시도였죠. 


이같은 마틸다 베이의 내공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요. 알고보면 깊은 역사를 가진 기업이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에 최초로 문을 연 수제 맥주 양조장이자, 맥주를 마시는 경험이 와인만큼 고급일 수 있음을 보여준 기업이에요. 지금과는 달리 소규모 양조장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1983년에 등장해서 수제 맥주 업계의 선구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요. ‘최초’라는 수식어 하나로 마틸다 베이를 표현하기엔 충분하지 않아요. 마틸다 베이의 수제 맥주 뒤에는 완벽의 완벽만을 꾀하는 창업자 필(Phil Sexton)이 있거든요. 


호주 수제 맥주의 대가로 불리는 필은 마틸다 베이가 1990년에 호주 최대 주류 회사 CUB(Carlton and United Breweries)에 인수된 후 오랜 시간 떠나 있었는데요. 성장이 정체되자, 2019년에 CUB와 파트너십을 맺고 다시 마틸다 베이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마틸다 베이를 다시 한번 호주 최고의 수제 맥주 회사로 만들겠다던 필은 성공적이면서도 완벽한 맥주를 출시해도 모자랄 판에, ‘거절’과 ‘실패’라는 주제의 맥주 시리즈로 무려 27개의 신제품을 출시해요. 게다가 실패의 과정을 세세하게 드러내기까지 하죠. 과정 자체를 세상에 공유하고 판매하는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진수나 다름 없어요. 실패를 비즈니스로 만든 완벽주의자의 사연을 알아볼까요? 



#1. 27개의 캔에 담긴 실패의 맛

제품 개발 단계에서 탈락한 상품을 누가 사고 싶어할까요? 아마 많지 않을 거예요. 전문가의 눈높이를 통과하지 못한 제품을 굳이 제 돈 주고 사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퀄리티 높은 수제 맥주로 유명한 ‘마틸다 베이’는 역발상을해서 제품 출시 단계에서 탈락한 맥주들을 한정판 컬렉션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바로 ‘거절당한 맥주(Rejected Ales)’시리즈죠.


창업자이자 수석 양조자인 필이 제품 출시 과정에서 탈락시킨 맥주 27종을 제품화한 건데요. 호주 전역에서 각종 수제 맥주가 인기를 얻고 있는 마당에 누가 탈락한 제품을 사줄까 싶지만, 출시 이후 돌풍을 일으켜요. 아무도 원한 적도, 바란 적도 없는 제품은 어쩌다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거절당한 맥주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거절당한 맥주 시리즈는 2022년, 필의 꿈에서 시작됐어요. 필은 호주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전통적인 유럽식의 골든 에일을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마틸다 베이의 파트너인 양조자들이 필의 기준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어요. 단 하나의 완벽한 골든 에일을 만들기 위한 여정이 약 18개월 간 계속됐죠. 결국 만족할 만한 맥주를 만들었지만, 이 하나를 만들기 위해 27번의 거절을 당하게 돼요. 그 거절의 과정을 시리즈로 묶어 출시한 게 바로 ‘거절당한 맥주’고요. 



ⓒMatilda Bay


마틸다 베이는 일반적인 기업과 정반대의 전략을 사용해요. 보통 대다수의 기업은 새로 나온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며 ‘이것은 최고’라고 자랑해요. 프로모션을 위해 만드는 스토리도 엇비슷하죠. 호주의 수제 맥주 기업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대부분의 수제 맥주 회사들은 최상의 원산지에서, 최고의 재료로, 혁신적인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는 것을 강조했죠. 상품은 달라도 결국 유사한 스토리를 비슷한 방식으로 판매하는 거예요.


그런데 마틸다 베이는 ‘실패와 거절’의 키워드를 수면 위로 올려요. 수석 양조자인 필이 마틸다 베이의 명성에 걸맞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제품들을 거절했는지에 조명을 비춘 거죠. 완벽한 수제 맥주를 탄생시키기 위한 태도, 자세, 과정, 기준 등을 이야기로 만들어 판 셈이에요. 모두가 스스로를 최고라고 말할 때 자신의 실패 과정을 낱낱이 밝힌 마틸다 베이는 색다른 모습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어요.


‘거절당한 맥주’ 시리즈는 패키지 디자인부터 캔 뒷면의 스토리, 영상 필름에 이르기까지 고객과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거절과 실패를 기념해요. 실패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는 있다고 해도, 실패를 기념하고 축하하기까지 한다니 이상하게 보일 수 있어요. 누구나 실패한 경험이나 거절당한 기억 같은 건 최대한 감추고 싶잖아요. 더군다나 기업은 대중에게 제품을 알리고 구매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마틸다 베이의 기획은 의문을 자아냈어요.



ⓒMatilda Bay


심지어 마틸다 베이는 실패한 회수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캔 전면부에 숫자를 크게 넣어요. ‘거절당한 맥주’는 총 27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맥주의 이름 보다 거절당한 순번의 폰트 크기가 수십 배는 더 크죠. 이쯤 되면 이런 궁금증까지 생겨요. ‘과연 첫 번째 실패와 27번째 실패의 맛은 얼마나 다를까?’ 하고요. 맥주 캔을 살짝 돌려보면 각 제품이 어떤 이유로 필에게 거절을 당했는지 상세하게 적혀있어요. 거절당한 이유도 가지각색이죠. 


예를 들어 볼게요. 양조 팀의 일곱 번째 실패담을 나타내는 7번 캔의 이름은 ‘감질날만큼 가까운(Tantalisingly near)’이에요. 감질날 만큼 성공 가까이에 다가갔었다는 양조 팀의 아쉬움이 느껴지죠. 캔 후면부에 적힌 이야기에 따르면, 양조팀은 이 제품을 만들고 나서 꽃 내음과 씁쓸한 홉 향기의 조화에 감탄했어요. 물론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그 향기와 밸런스가 아무리 조화롭다 한들 필의 높은 기준에 다다르진 못했거든요.


이들의 스무 번 째 도전에는 ‘음정이 맞지 않음(Off note)’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요. 필은 맥주가 혀 위에서 노래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야말로 제대로 된 맥주를 만든 거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20번째 제품은 필의 입 안에서 연주를 펼치다가 별안간 베이스 음에서 균형이 깨졌어요. 안타깝게도 필이 그 불균형을 눈치챈 순간 쇼는 끝나버렸죠. 



ⓒMatilda Bay


필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최종 버전을 만들기 위해 도전을 거듭하는 양조 팀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움마저 느껴져요. 통과를 코 앞에 두고도 마지막 한 끗이 틀어져 결국 거절당하고 마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왠지 모르게 웃음도 나오고요. 이처럼 맥주를 향한 진심과 양조 과정의 재치를 담은 27개의 ‘완벽할 뻔했던 맥주’ 이야기는 사람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이야기는 글의 형태로만 전달되지 않아요. 마틸다 베이는 제품을 홍보하며 이 이야기를 영상 필름으로 제작해 함께 공개했죠. 그리고 거리 곳곳에 거절의 사연들을 전시하며 통합 캠페인을 실시했어요.




ⓒMatilda Bay



#2. 맥주 기업이 비스포크 냉장고를 만든 이유

하지만 잘 기획해서 만든 제품도 고객을 어떤 모습으로 만나느냐가 중요해요. 구매 결정이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촘촘하게 기획해야 득점이 가능하죠. 마틸다 베이가 18개월에 걸쳐 공들여 만든 ‘거절당한 맥주’의 기획과 제품 퀄리티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어요. 하지만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미디어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죠. 마틸다 베이가 설립됐던 1983년에는 수제 맥주 양조장이 없었던 반면, 지금은 600개가 넘는 양조장이 경쟁을 펼치고 있으니 경쟁을 돌파할 방법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거절당한 맥주’ 시리즈는 여러모로 소매점에 입점시키기에 불리한 측면이 많았어요. 이름부터 기존의 문법을 뒤집었으니까요. 물론 고객이 제품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상황은 금방 달라지겠죠. 하지만 온갖 맥주들이 뒤섞인 채 쌓여 있는 가게에서 이름 하나만 보고 누군가가 거절한 맥주를 선뜻 사려는 고객은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마틸다 베이는 일단 이 맥주가 고객에 눈에 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결론은 심플했어요. 비스포크 냉장고를 만드는 거였죠. 


마틸다 베이는 ‘거절당한 맥주’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맞춤형 냉장고를 만들어요. 그리고 비스포크 냉장고 안에 27개의 캔을 번호 순서대로 정렬한 후 보틀 숍에 설치했어요. 1번 캔부터 27번 캔까지, 거절당한 맥주들로만 채운 냉장고는 소매 가게와 펍 안의 어수선함 안에서도 단정한 모습으로 빛났죠. 


냉장고가 매장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가게에서 반대하지 않았냐고요? 천만에요. 오히려 두 팔 들고 환영했어요. 고객들이 비스포크 냉장고 앞에 서서 캔에 적힌 이야기를 하나씩 읽느라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거든요. 고객들은 매장에서 거절의 역사를 읽어내려가며 마틸다 베이의 실패담을 파헤치기 시작했어요. 적은 미디어 예산이 오히려 독특한 고객 경험을 만드는 데 한 몫한 셈이죠.



ⓒMatilda Bay


제약 속에서 돋보이는 법을 찾아내는 마틸다 베이의 선택은 코카콜라의 마케팅 방식과도 유사해요. 2000년대 초 코카콜라도 이전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었던 독특한 프로모션 방식을 시도했었거든요. 코카콜라 전용 냉장고를 대형마트 계산대 옆에 설치하거나, 육류 코너에 음료수를 배치한 거예요.


이와 같은 프로모션 방식은 지금은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됐어요. 그렇다면 코카콜라는 처음에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리게 되었을까요? 매장 안에서 고객의 구매 과정과 패턴을 관찰한 결과에서 비롯됐어요. 사람들이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1시간 정도 되다보니, 쇼핑을 끝내고 계산대 앞에 설 때 쯤이면 갈증을 느낄 수 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코카콜라는 적은 비용을 들여 계산대 근처에 소형 냉장고를 설치했어요. 그 결과 고객들은 장보기의 마지막 단계로 코카콜라 캔을 집어들었죠.


유통 채널에 제품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제품이 놓여질 매대까지 제공하는 전략은 소매점과 소비자의 마음 모두를 사로잡았어요. ‘거절당한 맥주’는 어떤 가게도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전략을 가지고 유통 채널 안으로 잠입했죠. 판매할 수 있는 매대까지 만들어주고, 고객들이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했으니 소매점 입장에서는 ‘거절당한 맥주’를 환영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이름과는 다르게 말이죠. 그런데 가게들이 ‘거절당한 맥주’ 시리즈를 거부할 수 없는 데는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어요.



#3. 실패한 맥주를 얻기 위해 본품을 사는 기이한 현상

오리지널 에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한 27종의 ‘거절당한 맥주’는 쉽게 구할 수가 없어요. 소매점이나 공식 홈페이지에서 ‘거절당한 맥주’를 단품으로 따로 살 수 없거든요. 시리즈에 포함되는 맥주 종류만 해도 27가지가 되는데 개별로 따로 살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틸다 베이는 오리지널 에일을 사라고 말해요. 소매점에서 오리지널 에일 6개입 팩을 구매하면 무료로 ‘거절당한 맥주’를 주겠다면서요. 그리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오리지널 에일 24개입으로 구성된 상자를 사면 ‘거절당한 맥주’ 4개를 무료로 줘요. 거절할 수 없게 만든 ‘거절당한 맥주’를 맛보고 싶으면 오리지널 에일을 사야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렇게 사은품 형태로 제공하는 판매 매커니즘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틸다 베이는 소매점이 ‘거절당한 맥주’를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고객이 소매점에서 ‘거절당한 맥주’를 받으려면 무조건 6개의 오리지널 에일을 구매해야 해요. 소매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객단가를 단번에 올릴 수 있는 구미 당기는 전략이죠. 게다가 고객들이 이 시리즈에 포함되는 맥주를 전부 맛보고 싶다면 훨씬 더 많은 오리지널 에일을 구매해야 하고요. 이렇게 고객이 궁금해하고 또 원하는 물건에 조건과 제약을 내걸었더니 제품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어요. 고객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켜서 시리즈의 모든 제품을 맛보게 만드는 동시에, 소매점에는 판매량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거예요.



ⓒMatilda Bay


시장은 마틸다 베이의 똑똑한 의도대로 움직였어요. 오리지널 에일의 판매액은 11배 증가했고, 유통 채널은 17%가 증가했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런 매커니즘이 완벽주의자 필을 드디어 만족시켰다는 거예요. 이처럼 사은품의 저력이 오히려 본품을 넘어서는 현상을 ‘왝더독(Wag the dog)’이라고 불러요.


왝더독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라는 뜻이에요. 우리나라에도 동일한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 ‘주객전도’가 있죠. 왝더독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사은품을 갖고 싶어서 본품을 구매하게 되는 현상이에요. 새로 나온 한정판 굿즈를 받기 위해 커피를 수십 잔씩 구매한 후 굿즈만 가지고 나온다거나 스티커 씰을 받기 위해 빵을 사서는 씰만 가지고 빵을 버린다거나 하는 식이죠. 모두 사은품의 매력이 본품의 매력을 뛰어넘은 케이스예요.


하지만 마틸다 베이의 본품인 ‘오리지널 에일’과 사은품인 ‘거절당한 맥주’는 결국 일체화된 상품이나 다름없어요. 경험하는 순서의 문제일 뿐 ‘거절당한 맥주’ 시리즈를 맛본 맥주 애호가라면 최종 결과물인 오리지널 에일을 맛보고 싶을 게 분명하거든요. 오리지널 에일을 먼저 맛본 고객 또한 그 맛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테고요. 실제로 ‘거절당한 맥주’ 캠페인 덕분에 오리지널 에일의 판매량은 기존 대비 11배나 증가했어요.



ⓒMatilda Bay


그렇다면 ‘거절당한 에일’ 시리즈를 탄생시킨 장본인, 필은 이 제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최고의 제품이 탄생할 때까지 거절을 반복한 완벽주의자잖아요. ‘거의 완벽할 뻔’했던 자신의 제품들을 세상 밖에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있진 않았을까요? 이에 대해 필은 의외의 답변을 내놓아요.


“상업적으로는 조금 무모할 수도 있지만, 이건 우리가 여기서 일을 하는 방식일 뿐이에요. 완벽한 맥주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헌신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이 ‘거절당한 맥주’를 시도할 수 있게 했어요. 이건 오리지널 에일 다음으로 맛보실 수 있는 최고의 맥주예요.”

- 필, CUB 홈페이지 중


완벽주의자인 필에게 ‘거절당한 맥주’는 실패의 과정이 아니라 헌신의 과정을 뜻했던 거예요. 게다가 이 맥주들은 상을 수상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는 충분한 제품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 스물 일곱번의 거절을 세상에 드러낼 만한 가치는 충분했던 거죠. 여기에다가 이 시리즈를 함께 기획했던 대행사 Howatson+Company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개빈(Gavin)의 말을 듣고 나면 27가지의 맥주를 모두 시도해보고 싶어질 거예요.


“성공만큼 달콤한 맛은 없다고 하는데, 마틸다 베이에서는 실패도 맛있어요.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경험해볼 수 있도록 그 실패를 캔에 담았습니다."

-개빈, CUB 홈페이지 중



그 누구의 발자취도 따라간 적 없는 부엉이

실패한 맥주조차 맛있는 마틸다 베이의 수제 맥주는 동물 이름을 포함한 제품들이 많아요. Redback은 호주의 악명 놓은 거미에서, Fat Yak는 야크에서 이름을 따왔어요. Dogbolter의 맥주병에는 개, Original Ale에는 부엉이가 그려져 있죠. 이중에서 마틸다 베이가 가장 아끼는 동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부엉이에요. 최고의 작품이나 다름없는 오리지널 에일에도 부엉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그 애정의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죠.



ⓒMatilda Bay



ⓒMatilda Bay


마틸다 베이는 스스로를 상징하는 동물은 부엉이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해요. 공식 홈페이지와 굿즈 등 곳곳에서 부엉이를 만날 수 있고요. 그렇다면 왜 하필 부엉이일까요?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질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갈 길을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모습이 마틸다 베이가 추구하는 바와 닮았기 때문이에요.


브랜드의 연식이 오래되고 역사가 길어지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고유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되죠. 시장의 니즈와 고객의 취향을 제때 알아채고 제품에 반영하는 기민함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이런 변화가 모두에게 쉬운 건 아니에요. 제 아무리 큰 기업이라고 해도 성공하는 길만 걸어가는 것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원작 이기는 속편 없다’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의 예전 모습을 그리워하는 고객들도 있어요. 하지만 마틸다 베이도 마찬가지일까 싶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해요. ‘원작에 충실한 속편’이라는 게 마틸다 베이를 향한 세간의 평가니까요.


‘1983년 이후, 그 누구의 발자취도 따라간 적 없습니다.’

(‘FOLLOWING IN NO ONE'S FOOTSTEPS SINCE 1983.’)


마틸다 베이의 홈페이지에 쓰여있는 말이에요. 호주 최초의 수제 맥주 양조장으로 등장했던 1983년 이래로 단 한번도 누군가의 성공 방정식을 따라간 적 없다는 자부심과 비장함이 느껴져요. 누군가의 발자취를 뒤쫓은 적 없다는 건 항상 자기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만들면서 걸어왔다는 뜻이기도 해요. 자기 자신의 성공에 만족해서 도태되거나,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면서요. 물론 누군가가 걸어간 길을 재빨리 따라가는 게 가장 편하고,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마틸다 베이처럼 실패마저 사랑받게 만들 수 있다면 과감히 혼자 길을 나설만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Reference

 마틸다 베이 공식 홈페이지

 100% of Bars Supported by Heineken’s Grand Prix-Winning Shutter Ads Re-Opened, Little Black Book

 Why A Story About Product Failure Received an Immortal Commendation, Little Black Book

 Matilda Bay shows how ale perfection is done–by releasing its 27 ‘rejects’, Teddy Cambosa, MARKETECH APAC

 [슬기로운 회사생활] '쇼 미 더 머니'와 코카콜라에서 배우는 실험정신, 비즈한국, 네이버포스트

 COKE INTENSIFIES OCCASION-BASED MARKETING, Carol Angrisani, Supermarket News

 Matilda Bay launches Rejected Ales via Howartson + Co, Mumbrella

 Rejected Ales, Contag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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